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이적을 행하신 하나님
출애굽기 4:1-9
1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2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지팡이니이다 3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것을 땅에 던지라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잡으니 그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5또 가라사대 이는 그들로 그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함이니라 하시고 6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 손에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흰지라 7가라사대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손이 여상하더라 8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이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둘째 이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9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하수를 조금 취하여다가 육지에 부으라 네가 취한 하수가 육지에서 피가 되리라
출애굽기 4:1-9
1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2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지팡이니이다 3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것을 땅에 던지라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잡으니 그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5또 가라사대 이는 그들로 그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함이니라 하시고 6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 손에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흰지라 7가라사대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손이 여상하더라 8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이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둘째 이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9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하수를 조금 취하여다가 육지에 부으라 네가 취한 하수가 육지에서 피가 되리라
1. 첫 번째 이적
지팡이를 땅에 던지니 뱀이 되고, 꼬리를 잡으니 다시 지팡이가 됨
본문 1절에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모세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라고 하면서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신 줄을 이스라엘 백성이 믿지 아니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나님께 여쭈어본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세 가지 이적을 주시면서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십니다.
지팡이를 땅에 던지니 뱀이 되고, 꼬리를 잡으니 다시 지팡이가 됨
본문 1절에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모세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라고 하면서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신 줄을 이스라엘 백성이 믿지 아니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나님께 여쭈어본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세 가지 이적을 주시면서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십니다.
본문 2-3절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지팡이니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것을 땅에 던지라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네 손에 있는 무엇이냐”라고 물어보
시니까 지팡이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손에 지팡이를 잡고 있었는데, 그것을 땅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던졌더니 그 지팡이가 뱀이 되었습니다. 뱀이 되어서 모세를 물려고 대적하니까, 모세가 그 뱀 앞에서 피했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4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잡으니 그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에게 손을 내밀어서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를 향해 뱀이 물려고 대적하고 있으니까 머리를 잡지 말고 꼬리를 잡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뱀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본문 5절에 “또 가라사대 이는 그들로 그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함이니라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로 이적을 보여주시고, 그 이적을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나가서 행
하여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2. 지팡이와 뱀의 이적에 대한 뜻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능력의 지팡이, 떨어지면 마귀의 도구가 됨
여기에 대한 뜻은 모세는 하나님께 잡히고, 지팡이는 모세의 손에 잡혀 있으니, 능력의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모세의 손에서 지팡이가 떨어져 나가니까 뱀이 되었습니다. 마귀가 되었습니다. 모세의 손에서 던져진 지팡이는 뱀이 된 것입니다. 마귀가 된 것입니다. 그 지팡이가 모세의 손에 있을 때에는 큰 능력의 지팡이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 해서 모든 것을 그 지팡이로 다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손에서 떨어져 나가면, 마귀의 도구가 되어서 도리어 모세를 물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뱀의 꼬리를 가서 잡으라고 하여 잡으니까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뱀의 꼬리를 잡으니까 다시 지팡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능력의 지팡이, 떨어지면 마귀의 도구가 됨
여기에 대한 뜻은 모세는 하나님께 잡히고, 지팡이는 모세의 손에 잡혀 있으니, 능력의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모세의 손에서 지팡이가 떨어져 나가니까 뱀이 되었습니다. 마귀가 되었습니다. 모세의 손에서 던져진 지팡이는 뱀이 된 것입니다. 마귀가 된 것입니다. 그 지팡이가 모세의 손에 있을 때에는 큰 능력의 지팡이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 해서 모든 것을 그 지팡이로 다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손에서 떨어져 나가면, 마귀의 도구가 되어서 도리어 모세를 물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뱀의 꼬리를 가서 잡으라고 하여 잡으니까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뱀의 꼬리를 잡으니까 다시 지팡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모세의 손에 지팡이가 붙잡힌 것입니다. 모세의 손에서 떨어져나간 것은 하나님의 손에서 떨어져나간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같이 하시기 때문에, 모세의 손에서 떨어져나간 것은 하나님의 손에서 떨어져나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모세의 손에 잡히면 능력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안 잡히면 내내 뱀 노릇이나 하다가 마지막에는 죽고말 텐데, 모세가 다시 그 뱀의 꼬리를 잡으니까 뱀이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붙잡힌 모세의 손에 붙잡히면 능력의 지팡이가 됨
오늘날도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종이 붙잡히고, 그 종의 손에게 붙잡히면 능력의 지팡이가 되고, 떨어져나가면 마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을 예로 들어 말하면, 부모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으면 그 손에 붙잡힌 자녀들이 다 능
력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손에서 벗어나면 뱀이 됩니다. 마귀의 도구가 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하나님께 붙잡히고, 그 다음에 자녀들이 부모에게 붙잡히면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가 됩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가 하나님께 붙잡혀 있고, 어거스틴이 자기 어머니의 손에서 벗어나서 나갈 때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방탕하고, 마귀 노릇하고 돌아가다가, 회개하고 어머니에게로 돌아와서 어머니 손에 붙잡히니까, 능력의 종이 되고 성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 이후
에는 어거스틴이 제일 훌륭한 사람입니다. 어머니에게 붙잡혔단 말입니다. 또 어머니는 누구에게 붙잡혔습니까? 하나님께 붙잡혔습니다.
어머니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가서 붙잡히고, 자녀들은 어머니에게 붙잡히면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떨어져나가면 마귀의 종이 됩니다.
가정의 호주도 마찬가지입니다. 호주가 하나님께 붙잡히면 그 호주에게 붙잡힌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가 됩니다. 가정의 호주가 누구입니까? 믿음의 호주, 즉 예수를 먼저 믿었거나 믿음이 좋은 사람이 그 가정의 호주인 것입니다. 남편이라고 다 믿음의 호주가 되는 것 이 아닙니다. 부인이라고 하더라도 믿음이 좋은 사람이 믿음의 호주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 능력의 지팡이가 되고, 떨어져 나가면 마귀의 종이 됩니다.
심방 가보면 부인의 믿음이 좋은데 남편은 술만 먹고 마귀의 종노릇 하는 집이 있습니다. 부인이 남편에게 예수 믿으라고 하면 늙어죽을 때 가서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자기 부인의 인도를 받아서 교회를 나와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능력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분이 장로가 되었습니다. 술먹고 망나니가 되어 돌아가던 사람이 호주되는 부인의 인도대로 순종해서 하나님께 돌아오니까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모세에게 이 이적을 보여주신 것은 ‘지금 네가 나가서 붙잡아서 쓸 사람들, 즉 네 손에 붙잡히는 사람들이 다 능력의 지팡이가 되어서 하나님의 일에 귀하게 쓰임을 받는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라는 것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가정도 그렇고 교회도 마찬가지이고 어디든지 다
마찬가지입니다. 호주가 하나님께 붙잡히고, 그 다음에 호주에게 또 붙잡히고, 그 사람에게 또 붙잡히고 하면 전부 승리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호주가 하나님께 붙잡히고, 그 다음에 호주에게 또 붙잡히고, 그 사람에게 또 붙잡히고 하면 전부 승리합니다.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손을 들어 하나님께 붙잡히니까 그 능력의 역사가 여호수아에게 임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붙잡혔고,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붙잡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여호수아에게서 나갔고, 또한 그 능력이 모든 백성에게 나갔습니다. 모든 백성도
여호수아에게 붙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말렉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승리의 방법이 여기에 있습니다. 첫째는 모세가 하나님께 붙잡히고 손을 들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붙잡혀야 합니다. 또 백성들은 여호수아에게 붙잡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순종하니까 대승리가 이루어졌습니다.
어떤 일에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호주들, 호주들이 정신 차려야 됩니다. 먼저 믿거나, 믿음이 좋은 사람이 호주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셨는데, 믿음이 좋은 사람이 호주가 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처럼 믿음이 좋으면 신앙의 호주입니다. 하나님
께 붙잡혀야 됩니다. 그 사람이 붙잡히면 능력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붙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말렉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승리의 방법이 여기에 있습니다. 첫째는 모세가 하나님께 붙잡히고 손을 들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붙잡혀야 합니다. 또 백성들은 여호수아에게 붙잡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순종하니까 대승리가 이루어졌습니다.
어떤 일에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호주들, 호주들이 정신 차려야 됩니다. 먼저 믿거나, 믿음이 좋은 사람이 호주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셨는데, 믿음이 좋은 사람이 호주가 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처럼 믿음이 좋으면 신앙의 호주입니다. 하나님
께 붙잡혀야 됩니다. 그 사람이 붙잡히면 능력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지팡이의 머리를 잡지 말고 꼬리를 잡아야 함
1) 뱀의 꼬리를 잡으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하셨는데, 양 칠 때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세가 “지팡이이니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
님께서 그것을 땅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되었고, 그가 뱀 앞에서 피하였습니다. 뱀이 물려고 해서 피하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뱀 머리를 잡다가는 물리겠으니까 꼬리를 잡으라는 말씀입니다.
이 지팡이가 어떻게 하다가 뱀이 되었느냐면 모세의 손에서 뚝 떨어지니까 뱀이 된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어 있는 사람이므로 모세의 손에서 떨어지는 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손에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떨어지면 뱀이 됩니다. 마귀가
됩니다. 마귀 노릇하는 것입니다. 그 뱀이 모세를 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물리도록 가만 두시지 않습니다. “꼬리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꼬리를 잡으면 물지 못하고 다시 지팡이가 됩니다. 머리를 잡다가는 물려서 죽습니다. 그러니 꼬리를 잡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손에서 떨어져나간 지팡이는 뱀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된다는 것이고, 마귀의 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리어 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도망치면 안 됩니다. 또 때려 죽여도 안 됩니다. 때려 죽이지도 말고 도망치지도 말고 꼬리를 잡으라
는 것입니다. 뱀 꼬리를 잡을 줄 알아야 합니다. 꼬리를 잡아야지 머리를 잡으면 안 됩니다. 꼬리를 잡으면 다시 그것이 지팡이가 됩니다. 꼬리를 잡았으면 놓지 말아야 합니다. 꼬리를 잡았다 놓치면 다시 뱀이 되어서 돌아서 물게 됩니다. 그러므로 꼬리를 놓지 말고 늘 잡고
있어야 됩니다. ‘지팡이야, 네가 내 손에서 떨어져서 뱀이 되었구나. 하나님의 손에서 떨어져서 뱀이 되었구나. 그리고 나를 물려고 했구나’ 하면서 꼬리를 잡으면 물지 못합니다. 놓으면 뭅니다. 그러므로 잡았다가 다시 놓지 말아야 합니다. 꼬리를 안 잡으면 내내 뱀 노릇만
합니다. 일평생 뱀 노릇만 하다가 죽습니다. 꼬리를 잡아야 뱀 노릇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2) 싸우지 말고 도망치지 말고 꼬리를 잡으라
꼬리 잡는 생활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꼬리 잡는 생활인가 하면, 뒤로 가서 잡는 것입니다. 앞에 머리가 있고 꼬리는 뒤에 있습니다. 그러니 머리를 맞대고 싸우지 말고, 뒤로 슬쩍 가서 잡는 것입니다. 뱀이 자기 꼬리 잡는 것을 처음에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모세가 딱 잡아놓으니까 이제 뱀 노릇을 못 합니다. 물지 못 합니다. 그리고 그 뱀이 변해서 지팡이가 됐습니다. 얼마나 큰 유익입니까? 뱀을 무서워하지 말고 죽이려고도 하지 말고 피해서 도망치려고 하지 말고 꼬리를 잡으라는 것입니다. 꼬리를 잡으면 올 데 갈 데 없습니다. 뛰어야 벼룩이고 날아야 하루살이입니다. 꼬리를 잡아 놨기 때문에 아무리 꾸물꾸물해도 쓸데없습니다. 그러면 차차 변해서 지팡이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뱀하고 싸우다가 꼬리 잡지 않고 뱀 대가리 잡으려고 하다가 물린 사람 있습니다. 뱀하고 싸우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싸우다 도망친 사람도 있습니다. ‘마귀새끼 보기 싫다’ 하고 도망치는 것도 실패입니다. 도망쳐 버리면 지팡이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지팡이
가 있어야지 없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뱀을 때려죽여도 안 되고, 도망쳐도 안 되고, 뱀의 머리를 잡아도 안 됩니다. 그러나 꼬리를 잡으면 뱀이 꼼짝 못 합니다. 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면 차차 뱀이 지팡이로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먼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고 그 다음에는 지팡이를 그의 손에 붙들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의 손에서 떨어져 나가고 하나님의 손에서 떨어져 나가서 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 ‘아! 이제 무섭구나. 달아나자. 뱀 새끼가 무섭다. 네가 뱀이 될 줄 누가 알았겠냐?내 지팡이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 하면서 이를 원통하게 생각하고 섭섭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맞서서 ‘네가 그렇게 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 내 지팡이가 나를 물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고 백 마디 해도 쓸데없습니다. 뱀이 남의 사정 안 들어줍니다. 뱀 보고 아무리 사정해도 쓸데없습니다. 사정이 통하지 않습니다. 뱀과 사람은 사정 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 이제 저 지팡이는 쓸데없다. 버려야겠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면 꼬리를 잡으라는 것입니다. 꼬리를 잡아놓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가면,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뱀이 점점 지팡이로 변해서 큰 유익을 주는 지팡이가 됩니다. 꼬리를 잡아 놓으면 앞으로는 지팡이가 됩니다. 그러나 놔 버리면 다시 뱀이 됩니다. 모세가 무서워서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도망쳐도 안 되고 죽여도 안 됩니다. 꼬리를 잡아서 다시 지팡이를 만들어서 하나님의 일에 사용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3) 뱀이 변하여 지팡이가 된다
손에 잡힌 그 지팡이가 앞으로 한 몫 쓰입니다. 그 지팡이를 가지고 홍해를 가르고, 그 지팡이를 가지고 산에 가서 기도도 하고, 그 지팡이 가지고 반석도 치고, 다 하는 것입니다. 그 지팡이가 없다면 무엇으로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지팡이가 하나님의 손에서 떨어져 나가서 뱀이 되었을 때 잘해야 됩니다. 뱀이 된 다음에 꼬리를 잡아야 되는데, 뒤로 가서 잡으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가서 잡지 말아야 합니다. 잡고 있으면 점점 변화가 됩니다. 변화 되어서 유용한 지팡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지팡이를 가지고 이 후에 홍해를 가르고 전쟁에도 이기고 반석에서 물도 나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뱀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떨어져 나가면 다 뱀이 됩니다. 가룟 유다도 뱀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떨어져 나가면 다 뱀이 되는 것입니다. 뱀이 있습니까? 뱀 봤습니까? 물려고 합니까? 다치게 하지 않으면 뱀이 안 문다? 그러면 방에 들어와도 가만히
두고 같이 살겠습니까? 그것도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건드리지 않으면 안 문다고 하면 안됩니다. 뱀이라면 언젠가 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뒤로 살살 가서 꼬리를 싹 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지팡이가 됩니다. 뱀을 지팡이로 만들어 놓으면 큰 능력의 지팡이가 됩니다. 모세가 그 지팡이를 가지고 일한 것입니다. 모세가 뱀 되었던 지팡이를 가지고 일한 것입니다.
모세에게 지팡이 없으면 일이 안 됩니다. 홍해를 가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모든 뱀을 지팡이로 만들어서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자녀들도 뱀 노릇할 때가 있습니다. 부모 손에서 벗어나서 마귀 노릇하는 자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때도 꼬리
를 잡아야 됩니다. 자녀의 꼬리를 딱 잡고 있어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딱 잡고 기도하고, 딱 손으로 잡고 성경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가르쳐주고 오랫동안 기도하면 그 자녀가 지팡이가 됩니다. 어거스틴이 뱀 노릇하고 돌아다닐 때, 그 어머니 모니카가 늘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꼬리를 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어거스틴이 회개하고 돌아와서 성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꼬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어거스틴이 성 어거스틴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가지고 이제 앞으로 모든 뱀을 지팡이로 만들어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3. 두 번째 이적
품에 손을 넣으니 문둥병이 발하고, 다시 넣으니 깨끗하여짐
본문 5-7절에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 손에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흰지라. 가라사대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손이 여상하더라”고 하였습니다.
품에 손을 넣으니 문둥병이 발하고, 다시 넣으니 깨끗하여짐
본문 5-7절에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 손에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흰지라. 가라사대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손이 여상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이적은 모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꺼내보니까 문둥병이 들렸습니다. 또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고 하여 다시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까 과거와 같이 깨끗해졌다는 것입니다. ‘네 손을 품에 넣으라’고 하여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까 문둥병이 들렸습니다.
썩어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음에 다시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고하여 다시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까 여전히 깨끗한 것입니다. 원상회복이 된 것입니다.
썩어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음에 다시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고하여 다시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까 여전히 깨끗한 것입니다. 원상회복이 된 것입니다.
1) 처음에는 문둥병과 같은 어려움이 있음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에는 문둥병과 같이 불순종하고 불평불만만 하다가 그래도 다
시 끝까지 순종을 하면 마지막에는 깨끗해진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야 되겠는데, 처음부터 형통한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다 보면 문둥병과 같이 어려움이 있고, 원망하고 불순종하고, 돌로 치려고 하고,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 나올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끝까지 순종을 하면, 전과 같이 깨끗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순종하면 환난과 핍박과 어려움이 있지만, 그 다음에 끝까지 순종해 나가면 마지막에는 형통한 길이 열린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려고 그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시 끝까지 순종을 하면 마지막에는 깨끗해진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야 되겠는데, 처음부터 형통한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다 보면 문둥병과 같이 어려움이 있고, 원망하고 불순종하고, 돌로 치려고 하고,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 나올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끝까지 순종을 하면, 전과 같이 깨끗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순종하면 환난과 핍박과 어려움이 있지만, 그 다음에 끝까지 순종해 나가면 마지막에는 형통한 길이 열린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려고 그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첫 번째 이적은 지팡이가 뱀이 되고 뱀이 지팡이가 되었는데, ‘네가 하나님께 붙잡혀야 된다’는 것이고, ‘네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붙잡히면 뱀을 지팡이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너를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로 끝까지 사용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두번째 이적은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부터 잘 순종할 줄 알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에 이스라엘 백성을 망하게 한 첫째는 우상숭배, 둘째는 하나님을 시험함, 셋째는 간음, 넷째는 원망, 네 가지 죄악이 나옵니다. 이것이 품에 손을 넣었다가 내어보니까 문둥병이 발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건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더 넣었다가 꺼내니까 여전히 깨끗해졌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에는 최후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잘 된다는 것입니다.
2) 끝까지 순종하면 문둥병이 나아 깨끗해짐
오늘날 우리에게도 처음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때 어려운 일이 닥친다는 것입니다. 명령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다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야 겠다고 하면 환난과 핍박과 고난과 궁핍과 시험이 온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첫째입니다. 또 핍박을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성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상태에서도 계속 순종을 하면, 모든 것을 다 승리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깨끗해져서 최후 승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처음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때 어려운 일이 닥친다는 것입니다. 명령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다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야 겠다고 하면 환난과 핍박과 고난과 궁핍과 시험이 온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첫째입니다. 또 핍박을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성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상태에서도 계속 순종을 하면, 모든 것을 다 승리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깨끗해져서 최후 승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암만 성경을 봐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암만 봤습니까? 암만이면 만 번씩 몇 번이 암만입니까? 만 번도 못보고, 암만 봤다고 하는 것입니다. 암만이라는 것은 만 번씩 여러 번이라는 소리가 아닙니까? 그런데 몇 번 보지도 않고 암만 봤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지 않는 것이 탈입니다. 우리는 신학생들과 교역자들에게 성경을 매일 열 장씩 보라고 합니다. 또 교인들도 매일 열 장씩 볼 수 있으면 봐야 됩니다. 정 바빠서 볼 수 없으면 다섯장이라도 보고, 또 정 바빠서 볼 수 없으면 석 장이라도 봐야 됩니다.
세례 받을 사람은 신약 한 번은 보고 와야만 됩니다.
세례 받을 사람은 신약 한 번은 보고 와야만 됩니다.
요새 신학 박사들이 성경을 보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학 박사들이 성경을 잘 모릅니다. 왜 모르는가 하면 본래 성경을 안 보고, 또 신학교에서도 성경을 많이 안 가르친 것입니다. 읽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은 것입니다. 우리 신학교에서는 아예 강제로 하루에 열 장씩 보
라고 하지만, 요새 신학교들은 성경을 안봅니다. 다른 신학교에서는 성경을 많이 가르치지 않고 성경의 일부만 배웁니다. 그리고 신학생들이 외국에 나가서 성경은 모르면서 자꾸 학설만 공부하는 것입니다.
신신학 학설, 해방신학 학설, 자유주의 신학, 또 무슨 학설 등을 배우기 바쁩니다. 성경은 몰라도 여러 가지 학설을 많이 배워야 학위를 받으니까 성경은 배우지 않고 학설만 배워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지고 엉뚱한 소리하는 신학 박사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다윗이 고고학적으로 실제 인물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경을 얼마나 모르면 다윗이 실제 인물이 아니라는 그 학설을 취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한심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단에서는 앞으로 신학교 교수가 되려면 먼저 성경을 많이 공부하고, 많이 읽고, 성경에 확실히 선 다음에 가서 박사 학위를 받아서 오도록 하게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 가서 여러 가지 학설을 배우고 그 학설 따라다니다가 엉뚱한 것을 가지고 돌아오는 수가 있습니다.
처음에 순종하려고 하면 뭐가 옵니까? 환난이 옵니다. 핍박이 옵니다. 죽인다, 내쫓는다고 합니다. 성경대로 하려고 하면 못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다시 한 번 순종을 하면 여전히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말씀대로 나가려고 하다가 어려움이 올 때, 그만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와도 감당할 시험 밖에는 주시지 않는다. 감당치 못할 시험은 안 주신다. 확실히 알고 끝까지 순종을 하자’고 하면 여전히 깨끗해져서 승리합니다. 주일날 지키는 문제나 십일조 지키는 문제도 처음에 하려고 하면 어려움이 옵니다.
또 안 믿는 식구들이 있으면 못하게 합니다. 문둥병과 같은 환난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고통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다음에 어떻게 하면 됩니까? ‘또 한 번 하자’ 하는 것입니다. 다시 품에 넣었다가 꺼내는 것입니다. ‘또 하자’ 하니까 환난이 조금 물러갔습니다. 거기서 ‘또
하자’ 하면 마지막에는 환난이 다 물러가서 여전히 깨끗해진다는 말씀입니다. 하다가 어려움 당한다고 그만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그러한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또 안 믿는 식구들이 있으면 못하게 합니다. 문둥병과 같은 환난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고통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다음에 어떻게 하면 됩니까? ‘또 한 번 하자’ 하는 것입니다. 다시 품에 넣었다가 꺼내는 것입니다. ‘또 하자’ 하니까 환난이 조금 물러갔습니다. 거기서 ‘또
하자’ 하면 마지막에는 환난이 다 물러가서 여전히 깨끗해진다는 말씀입니다. 하다가 어려움 당한다고 그만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그러한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종하기가 힘들지만 순종해야 됩니다. 처음에 순종하려고 하면 어려움이 많이 옵니다. 고난이 많이 오고 핍박도 많이 오지만 그래도 또 순종을 해나가면 마지막에는 승리합니다. 이것이 승리의 길입니다. 이것이 승리의 길인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승리의 길,
직장에서도 승리의 길, 사업하는 데도 승리의 길인 것입니다. 처음에 순종하려니까 무엇이 옵니까? 고난이 옵니다. 환난이 옵니다. 그러나 ‘또 순종하자’ 하고 계속 순종해나가면 마지막에는 승리가 옵니다. 다 낫습니다. 문둥병도 다 나을 수 있습니다.
이적이 나타난 다음에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은 망하는 길임
이적이 나타난 다음에 자기 자랑을 하면 망합니다. 모세가 이적이 나타난 다음에 자기 자랑을 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도 삼층천에 갔던 것을 몇 년 동안 말 하지 않다가 한 번 말했습니다. ‘삼층천에 갔다. 무슨 이적을 봤다. 자기를 통해서 무슨 병이 났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망합니다. 가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왜 망합니까? 그것을 하나님께서 하셨는데 자기가 했다고 하니까,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간 것이아닙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셨지, 어떻게 자기가 했습니까? 제가 했다고 하는 것 자체가 벌써 마귀 시험에 든 것이고, 제가 했다고 자랑하는 것은 벌써 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절대 자랑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문둥병 하나 못 고치시겠습니까? ‘내가 기도해줘서 문둥병 고쳤다’고 하면 그 사람은 망할 사람입니다. 제가 기도해서 문둥병 고쳤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쳐주셨다’고 하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만 자랑해야 됩니다. 나는 쇠하고 그만 흥해야만 되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나는 한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 다 하셨다’는 것입니다.
4. 세 번째 이적
하수를 육지에 부으면 피가 됨
본문 8-9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이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둘째 이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하수를 조금 취하여다가 육지에 부으라 네가 취한 하수가 육지에서
피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 이적은 나일강 물을 조금 취하여 떠서 육지에다가 부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강물이 피가 된다는 것입니다. 나일강은 애굽을 상징하는 것인데, 애굽을 앞으로 징계한다는 뜻입니다. 애굽의 나일강이 좋은 강이어서 사람들이 전부 그것으로 먹고 사는데, 하나님께서 애굽을 쳐서 피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애굽이 아무리 강한 것 같아도, 말씀을 순종해 나가면 애굽을 쳐서 재앙을 내리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애굽에서 나올 때 몇 가지 재앙이 내려왔습니까? 열가지 재앙이 내려 왔습니다. 한번 해봅시다. 첫째 피, 둘째 개구리, 셋째 이, 넷째 파리, 다섯째 짐승, 여섯째 독창, 일곱째 우박, 여덟째 어두움, 아홉째 메뚜기, 열째 장자입니다. 열 가지 재앙입니다. 이것을
앞의 한 글자씩 따서 읽으면 ‘피, 개, 이, 파, 짐, 독, 우, 메, 어, 장’하면 열 가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실 것을 본문에서는 하수가 육지에서 피가 될 것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표한 것입니다.
앞의 한 글자씩 따서 읽으면 ‘피, 개, 이, 파, 짐, 독, 우, 메, 어, 장’하면 열 가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실 것을 본문에서는 하수가 육지에서 피가 될 것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표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길을 막는 자들에게 재앙을 내리실 것을 보여주심
피는 재앙을 내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열 가지 재앙을 내리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앞으로 인도해줄 것이다. 그러니까 너는 순종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우리의 앞길을 막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려서 형통한 길을 열어주신다는 뜻입니다. 성도가
나가는 길, 또한 하나님의 교회가 나가는 길에 방해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나일강 물이 피가 되는 것처럼 재앙을 내리셔서 앞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적은 그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순종을 잘 하면 재앙을 거둬서 평안하게 해주시고,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역하고 불순종하면, 나일강 물이 아무리 좋은 물이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재앙을 내려서 먹고 살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두려운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서 세 가지 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십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 세 가지의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우리를 통해 나타나, 우리로 하여금 이스라엘 구원운동, 곧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이루어서 최후까지 하나님의 역사와
구원 운동이 승리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또 이런 신앙을 우리들도 가져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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