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7일 금요일

시편 147:1-20 여호와께 복 받을 자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여호와께 복 받을 자
시편 147:1-20

1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2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를 모으시며 3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4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5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6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는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7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찌어다 8저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예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9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10여호와는 말의 힘
을 즐거워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도 기뻐 아니하시고 11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12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찌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찌어다 13저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너의 가운데 자녀에게 복을 주셨으며 14네 경내를 평안케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 15그 명을 땅에 보내시니 그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16눈을 양털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같이 흩으시며 17우박을 떡 부스러기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 추위를 감당하리요 18그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19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20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나니 저희는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

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상한 자를 고쳐주심

본문 1절에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마땅하고, 또 그것이 선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왜 마땅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들이므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택으로 전부 살고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특별히 성도는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해 피를 흘려 죄로부터 구속해주셨으므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여간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를 늘 보호해주시고 생명이 되어 주셨기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마땅하고, 그것이 선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를 모으시며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자를 세워 예루살렘을 세우십니까?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 마음이 상한 자를 세우십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고 상처가 난 자를 싸매시어 그들을 이용하셔서 예루살렘을 세우십니다. 이것은 신령한 영적 예루살렘, 다시 말해서 구원의 세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한 자, 흩어진 자, 마음이 상한 자, 상처 받은 자들을 다 부르셔서 영적 시온 성, 영적 하나님의 나라, 구원의 세계를 세워나가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길가에 나가서 소경, 절뚝발이, 병신 등의 여러 사람들을 다불러다가 혼인 잔치를 채우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습니다. 혼인 잔치에 먼저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앞에서 말한 사람들을 다 불러다가 혼인 잔치 자리를 채우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그런 사람들로 하여금 건설해나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가 통달한 자에게는 그 비밀을 숨기시고, 가련한 자들, 상한 자들, 흩어진 자들을 불러다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나가십니다.

2. 하나님의 지혜가 무궁하심을 찬양함

본문 4절에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라고 하였는데, 이름대로 부르신다는 것은 그 별의 상태를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별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늘에 별이 수 없이 많습니다.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별의 이름과 수효를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세신다는 것입니다. 별들의 모든 상태를 하나님께서 모두 다 아십니다. 그 별들을 다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위대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밀하게 모든 것을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5절에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별의 숫자를 다 세시고 이름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시니, 얼마나 광대하십니까? 그리고 별들을 하늘에 놓고 떨어지지 않게 각각 천체에 인력을 줘서 자기의 위치를 언제나 유지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능력이 많으시며’ 또 ‘그 지혜가 무궁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무궁한데, 그것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는 데에 나타났습니다. 다시 말해 천체, 즉 일월성신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이 어디 메인 데 없이 공중에 그냥 떠 있어도 자기 위치에 바로 있게 하셨습니다. 그 지혜와 능력이 무한하십니다. 그런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상한 자와 약한 자, 저는 자와 흩어진 자를 부르사 하나님의 나라, 신령한 예루살렘을 세워나가시는 것입니다.

3. 여호와께서 성도와 만물(萬物)을 기르시고 악인을 심판하심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본문 6절에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는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 뜨리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겸손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교만하면 망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십니다. 또 잠언 18장 12절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先鋒)이라는 것은 교만하면 멸망이 그 다음에 따라온다는 뜻입니다. 선봉이니까 그 다음에 무엇이 따라올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교만하면 멸망이 따라옵니다. 겸손한 사람은 좀 있으면 존귀해집니다. 그리고 교만한 사람은 좀 있으면 망합니다.

느부갓네살 왕도 교만해서 망했습니다. 교만이 무엇입니까? ‘나’ 소리입니다. ‘나’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교만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내가 했다. 내 것이다. 내 영광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말의 뜻은 자기가 했다는 것, 무엇이나 제 것이라는 것, 자기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주장대로 하는 것이 다 교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기 자신이 다 없어지고 하나님의 인도대로만 순종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겸손하면 반드시 존귀해지고, 교만하면 좀 있다가 망합니다.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이고,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7-9절에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찌어다 저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예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들짐승과 들에 우는 까마귀에게까지 먹을 것을 주시기 위해서 비도 오게 하시고 산에서 풀이 자라게도 하십니다. 모든 인생들에게도 우순풍조를 주셔서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생들 뿐 아니라 앞에서 말한 대로 산의 짐승들, 들의 까마귀들에게까지 먹을 것을 풍성히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우리 성도들에게는 신령한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런 하나님을 찬송해야 되겠습니다.

4. 여호와께서는 말의 힘과 사람의 다리를 기뻐하지 않으심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기뻐하심

본문 10절에 “여호와는 말의 힘을 즐거워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도 기뻐 아니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말의 힘’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이 힘을 쓰지 않습니까? 옛날에는 말을 타고 전쟁을 하고 말을 타고 어디에 빨리 가야 하기 때문에 천리마가 있었습니다. 또 말을 타고 빨리가야 하는 일들이 있으면, 조정에서 역마(役馬)를 역졸들에게 붙여서 빨리 가게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말을 역마라고 하는데, 그러한 역마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쯤 가다가 말들이 모여 있는 데가 있으면 바꿔 타고, 또 얼마쯤 가다가 바꿔 타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멀리까지 가게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옛날에는 말의 힘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마병과 병거가 국방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말의 힘’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무기나 국방력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 힘에 의지해서 하는 것, 또 말을 타고 도망하는 일을 다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다리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의 다리가 좋은 것입니다. ‘효자 아들이 병신 다리만 못하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자기 다리가 비록 병신이어도 비틀비틀하면서 나가 다니는 것이 효자 아들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왜 낫습니까? 비틀비틀 병신 다리를 가지고라도 다니면 자기가 가고 싶은 데에 갈 수 있습니다. 밤에도 아무 때에나 일어나 화장실에도 갈 수 있고, 뭐가 먹고 싶을 때에는 아무 때에라도 가서 그것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효자 아들이라도 밤에 깨워보십시오. “야, 일어나라. 화장실에 가자. 물 떠오너라. 어디 가자”라고 자꾸 시키면 아무리 효자 아들이라도 매번 그렇게 못합니다. 그러니까 효자 아들이 병신 다리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 다리가 제일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다리 힘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자기 다리에 힘이 있다고 해서 그 다리로 다니며 별 짓을 다하면 안 됩니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별 곳으로 다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다리에 힘이 있다고 다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다리에 힘이 없는 사람도 한 몫 보는 때가 있습니다. 다리에 힘이 있는 사람이 한 몫 보는 때도 있지만, 다리에 힘이 없는 사람이 한 몫 보는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리에 힘이 있어서 밤낮 돌아다니는 사람들 중에 실속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역자도 다리에 힘이 있어서 밤낮 돌아다니는 교역자가 있습니다.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밤낮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가면 실제로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하는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손해입니다. 다리에 힘이 있으니까 도리어 유익을 못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리에 힘이 없는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를 하니까 오히려 더 유익이 많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리가 좋은 사람이 좋은 때가 있지만, 다리가 좋지 못한 사람도 한 몫 볼 때가 있습니다. 하여간 다리의 힘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리의 힘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리의 힘이 있는 것이 좋지만 자랑할 것은 아닙니다. 또 앞서 말한대로 다리의 힘이 있다고 해서 밤낮 돌아다니는 사람은 시원치 않습니다. 가고 싶은 데로 다 가는데, 갈 데 못 갈 데 없이 다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고 싶은 데라고 해서 다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는 곳에 가고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하시면 가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다리에 힘이 있으므로 다 갑니다. 그래서 다리의 힘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만 가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다리의 힘이 있다고 해서 그 힘을 다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말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말의 힘을 의지해서 큰 일을 할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기뻐하십니까?

본문 11절에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말의 힘을 다 집어치우고, 다리에 힘이 있다고 해서 아무 데로나 가겠다고 하는 것
을 다 그만 두고,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인자를 바라보면서 자기의 직무를 감당해야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말의 힘을 의지해서 큰 일을 하려 하지 말고, 자기 다리의 힘을 의지해서 아무 데로나 가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인 줄 알고, 무(無)와 공(空)이 되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바라보며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나가는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5.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는 자에게 복을 주심

본문 12절에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찌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믿는 사람 전체를 가리킵니다. 믿는 사람 전체가 여호와를 찬송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찌어다’라는 것은 시온 성을 건설해나가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본문 11절에 있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인자하심을 바라며 자기의 사명을 감당해나가는 사람에게는 본문 13-14절에 “저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너의 가운데 자녀에게 복을 주셨으며 네 경내를 평안케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자녀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또 그의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배불리 먹게 하십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므로 이렇게 말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다리의 힘을 의지해서 자기의 생각대로 하지 않으며,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인자하심을 바라며 불쌍히 여김을 바라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불쌍한 자인 줄을 알고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바라고 그 다음에는 자기 할 바 의무를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다 해나가면서 시온 성을 잘 건설해나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십니다. 첫째로 그의 문빗장을 견고히 해주십니다. 문빗장을 견고히 해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문빗장이 견고하면 집이 안전합니다. 문빗장을 견고히 해주면 대적이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고 도적이 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문빗장을 견고히 할 것 같으면, 그 집이 견고한 집이 됩니다. 그러므로 문빗장을 견고히 해주신다는 것은 집을 견고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네 자녀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집은 견고해집니다. 만세 반석 위에 세운 집이 됩니다. 그리고 자녀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또 본문 14절의 말씀처럼 그의 경내를 평안케 해주십니다. 그가 사는 곳을 평안케 해주십니다. 그리고 무엇으로 먹여주십니까? 아름다운 밀로 먹여서 배부르게 해주십니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말을 의지하거나 자기 다리를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주지 않으십니다. 그런 사람은 네 마음대로 해보라고 내버려 두십니다. ‘네 말을 의지하고 해봐라. 네 다리 힘이 있다고 하니까 네가 가고 싶은 데로 다 가봐라”고 하시며 하나님께서 버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안 돌봐주십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불쌍히 여김을 바라보며, 자기 사명을 감당하고 시온 성을 건설해나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문빗장을 견고히 해주셔서 그 집을 견고하게 세워주시고, 그 자녀들에게는 복을 주시며, 그 경내는 평안하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밀로 배부르게 해주십니다. 아름다운 밀로 배부르게 해주신다는 것은 영적 평안을 허락하신다는 뜻도 있습니다. 영적으로 신령한 양식을 많이 주셔서 배부르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6. 여호와께서 말씀을 주시고 그대로 일하심

본문 15절에 “그 명을 땅에 보내시니 그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주십니다.

본문 16절에 “눈을 양털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같이 흩으시며”라고 하였습니다. ‘눈을 양털같이 내리시고’라는 것은 겨울에 하얗게 눈을 많이 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리를 재같이 흩어서 사방에 오게 하십니다.

본문 17절에 “우박을 떡 부스러기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 추위를 감당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우박을 떡 부스러기같이 뿌리시나니’라고 하였는데, 우박을 떡 부스러기와 같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리시므로 ‘누가 능히 그 추위를 감당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눈이 오고 서리가 내리며 우박 덩어리가 올 때에는 그 추위를 감당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에 “그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눈이나 얼음을 다 녹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므로 봄철이 오게 하시고 물이 다시 흐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녹은 물에 모든
곡식을 잘 기르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풍성히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겨울에 눈이나 얼음이나 서리와 같이 찬 것을 주시고, 또 그 찬 것을 녹여 물을 만드시고 모든 곡식이 다 소생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겨울에 다 얼어붙었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그 말씀대로 봄을 주셔서 얼어붙은 것을 녹여 따스한 일기를 만들어주십니다. 그리고 좋은 때가 오게 하셔서 만사초목이 솟아나게 해주십니다. 또 모든 사람이나 짐승, 까마귀와 같은 새까지도 먹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9절에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예수 믿는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십니다. 율례를 주십니다. ‘야곱에게 보이시며’라는 것은 택한 백성들에게 그 말씀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택한 백성들에게 율례와 규례를 보이셔서 그 율례와 규례대로 지켜나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박이나 눈, 서리가 왔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므로 그 얼어붙었던 것이 다 녹아 따스한 봄날과 같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는, 그런 복된 날이 오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지금은 아무리 얼어붙었어도 복된 날이 오는 것입니다. 얼어붙은 것은 잠시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겨울철의 찬 것들이 다 녹아 양춘가절(陽春佳節)이 돌아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것으로 소생케 하시며 복을 받는 자리로 인도해주십니다.

본문 20절에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나니 저희는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나라에는 이렇게 행하신 것이 없으므로, 그들은 이런 율례를 알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복된 하나님의 말씀과 복된 하나님의 역사와 그 축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 이런 복을 주십니까? 말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다리의 힘을 의지하지 않으며,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인자하심을 바라보며 자기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에게 입니다.
그리고 시온을 잘 건설해나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다섯 가지의 복을 주십니다.
첫째는 문빗장을 견고히 해주시고,
둘째는 자녀에게 복을 주시고,
셋째는 경내가 평안하게 해주십니다.
넷째는 아름다운 밀로 배부르게 해주시고
다섯째는 눈과 서리를 다 녹게 해주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셔서 복된 나라, 복된 자리로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이것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주십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