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6일 월요일

사도행전 17:27-18:4 아덴 전도와 고린도 전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아덴 전도와 고린도 전도
사도행전 17:27-18:4

17:27 이는 혹시 그들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고자 하면 그분을 찾게 하시려는 것이니, 그분께서는 과연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아니하신다. 

17:28 우리가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기 때문인데, 너희의 시인들 중 어떤 이들도 말하기를 '우리도 그분의 자손이다.' 하였으니, 

17:29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자손이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사람의 기술과 생각으로 조각한 금이나 은이나 돌과 같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눈감아 주셨으나, 지금은 어디에서나 누구든지 회개하라고 사람들에게 명령하셨으니, 

17:31 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의로 심판하실 날을 정하시고,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시어 모든 이들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기 때문이다." 

17:32 죽은 자들의 부활을 듣고 어떤 이들은 조롱하였고, 어떤이들은 "이에 대해 네 말을 다시 듣겠다." 라고 하였다. 

17:33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니, 

17:34 어떤 이들은 그를 추종하여 믿었는데, 그들 중에는 아레오바고 회원 디오니시우스와 다마리스라고 하는 여자와 그들과 함께한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18:1 이 일 후에 바울이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로 갔다. 

18:2 거기서 본도 태생인 아굴라라고 하는 어떤 유대인을 만났는데, 그는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들에게 로마를 떠나라고 명령하였으므로, 최근에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와 있었다. 바울이 그들을 찾아갔는데, 

18:3 서로 직업이 같으므로 그들과 함께 머물며 일하니, 그들의 직업은 천막을 만드는 일이었다. 

18:4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여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설득하였다. 


1. 아덴 전도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않음

본문 27-28절에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전도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않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살고,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주시기 때문에 산다는 말입니다. 육신의 생명도 하나님이 살려주시기 때문에 삽니다. 하나님이 걷어 가시면 즉시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또 일어나고 움직이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살며, 기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란 시인들도 사람이 하나님의 소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우리는 그의 소생이라”고 말하는 시인들이 있는데 그러나 예수님을 안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우주 만물을 가르쳐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합니다. 살아계신 인격적인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 전체가 다 하나님이다, 우주 전체가 아버지다, 우리는 그 아들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 29절에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금이나 은이나 돌이 신이라고 하면 우리가 그 소생이 될 수 없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본문 30절에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란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란 사람을 명해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다 명령을 했다는 말입니다. 알지 못하는 시대는 내버려 두었지만 이제는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해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전파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므로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

본문 31절에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에서 정하신 사람은 예수님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셨다는 것은 이제 심판이 온다는 것입니다.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므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32절에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저희가 처음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은 기롱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죽은 자가 어떻게 살아나겠느냐? “이 일에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고 합니다. 즉 죽은 자가 부활했다는 것을 처음 들으므로 다시 한번 들어야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기롱합니다.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본문 33-34절에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란 헬라에서 떠났다는 것입니다. 헬라 전도를 마치고 떠날 때에 믿는 사람이 몇 사람 생겼습니까? 몇 사람 밖에는 믿는 사람이 안 생겼습니다. 즉 헬라 전도는 실패했습니다. 철학으로 전도를 했습니다. 또 전도하는 방식도 다른곳에서 하는 것보다 논리적으로 “내가 너희 가운데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을 보았는데 알지 못하는 신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해줄 것이다, 너희가 알지 못하는 신은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을 친히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그 하나님이 인류에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시고 또 년대와 거주의 한계를 정해주신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을 힘입어서 우리가 기동하고 산다, 너희 시인 중에도 신의 소생이라 하는 말을 한 사람이 있는데 사람이 신의 소생이라 하면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로 만들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소생이 될 수 없지 않느냐”하며 논리적으로 전도를 잘 했습니다.

“알지 못하는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않았지만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보내서 회개하라고 명했고, 또 정하신 사람으로 장차 공의로 심판하실 것을 작정 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믿을 만한 증거를 주었는데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이만하면 전도를 잘 하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잘했습니까? 그런데 믿는 사람은 얼마나 생겼습니까? 몇 사람만 생겼습니다. 즉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하고 또 다마리라는 여자와 또 다른 몇 사람만 믿었습니다. 헬라 전도는 실패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복음이 헬라에서 고린도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2. 고린도 전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만 증거

18:1-2절에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고린도에 갔습니다. 고린도에 갈 때에는 무슨 결심을 하고 갔습니까? 고린도전서 2:1-2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하였는데 이런 결심을 하고 갔습니다.

헬라에서 실패하고 고린도에 넘어갈 때에는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덴에서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다가 실패를 하고, 고린도로 넘어갈 때에 이제는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않기로 작정을 하고 고린도로 넘어갔습니다. 고린도 전도는 큰 성공입니다. 그러므로 전도할 때에 말과 지혜를 가지고 하면 그것은 아덴의 전도와 같이 실패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만 전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되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만 가지고 가야됩니다. 즉 예수만 전하고, 십자가의 도리만 전하면 성령께서 능력으로 역사해서 많은 택한 백성을 건져 내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말과 지혜를 가지고 하면 열매가 많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도리에 구속이 있고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말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말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고 하였습니다(고전 4:20). 
우리가 이 능력을 힘입어서 나가야 됩니다. 말을 잘해서 다른 사람 예수 믿게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만 전해서, 즉 성경만 가르쳐서 하나님의 역사로 택한 백성을 구원하는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말 잘해서 교회가 잘 된다고 하면 신학교에서 말 잘하는 웅변을 교육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신학교에서 웅변을 교육 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구속의 도리가 그 심령 속에 굳건히 서 있어서 십자가의 구속의 도를 전해 주는 것입니다. 말로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도를 전해 주어서 믿으면 구원을 받고, 안 믿으면 구원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에 넘어갈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전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요새로 말하면 성경말씀만 전하기로 작정을 한 것입니다. 성경 이외의 철학 강도, 과학 설교, 또 정치 이야기 등은 다 쓸데 없습니다. 어떤 목사는 강단에서 정치 이야기 잘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정치 이야기 들어서 교인들의 영이 삽니까?

요새 정상회담, 이북 핵문제, 쌀 수출 등 정치 이야기 할 것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영생입니까? 거기에 아무 생명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말씀만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구원의 도리 등 성경말씀만 전해야 되겠습니다. 고린도에서는 성경말씀만 가르치므로 많은 성공이 되었습니다. 얼마동안 성경을 가르쳤습니까?

본문 11절에 “일 년 육 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고 하였습니다. 일 년 육 개월 동안을 고린도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가 설립이 되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거기서부터 설립이 되어서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덴 교회는 없습니다. 아덴에 믿는 사람 몇 사람이 있었지만 아덴 교회가 있다는 말은 없습니다. 고린도교회에는 많은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 고린도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를 보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그리스도와 그 십자가, 즉 예수 천당만 전하면 됩니다. 그러면 반드시 택한 백성은 믿습니다.

띠 두르고 모자 이상한 것 쓰고, 길가에서나 차안에서 전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이따금 우리 사무실에 옵니다. 그러면 나는 다른 소리는 하지 말고 “예수 천당만 전하라”고 말합니다. “예수, 천당”만 전하면 택한 백성이 예수 믿을 것이다, 또 도깨비같은 이상한 모자 쓰고 다니지 말라고 합니다. 하여간 예수, 천당만 전하는 것이 제일이고, 강단에서 성경말씀만 가르치는 것이 제일입니다. 인간의 다른 것은 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강단에서 철학강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철학은 보통 인간의 추측으로 한 말들로 진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와 성경말씀만 전하는 교회가 되고 그런 전도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어떤 분이 여러 교회에 다녀보았는데 성경은 안하고 딴 소리만 한다고 합니다. 교회 목사들이 성경을 읽어놓고 성경 이야기는 안하고 딴 이야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가르치라고 강단을 맡겨 놓았는데 왜 성경은 읽어 놓고 딴 소리만 하느냐? 말입니다. 성경 해석을 해서 성경 말씀이 생명이 되어야 그것이 참된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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