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7일 월요일

잠언 14:1-35 행위 보응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행위 보응
잠언 14:1-35

1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2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 3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 4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5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6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7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8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9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10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예하지 못하느니라 11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12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13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14마음이 패려한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만족하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로 그러하리라 15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느니라 16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17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18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19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느니라 20가난한 자는 그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21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22악을 도모하는 자는 그릇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 23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24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자의 소유는 다만 그 미련한 것이니라 25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 26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27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
라 28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29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30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뼈의 썩음이니라 31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32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33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거니와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나타나느니라 34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35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의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하느니라

1. 미련한 자와 지혜로운 자 집을 세우는 자가 되라

본문 1절에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자나 남자 할 것 없이 집을 세우는 자가 지혜롭고, 집을 허는 자는 미련한 자입니다. 언제나 건설적으로 집을 세우는 자가 되어야지, 집을 허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 만한 일이 생길 때에도 집을 헐지 말고 그것을 세우도록 하여야 합니다. 빈대가 쏜다고 빈대를 잡기 위해 집에 불을 놓는 사람은 아주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빈대만 잡고 집은 남겨 놓아야지, 집을 다 태우고 어디서 살겠습니까? 언제나 집을 세우고 어떠한 경우에도 집을 허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 쥐를 잡으려고 하다가도 장독대의 독을 봐서 쥐를 안 쳐야 합니다. 돌을 던져서 쥐를 잡았다고 해도 독이 깨지면 그 안에 있는 쌀이 다 헤집어져서 쥐가 먹는 것보다 몇 백 배 더 손해가 납니다. 그러니 여한이 있어도 집을 헐지 말고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집을 세우려고 하면 얼마든지 세울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받들어 세워나가는 정신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또 그것이 신앙입니다. 좀 부족한 것이 있어도 받들면서 부족한 것을 보충해야 합니다. 인정해야 합니다. 헐어치우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족하다고 헐어치우면 헐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가령 남편이 팔을 하나 못 쓰면 “팔도 못 쓰면서 무엇을 하느냐? 이혼하자”라고 하지 말고, 아내된 자가 팔 노릇을 해주어야 합니다. 남편에게 발이 하나 부족하면 자기가 발 노릇을 해주면서 집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부모가 부족할 때에는 자녀가 보충하고, 자녀가 부족할 때는 부모가 보충해야 합니다. “부족하니, 너는 못 쓰겠다. 나가 죽어라. 이제는 남이다”라고 하지 말고, “부족하니, 내가 보충해야겠다”라고 하며 집을 잘 세워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집을 세워나가고 나아가 교회를 세워나가고 국가를 세워나가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입술을 잘 다스리라

본문 2절에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정직한 사람입니다. 정직한 사람이어야만 여호와를 경외할수 있습니다. 패역하게 사는 자는 여호와를 떠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게 됩니다.

본문 3절에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하여 자기 입으로 말을 내되 교만한 말, 남을 멸시하는 말을 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는 자가 미련한 자입니다. 반대로 지혜로운 자는 자기 입술을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되지 않는 말과 남에게 손해 주는 말은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썽을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입술을 잘 봉인해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소를 먹이고 부리는 사람이 되라

본문 4절에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소를 먹이는 사람보다 안 먹이는 사람이 몸이 편안하고 깨끗합니다. 소를 먹이려면 힘이 많이 들고 깨끗할 수가 없습니다. 소에게 먹이를 주면 먹다 뒤치기도 하고 쏟아지기도 하고 좀 남기기도 하여, 구유 옆도 지저분하고 더럽습니다. 일거리가 많고 힘이 듭니다. 그래서 소를 안 먹이고 팔아먹으려는 사람이 많은데, 그래도 소를 먹이면 얻는 것이 많습니다. 소가 나가서 논과 밭을 엎어서 갈고 짐을 들여오고 맷돌을 돌려 방아도 찧는 등 일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소가 없는 집은 농사하기가 아주 곤란합니다. 또 소가 재산이니, 소 한 마
리가 새끼를 낳고 또 그 소를 팔면 돈이 생깁니다. 그래서 소로 인해 얻는 것이 많으니 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소가 깨끗하게 먹으면 좋겠는데, 깨끗하게 먹고 싸라고 소의 다리가 부러지게 때려도 깨끗하게 먹을 수 없는 것이 소입니다. 그런데 말을 잘 안 듣지만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기 때문에, 소를 먹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깨끗하고 편안한 것만 좋아하지 말고, 좀 수고스럽고 더럽고 파리가 끓어도 소를 먹이고 부려야 합니다. 아무리 소가 말을 안 들어도 소 잘 부리는 사람은 받는 소도 부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받는 소가 힘이 좋습니다. 소를 부릴 줄 몰라서 그렇지 하나님께서 소를 부리라고 내셨기 때문에 얼마든지 어떤 소도 넉넉히 부릴 수 있습니다. 하여간 소가 없는 집은 구유는 깨끗하지만 소가 있어야 일이 되고 앞으로도 희망이 있습니다. 소가 있는 집은 희망이 있고 소가 없는 집은 희망이 없습니다.
소가 말을 안 듣고 냄새가 좀 나더라도 그것이 있어야 힘이 나고 앞으로 큰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농사짓는 데에는 소 한 마리가 많은 힘이 됩니다. 그러므로 소를 잘 부리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본문 5 에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거짓 증거하지 말고, 말에 있어서 진실해야 하며, 신실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거짓 증거를 하다가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본문 6-7절에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고 하였는데, 미련한 자의 앞에는 지식이 없으므로 손해만 난다는 것입니다. 미련한 자, 악한 자, 우둔한 자와 같이 있으면 손해가 나는 것입니다.

자기 길을 알고 낮아지라

본문 8절에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길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자리, 자기의 길, 자기의 일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마음과 눈이 높고 허영심이 들어와 자기의 길을 안 가고 남의 길을 가겠다고 하다가 망하고 거꾸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아무 데도 갈 바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낮추어 자기 길을 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좀 더 큰 것, 좀 더 돈 많이 벌 것을 추구하고 좀 더 높은 일, 좋은 일을 하려고 하니, 길이 없는 것입니다. 낮은 데 처하면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남의 길만 보고 가면 아무리 가야 돌아가기만 하지 길이 없습니다. 모두 자기 길을 모릅니다. 자기 길을 가야 합니다. ‘짚신은 제 날이 제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직장도 결혼도, 자기 길이 다 있습니다. 내 길이 무엇이냐? 낮추어보십시오. 자기 길이 다 있습니다. 하여간 자기 길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자가 미련한 자입니까? 죄를 심상히 여기는 자가 미련한 자입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 반드시 벌을 받는다. 죄 값은 사망이다’라고 하며 죄를 무서워하고 하나님 말씀에 벌벌 떠는 사람은 지혜로운 자요, 복 받을 자입니다. 그런데 죄를 지은 다음에 ‘죄는 무슨 죄, 요만한 것을 무슨 죄라고 하냐? 남들도 다 이렇게 하고 사는데, 나만 벌을 받겠느냐?’하는 상태에 빠지게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죄를 심상히 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망할 자입니다. 우리는 죄를 심상히 여기는 자가 되지 말고, 죄를 두려워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자기 행위대로 받음

심은 대로 거둠

본문 10절에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예하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 마음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고, 자기를 즐겁게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 마음을 기쁘고 즐겁게 가지는 것이 상책입니다. 항상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고통하는 자리에서 떠나 항상 기뻐하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합니다. 또 즐거움을 주지도 못하고 거기에 참여하지도 못합니다. 제 일은 제가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고통도 제가 거기서 나와야 하고, 즐거움도 자기가 참여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자기가 즐거움을 심어야 즐거움을 거두게 되고, 고통을 심으면 고통을 거두게 됩니다.

본문 11절에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제 일은 제가 해야 합니다. 원망해야 쓸 데 없습니다.자기가 고통당하게 만들어놓고 고통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즐거움을 당하게 해놓으면 즐거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하면 즐거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살피시고 심판하심

본문 12절에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는 바로된 것 같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된 길입니다.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잠언 12장 15절에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옳다고 해서 옳은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 옳은 길 같다고 해서 옳은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옳아야 합니다. 그런데 미련한 자는 자기가 다 옳다고 하면서 나가다가 망합니다. 또 다른 사람이 보기에 옳게 시늉하면서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잘못된 것은 숨기고 죄는 은밀한 가운데 붙여두고 다른 사람 보기에 옳게 나타내면, 사람들이 “옳다. 괜찮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는 그 사람이 잘못되었으므로, 그런 사람은 곧 망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자기 보기에 옳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옳다고 인정을 받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옳지 못한 자는 반드시 망합니다. 하나님의 눈은 모든 것을 다 살피셔서 심판하십니다.

방탕에 빠지지 말 것

본문 13절에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슬픔 가운데는 즐거움이 없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오는 것입니다. 즐겁다고 ‘노세 놀아.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니라’고 하다가 돈은 다 없어지고 생활의 곤란이 생기면 근심이 있지 않습니까? 세상 즐거움은 그 끝에도 근심이 있고 웃을 때에도 속에 슬픔이 있습니다. 세상 것은 심령 속에 참된 위로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받는 영적 기쁨, 영적인 즐거움이여야만 만족함이 있고 영원히 슬픔이 없습니다. 육신의 기쁨, 육신의 즐거움, 세상 것에는 반드시 슬픔이 오고 근심이 따라옵니다. 방탕한 것만큼 근심이 따라옵니다. 방탕을 조금 하면 근심이 조금 따라오고, 방탕을 많이 한 사람은 근심이 많이 따라옵니다. 방탕한 것에 비례해서 근심이 따라옵니다. 돈이 없어지므로 근심이 따라옵니다. 또 방탕하는 사람은 몸에 병이 듭니다. 술 먹고 주색잡기를 하고 돌아다닌 사람은 몸에 병이 들되 몸이 다 녹습니다.
밤에 자지 않고 돌아다닌 사람은 건강한 것이 얼마 못 갑니다. 어떤 약을 써도 안 낫는 성병이 요새 많이 퍼져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비참한 가운데 빠지게 됩니까? 그러므로 방탕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근심과 슬픔에 빠질 날이 오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마음이 패려한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만족하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로 그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패려한 자’는 거역하는 자입니다. 거역하는 자가 ‘자기 행위로 만족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로부터 만족한다는 뜻입니다. 즉, 죄 짓는 사람은 죄 짓는 것으로 만족하고, 선한 사람은 자기 속의 구원 역사로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악한 자는 죄 짓는 것으로 만족하고 악한 일 행한 것으로 만족하며, 그 재미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반드시 망합니다. 그리고 선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고 영원히 복을 주십니다.

본문 15절에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모든 말을 다 믿고 돌아갑니다. 악한 자의 말도 믿고, 무당의 말도 믿고, 점치는 자의 말도 믿고, 온갖 사람의 말을 다 믿고 돌아갑니다. ‘된다, 된다’라고 하는 사기꾼의 말도 믿고 돌아가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 말이 그런 것 같아서 그 사람 말을 믿고 따라가고, 저 사람을 만나면 또 저 사람의 말이 그럴 것 같아서 그 사람의 말을 믿고 따라가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다 실패합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자는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바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바로 행동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본문 16절에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라고 하였는데, 악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고 하였는데, 자기를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수욕을 잘 참는 것이 이기는 것임

본문 17절에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한다’라고 하였는데, 노하기를 속히 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잠언 12장 16절에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수욕을 달게 받는 자가 이기는 것입니다.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왜 이런 수욕을 보고 가만히 있겠느냐?’라고 하며 우쭐대고 돌아가봐야 자기만 손해입니다. 낮아지고 한 번 수욕을 받아도 참고 두 번째 수욕을 당해도 참고 세 번째 수욕을 당해도 참고 또 참으
면, 그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노를 당장에 나타내서 분김에 무엇을 처리하면 미련한 자입니다. 분이 나면 무조건 하룻밤 재우라고 하였습니다. 분이 나면 분을 부리지 말고 하룻밤 그것을 재우고, 또 하룻밤 더 재우고 분을 다 가라앉히고 난 다음에 일처리를 하되, 수욕을 참으면서 일처리를 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수욕을 당해도 참고 멸시를 당해도 참고 미혹을 당해도 참아야 하는데, 그것이 예수님께서 가신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미혹을 당하나 미혹하지 아니하시고,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며, 끝까지 수욕을 참으셨습니다. 그 수욕된 십자가를 예수님께서 지고 참으셨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여주시고 승리케 해주셨습니다. 모든 무릎으로 예수님 앞에 와서 꿇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수욕 받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수욕을 참는 것이 높아지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수욕 받지 않는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수욕을 안 받겠다고 노하고 혈기를 부리며, 인간의 생각으로 수욕을 안 받을 방침을 세우면, 그 사람에게는 진짜 수욕이 옵니다. 수욕을 잘 참고 달게 받는 사람이 지혜로운 자입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18절에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 어리석은 것을 장한 재간인양 기업처럼 삼고 나가나, 슬기로운 자는 바른 진리와 지식을 생명과 면류관으로 삼는다고 하였습니다.

3. 의인과 악인

가난해지면 이웃도 미워하나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심 -

하나님만 의뢰하고 믿음에 바로 서라

본문 19절에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릴 날이 오고, 불의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릴 날이 온다는 것인데, 반드시 의인은 승리하고 선은 승리합니다. 또 악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시며, 악한 자가 거꾸러질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가난한 자는 그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술 먹고 방탕하며 돈을 많이 쓸 때에는 친구가 천 사람도 있지만, 급하고 어려울 때에는 친구가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가 가난하면 낮아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할까 하지 말고, 예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가난해지면 친구도 다 없어지고 친척도 안 돌봐주고 이웃도 다 미워하나,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므로 하나님만 의뢰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전 자기 친구들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난해진 다음에는 이전 친구들, 동창생들, 자기와 같이 다니던 사람들이 자기를 안 도와줍니다. 가난하기 이전의 상태대로 돌아다니면 반드시 거꾸러집니다.

자기 처지가 가난하게 되었으면 다른 사람들을 볼 것 없이 예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밖엔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아야 합니다. 이전 생각대로 ‘괜찮겠지’하면 안 되고, 낮아져야 합니다. 가난해지면 이웃도 미워한다고 한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미워하는 것이 바로된 것은 아니지만, 세상이 다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가난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야고보서 2장 5 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만이 가난한 사람을 돌보아주시고, 하나님만이 가난한 사람을 택해서 믿음을 부요하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의뢰해야 합니다. 하여간 먹을 것이 많으면 몰려오고 가난해지면 한 사람도 없이 떠나가며 도리어 미워하는 것이 세상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의뢰하고 자기가 믿음에 바로 서는 것이 중요하지, 세상 사람들은 다 그런 줄 알아야 합니다.

본문 21절에 “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약한 사람을 붙들어주고 위로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는 사람들이 할 일입니다.

본문 22절에 “악을 도모하는 자는 그릇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항상 선을 도모하면, 그 사람 속에 진리가 있고 인자가 있습니다. 선을 도모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나갈 수 있습니다.

본문 23절에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수고하면 그 이익이 나고 말을 함부로 하면 궁핍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말보다는 수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다’고 하였는데, 수고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분봉(分封)과 모든 것을 주십니다. 실제로 말만 하지 말고, 자기가 수고하고 노력하며 일심전력을 기울여서 모든 일을 해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만 잘하고 그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궁핍만 옵니다.

본문 24절에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그 미련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믿는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믿음을 쓰는 사람의 재물은 그에게 면류관이 된다는 뜻인데, 재물을 주를 위해서 쓰므로 그런 것입니다. 세상 재물을 가지고 주를 위해서 쓰면 이 다음에 그것이 우리를 영원한 집으로 인도하여 면류관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를 위해 쓰지 않고 자기의 것으로만 소유한 자는 하나님 앞에 미련한 자가 됩니다. 그리고 오직 그 미련함만 남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모든 일에 진실해야 합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남을 속이지만, 스스로 속아서 자기가 망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임하는 복

본문 26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큰 복이 있습니다. 경외한다는 것은 여호와를 두렵고 떨림으로 공경하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 앞에서 살고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며 하나님의 영광의 눈을 촉범하지 않는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견고한 은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언제나 만세반석 안에 숨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피난처와 반석이 되시고 능력과 힘과 요새가 되어 주십니다. 시편 18편 1-2절에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
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부모가 여호와를 잘 경외하면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에게도 피난처가 되어 주시므로, 자녀들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삭이 하나님을 잘 경외했기 때문에 야곱이 믿음을 다 팔아먹고 돌아갔지만, 최종에는 ‘우리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던 이에게 돌아가야겠다’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렇듯 자녀를 잘되게 하는 방법은 부모가 여호와를 잘 경외하고, 여호와 경외하는 법을 자녀들에게 잘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도 피난처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사람들을 내실 때에 다 살 수 있도록 내셨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그 사람보다 좀 공부를 못한 사람도, 공부를 제일 못한 사람도 그에게 맞는 곳에 쓰시려고 만들어놓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공경하면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시고 보호자가 되시며 잘 인도해주시므로, 다 잘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아무리 세상에서 공부를 잘하고 유명해도 가다가 망합니다.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본문 2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예수를 믿고 여호와를 경외하면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또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고 하였는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을지라도 해를 받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거기서 나오게 해주십니다.
이렇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복이 4가지로 나타나는데, 하나님께서
첫째는 견고한 의뢰가 되시고,
둘째는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시고, 
셋째는 새 생명의 역사를주시고,
넷째는 사망의 그물에 꾀인다 할지라도 거기서 벗어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4. 왕과 백성, 평화와 의

본문 28절에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큰 나라와 작은 나라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고, 왕을 존경하고 왕을 도와주는 사람이 많고 적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백성이 적다’는 것은 왕이 민심을 다 잃어버린 것인데, 그런 왕은 패망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민심을 얻은 왕은 성공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민심을 잃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덕을 끼치는 덕망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본문 29절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12장 16절에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분노를 당장에 나타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홧김에 무엇을 처리하면 안 됩니다.

본문 30절에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늘 화평하게 가지면 육신도 건강합니다. 따라서 고통스러운 마음, 신경질, 근심, 걱정, 불평, 애타는 마음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한의사의 말에 따르면 ‘애간장이 탄다’는 말은 근심, 걱정, 우수, 번민, 고통, 애타는 마음을 가지면 간장이 나빠진다는 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간이 나빠지면 신경통 같은 병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건강을 지키는 제일 좋은 방법은 늘 화평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평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보약을 먹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평안한 마음을 가지면 소화도 잘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다 잘해주실 것을 믿고 화평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일이 안 되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앞으로 잘되게 해 주실 것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잘되게 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또 있는 바에 족한 줄 알고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하면 화평한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믿는 일도 잘하고 육신도 건강하려면 화평한 마음을 가지고 노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기는 뼈의 썩음이라’고 하였는데, 시기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뼈가 다 썩습니다.

본문 31절에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본문 32절에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은 앞으로 환난이 올 때에 반드시 엎드러집니다. 그러나 의인은 죽어도 내세에 가서 영생을 얻게 되니 소망이 있고, 의를 위해서 죽으면 하늘나라에 가서 상을 받으므로, 의인은 죽음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본문 33절에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거니와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나타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는 명철한 자로, 그에게 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그 속의 미련함이 다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 34절에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의로 통치하는 나라는 영화롭게 되나, 죄가 횡행(橫行)하는 나라는 가다가 망하고 욕이 돌아옵니다. 

본문 35절에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의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와 ‘욕을 끼치는 신하’가 나왔는데, 우리는 범사에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가 되어야 합니다. 신하는 아랫사람이라고 하는데, 욕을 끼쳐서 진노를 당하는 아랫사람이 되지 말고, 어디서나 윗사람에게 슬기롭게 행하는 아랫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왕의 은총을 입는 자리에서야 되겠습니다. 언제나 모든 일에 슬기롭게, 바로, 질서 있게, 정당하게 해 나가야만 하나님 앞에 합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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