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9일 수요일

잠언 17:1-14 화목과 다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화목과 다툼
잠언 17:1-14

1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2슬기로운 종은 주인의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을 다스리겠고 또 그 아들들 중에서 유업을 나눠 얻으리라 3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4악을 행하는 자는 궤사한 입술을 잘 듣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악한 혀에 귀를 기울이느니라 5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 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할 자니라 6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 7분외의 말을 하는 것도 미련한 자에게 합당치 아니하거든 하물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 존귀한 자에게 합당하겠느냐 8뇌물은 임자의 보기에 보석 같은즉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케 하느니라 9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10한 마디로 총명한 자를 경계하는 것이 매 백 개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이느니라 11악한 자는 반역만 힘쓰나니 그러므로 그에게 잔인한 사자가 보냄을 입으리라 12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콤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 13누구든지 악으로 선을 갚으면 악이 그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14다투는 시작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1. 화목하는 것과 슬기로운 종

본문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화목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놓고도 서로 화목하는 것이 고기 반찬이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화목하는 사람과 가정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화평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풍족한데도 화목하지 못하고 다투기를 일삼으면 유익이 없습니다. 서로 잘하자고 이렇게 해야 잘된다, 저렇게 해야 잘된다고 하면서 싸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기보다 차라리 잘못하더라도 화목한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집을 잘 짓자고 싸우고, 가구를 좋은 것 사다놓자고 싸우고, 또 무엇을 서로 잘하자고 싸우곤 하는 가정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진리 문제가 아닌 이상 조금 잘못되어도 싸우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진리 문제에 대해서는 양보하면 안 되지만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은 양보 하고서라도 화목한 것이 낫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한 목적지를 가는데도 남편과 부인이 가고자 하는 방법이 달라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조금 돌아가더라도 싸우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어느 길로 어떻게 갈지를 정하지 않고 출발하여 도중에 싸우면 하루 종일 싸우다 아주 못 갈 수도 있으니, 처음에 정할 때에 돌아가더라도 화목하도록 힘을 쓰라는 것입니다. 조금 양보하고 손해가 조금 나더라도 화목한 것이 싸우는 것보다 낫습니다. 진리 문제가 아닌 한, 서로 양보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마른 떡을, 부인은 고기를 먹자고 하면서 하루 종일 싸우면 굶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보하고 마른 떡이라도 우선 먹고 굶지 않으면서 화목한 것이 상책입니다. 그러나 진리 문제는 양보하면 죽습니다.

본문 2절에 “슬기로운 종은 주인의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을 다스리겠고 또 그 아들들 중에서 유업을 나눠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슬기로운 종은 요셉과 같은 종입니다. ‘슬기롭다’는 것은 믿음으로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어디로 가든지 믿음을 잘 써서 후에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된 요셉처럼, 모든 것을 믿음으로 충성되게 바로 하면 주인의 아들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유업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이라고 해서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믿음을 지키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양심대로 바로 하고, 충성되게 하면 아들을 다스리고, 유업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도가니 안에서 쇠를 녹이고, 또 은과 금을 녹여서 찌꺼기를 제거시키고 순수한 것을 만드는 것처럼, 사람은 고난을 통해서 연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많은 고난 속에서 연단을 받아 찌꺼기와 같은 모든 죄악을 제거하고 자기의 잘못된 것을 다 고쳐 나가는 것입니다. 연단을 받아 점점 순수하고 참된 사람이 되어 나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올 때에 잘 참고 회개할 바를 회개하며 바로 서나가야 되겠습니다.

2. 악한 말을 하는 자와 가난한 자

본문 4절에 “악을 행하는 자는 궤사한 입술을 잘 듣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악한 혀에 귀를 기울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는 거짓말을 잘 듣고, 또 거짓말을 잘하는 자는 악한 자와 짝한다는 것입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으로 같은 부류끼리 서로 만난다는 것입니다. 악한 것과 거짓말하는 것이 같아서, 악한 사람은 거짓말을 잘 듣고 거짓말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의 말을 잘 듣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악을 멀리 떠나야 되겠습니다.

본문 5 에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할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19장 17절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하나님께서 내셨고,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가난 가운데에서 연단시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데, 그 사람을 멸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 됩니다.

또 다른 사람이 재앙을 만날 때에 기뻐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도 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이 망할 때에 좋아 하다가 망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에스겔 26장 2절에 “인자야 두로가 예루살렘을 쳐서 이르기를 아하 좋다 만민의 문이 깨어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그가 황무하였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 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에스겔 25장 2절에 “인자야 암몬 족속을 향하여 그들을 쳐서 예언하라 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성소를 더럽힐 때에 네가 그것을 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무할 때에 네가 그것을 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을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남이 망할 때에 아하 좋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암몬과 두로와 같이 망하게 됩니다. 남이 잘 안 되면 같이 걱정하고, 잘되면 같이 기뻐해야 합니다. 남이 안 될 때에 기뻐하면 형벌을 받습니다.

3. 거짓말과 뇌물에 대하여

본문 6절에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4장 1절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 교회들은 바울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전도를 해서 빌립보 교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울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는 것입니다. 즉, 육신의 손자와 면류관보다 자기가 전도해서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많고, 또 그 사람이 잘 믿게 되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 가서 상 받을 만한 일이고 면류관이라는 것입니다.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라는 말에는 그런 뜻이 있습니다. 또 ‘아비는 자식의 영화’이라고 하였는데, 아버지가 자기를 잘 길러주었으면 아버지가 자신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분외의 말을 하는 것도 미련한 자에게 합당치 아니하거든 하물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 존귀한 자에게 합당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분수에 맞는 말을 하고 분수에 맞지 않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감당하지 못할 말, 허황된 말, 큰 소리 치는 일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합당한 말을 하여야겠습니다. 괜히 큰소리 뻥뻥 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8절에 “뇌물은 임자의 보기에 보석 같은즉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케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뇌물이 보석 같다’는 것은 그 뇌물을 받는 임자에게나 그렇다는 말이지, 그것이 옳다는 말이 아닙니다. 잠언 17장 23절에 “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고 하였는데, 뇌물을 받고 공정하게 못하는 것은 악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는 하나님께 심판을 받습니다. 또 뇌물을 주는 자도 자기가 보기에는 그것이 보석과 같아서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4. 허물과 징계

본문 9절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10장 12절에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에도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허물을 가려주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남의 허물을 거듭 말하여 이간을 붙인다’는 것은 서로 의를 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심방을 가서 남의 허물을 보는 사람들은 악한 자들입니다. 절대로 심방 가서 남의 허물을 얘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절대로 심방 갔다가 나오면서 대문간에서 이 집이 뭐 이러고 저러고 하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대문간 밖에서 나와서 하니까 안 듣는 것 같지만 그 사람의 친척이나 혹은 가까운 친구가 지나가다가 듣고서는 들어가서 고해 바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듣게 되면 그 집에 그대로 이야기합니까? 더 보태서 말합니다. 그러므로 보태서 그 말을 전해놓으면 그 집에 아주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집에서 아주 불쾌하게 생각하고 그런 사람들로 다시는 심방 오지 못하게 하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안 믿는 식구들을 인도하는 것에도 상당히 지장이 많습니다. 남의 집에 다니면서 비방하는 것보다 차라리 안 가는 것이 낫습니다. 그런 사람이 다니면 오히려 손해만 주는 것입니다.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고, 화목하는 사람입니다. 허물을 거
듭 말하는 자는 이간을 붙이는 자라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한 마디로 총명한 자를 경계하는 것이 매 백 개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질책에 의연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명철한 자는 모든 것을 바로 잘 깨닫는 자입니다. 잘 깨닫고 잘 고치는 사람은 한 마디만 말해주어도 잘못을 고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백 대를 때려도 깨닫지 못하고, 다시 또 구렁텅이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도박을 하다가 망한 사람이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손가락을 잘랐는데, 손가락이 낫기도 전에 다시 또 도박을 하러 갔다는 것처럼, 미련한 자는 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그만큼 손해가 나면 안 해야 합니다. 손가락을 잘랐으면 다시는 안 가야 되겠는데, 미련하여 또 다시 도박을 하러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명철한 자, 깨닫는 사람이 되어 매를 맞은 다음에는 다시 그 구렁텅이에 안 들어가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본문 11절에 “악한 자는 반역만 힘쓰나니 그러므로 그에게 잔인한 사자가 보냄을 입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협조해서 세워나갈 생각을 해야겠는데, 악한 사람은 그저 반대할 생각만 한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평생 남을 반대하고, 비방이나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세워나가고, 건설해 나가는 것에 협조해야 합니다. 비방이나 하는데 참여하는 사람에게는 그 반대하는 부류들이 다 몰려와 점점 더 잔인한 가운데로 기울어져서 나중에는 망합니다. 그러므로 반대만 일삼는 편에 서지 말고, 협조하는 편에 서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도와주는 편에 서야 합니다.

본문 12절에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콤을 만날찌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미련한 자를 만나면 새끼 빼앗긴 암콤을 만나는 것보다 상황이 더 간단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새끼를 빼앗긴 암콤은 새끼를 찾으려고 다니다가, 만난 이가 제 새끼를 가져간 줄로 알고 화풀이를 다 해버립니다. 물어뜯는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미련한 자는 안 만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미련해서 이성을 차리지 못하고 악하게 나가는 사람은 피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만나서 싸워야 유익이 없고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대화를 해야 해결이 되겠는데, 대화는 커녕 무조건 물고 찢으려고 하니 그런 사람은 만나봐야 손해만 납니다. 일이 좀 해결될 만할 때에 만나야지, 너무 미련하고 무지하게 나갈 때에는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 낫습니다. 조금 정신을 차린 다음에 만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누구든지 악으로 선을 갚으면 악이 그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선은 선으로 갚고 악도 선으로 갚아야지,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은 평생 악이 그 사람의 집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면 살려준 것만도 고마운데, 자기 건져준 것을 감사하지 못하고 배은망덕하게 악으로 갚는 사람은 평생 그 집에서 악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언제나 사람은 자신이 신세를 진 것을 알고, 그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또 언제나 선으로 갚고 보답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늘 도와줄 수 있는 사정이 아닐 수도 있는데, 아홉 번 도와 주다가 한 번 안 도와준다고 그것을 악으로 갚으면 안 됩니다. 그것도 선을 악으로 갚는 것입니다. 그런 집에는 평생 악이 떠나지 않습니다. 악으로 나가다가 악으로 망하게 될 것입니다.

5.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치라

본문 14절에 “다투는 시작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물이 조금 샐 때에 막아야 막을 수 있지, 가만 놔두면 집이 물에 다 잠기는 사고가 납니다. 싸우고 다투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조금 시비가 붙고 틀어졌을 때에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의가 조금 상하고, 마음이 조금 상했을 때에 해결해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술 한 잔 먹고 화해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눈알이 말똥말똥하여 조금만 틀어져도 임종 때까지 가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조금 속상할 때에 아예 친절하게 찾아가서 상대방을 위해 기도를 좀 더 많이 해주고 좀 더 인사도 가까이 하고 좀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보고 인사를 안 하면 네가 안 하니 나도 안 한다고 하지 말고, 자신이 찾아가서 인사해야 합니다. 누구부터 인사해야 합니까? 자기에게 인사 안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따라가서 인사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서로 화목해지게 하면 됩니다. 인사 몇 번만 하고, 또 조금 낮아지면 되는 것입니다. 어려울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인사를 하면 낮아지는 것이 아니고 높아지는 것입니다.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 높은 사람이지, 인사 안 하는 사람은 마귀의 종입니다. 왜 마귀의 종이 되려고 합니까? 어떻게 하든지 화목해지려고 하고, 물이 조금 샐 때에 빨리 막으려고 해야 합니다.

어느 집에서 옆집이 자기 집을 아주 좋지 않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아무리 이야기해도 잘 안 되고 하여 떡을 해서 한 그릇 가져다 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집에서 입이 귀에 걸려 웃으면서 화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떡을 혼자 다 먹으면 뭐하겠습니까? 화목한 것이 낫습니다. 혼자 두 그릇 먹고 틀어지는 것보다 한 그릇씩 서로 나눠먹으면서 화목해지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서로 화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사 안 하는 사람에게는 따라가서 인사해야 합니다. 큰 물난리가 난 것도 작은 원인으로 인한 것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물이 조금 샐 때에 큰 물에 다 잠기면 큰 일 난다는 생각을 하고 빨리 막으라는 것입니다. 다투기 시작하는 것은 강둑에서 물이 새는 것과 같습니다. 빨리 막아야 합니다. 빨리 서로 화목해져야 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