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7일 토요일

출애굽기 5:1-23 선전포고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선전포고
출애굽기 5:1-23

1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가서 바로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2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3그들이 가로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가기를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온역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4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으로 역사를 쉬게 하느냐 가서 너희의 역사나 하라 5또 가로되 이제 나라에 이 백성이 많거늘 너희가 그들로 역사를 쉬게 하는도다 하고 6바로가 당일에 백성의 간역자들과 패장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7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 소용의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로 가서 스스로 줍게 하라 8또 그들의 전에 만든 벽돌 수
효대로 그들로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 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자 하나니 9그 사람들의 고역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 10간역자들과 패장들이 나가서 백성에게 일러 가로되 바로의 말씀에 내가 너희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리니 11너희는 짚을 얻을 곳으로 가서 주우라 너희 일은 조금도 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2백성이 애굽 온 땅에 흩어져 곡초 그루터기를 거두어다가 짚을 대신하니 13간역자들이 그들을 독촉하여 가로되 너희는 짚이 있을 때와 같이 당일 일을 당일에 마치라 하며 14바로의 간역자들이 자기들의 세운 바 이스라엘 자손의 패장들을 때리며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에 만드는 벽돌의 수효를 전과 같이 채우지 아니하였느냐 하니라 15이스라엘 자손의 패장들이 가서 바로에게 호소하여 가로되 왕은 어찌하여 종들에게 이같이 하시나이까 16종들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고 그들이 우리 더러 벽돌을 만들라 하나이다 종들이 매를 맞으오니 이는 왕의 백성의 허물이니이다 17바로가 가로되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자 하는도다 18이제 가서 일하라 짚은 너희에게 주지 않을 지라도 너희가 벽돌은 여수이 바칠지니라 19이스라엘 자손의 패장들이 너희의 매일 만드는 벽돌을 조금도 감하지 못하리라 함을 듣고 화가 몸에 미친 줄 알고 20그들이 바로를 떠나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선 것을 만나 21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로 바로의 눈과 그 신하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22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고하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23내가 바로에게 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함으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1. 바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으나 거절함

본문 1절에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가서 바로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왕의 한마디면 죽임을 당하거나 감옥에 갇힐 수 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가서 전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을 광야로 나가게 하여 나를 섬기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에 바로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본문 2절에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바로가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도 보내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본문 3절에 “그들이 가로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하오니 가기를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온역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사흘길 쯤 광
야에 가서 희생을 드리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치실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순종을 안 하면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흘 길이라고 했습니까? 처음에 사흘 길을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합니까? 그 다음에는 그곳에 가 봐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단 사흘 길을 가서 제사 드리라고 하셨으니까 사흘 길을 가는 것이 첫째 목적입니다.
그리고 제사를 드린 다음에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가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본문 4-5절에 “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으로 역사를 쉬게 하느냐 가서 너희의 역사나 하라 또 가로되 이제 나라에 이 백성이 많거늘 너희가 그들로 역사 쉬게 하는도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요청한 것에 대해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벽돌구이와 여러 가지 일을 하는데, 사흘 길을 갔다 오면 일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일하는 것을 쉬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곧 안 된다는 것입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몇 명이라고 했습니까? 육십만 명입니다.
이십 세 이상으로 전쟁에 나갈만한 남자가 육십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일하지 않고 사흘 길을 가면, 사흘 동안 일터가 전부 비게 되니 얼마나 손해가 나겠습니까? 애굽 나라에 말할 수 없는 손해가 나기 때문에 바로가 허락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2. 고역을 시킴

본문 6-9절에 “바로가 당일에 백성의 간역자들과 패장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 소용의 짚을 전과 같이 주지말고 그들로 가서 스스로 줍게 하라 또 그들의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로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자 하나니 그 사람들의 고역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바로가 감독들을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의 고역을 무겁게 하라고 명하였습니다. 감독들은 애굽 사람들입니다. ‘너희
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는 벽돌 소용의 짚을 주지 말고 가서 짚을 주워서 벽돌을 구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숫자는 짚을 안 줘도 같은 숫자의 벽돌 채우라는 것입니다.

바로가 왜 이렇게 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게을러서 하나님께 희생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을 더 무겁게 늘려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고역을 시킴으로 나가겠다는 생각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에 벽돌을 만들 때 짚을 넣고 만들었습니다. 벽돌을 보면 짚은 안 보입니다. 그러나 진흙을 이길 때 짚을 썰어서 넣고 그 다음에 벽돌을 찍어서 만든 모양입니다. 그래야 벽돌이 갈라지지 않을 것 아닙니까? 짚이 들어가야 안 갈라집니다. 바로 는 이 사람들이 게을러서 지금 여호와께 제사를 드린다는 것이니까 고역을 시키면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안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짚을 주지 않지만 벽돌 숫자는 여전히 그대로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벽돌 숫자를 그대로 하라는 것은 만일 하루 백만 장씩 벽돌을 만들었으면, 그대로 하루 백만 장씩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짚 줄 때와 같이 짚을 안 줘도 벽돌 숫자는 똑같이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짚을 안 주니 온 들판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짚 등을 주워서 벽돌 만드는 데에 섞었습니다.

본문 12절에 “백성이 애굽 온 땅에 흩어져 곡초 그루터기를 거두어다가 짚을 대신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곡초 그루터기는 벼 베고 남은 뿌리입니다. 그런 것이 곡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곡초, 풀, 그루터기를 거두어다 짚을 대신했습니다. 그러니 벽돌 숫자가 전보다 적게
나올 것이 아닙니까? 짚을 줄 때는 바로 넣어서 만들었는데, 주워서 하려니 벽돌의 수효가 전보다 적게 나오는 것입니다. 주워 오는 시간에는 벽돌을 못 만들기 때문입니다.

본문 13-14절에 “간역자들이 그들을 독촉하여 가로되 너희는 짚이 있을 때와 같이 당일 일을 당일에 마치라 하며 바로의 간역자들이 자기들의 세운 바 이스라엘 자손의 패장들을 때리며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에 벽돌의 수효를 전과 같이 채우지 아니하였느냐하니라”고 하였는데, 바로의 간역자들, 감독들이 벽돌 수효가 적다고 패장을 때렸습니다. 이 당시 일할 때에 맨 위에 애굽 사람들인 감독들이 있고 그 아래로 이스라엘 백성의 감독들, 패장들을 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들어 내는 벽돌 숫자가 전과 같지 않으니 감독들이 이스라엘 패장들을 불러다 때렸습니다. 때리면서 어제와 오늘 만드는 벽돌 수가 전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역이 가중되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 고통이 더욱 커진 것입니다

3. 이스라엘 자손의 패장들이 바로에게 호소함

본문 15-16절에 “이스라엘 자손의 패장들이 가서 바로에게 호소하여 가로되 왕은 어찌하여 종들에게 이같이 하시나이까 종들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고 그들이 우리더러 벽돌을 만들라 하나이다 종들이 매를 맞으오니 이는 왕의 백성의 허물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패장들이 바로 앞에 갔습니다. 바로에게 종들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벽돌을 만들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종들이 매를 맞게 된다고 진정을 했습니다. 그때 바로가 무엇이라고 대답했습니까?

본문 17-18절에 “바로가 가로되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자 하는도다 이제 가서 일하라 짚은 너희에게 주지 않을지라도 너희가 벽돌은 여수히 바칠지니라”라고 대답하였습니다.

4. 모세와 아론을 원망함

본문 19-21절에 “이스라엘 자손의 패장들이 너희의 매일 만드는 벽돌을 조금도 감하지 못하리라 함을 듣고 화가 몸에 미친 줄 알고 그들이 바로를 떠나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선 것을 만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로 바로의 눈과 그 신하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그 패장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을 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운 물건이 되게 하였다고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칼을 주어 죽이게 한다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일을 못하는 자는 죽인 것 같습니다. 때리기도 하고 그래도 못하면 죽이기도 한 모양입니다. 큰 핍박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까 말할 수 없는 곤고와 핍박이 온 것입니다.

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음

본문 22-23절에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고하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함으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가서 부르짖습니다. 왜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고 왜 자기를 보내셨는지를 물었습니다. 바로에게 가서 말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학대를 받는데 하나님도 건져주지 않으시니 어찌하겠습니까? 하며 여호와께 간구했습니다. 지금 백성들은 원망하고 하나님은 구원해 주시지 않아서 모세는 다급하고 상당한 곤궁에 빠졌습니다.

마귀가 자기 수하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고난을 줌

그런데 왜 바로가 더 고역을 시킵니까? 나가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느라고 고역을 더욱 더 많이 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나갈 것 같으니까 이것을 막으려고 고역을 더욱 많이 시키는 것입니다. 마귀가 자기 종들이 자기 수하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더욱 고통을 많이 주어서 벗어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성도들이 마귀 수하에서 종살이하다 자유와 해방을 얻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려고 하면 마귀가 더욱 고난을 주어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말세에도 마귀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남은 때가 얼마 안 남은 줄을 알기 때문에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영의 자유를 얻으려고 애굽에서 벗어나오려고 하면 고난이 더 심하게 옵니다. 그래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애굽의 종살이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애굽에서 나와야 영적인 자유를 누림

그러나 거기서 나와야 영이 살고 자유와 해방이 됩니다. 애굽에서 나와야 영적 생명의 세계로 가는 것이고 가나안 땅을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나오지 못하면 영적 생명과 자유가 없습니다. 육신의 생명보다는 영의 생명을 더 중히 여겨서 나오려고 해야 합니다. 애굽에서 육신이 잘 사는 것보다는 영의 자유를 찾으려면 나와야 합니다. 또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 하나님이 주신 복지를 애굽에서 나와야 갈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힘들다고 주저앉으면 안됩니다. 일단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생명의 세계로 나가야 됩니다.
아무리 고난이 심해도 계속 나가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뒤를 돌아보거나 인도자를 원망하는 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모세를 원망하면 안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심부름하는 것이고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뒤를 돌아보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계속 하나님만 믿고 바라보면서 참고 견디며 애굽에서 나가려고 애를 써야 됩니다.

이렇게 이길 줄 믿고 힘을 쓰면 마침내는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막는 세력, 붙잡는 세력을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자유와 해방을 얻고 생명 길을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생명길을 걸어가는 방법입니다. 아무리 고난이 와도 하나님의 도와주
실 것을 바라보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마침내 하나님께서 나가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못 참아 그만 뒤를 돌아보거나 주저앉으면 일 다 틀어집니다. 생명길 걸어가려고 일어섰다가 그만 주저앉으면 얼마나 비참한 것입니까? 주저앉지 말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성공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끝까지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것을 믿고 확신을 가지고 가나안을 향해서 가야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계속해서 달음박질해야 되겠습니다.

고난이 심해도 뒤로 물러가면 육신의 자리도 돌아가는 것임

아무리 마귀 종들이 꽉 붙잡고 못 나가게 해도 애굽의 종살이 하던 곳에서 나가야 됩니다. 나가는 것이 말씀이고 주의 명령이니까 더욱 고난이 심해져도 나가야 됩니다. 그러면 삽니다. 우리 교회에 어떤 집사가 있었는데, 그 집사의 남편이 교회를 안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우리 교회 말고 다른 교회를 나가면 교회를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는 도시락 싸가지고 하루 종일 있어야 하고, 주일날 놀러도 못 다니는 교회니까 안 나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교회로 가서 한 시간만 예배드리면 교회에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집사가 기도를 많이 해 보았습니다. ‘내가 남편을 구원해야 되느냐 나 혼자 구원받느냐’하고 기도를 많이 해 본 모양입니다. 그리고 남편 구원 받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남편이 우리 교회는 안 나오겠다고 하니 한 시간만 예배드리는 다른 교회를 가서 남편이 교회에 나가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집사는 기도하면서 많이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 구원을 목적으로 남편 나가자는 교회 나갔습니다. 나가서 한 시간 예배드리니 남편은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가던 집사는 남편으로 인해서 신앙이 뒤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좋아하겠지만 누가 섭섭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섭섭하시겠습니까? 다른 것은 따라가지 아니하고 하루 종일 하나님만 따라가고 말씀만 사모하고 영적 생명길만 걸어가던 집사가 한 시간만 예배드리고 놀러다니니 얼마나 하나님 섭섭하시겠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집사가 영이 살겠습니까? 말씀을 생명 삼아 나가야 되겠는데 한 시간 예배드리고와서 육신 중심으로 하는데 무슨 영혼이 살겠습니끼?

그 집사의 남편이 이제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교회 안 나갈 것은 뻔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마지막 고개까지 올라가야 됩니다. 고개 거의 다 올라가서 뒷걸음치면 일 다 틀어집니다. 열흘 시험인데 열흘 동안까지 채우면 그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쉽게 나가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여드레 올라가다가 뒤로 물러서고, 아흐레 올라가다가 뒷걸음칩니다. 올라갈수록 더 고난이 심할 것 아닙니까? 고개 올라가려면 처음에는 쉽게 올라가다가 좀 더 올라가면 고난이 심합니다. 올라갈수록 고난이 극심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가서 ‘열흘시험’ 합격하면 그 다음에는 쉽습니다.

그런데 열흘 시험을 못 이겨서 뒤로 물러가면, 영의 자유를 버리고 육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마귀 종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 이루어 나가야 하는데 마귀 종이 되어서 마귀의 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 열흘 시험을 채워야 합니다. 열흘 시험은 갈수록 고난이 더욱 심해지지만 끝까지 통과하면 그 다음에는 무난히 나갈 수 있습니다. 그것을 못 참아서 뒤로 물러가면 그 사람은 비참해집니다.

열흘 시험을 이기면 승리의 면류관을 줌

열흘 시험을 다 채워야 됩니다. 마귀는 열흘 거의 다 되면 바짝 힘을 써서 더 못 가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바짝 힘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 최후 순간까지 하나님 말씀 붙들고 영적생명의 세계로 따라가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
다 떨어져도 말씀 하나 붙잡고 끝까지 가면 그 다음에는 합격입니다.
그러면 자기도 살고 다른 사람도 다 살릴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뱀도 꼬리 잡아서 능력으로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열흘 시험 다 채워 합격이 되어야 됩니다. 마지막에 더욱 심해지는데 끝까지 말씀으로 이겨서 합격해야 합니다.

열흘 시험이 어디 있습니까?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
라”고 하였습니다. 열흘 동안 시험인데 합격 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준다고 했습니다. 점점 더 심한 고난이 오지만 끝까지 참아서 이기면 승리의 면류관을 준다고 했습니다. 열흘 동안 끝까지 고난을 참고 믿음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진리 양보하지 말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마침내는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십니다. 자유와 해방과 생명의 길을 걷게 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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