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7일 월요일

잠언 15:1-33 유순한 대답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유순한 대답
잠언 15:1-33

1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2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3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4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5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6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어도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되느니라 7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지식을 전파하여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정함이 없느니라 8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9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 10도를 배반하는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요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니라 11음부와 유명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인생의 마음이리요 12거만한 자는 견책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 13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14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 15고난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16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7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8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19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20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21무지한 자는 미련한 것을 즐겨하여도 명철한 자는 그 길을 바르게 하느니라 22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하고 모사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 23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24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 있는 음부를 떠나게
되느니라 25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 26악한 꾀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이라도 선한 말은 정결하니라 27이를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사느니라 28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29여호와는 악인을 멀리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 30눈의 밝은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하느니라 31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 있느니라 32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 33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1. 유순한 대답과 과격한 말

유순하게 나가는 사람이 이김

문 1절에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같은 대답이라도 유순하게 하면 분노를 쉬게 합니다. 상대방의 과격한 대답은 상대방을 격동시킨다고 하였는데, 과격한 말을 해서 상대방을 격동시켜 그 결과가 자기에게로 돌
아오지 않게 하려면 자기가 먼저 유순한 말을 해야 합니다. 이기선 목사님이 결혼식 주례 시 대답할 때에 유순하게 대답하라는 것입니다. 결혼 서약으로 “예”를 할 때, 같은 대답이라도 크게 하는 것, 유순하게 하는 것, 과격하게 하는 것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같은 값이면 유순하게 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남자들도 힘이 좀 세다고 부인에게 과격하게 하면, 늙어서 다 받게 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남자 노인이 적고 여자 노인이 많은데, 늙으면 남자들이 화풀이를 다 받아야 하니 아예 유순하게 나가야 합니다. 과격함이 이기는 것 같아도 온유함이 이기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인이 유순하게 하면 남편이 부인 하자는 대로 말을 잘 듣고, 남자가 집에 들어가 유순하게 하면 잘 얻어먹고 과격하게 하면 반찬 하나도 못 얻어 먹습니다. 유순한 대답을 하는 사람이 이깁니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화가 날 때가 있지만, 화를 부린다고 해서 일이 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일만 더 크게 만드는 것입니다. 연못에다 돌을 던지면 물결이 파도처럼 나가는데, 그것을 앞에서 막으려고 해도 안 되고 가만히 놔두면 없어져서 잔잔해집니다. 하여간 유순하게 나가야 합니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나 유순하게 나가야 합니다. 화가 났을 때 점점 목소리가 가늘어지는 사람은 실패하지 않고, 화가 났을 때 헉 하고 속에서
돼지가 나와 꽥꽥하고 멱따는 소리를 하면 그 사람은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속에서 화가 올라와도 참아야 합니다. 말을 점점 더 작게 하고 점점 더 유하게 나가고 가만 가만히 하면서 유순하게 나가는 사람이 이깁니다.

본문 2절에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믿음 있는 자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혜이고, 말씀이 지혜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 말씀을 믿는 사람은 성경에 뭐라고 말했나 생각하여 말씀대로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미련한 말만 자꾸 뱉어내다가 매를 자청합니다(잠 14:3). 그러므로 우리는 미련한 것을 입으로 쏟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3절에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어두운 가운데서 행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여호와의 눈이 다 살펴서 아십니다.

본문 4절에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온량한 혀’는 다른 사람이 마음 상해 있을 때에 치료해주는 혀입니다. 믿음으로 권면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 해주는 혀는 생명나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나무’라고 하였는데, 예수님께서 포도나무요, 우리는 포도나무의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치료해주는 혀는 예수님의 생명을 자기도 받고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해주어 좋은 열매가 맺히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치료해주는 혀를 가져야지, 패려한 혀를 가지면 안 되겠습니다.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한다’고 하였는데, 듣는 사람을 괴롭게 하는 혀가 있습니다. 남을 격동시키는 말을 하고 그 사람의 약점을 자꾸 들추고 아픈 상처를 자꾸 건드리는 말을 하는 혀가 바로 패려한 혀입니다.

키가 작은 부인에게 남편이 자꾸 키가 작다고 하고 비행장에 마중 나가 보니 보이지도 않더라고 하면서 멸시하면, 그것이 패려한 혀입니다. 그 부인이 가만히 여러 해를 묵혔다가 한 번 터쳐 나올 때에 아주 전이 일어나서 ‘산다. 안 산다’하고 사돈끼리 왔다 갔다 하며 굉장히 큰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의 약점을 자꾸 들추는 것은 패려한 혀가 하는 일입니다.

치료하는 혀를 가지라

치료하는 혀를 가져야 합니다. 자기 부인이 작을 때에 치료하는 혀는 무어라고 해야 되겠습니까? “크면 옷감만 많이 들어가고 무슨 소용이 있느냐? 작아도 자기 할 일 다 하면 큰 사람보다 못하지 않다. 괜찮다”고 해야 합니다. 하여간 온량한 혀를 가져야 합니다. 한 사람이 시력이 낮으면 내가 눈 노릇을 해주면 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혀는 치료하는 혀입니다. 그러나 패려한 혀는 “두 눈을 가지고도 변변히 못 할 터인데 외눈으로 뭘 하겠느냐?”며 멸시하는 말로 마음을 자꾸 쿡쿡 찌르는 혀입니다. 모든 일에 온량한 혀, 치료해주는 혀,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위로해주고 싸매주며, 말씀대로 권면하고 모든 것을 건설적으로 잘 해나가는 혀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생명나무’입니다. 패려한 혀, 남을 괴롭히는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2.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와 잘 받는 자

본문 5 에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제일 좋은 것을 가르쳐주려 하고 또 잘되게 하려고 하므로, 아버지의 훈계를 잘 들으면 그 사람은 아주 지혜로운 자입니다.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많이 배우고 잘못된 길로 가지 않고 실패하지 않게 되니, 큰 유익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훈계를 듣지 않으면 미련한 사람입니다. 아주 미련합니다. 가다가 구렁텅이에 빠질 날이 옵니다.

본문 6절에 “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어도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의 집에는 물질이 많든지 적든지 영적인 보화가 많지만, 악인의 소득은 많더라도 고통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지식을 전파하여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정함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지식을 전한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믿는 자의 입술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의 입술은 지혜,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의 마음은 진리가 없음으로 늘 동요되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방향 없이 나간다는 것입니다.

3. 마음이 즐거운 자와 근심하는 자

항상 기쁘고 즐거움으로 살라

본문 8절에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일을 하고서 여호와께 제사를 지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악한 일을 회개하고 바로 서서 하나님께 와서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너를 원망하는 일이 생각나면 제물을 제단에다 놓고 다시 가서 화목을 하고 그 다음에 와서 제사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하였습니다. 형제 간에 악한 짓을 하고 와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깨끗한 마음과 정직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십니다.

본문 9절에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의를 따라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악인의 길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십니다. 언제나 우리는 의를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본문 10절에 “도를 배반하는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요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도를 배반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고 떠나는 자를 가리키며, 그런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니라’고 하였는데, 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음부와 유명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인생의 마음이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죽음과 멸망도 여호와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인생의 마음이리요’라는 말인데,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훤히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 드러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거만한 자는 견책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책망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는 자가 거만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른 말을 해줄 지혜로운 사람에게 가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망할 자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믿음 있는 사람에게 견책을 잘 받고 지혜로운 자에게 가서 물어보고 성경말씀을 아는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멸망의 길로 가지 않고 바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본문 13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항상 마음이 즐거운 사람이 얼굴도 화평하고 온 몸이 건강합니다. 언제나 기쁘고 즐거움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하며 살라

무엇을 한 가지 하더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한 가지만이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이북에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주일날 와서 예배 한 번 드린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또 영적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통하면 항상 마음이 즐겁습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면서도 마음이 즐거웠습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얼굴에서 빛이 난다고 하였는데,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근심을 많이 하는 사람은 믿는 일도 못하고 몸도 건강하지 못합니다. 자꾸 근심하면 소화도 안 되고 간도 나빠지고 혈액 순환도 잘 안되고 심장도 편하지 않아, 여러 가지 병이 생긴다고 합니다. 따라서 있는 바로 족한 줄로 알고 먹을 것만 있으면 감사하고 오늘 것만 있으면 내일을 염려하지 말고 즐거움으로 살아야 되겠습니다. 항상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기고, 신령한 믿음으로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즐거움으로 나가야 되겠습니다.

본문 14절에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자는 ‘명철한 자’이고, 명철한 자는 늘 지식을 요구하여 말씀을 더 배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거워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5절에 “고난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잔칫집과 같이 늘 즐겁지만, 믿음을 떠나서 욕심으로 사는 사람은 항상 고난이 많고 매일 험악한 날같이 지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행복임

본문 16-17절에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크게 부하는 자는 번민하기 쉽습니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잘 공경하면 부자로 번민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부자는 일이 많고 딸린 사람이 많으니 사건이 많이 생기는데 그것이 남이 보기에만 좋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부자도 하루에 세 끼 먹고 저녁에 잘 때에는 여덟 자 방 하나면 됩니다. 가난한 자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것보다 사실 걸어 다니는 것이 건강에 좋기 때문에 더 낫습니다. 강냉이, 감자, 좁쌀, 잡곡밥 한 그릇에 김치, 우거지 국을 먹고 걸어 산에 올라가서 나무 한 줌 해다 불을 때며 사는 곳이 세계 제일의 장수촌이라고 신문에 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문을 보고 장수하려고 강냉이죽을 써먹으려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런다고 장수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또 적은 분량의 채소를 먹으면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소를 잡아먹으면서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은데, 소를 잡아도 서로 많이 먹으려고 미워하기 때문에 유익이 없습니다. 채소를 먹으면서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낫습니다. 먹을 것이 없으면 서로 공경하고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많으면 교만하고 방탕하기 쉽기 때문에 서로 미워하고 싸우기도 쉽습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보통은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기 쉽고 부자는 서로 싸우고 미워하기 쉽습니다. 그래도 넉넉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없는 가운데서 싸우는 사람들은 미련한 자들입니다. 재산이 넉넉해야만 사는 것이 아니고 재산이 넉넉해야만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해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에 행복이 있고 또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됩니다.

본문 18절에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분을 쉽게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언 12장 16절에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는 미련한 자입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면서 수욕을 참는 자는 시비를 그친다고 하였으니, 분을 내지 말고 수욕을 잘 참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가산이 적고 채소를 먹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낫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분을 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분을 낼만한 일이 생겨도 분을 내지 않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이기는 사람입니다. 분을 내면 마귀에게 지지만 수욕을 잘 참으면 좋은 날, 영광의 날이 옵니다. 그전에 진 목사님이 의분(義憤)도 잘못됐다고 하였습니다. 하여간 분내지 말아야 합니다.

4.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

가시울타리의 뜻

본문 19절에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고 하였습니다.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울타리입니다. 부지런하면 가시를 다 뽑아서 가시가 없겠는데 게을러 일을 안 하니 모든 잡초와 엉겅퀴와 가시가 나 있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계속해서 나와서 가시울타리가 됩니다. 또 게으른 자는 일을 안 하고 내버려 두니 일이 태산같이 쌓여 그것을 치우려면 가시울타리를 치우는 것 같은 상황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집에 들어가면 빨랫감이 그득 그득 쌓여 다 썩고 벌레가 나고 냄새가 나서 쓰레기 같이 쌓여 있는데, 그것이 가시울타리입니다. 일감이 사방에 쌓여서 운신(運身)을 못하게 만드니, 그것이 가시울타리 아니겠습니까?

또 게을러서 일을 안 해 버릇하면 일이 너무 서툽니다. 일이 너무 서툴러서 무엇을 한 가지 하려고 해도 힘이 듭니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에 늘 일을 한 사람은 일하기가 아주 쉬워 척 하면 해치웁니다. 그러나 일을 안 해온 사람은 일이 서툴러서 그것이 가시울타리가 됩니다.
성경을 보는 것도 게으른 자는 억지로 보니, 그것이 마치 가시울타리 치우듯 힘이 듭니다. 심방도 전도도 안 해보다가 하려고 하면 가시울타리와 같습니다. 그러나 일을 늘 하는 사람은 아주 쉽습니다. 그러니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일 처리를 잘못해서 일이 잘못되고 틀어지며 환난을 받는 것이 다 가시울타리입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부지런히 자기 일을 해나가는 자의 길은 대로(大路)와 같이 형통하고 평탄합니다. 정직한 자는 양심을 똑바로 쓰는 사람인데, 양심을 똑바로 쓰고 모든 일을 바로 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앞 길이 잘 열려나간다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합니다. 첫째, 부모의 말을 잘 순종하고 둘째, 믿음을 잘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가기 때문에 아비를 즐겁게 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아들은 부모를 업신여기고 성경말씀을 멸시하고 세상과 제 뜻과 육신의 자유대로 나가기 때문에 부모를 멸시하다가 자기도 망하게 됩니다.

본문 21절에 “무지한 자는 미련한 것을 즐겨하여도 명철한 자는 그 길을 바르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지한 자는 미련한 것을 즐겨서 하고, 명철한 자, 즉 신령한 지혜가 있고 성경말씀을 이해하는 자는 바른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우리의 모사(謀士)가 되시는 예수님

본문 22절에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하고 모사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한다’고 하였으므로 의논을 많이 하고, ‘모사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된다’고 하였으므로 모사에게 가서 의논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모사가 누구겠습니까?
이사야 9장 6절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고 하였는데, 예수님께서 모사이십니다. 즉, 예수님께 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도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하고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모사가 많아야 된다고 하였으니, 성경 한 군데만 보지 말고 여러 성경말씀을 다 참고해야 경영이 성립됩니다. 무엇을 할 때 성경으로 돌아가서 의논하고 성경의 인도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실패합니다. 그러니 범사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경말씀의 인도를 받아서 그 말씀대로 하라
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을 잘 모르는 사람은 성경을 잘 아는 사람에게 가서 어떻게 하여야만 성경말씀대로 할 수가 있겠는지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성경말씀대로 하면 실패 같으나 성공하고, 인간의 생각대로 하면 잘될 것 같아도 가다가 실패합니다. 경영이 파하게 됩니다. 그러니 인간의 생각대로 하지 말고 성경대로 하고 믿음으로 하여야 합니다.

본문 23절에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라고 하였습니다. ‘때에 맞은 말’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상대방의 물음에 적당한 말을 해주는 것으로 그 사람이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는 말을 가리킵니다.

나아만이 요단강에 가서 7번 목욕하라는 엘리사의 말을 듣고 목욕을 안 하고 가려 하였을 때, 그 신하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이것보다 더 큰 것을 하라고 해도 하겠는데, 우리가 요단강에 가서 7번 목욕하라고 한 것을 못하겠습니까?”라고 하여 나아만의 마음을 ‘한 번 해보자’로 돌이키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아만이 목욕을 하자 문둥병이 다 났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성경대로 순종시키는 말이 때에 맞는 말입니다.

본문 24절에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 있는 음부를 떠나게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위로 향한 생명길’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위에 있는 생명길이라는 뜻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멸망의 구렁텅이를 떠나 위에 있는 영적 생명길로 걸어가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생명길로 걸어가는 사람은 위에 있는 영적 생명길, 즉 신령한 길, 믿음의 길, 위에 있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길로 가는 자입니다. 우리는 그와 같이 생명길로 걸어가며 음부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5. 교만한 자와 탐리(貪利)하는 자

본문 25절에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고 하였는데, ‘지계(地界)’라는 것은 경계선의 뜻으로, 외로운 과부의 재산이나 집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26절에 “악한 꾀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이라도 선한 말은 정결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계획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나 선한 말은 정결하므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십니다.

본문 27절에 “이를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 하는 자는 사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탐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탐닉하는 것, 욕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자족을 배워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욕심을 버려야 믿음을 지킬 수 있고 함정에 안 빠집니다. 이를 따라 나가고 욕심을 따라 나가다가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사느니라’고 하였는데, 뇌물을 안 받는 사람이 사는 사람입니다. 뇌물을 받으면 언젠간 함정에 빠져서 올무에 걸릴 날이 옵니다.

6. 의인과 악인

본문 28절에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은 대답하기 전에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깊이 생각하고 대답합니다. 또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깊이 생각하여 말합니다. 함부로 악을 쓰게 되면 제 말에 제가 걸립니다. 그러므로 악인은 자기 말에 자기가 걸리고 결국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본문 29절에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멀리하시고 성도가 믿음으로 기도할 때에 들으십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7.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복

본문 30절에 “눈의 밝은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눈이 밝다’는 것은 신령한 눈이 밝은 것을 가리킵니다. 신령한 눈이 밝은 사람은 신령한 은혜의 세계에서 살고 영적 일을 잘해나가므로 언제나 마음이 기쁘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욕심은 눈을 어둡게 합니다. 따라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좋은 기별’은 기쁜 소식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심령에 평강을 주며 육신에도 건강을 끼칩니다.

본문 31-32절에 “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 있느니라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훈계를 잘 받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신령한 귀가 열려서 생명의 경계를 잘 들으면 살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견책을 달게 받는 자가 지혜 있는 사람이요, 자기 영을 귀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본문 3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 겸손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야 하나님의 모든 지혜의 훈계를 받습니다.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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