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8일 일요일

출애굽기 18:1-12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방문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방문
출애굽기 18:1-12

1모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가 하나님이 모세에게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모든 일을 들으니라 2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가 돌려 보내었던 그의 아내 십보라와 3그 두 아들을 데렸으니 그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이라 이는 모세가 이르기를 내가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 함이요 4하나의 이름은 엘리에셀이라 이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 하셨다 함이더라 5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의 아들들과 그 아내로 더불어 광야에 들어와 모세에게 이르니 곧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 진 친 곳이라 6그가 모세에게 전언하되 그대의 장인 나 이드로가 그대의 아내와 그와 함께한 그 두 아들로 더불어 그대에게 왔노라 7모세가 나가서 그 장인을 맞아 절하고 그에게 입맞추고 그들이 서로 문안하고 함께 장막에 들어가서 8모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애굽 사람에게 행하신 모든 일과 길에서 그들의 당한 모든 고난과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다 그 장인에게 고하매 9이드로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모든 은혜를 베푸사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여 10가로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애굽 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굽 사람의 손 밑에서 건지셨도다 11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히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 하고 12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번제물과 희생을 하나님께 가져오매 아론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와서 모세의 장인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으니라

1. 모세의 장인이 방문함

모세의 장인 이름

모세의 장인이 모세를 찾아왔습니다. 본문 1절에 “모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가 하나님이 모세에게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모든 일을 들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장인이 이드로라 하였습니다. 민수기 10장 29절에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진행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2장 18절에는 “그들이 그 아비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비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또 출애굽기 3장 1절에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라고 하였습니다. 르우엘도 모세의 장인입니다. 출애굽기 2장 18절에 확실히 나타났습니다. 민수기 10장 29절에는 르우엘의 아들 호밥이라고 했으니 호밥이 모세의 처남이고 르우엘이 장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이드로라고 한 것으로 볼 때 모세의 장인의 이름이 둘인 것 같습니다. 이드로라고도 하고 르우엘이라고도 하여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드로가 미디안 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드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세 장인의 신분

이드로가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일을 다 듣고 모세에게 왔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찾아왔습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미디안의 제사장, 겐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장인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제사장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도 노아의 자손 셈과 함과 야벳 중에 노아의 신앙을 계승한 셈의 자손이 많이 퍼졌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신앙을 본받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과 조카 롯이 있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이지만 이스라엘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또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인데, 롯 자손도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 신앙이 계승해 내려와서 그 후대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도 그들 중의 어떤 후계인 것 같습니다. 셈의 후계인 것이 분명합니다. 롯 자손이나 이스마엘 자손이나 셈의 족속 가운데서 아브라함의 계통이 아닌 다른 계통으로 내려간 제사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도 하나님을 섬겼고, 그 아버지 형제도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리브가는 누구입니까? 라반의 누이입니다. 라반의 집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지만, 밧단아람에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니까 이드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니지만 이런 계통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노아의 신앙을 본받아서 제사장이 되고, 하나님을 섬긴 것이 분명합니다. 발람도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제사장이었지만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방 사람 중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장인이 모세의 아내와 두 아들을 잘 돌봐줌

본문 2-3절에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가 돌려보내었던 그의 아내 십보라와 그 두 아들을 데렸으니 그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이라 이는 모세가 이르기를 내가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 함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미디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애굽으로 가서, 바
로 왕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 사명을 받고 애굽으로 갈 때에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데리고 가면 바로 왕 앞에 가서 생명 내놓고 선전포고를 해야 하는데,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장인에게 맡아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왜 부탁을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일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장인 이드로는 자기 딸하고 외손자를 맡아줬습니다. 왜 맡아줬습니까?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모세가 그 아내와 두 아들을 장인에게 맡겨놓고 이스라엘 구원운동을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맡겨놓은 것 같습니다. 아내와 아들 둘을 데리고 다니려면 하나님의 일에 지장이 많기 때문에 처갓집에 맡겨놓고 이스라엘 구원운동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장인이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도와주려고 모세의 아내와 아들 둘을 잘 길러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도와주는 일은 좋은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자녀가 우상이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면 생명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맡겨 놓고 갔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지장 받으면 안 됩니다. 모세의 아내도 모세를 도와주려고 아들들과 아버지 집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서로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 도와주었으면 모세가 이스라엘을 구원 하는데 얼마나 지장이 있겠습니까? 다른 일에 얽매이지 않도록 도와주는 생활을 해야 하나님의 일을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모세의 두 아들의 이름

모세가 미디안에서 40년간 기도하고, 수양 생활을 하면서 아들 둘을 낳았다고 하였는데 맏아들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지었습니다. 게르솜은 이방의 나그네 되었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엘리에셀이라고 지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았다는 뜻입니다. 모세의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은 참 좋은 이름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고 이름을 짓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 좋은 이름을 짓기 위해서 이름 짓는 집에 가서 짓는데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이름 짓는 집에 가서 이름 짓는다고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름이 좋아서 대통령 되었다고 하다가, 4.19 후에 물러나니까 ‘이승만’이가 되어서 망했다고 했답니다.
이름을 보통은 부르기 좋고, 좋지 않은 연상이 되지 않고, 쓰기 좋은 이름을 짓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이름을 지었는데 아주 다른 것이 연상되는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 신학교 나온 사람 중에 병원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렇게 좋지 않은 것이 연상되는 이름을 피해야 합니다. 부르기 좋고, 쓰기 좋은 이름을 짓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는 뜻을 가진 게르솜 본문 3-4절에 “그 두 아들을 데렸으니 그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이라 이는 모세가 이르기를 내가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 함이요 하나의 이름은 엘리에셀이라 이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함이더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맏아들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지었습니다. 게르솜은 ‘내가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는 뜻으로 ‘나그네 되었다’는 말입니다. 모세가 미디안에서 나그네 생활하다가 아이를 낳아서 게르솜이라고 지었습니다. 모세는 일생 동안 하나님의 도움으로 산 사람입니다. 또 나그네 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태어났으니 애굽이 본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원 본향은 아닙니다. 애굽도 나그네 생활입니다. 나그네 생활을 400년 한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13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애굽 생활이 나그네 생활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에게 애굽이 본향이 아닙니다.

본향은 히브리서 11장 16절에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하였는데, 우리의 본향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서 살 때에는 나그네로 살았다는 말입니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본향은 어디입니까? 더 나은 본향은 하늘나라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은 나그네 생활입니다. 베드로는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하라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세상을 살 때는 나그네와 행인 같은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47장 9절에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바로가 야곱에게 연세를 물어보니 야곱이 나그네 생활
을 130년을 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17년을 더 나그네 생활을 하다가 147년에 본향으로 갔습니다. 우리의 나그네 세월은 얼마입니까? ‘30년이다, 40년이다, 50년이다, 80년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그네의 삶에서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고해 같은 세상에서 우리도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까? 우리도 나그네의 세월이 얼마인가 생각해 보고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해야겠습니다.
나그네 생활은 본향 찾는 것을 뜻합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세도 세상을 사는 동안 나그네 생활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도 바울도 나그네 생활을 하였습니다. 우리도 나그네의 생활로 살아야겠습니다. 나그네라는 것은 잠깐 있다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잠시이고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본향을 늘 사모하는 것입니다. '언제 돌아갈까' 늘 돌아갈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나그네 생활이 괴로워도 조금 있으면 본향으로 갈 것이니까 괜찮다고 해야 합니다. 나그네 생활을 할 때에 누가 “불편한 것 없습니까?”하고
물어보면 ‘괜찮다’고 해야 합니다. 전혀 괴롭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경회 나오는 동안에 불편한 것이 많습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하면 됩니다. 며칠 동안 있다가 끝나면 갈 것인데 무엇을 불편하다고 합니까? 우리도 나그네 생활로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모세가 아들 이름을 나그네 생활이라고 지은 것을 보면 이 세상을 나그네와 같이 여기면서 생활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뜻의 엘리에셀

둘째 아들의 이름은 엘리에셀인데, 이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 하셨다 함이더라’는 뜻입니다.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을 보면 모세의 아버지가 믿음이 상당히 좋았던 것 같습니다.
모세의 아버지는 모세가 태어났을 때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을 숨겨놓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아이임을 봤다는 것은 모세의 부모가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심을 알았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이스라엘 구원운동에 귀하게 쓰실 것을 알고 생명을 내놓고 석 달을 숨겨서 믿음으로 길렀습니다. 이렇게 좋은 가정에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바로가 남자가 태어나면 죽이라는 명령으로 모세를 더 이상 숨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갈 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웠습니다. 그것을 발견한 바로의 딸 공주의 아들로서 모세는 궁중에서 자랐지만, 모세의 어머니가 유모로서 모세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면 양육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우리 아버지가 잘 섬기던 그 하나님을 안 것입니다.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산다’라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나그네 생활이 험악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사
는 것입니다. 사람의 도움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도움으로 사셨습니까? 예수님은 사람을 의지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2장 24-25절에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
실 필요가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해야합니다. 요한복음 16장 32절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도움으로만 살아야 합니다.
모세가 아들을 '엘리에셀아' 라고 부를 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산다' 는 것을 기억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게르솜아'하고 부를 때는 '나그네 생활이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들들 이름을 참 잘 지은 것 같습니다. 맏아들을 부를 땐 '나그네 생활이다' 라
는 것을 기억하게 되고 작은아들을 부를 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산다' 라는 것을 기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의 이름들은 하나님에 대해 많이 지었습니다.'엘'는 하나님입니다. 엘리멜렉이나 엘리야, 사무엘도 하나님이 들어갑니다. 우리도 날마다 이 세상이 나그네 생활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산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사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3. 모세가 장인을 영접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전함

본문 5-6절에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의 아들들과 그 아내로 더불어 광야에 들어와 모세에게 이르니 곧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 진 친 곳이라 그가 모세에게 전언하되 그대의 장인 나 이드로가 그대의 아내와 그와 함께한 그 두 아들로 더불어 그대에게 왔노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장인이 모세의 아들들과 처를 데리고 호렙산 진 친 곳까지 와서 자기가 찾아온 사실을 모세에게 전하도록 했습니다. 참된 믿음은 듣기만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고 가보는 것입니다. 가보면 믿음의 증거가 생깁니다.

본문 7절에 모세가 나가서 그 장인을 맞아 절하고 그에게 입 맞추고 그들이 서로 문안하고 함께 장막에 들어가서"하고 하였는데, 모세는 장인이 온 것을 듣고 기뻐하여 나가서 영접했습니다.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으로서 이방인인데 하나님을 공경하는 백성이었습니다. 따
라서 모세가 감사와 기쁨을 가지고 나가서 영접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기쁘게 영접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사람이나 죄인이 회개하고 믿으면 회개할 것이 없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인하여 기뻐함보다 더 기뻐하십니다(눅15:7).

본문 8절에 “모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애굽 사람에게 행하신 모든 일과 길에서 그들의 당한 모든 고난과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다 그 장인에게 고하매”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장인을 기쁘게 영접하고 세상적인 이야기를 해드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애굽 사람에게 행하신 구원 역사를 자세히 말했습니다. 우리들도 믿지 않는 친지나 친척과 만나면 쓸데없는 세상 이야기보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말해 주어서 믿음에 유익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4. 하나님을 찬송하고 제사드림

본문 9-12절에 “이드로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모든 은혜를 베푸사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애굽 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굽 사람의 손 밑에서 건지셨도다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히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 하고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번제물과 희생을 하나님께 가져오매 아론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와서 모세의 장인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드로가 애굽과 바로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송하였습니다. 또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다”라고 하였고, “교만히 행하는 자들을 이겼다”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33편 1절에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행할 바”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 구원을 듣게 될 때에 그 은혜가 감사하여 기뻐하며 찬송을 하게 된 것입니다.
찬송의 내용은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와 애굽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신 것입니다. 둘째는 모든 신보다 크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교만히 행하는 자를 이기신 승리의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또한 번제와 희생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번제와 희생물을 드린 것을 보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고 미디안의 제사장, 겐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1:16). 이스라엘 백성은 아니지만 겐 사람으로 하나님을 섬긴 것입니다. 또 발람도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선지자였지만 하나님께 말씀을 받았습니다(민 22-24장).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지만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구약시대에 이방 나라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가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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