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7일 금요일

잠언 1:1-19 잠언의 목적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잠언의 목적
잠언 1:1-19

1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2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3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4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5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6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7여호와를 경외 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8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9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10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찌라도 좇지 말라 11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12음부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게 통으로 삼키자 13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에 채우리니 14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찌라도 15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16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데 빠름이니라 17무릇 새가 그물 치는 것을 보면 헛일이겠거늘 18그들의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19무릇 이를 탐하는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1. 잠언의 목적

잠언은 솔로몬이 기록하였습니다. 기록한 때는 주전 약 1000년경인데, 다윗의 때가 1000년이니까 약 1000년이 못되었을 것 같습니다.
잠언(箴言)은 공리(公理), 공적, 이치, 유사하다, 근사하다, 정당하다, 옳은 말이라는 뜻입니다. 좋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잠언을 많이 알면 공적과 이치를 많이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좋은 말과 정당한 말을 하고, 진리를 많이 아는 사람이 됩니다.

본문 1-2절에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하였습니다. 열왕기상 4장 32절에 “저가 잠언 삼천을 말하였고 그 노래는 일천다섯이며”이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잠언 삼천을 말하였는데, 그 중에 일천만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한다’고 하였는데, 잠언을 통해서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고,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합니다. 명철은 식별력, 진리를 바로 이해하는 지혜를 말하며, 분별력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언을 공부하면 분별을 잘하게 됩니다. 잠언이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지혜를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3-4절에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언을 통해서 지혜롭고 의롭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의로운 말과 의로운 교훈을 하게하며, 공평한 모든 것을 알게 합니다. 잠언을 통해서 정직한 것을 알게 하고, 훈계를 받게 하며, 좋은 교훈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을 많이 공부하면 어리석은 자가 슬기롭게 됩니다. ‘슬기롭다’는 것은 시비를 구별한다는 뜻으로,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무엇을 준다고 하였습니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몇 가지입니까? 일곱 가지입니다. 첫째로 잠언은 사람을 지혜롭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의롭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공평하게 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정직하게 행하는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젊은 자에게 지식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일곱째는 근신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 외우시기 바랍니다. 잠언을 왜 기록하였습니까? 사람으로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하게 하기 위함이고,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고,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을 주기 위함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본문 5 에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잠언을 잘 공부하면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고,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계획을 얻을 것입니다.

본문 6절에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잠언을 주어서 비유와 지혜와 오묘한 말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2. 여호와를 경외하고 정직하며 부모를 순종할 것

본문 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임을 우리가 언제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본이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모든 것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미련한 자입니다. 지식이 없는 사람입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모든 것을 알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모르는데 무엇을 알겠습니까? 창조자를 모르고 그 집의 주장자를 모르고 주인을 모르는데, 그 집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자이시고 주인이시며 주장자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그런데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미련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므로, 언제나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항상 경외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 8-9절에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성경대로 바로 가르치는 교훈과 어머니가 성경 법대로 바로 가르치는 교훈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성경대로 바로 가르치는 교훈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고 목의 금사슬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바로 배우고 성경을 떠나지 않는 것이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고 목의 금사슬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대로 바로 가르쳐주는 말씀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성경대로 바로 가르쳐주는 그 말씀을 떠나지 말고, 또 목사가 성경대로
바로 가르쳐주는 그 말씀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교사가 성경대로 바로 가르쳐주는 그 말씀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머리의 아름다운 관과 목의 금사슬이 된다고 하였으니,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바로 가르쳐주는 말씀이 면류관입니다. 그리고 목의 금사슬이 되니까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바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고, 바로 배운 다음에는 그 말씀을 떠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머리에 면류관이 되고, 목에 금사슬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는 아름다운 사람과 영광스런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영광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말씀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식의 근본이 무엇입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것을 알고, 언제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니, 여호와를 경외하면서 모든 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또 부모에게나 목사에게나 교사에게서 배운 성경말씀을 떠나지 않으면, 그것이 머리에 아름다운 관이 되고 목에 금사슬이 됩니다.

3. 근신하여 악인의 유혹을 좇지 말 것

악한 자의 꾐에 빠지지 말라

본문 10절에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찌라도 좇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의 꾀를 좇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미혹이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미혹에 들지 않도록 언제나 힘을 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 앉아 계실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말세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첫째가 사람의 미혹이 많을 터인데, 그 미혹에 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말세에 미혹이 많이 있습니다. 미혹에 빠져서 탈선의 길을 걷고, 진리에서 떠나 죄악된 길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미혹에 빠져 들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 11-12절에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음부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게 통으로 삼키자”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가 와서 유혹하기를 가만히 엎드렸다가 해치우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유익을 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주고 유익을 보자는 것은 악한 생각입니다. 그러한 유혹을 좇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3-15절에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에 채우리니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찌라도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는 남에게 손해를 주더라도 돈을 많이 벌자, 불의한 일을 해서라도 우리 집의 재산을 채우자,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전대 하나만 두자고 유혹합니다.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자’는 것은 악한 일을 누가 먼저 하느냐, 누가 앞장을 서느냐를 정하려고 제비를 뽑는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악한 일이라 할지라도 돈을 벌고 전대를 채우자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본문 15-16절에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데 빠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와 같이 길을 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그와 같은 태도를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가 자신의 길에서 잘된 것 같이 말하고 행동하여도, 그들의 꾐에 넘어가 그들과 행동을 같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길을 밟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무릇 새가 그물 치는 것을 보면 헛일이겠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의 꾀를 좇아가면 새가 그물 치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새가 그물 치는 곳으로 달려가면 곧 그물에 걸려서 죽습니다. 그러나 새가 그물 치는 것을 보면 그물은 헛것이 됩니다. 사람이 그물 치는 것을 보게 되면 새는 그리로 날아가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마귀는 악한 자를 통해 역사하여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그물을 칩니다. 따라서 악한 자에게 꾀이는 것은 마귀가 쳐놓은 그물에 끌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을 행하는 자는 그물 속으로 들어가는 새와 같습니다.

성경말씀을 바로 배워 믿고 그대로 행하면 악한 자의 그물에 걸리지 않음

그런데 우리가 미리 그물을 보고 있으면 그물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물을 어떻게 하면 볼 수 있겠습니까? 성경말씀을 보고 그물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악한 자들이 꾀이는 것을 그물이라고 했으니, 이 성경을 배우고 그대로 믿으면 그물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악인의 꾐에 빠지면 망하는 것이다. 당장은 잘될 것 같아도 그물과 같다’고 알 수 있습니다. 이 성경을 믿는 사람은 ‘아, 이것은 그물이다. 불의한 일은 그물이니까 여기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알고, 그것에 안 들어갑니다. 그러나 성경을 안 믿는 사람은 그물에 후다닥 뛰어 들어갔다가 그대로 망합니다. 마귀에게 잡히고 맙니다. 악한 자들도 앞을 내다보지 못하다가 그물에 걸려서 멸망하였습니다. 악한 자들 역시 그 악한 일을 할 때에는 잘되려고 합니다. 잘 먹고 잘 입으며, 마음대로 살아보려고 악한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잘될 것 같아도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요새 신문기사를 보면 악을 행하는 사람과 불의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도 나름 잘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잘 살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다가 그물에 걸립니다. 정당하지 못한 일, 뇌물을 주는 일, 부당한 일 등을 해서 잘 해보려고 하다가, 그물에 걸려서 감옥에 들어가고 재판을 받습니다. 구속을 당합니다.
우리는 그물을 잘 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물을 볼 수 있습니까? 성경을 바로 배우고, 그 성경을 믿으면 그물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그물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바로 배우지 못한 사람은 그물인 줄 모르고 잘되는 줄로만 알고 나가다가 결국 그물에 걸려서 망합니다. 우리는 앞을 내다봐야 합니다.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방법은 성경밖에 없습니다. 성경에서 하지 말라는 것은 그만 두는 것이 잘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옳지 않다고 한 곳은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물에 걸리지 않습니다.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유익이 있을 것이다. 재미가 있다. 좋다’고 유혹할 때에 그 미끼를 먹으려고 하면 그물에 걸리고 맙니다.
새를 잡을 때에 창에 미끼를 놓으면 새가 창은 보지 못하고 벌레를 보고 달려들다가 창에 부딪혀 죽곤 합니다. 먹이를 먹으려다가 죽는 것입니다. 물고기의 경우에도 물고기가 좋아하는 것을 미끼로 놓으면 그것을 먹으려고 하다가 낚싯대에 걸려서 잡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안 먹어야 합니다. 아무리 맛있어 보이고, 그것을 먹으면 배가 부를 것 같아도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먹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 해를 지낸 큰 새들은 미끼를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파묻어놓은 것도 알고, 창이 있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어린 것들이 그물에 걸립니다. 하여간 그물 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물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나가면 생명을 잃게 됩니다.

욕심을 버리고 성경말씀을 따라가라

본문 18-19절에 “그들의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무릇 이를 탐하는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탐하는 자’는 새가 그물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자기 생명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욕심이 사람을 죽입니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다 욕심 때문에 망합니다. 이를 탐하다가 결국 올무에 걸리고 함정에 빠지고 덫에 치이며, 그물에 걸립니다.

욕심이 몇 가지가 있다고 하였습니까? 첫째가 물질에 대한 욕심, 둘째는 정욕, 셋째는 사욕(私慾)입니다.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버리지 않고 그것을 따라가면 모두 그물에 걸려 자기 생명을 잃게 됩니다. 망하는 사람들은 모두 욕심 때문에 망합니다. 감옥에 간 사람들도 모두 욕심 때문에 들어갑니다. 시편 1편 4-6절에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 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왕겨가 바람에 모두 날아가는 것처럼, 악인이 날아갈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입니다. 욕심을 품은 악인의 길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 값은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 또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친다고 하였습니다. 잠언 28장 1절에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죄가 무서운 것입니다. 호랑이가 무섭다, 사자가 무섭다, 또 무엇이 무섭다고 하지 말고 죄가 무서운 줄 알아야 합니다.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반드시 망합니다. 죄를 지은 것은 독약을 먹은 것과 같습니다.

누가복음 21장 34절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방탕하고 술 취하며 생활의 염려를 하다가, 악한 자의 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지 않으면 덫에 걸리고 맙니다. 방탕과 술 취하는 것, 즉 세상주의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날이 덫과 같이 임하여 그 덫에 걸려 생명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새가 그물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하듯이,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그물에 걸리는 자들은 성경을 바로 배우지 못하고 믿지 않은 채 욕심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경을 따라가지 않고 욕심을 따라갑니다. 어떻게 해야 이익을 얻을까, 어떻게 해야 돈을 잘 벌 수 있을까 하다가 결국 그물에 결려서 완전히 망하고 맙니다. 우리는 이익을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 앞에 바로 살다가 바로 죽자는 생각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렇게 살면 무엇을 먹고 삽니까?”라고 묻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우리를 내실 때에 일생 동안 먹고 살 것을 모두 준비하시고 내셨습니다. 준비해놓지 않으시고 내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일생 동안 먹고 살 것을 모두 준비해주신 줄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어떻게 해야 찾아 먹을 수 있습니까? 성경에 보면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날아만 다니면 먹고 살 것을 다 찾아 먹을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계속 날아다니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들을 먹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날아만 다니면 됩니다. 날아다니면 하나님께서 다 먹고 살게 해주십니다. 준비해놓으신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날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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