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6일 월요일

사도행전 19:1-23 에베소 전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에베소 전도
사도행전 19:1-23

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는 동안 바울이 윗 지역을 두루 거쳐서 에베소에 내려와 그곳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19:2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하니, 그들이 그에게 "아니다. 우리는 성령이 계시다는 것도 듣지 못하였다." 하고 대답하였다. 

19:3 그가 말하기를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라고 하니, 그들이 "요한의 세례이다." 라고 말하였다. 

19:4 바울이 말하기를 "요한이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주며 말하기를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을 믿으라고 하였으니, 그분이 곧 예수님이시다." 하였다. 

19:5 그들이 듣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니, 성령께서 그들 위에 임하시어 그들이 방언으로 말하고 예언도 하였다. 

19:7 그 사람들은 모두 열두 명쯤 되었다. 

19: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서 석 달 동안 담대히 말하며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들을 강론하며 설득하였다. 

19:9 그러나 어떤 이들은 마음이 굳어져서 순종하지 않고 군중 앞에서 그 도를 비방하므로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였다. 

19:10 그가 이년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들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 

19:11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을 통해 희한한 기적들을 행하시니, 

19:12 심지어 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들 위에 놓으면, 그들에게서 병이 떠나가고 악한 영들도 나갔다. 

19:13 그런데 떠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악한 영에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말하기를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님을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령한다." 라고 하였다. 

19:14 스게와라는 유대인 제사장의 일곱 아들들도 이런 일을하고있었다. 

19:15 악한 영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너희들은 도대체 누구냐?" 하고, 

19:16 악한 영에 들린 그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 올라 그들을 제압하여 이기므로, 그들이 상처를 입고 벗은 몸으로 그집에서 도망하였다. 

19:17 이 일이 에베소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알려지니, 그들 모두에게 두려움이 임하였으며, 주 예수님의 이름이 찬양을 받았다. 

19:18 이미 믿는 자들 중 많은 이들이 와서 자신들이 행한 일들을 자백하고 공개하였다. 

19:19 마술을 행하던 많은 이들이 책들을 모아서 모든 이 앞에서 불태웠는데, 그것들의 값을 계산하니, 은전으로 오만개나 되었다. 

19:20 이처럼 주님의 말씀이 힘이 있어 퍼져 나가고 세력을 얻었다. 

19:21 이 일이 다 이루어진 후에 바울이 성령 안에서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를 두루다녀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작정하고 말하기를 "내가 거기에 간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겠다." 하고 

19:22 바울이 자신을 돕는 자들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케도니아로 보내고 그 자신은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머물렀다. 

19:23 그 무렵에 이 도 때문에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다. 


1. 아볼로가 세례요한까지만 가르쳐서 전도함

본문 1-2절에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녔다고 하였는데 윗지방은 마게도냐를 말합니다. 거기에는 빌립보가 있고, 아랫지방엔 아가야와 고린도가 있고, 아가야에는 아덴(헬라)이 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나 마게도냐로 다녀갔다가 에베소에 왔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어 볼 때에 에베소 교인이 우리는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이 사람들이 믿기는 믿습니다.

본문 3절에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으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그러면 무슨 세례를받았느냐?고 물어보니 이 사람들이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즉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아볼로가 전도한 교회입니다. 18:24-25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라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볼로가 전도를 해서 에베소 교회 교인들이 많이 생겼는데 아볼로는 자기 아는대로 가서 한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세례까지만 알므로 에베소에 가서 세례요한까지 전도를 했고, 또 예수를 믿으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아볼로도 예수를 믿은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었는데 오순절 성령에 대해서는 아직도 배우지 않았습니다. 아볼로가 세례요한의 세례까지 알고, 또 세례요한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한 것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것도 압니다.
그러므로 아볼로가 전도한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성령 받는 것은 아직도 배우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의 세례까지만 가서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아볼로가 예수를 믿었는데 성령으로 믿었는가? 성령으로 믿지 않은 것인가? 또 에베소에 아볼로의 전도를 받아서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성령으로 예수를 믿었겠는가? 성령으로 믿지 않았겠는가? 그 사람들도 성령으로 믿은 것 같습니다.
아볼로가 오순절 성령이 임한 것은 배우지 않았지만 그래도 세례요한의 세례로부터 오실 그리스도를 증거했으므로 그리스도를 믿었단 말입니다. 성령으로 믿었습니다.

또 아볼로가 전도해서 예수 믿은 사람도 오순절 성령에 대해선 배우지 못했지만 그래도 예수를 믿을 때에는 성령으로 믿은 것입니다. 성령이 아니면 믿지 못합니다. 다만 오순절 성령에 대해서 배우지 못한 것 뿐입니다. 아볼로가 세례요한의 세례까지만 배웠으나 성령으로 예수를 믿었습니다. 또 아볼로의 전도를 받은 사람도 성령으로 예수를 믿었는데 오순절 성령에 대해서 배우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예수를 믿긴 믿었단 말입니다.

2. 바울이 세례 요한의 말을 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

본문 4-5절에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요한의 말을 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 즉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하며 요한이 내 뒤에 오신다고 증거한 분이 예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때에 그들이 듣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본문 6-7절에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심으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가서 그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안수를 했습니다. 안수를 할 때에 그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이 임하므로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는데 모두 12사람쯤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특수역사를 말합니다. 예수를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는데, 여기에서 안수함으로 성령이 임하는 것을 그들이 보았고,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였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성령의 특수역사입니다. 일반적으로 다 이렇게 된 것이 아니고 열두 사람만 된 것입니다. 에베소에서 상당히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는데 바울이 안수 할 때에 열두 사람쯤만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다고 하였습니다. 다 한 것이 아닙니다.

또 바울이 가는 곳마다 안수해서 이런 역사가 내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가는 곳마다 전도해서 예수를 믿게 한 것이지, 이렇게 가는 곳마다 안수해서 성령 받게 한 것이 아닙니다. 요새 신비주의자들이 안수하고 방언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예수를 믿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 원리 원칙입니다. 그런데 특별한 경우에 이런 일이 몇 사람에게 나타났습니다.

3.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성경을 가르침

본문 8-9절에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고 하였습니다.바울이 회당에 들어가서 몇 달을 가르쳤습니까?
석달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강론했습니다. 그 때에 어떤 사람들은 그 말을 믿은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두 가지 종류가 생겼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면 그 말을 좋게 여겨 온유한 마음으로 믿는 사람도 생기고, 또 마음이 강퍅해서 반대하는 사람도 생깁니다. 그러므로 반대파가 생겨서 하나님의 말씀을 비방하므로 전할 수가 없어 바울이 그들을 떠났습니다.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에베소에 두란노 서원이라 하는 서원이 있었는데 거기서 하나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두란노 서원은 요새로 말하면 도서관 비슷하게 지은 것 같습니다. 그 강당을 세를 주고 빌렸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두란노서원을 빌려서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처음에 교회 세울 때에는 이렇게 강당 같은 장소를 빌려서 하는 수가 많습니다. 학교 강당을 빌리는 수도 있습니다.
우리 창광교회도 처음에 시작 할 때에는 한서초등학교 강당을 빌려서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두란노 서원이라는 좋은 강당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것을 빌려서 했습니다. 요새 러시아 선교, 알마타 선교도 예배당을 짓지 못해서 강당을 빌려서 합니다. 예배당을 지으려고 했는데 물가가 계속 올라가기 때문에 지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 돈으로 80만 불이면 예배당을 짓는다고 하는데, 80만불이면 얼마입니까? 6억4천입니다. 얼마나 돈이 많이 듭니까? 처음에는 3만불에 지을려고 했습니다. 약 3천만원이면 지을 뻔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물가가 뛰어서 10배, 100배가 뜁니다. 그래서 아주 힘듭니다. 빌려서 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또 선교사가 사는 집도 처음에는 아주 싸게 빌려서 살았었습니다. 처음에는 100불도 안주었습니다. 한 50불이나, 좋은 것은 100불을 주었는데 이제는 한달에 250불을 주어야 합니다. 5배가 올랐습니다. 통역도 처음에는 50불 주었는데 요즘에는 150불을 주어야 합니다. 그곳 사람들의 생활비가 처음에는 40불이면 했습니다. 우리가 선교 처음에 시작할 때에는 한국 돈으로 삼만이천원이면 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600불이 있어야 합니다. 집세 200불 주고, 생활비는 300~400불 있어야 합니다. 모스크바는 천불도 모자랍니다. 그래도 중국은 아직 물가가 오르지 않았습니다. 거기는 한달에 생활비 3만원이면 됩니다. 우리 한국 돈으로 3만원만 주면 생활비가 됩니다. 5만원이면 굉장히 많이 주는 것입니다. 중국 선교는 물가가 안올라서 좀 쉬운데, 구 소련 선교는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서 아주 힘듭니다. 힘들어도 계속 해야 합니다. 한 교회가 하나씩 맡아서 하려고 합니다. 한 교회에서 하나씩 맡으면 7교회가 하나씩 맡으면 됩니다.

4. 아시아에 사는 유대인, 헬라인이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음

본문 10절에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고 하였습니다.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을 가르치므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은 거기에 와서 다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시아는 소아시아를 가리킵니다. 에베소를 중심해서 소아시아 7교회가 있는데, 그 여러 교회가 다 와서 듣고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본문 11-12절에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셨다고 하였는데 희한한 능은 보통 있는 것이 아니고 아주 드물게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능력이 바울의 손으로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가 나갔습니다.

5. 마술사의 시험과 회개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악귀를 쫓아 내려고 하다가 낭패를 당함

본문 13-14절에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나갈 때에 하나님의 큰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마술사들도 예수의 이름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놀랐습니다. 그래서 마술사들도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에게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마술사들이 시험적으로 예수의 이름을 불러서 말했는데, 그럴 때에도 악귀 들린 사람들이 두려워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악귀를 쫒아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본문 15-16절에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악귀를 쫒아내려고 할 때에 악귀 들린 사람이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고 하며 달려들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서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마귀를 쫒아내려고 했으므로 악귀 들린 사람이 달려 들어서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의 아들들이 그만 마귀에게 손해만 보았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두려운 이름이지만 제사장의 아들이 예수를 안 믿으므로 마귀가 달려들어서 억제하여서 이기고, 그 몸을 상하게 하고 옷을 잡아 찢고 하여 벌거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해 나갔습니다.

마귀가 예수의 이름을 무서워합니다. 이만큼 예수의 이름이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만 가지고 나가도 마귀가 벌벌 떨고 무서워합니다. 그런데 본인이 믿지 않으므로 마귀가 우습게 본 것입니다. 마귀 들린 사람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그 사람을 다 압니다. 마귀 들린 사람의 집에 예배 드리러 가곤 하였는데, 믿음이 없는 사람이 가면 마귀가 우습게 봅니다. 마귀 놀음을 여전히 하고, 말해도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 있는 사람이 가면 마귀가 벌벌 떱니다. 마귀 들린 사람이 머리를 푹 숙이고 꼼짝 못합니다. 그 사람이 명하는 대로만 순종을 합니다. “앉아라”고 하면 앉고 “일어서라”고 하면 일어섭니다.
그러므로 이 제사장의 아들들이 예수를 안 믿으므로 마귀가 우습게 보고 달려 들어서 상하게 한 것입니다. 본인이 믿는 것이 중요하고, 본인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속에서 살아 역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이름 자체가 크지만 예수님이 속에 있어야 합니다. 속에 운동력이 있고, 역사가 일어나야 됩니다. 그래야 마귀를 이길 수가 있습니다.

본문 17-18절에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예수 이름이 어떤 이름이기에 이렇게 세력이 있느냐, 예수의 이름을 잘못 부르다가는 큰 손해를 본다”하며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와서 자복했습니다. 즉 자기가 행한 일을 고했습니다.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이 마술책을 모아 불사름

본문 19절에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마술쟁이들이 예수를 믿고 그 책들을 모아 불살랐는데 그 책 값이 은 오만이나 되었습니다. 얼마나 마술 행하는 책이 많았습니까? 마술 행하는 기술을 기록한 책이 상당히 많았던 모양인데 그것을 다 불살랐습니다. 다 쓸데 없는 책들로 사람의 시간만 많이 빼앗는 것입니다. 그 책을 불살랐는데, 그 책 값을 계산하니 은 오만이나 되었습니다. 은 오만은 미화로 1만 불에 해당합니다. 1만 불이면 요새 돈으로 한 800만원의 값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기록한 책은 귀하지만, 마술 행하는 책은 아무리 많아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요새 800만원의 책을 사면 몇 권이나 되겠습니까? 한 권에 만 원씩만 해도 800권이겠는데 그 많은 책을 보느라고 시간을 얼마나 많이 빼앗기겠습니까?
요새 팔만대장경이라는 것이 해인사에 있다고 떠들썩하는데, 그것은 쓸 데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무슨 영생의 도리가 있습니까? 그것은 지옥 밖에 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 나무에 글을 새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또 오래 새겼겠습니까? 그 때 사람들 불쌍합니다.

본문 20절에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주의 이름에 마귀가 정복되고 마술사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책들을 불사르게 되는 큰 역사로 주의 말씀이 힘이 있고 세력을 얻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쓸데 없는 책은 불살라야만 합당합니다. 쓸데 없는 책들은 사람의 시간만 많이 빼앗고, 다른 할 일을 못하게 만듭니다. 잘못된 책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을 당하며 손해를 봅니까?

6. 바울이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로 작정함

본문 21-22절에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간 더 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로마에까지 가려고 작정했습니다. 로마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되겠다는 것이 바울의 목표입니다. 목표를 바로 정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어디에 가서 고난을 받으셔야 된다고 하였습니까? 십자가를 지실때에 어디에 가서 지셔야 된다고 하였습니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고난을 받아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서 십자가를 지셔야 하나님의 복음이 모든 곳으로 퍼져나간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가 있고, 고난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 바람이 들어올 때에 평양에 가서 순교를 당해야 한다는 것을 아신 모양입니다. 서울보다 평양이 종교 중심지입니다. 그래서 평양의 산정현 교회에서 초청을 했을 때에 그곳으로 가기로 작정을 했답니다. 그 때 마산 문산교회에 주기철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 마산 문산교회에서는 주기철 목사님을 가지 못하게 온 교인이 다 울면서 붙들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주기철 목사님은 “내가 평양에 가서 고난을 받아야 된다”는 결심으로 온 교회가 울면서 부르짖었어도 그것을 다 사양을 하고 평양 산정현 교회로 가서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잡히워 감옥에 갇혔다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장소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선교하는 것도 어디에 선교사를 보내야 되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목사는 인도네시아에 선교해야 된다고 하며 인도네시아 선교를 하자는 것입니다. 그곳에 원주민도 많고, 의복을 입지 않고 다 벗고 사는 동네도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복음을 전하면 좋겠다고 그 분들은 작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거기도 복음을 전하면 좋지만 지금은 공산권에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첫째 구소련에 복음을 전해야 된다, 왜냐하면 소련이 근거지이므로 거기에 복음을 전하고, 그 다음에 중국에 전해야 되며, 또 앞으로 이북에 전해야 된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명령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도 그 분은 소련은 돈이 많이 들고 정세도 불안하니 인도네시아가 좋다는 것입니다. 인도네시아는 한 달에 한 삼만 원씩만 월급을 주면 통역도 시키고 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구소련에 복음을 전하고, 그 다음에는 중국, 그 다음에는 이북에 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도네시아에 벗고 사는 미개한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깊은 곳에 던지라”하는 주의 명령대로 던질 곳에 그물을 갖다 던져야 됩니다. 구소련이 물가가 많이 올라갔어도 복음 전하는 일은 계속 해야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 다음에 중국 인구가 지금 십억이 넘는다고 하는데, 중국에 우리가 선교를 많이 해야 됩
니다. 그래서 금년에 중국 선교에 치중하려고 합니다.

하여간 로마에까지 가겠다는 계획을 바울이 세운 것처럼, 우리도 구소련에, 그 다음에 중국에 전파해야 되고, 그 마지막에는 땅 끝까지 해야 합니다. 땅 끝이 어디입니까? 이북입니다. 이북까지 전해야 됩니다. 금년 말 쯤 되면 아마 이북에 어떤 구역을 정해서 한국 공장들을 유치할 것 같습니다. 즉 한국 공장들이 많이 이북으로 갈 것 같습니다. 정한 구역만 가는 것입니다. 가서 공장을 세우면 이북 사람들이 많이 와서 일 할 것입니다. 그 때 그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전도하면 그 사람들이 또 자기 고향에 갔다 오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복음이 자꾸 전파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느 시점에 중국과 같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에까지 가서 전해야 되겠다고 바울이 희망을 가진 것처럼, 우리도 어디에 가서 전해야 가장 효과적인가를 찾아서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될 마땅한 곳을 찾아 가야 됩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아프리카 등 거기에도 전도해야 되겠지만 거기는 지금까지 선교가 이루어진 곳입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선교를 해야 될 곳에 우리가 선교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즉 바울과 같이 마땅히 전해야 될 곳, 예수님께서 그물을 어디에 던지라고 하셨습니까? 깊은 곳에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반드시 예수님께서 그물을 던지라고 한 곳이 있습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야 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물을 던지라고 한 곳에 그물을 던지는 사명을 잘 감당하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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