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8일 일요일

출애굽기 17:5-16 아말렉을 이기고 전진하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아말렉을 이기고 전진하라
출애굽기 17:5-16

5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7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8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9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10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11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2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3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1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15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1. 말씀과 영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 되어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홍해에 가로막혔는데,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홍해를 마른 땅이 되게 하시고 건너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애굽 군병들은 거기에 다 장사지냈습니다. 이제 먼 가나안까지 가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그들이 잘 몰랐습니다. 처음으로 가는 길이어서 그 가는 길을 잘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만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불기둥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구름기둥은 하나님의 인도와 임재를 가리킵니다. 출애굽기 19장에서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나타나셨는데 빽빽한 구름이 가득했다고 하였습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향해서 나갈 때 어떤 길로 가야할지 알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너는 구름기둥과 불기둥만 따라가라. 그러면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나안 땅까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겠다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구름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이고, 불기둥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말씀과 영감입니다. 저희를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때에 하나님의 영감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감과 말씀은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진리를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진리를 떠나서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에 어긋난 것은 전부 성령의 인도가 아닙니다. 성령은 말씀대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에 성경 말씀대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에 어긋난 것은 하나님의 인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성경 말씀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성경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말씀에 어떻게 되어 있는가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때에 성령께서 감동을 주십니다. 말씀 안에 있는 감동이 진짜 감동입니다.

육신의 감동과 영적 감동

감동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육신의 감정적인 감동입니다. 이 감동은 안 믿는 사람에게도 많이 있습니다. 연극장에 가면 감동을 받아서 눈물을 흘립니다. 애국자들이 시국 강연하면 눈물 흘리고 금반지를 빼서 다 바칩니다. 생명을 내 놓고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성령의 감동이 아니고 육신의 감동입니다. 감정적인 감동입니다. 감동을 크게 나누면 두 가지입니다. 성령의 감동과 육신의 감정적인 감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감동을 더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감정의 만족을 채우려고 감정을 따라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도 육신의 감정적인 감동을 따라서 나가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굉장한 역사가 나타나는 외적 감동

그 다음에 영적 감동이 있는데, 영적 감동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영적 감동 가운데 외부적인 감동이 있고 내적 감동이 있습니다. 영적 감동이지만 외부만 감동시키는 외부적 감동이 있습니다. 또 영적 감동이면서 내적 감동이 있습니다. 열왕기상 19장에서 엘리야가 호렙산에 갔는데, 강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바위가 터지고 산이 갈라집니다. 또 지진이 지나가고 불이 지나갑니다. 이러한 것들은 다 영적 감동이지만 외적 감동입니다. 이것은 아주 강합니다. 상당히 강해서 바위가 터지고 산이 갈라지고 전국이 다 흔들흔들합니다. 불이 나와서 뜨끈뜨끈합니다. 굉장한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다고 하였습니다. 열왕기상 19장 11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니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역사들은 외적 감동입니다.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도 영적인 역사입니다. 마귀의 역사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래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다고 하였습니다. 큰 역사가 일어났는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했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이런 것들 가지고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그러한 역사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근래에 일어난 일들 중에서 용문산 운동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떤 기도원에서 역사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신비주의자들이 일어났다고 하는 역사들은 다 외적 감동입니다. 이전에 말죽거리를 지나가면 영도 기도원이라고 있었습니다. 거기 제가 기도하러 한 번 갔었습니다. 그곳 기도원 원장이 올드 미스였는데, 용문산에 가겠다고 합니다. 제가 거기에서 개천을 따라 좀 올라가서 천막을 치고 있었는데, 저녁마다 야단이었습니다. 얼마나 떠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한 번 참여해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사람이 약 30~40명 모였는데 얼마나 열심인지 모릅니다. 손뼉을 치고 일어섰다 앉았다, 몸을 굽혔다 뉘었다 하면서 열광적이었습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여러 곳에서 왔는데, 제주도에서도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내적 감동이 아닙니다. 심령 속은 까딱도 안 하는데도 외부적으로 강하게 역사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생명 내어 놓고 나가는 것입니다. 외적 감동은 용문산 운동의 감동과 같은 것입니다.

용문산 나운몽씨가 처음에 용문산 운동할 때에 명륜교회 집사들이 여러 해 거기에 다녔습니다. 용문산 집회한다 하면 보따리 싸서 이고 가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입니다. 가서 손뼉 치면서 성령 받았다고 떠들어 대다가 본 교회로 돌아오면 예배 시간에 좁니다. 그것이 은혜 받은 증거입니까? 가서 은혜 받았으면 예배시간에도 똑똑히 앉아서 말씀을 받아야 하는데 졸고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네를 무시한다고 악악 우는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은 자기를 과부라고 멸시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과부라는 것은 생각을 안 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때 아주 야단들이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외부적인 감동입니다. 방언하고 큰 역사가 일어나고 병도 고칩니다. 앉은뱅이까지 일어섰다고 합니다. 그런 역사가 있었는데, 그것이 외적 감동인 것입니다. 이 외적 감동은 마귀역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외적 감동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가지고 그렇게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찾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열심을 내어서 하면 그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또 방언하려고 애를 쓰면 방언도 나옵니다. 그것이 외적 감동입니다.
외적 감동은 얼마 못 갑니다. 다 지나가고 맙니다. 그 영도 기도원 원장으로 있었던 올드 미스는 미국에 갔습니다. 미국 간 줄 몰랐는데, 한번은 시애틀에 가서 다음날 주일에 준비하기 위해 어떤 기도원에 가자고 해서 간 적이 있습니다. 차를 타고 한 30~40분 갔는데 그 기도원의 원장이 바로 그 분이었습니다. 그 할머니가 거기에 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그것도 팔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용문산 운동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외적 역사는 그저 그러다가 마는 것입니다. 즉, 말하자면 지붕 아래서만 강하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힘 있게 쳐들어서 지붕까지 올라가지만 그 아래서만 강력하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미한 음성은 지붕을 뚫고 올라갑니다. 올라가서 하늘에까지 가서 닿는 것입니다. 세미한 음성, 이것이 진짜입니다.

세미한 음성의 내적 감동

그러므로 내적 감동이 중요합니다. 내적 감동은 무엇입니까? 열왕기상 19장 12-14절에 “…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
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세미한 음성은 외적 역사가 다 지나간 다음 고요해진 다음에 세미하게, 가늘고 작게, 들릴락말락하게 나타납니다. 영적 심령 속 깊은 가운데 감동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야에게 세미한 감동이 왔습니다. 자기가 다 죽
어지고 실패하여, 자기가 없어진 다음에야 이 세미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외적 감동을 따라 가는 사람은 세미한 음성을 못 듣습니다. 그러다 자기가 다 죽어지고 실패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할 때에 가느다랗게 심령 속 깊은 가운데에 감동이 옵니다. 그것이 세미한 음성입니다. 세미한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바로 되는 것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하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또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그 대신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리고 세미한 음성을 들은 엘리야는 그대로 했습니다. 그대로 했기 때문에 성공했습니다. 먼저 있었던 바람의 역사, 지진의 역사, 불의 역사를 따라 갔다면 그러다가 말 뻔 했습니다. 거기서 한 계단 더 들어가서 자기가 다 실패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엘리야가 한 것은 바람의 역사, 지진의 역사, 불의 역사였습니다. 그것을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일시에 다 돌리고자 하는 것이 다 그러한 외부적 역사입니다. 갈멜산에서 불이 떨어진 것도 다 그런 역사입니다. 거짓 선지자 850명 숙청한 것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다 실패했습니다. 아합 왕의 아내가 잡아 죽이려고 하니 도망치다가 로뎀 나무 아래에서 쓰러졌습니다. 그것이 실패한 것 아닙니까? 완전 실패입니다. 지금까지 하던 것은 이제 엘리야가 완전 실패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다 할 수 없구나. 하나님, 나를 죽여 주시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여 달라는 것은 잘못 기도하는 것입니다.
할 수 없는 가운데 빠져야, 자신이 전적으로 무능하고, 전적으로 무익하고,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인 줄 알 때, 전적으로 실패하고 난 다음에, 그때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것이 진짜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엘리야를 세워 놓아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미한 음성, 즉 내적 감동을 받은 다음에는 그대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가는 가운데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끄십니다. 말씀대로 가면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영감과 진리는 같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강한 역사는 다 외적 감동이고 또 마귀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 때에 세미한 음성이 들리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참된 생명입니다. 말씀 따라가는 것이 첫째입니다. 그러면 둘째로 영감이 같이 하여 세미한 음성이 들립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2. 만나와 생수를 양식으로 주심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애굽을 떠나 신 광야에서 이르렀는데,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리어 주셨습니다(출 16장). 또 신 광야에서 떠나 르비딤에 이르렀는데, 물이 없었습니다. 목이 말라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생수를 내어 먹여 주셨습니다.

본문 5-7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서 이스라엘 백성이 다 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리셔서 먹여 주시면서 인도하셨고, 이제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시면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4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라고 하였습니다. 반석으로부터 마셨는데 반석은 그리스도시고, 만나도 그리스도시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실제로 만나와 함께 반석에서 물을 내 마셨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그리스도가 따라다니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양식이 되고 생수가 되신 것을 가리킵니다. 신약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적 양식입니다. 우리가 그 살과 피를 먹어야 삽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적 생수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수를 마셔야 살 수 있습니다.

3. 아말렉과 전쟁해서 이김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쟁함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말렉이라는 족속이 와서 못 가게 합니다. 앞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아말렉과 싸웠습니다. 본문 8-13절에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손에 지팡이를 잡고 산에 올라가서 손을 들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에게는 “나가서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과 모세, 세 사람은 산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손에 무엇을 잡고 올라갔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지팡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산에 올라가 손을 들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손을 들고, 여호수아는 백성을 거느리고 아말렉 군대와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함

여기서 손을 든다는 것은 기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손을 들고 기도 하는 때도 있고 엎드려서 기도하는 때도 있습니다. 모세가 엎드려서 기도한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손을 들었다는 것은 자기 심령을 쳐드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심령을 하나님께 향하는 것입니다. 손을 드는 것은 향한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한다’, ‘전심전력을 하나님께로 향한다’, ‘점점 올라간다’, ‘하나님과 가까워진다’, ‘점점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해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산에 올라가고 또 손도 쳐드는 것입니다. 산에 올라간다는 것에는 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것이 아래에서 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워진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좀 더 하나님을 가까이 찾아가서 기도하려고 산에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손을 들어 마음을 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얼마나 오래 기도했겠습니까? 손과 팔이 피곤하도록, 다리가 피곤해서 견딜 수 없으리만큼 오래 동안 손을 들고 기도한 것입니다. 지금 저 멀리 일선에서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싸우는데,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 백성이 졌습니다. 모세
가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그리고 손을 들면 여호수아의 군대, 곧 이스라엘의 군대가 이겼습니다. 여기서 손을 드는 것은 보통 이 아닙니다. 마음과 중생한 영이 하나님께로 향해서 계속하여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가서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내려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기도를 통하여 내려옵니다. 그러면 모세에게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충만해집니다. 모세에게 온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는 또한 여호수아에게 나갑니다. 여호수아에게 나간 하나님의 역사는 백성들에게 나갑니다.
그것이 능력의 역사입니다. 모세의 손에 지팡이를 들었다고 했는데, 그 지팡이는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입니다. 손을 들어서 하나님의 역사가 임한 것도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입니다. 말씀과 영감으로 나가는데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지금 특별히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마귀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말렉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마귀의 역사를 당하여 뻔히 알면서도 능력이 없어서 못 이길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손을 드는 생활이 아주 중요합니다.

아론과 훌을 통해 도와주도록 하심

모세가 손을 들 때 피곤하니까 어떻게 하였습니까? 손이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힘이 들어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지고, 쉬었다가 다시 올리면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로 하여금 그 위에 앉게 했습니다. 하루 종일 서 있으려면 다리가 아프니
돌을 가져다가 앉게 한 것입니다. 이에 모세가 한결 나아졌습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아론이 손을 붙들었습니다. 또 다른 한쪽 손은 훌이 붙들었습니다. 손을 붙들어서 붙든 손이 내려오지 않게 했습니다. 그러면 모세가 그들에게 요청했겠습니까? 아론에게 “형님, 나 손 좀 들어 주십시오. 또 돌 하나 갖다 괴주십시오”하고, 또 훌에게 “내 손 좀 들어 주시오”라고 요청했겠습니까?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안했어도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 놓으십니다.

처음에 모세가 말할 줄 모른다고 못 간다고 했습니다. 말 잘하는 아론을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셨는데, 모세가 그것을 믿지 아니하고 무조건 ‘입이 둔합니다’, ‘혀가 뻣뻣합니다’, ‘못합니다’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못 간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네 형 아론이 지금 너를 맞으러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모세가 형 아론을 만날 것인데, 괜히 못 간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형이 오는 것을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못 간다고 안 했어도 가다가 형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못 간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못한다고 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하루 종일 어떻게 서 있겠습니까? 앉을 곳도 없습니다. 또 팔을 어떻게 하루 종일 들고 있을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라고 하면 가고, 손을 들라고 하면 들면 됩니다. 손을 들 때에 하나님께서 돌을 가져다 앉을 곳도 다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 옆에
돌도 준비해 놓으신 모양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을 준비해 놓으셨으니 있었던 것이지 갑자기 어디서 반석을 가져 왔겠습니까? 그 근처에 하나 있었으니 가져온 것입니다. 그것도 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아론과 훌도 모세와 함께 올라가서 보니, ‘아, 이거 모세의 손이 내려오면 실패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아, 돌 하나 가져다가 앉게 해주자. 또 손을 들어 주자’ 하는 것입니다. 해 달라고 안해도 해 줄 사람이 생깁니다.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손을 들어 기도하여 이기는 생활을 하자

첫째는 교역자가 손을 들어야 합니다. 먼저 목사들이 손을 들어야 합니다. 손 들어 기도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도원에 교역자들이 기도하러 나갑니다.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까지 한 50여명이 나와서 기도합니다. 기도실을 지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준공 허가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 해주실 것입니다. 또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는데, 가정으로 보면 신앙의 호주가 손을 들어야 합니다. 가정마다 신앙의 호주가 다 있습니다. 신앙의 호주가 누구입니까? 남편입니까, 부인입니까? 먼저 믿고 믿음 좋은 사람이 신앙의 호주입니다. 남편이라고 해도 믿음이 없으면 신앙의 호주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남편이 먼저 믿고 믿음이 좋으면 호주입니다. 그러나 부인이 먼저 믿고 믿음이 좋으면 부인이 그 가정의 호주입니다. 또 자녀들이 먼저 믿고 믿음이 좋으면 자녀들이 호주입니다. 호주가 손을 들면 그 가정이 이기고 호주가 손을 내리면 그 가정이 실패합니다. 호주가 손을 들어야 합니다. 교회는 목사가 손을 들어야 하고, 가정에서는 그 가정의 호주가 손을 들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먼저 믿고 믿음이 좋은 사람이 호주입니다. 그가 손을 들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손을 내리면 어떻게 됩니까? 손을 내리면 실패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이기는 것입니다.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깁니다. 그래서 손을 드는 생활이 아주 중요합니다. 교회도 목사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마귀가 이깁니다. 마귀 역사가 일어납니다.
또 받들어 줄 사람도 하나님께서 다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돌을 갖다 놓고 받들어 줄 사람을 하나님께서 다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니 받들어 줄 것입니다. 또 안 받들어 주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불러서라도 받들어 주지 않겠는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아말렉을 이겨야합니다. 아말렉은 막는 세력입니다. 가나안을 행해서 나가는데 막는 세력이 아말렉입니다. 어떤 사람이 막으면 그 자가 바로 아말렉입니다. 그것을 이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일 가까운 베드로가 아말렉이 되어서 예수님께 십자가를 멀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마 16:23). 가까운 제자라고 해서 아말렉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 나가는데, 의를 이루어 나가는데 막는 세력이 바로 아말렉입니다. 그 다음에 한 번은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아말렉이 되어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왜 잡으러 왔습니까? 예수님께서 귀신들렸다고 잡으러 온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계신 바깥에서 예수님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모친이고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셨습니다(마 12:48). 나와 보지도 않으셨습니다. 아말렉이 집 안에 있을 수 있고, 자기 속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 속에 아말렉과 같이 막는 세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막는 세력이 아말렉입니다. 달음박질하며 천성을 향해 나가는데, 그것을 막는 세력이 바로 아말렉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세상을 따라가는 것, 물질을 따라가는 것, 이러한 것들이 다 아말렉의 세력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다 이기고 전진해야 합니다. 육신으로 기울어지지 말고 아말렉 세력에 잡히지 말고 이기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전진하고 또 전진해서 시온산에 올라가야 합니다. 좀 더 가면 시온산에 이릅니다. 그 다음에 거기에서부터 가나안 복지(福地)를 향해 나가야 합니다. 가는 길이 멀고 험한데 처음으로 만난 것이 아말렉입니다.
우리는 아말렉 세력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이기려면 산에 올라가서 손을 들어야 합니다. 계속 손을 들어야 합니다. 일심정력을 다해서 계속 기도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계속하여 더불어 나가서 모든 아말렉을 모든 백성이 다 이겨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다 이기고 마침내 그 지방을 승리하여 통과해서 시온산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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