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8일 일요일

출애굽기 17:1-7 여호와를 시험치 말고 인도하심을 따라가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여호와를 시험치 말고인도하심을 따라가라
출애굽기 17:1-7

1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 지라 2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3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4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하겠나이다 5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내가 거기서 호렙 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7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
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1.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함

본문 7절에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본문 2절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아주 큰 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네 가지 죄로 광야에서 다 쓰러졌는데,
첫째는 우상을 섬긴 죄,
둘째는 간음한 죄,
셋째는 여호와를 시험한 죄,
넷째는 원망하는 죄였습니다(고전 10:1-11). 그 네가지 죄 중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죽게 된 죄가 여호와를 시험한 죄입니다.

여호와를 시험한 죄는 본문 7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시험한 죄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말씀을 믿어야하고, 반드시 계신 것을 믿어야합니다. 그런데 함께 계신다는 말씀을 믿지 않
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계신가 아니 계신가”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주심을 경험했음에도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하고 시험했습니다.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어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을 시험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려서 구원하셨고, 그들은 홍해를 가르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체험했지만,
눈앞의 어려움에 원망과 불평으로 하나님을 불신하였습니다. 그래서 본문 3절에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라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것은 죽이려고 인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살게 하시고 가나안 복지로 인도해주시려고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종이 되어 수치를 당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라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을 때도 있고 믿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고 기뻐할 때도 있고, 조금 가다가 하나님의 인도가 아니라 모세의 인도라고 원망하고 불평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방에 계시는데, “아버지가 방에 계신가, 안 계신가?”, 아버지가 아랫목에 앉아 계시는데, 그 앞에서 “아버지가 아랫목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고 돌아다닌다면 아버지가 얼마나 노하겠습니까? 또 아버지가 “내가 여기 있는데, 왜 그러느냐?”라고 말해도, “아버지가 계신가, 안 계신가?”라고 말한다면 아버지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얘가 정신이 나간 모양이구나! 내가 여기 있는데, 왜 계신가 안 계신가 하느냐?”라고 할 것입니다. 좀 더 증세가 심하면 정신 병원에 가야할지도 모릅니다.

믿는 성도라면 ‘계신가, 안 계신가’ 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다’라고 믿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라고 믿는 것이 믿음이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인도해주신다’라고 믿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먹을 것과 마실 것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고 기도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이 난다고 하셨는데, 이것을 의심하는 것도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이 난다고 말씀하시면, “예, 나올 줄로 믿습니다”라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2. 하나님의 뜻을 확정해야함

본문 7절 말씀 중에 “다투었음이요”라고 했는데, 바위에서 백성들끼리 다투었나 봅니다. 물이 난다는 파와 물이 나지 않는 다는 파가 어떻게 물이 나겠느냐고 다투었을 것입니다. 그런 후에 모세와 다투었습니다. 본문 2절에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고 의심했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그들은 애굽에서 인도해주신 분이 하나님이 아니라 모세가 인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
님께서 분명히 애굽에서 구원해주셨고, 또 살게 하기 위해 인도해주셨는데, 백성들은 자신을 죽이려고 광야 가운데로 내몰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 모두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고 나가야 함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확정해야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까? 그 방법이 몇 가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으로 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말씀을 정확히 알아서 성경에 맞는 것이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확정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담대하게 말씀대로 나아 갈 때, 하나님께서 동행하셔서 승리하게 해주시고 형통하도록 인도해주십니다.

2)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안다

둘째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것을 보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알았을 때 확정해야합니다.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오는 것은 나뭇잎이 떨어지고 추어져 땅이 어는 것 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겨울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겨울이 올까, 안 올까?’, 얼음이 얼었어도 ‘겨울이 온 것일까?’라고 의심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어느 병아리가 암평아리인지 수평아리인지 처음에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조금 자라면 수평아리는 볏이 나고 꽁지의 깃털이 길어집니다. 암평아리는 이러한 것들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암탉인지 수탉인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결혼하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로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결혼해야 하겠습니까? 처음에는 누군가를 소개받습니다. 그 다음에는 서로 만나봅니다. 그리고는 괜찮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다음에 어느 정도 결혼을 하자는 말이 오고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결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하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라고 기도해봅니다. 그리고 결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어떤 표적을 보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환상, 꿈, 기적적인 현상 등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보여주셨지만 신약시대에는 종결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성경말씀을 통해 알려주십니다. 그 뜻을 책에 다 기록하셨기 때문에, 성경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합니다.

만일 기도할 때에 ‘내일 내가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비가 오지 않게 해주시고, 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비가 오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비가 와도 가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제비 뽑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이 방법
은 사도시대에 끝이 났습니다. 지금은 제비를 뽑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귀를 따라 가는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표적을 보고 혹은 무엇인가를 경험한 것이 있다 해도 절대 따라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알았을 때 확정하고 따라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확실히 알고 나가다가 도중에 ‘이것이 하나님 뜻입니까, 아닙니까?’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이를 가졌다면 낳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배가 고파도 하나님 뜻에 맞지 않는 것이면 안 먹는 것입니다. 교역자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교역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안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학생들 중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기도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믿음은 자기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인데 그 선물을 받은 우리는 참 귀한 존재입니다. 말씀으로 잘 인도된 사람이 주일학교 반사가 되어 어린 생명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나가서 전도하면 열매가 많이 맺힙니다. 반사인 본인도 믿음이 성장하고 말씀을 받은 아이들도 자라나며 자라난 아이들이 전도하게 되어 그 반은 많아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런 후에 신학교에 갈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런 다음 교회에서 어떤 일을 맡기면, 그 맡긴 것이 잘 됩니다. 다른 사람이 인정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인도자가 볼 때에 ‘저 사람은 앞으로 희망이 있다. 하나님의 종이 되면 잘 되겠다’라고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도자가 볼 때 척보면 압니다.

물론 교역자가 못 될 사람이 신학교에 오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켜야 앞으로 교역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어도, 스스로 우겨서 공부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개척교회를 한다고 하니까, 안 된다고 했지만 자기가 고집을 부리고 몇 천 만원을
얻어서 교회를 했습니다. 그 후 5~6년 동안 죽도록 고생하였지만 교인은 10명도 채 안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어머님께 돈을 빌리게 되었고 또 교단에서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희망이 있다면 도와주겠지만 희망이 없는데 어떻게 도와주겠습니까? 그만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자 도와줄 수 없다고 스스로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 후 예배당을 전세로 얻었다고 입당 예배를 인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20명 이하이면 못해준다고 했습니다. 입당예배를 드리게 되면 교단적으로 각 교회에서 연보를 조금씩 하게 됩니다. 20명이 되기 전에 입당 예배를 드리게 되면 하지 못할 사람이 교역자가 되어 헛바람만 들어서 돈만 없애는 것이기 때문에 해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신학교 졸업하게 된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 주일학교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일 년 내내 그 반에 주일학생이 한 명이었습니다. 전도하라고 해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앞으로 교회 못합니다. 일 년에 주일학생 한 명을 데리고 하는 사람이 무슨 교회를 할수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개척교회를 한다며 말을 듣지 않고 산골에 간 지 여러 달이 되었습니다. 그곳에 다녀온 사람 말이 교인은 할머니 한 사람과 주일 학생 두 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도 그 숫자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도와달라고 했지
만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도와줘봐야 돈만 낭비하는 것이고 아무리 애써도 안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을 해서 듣지 않는 사람은 가만히 내버려 둡니다. 그런 사람이 몇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인도자가 볼 때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일꾼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적극 도와서 일을 시킵니다. 우리 교단에서 일 년에 개척교회를 하나씩 하는데 누구를 보내야하는지 말을 많이 합니다. 할 만한 사람을 보내야 하는데, 금번에 홍한기 목사를 보내면 잘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홍한기 목사에게 목사안수를 하여 보냈습니다. 지난 주에 12명이 나왔다고 했으니 명년 봄에는 20명 이상이 되어 분명히 입당예배를 하게 될 것입니다. 지도하는 사람이 볼 때 주님의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어느 정도 보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교회에서 어떤 사람을 전도사로 보내달라고 초청이 들어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십니다. 순종을 할 때 감동이 옵니다. 할 자신이 없는데 ‘내가 한 번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주의 일을 하는 것은 불순종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아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할 수 있는 길로 인도
해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의 힘을 가지고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라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빌 4:13).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3) 성령의 감동으로 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뜻은 성령의 감동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은 신앙 양심을 써서 알 수 있습니다. 신앙 양심은 성경 말씀을 순종하는 양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서 찾고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고 신앙 양심으로 찾아 모든 것을 모아서 하나님의 뜻인 줄 확정하고 나아가야합니다. 또한 인도하는 사람이 하지 말라고 할 때는 그만 두어야 합니다. 말을 듣지 않고 계속 한다면, 교회에서 제대로 사역할 수 없고 실패하여 교인 10명도 못 모
으고 끝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합니다. 그리고 순종해야합니다.

3.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믿고 순종해야 함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으로 믿어야 함

어떤 일이 잘 해결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것은 성경말씀을 통해서 압니다. 성경을 따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입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성경말씀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의심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하셨으면 가지 않는 것이 마땅한데, 발람이 “가랍니까, 가지 말랍니까?” 하니까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셨습니다(민 22:20). 나중에는 발람이 나귀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때라도 돌아서는 것이 옳은 행동이지만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 가운데 빠지면 안 됩니다. 어떤 길을 갈 때라도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믿고 가야합니다. 결혼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셨기 때문에 가정을 이루었다고 믿어야합니다.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확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셔서 온 것이고, 하나님께서 살려주신다고 하셨고,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겠다고 하신 말씀들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된다고 하시면 믿어야 함

또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할 때 앞길을 열어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힘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실 것을 믿어야합니다. 지금은 목말라 죽게 되었지만, 생수를 주실 것을 믿는 마음으로 나아가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반석을 치라고 하셨으면 반석에서 물이 나올 것을 믿고 쳐야 합니다. “반석에서 물이 어떻게 나옵니까?”하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온다고 하셨으면 나는 줄로 믿어야 합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반석에서 물이 나는 법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난다고 하셨으면 나는 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안 되면 어떻게 할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된다고 하셨으면 “예, 믿습니다” 하고 될 줄로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안 될 것은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안 될 것을 생각하는 것은 마귀의 시험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가라고 했으면 가는 것 뿐 입니다. 가다가 굶어 죽지 않을지, 목마르지 않을지, 먹을 것이 없을지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곧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셨으면 “예, 갑니다. 가다가 죽어도 갑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하며 가야합니다. 살려주겠다고 하셨으니 살려주실 것만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 나아가야함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도하심을 받아 나아가야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와 성령의 감동과 신앙 양심을 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확정해 나가야겠습니다. 성경말씀에 비추어 옳은 길을 따라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는 것을 경험했으면
이것을 따라가야 합니다. 바른 진리를 따라가다가 생명이 살았으면 그것을 따라가야 합니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고, 갈까 말까 망설이는 것은 마귀의 시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마귀의 시험에 빠져서 광야에서 많이 쓰러졌습니다. 모세 또한 말씀을 어겼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근처에 있는 비스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고 죽었습니다. 믿음이 좋던 사람도 가다가 시험이 들어서 말씀을 그대로 믿
지 못하고 인본주의로 생각하다가 잘못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가데스에 거할 때 물이 없어 모세와 아론에게 공박하자, 하나님께서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는데, 모세가 그 명령을 따르지 않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번 쳐서 물을 내었습니다(민 20:7-11).
또 하나님께서 물을 내시는 것인데, 모세가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물을 내랴?”고 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땅을 바라만 보고 쓰러졌습니다(민 20:12). 그러나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 말씀만 따라서 믿음으로 나갔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갔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시종일관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또한 말씀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말씀을 떠난 인도는 하나님의 인도가 아닙니다.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인도와 감동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야 합니다. 절대 하나님을 시험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받지도 못합니다.
야고보서 1장 6절에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의심하는 자도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약 1:7). 하나님 말씀에 맞으면 그대로 될 줄을 믿어야 합니다. 주신다고 했으면 주실 줄을 믿어야 합니다. 잘 된다고 하셨으면 잘 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하신 말씀을 믿고, 능력 주시면 능치 못할 것이 없음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오직 말씀대로 살아야겠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반드시 창성하게 해주시고, 승리하게 해주시고, 형통하게 해주십니다. 그것을 믿고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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