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7일 화요일

사도행전 21:1-16 사도바울이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함.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사도바울이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함
사도행전 21:1-16

21:1 우리는 그들과 헤어진 후에 배를 타고 직행하여 고스에 이르렀고, 이튿날 로도에 들렀다가 거기서 바다라로 갔다. 

21:2 우리가 페니키아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 그것을 타고 떠나, 

21:3 키프로스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왼쪽에 두고 시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 상륙하였는데, 이는 배가 거기에서 짐을 부리기 위해서였다. 

21:4 우리가 제자들을 찾아내어 거기에서 칠 일을 머물렀는데, 그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말하기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마라고 하였다. 

21:5 이 여러 날이 차자 우리가 떠나 여행 길에 올랐는데, 그들 모두가 아내들과 자녀들을 동행하여 성읍 밖에까지 나와 우리를 전송하였으며,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후에, 

21:6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고 배에 오르니, 그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21:7 우리가 두로에서 출발하여 항해를 마치며 프톨레마이에 이르러 거기에서 형제들에게 문안하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머물렀다. 

21:8 이튿날 우리가 거기에서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머물렀다. 

21:9 그에게는 예언을 하는 처녀 딸이 넷 있었다. 

21:10 우리가 여러 날 머물고 있는 동안에 아가보라고 하는 어떤 선지자가 유대에서 내려와, 

21:11 우리에게 오더니, 바울의 허리띠를 취하여 자신의 발과 손을 묶으며 말하기를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 허리띠의 주인을 이처럼 결박하여,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줄 것이다.' 라고 하신다." 하였다. 

21:12 이 말을 듣고 우리와 그곳 사람들이 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마라고 권하였다. 

21:13 그때에 바울이 대답하기를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는 것도 각오하였다." 라고 하였다. 

21:14 그가 설득에 응하지 않으므로 우리가 말하기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설득하기를 그쳤다. 

21:15 며칠 후에 우리가 여장을 준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21:16 가이사랴에서 온 제자들 중 몇몇이 우리와 함께 가서, 오래 전부터 제자였던 키프로스 사람 나손의 집으로 인도하므로 우리가 거기에서 머물렀다. 

1. 바울을 눈물과 기도로 배웅한 사람들

본문 1-3절에, “우리가 저희를 작별하고 행선하여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행선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가 짐을 풀려함이러”고 했는데, 지금 어디서 배를 탔습니까? 밀레도입니다. 저희를 작별한 곳은 밀레도에서 했습니다.

밀레도라는 곳에서 배를 타고 고스로 가서, 로도에 이르러 바다라로 가서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구브로를 바라보고서 구브로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행선하여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가 짐을 풀려 함이러라’, 배를 타고 위쪽 지중해 안으로 쭉 올라가서 두로라는 곳에 상륙을 했습니다.

본문 4절에,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고 했는데, 제자들을 찾아서 거기서 만났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권면을 했습니다.

본문 5절에, “이 여러 날을 지난 후 우리가 떠나갈새 저희가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라고 했습니다. 두로에서 제자들과 여러 성도들이 바다까지 그 처자와 함께 온 식구를 데리고 다 나와서 전송을 했습니다.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작별하고, 본문 6절에는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저희는 집으로 돌아가니라”고 했는데, ‘우리는 배에 오르고 저희는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을 사모하므로 바다까지 전송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2. 사도바울이 가이사랴에서 빌립집사 집에 유함

본문 7-9절에, “두로로부터 수로를 다 행하여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두로에서 부터 수로를 다 행하여 배를 타고 돌레마이라는 곳에 가서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했습니다.

그렇게 가이사랴로 갔다고 했습니다. 두로에서 가이사랴에 가서 거기 누구 집에 들어갔습니까? 전도자 빌립집사입니다. 빌립은 집사인데 일곱 집사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빌립이 집사 가운데 하나인데 전도자가 됐다고 했습니다. 그가 가이사랴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빌립집사의 집에 들어가서 바울이 유했습니다. 빌립이 딸이 몇이라고 했습니까? 딸이 넷인데, 처녀로 예언을 하는 딸들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신앙을 본받아서 딸들도 믿음이 참 좋은 딸들이었고, 처녀로서 예언을 하며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그런 딸들이었습니다.

3. 바울의 죽음을 예언함

본문 10-11절에,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여러 날 바울이 빌립의 집에 있었는데 예루살렘으로부터 누가 내려왔습니까? 아가보라 하는 선지자가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도 선지자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가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그 띠로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였다”고 했습니다.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알게 해준 모양입니다. 그 당시에 특별계시가 있었던 때이었습니다. 사도시대까지는 특별계시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로 알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바울이 결박당할 것을 미리 알고 말했습니다.

4. 심령이 매인바 되어 생명을 내놓는 바울

본문 12절에,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이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왜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했습니까? 결박당하겠으니까,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수족을 결박하고 이같이 이 띠 임자를 예루살렘에서 결박해서 이방인에게 넘긴다고 그러니까, 결박을 당해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겠으니까 바울을 아끼는 마음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결박당해서 이방인들에게 넘어가면 안 되니까, 그래서 올라가지 말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바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면을 했는데, 바울이 그 권면을 들었습니까? 본문 13절에,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라고 했습닌다.

바울이 대답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울며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 우니까 바울이 마음이 좀 상한 모양입니다. 그 상황에서 사람들의 말을 들어줄 바가 못 되고, 하나님의 뜻이어서 올라가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심령에 매인바 돼서 올라간다고 했는데, 사도행전 20장 22절에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고 했었습니다. “심령에 매인바 되어서 생명을 내놓고 올라가는데, 왜 울면서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하고 올라갔습니다.

5.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나손의 집에 거하려 함

본문 14절에,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권함을 받지 않으니까 그 성도들이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권함을 그쳤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5-16절에, “이 여러 날 후에 행장을 준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유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행장을 준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되었는데, 가이사랴에 몇 제자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이 나손을 데려간 것은 ‘우리가 그의 집에 유하게함’을 위해서였습니다.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은 가까워서 걸어가는 거리인데, 서울로 말하면 인천 정도의 거리입니다. 인천 바닷가에서 내려가지고 좀 들어가면 서울이 있는 것처럼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에 가는 것은 가깝습니다.
예루살렘 올라갈 때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갔다고 했는데 가이사랴에서 왜 데리고 갔을까요?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에 아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예루살렘에는 사도들도 있고 여러 성도가 많았지만 가서 유할 집으로는 시원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나손이라는 사람이 예루살렘에 손님들을 모실만한 집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래서 그 나손을 데리고 그 집에 유할 목적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아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도 실제로 가서 유할 집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주인 많은 나그네가 밥 굶는다는 말이 있는데, 예루살렘에 얼마나 주인이 많습니까? 열두 사도가 있고, 집사들도 있을 것이고 여러 성도들이 많이 있었겠는데, 그래도 가서 유할 만한 집이 시원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구브로 사람 나손의 예루살렘 집이 손님 모실만한 여러 방이 있고 괜찮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나손을 데리고 갔습니다. 사도바울이 가이사랴에 가서 누구 집에 있었습니까? 집사 빌립의 집에서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쭉 올라갑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제 결박을 당해서 끌려 다니기 시작할 것을 알면서 올라갔습니다. 자기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결박당함을 알면서도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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