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8일 일요일

출애굽기 14:1-14 애굽 추병과 이스라엘의 불신앙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애굽 추병과 이스라엘의 불신앙
출애굽기 14:1-14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돌쳐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3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아득하여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할지라 4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5혹이 백성의 도망한 것을 애굽 왕에게 고하매 바로와 그 신하들이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가로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고 하고 6바로가 곧 그 병거를 갖추고 그 백성을 데리고 갈새 7특별 병거 육백 승과 애굽의 모든 병거를 발하니 장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8여호와께서 애굽왕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9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 장막 친 데 미치니라 10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12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13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14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1. 하나님의 지시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라고 하심

본문 1-2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돌쳐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장막을 칠 곳을 하나님께서 지시해 주셨습니다.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장막 칠 곳을 지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해 주시는 대로 장막을 쳐야 성공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장막을 치면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장막을 쳐야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일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지시해 주시는 대로 하여야 합니다. 즉 교회를 세우는 일도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세워야 되고, 선교하는 일도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하나
님의 지시하시는 대로 하면 성공입니다. 개인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 가는 일, 사업하는 일 등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인도와 지시를 따라서 해야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또 성공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게 나가는 것은 전부 실패이며,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지 않습니다. 가다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리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한 것임

본문 3-4절에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아득하여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 할지라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바다와 믹돌 사이의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로 인도하여 장막을 치라고 하였습니까? 사람 생각으로 볼 때에는 거기에 장막을 치는 것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장막을 치라고 한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입니다. 즉 바로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로 나가서 바다 때문에 갇힌바 된 것으로 인식하게 하여 추병을 보내 이스라엘 백성을 쫓아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어 애굽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여호와인 줄 알게 하시고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렇게 넓습니다.

2. 애굽 추병

바로가 징계 받고도 이스라엘을 추격함

본문 5-6절에 “혹이 백성의 도망한 것을 애굽 왕에게 고하매 바로와 그 신하들이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가로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고 하고 바로가 곧 그 병거를 갖추고 그 백성을 데리고 갈새”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망한 것을 애굽 왕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로와 그 신하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내어 보내면 종살이는 누가 하겠느냐며 마음이 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낸 것을 후회하며 다시 가서 이스라엘을 붙잡아 오려고 애굽의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출발하였습니다.

바로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으려 하다가 하나님께 열 가지 징계를 받고 하나님을 순종하려고 했다가, 또 다시 마음이 변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려고 출발한 것입니다.
징계를 받아도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하였습니다(시 49:20). 또 잠언 29장 1절에는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할 날이 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존귀하게 하셨습니까? 욥기 25장 5절에 벌레와 구더기와 같은 인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주의 피로 값 주고 우리를 사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영광스러운 가운데 앉혀 놓으셨습니다. 이렇게 존귀하게 해놓으셨지만,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습니다. 또 우리는 떡으로 말하면 보리떡과 같은 자들입니다. 맛도 없고, 볼 만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보리떡과 같은 자를 하나님께서 들어서 많은 생명을 살리는 생명의 기관으로 삼아놓으신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존귀하게 해놓으신 것입니까? 그러므로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때에는 하나님께 “잘못했습니다. 이제는 순종하겠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바로 하겠습니다”하며 회개하며, 바로와 같이 다시 뒤로 돌아가지 말아야합니다. 다시 돌아가면 결국은 바로 왕이 망한 것처럼 망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바
로 순종하고자 결심했으면 그 마음이 변하지 말고, 손해가 나도 그대로 나가야 합니다. 십자가가 와도 그대로 나가야 합니다. 어떤 환난과 핍박을 당해도 그대로 단마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인 줄 알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는 마음이 변했고, 신하들의 마음도 변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로 잡아오려고 추격했습니다.

마음이 강퍅케 되면 망하는 길임

본문 6-9절에 “바로가 곧 그 병거를 갖추고 그 백성을 데리고 갈새 특별 병거 육백승과 애굽의 모든 병거를 발하니 장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애굽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 장막 친 데 미치니라”고 하였습니다. ‘특별 병거 육백승’이라고 하였는데, 그 때 특별 병거라고 하면 신무기입니다. 요새 신무기는 미사일, 핵폭탄 등이 신무기입니다.
애굽 나라가 세계 제일의 강국이므로 애굽 군대를 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특별 병거까지 동원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라고 하였는데, 마음이 강퍅해진 것은 생명에서 떠나 있는 증거입니다. 에베소서 4장 18절에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라
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굳어지면 안됩니다. 마음이 온유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입니다. 시편 51편 17절에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 하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 상한 심령과 온유하고 겸손한 심령을 가지고 나가야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강퍅한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 66장 2절에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를 하나님이 권고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마음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소와 양을 잡아 제사한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받지 않으십니다. 바로의 마음이 강퍅해졌기 때문에 이제는 망할 길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장 적당한 곳에 진 치게 하셨음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진 친 곳까지 거의 다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막 칠 때에 바로 왕이 따라 올 줄 모르고 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치라고 했기 때문에 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왕이 따라올 때 보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적당한 곳에 장막을 치게 하셨습니다. 장막 칠 때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거기가 좋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왕이 따라올 때 보니까 요새지역에 하나님께서 장막을 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즉 환난 때에 제일 적당
한 곳에 장막을 치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바로 왕이 따라올 줄 알았습니까? 바로 왕이 따라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벌써 다 아시고 천사를 보내셔서 장막 칠 곳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은 천사의 인도를 따라서 나갔습니다(19-20절).

우리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을 하려면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왜 그리로 가라고 하시는가?’ 하며 이해가 안 됩니다. 또 왜 그렇게 하라고 하는지 모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하나님께서 벌써 다 아시고 가장 요긴한 장소에 장막을 치라고 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가장 요긴한 것,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서 우리를 인도하시며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믿고 순종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제일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3.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

본문 10-12절에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을 쓰지 않았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추병이 따라오는 것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모세에게 원망하였습니다. 이렇게 두려워한 것은 믿음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여 생명이 위태할 때에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을 힘입어 하나님의 명령대로 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의 자유보다 육신의 자유를 더 크게 여김

바로는 마귀를 상징하고 애굽은 세상을 뜻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것은 마귀에게 해방을 받은 것입니다. 즉 영의 해방을 받은 것입니다. 육신의 자유보다 영의 자유가 더 귀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영의 자유는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저 육신의 생명이 사는 것이 큰 줄로 알았습니다. 사실 큰 것은 영의 생명이 사는 것이 큰 것이고, 영의 자유가 큰 것입니다. 신앙의 자유가 큰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큰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고, 지금 심히 두려워하며 부르짖는 가운데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배를 타고 예수님과 제자들이 건너갈 때에, 예수님은 고물에서 베게하고 주무셨습니다. 그 때에 바람이 일어나서 물결을 일으키므로 제자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니까,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없는 자들아?”하시며 책망하셨습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증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워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는데, 부르짖은 것은 잘한 것이나 모세를 원망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모세를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입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나가자고 해서 애굽에서 나왔지만, 모세는 하나
님께서 나가라고 해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를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무슨 일이 생겨도 하나님께서 다 유익되게 하시려고 모든 것을 주신 줄 알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망하면 안 됩니다. 요셉이 원망했습니까? 요셉이 원망하려면 원망할 것이 많습니다. 자기 형들이 자기를 미워한 것, 구덩이에 넣었던 것, 애굽에 팔아버린 것 등 원망하려면 얼마든지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원망하지 아니하고 “나를 애굽으로 보내신 자는 하나님
이시다”라고 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나갔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앗사리온 하나에 팔리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안 됩니다. 또 보디발이 요셉을 감옥에 잡아넣었을 때에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이런 환경을 주셨구나 하며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믿음으로 소화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므로 영의 자유를 다 잃어버리고 심령의 고통을 날마다 당하며 살았는데, 이제 애굽에서 나왔으니까 심령의 자유를 얻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육신만 잘 살면 된다’는 육신 중심으로만 나갔기 때문에, 영의 자유를 귀하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바닷가에서 신앙의 낙제가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5절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하였습니다.

4. 모세의 신앙

두려워 말고 가만히 있으라

본문 13-14절에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신 말씀으로 받아야 됩니다. 우리가 어려운 시험을 당할 때에 이 말씀을 언제나 기억하며 믿어야 합니다. 시험이 올 때에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우리를 위하여 싸워주실 것이므로 염려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그러면 어느 때에 여호와께서 싸워 주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순종하며 나갈 때에 여러 가지 시험과 고통, 또 원수의 추격을 당할 때에 여호와께서 대신 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갔는데, 왜 하나님께서 안 싸워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싸워주
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을 향해 가는 길은 첫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서 가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의 말씀을 따라간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나가라”고 하신 명령을 따라서 지금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따라서 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갈 때에 원수가 아무리 강해도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해 주시고, 또 대신 싸워주십니다. 이것을 믿고 나가야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원하는 모세의 신앙이 여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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