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물을 달게 하심
출애굽기 15:22-27
22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 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여호와임이니라 27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 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출애굽기 15:22-27
22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 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여호와임이니라 27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 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1. 하나님께서 쓴 물을 달게 하심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어 원망함
본문 22-23절에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홍해를 건넌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서 스루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광야 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광야로 들어가서 사흘 길쯤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물이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물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마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물이 있었는데, 그곳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목이 마르고 사흘길이나 광야를 통과해 왔는데 물이 없어서 찾다가 마라에 와서는 물이 있었는데,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곳을 ‘마라’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마라는 쓰다는 뜻입니다. 물이 써서 먹을 수가 없고, 또 먹어도 사람에게 유익이 없고 손해만 나는 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써서 먹지 못할 물이라는 뜻의 ‘마라’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어 원망함
본문 22-23절에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홍해를 건넌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서 스루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광야 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광야로 들어가서 사흘 길쯤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물이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물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마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물이 있었는데, 그곳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목이 마르고 사흘길이나 광야를 통과해 왔는데 물이 없어서 찾다가 마라에 와서는 물이 있었는데,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곳을 ‘마라’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마라는 쓰다는 뜻입니다. 물이 써서 먹을 수가 없고, 또 먹어도 사람에게 유익이 없고 손해만 나는 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써서 먹지 못할 물이라는 뜻의 ‘마라’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본문 24절에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마실 물이 없어서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그들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하나님께 인도를 받으면서도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도 원망하였습니다. 그들이 모세를 원망한 것은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쓴 물을 달게 해주심
본문 25절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무슨 일이 생길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 생활로 해결해야 합니다. 기도로 해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물이 쓰다고 원망하였는데, 원망으로 해결하려다가는 다 망합니다. 믿음을 팔아먹고 망합니다. 또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지고 마지막에는 실패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부르짖고, 기
도함으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서 해결 해야만, 하나님께서 제일 좋은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됩니다. 오랫동안 부르짖는 생활해야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원망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모세는 기도함으로 해결했습니다. 원망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은 실패하고, 기도로 해결하려는 사람은 성공합니다. 언제나 인간의 생각과 인간의 수단과 인간의 방법과 인간의 지식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기도로 해결하려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로써 해결하려는 모세처럼 우리도 무슨 어려운 일이 생길 때, 기도로써 해결 하는 것을 배워야겠습니다.
본문 25절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무슨 일이 생길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 생활로 해결해야 합니다. 기도로 해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물이 쓰다고 원망하였는데, 원망으로 해결하려다가는 다 망합니다. 믿음을 팔아먹고 망합니다. 또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지고 마지막에는 실패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부르짖고, 기
도함으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서 해결 해야만, 하나님께서 제일 좋은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됩니다. 오랫동안 부르짖는 생활해야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원망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모세는 기도함으로 해결했습니다. 원망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은 실패하고, 기도로 해결하려는 사람은 성공합니다. 언제나 인간의 생각과 인간의 수단과 인간의 방법과 인간의 지식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기도로 해결하려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로써 해결하려는 모세처럼 우리도 무슨 어려운 일이 생길 때, 기도로써 해결 하는 것을 배워야겠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한 나무를 지시 하셨습니다. 그가 그 나무를 물에 던졌더니 물이 달아 졌다고 하였습니다. 거기서 모든 사람들이 물이 써서 먹지 못하여 목말라 죽게 됐는데, 이제 해갈함을 받았습니다. 사망의 골짜기에서 소생해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무를 지시하시니 모세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나무를 물에 던졌고, 그래서 물이 달아 졌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 약 입니까? 나무가 물을 달게 하는 약이겠습니까? 나무가 약이 아닙니다.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그 나무를 물에 던지라고 말씀 하셨기 때문에 그저 던지면 됩니다. 던지면 하나님께서 쓴 물을 쓰지 않게 해주실 것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 나무를 던지면 쓴 물이 쓰지 않게 해주시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무슨 뜻이 있어서 나무를던지라 했을 것이다’라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나무를 가져다 던지니까, 그 물이 달아졌습니다. 던지고 나서 물을 먹어보니 달아졌습니다. 나무를 던져서는 물이 달아 질 리가 없지만,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시려고 나무를 던지게 하신 줄 알고 순종하면 됩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고, 인간의 생각으로 안 될 것 같은 것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람으로 하여금 믿을 수 없는 것을 믿게 하시고, 순종할 수 없는 것을 순종하게 하시고, 아무 유익이 없는 것 같은데 그것을 시키시고, 안 될 것 같은데 그것을 시키십니다. 순종을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순종했더니 쓴 물이 달아지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2. 순종하면 쓴 물이 달게 됨
순종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남
어느 시대, 어느 때의 성도에게나 하나님께서 믿을 수 없는 것을 믿게 만드시고,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만드십니다. 또 아무 소용없는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시키십니다. 나무를 가져다 던진다고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 시키신 것이니 하나님의 좋은 섭리가 이루어 질 것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면 물이 달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시키실 때가 많습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게 만드시고, 아무 유익이 없는 것 같은 것을 하게 하시고, 아무 필요 없는 것을 하게 만드시고,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만드시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것이니까 무조건 순종하면 물이 달게 됩니다. 무엇이나 시키는 대로만 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헛된 것을 시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시키셔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시키시지, 손해주려고 시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에게 땅에 침을 발라 진흙으로 눈에 발라줘도 좋은 것을 주려고 눈에 발라 주는 것입니다. 또 실로암 물에 씻으라고 하시는 것도 좋은 것을 주시려고 씻으라고 하신 것입니다(요 9장).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을 때 ‘씻으면 뭘 하나? 여기서 씻지 무엇 때문에 멀리 가서 씻나?’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좋은 것을 주시려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 씻어야 합니다. 씻으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소경의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엘리사가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하라고 한 것도 좋은 것을 주려는 것입니다(왕하 5:10). 그때 나아만이 “다메섹 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했던 것은 틀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자기 나라 강만 못한 요단강에 가라고 하시고, 또 한 번도 아닌 일곱 번이나 씻으라 하신 것도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시려고 일곱 번 씻으라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할 때 처음에는 화가 났습니다. 아람나라는 그 당시 세계 강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조그마한 유대 나라로 선지자를 찾아갔으므로 선지자가 반갑게 영접하여 손을 자기 몸에 얹고 하나님께 기도해줄 줄 알고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와 보지도 않고 대문간에 이르니 사람 시켜서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목욕하라고 하
는 것입니다. 나아만이 “사람을 멸시해도 한정이 없구나.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조그만 나라 선지자란 사람이 이런 짓을 하느냐?”라고 했을텐데, 신하들이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나아만이 아랫사람 말하는 것을 듣고 마음을 바꾸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해서 낫게 되었습니다. 문둥병이 깨끗하게 다 나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순종하면 깨끗하게 다 낫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을 배워나가야 됩니다. 순종을 배워나가는 정신이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2장 5절에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예수님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무슨 말을 시키든지 다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고, 그들이 물을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처음에 물을 항아리에 부으라고 하셨고, 그 다음에 떠다가 연회장에 갖다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순종하니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순종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의 절반이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장 21절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서 2장 22절에도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몸으로 순종할 때 온전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순종입니다. 순종하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 순종 하는 것이 첫째이고, 그다음에는 윗사람에게 순종해야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웬만한 것은 다 순종해야 합니다.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은 다 순종하는 것이 좋습니다.
김현봉 목사님이 전차를 타려고 파고다 공원 앞에 섰는데 전차가 오지 않더랍니다. 한참 서 있었기 때문에 다리가 아팠는데, 그때가 금식하고 오던 때였나 봅니다. 상당히 피곤했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어디를 가시냐고 물어 보더랍니다. 그래서 남대문 쪽 어디를 간다고 하니까 걸어가라고 하더랍니다. 걸어가지 왜 서 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리가 아파도 순종하느라 걸어갔답니다. 그런데 다 걸어가도록 전차가 안 오더랍니다. 순종하니까 복 받지 않았습니까? 순종 안하고 기다렸다면 어떻게 할 뻔 했겠습니까? 김 목사님이 순종을 배우느라고 그렇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웬만한 것은 다 순종하는 것이 좋습니다. 진리 문제가 아닌 것, 또 큰 손해가 안 날 것에 대해서는 웬만하면 순종하는 것이 좋습니다. 거기서 순종을 배워야 하나님 앞에 서 순종하는 것도 배웁니다.
아무 소용없어 보이는 것에도 순종해야 함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무 쓸모없는 것을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무를 꺾어서 물에 던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무 필요가 없어 보이는 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것을 순종했더니 물이
달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 없는 것은 안 하십니다. 필요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은 다 필요가 있기 때문에 하라고 하십니다. 내 생각에 몰라서 필요 없는 것 같고 안 될 것 같고 쓸데없는 것 같고 무익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다 필요하고 다 좋은 것을 주시려고 시키신다고 믿고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물이 달게 됩니다.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여러가지 시험이 올때도 하나님을 순종만 하면 물이 달게 됩니다. 물이 쓴 것도 일종의 시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먹을 물이 없었습니다. 또 오랜만에 물을 만났는데 물이 씁니다. 고통이 왔습니다. 그래서 원망이 들어왔습니다. 이것이 큰 시험입니다. 그래도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찾아서 명령을 바로 받고, 아무 쓸데없는 일 같아도 순종만 하면 소생합니다. 순종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상 15장 22-23절에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 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이전에 명륜교회에 집사가 한 분 있었는데, 산동네 심방하는 것을 맡았습니다. 명륜교회 근처에는 산동네가 많습니다. 성북동, 명륜동, 돈암동 등 산동네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가 산동네에 안 간다는 것입니다. 평지에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가라고 하였는데, 안 간다고 하면서 심방도 안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안 하고 내내 버티다가 얼마 후 죽었습니다. 하지만 다리가 아파서 산에 못 간다고 하면 그것은 바꾸어 줄 수 있습니다. 산동네에 심방 가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심장병이 다 낫는다고 합니다. 숨 차는 증세가 있는 사람은 산동네로 심방 다니면서 매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 심장이 건강해집니다. 그러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나무 꺾어서 물에 던지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니어도 순종하면 물이 달게 됩니다.
3. 쓴 물을 달게 하는 구원 운동
쓴 물을 달게 하는 구원 운동을 해나가야 함
모세가 순종하여 나무를 물에 던졌더니 단물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모세 자신도 먹을 수 있고, 이스라엘의 장정 60만명과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단물을 먹고 쓰러지지 않고 소생해 올라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쓴물을 달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참된 종이 하는 일입니다. 하
나님의 참 종은 쓴물을 달게 만듭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는 단물을 쓰게 만듭니다. 요한계시록 8장 10절에 “세째 천사가 나팔을 보니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단물을 쓰게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을 죽입니다. 이것이 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참 선지자는 쓴 물을 달게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려 나갑니다. 진리 운동은 단물을 흘려 내보내는 것 입니다.
창세기 2장 10-14절에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렀고 세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고 하였습니다.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네 강이 흘렀다고 했는데,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동산이고 오늘날 신령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강이 흘러 내려가는 것은 생명강이 흘러내려 간다는 것으로 생명강이 하나님의 영적 세계에서부터 흘러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비손은 창일하다는 뜻이고, 기혼은 유출하다, 즉 흘러나간다는 뜻이고, 힛데겔은 급류, 즉 급하게 내려간다는 뜻이며, 유브라데는 단맛이 있다는 뜻입니다. 즉 생명강수가 달고 창일하고 급히 흘러서 계속 흘러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 생활 하는 사람은 언제나 단 맛을 보고 꿀보다 더 달고 꿀송이 보다 단 세계를 맛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달고 생명의 역사도 달고 영의 역사도 달다는 것입니다. 시편19편 10절에는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 보다 더 달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달다는 것 입니다.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달고, 또 생명강수가 흘러나갑니다. 요한복음 4장14절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역사는 믿는 사람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또 요한복음 7장 37-39절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하는 말씀은 성령으로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할 때에 생수가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구원 운동은 쓴물을 달게 만들어 나가는 운동입니다. 이 세상을 쓴 세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찬송가에도 쓴 세상, 즉 ‘슬픔 많은 이 세상이 천국으로 화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슬픔 많은 이 세상이 이제 이 단물의 역사가 나타나면 천국으로 화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고난이 많고 환난 풍파가 많지만, 이제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행하면 그곳에서 단맛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쓴 것이 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쓴 것을 달게 만드는 운동입니다. 어디든지 쓴 곳으로 가십시오. 그곳에 가면 달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단
곳만 찾지 말고, 쓴 곳이라도 아무 곳이라도 가서 달게 만들면 그곳이 달아 지고, 거기에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처녀들에게 아무데로나 시집을 가라고 합니다. 좋은 곳을 찾아가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좋은 곳이 어디 있습니까? 좋은 곳이 있으면 자기 같은 사람을 누가 데려 가겠습니까? 자기 꼴을 알고, 남의 꼴을 알아야합니다. 아무데나 가서 쓴 것을 달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달아 집니다. 거기가 좋은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고난이 많고 환난 풍파가 많지만, 이제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행하면 그곳에서 단맛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쓴 것이 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쓴 것을 달게 만드는 운동입니다. 어디든지 쓴 곳으로 가십시오. 그곳에 가면 달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단
곳만 찾지 말고, 쓴 곳이라도 아무 곳이라도 가서 달게 만들면 그곳이 달아 지고, 거기에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처녀들에게 아무데로나 시집을 가라고 합니다. 좋은 곳을 찾아가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좋은 곳이 어디 있습니까? 좋은 곳이 있으면 자기 같은 사람을 누가 데려 가겠습니까? 자기 꼴을 알고, 남의 꼴을 알아야합니다. 아무데나 가서 쓴 것을 달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달아 집니다. 거기가 좋은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쓰고 말씀 순종하면 쓴 세상이 달아져 천국이 됨
우리가 하는 것은 달게 만드는 운동입니다. 아무리 환난과 풍파가 많고 괴로움이 많은 세상이지만 거기에 가서 달게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많이 오지만 그것을 달게 만들 수 있습니다. 믿음을 써서 믿음으로 순종만 하면 거기가 달아 집니다. 아무리 사자굴이라도 달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자라도 달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자가 잡아먹으려고 하지만, 사자하고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보통은 잔인하고, 각박하고, 사람을 잡아 삼키고, 물고 찢는 사자이지만, 그래도 그것을 달게 만들 수 있습니다. 누가 달게 만들었습니까? 삼손이 달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사자가 물려고 마주 나오니까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의 힘으로 잡아 찢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가보니 거기서 꿀이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먹는 자에게서 먹을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다’는 수수께끼를 내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수수께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쓴 것이었으나 순종하여 그곳이 지금은 단 것이 된 줄을 알아야 합니다.
쓴 것을 단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찮아 보이고, 아무 가치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찮은 것이라도 하나님께서 시키시면 순종하는 것이 방법입니다. 사자굴이라도 하나님께서 시키시면 들어가고, 나무를 꺾어 오라고 하셔도 하나님께서 시키시면 해야 합니다. 처녀들은 하나님께서 시키시면 신랑이 막대기 같아도 결혼하라는 것입니다. 뻣뻣한 막대기와 같은 것은 아무 감각이 없습니다. 할 말, 안 할말 툭툭 하는 막대기 같은 사람은 잘 안 데려 갑니다. 그러나 ‘내가 데려가야지’ 하고 그 막대기 같은 사람하고 결혼하라는 것입니다. 막대기 같은 사람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그 뻣뻣한 것을 달게 만들려고 순종만 하면 달아 집니다. 달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말씀을 순종하고, 또 내게 맡긴 시험을 순종함으로 이기라는 것입니다.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말씀대로 믿음으로 순종해 나가면 쓴 것이 달아 집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믿음으로 순종해 나가야 합니다. 좋은 것만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좋은 것만 하려고 하지 말고, 좋은 것만 달라고 하지 말고, 좋은 것만 취하려고 하지 말고, 소돔과 고모라, 아골 골짜기나 어디든지 가야 합니다. 또 막대기 같은 것이라도 아무거나 취하라고 하시면 취하고, 물에다 넣으라고 하시면 넣고, 사자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그래도 가고, 이렇게 순종만 하면 전부 다 달아 집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단맛을 봤고, 나온 다음에도 계속 단맛을 봤습니다. 거기서 단맛을 얻었으니까 내내 단맛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요새 재미 좋습니까?” 하고 누가 물어보면 “재미 좋습니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단맛을 봤으니까 재미가 좋은 것입니다. 단맛을 보지 못하면 좋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단맛을 보고 꿀보다 단 생활, 꿀송이 보다 더 단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거기가 낙원이 되고, 천국이 됩니다. 슬픔 많은 세상이 천국이 됐다는 것입니다. 괴로움 많은 세상이 낙원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 자리에서 쓴물을 달
게 만들어서 많은 생명을 살려 나가는 일을 해야 됩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단맛을 봤고, 나온 다음에도 계속 단맛을 봤습니다. 거기서 단맛을 얻었으니까 내내 단맛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요새 재미 좋습니까?” 하고 누가 물어보면 “재미 좋습니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단맛을 봤으니까 재미가 좋은 것입니다. 단맛을 보지 못하면 좋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단맛을 보고 꿀보다 단 생활, 꿀송이 보다 더 단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거기가 낙원이 되고, 천국이 됩니다. 슬픔 많은 세상이 천국이 됐다는 것입니다. 괴로움 많은 세상이 낙원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 자리에서 쓴물을 달
게 만들어서 많은 생명을 살려 나가는 일을 해야 됩니다.
단물을 쓰게 만드는 운동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단물을 쓰게 만들어서 사람들을 죽입니다. 진리를 변경시켜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운동이 이 세상에 많이 나왔습니다. 신신학자들, 해방신학자들, 기독교 사회주의 자들은 전부 물을 쓰게 만들어서 영적 생명수를 쓰게 만들고, 영적 생명의 역사를 다 중지시킵니다. 진리 운동을 사회적으로 이용하고, 세상적으로 이용해서 사람들을 많이 죽입니다. 특별히 대학생들을 학교에서 무슨 그룹운동이라고 하면서 순전히 인간의 지식적으로 가르쳐서 많은 생명을 영적 생명운동에서 떠나게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해방신학과 기독교 사회주의는 완전히 세상운동입니다. 또 도시산업선교와 같은 것도 사회주의운동입니다. 정작 사회주의 하던 사람들은 다 그만 두었는데, 이들은 이미 망한 사람들보다 더 합니다. 못 쓰겠다고 내버린 것을 가지고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사회주의 70년간 해보니까 안됐다. 이것은 못쓰겠다. 이것을 가지고는 안 되겠다’고 해서 다 내 버리고 자유주의로 돌아오는 세상인데, 오히려 그것을 가지고 하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단물을 쓰게 만들어서 사람들을 죽입니다. 진리를 변경시켜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운동이 이 세상에 많이 나왔습니다. 신신학자들, 해방신학자들, 기독교 사회주의 자들은 전부 물을 쓰게 만들어서 영적 생명수를 쓰게 만들고, 영적 생명의 역사를 다 중지시킵니다. 진리 운동을 사회적으로 이용하고, 세상적으로 이용해서 사람들을 많이 죽입니다. 특별히 대학생들을 학교에서 무슨 그룹운동이라고 하면서 순전히 인간의 지식적으로 가르쳐서 많은 생명을 영적 생명운동에서 떠나게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해방신학과 기독교 사회주의는 완전히 세상운동입니다. 또 도시산업선교와 같은 것도 사회주의운동입니다. 정작 사회주의 하던 사람들은 다 그만 두었는데, 이들은 이미 망한 사람들보다 더 합니다. 못 쓰겠다고 내버린 것을 가지고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사회주의 70년간 해보니까 안됐다. 이것은 못쓰겠다. 이것을 가지고는 안 되겠다’고 해서 다 내 버리고 자유주의로 돌아오는 세상인데, 오히려 그것을 가지고 하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우리는 세상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쓴 것을 달게 만드는 운동입니다. 우리의 진리운동은 쓴 것을 달게 만들어서 생명을 살리는 운동입니다. 먹어보면 압니다. 단 것인지, 쓴 것인지 먹어보면 압니다. 단물을 주는 교회인가, 쓴물을 주는 교회인가
먹어보면 압니다. 가서 먹어보면 ‘아! 이것은 달지 않다. 이것은 쓰다’, ‘아! 이것은 달다’ 하고 아는 것입니다. 쓰게 만드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고, 달게 만드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 중간도 있는데, 쓰지도 않고 달지도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맹맹한 것
인데, 맹물에 자갈돌을 삶은 것과 같은 것을 맹맹하다고 합니다. 단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쓰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맹맹한 것이 많습니다. 맹송맹송합니다. 교회에 갈 때나 올 때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의 교회 가운데 쓴 것을 달게 만들어서 사람의 생명 살리
는 교회가 있고, 한쪽에서는 단 것을 쓰게 만들어서 사람을 죽이는 교회가 있고, 그리고 달지도 않고 쓰지도 않은 맹맹한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교회가 많을 것 같습니까? 단물을 먹이는 교회가 많겠습니까, 쓴물을 만드는 교회가 많겠습니까? 아니면 맹송맹송한 맹물 먹이는 교회가 많겠습니까? 어떤 교회가 많겠습니까? 맹물 먹이는 교회가 많습니다. 그 교회에 가서 설교를 아무리 들어봐도 영적 감흥이 없습니다. 영적 생명의 역사가 없습니다. 설교를 잘하기는 하는데, 영적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맹물을 먹이는 것입니다. 사이다에 김이 다 빠진 것과 같습니다. 사이다는 톡 쏘는 맛으로 먹어야하는데, 김이 다 빠진 것을 먹으면 사이다 먹는 가치가 없지 않습니까? 김 빠진 사이다 같은 교회, 생명을 살리는 단물 먹이는 교회, 그 다음에 쓴물 먹여서 사람을 죽이는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쓴물 먹이는 교회는 해방신학 같은 것입니다. 신신학자들도 쓴물을 먹이는 것입니다. 감리교신학교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교수 두 사람이 기독교를 믿지 않고 다른 것을 믿어도 구원받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불교와 같은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고, 방법만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두 교수를 치리하려고, 즉 파면하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정권(停權)위원회라는 특별위원회를 소집했는데, 특별위원들이 그 두 교수에 대해서 ‘우리는 할 수 없다’고 사면했다고 합니다. 다 한패입니다. 당장에 파면 시켜야지, 예수 믿지 않고 구원 받는다는 사람을 믿는 사람으로 봅니까?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을 신학교 교수라고 앉혀 놓으면 신학교가 뭐가 되겠습니까? 그것은 예수교의 대적입니다. 예수교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쓴물을 달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단물을 쓰게 만들어서 여러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는데, 그것을 가만히 놔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장 파면시키고 그만 두게 해야 합니다. 파면뿐만 아니라 책벌을 해서 목사직분을 떼야 합니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 있다는 사람이 어떻게 기독인입니까? 그것은 비기독교입니다. 그런 것이 단물을 쓰게 만들어서 사람 죽이는 것입니다. 그 교수들이 여러 해 동안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한테 잘못 배운 사람이 또 많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쓴물을 먹이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배운 사람들의 교회는 단물을 쓰게 만들어서 사람들의 영적 생명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맹맹한 교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교회는 단물을 먹이지 못합니다. 단물이 있어야 먹일 수 있습니다. 쓴물이 잘못 된 것인 줄 알아서 쓴물은 안 된다는 것은 알지만 단물을 먹일 실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맹맹한 물만 밤낮 먹이는 것입니다. ‘오늘도 한 그릇
먹고 와라. 또 내일도 한 그릇 먹어라’ 하지만, 맹물을 먹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생명이 살지 못합니다. 먹을 때는 조금 해갈되는 것 같지만, 집에 돌아와 보면 먹으나 마나인 것입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 감동이 없습니다. 아무 영적 감흥이 없고, 영적 힘이
안 나고, 영의 역사가 없습니다. 다만 예배당에 몸만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맹맹한 교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교회는 단물을 먹이지 못합니다. 단물이 있어야 먹일 수 있습니다. 쓴물이 잘못 된 것인 줄 알아서 쓴물은 안 된다는 것은 알지만 단물을 먹일 실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맹맹한 물만 밤낮 먹이는 것입니다. ‘오늘도 한 그릇
먹고 와라. 또 내일도 한 그릇 먹어라’ 하지만, 맹물을 먹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생명이 살지 못합니다. 먹을 때는 조금 해갈되는 것 같지만, 집에 돌아와 보면 먹으나 마나인 것입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 감동이 없습니다. 아무 영적 감흥이 없고, 영적 힘이
안 나고, 영의 역사가 없습니다. 다만 예배당에 몸만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4. 단물을 먹은 자의 사명
단물을 먹여서 생명을 살려야 함
우리는 단물을 먹여서 쓴 물을 달게 만들어 생명을 살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디든지 쓴 것을 달게 만들어야 됩니다. 사회의 쓴 것을 달게 만들고, 쓴 가정을 달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 물이 들어가면 심령 속에 쓴 것이 다 달아 집니다. 우선 자기 심령 속에 날마다 기쁨과 즐거움이 있고, 단맛을 날마다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쓴 가정이 달아 지게 됩니다. 쓴물을 달게 하는 생명의 물이 쓴 가정에 흘러 들어가니까 그 가정이 달아 집니다. 아주 재미있는 가정이 되고, 좋은 가정이 됩니다. 쓴 사회에 이 단물이 들어갈 때 단
사회가 됩니다. 아주 좋은 사회가 됩니다. 많은 사람이 살아나는 사회가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해야 될 일입니다.
우리가 러시아에 선교사를 보냈는데 거기에서 쓴물을 달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로 74년을 지냈는데, 공산주의가 쓴 물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는 살지 못 할 줄을 알았습니다. 영혼은 물론, 육신도 그것으로는 안 되는 줄 알고, 이제 공산주의를 다 그만 두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만 그만 두면 어떻게 합니까? 쓴물을 제거시켰으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단물이 가야 됩니다. 단물을 가져다가 나눠주어서 그 사람들의 심령을 살려 내고, 그 쓴 세상을 달게 만들어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될 사명입니다. 또 이
북에 있는 우리 동포들이 다 쓴물을 먹고 있습니다. 40년 이상을 쓴물을 먹었습니다. 8.15 해방 후 47년 동안 쓴 물을 먹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하나님께서 이북의 문을 열어 주실 것 같습니다. 세계 공산권을 다 열어 주셨는데, 이북과 쿠바만 안 열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마침내 열어주셔서 복음을 전도하게 만들어 주실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때 단물을 들여보내야겠는데, 여러사람들이 많이 들어 갈 것 같습니다. 맹물을 먹일 사람도 많이 들어갈 것입니다. 또 쓴 물 먹일 사람도 들어 갈 것 입니다. 그러면 단물을 먹일 사람도 들어가야 됩니다. 이제 이북의 문이 열리면 쓴 물을 먹일 사람이 먼저 앞장서서 들어 갈 수도 있고, 맹물을 먹일 사람 많이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물 먹일 사람도 많이 들어가야 합니다.
자기만 단물을 먹고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합니다. 단물을 가져다가 다른 사람에게 먹여주어서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일입니까? 이 일을 우리가 해야 됩니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화가 미친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전하지않으면 화가 미칠 것입니다. 단물을 자기만 먹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안 나누어 주면 화가 미친다는 것입니다.
또 단물을 먹으면 병이 낫겠습니까? 병이 낫습니다. 병이 걸리지도 않고, 걸린 것은 낫는다고 하셨습니다. 본문 26절에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신다는 것
입니다. 생명의 물인 단물이 들어가야 치료가 됩니다. 죽은 생명이 살아나고, 병든 생명이 낫고, 쓰러진 생명이 일어섭니다. 단물이 들어가면 모두 치료가 되고, 또 심령의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단물의 역사에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기울여서 해야 됩니다. 몸 바치고, 물질 바치고, 마음 바치고, 생명 바쳐 놓고, 단물을 전해서 쓴물에 빠져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다 나가서 살리는 역사를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에 우리의 사명이 있습니다. 병들어 쓰러지는 사람들이 단물에 역사가 들어가야 나을 수 있습니다. 또 이 단물의 역사가 있는 사람은 병에 안 걸립니다. 심령의 병이 안 걸립니다. 이런 역사가 가장 필요한 시대가 됐습니다. 말세가 되어서 더욱 더 단물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사막이고, 물이 없는 길을 사흘길이나 걸어가는데 단물이 얼마나 필요하겠습니까? 요즘 세상도 사막 같은 세상이 됐고, 물이 없어서 고갈을 당한, 갈증을 심하게 만난 시대가 됐습니다. 여기에다 우리가 단물을 전해주는 사명을 감당하여야 하겠습니다.
율례와 법도를 지켜야 함
그런데 단물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성전에서부터 발원했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2장에는 유브라데강이 성전에서부터 발원해서 흘러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성전 생활하는 것부터 단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또 말씀을 받아서 순종하는 것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순종해야 됩니다. 자기에게 좋은 것만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먼저 성전 생활하고, 그 다음에는 좋은 것만 하겠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나뭇가지면 나뭇가지, 돌이면 돌, 그대로 순종하면서 믿음으로 그 모든 시험을 통과해 나가면 단물이 되어 나갑니다.
이 단물을 먹은 사람이 할 것이 무엇입니까? 본문 25절에 율례와 법도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단물을 마시러 나가는 사람에게 법도와 율례를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잘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시험하셨습니다. 본문 26절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고, 의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또 규례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잘 청종하고, 의를 행하고,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규례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규례를 지키라는 것은 ‘주일을
지키라’와 같은 규례, 또 십일조 드리는 규례, 하나님 앞에 마땅히 지켜야 될 규례를 우리가 잘 지키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셨는데 안 지키는 것은 단물을 잃어버리는 생활입니다. 단물을 계속 유지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잘 청종하고, 의를 행하고,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계명을 어기지 말아야 합니다. 십계명을 어기지 않아야 되고, 하나님의 모든 규례를 잘 지켜야 됩니다.
안식일 규례, 즉 주일 지키는 문제, 또 십일조 드리는 문제뿐 아니라, 교회의 규례, 교회의 법도, 교회에 대한 제도, 교단에 대한 제도와 같은 모든 규례를 잘 지켜 나가야만 이 단물의 역사가 계속 나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질병의 하나도 내리지 아니하고, 우리의 병 있는 것도 치료해 주시는, 우리를 치료하시는 여호와이시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치료해 주시는 여호와이십니다. 본문 27절에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 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
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막지대를 가다가 종려나무가 많고 샘물이 열두 개나 있는 오아시스를 만났습니다. 사막에서 물 있는 오아시스를 만난 것입니다. 물샘 열둘과 종려나무가 70주나 많이 있었습니다. 사막에 해가 내리 쬐어서 더워 곤고한 가운데 있었고, 또 목이 말라 불편한 가운데 있었는데, 물샘이 갑자기 열두 개가 나타나 흘러 내려가고 종려나무가 70주나 있으니까, 시원하게 그 아래서 샘물을 마시는 아주 좋은 세상을 만난 것입니다. 사막에서 좋은 행복지대를 만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 나가면 아무리 사막과 같은 세상이라도 하나님께서 단물을 마시게 만들어 주시고, 또 이런 좋은 행복스러운 장소, 단물이 나는 장소, 단물을 먹고 사는 장소, 종려나무 70주나 되고 샘이 열둘이나 되는 그런 행복스러운 장소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막지대를 가다가 종려나무가 많고 샘물이 열두 개나 있는 오아시스를 만났습니다. 사막에서 물 있는 오아시스를 만난 것입니다. 물샘 열둘과 종려나무가 70주나 많이 있었습니다. 사막에 해가 내리 쬐어서 더워 곤고한 가운데 있었고, 또 목이 말라 불편한 가운데 있었는데, 물샘이 갑자기 열두 개가 나타나 흘러 내려가고 종려나무가 70주나 있으니까, 시원하게 그 아래서 샘물을 마시는 아주 좋은 세상을 만난 것입니다. 사막에서 좋은 행복지대를 만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 나가면 아무리 사막과 같은 세상이라도 하나님께서 단물을 마시게 만들어 주시고, 또 이런 좋은 행복스러운 장소, 단물이 나는 장소, 단물을 먹고 사는 장소, 종려나무 70주나 되고 샘이 열둘이나 되는 그런 행복스러운 장소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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