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8일 일요일

출애굽기 16:1-8 만나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만나
출애굽기 16:1-8

1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이월 십오일이라 2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4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5제육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6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7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 8모세가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1. 엘림을 떠남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전진하는 삶, 떠나는 삶을 살아야 함

본문 1절에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이월 십오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엘림에서 떠났습니다. 엘림은 이스라엘이 마실 물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이르게 하신 곳인데, 샘물이 12개나 있고 또 종려나무 70주가 있는 아주 좋은 곳입니다. 시원하고 나무 응달이 있고, 또 샘물을 맘껏 마실 수 있는 곳으로, 광야 생활하다가 참으로 행복스러운 장소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오래 있으면 좋겠는데 오래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얼마 안 있었던 같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후 제이월 십오일, 즉 한 달 정도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엘림을 만나서 얼마 있지 않았는데, 또 떠났습니다. 그곳을 떠나서 다시 광야 길을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좋은 곳을 만났으므로 거기서 오래 살면 좋겠는데 왜 길을 떠났습니까?
거기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가다가 이제는 그런 곳을 또 만날지 못 만날지 모릅니다. 광야로 가므로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사막 길을 걸어갔었는데, 샘물 12개에 종려나무 70주가 있는 좋은 곳을 만났으니, 거기서 오랫동안 살았으면 좋겠는데 왜 떠났습니까? 거기서 오래 살 마음이 있었겠습니까, 없었겠습니까? 아마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오래 살면 애굽에서 나온 목적이 다 틀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애굽에서 무엇을 하러 나왔습니까?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엘림이 살기 좋다고 내내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애굽에서 나온 목적이 다 틀어지는 것입니다. 또 가나안 땅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곳이 아무리 좋지만 가나안 땅만 하겠습니까? 엘림은 하나님께서 약속한 곳이 아닙니다. 가다가 임시로 좋은 곳을 한번 만나서 쉬게 만든 것이지 영원히 살 곳이 아닙니다. 우리가 나가다가 아무리 좋은 곳을 만나도 거기서 오랫동안 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가야 됩니다. 떠나라고 하시면 떠나야 됩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하나님의 사명을 위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위하여 가야합니다. 또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함을 따라서 가야 합니다. 구름기둥이 머물면 머물고, 떠나면 떠나야 됩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좋은 곳에 오래 살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곳에든지 하나님이 인도하는 곳에 가서 살아야 됩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가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 나라는 가나안 땅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원 목적은 가나안땅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다가 임시로 오아시스, 즉 행복스러운 장소를 만났다고, 또 낙원 같은 곳을 만났다고 해도 거기서 사는 것이 원 목적이 아닙니다. 원 목적은 가나안땅에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원 목적인 가나안땅, 즉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격을 위해 믿음으로 통과해야 함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가는 것입니다. 가면서 쓴물을 달게 만드는 일을 해나가야 됩니다. 어디든지 가면서 쓴물을 달게 만들고, 목마른 심령에 해갈함을 주고, 병든 심령을 고치는 사명을 위해서 우리가 살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해야 됩니다. 그것이 아니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평안히 살면, 평안히 산 가치가 있습니까? 고생하면 고생한 가치가 있습니다. 고생하면서라도 가야, 가나안 땅이 점점 가까워집니다.
좋다고 평안히 평생 앉아 있으면, 가나안땅을 구경도 못하고 죽고 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떠나야 가나안 땅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곳을 향해 가다가 좋은 곳도 이따금 만나고, 또 물 없는 곳도 만나고, 쓴물도 만나고, 먹을 것이 없는 곳도 만나는 등 여러가지 장소를 만나게 됩니다. 그것을 다 통과해야 됩니다. 모든 것을 다 믿음으로 통과해야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격을 만들어서 갈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격을 만들려고 그렇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늘 매달고 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매달고 치다가도 벗겨 주십니다. 늘 매달고 치면 그만 다 죽을 것 같으니까, ‘이것을 좀 풀어 놓아라’, ‘물 좋은 곳, 곧 샘물 12개가 있는 곳에 가서 마셔라’, ‘종려나무 그늘에서 좀 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또 ‘물이 달지만 거기서 누리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므로 또 떠나라’, ‘이제 거기서 나가서 사막 길을 걸어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하고 가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저는 안 가겠습니다’, 아주 보따리 풀어 놓고 ‘죽을 때까지 여기 종려나무 아래에 있겠습니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애굽에 그냥 있었으면 되는데, 여기에 무엇을 하러 나온 것입니까?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모진 광풍을 불어오게 하고, 샘물을 다 뒤집어엎고, 샘물을 모래로 덮고, 종려나무를 다 죽이실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실 때는 가는 것이 거기 서는 제일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좋은 곳을 떠나 광야로 가면 하나님께서 죽이시겠습니까? 안 죽이십니다. ‘가나안까지 가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왜 죽이시겠습니까? 믿는 일을 하면 절대 안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까지 가게 만드십니다. 그러나 믿는 일을 안 하면 여기서
도 죽고, 가다가도 죽고, 다 죽습니다. 믿는 일만 하면 절대 안 죽습니다. 가나안땅까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가게끔 역사하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하십니다. 또 가려면 많은 파란곡절(波瀾曲折)을 겪어야 됩니다. 그러나 파란곡절이 많은 사막 길을 걸어가면 그것이 전부 유익이 됩니다. 전부 연단이 되어서 자격을 만들어 주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영혼을 자라나게 만들고, 믿음을 쓰게 만들고, 회개하게 만들고, 바로 서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종려나무가 있는 곳에 가만히 있으면 파란곡절을 안 겪게 됩니다. 그러면 회개할 기회도, 일어설 기회도, 믿음 없는 것을 발견할 기회도 없게 됩니다. 그야말로 끝장입니다. 하나님의 구름기둥이 갈 때는 따라서 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갈 때에 여러 가지 어려운 일 만나도 그것이 유익이 되고, 또 그것을 통해서 자기를 자라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을 발견하게 만들고, 회개하게 만들고, 자격을 만듭니다. 만나도 먹게 만들고, 고기도 먹게 만들면서, 많은 시험으로 연단하여 신령한 체험을 겪게 해서 귀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구름기둥이 떠날 때는 모든 사람이 떠나야 됩니다. 이스라엘이 엘림을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후 제 2월 15일, 즉 한 달이 되었습니다.

2. 양식이 없음으로 원망함

본문 2절에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엘림을 떠나서 얼마 가다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또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왜 원망했습니까? 먹을 것이 없어서입니다. 이스라엘이 엘림을 떠나 광야 지대로 또 들어갔는데, 먹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처음 가지고 나왔던 것을 다 먹고 나니 이제는 무엇을 먹겠느냐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배를 쫄쫄 굶게 됐습니다. 그래서 원망했습니다.

본문 3절에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원망하여 또 실패했습니다. 원망하면 실패한 것입니다. 이것이 몇 번째 원망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 한 번 원망하다가 회개 했습니다. 자신들이 건너고 나니 ‘아! 이렇게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해주시는데 그것을 모르고 원망했구나’라고 회개했습니다. 회개하고 찬송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목이 말랐는데 마라에서 쓴 물을 만나 물을 먹지 못하자 원망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께서 그 물을 달게 해 주시니까 또 좋아서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는 원망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이번에 또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 것입니다. 자주자주 낙제합니다. 한 달에 세 번 낙제하였습니다. 애굽에서 정월 15일에 나와서 지금 2월 15일이 되었기 때문에 한 달이 된 것입니다(출12:6).

우리는 금년 1년 동안에 몇 번 낙제했습니까? 이 사람들은 한 달 만에 세 번 낙제 했는데, 우리는 1년에 몇 번 낙제했습니까? 너무 많아서 생각이 안 납니까? 여러 번 낙제한 것 같습니다. 낙제생인지 합격생인지 가만히 보면 압니다. 합격자 발표할 때 붙은 사람과 안 붙은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보기 전에 다 압니다.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자꾸 물어보면 ‘가만히 있으면 알아야지, 뭘 자꾸 물어보냐?’고 합니다. 낙제되었으니 말하기 미안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교 낙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년에 또 시험 보면 되기 때문입니다. 학교 못 붙었다고 못 살겠습니까? 그러나 지나간 1년 동안 신앙은 몇 번 낙제 했습니까? 시험이 올 때 실패하여 통과 못 한 것이 몇 번입니까? 또 승리로 통과한 것이 얼마나 됩니까? 지난 1년 동안을 결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통과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전부다 하나님 앞에
100점 맞게 합격이 되었습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낙제는 물론 말할 것도 없고, 합격됐다고 해도 100점짜리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100점짜리는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낙제생이 수두룩하고, 합격했다고 해도 겨우 60점을 간신히 넘기고, 제일 잘 지켰다고 해도 100점 맞게 지키지 못 했을 것입니다. 주일 지키는 문제에 대해서, 주일에 마음은 다른 데 두고, 오락을 행하고,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주일을 전적으로 기쁘고 즐거움으로 ‘거룩한 날이다. 하나님의 날이다. 존귀한 날이다’ 하며, 그날 하루 종일을 하나님의 날로 지켜야겠는데, 잘못 지켜서 점수가 많이 깎였습니다.

참으로 회개 하면 바로 설 것 같은데, 막상 시험이 닥치면 또 그렇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또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죽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것을 체험하지 않았습니까? 왜 신앙 경험을 쓸 생각 안하고, 믿음을 쓸 생각 안하고, 왜 약해지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고기 가마 옆에서 죽었더라면 좋을 뻔했다. 그때는 고기도 마음대로 먹고, 떡도 배불리 먹던 때였는데, 그때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을 뻔했다. 왜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여 여기서 죽게 하느냐?”고 원망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원망했습니다.
또 고기가 먹고 싶어 원망했습니다. 민수기 11장 4-6절에 “이스라엘 중에 섞어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 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
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습니다(민 11:31).

3. 만나와 고기의 이적을 증거로 주시겠다고 하심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셔서 시험하심

본문 4절에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 하나 내가 시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시되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준행하는지 시험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양식을 날마다 거두라고 하였습니다. 그 날 먹을 것만 거두고 더 많이 거두면 안 됩니다. 욕심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날 먹을 것만 있으면 족한 줄 알고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한 줄로 아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20절에는 아침에 거두었다가 저녁까지 다 먹으라고 하였는데, 그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나가서 여러 날 먹을 것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아침에 보니 만나에서 벌레가 생기고 썩어져서 냄새가 나서 안 거둔 것만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내일 염려는 하나님께 맡기고, 그날 그날 먹을 것만 거두어 먹고 살라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제 육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고 하여습니다. 제 육 일째 되는 날에는 갑절로 거두되 이틀 먹을 것을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제 육 일째 되는 날의 다음날은 안식일이고, 안식일에는 만나가 내려오지 않는다고 하
였습니다. 그러므로 제 육 일째 되는 날에는 이틀 먹을 것을 한꺼번에 거두었다가 안식일까지 먹으라고 하셨는데, 그 날은 구더기가 나지 않고 썩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이 분명합니다. 그 날은 일하지 아니해야 되고, 돈 벌러 나가지 아니해야 됩니다. 그 날은 하나님의 날이므로 온 종일토록 하나님께 바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이 날에 일하고, 먹을 것을 벌기 위해 나가는 것은 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시험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인 주일을 철저하게 생명 내놓고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려 주실 것이고,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먹을 만큼 날마다 거두라는 것입니다. 이같이 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시험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지고 시험하신다고 하셨느냐 하면, “제 육 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식구가 하루 먹을 것을 매일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제 육일에는 안식일에 먹을 것까지, 즉 제 칠일에 먹을 것까지 갑절을 거두어 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너희를 시험한다고 하셨습니다. 만나를 주시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먹을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인줄 믿느냐, 안 믿느냐를 시험하십니다. 먹을 것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험한다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만 거두라고 하심

그 다음에는 만나를 거두는데 매일 하루 먹을 것만 거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만나가 눈과 같이 하얗게 많이 쌓이지만 그날 먹을 것만 거두고 내일 것은 거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고 욕심을 부려서 여러 날 먹을 것을 거두었던 사람은 썩어져서 구더기가 나고 냄
새가 났습니다. 이것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순종하나 안하나 시험하신 것입니다. 순종 안하면 썩어져서 구더기가 납니다. 순종하지 않는 생활은 썩어진 생활이고, 구더기 나는 생활이고, 부패한 생활입니다. 순종하면 ‘너희가 산다’는 것입니다. 여러 날 먹을 것을 가져다 놓지 않아도 순종만 하면 살 것이니까 욕심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사는 것은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순종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소유가 없어서 못 사는 것이 아닙니다. ‘공중의 새를 먹여주시는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왜 먹여주지 않으시겠느냐’는 것입니다(마 6:26). 나가서 노력만 하면 먹을 것을 하나님께서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소유가 넉넉하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이 쌓아놓은 부자라도 오늘 밤에 그 영혼을 도로 찾으면 그 예비한 것은 뉘 것이 되겠느냐고 하였습니다(눅 12:20). 또 ‘대하천간이라도 와팔척이요 양전만경이라도 일익삼손이라’(大廈千間 臥八尺, 良田萬耕 一日三食)는 말이 있습니다. 방이 천 간이나 있는 큰 집이 있어도 다리를 쩍 벌리고 드러누우면 여덟 자면 된다는 말입니다.아무리 큰 집이 있으면 뭐 합니까? 밤에 잘 때는 여덟 자면 충분한 것입니다. 또 좋은 밭이 만 날 동안 갈 만큼 있어도, 즉 자기 땅이 이천만 평이나 된다 해도, 하루에 밥 세 끼밖에 안 먹는다는 말입니다. 부자라고 밥을 열 끼를 먹겠습니까, 하루에 스무 끼를 먹겠습니까? 너무 많이 먹으면 위장병이 생깁니다. 보통은 세끼 먹는 것이 제일입니다. 사람 사는 것이 그 재산이 넉넉한 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매일 일해서 먹고 살게끔 하심

만나를 거두되 매일 나가서 거두라고 하였습니다. 한꺼번에 거두어도 그 다음날이 되면 썩어져서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습니다. 매일 일해야 먹는 것이 성경적이고, 일하면 먹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고 하였습니다. 새가 난다는 것은 자기가 노력하는
것입니다. 매일 나가서 노력하면 새에게도 먹을 것 다 주게 되어 있고, 사람도 매일 나가서 노력만하면 먹을 것을 먹게끔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했지, 목침 베고 누워 자는 새를 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누워 자면 안 되고 날아야
됩니다. 매일 노력하라는 말씀입니다. 노력하면 반드시 먹고 살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좋은 직장에 간다고 괜히 욕심 부려서 믿는 일을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일에 믿음 못 지키면서 좋은 직장가면 무엇 합니까? 좋은 직장에 다니기 위해서 한 달에 한두 번만 주일에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 직장을 그만두면 될 것 아닙니까? 직장에서 주일에 나오라고 하면, 주일에 직장에 안 가면 될 것 아니겠습니까? 가지 않으면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직장에서 떨어지면 다른 데로 가면 될 것 아닙니까? 일 할 곳이 얼마나 많이 있는데, 거기밖에 직장이 없겠습니까? 일하는 사람이 없어서 외국에서 일할 사람을 데려오는 인력부족 상태인데, 왜 갈 데가 없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동네에서 핍박하면 저 동네로 가고, 저 동네에서 핍박하면 또 다른 동네로 가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해서 인자가 오리라고 하였습니다(마 10:23). 모든 동네를 다 다니기 전에 하나님의 권고가 온다는 것입니다. 갈 곳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 갈 곳이 없어지기 전에 하나님의 권고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돈 많이 주는 데 가려고 안달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뭐합니까? 돈 벌어서 집 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집에서 살지, 밖에서 삽니까? 셋집에서 살아도 집에서 사는 것입니다. 사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또 자동차를 산다고 합니다. 자동차 사서 뭐합니까? 타고 다닙니다. 타고 다니면 또 뭐합니까? 자동차 탄 사람만 갑니까? 전철 탄 사람도 가고, 버스 탄 사람도 가고, 걸어서도 가고, 다 갑니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차 타고 다니는 사람보다 사실 더 건강합니다. 하루에 만보를 걸어야 건강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예전에 명륜교회 있을 때 아현교회에서 사경회 하면, 그때는 걸어서 왔습니다. 명륜동에서 아현동까지 오려면 걸어서 한 사십분 걸립니다. 아침에 밥 먹고 떠나면 사십 분이면 도착하는 것입니다. 그때 얼마나 건강했는지 모릅니다. 걸어 다닐 때는 건강했는데, 차 타고 다닐 때는 그때보다 못 합니다. 할 수 없이 차 타고 다니는 것이지, 사실은 걸어 다니는 사람이 더 행복스럽습니다. 옛날에는 차 타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어떻게 차를 타고 다니나 생각했었는데, 요새는 차 타고 다니면서 걸어 다니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얼마나 한가하길래 걸어 다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분주해서 속이 바짝타서 걸어 다녀서는 안 되겠으니까 할 수 없이 차를 타고 다니지만, 척척 걸어 다니는 사람은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예전에는 가난한 사람은 잡곡밥만 먹고, 내노라 하는 부자들이 전부 다 하얀 쌀밥만 먹었습니다. 그때는 저 사람은 무슨 팔자에 저렇게 쌀밥만 먹고 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부자들이 잡곡밥을 먹고, 가난한 사람이 쌀밥을 먹습니다. 바뀌었습니다. 고기 삶은 국물은 전부 다 식모가 먹고, 약 찌꺼기처럼 국 찌꺼기는 전부 주인이 먹습니다. 약도 다 끓인 다음에 찌꺼기는 내버리는데, ‘고기는 주인 드슈, 국물은 나 먹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바뀌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살게 만들어 놓은 줄 아셔야 합니다. 부자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탐심을 물리쳐야 합니다. 사람이 사는 것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습니다. 그저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한 줄 알고,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족한 줄 알고,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으면 족한 줄 알아야 됩니다. 그날 먹을 것만 얻고 내일 먹을 것 얻지 마십시오. 오늘의 먹을 것이 있으면 족하고, 오늘에 살고, 한날 괴로움도 그날에 족한 줄로 아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4. 광야로 인도하여 만나를 주신 이유

하나님께서 주실 줄 믿고 의지하게 하려고

본문 6-7절에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서 먹여 주시고 또 메추라기를 내려서 먹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식이 없어서 먹을 것이 없다고 원망을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믿음 쓰지 아니하고 낙제된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셔서 가는 길이고,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 온 이상 하나님께서 굶겨 죽이실 리가 절대 없습니다. 그런데 죽을까봐 원망한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본문 8절에 “모세가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는 것은 여호와를 향하여 원망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세는 하나님께서 인도 하시는 대로 순종한 것뿐이고, 그들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를 인도했느냐’고 하면 그곳으로 인도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일에 원망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불평하고 원망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잘 찾아서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인도 하시는 대로 따라갈 때에 먹을 것이 없는 때가 있고, 고기를 먹지 못하는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할지라도 하나님만 믿고 감사해야 됩니다. 감사하지 않고 ‘왜 이렇게 우리를 먹을 것이 없는 데로 인도했습니까? 뭘 먹고 살라고 하십니까?’ 하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나가다가 어떠한 고난이 와도, 하나님께서 주신 십자가인 줄 알고 달게 받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고, 그것을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인 줄 알고 달게 받으면서 나가셨습니다. 우리고 예수님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알고 달게 받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을 안 받으려고 하면 믿음이 아닙니다.

먹을 것이 없는 광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는데, 왜 그리로 인도하셨습니까? 광야로 인도하지 않고, 먹을 것을 많이 사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하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먹을 것을 많이 사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인도 하지 않으시고, 아무리 돈을 가지고도 사지
못할 광야지대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라고,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으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늘 풍성하게 해 주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지 못하고 주실 때 감사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신령한 양식을 주시려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 즉 육신의 양식뿐만 아니라 신령한 양식을 받아먹어야 살 줄을 알게 해 주시려고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4절에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하였는데, 신령한 양식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또 신령한 음료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신령한 양식을 주셔서 너희 영혼을 살리고, 또 육신의 양식을 주셔서 너희 육신도 살리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만나를 먹을 때에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으로 알고 먹어야 되고, 또 하나님께서 만나 이외에 신령한 양식을 우리에게 주셔서 먹고 살게 할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좀 더 신령한 양식을 먹으려고 해야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 양식을 먹여 주시려고 이리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1-33절에 “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줘서 먹게 하셨는데,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참 떡을 내려주셔서 우리의 영혼이 먹고 살게 하시려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만나를 먹을 때, 육신의 굶주림만 채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양식으로만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나를 육신의 양식으로 줘서 먹게 하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만나보다 더 좋은 양식, 참 양식을 줘서 먹고 영생하게 하려는 것을 알게 해 주시느라고 만나를 내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나를 먹을 때 만나만 먹고 만족하면 안 됩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오니 ‘얼마나 좋으냐’ 하면서 먹었습니다. 아침마다 하늘에서 눈이 오는 것처럼 하얀 떡가루가 내려와서 지면에 하얗게 쌓이는데, 그것을 가져다가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맛은 꿀 섞은 과자 같다고 하였는데, 그것을 가져다가 떡도 해먹고 여러 가지 과자도 해먹고, 여러 가지로 다 해먹었습니다. 꿀 섞은 과자와 같은 아주 맛이 있는 만나를 하나님께서 내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만나를 먹을 때에 만나만 먹으면 안 되고, 하나님께서 양식을 내려주시는 것을 알고 만나를 먹어야합니다. 또한 육신의 양식만 내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 양식도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것을 믿고 영의 양식을 받아 먹으라는 것입니다. 영의 양식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영의 양식이십니다. 지금은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의 양식이시고, 그때에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 영의 양식이셨습니다. 만나를 먹으면서 영의 양식, 곧 그리스도를 받아먹는 사람이 참으로 만나를 먹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만나
를 육신적으로만 먹은 사람은 껍데기 만나만 먹은 것입니다. 참 만나는 못 먹었습니다. 참 양식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양식으로 받아먹어야 하겠습니다. 육신의 양식을 받아먹는 동시에 영적 양식을 날마다 받아먹어야 하겠습니다.

참 양식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

참 양식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6장 48-51절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줄 떡은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살이 떡이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53-54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어야 산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참으로 만나를 먹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지만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참 복, 참 양식, 참 만나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어떻게 먹습니까? 믿는 것이 먹는 것입니다. ‘믿습니다’ 하면 먹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하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 속에 예수님이 쏙 들어갑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생명이 되고, 힘이
되고, 자기의 구원이 됩니다. 먹는 것이 믿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믿는 것이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우리를 위하여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성탄절에 아기 예수로 오신 것이라고만 믿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이 세상에 찾아오신 것을 믿어야 됩니다. 임마누엘의 예수님, 즉 우리와 같이 계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또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믿어야 됩니다. 그저 옛날에 예수님이 오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입고 오셔서 사람과 같이 계셨고, 지금도 우리와 같이 계시고, 또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믿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 내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희생해 주신 예수님을 믿어야 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입니다. 또 나를 대신해 의를 완성해 주신 예수님,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신구약 성경을 다 행하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의를 완성해 주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의를 완성해 주시고, 그 의를 내게 다 입혀주시고, 또 나를 위해서 부활해 주시고, 부활의 생명으로 내 생명을 살려주신 그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도 믿는 것입니다. 내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피흘려주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 값을 대신 짊어지시고 내 대신 죽어 주신 것을 믿는 것이 예수님의 피를 먹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내려 주셨는데, 그리스도께서 늘 따라 다니신 것입니다(고전 10:3-4). 구약시대에도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따라 다니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저희를 따르는 그리스도를 양식으로 먹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만나를 내려 주신 것입니다. 만나를 먹을 때 그리스도를 영적 양식으로 먹으라고 내려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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