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7일 금요일

잠언 3:13-35 지혜의 가치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지혜의 가치
잠언 3:13-35

13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14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15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16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17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18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19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을 세우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굳게 펴셨고 20그 지식으로 해양이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21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로 네 눈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22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23네가 네 길을 안연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24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25너는 창졸간의 두려움이나 악인의 멸망이 임할 때나 두려워하지 말라 26대저 여호와는 너의 의지할 자이시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27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28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29네 이웃이 네 곁에서 안연히 살거든 그를 모해하지 말며 30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31포
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 아무 행위든지 좇지 말라 32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거니와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있으며 33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34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35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현달함은 욕이 되느니라


1. 지혜의 가치와 유익

본문 13-15절에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지혜’는 신령한 지혜이
고, ‘명철’은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 지혜입니다(고전 1:30). 이 지혜는 창조주와 만물의 목적, 사람의 영혼과 인생의 바른 길, 속죄와 구원과 내세와 장차 올 심판에 대해서 바로 아는 것입니다. 이 지혜와 명철을 얻은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이러한 지혜와 명철을 얻는 것은 은이나 금을 얻는 것보다 낫고, 진주보다 귀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모든 사모하는 것을 여기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본문 16절에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를 얻은 자는 좌로나 우로나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혜에는 장수와 부귀가 있습니다.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다’는 것은 오래 산다는 것과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영생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다’고 하였는데, 부귀는 영적 부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존귀케 됨을 가리킵니다.

본문 17절에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를 얻은 자가 가는 길은 즐거운 길입니다. 그 첩경은 지름길인데, 그 길이 다 평강합니다. 찬송가 296장에도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대로 걸어가는 길은 즐거운 길입니다.

본문 18절에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를 얻은 자는 영적 생명이 삽니다. 생명나무는 생명이 살아나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참 좋습니다. 요새 결혼할 때에 신부들이 금반지, 은반지, 보석 반지, 다이아몬드반지 등을 세트로 해서 가지고 간다고 하는데, 정신 빠진 일입니다. 생명의 전화라는 곳에 가정 문제로 많은 전화가 오는데, 그 중에 매일 남편에게 맞는 가정이 20%, 한 주일에 두 번씩 맞는 가정이 50%라고 합니다. 금, 은, 보석 반지 등만 해가지고 가서 맞는 것입니다. 결혼할 때에 금, 은, 보석 반지는 안 가지고 가도 지혜만 가지고 가면 남편에게 맞지 않습니다. 도리어 남편의 코를 꿰어서 예배당으로 데려올 수 있습니다. 지혜를 가지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지혜는 세상 지혜가 아니고,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믿을 때에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배우고, 읽고, 듣고, 지킬 때에 성령의 감동으로 해야 합니다. 또 깊은 진리를 배워야 지혜가 점점 늘어갑니다. 누가복음2장 52절에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지혜가 자란다’는 것은 영이 자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점점 영이 자라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배우고 깨달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으로 받으면, 심령이 밝아져서 신령한 것을 근본적으로 바로 알고, 결과도 바로 압니다. 또 심령이 밝아지면 세상의 모든 것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심령이 밝아진 사람은 세상을 바로 보고, 바로 알고, 바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 사람을 바로 판단하지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13절에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 하였고, 같은 본문 15절에는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6-7절에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바로 알고 바로 판단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은 그를 판단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신령한 자를 모르니까, 알지도 못하고 바로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눈 뜬 사람은 모든 것을 바로 볼 수 있지만, 소경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아주 귀한 것입니다.

하여간 말씀을 성령으로 깨달아서 좀 더 배우고, 좀 더 읽고, 좀 더 깊이 알아야 신령한 눈이 떠집니다. 그리고 신령한 눈을 뜬 사람은 모든 것을 대할 때에 바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사람이 어디로부터 왔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 또 사람이 무엇 때문에 있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있다. 사람의 마지막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 등을 압니다. 그러나 신령한 지혜를 모르는 사람은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인지, 마지막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신령한 지혜가 없는 사람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 지혜가 열린 사람은 세상을 바로 알고, 바로 사용합니다. 안 믿는 사람은 아무리 세상에서 지혜가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을 바로 모르기 때문에 사용을 바로 하지 못합니다. 도리어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세상 지혜가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그 지혜를 가지고 사기횡령을 하다가 감옥에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적 지혜가 없으면 일을 잘못하다가 거꾸러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지혜를 가지고 하면 모든 것을 바로 보고, 바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결과가 바로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후회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지혜가 없으면, 인간의 생각으로는 잘될 것 같아도 결국에는 다시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집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라고 하였으므로,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배워서 그 말씀대로 걸어가는 신앙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본문 19절에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을 세우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굳게 펴셨고”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 만물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문 20절에 “그 지식으로 해양이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해양이 갈라지고 공중에서 이슬이 내린 것은 하나님께서 지혜로 하신 것입니다.

본문 21-22절에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로 네 눈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완전한 지혜’는 영적 지혜를 가리키며, ‘근신’은 분별력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삼가서 믿음을 잘 지키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영혼의 생명이 됩니다. 또 ‘목에 장식이 된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속사람이 존귀하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23-24절에 “네가 네 길을 안연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지혜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평안과 안식을 주신다는 뜻이 있고, 마지막 천당 가는 날에 기쁘게 간다는 뜻도 있습니다. 또 잠이 달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생활은 이렇게 복이 있습니다.

본문 25-26절에 “너는 창졸간의 두려움이나 악인의 멸망이 임할 때나 두려워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는 너의 의지할 자이시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창졸간(倉卒間), 즉 갑자기 두려운 일이나 악인의 멸망이 임할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지혜와 근신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에 재앙에 걸리지 않습니다.


2. 힘 있는 대로 선을 베풀라

본문 27-28절에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라고 하였습니다. 선을 베풀 힘이 있으면 무조건 베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 주겠다”라고 하며 연기하지 말고, 즉시로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선을 베풀 기회가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가 지나가면 하려고 애써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선을 베풀 기회에 선을 베푸는 것이 성공입니다. 그것은 하늘나라에 쌓는 것이고, 하늘나라에 영원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 앞에 믿음을 쓴 것이며, 영이 자라난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도 ‘바칠까, 말까? 조금 이따가 바치자’라고 하다가, 전대에 구멍이 뚫어지는 사고가 나면 바칠 수 없습니다. 도적이 와서 가져가거나 어떤 사고가 나면 바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일 하겠다고 하지 말고, 바칠 수 있을 때에 바쳐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앞 길을 열어주십니다.


3. 행악자와 의인의 결과

본문 29-35절에 “네 이웃이 네 곁에서 안연히 살거든 그를 모해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 아무 행위든지 좇지 말라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거니와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현달함은 욕이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웃을 해하지 말고, 의로운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악행하는 자는 반드시 망하고, 의인은 반드시 하나님의 교통하심이 있습니다. ‘현달(顯達)’은 높아진다, 올라간다는 뜻으로, 미련한 자가 높아지고 잘되면, 그것이 욕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련한 자가 높아지는 것은 악한 일을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며, 그 악의 결과로 반드시 패망이 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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