2017년 1월 8일 일요일

출애굽기 20:1-26 계명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계명
출애굽기 20:1-26

20:1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일러 말씀하셨다. 

20:2 "나는 너를 이집트 땅, 곧 종살이하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다. 

20:3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마라. 

20:4 너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과,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마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아버지의 죄를 자손에게로 삼사 대까지 벌하고, 

20:6 나를 사랑하며 내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수천 대까지 은혜를 베풀 것이다. 

20:7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부르지 마라. 그의 이름을 헛되게 부르는 자에게 나 여호와가 죄 없다 하지 않을 것이다. 

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 

20:9 육일 동안 네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 

20:10 제칠일은 여호와 네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집안에 머무는 나그네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마라. 

20:11 이는 육일 동안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들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 주어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다. 

20:12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여호와 네 하나님이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 것이다. 

20:13 살인하지 마라. 

20:14 간음하지 마라. 

20:15 도둑질하지 마라. 

20: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여종이나 그의 소나 나귀나 네 이웃에게 속한 어떠한 것도 탐내지 마라." 

20:18 모든 백성이 천둥과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보고 떨며 멀리서서, 

20:19 모세에게 말하기를 "당신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면 저희가 듣겠으니,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직접 말씀하시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을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20:20 모세가 백성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너희를 시험하시고, 너희가 하나님을 경외하여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20:21 백성들은 멀리 서 있고, 모세는 하나님께서 계시는 짙은 구름으로 가까이 갔다. 

20: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가 직접 보았으니, 

20:23 너희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만들지 말고 너희를 위해 은 신상이나 금 신상을 만들지 말며, 

20:24 나를 위해 흙 제단을 만들고 그 위에 네 양과 수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라. 내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모든 곳에 내가 가서 너에게 복을 주겠다. 

20:25 네가 나를 위해 돌 제단을 만들려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마라. 네가 정으로 그 돌을 쪼면 그것이 부정해지기 때문이다. 

20:26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마라. 너의 하체가 제단 위에 드러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1. 구원의 하나님

본문 1-2절에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서론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고 하였는데, 언제나 이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과거 종살이 하던 곳에서 하나님께서 건져 내어 주신 것을 언제나 기억하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독수리의 날개로 품어서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는데, 그것을 감사하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는 마귀의 종, 사망의 종, 죄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불러서 자유와 해방을 주셨고, 영광 가운데 세워 주셨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감사하며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일본 시대 때에 우리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징용으로 많이 끌려가 지하 방공호를 파
다가 많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여자들은 일본 군대의 위안부로 끌려가 몸을 다 버리고 비참한 상태에 빠졌었습니다. 그래도 누구 하나 어디에 가서 호소할 데가 없습니다. 또 한국 사람들을 서간도와 만주로 다 쫓아 버렸습니다. 이처럼 비참한 상태에 빠졌던 한국
을 하나님께서 건져 내셔서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항상 감사하며 하나님을 더욱더 잘 섬겨야 합니다. 여생을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생명까지 내어놓고 나가는 자리에 서야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으니 감사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십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행위 계약이 아니고 은혜 계약의 기초입니다. 십계명을 통하여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게 됩니다. 십계명은 크게 제 1계명부터 제 4계명까지는 천륜에 대한 계명이고, 제 5계명부터 제 10계명까지는 인륜에 대한 계명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2. 십계명

제1계명: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본문 3절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천륜에 대한 첫째 계명으로, 하나님 한 분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면 그것은 죄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뿐이신 유일하고 참된 신이십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신으로 여기고 섬기는 것은 다 우상입니다. 또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다 마귀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성도가 하나님과 마귀를 겸하여 섬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섬기면 안됩니다.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조상 제사하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고, 무덤에 가서 절하는 것도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사해도 안 되고, 제사에 참여해서도 안 됩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일입니다.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
는 성도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2계명: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

본문 4-6절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
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둘째 계명으로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서 섬기고자 하는 대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는 것입니다.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고, 절하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형상을 만들어 놓고 복을 달라고 하는 것은
제2계명을 어기는 죄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면, 그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미워하고 시기하는데서 나온 것이 아니고, 사랑에서 나온 것으로 거룩한 질투입니다. 즉 사랑을 받고 자 하는데서 오는 질투가 아니고, 사랑을 주고자 하는데서 오는 질투입니다.

그러면 아비의 죄가 삼사 대까지 이른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아버지가 지은 죄 값으로 삼사 대까지 벌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죄를 지으면 아들이 그 죄를 본 받아서 또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손자도 그 할아버지의 지은 죄를 본 받아서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또 자녀가 아버지의 죄를 본 받아서 자기도 죄를 범하게 되므로 그 죄 값을 받게 되어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죄를 지으면 그 죄의 영향을 아들이 받고, 손자도 받고, 증손자도 받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죄를 지었어도 그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믿는 일을 잘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바로 하여야 아들이 바로 됩니다. 에스겔 18장 2절에 “…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라고 하였습니다.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면 아들의 이가 시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가 지은 죄를 아들이 책임을 안 진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한 사람이 하나님을 잘 섬김으로 그 공로로 인해서 천대
까지 복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하나님을 잘 섬기면 아들이 그 아버지의 신앙을 본 받아서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것입니다. 또 아들이 잘 섬기면 손자도 그 신앙을 본 받아서 잘 섬긴다는 것입니다. 손자가 잘 섬기면 또 그 아들들이 잘 섬깁니다. 대대손손, 수 천 대까지 그 신앙이 계승되어 내려가서 수천 대까지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을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본을 받았고, 이삭의 신앙을 야곱이 본을 받아 복을 받았으며, 이와 같이 그 신앙의 계대가 계승이되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수 천대까지 복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 아브라함의 신앙을 우리도 계승을 하여 나가면 우리까지 복을 받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자기 아버지의 좋은 신앙을 본 받는 아들들은 복을 받습니다. 할아버지의 좋은 신앙들 본 받는 자손들은 복을 받습니다. 가정에 하나님을 잘 섬기는 한 사람이 있으면, 그 가정이 다 예수님을 믿고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하나님을 잘 섬기면 그 자녀들이 그 부모의
신앙을 본 받아서 하나님을 잘 섬겨 복을 받습니다.

제3계명: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본문 7절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셋째 계명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망령되이’란 ‘헛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요새 “하나님이 주무신다, 죽으셨다”는 등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들은 다 벌을 받습니다.

제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본문 8-11절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 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넷째 계명으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의 안식은 토요일이었는데, 신약시대의 안식일은 주일로 날짜가 변경되었습니다. 날짜가 변경되었다는 말이 어디 있습니까? 히브리서 7장 18절에 전엣 계명이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패하였다고 하였고, 히브리서 4장 7절에는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날을 정하였다고 하였는데, 다른 날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또 골로새서 2장 17절에는 “이것 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의 인식일은 그림자로서 주신 것이고,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안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참된 안식을 주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일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안식을 주셨습니다(요 20:19).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구속하시고 부활로 참된 안식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는 주일을 지키는 것이 참된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안식을 주신 날이고(요20:19), 또 성부께서 계시를 주신 날이고(계 1:10),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입니다(행 2:1). 주일에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과 복을 주셨습니다.

주일을 지킬 때에 안식일을 지키는 정신으로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이 날은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또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또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나그네도 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일에 일하는 것은 죄입니다. 주일에 일하는 것은 하나님의
날을 도적질하는 죄입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날입니다. 이사야 58장13-14절에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6.25사변 때 거창에 인민군이 내려와서 배추달이라는 교회 청년에게 짐을 좀 지고 가라고 하였더니, “오늘은 주일이라 짐을 못 지고 갑니다”라고 하였답니다. 그러면 개를 끌고 가라고 하니까, 오늘은 주일이라 개도 끌고 갈 수 없다고 하였답니다. 그래서 또 마당을 쓸라고 하니까, 오늘은 주일이라서 못 쓴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민군이 뒷동산에 데리고 올라가서 쏴 죽이고 갔다고 합니다. 이 청년은 주일을 지키다가 순교를 당한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배추달씨가 순교자의 영광의 반열에 올라가 앉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영광입니다.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살았으면 지금 아마 늙어서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주일을 지키다가 순교하여 영원한 영광의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갔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요즘은 마귀가 4계명을 범하게 하는 시대입니다. 주일에 결혼식하고, 주일에 일하는 것은 다 죄입니다. 교회에서 주일에 제직회를 하고 음식점에 가는 것도 죄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부산에 어떤 성도가 있었는데, 예배가 끝난 후에 수박 등 무엇을 많이 가지고 왔습니다. 어제 사다 놓는 것을 못 보았는데 가지고 오길래, “오늘 사왔는가?”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안 사왔다고 합니다. 내일 돈을 주겠다고 하고 외상으로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 가게에 도로 갖다 주고 오라고 하였더니, 지금 갖다 주어도 가게 주인이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안 받아도 도로 갖다 주라고 했더니, 도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 가게 주인이 “교회가 다 썩은 줄 알았는데, 거기에 진짜가 있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는 하나님의 날인 주일을 지키는 것부터 바로 하여야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습니다.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십계명 중에서 제 1계명에서 제 4계명까지는 천륜에 대한 계명으로 하나님께 대해서 바로 하는 것이고, 제 5계명에서 제 10계명까지는 인륜에 대한 계명으로 사람에게 대해서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륜에 대한 계명 중 첫째가 부모공경입니다.

본문 12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였습니다. “네 생명이 길리라”는 것은 부모 공경을 잘 하면 중간에 실패하지 않고 잘 된다는 말입니다. 에베소서 6장 3절에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
습니다. 장수한다는 말은 가다가 중간에 망하지 아니한다는 뜻입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면 일생동안 가다가 중간에 실패하지 아니하고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나가면 자기는 잘할 것 같아도 가다가 망할 날이 옵니다.

왜 그러는가 하면 부모는 벌써 오랜 세월 수십 년 전부터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흥하고 망하는 것을 다 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에게는 인생 지식이 많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믿는 부모라면 더욱더 성경에 대한 지식이 풍부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보고 ‘이것은 나가다 실패할 것이다’, ‘저것은 잘 될 것이다’ 하며 훤히 압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을 잘하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오랜 경험이 있는 의사들도 환자를 보면, 고칠 수 있는 병인지 고칠 수 없는 병인지 어느 정도 다 압니다. 나이 많은 교역자도 오랜 신앙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이렇게 나가다가는 실패하겠다’ 하며 훤히 압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좀 부족해도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에게 순종을 하면 장수합니다. 부모를 순종하는 것은 주 안에서 해야 하지만, 공경하는 것에는 조건이 없습니다(엡 6:1-2).

제6계명: 살인하지 말지니라

본문 13절에 “살인하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여섯째 계명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살인이지만 남을 미워하는 것도 살인입니다(마 5:21-22; 요일 3:15).

제7계명: 간음하지 말지니라

본문 14절에 “간음하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일곱째 계명입니다. 마태복음 5장 27-28절에는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자도 이미 마음에 간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는 것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심령으로 하나님을 떠난 것
이 간음입니다. 간음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실제적 간음이 있고(골3:7), 여인을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는 간음이 있고, 영적 간음이 있습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 영적 간음입니다.

제8계명: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본문 15절에 “도적질하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8계명입니다. 남의 물건을 취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도적질이지만, 하나님의 것을 바로 드리지 않는 것도 도적질입니다. 말라기 3장 8-9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는 것이 도적질한 것입니다. 십일조를 안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온 나라가 저주를 받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또 주일도 하나님의 날입니다

제4계명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였는데,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날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제9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본문 16절에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제9계명입니다. 거짓말하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거짓의 아비는 마귀라고 하였습니다.
거짓말 하는 자는 마귀의 자식입니다. 또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는 진실한 자가 이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진실하고 양심을 똑바로 써야 합니다.

제10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본문 17절에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제10계명입니다. 탐내는 것은 제10계명을 범하는 죄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이 있어도 탐내지 말아야 합니다.
최권능 목사님의 사모님이 “오늘은 밥할 쌀이 없습니다”라고 하니까, 최권능 목사님이 “저녁때도 안 되었는데, 벌써 밥할 걱정을 하고 있느냐?”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저녁때가 되어서 다른 사람들의 집 굴뚝에는 밥을 하느라고 연기가 나온다고 하였더니, 최권능 목사님은 “남 밥할 때와 우리 밥할 때가 같은가? 우리 저녁때는 아직 안되었다”고 하시며 기도하자고 하시길래 한참 기도하는데, 그 동네에 어떤 불량자가 지나가다가 ‘저녁 할 쌀이 없어서 기도하고 있구나’ 하며 쌀을 한 말 가져다 놓았다고 합니다. 최권능 목사님은 기
도하고 나서 “이것 보라고,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았느냐?” 하시니까, 그 사람이 “내가 준 것이지,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냐?”고 하였더니, 최권능 목사님이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이 쌀 한말을 가져올 생각을 했겠는가?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키셨으므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냐?”고 하였다고 합니다.
탐내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아야 합니다. 남의 것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것을 탐내지 말아야 합니다. 탐내는 것은 죄입니다. 탐내어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 갖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자는 하나님께 벌을 받습니다.

3. 율법

백성이 두려워함

본문 18-19절에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들이 하나님께서 강림하시므로 나타난 현상들을 보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모세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두려워하게 된 것은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면 자기들의 죄가
다 드러나서 당장에 하나님께로부터 벌을 받아 죽을까 하였기 때문이며, 또 비천한 인간이 지극히 거룩하시고 엄위하신 하나님을 대면할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눅 5:8; 계 1:17).

본문 20절에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신 것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며 범죄치 않게 하려고 강림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고, 하나님을 경외케 하여 복을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려고 강림하셨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어떠한 하나님으로 알고 믿는지,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을 하는지를 시험해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시험하시는 것입니까?
믿음을 시험 하시는 것입니다. 불신앙의 요소가 있는지 없는지, 하나님을 절대 의지하는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불신앙의 요소가 있으면 제거시키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벌벌 떤 것은 믿음이 없는 증거입니다. 그것을 시험해서 믿음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 회개시키기 위해서,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범죄하지 않게 하시려고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기 위함

십계명은 율법의 요긴한 부분입니다. 율법이 신구약을 전부 합하여 613가지입니다. 적극적인 요소로 “하라”는 것은 365가지입니다. 매일 하나씩 해나간다고 생각하면 기억하기 쉽습니다. 소극적인 요소로 “하지 말라”는 248가지입니다. 그 가운데 요긴한 부분이 십계명입니다. 그러면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습니까? 율법을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은 구원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고, 율법을 안 지키면 구원을 못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시대에나 구약시대에나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즉 아담부터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창 3:15). 구약시대의 모든 성도가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그것을 모르고 율법을 지켜서 구원 받으려고 하다가 전부 실패했습니다. 율법주의는 구원을 못 받습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죄를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로마서 3장 20절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하였고, 갈라디아서 3장 24절에는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
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이 오기 전에는 죄를 지어도 죄인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오므로 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즉 율법에 탐내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면 탐심을 품
고도 죄인 줄 몰랐는데, 탐내지 말라고 하였기 때문에 탐심이 들어올 때에 죄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게 되었고, 그리스도에게로 가게 되었습니다. 또 우상을 섬기면서도 죄인 줄 몰랐는데, 율법에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였기 때문에 죄인줄 깨달았습니다.

율법은 은혜 계약의 기초임

그러면 율법은 행위계약입니까, 은혜계약입니까? 율법은 행위계약이 아니고 은혜계약의 기초입니다. 행위계약은 행하면 구원받고 행하지 못하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행위계약은 선악과에 나타났습니다. 즉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고 안 따먹으면 삽니다. 그러나 행위계약은 실패했습니다. 이제는 율법을 주신 목적은 다시 행위계약으로 주신 것이 아니고 은혜계약의 기초로 주셨습니다. 계명을 범하면 다 죽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 대신 율법을 다 행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갚아 주시고, 우리에게 의를 입혀 구원해 주시려고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않음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율법을 폐합니까?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3장 31절에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
닙니다. 마태복음 5장 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였고, 마태복음 24장 35절에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구원파에서는 어떻게 주장하느냐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율법을 다 지켜주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의인이 되었으므로, 죄를 안 지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율법대로 살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죄 값을 물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법적으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틀린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구원파에서는 이미 의인이 되었으니까 말씀대로 살지 않고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안 드려도 괜찮고, 주일을 안 지켜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파는 교회를 파괴시키는 파이며, 성도의 신앙을 무너뜨리는 파입니다. 하나님 앞에 복을 못 받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율법을 지킴

예수 믿는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므로,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이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마귀 뜻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려면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부터 순종하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계명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계명을 구원을 받으려고 지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주의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으므로, 즉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성경을 다 지키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성경을 지키는 것만큼 그 사람의 영이 자라나고 큰 자가 됩니다. 마태복음 5장 19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
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계명을 행함으로 영이 자라납니다. 계명을 지키려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생명을 내어놓고 나갑니다. 계명을 안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하였는데(롬 6:23), 계명을 범하면 죄입니다. 죄는 소요리 문답에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나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어기는 것이 죄이고, 성경을 순종하다가 부족한 것이 죄입니다.

율법과 은혜는 분리할 수 없음

성경에는 계명도 있지만 은혜면도 있습니다. 계명 안에 은혜가 있고 은혜 안에 계명이 있습니다. 구약 안에 신약이 들어가 있고, 신약 안에 구약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즉 계명 안에 은혜, 은혜 안에 계명을 갈라놓지 못합니다. 계명 가운데 복음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한 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최초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소를 잡아 제사하고 양을 잡아 제사 하는 것은 계명이 아니고 은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피 흘려주실 것을 가르쳐 주는 제사입니다. 계명에 의해 제사를 드리지만, 그것은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피 흘려 죽으실 것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명 속에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계명이 다 이와 같습니다.

할례를 행하라는 것은 육신의 할례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적 할례의 은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할례에는 ‘정욕을 제거한다’,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한다’는 뜻이 있고, 하나님의 백성된 표입니다. 즉 할례에는 세 가지 뜻이 있는데,
첫째는 정욕제거,
둘째는 언약에 참여,
셋째는 하나님의 백성된 표입니다.
구약에 할례를 행하였지만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됩니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 죄를 다 속해 주시고, 정욕을 제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속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할례가 율법이지만, 그 안에 은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
법 속의 은혜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율법 속에 은혜가 있습니다.
유월절 양을 잡는 것이 율법이지만, 유월절 자체가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을 바로 알려면 구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신약에 구약이 다 들어 있고, 신약이 구약에서 나왔습니다. 구약은 벼이고 신약은 쌀알입니다. 쌀알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벼에서 나왔습니다. 구약은 형체로서 쌀을 가지고 있었고, 신약은 벼에서 알맹이를 빼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제도 속에 복음이 있고, 복음은 구약에서 나왔습니다. 계명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이 계명을 어기면 하나님께로부터 여러 가지 징계가 내려옵니다. 징계가 올 때에 회개하지 않으면 쫄딱 망합니다. 계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압니다. 또 계명을 지키므로 하나님을 점점 닮아갑니다.

율법의 의문과 증서만 폐함

그러므로 계명을 폐한 것이 아닙니다. 계명을 폐하였다고 하는 사람은 아주 잘못된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계명은 절대 폐한 것이 아니고, 다만 계명의 의문과 증서만 폐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4-15절에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의문’이란 소나 양을 잡아 제사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소나 양을 잡아 제사하는 의식이 다 율법의 의문들인데, 이것을 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요새는 소나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또 구약시대에 비늘 없는 고기를 먹지 말라, 쪽발 갈라지지 않은 짐승을 먹지 말라, 새김질 하지 않는 짐승을 먹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것들이 다 의문으로 전부 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먹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의문에 내포 되어있는 진리는 일점일획이라도 변함없습니다. 요새도 지켜야 됩니다. 즉 소나 양을 잡아 제사하는 의문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으로, 요새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으며 예수의 살과 피를 매일 먹어야 됩니다. 그것이 소나 양을
잡아 제사하는 것입니다. 또 새김질 하지 않고, 쪽발이 갈라지지 않은 짐승은 먹지 말라고 하였는데,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새김질 하여야 합니다. 또한 쪽발이 갈라진 것처럼 죄로부터 구별된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의문과 증서만 폐하고 내용의 진리는 일점일획이라도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의 양식을 삼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그러므로 계명을 생명 내어놓고 지켜야 됩니다. 과거에 계명을 지키다가 죽은 순교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일제 시대에 신사참배하지 않으려고, 즉 제 2계명을 지키려고 하다가 감옥에 7~8년 동안 갇혔으며 순교자의 반열에 참여하였습니다. 또 배추달씨는 주일을 지키라는 제 4계명을 지키다가 공산군한테 총 맞아 순교당하였습니다. 계명 하나를 지키다 가 순교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경 말씀을 헌신짝처럼 땅에 버리고 예수 믿는 것은 타락된 증거입니다. 왜 성경 말씀을 내버립니까? 회개해야 됩니다. 계명을 범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옵니다.

4. 제단에 대한 법

형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

본문 22-23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에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가 친히 보았으니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 신상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법은 세상 사람들이 우상 섬기는 것과는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상을 섬길 때에 금이나 은이나 돌이나 나무 등으로 무엇을 만들어 놓고 섬기는데, 하나님을 섬길 때에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을 본떠서 하나님과 같이 만들려고 우
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천지에 충만하시고 엄위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은이나 금 같은 것으로 우상과 같이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형상을 만듭니까?

토단을 쌓고 제사를 섬기라

본문 24절에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그저 토단을 쌓고 즉 흙으로 단을 쌓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
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토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섬길 때에 꾸미거나 아름다운 모양을 내지 말고 자연 그대로 순수하게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고 하였는데, 번제는 하나님께 대하여 죄를 회개하면서 속죄 받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이고, 화목제는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하고 또 사람과 사람끼리 화목하기 위한 제사입니다.

“내 이름을 기념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장차 예루살렘에 제단을 쌓아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제단을 쌓는 곳도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이고, 하나님의 성막을 지어서 제사 드리는 곳도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는 곳
입니다. 신약교회도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그곳에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 복을 주셨고, 신약시대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 곳에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 복을 주십니다.

다듬은 돌로 제단을 쌓지 말라

본문 25절에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단을 쌓을 때에 다듬지 않는 돌로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얼른 생각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제단 쌓을 때에, 정으로 잘 깎아 네모반듯
하게 해서 쌓는 것이 더 보기도 좋고 제사하기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울퉁불퉁한 자연석 그대로 쌓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길 때에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정으로 잘 다듬은 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듬으려고 애쓸 것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수한 그대로, 자기 생긴 그대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어떤 장로는 대표 기도할 때 “기도합시다” 해놓고 집에서 써온 기도문을 그냥 읽습니다. 이것이 다듬는 돌로 쌓는 것입니다. ‘아버지’라고 한마디를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받으십니다. 하나님께 꾸며대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심방갈 때에 기도시키지 말라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이런 사람은 혼자는 기도해도 대표기도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혼자 기도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대표기도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살겠습니다”라고 그저 두 마디만 해도 됩니다. 있는 그대로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교역자가 강단에서 설교할 때도 무엇을 꾸미면 안 됩니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과 대화하는 식으로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일심 정력을 기울이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되, 꾸미지 말고 순수하게 생긴 그대로 하나님을 섬겨야겠습니다. 솔직하게, 다듬지 말고 그저 순진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위해 몸 바쳐 놓고, 정성껏 하면 됩니다. 그것 하나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잘못했으면 있는 그대로 잘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습니다.
얼마 전에 신학교 기숙사에 가서 문을 두드렸는데 문을 걸어 놓고 기척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참을 두드렸는데도 아무 소리가 안 났습니다. 분명히 사람이 있는 줄 아는데 대답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발이 밖에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방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참을 두드
려 대니까 마지못해서 열었습니다. 방에 들어가 보니까 안에 빨래 해놓은 것이 많이 놓여 있었습니다. 왜 문을 안 열었냐고 물으니 이렇게 해놔서 보이지 않게 하려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거 보이게 해라.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틀린 것이다. 세탁한 것을 보이면 누가 뭐라고 하느냐? 사람들이 뭐라고 그러면 치우면 될 것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 명은 뒷문으로 나갔다가 한참 있다가 들어 왔습니다. “넌 어디 갔다 온 거냐? 어디로 도망쳤다가 온 것인가? 다시 도망쳤다가는 큰일난다”고 하였습니다. 도망치면 모를 줄 압니까?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평소에 잘 해 놔야지, 평소에는 안해놓고 보이려고 하면 그렇게 보여 집니까? 또 명륜동에 심방을 갔는데, 대문간에서 만났습니다. 그러더니 “큰일 났네” 하면서 인사할 생각도 안하고 다시 들어갑니다. 큰 일이 나기는 무슨 큰 일이 납니까? 그래서 따라 들어 가보니까 집안에 다 너절하게 늘어놓은 것입니다. 그래도 이번엔 대문을 열어줬습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잘 해야 합니다.

또 모든 것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무식한 사람은 무식한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무식한 사람이 유식한 체하면 오히려 망신만 당합니다. 다 탄로 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서당에서 천자를 좀 배웠는데, 좀 써먹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논에 나가니까 한 사람이 물을 넣고 있더랍니다. 논에 물이 들어가야 농사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묻기를 “여보시오, 요새 수입이 잘됩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물 수(水)’자에 ‘들 입(入)’자를 써서 물이 잘 들어가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그러나 수입이 무슨 수입입니까? 무식한 사람이 문장 쓰려고 하다가 망신당한 겁니다. 그냥 물이 잘 들어 가냐고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몇 자나 된다고 물 수자, 들 입자를 들어 말합니까? 그러다가 무식이 탄로 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저 순진한 것이 좋습니다. 무식하면 누가 뭐라고 합니까? 무식한 것은 배우지 않아 무식한 것인데, 누가 뭐라고 합니까? 오히려 무식하면서 유식한 체하는 것이 가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솔직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 제단 쌓을 때는 정으로 쪼지 말아야 합니다. 손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순수하게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층계로 단에 오르지 말라

본문 26절에 “너는 층계로 내 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제단에 올라갈 때는 층계로 올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체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아마 밋밋하게 올라가게 해 놓은 거 같습니다. 길을 길게 해서, 층계 없이 한 것도 많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층계로 올라가다가 하체가 드러날 염려가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정욕이 드러나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정욕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욕심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으로 쪼지 말라는 것은 다듬어서 하려고 하지 말고 솔직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또 층계로 올라가지 말라는 것은 정욕으로 기울어져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욕심으로 기울어져서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물욕으로 해도 안 되고, 정욕으로 해도 안 되고, 사욕으로 해도 안 됩니다. 인정에 끌려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인정에 끌려도 안 됩니다. 친척이 하는 일인데, 그 친척이 애처롭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정에 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기 때문에 하는 것도 하체가 드러난 것입니다. 그리고 돈을 많이 주는 대가로 하는 것도 정욕과 물욕이 드러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평안한 곳으로 간다는 것은 안 됩니다. 그것도 인간의 안일주의가 드러난 것입니다. 큰교회로 간다는 것도 명예와 영광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물욕이나 사욕이나 정욕을 아예 상관없게 만들어 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 중심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이용당하고, 하나님께 끌려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왜 학연, 지연, 혈연이 들어갑니
까? 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시키시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가라고 해서 가는 것이고, 오라고 해서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진한 것입니다.
또한 층계로 단에 오르지 말라는 말씀은 본색이 드러나지 말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물욕과 정욕과 사욕으로 나간 사람은 좀 나가면 다 본색이 드러나게 됩니다. 층계로 한참을 올라가면 다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초월해서 욕심을 버리
고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는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해나가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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