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과 성취
잠언 16:1-33
1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2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3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4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5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6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7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8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9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10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 입이 그릇하지 아니하리라 11공평한 간칭과 명칭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추돌들도 다 그의 지으신 것이니라 12악을 행하는 것은 왕의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 13의로운 입술은 왕들의 기뻐하는 것이요 정직히 말하는 자는 그들의 사랑을 입느니라 14왕의 진노는 살륙의 사자와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쉬게 하리라 15왕의 희색에 생명이 있나니 그 은택이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으니라 16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 17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니 그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 18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19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20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21마음이 지혜로운 자가 명철하다 일컬음을 받고 입이 선한 자가 남의 학식을 더하게 하느니라 22명철한 자에게는 그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되거니와 미련한 자에게는 그 미련한 것이 징계가 되느니라 23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 24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25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26노력하는 자는 식욕을 인하여 애쓰나니 이는 그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니라 27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 같은 것이 있느니라 28패려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장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29강포한 사람은 그 이웃을 꾀어 불선한 길로 인도 하느니라 30눈을 감는 자는 패역한 일을 도모하며 입술을 닫는 자는 악한 일을 이루느니라 31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32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33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 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언 16:1-33
1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2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3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4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5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6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7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8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9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10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 입이 그릇하지 아니하리라 11공평한 간칭과 명칭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추돌들도 다 그의 지으신 것이니라 12악을 행하는 것은 왕의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 13의로운 입술은 왕들의 기뻐하는 것이요 정직히 말하는 자는 그들의 사랑을 입느니라 14왕의 진노는 살륙의 사자와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쉬게 하리라 15왕의 희색에 생명이 있나니 그 은택이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으니라 16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 17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니 그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 18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19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20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21마음이 지혜로운 자가 명철하다 일컬음을 받고 입이 선한 자가 남의 학식을 더하게 하느니라 22명철한 자에게는 그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되거니와 미련한 자에게는 그 미련한 것이 징계가 되느니라 23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 24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25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26노력하는 자는 식욕을 인하여 애쓰나니 이는 그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니라 27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 같은 것이 있느니라 28패려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장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29강포한 사람은 그 이웃을 꾀어 불선한 길로 인도 하느니라 30눈을 감는 자는 패역한 일을 도모하며 입술을 닫는 자는 악한 일을 이루느니라 31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32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33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 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1. 사람의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
하나님의 주권을 따라 살아야 함
본문 1절에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경영을 해도 하나님께서 일해주셔야만 합니다. 잠언 19장 21절에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여러 가지 계획이 많이 있지만, 그 계획대로 다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안 됩니다. 인간의 계획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되고, 허락하지 않으시면 안 될 것을 알고, 그렇게 나가야 합니다. 너무 인간의 계획이 강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따라 살아야 함
본문 1절에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경영을 해도 하나님께서 일해주셔야만 합니다. 잠언 19장 21절에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여러 가지 계획이 많이 있지만, 그 계획대로 다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안 됩니다. 인간의 계획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되고, 허락하지 않으시면 안 될 것을 알고, 그렇게 나가야 합니다. 너무 인간의 계획이 강하면 안 됩니다.
야고보서 4장 13-16절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 악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계획을 하고 오늘이나 내일이나 아무 도시에 가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좀 봐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계획을 잘 세워놓고 나갑니다. 그러나 그 계획 세워놓은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그대로 되고, 허락하지 않으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생명은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입니다. 내일 하나님께서 데려 가실지도 모르고, 또 전쟁이 날지도 모릅니다. 하여간 어떠한 일이든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되고, 안 도와주시면 안 될 줄 알아야 합니다. 될 것 같아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다 맡기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하고, 또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만 둘 생각을 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살게 해주시면 살고,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면 갈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주권에 의해서 살아야 합니다. 자기가 계획을 세우고, 꼭 그 계획대로 하겠다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또 그렇게 안 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됩니다.
모든 것의 표준은 하나님이심
본문 2절에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모두 깨끗한 것 같아도, 여호와께서는 심령을 감찰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심령 속이 깨끗한가? 마음이 깨끗한가? 온전한가?, 이것을 하나님께서 살피신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표준이 아닙니다. 자기가 표준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표준이십니다. 또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한다고 해서 그것을 표준으로 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표준이시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절에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모두 깨끗한 것 같아도, 여호와께서는 심령을 감찰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심령 속이 깨끗한가? 마음이 깨끗한가? 온전한가?, 이것을 하나님께서 살피신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표준이 아닙니다. 자기가 표준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표준이십니다. 또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한다고 해서 그것을 표준으로 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표준이시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3-5절에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판단하는 것을 매우 작은 일로 여겼습니다. 또 자기도 자기를 판단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판단하실 분은 누구시라고 하였습니까? 주님이십니다.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보시는가, 이것이 문제이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또 자기 마음에 자기가 괜찮은가 하는 것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다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령과 골수를 다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온전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람 보기에나 자기 보기에 깨끗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깨끗해야 합니다.
모든 행사를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에 바로 살라
본문 3절에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고 하였습니다. 다 맡겨버리라고 하였습니다. 너의 계획하던 것도 여호와께 맡겨 버리고, 또 너의 모든 것들을 다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앞 날도 하나님께 맡기고, 생사도 하나님께 맡기며, 또 잘될 것, 못 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믿음으로만 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현재에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는 것입니다.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는 것은 하나님께 바로 된 경영은 이루어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되지 않은 경영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경영한 것이 하나님께 합당하면 이루어질 것이고, 또 경영하는 것이 하나님께 합당치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경영의 경우에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것은 이루어지면 손해가 나기 때문입니다. 백 배나 손해가 납니다. 아무리 본인 생각에는 그것이 이루어지면 좋을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그것이 이루어지면 안 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자기의 경영하는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본문 3절에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고 하였습니다. 다 맡겨버리라고 하였습니다. 너의 계획하던 것도 여호와께 맡겨 버리고, 또 너의 모든 것들을 다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앞 날도 하나님께 맡기고, 생사도 하나님께 맡기며, 또 잘될 것, 못 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믿음으로만 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현재에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는 것입니다.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는 것은 하나님께 바로 된 경영은 이루어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되지 않은 경영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경영한 것이 하나님께 합당하면 이루어질 것이고, 또 경영하는 것이 하나님께 합당치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경영의 경우에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것은 이루어지면 손해가 나기 때문입니다. 백 배나 손해가 납니다. 아무리 본인 생각에는 그것이 이루어지면 좋을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그것이 이루어지면 안 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자기의 경영하는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오늘 바로 살아야 합니다. 내일의 경영 때문에 오늘 바로 하지 못하는 것은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내일의 경영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하나님께 바로 살고 바로 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바로 처리하고,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들은 이 다음의 큰 경영에 대한 계획을 세워놓고, 오늘은 다 비뚤게 하고 나갑니다. 그러나 오늘 바로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계획들을 다 무너뜨려버리십니다.
계를 500만원 짜리 들고, 그것을 물어나가느라 지금 반찬도 못 사다먹고 연보도 못하고 십일조도 못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얼마쯤 나갔습니다. 그것이 무슨 일입니까? 먼저 500만원 탈 것을 경영해놓은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아이들 먹을 것을 사다 먹이며 제대로 생활을 해야겠는데, 500만원 탈 것에만 욕심을 부리고 계획을 해놓고서 오늘 해야 할 것은 전부 비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얻어다 먹고, 남에게 폐를 끼치며, 아이들 먹을 것도 안 먹이고, 또 하나님께 바칠 것도 못 바치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이제 거의 탈 때가 됐는데, 계가 깨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참 잘됐다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크게 경영해놓고서는 자기가 오늘에 할 바를 못하니까 아주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오늘에 할 바를 못하니까 함정에 빠지지 않습니까? 경영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에 할 바를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하여간 바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로 하고, 사람 노릇을 바로 해나가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 신앙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사람 노릇을 바로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해야 큰 일을 해볼까, 성공을 할까 등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계획을 세우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한 줄로 알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씀은 한 날에 믿는 일을 하면서 믿음을 지키다가 하루 종일 괴로움을 당하면 그것이 족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내일 염려는 내일 하라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믿음을 지키다가 고생을 당하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내일 염려는 내일 해야 합니다. 계획을 크게 세워놓고 그것을 이루려고 오늘에 할 것을 하나도 못하고 돌아가는 것은 마귀에게 전부 다 빼앗기는 것입니다. 오늘에 믿는 일을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오늘에 하나님께 할 바를 못하고, 부모에게 할 바를 못하고, 자기 자식들에게 할 바도 못하면서 꼬박 꼬박 계를 들어서 500만원을 타면 뭐하겠습니까? 한 일 년이나 이 년 있다가 500만원을 타면 그 500만원이 자기 구원을 이루어줍니까? 바로 되게 만들어
줍니까? 500만원이 부모에게 효도하게 만들어줍니까? 그것이 자식을 바로 되게 만들어줍니까? 사실은 다 우상입니다.
줍니까? 500만원이 부모에게 효도하게 만들어줍니까? 그것이 자식을 바로 되게 만들어줍니까? 사실은 다 우상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경영은 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행사를 전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모든 행사를 다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에 바로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에 믿음을 지키고, 오늘에 사람 노릇을 바로 하고, 오늘에 하나님께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에 할 바를 바로 해나가라는 것입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하나님께 합당한 것이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통해서도 선한 뜻을 이루어나가심
본문 4절에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5편 4절에 “주는 죄악을 기뻐 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악한 자도 하나님께서 내신 것이 아닙니다.
본문 4절에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5편 4절에 “주는 죄악을 기뻐 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악한 자도 하나님께서 내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을 이용하셔서 당신의 뜻, 구원 운동에 이용하십니다.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이용하셔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쓰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털끝만큼도 악이 없으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악을 내신 것도 아닙니다. 악은 마귀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악을 다 이용하셔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것들을 다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나가십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악이 점점 들어차면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가까운 줄 알아야 합니다. 심판 날을 위해서 이용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한 것도 적당하게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겸손히 나가야 함
본문 5 에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물리치시고 미워하십니다.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사람의 단결, 연합, 합심, 합동을 가리킵니다. 그것이 손잡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합동하고 합심하며, 또 단결하며 연합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벌을 면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잘하려고 단결하고 합심하며, 연합하고, 또 힘을 합하여도 하나님의 복을 받도록 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것 가지고 하나님께 복을 받도록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안 됩니다. 자기 세력이 세다, 단합이 됐다, 하나다, 뭉쳤다, 큰 힘이다 하고 돌아가지만 하나님께서 한 번만 손을 드시면 하루아침에 다 망합니다.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본문 5 에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물리치시고 미워하십니다.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사람의 단결, 연합, 합심, 합동을 가리킵니다. 그것이 손잡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합동하고 합심하며, 또 단결하며 연합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벌을 면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잘하려고 단결하고 합심하며, 연합하고, 또 힘을 합하여도 하나님의 복을 받도록 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것 가지고 하나님께 복을 받도록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안 됩니다. 자기 세력이 세다, 단합이 됐다, 하나다, 뭉쳤다, 큰 힘이다 하고 돌아가지만 하나님께서 한 번만 손을 드시면 하루아침에 다 망합니다.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람의 손잡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한 번 치시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만하면 망합니다. 믿음을 지켜야지, 믿음을 안 지키고 도와준다, 세력이 세다, 또 합심하고 나간다고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야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다시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인자와 진리를 따라가고 여호와를 경외하면, 악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인자와 진리를 좇아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도 속하고 악에서 떠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원수와 화목하는 법
본문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원수와 어떻게 하면 화목해집니까?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원수라도 하나님께서 화목하게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화목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화목이 됩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싸움한 다음에 어떻게 해야 화목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가서 빌까? 무엇을 할까?’ 하지 말고 그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십시오. 그러면 화목이 됩니다. 다시 말하는데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화목이 됩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본문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원수와 어떻게 하면 화목해집니까?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원수라도 하나님께서 화목하게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화목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화목이 됩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싸움한 다음에 어떻게 해야 화목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가서 빌까? 무엇을 할까?’ 하지 말고 그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십시오. 그러면 화목이 됩니다. 다시 말하는데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화목이 됩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려면,
첫째로 자기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자기가 바로 서고, 그 다음에
셋째로 사랑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기뻐 하시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바로 서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원수를 사랑하면 화목할 날이 옵니다. 사람의 방법으로 어떻게 화목할까 하고 아무리 고심해도 소용없습니다. 백 가지 방법을 써도 쓸데 없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자기가 바로 서고, 그 다음에 사랑하면 화목이 됩니다.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첫째로 자기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자기가 바로 서고, 그 다음에
셋째로 사랑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기뻐 하시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바로 서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원수를 사랑하면 화목할 날이 옵니다. 사람의 방법으로 어떻게 화목할까 하고 아무리 고심해도 소용없습니다. 백 가지 방법을 써도 쓸데 없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자기가 바로 서고, 그 다음에 사랑하면 화목이 됩니다.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행하면서 사는 것이 아름다움
본문 8절에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불의를 행하면서 많은 소득을 가지고 사는 것이나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의를 행하면서 적은 소득을 가지고 먹고 사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불의를 행하면서 많은 돈을 벌어 소득이 많고 세상에서 잘되고 출세하는 것보다, 의를 행하며 하나님께 바로 살면서 소득이 적은 것이 낫습니다. 그것이 첫째 마음이 편안한 것입니다. 편안하지 않겠습니까? 그다지 소득이 많지는 않아도 의를 행하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또 하나님께 양심에 가책이 되지 않고, 모든 일에 떳떳합니다. 그러므로 불의를 행하면서 많은 소득을 벌려고 하지 말고, 의를 행하면서 적은 소득을 벌어도 하나님 앞에 바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 앞에 바로 하고, 화평하며 살고,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나가며, 믿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고생이 조금 있어도 그것이 좋은 것입니다.
모세처럼 애굽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지위와 애굽의 모든 재산을 다 내버리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받으면서 사는 것이 아름다운 것 아닙니까? 불의를 행하면서 잘되면 뭐합니까? 하나님 앞에 옳지 않은데 잘되면 뭐하겠습니까? 사실은 그것이 잘된 것이 아닙니다. 소득이 많아도 그 소득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루아침에 다 없어질 날이 옵니다. 바람에 날아갑니다. 그러니까 불의를 행하면서 소득이 많고 세상에서 잘되는 것보다는 의를 행하면서 소득이 적은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낫습니다. 소득이 적어도 의를 행하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나님 앞에도 아름다운 것이고, 사람 앞에도 아름다운것입니다. 자기 마음도 편안합니다. 그리고 믿는 일을 잘하고, 영이 살고, 영적 생명의 길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아름다운 것입니까? 그러나 의의 길을 걷지 못하고, 세상에서 아무리 소득이 많고 잘되어 출세하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몇 천 억, 몇 조원의 돈을 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저주 받은 것입니다. 악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세상에서 잘된 것은 다 악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불의를 행하면서 많은 소득을 얻는 것보다 의를 행하면서 적은 소득을 가지고 사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름답습니다.
사람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본문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하고 나갑니다. 이렇게 나가야 되겠다고 하면서 자기 길을 다 계획하고 나갑니다. 그러나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자기가 계획한 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장차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의사가 되겠다고 하는 아이들이 꽤 많다고 합니다. 그러면 의사가 넘쳐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 의사가 되지는 못합니다. 대부분 의사가 못됩니다. 아무리 의사가 되려고 계획을 세워도 하나님께서 의사가 되도록 걸음을 인도하셔야 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의사가 못됩니다.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그러므로 뭐가 되겠다, 뭐가 되겠다 하지 말고 겸손하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할 생각을 가지십시오. 남을 바라보지 말고, 여호와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갈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자기 할 것만 하면 되지, 남을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친구가 잘됐다, 좋은 학교에 갔다, 좋은 직장에 갔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하겠느냐고 하지 마십시오. 남을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잘되겠으면 잘되고, 좋은 데 가겠으면 가고, ‘나는 내가 할 것을 한다’라고 하며 자기 할 것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 자기 할 것을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며 즐거움으로 살면, 그것이 복입니다. 세상에서 출세해야만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 자기 할 것을 하면서 거기에서 믿음으로 살고 즐거움으로 살면, 그것이 하나님께 복이 됩니다.
사명에 살고, 믿음으로 사십시오. 큰 일하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명예를 얻고 출세하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또 돈을 많이 벌고 소득이 많은 것이 복이 아닙니다. 소득이 적든지 낮든지, 어떠한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가십시오. 거기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믿음으로 살고 즐거움으로 살면, 그것이 복입니다. 구원을 이루어나가면서 사는 것이 복이 됩니다. 무엇을 바라보지 말라고 하였습니까? 누구를 바라보지 말라고 하였습니까? 남들을 바라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이 어떻게 하는지를 바라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친구 바라보지 마십시오. 동창생들이 다 어떻게 되었는지 바라볼 것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갈 길이 따로 있고, 나는 내 갈 길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직업에 귀천이 없고,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집의 아들이 대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는데, 대학원을 가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가 “대학원에 가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라고 물으니까 자신이 전공한 것을 가지고 일생 동안 나가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대답하였답니다. 이에 그 어머니가 “학문은 한정이
없다. 대학원을 나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대학원 나온 다음에도 일생 동안 그 학문을 내내 연구해야 한다. 그러면 일생 동안 학문의 노예밖에 되는 것이 없지 않겠느냐? 학문의 노예 노릇하다가 죽는 것이 낫겠느냐?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죽는 것이 낫겠느냐? 생각을 해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학문에 한정이 없으니, 일생 동안 그것을 연구하다가 죽어야 합니다. 그러니 학문의 노예밖에 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문의 노예가 되어서 죽는 것보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죽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하나님의 종이 되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냐고 권면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학문의 종이 좋겠습니까? 하나님의 종이 좋겠습니까? 무슨 종이 좋습니까? 하나님의 종이 좋지, 학문의 종이 무엇이 좋습니까? 한정이 없는 학문은 늙어 죽도록 해도 다 못합니다. 그러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는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2. 여호와의 말씀대로 통치하는 왕에게 생명이 있음
본문 10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 입이 그릇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성경말씀이 왕의 말에 있다고 하였고, 성경말씀대로 재판하면 일이 그릇되지 않고 바로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경말씀대로 모든 것을 재판하면 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생각대로 하지 말고, 성경말씀대로 재판하고 판단하며, 일을 해결해나가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본문 10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 입이 그릇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성경말씀이 왕의 말에 있다고 하였고, 성경말씀대로 재판하면 일이 그릇되지 않고 바로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경말씀대로 모든 것을 재판하면 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생각대로 하지 말고, 성경말씀대로 재판하고 판단하며, 일을 해결해나가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본문 11절에 “공평한 간칭과 명칭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추돌들도 다 그의 지으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간칭(桿稱)’과 ‘명칭(皿稱)’은 저울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공정하게 저울을 사용해야 하는데, 공정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따라서 무엇이든지 공정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대로, 뜻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불공정하게 하는 것은 마귀가 기뻐하는 바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공정은 하나님께서 내신 것이고, 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정히 행해야 합니다.
물을 그릇에 떠다놓으면, 수면(水面)이 찌그러지지 않고 수평을 이룹니다. 그런데 그렇게 물이 공평하게 수평선을 이루는 것은 누가 하는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수평선도 하나님께서 내셨습니다. 또 무엇을 세워놓고 그것이 바로 세워졌는지 아닌지를 볼 때에도 추를 줄에 매달아 대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이용하여 기둥도 바로 세우고 모든 것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공평한 간칭과 명칭, 그리고 추 등의 저울은 하나님께서 내신 것입니다. 즉, 저울을 만든 것은 사람이지만 공정하게 해야 한다는 법칙은 하나님께서 내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악을 행하는 것은 왕의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악을 미워하고 공의를 행하면 그 보좌가 굳게 선다는 것입니다. 왕의 보좌가 굳게 서서 악을 미워하고 공의를 행하면, 나라와 가정과 직장이 굳게 섭니다. 개인의 집도 굳게 섭니다. 집안이 굳어집니다. 하여간 악을 떠나고 언제나 공의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모든 곳에서 충성된 자리에 서면 그 기반이 굳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일을 할 때에 공정하게 해야 합니다. 충성하려고 해야 하며, 옳게 하려고 해야 합니다. 또 부지런히 행해야 합니다. 주인이 보지 않아도 언제나 부지런히 일하고, 항상 옳게 하며, 잘하려는 정신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국가도 이렇게 악을 미워하고 모든 일을 공정하게 행하면, 굳게 서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의로운 입술은 왕들의 기뻐하는 것이요 정직히 말하는 자는 그들의 사랑을 입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디를 가나, 입술로 정직히 말하고 의로운 자리에 서면 모든 사람들이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정직히 말하고, 의로운 입술로 말하며, 무엇을 하든지 충성스럽게 하면 어디를 가든지 사랑을 입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정직하지 못하고 충성하지 않으면, 어디를 가나 사랑을 입지 못합니다.
본문 14절에 “왕의 진노는 살륙의 사자와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쉬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한 번 진노하면, 사람을 죽일 수있습니다. 그렇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그 진노를 쉬게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윗사람이 마치 살륙의 사자와 같이 무섭게 군다 해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쉬게 합니다. 또 부인들에게 사자와 같은 남편이 있다고 해도,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의 노를 쉬게 합니다.
쉬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쉬게 합니까? 바로 영접을 해야 합니다. 화를 낼 때에는 가만히 버텨야 합니다. 그래야 분노를 쉬게 할 수 있습니다. 무섭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악한 불량자라고 해도 다 친구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친구를 팔아서라도 살살 달랠 수 있습니다. 하여간 어떻게 해서든지 그 분노를 쉬게 하는 방도가 있습니다. 독사가 아무리 독하더라도, 물리지 않고 잡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방도가 다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섭다고만 하지 말고, 그 분노를 쉬게 하면서 바로 세워 나가야겠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던지니까 그것이 뱀이 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니까 그것이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까? 꼬리를 잡으니까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꼬리를 잡아
야 합니다. 꼬리를 잡으면 다시 지팡이가 되어서 능력의 지팡이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쉬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쉬게 합니까? 바로 영접을 해야 합니다. 화를 낼 때에는 가만히 버텨야 합니다. 그래야 분노를 쉬게 할 수 있습니다. 무섭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악한 불량자라고 해도 다 친구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친구를 팔아서라도 살살 달랠 수 있습니다. 하여간 어떻게 해서든지 그 분노를 쉬게 하는 방도가 있습니다. 독사가 아무리 독하더라도, 물리지 않고 잡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방도가 다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섭다고만 하지 말고, 그 분노를 쉬게 하면서 바로 세워 나가야겠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던지니까 그것이 뱀이 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니까 그것이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까? 꼬리를 잡으니까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꼬리를 잡아
야 합니다. 꼬리를 잡으면 다시 지팡이가 되어서 능력의 지팡이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본문 15절에 “왕의 희색에 생명이 있나니 그 은택이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왕의 희색(喜色)에 생명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왕을 격동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노하지 말게 하며, 잘 도와줘서 희색이 있게 하고, 바로 잘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이 많은 은택을 내려준다는 것입니다.
왕이 기쁨으로 모든 것을 대할 때에 은택이 내려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윗사람이 일을 해나갈 때에 자꾸 반대만 하면 안 되겠습니다. 못하는 것만 들어서 못한다고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지 기쁨으로 그 일을 잘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럴 때에 은택이 늦은 비가 내리는 것처럼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3. 지혜와 정직의 가치
본문 16절에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금보다 지혜가 낫다는 것입니다.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낫습니다. 금은 얼마 후면 없어집니다. 그러나 지혜는 영원토록 남습니다. 따라서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낫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습니다. 즉, 금보다 지혜가 낫고, 은보다 명철을 얻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나은 것입니다. 지혜와 명철은 다 믿음을 가리킵니다. 믿음은 금보다도 귀하고, 은보다도 귀합니다.
본문 16절에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금보다 지혜가 낫다는 것입니다.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낫습니다. 금은 얼마 후면 없어집니다. 그러나 지혜는 영원토록 남습니다. 따라서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낫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습니다. 즉, 금보다 지혜가 낫고, 은보다 명철을 얻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나은 것입니다. 지혜와 명철은 다 믿음을 가리킵니다. 믿음은 금보다도 귀하고, 은보다도 귀합니다.
본문 17절에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니 그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악을 떠나는 것이 정직한 사람의 대로(大路)’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직한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악을 떠나서 정직한 길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영원히 보전되는 길이고, 대로 입니다. 악을 떠나서 무엇을 지켜야 합니까? 정직한 길을 지켜야 합니다. 악을 떠나서 정직한 길을 지키면 그것이 대로가 되고 영혼을 보전 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양심을 똑바로 써야 하고, 바로 해야 합니다.
4. 교만과 겸손의 결과
본문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마음이 들어오면, 그것이 패망의 선봉이 되기 때문에 결국 망하고 맙니다. 교만해 지면, 반드시 패망합니다. 교만한 마음을 가지면, 모든 것을 빼앗깁니다. 그리고 ‘거만하다’는 것은 자기를 믿고, 자기를 자랑하며, 자기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만한 마음을 가지면 넘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조금 있으면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교만하면 망하고, 거만하면 넘어지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마음이 들어오면, 그것이 패망의 선봉이 되기 때문에 결국 망하고 맙니다. 교만해 지면, 반드시 패망합니다. 교만한 마음을 가지면, 모든 것을 빼앗깁니다. 그리고 ‘거만하다’는 것은 자기를 믿고, 자기를 자랑하며, 자기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만한 마음을 가지면 넘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조금 있으면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교만하면 망하고, 거만하면 넘어지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에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은 아주 복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낮추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마음이 낮아져야 합니다. 마음이 높아지면 망합니다. 마음이 낮아져야 합니다. 낮은 데에 처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낮추면 항상 평안하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높여 놓으면 언제나 불만과 불평이 넘칩니다. 마음을 낮춰야 합니다. 마땅히 생각하되, 그 이상의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 이상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낮추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3절에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남보다 높게 여기라고 하였습니까? 낮게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낮추고, 낮은 데 처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마음을 낮춰 놓으면, 농사가 망해도 그저 감사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높여 놓으면 불평과 불만뿐입니다. 족하다 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심령의 마음을 낮춰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을 봐도, 얼마 가져가지도 못합니다.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낮추고, 낮은 데 처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마음을 낮춰 놓으면, 농사가 망해도 그저 감사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높여 놓으면 불평과 불만뿐입니다. 족하다 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심령의 마음을 낮춰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을 봐도, 얼마 가져가지도 못합니다.
5. 명철과 선한 말을 하는 자의 복
본문 20절에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에 주의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말씀에 주의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20절에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에 주의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말씀에 주의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21절에 “마음이 지혜로운 자가 명철하다 일컬음을 받고 입이 선한 자가 남의 학식을 더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명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잘 가르치는 자는 다른 사람의 학식을 더하게 합니다.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많이 전해야지, 자기 혼자만 알면 안 됩니다.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주면 남의 학식을 더해주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에 “명철한 자에게는 그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되거니와 미련한 자에게는 그 미련한 것이 징계가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명철’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인데, 그것이 생명의 샘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살며 말씀대로 행하는 자에게 그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에게는 그 미련한 것이 징계가 됩니다. 미련한 자에게는 미련한 것, 그 자체가 징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에 “명철한 자에게는 그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되거니와 미련한 자에게는 그 미련한 것이 징계가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명철’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인데, 그것이 생명의 샘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살며 말씀대로 행하는 자에게 그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에게는 그 미련한 것이 징계가 됩니다. 미련한 자에게는 미련한 것, 그 자체가 징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믿음을 지키는 자의 마음을 말합니다. 그것이 그 입을 슬기롭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입술에 지식을 더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더한다는 뜻입니다. 믿음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여 주십니다. 그 입술과 마음에 슬기가 있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에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입에 무엇과 같습니까? 꿀송이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 같다’는 말씀이 성경 어디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시편 19편 10절에 “금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보다 달다는 것입니다. 또 뼈의 무엇이 됩니까? 양약(良藥)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말씀이 온 몸 전체의 약이 된다는 뜻입니다. 모든 병을 것을 고치고, 새 생명을 얻으며, 점점 자라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을 때에는 그것이 꿀송이와 같이 달고, 뼈의 양약이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3절에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꿀보다 달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을 때에, 그것이 꿀송이보다 달고, 또 뼈의 양약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6. 노력하는 자와 불량한 자
본문 25절에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릅니다. 그러나 필경은 어떻게 됩니까? 사망입니다. 어떤 길이 사람이 보기에는 바른데, 필경은 사망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아말렉을 치러 갔을 때에,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 사람들과 짐승들을 다 죽이라고 하셨는데, 살찐 짐승들을 살려두었습니다. 죽이지 않고 가지고 왔습니다. 살찐 양과 소를 잡아먹으려고 안 죽이고 끌고 왔습니다. 사람 보기에는 괜찮지 않습니까? 다 죽이면 아깝습니다. 그것이 사람 보기에는 바릅니다. 그러나 필경은 사망의 길입니다.
본문 25절에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릅니다. 그러나 필경은 어떻게 됩니까? 사망입니다. 어떤 길이 사람이 보기에는 바른데, 필경은 사망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아말렉을 치러 갔을 때에,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 사람들과 짐승들을 다 죽이라고 하셨는데, 살찐 짐승들을 살려두었습니다. 죽이지 않고 가지고 왔습니다. 살찐 양과 소를 잡아먹으려고 안 죽이고 끌고 왔습니다. 사람 보기에는 괜찮지 않습니까? 다 죽이면 아깝습니다. 그것이 사람 보기에는 바릅니다. 그러나 필경은 사망의 길입니다.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거대하게 멸망하는 길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 보기에 옳은 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 생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바로 할 때에, 사람 보기에 맞지 않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인간의 생각대로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안 맞으므로 필경은 그것 때문에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맞게 하고, 사람의 생각대로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사람의 생각대로 하면 그것이 옳은 것 같아도 필경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인의 제사가 사람이 보기에는 바른 것 같습니다. 일 년 농사를 해서 하나님께 정성껏 제사를 드렸는데, 그것이 사람 보기에 얼마나 바릅니까? 그러나 그 제사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또 에서는 어떻습니까? 에서도 배가 고파서 다 죽게 되었는데 장자의 명분을 가지고 있어봤자, 뭐하겠습니까? 그것이 무엇이 중요합니까? 그래서 에서가 ‘장자의 명분이 무엇이 중요한가? 일단 먹고 보자’라고 생각하여 장자의 권리를 팔았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팥죽 한 그릇이 장자의 명분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팥죽 한 그릇에 그것을 판 것입니다. 사람 보기에는 바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그것 때문에 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 보기에 옳은 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옳게 해야 합니다. 굶어죽어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옳게 하면 살게 됩니다. 그리고 반대의 경우에는 사람의 생각으로는 아무리 옳은 것 같아도, 필경은 사망의 길인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 보기에
옳은 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로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로 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판단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의 판단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비밀의 말씀을 지혜 있는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에게 나타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잘 찾아 이루어나가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바로 하면 당장은 죽는 것 같아도, 그것이 사는 것입니다.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는 바르나, 필경은 어떻습니까? 사망입니다. 사람이 보기에 생명의 길 같으나, 필경은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가는 것은 사람이 보기에는 죽을 것 같은 길이지만, 그 말씀대로 나가면 사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람의 생각대로 나가면 옳은 것 같지만 결국은 망하고 맙니다.
옳은 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로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로 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판단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의 판단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비밀의 말씀을 지혜 있는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에게 나타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잘 찾아 이루어나가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바로 하면 당장은 죽는 것 같아도, 그것이 사는 것입니다.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는 바르나, 필경은 어떻습니까? 사망입니다. 사람이 보기에 생명의 길 같으나, 필경은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가는 것은 사람이 보기에는 죽을 것 같은 길이지만, 그 말씀대로 나가면 사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람의 생각대로 나가면 옳은 것 같지만 결국은 망하고 맙니다.
본문 26절에 “노력하는 자는 식욕을 인하여 애쓰나니 이는 그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노력하는 자는 먹을 것 때문에 노력합니다. ‘이는 그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반드시 사람은 일을 해야 먹게 되어 있습니다. 일하지 않으면 굶어야 합니다. 그래야 입이 독촉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일하여 먹고 살도록 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일하고 먹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여러 면으로 일하고 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으르면 안 됩니다. 일하기 싫어하고 게으른 자는 먹지도 말아야 합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을 자격이 없습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본문 27절에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 같은 것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8절에 “패려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장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장이는 회개해야 합니다. 말장이는 친한 벗을 이간질시킵니다. 말장이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장이가 없으면 무엇이 쉰다고 하였습니까? 다툼이 쉰다고 하였습니다. 하여간 우리는 말장이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한 말을 저기에 옮기고, 저기서 한말 여기에 옮기며, 자꾸 이간질을 시켜서 싸움을 붙이는 것이 말장이입니다. 마귀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 말장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장이가 되지 않아야겠습니다. 말장이가 되는 것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본문 29절에 “강포한 사람은 그 이웃을 꾀어 불선한 길로 인도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나쁜 동무를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의한 동무를 사귀면 그가 불의한 길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불의한 동무 때문에 불의한 길로 행하는 사람은 불의한 자의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므로 불의한 동무를 다 끊어버려야 합니다.
본문 30절에 “눈을 감는 자는 패역한 일을 도모하며 입술을 닫는 자는 악한 일을 이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눈을 감는 자’는 눈을 뜨고 바로 보지 아니하고 자기 볼 장만 보려 합니다. 그래서 패역한 일을 도모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예 남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른 것을 보여줘도 보지 아니하며, 생각을 하게 해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악한 생각을 가지고 말하게 하고, 입술을 닫고 있는 사람은 패망하게 됩니다.
7.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나음
본문 31절에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백발(白髮)’이 무엇입니까? ‘영화의 면류관’입니다. 머리가 하얀 것이 영화의 면류관입니다. ‘의로운 길에서 얻어진다’라는 것은 의로운 길을 행하다가 백발이 되면 더욱 더 영광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냥 백발도 원래 영광입니다. 보통 백발이 영광인데, 무엇을 하다가 하얗게 되는 사람이 더욱 영광입니까? 의로운 길을 행하다가 백발이 된 사람입니다. 믿음을 잘 지키고, 하나님의 일을 잘 받들어나가며, 주를 위해서 수고를 많이 하며 살다가 백발이 된 그 백발은 영화가 많다는 것입니다. 많은 영화의 면류관을 얻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백발이 영화의 면류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백발이 되기 전에 주를 위하여 수고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수고를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백발이 되면 영화가 더 큰 면류관을 얻습니다. 별이 많이 달린 면류관을 받습니다.
본문 31절에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백발(白髮)’이 무엇입니까? ‘영화의 면류관’입니다. 머리가 하얀 것이 영화의 면류관입니다. ‘의로운 길에서 얻어진다’라는 것은 의로운 길을 행하다가 백발이 되면 더욱 더 영광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냥 백발도 원래 영광입니다. 보통 백발이 영광인데, 무엇을 하다가 하얗게 되는 사람이 더욱 영광입니까? 의로운 길을 행하다가 백발이 된 사람입니다. 믿음을 잘 지키고, 하나님의 일을 잘 받들어나가며, 주를 위해서 수고를 많이 하며 살다가 백발이 된 그 백발은 영화가 많다는 것입니다. 많은 영화의 면류관을 얻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백발이 영화의 면류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백발이 되기 전에 주를 위하여 수고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수고를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백발이 되면 영화가 더 큰 면류관을 얻습니다. 별이 많이 달린 면류관을 받습니다.
본문 32절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갑자기 노하는 자는 어떻게 됩니까? 패망을 면치 못합니다. 잠언 12장 16절에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을 빼앗는 것보다 낫고, 용사보다 낫습니다. 마음을 다잡기 때문입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많은 것을 얻습니다. 먼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습니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승리하게 됩니다.
본문 33절에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제비를 뽑지만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다고 하였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