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3일 목요일

잠언 8:1-36 지혜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며 지혜를 구하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지혜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며 지혜를 구하라
잠언 8:1-36

1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2그가 길가의 높은 곳과 사거리에 서며 3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가로되 4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5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찌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찌니라 너희는 들을찌어다 6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7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8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9이는 다 총명 있는 자의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의 정직히 여기는 바니라 10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11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12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13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14내게는 도략과 참 지식이 있으며 나는 명철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 15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16나로 말미암아 재상과 존귀한 자 곧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 17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18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19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 20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21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22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
셨으며 23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24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27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28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있게 하시며 29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로 명령을 거스리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30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31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 32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33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34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35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36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1. 지혜가 각처에서 부르짖음

지혜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야 함

본문 1-3절에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그가 길가의 높은 곳과 사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가로되”라고 하였습니다. 지혜가 길가의 높은 곳과 사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부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는 와서 지혜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인자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본문 5-6절에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찌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찌니라 너희는 들을찌어다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고 하였습니다. 지혜가 부르는 소리를 들으라는 것입니다. 이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 또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 하나님의 하시는 일 등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명철은 그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다 깨닫는 것입니다.
즉, 진리를 밝히 깨닫는 것이 명철인 것입니다. 지혜가 길가, 사거리, 성문 곁과 문 어귀, 그리고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부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지혜가 부르는 그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5장 1-5절에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세가 되었다는 것을 사방에서 소리 질러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자가 통곡하게 된다는 것을 사방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또 품꾼의 품삯을 주지 아니한 것이 소리를 지른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지혜가 사방에서 부르짖는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나가시는 것을 사방에서 나타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악은 징계하시고 선에 대해서는 상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의 되는 일들을 보며 말세가 다 되었다고 하는데, 그것도 부르짖는 것입니다. 다 지혜가 부르짖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다는 것을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부르짖고 있습니다.

잠언 4장 18-19절에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의 길이 돋는 햇볕과 같아서, 점점 빛나 원만한 광명에 이르는 것을 볼 때에 그것도 지혜가 부르짖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악인은 어떻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걸려 넘어간다고 하였습니다. 망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지혜가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부르짖는 것이 지금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 그것도 하나님의 지혜가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가 부르짖는다는 것의 제일 중요한 면은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지혜가 부르짖는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이 하나님의 지혜가 아닙니까? 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지혜이십니다. 그러니까 이 바른 복음이 전파되고, 예수님이 전파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가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여간 성문과 길 등 사방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부르짖는 것입니다. 또 복음이 전파되는 것과 진리에서 탈선된 교회들이 나타나는 것도 지혜가 부르짖
는 것입니다. 일변 흥하고 일변 망하는 흥망성쇠(興亡盛衰)도 하나님의 지혜가 부르짖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러한 것들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세상 떠나는 사람을 보고 배워야 하고, 안 믿고 세상 떠나는 사람을 보고도 배워야 합니다. 모든 경우에서 지혜가 부르짖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지혜의 부르짖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사방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들을찌어다’라고 하였는데, 다 들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면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또 거기에서 진리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명철을 얻으라는 것은 거기에서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진리에 대해서 바른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분별력이 있어야 하고, 바른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눈은 항상 어떻게 보라고 하였습니까? 잠언 4장 25-27절에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지혜가 부르짖는 것입니다. 바른 진리를 찾아서 바로 가라는 것입니다. 눈꺼풀은 어떻게 합니까? 곧게 보라고 하였습니다. 곁눈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보지 않을 것을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쓸 데 없는 것을 보면 안 됩니다. 눈꺼풀을 곧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미혹을 받습니다. 하와도 눈꺼풀을 곧게 하지 못하다가 미혹을 받았습니다. 선악과를 보았기 때문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열매가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습니다. 안 보았으면 괜찮았을 것인데, 그것을 무엇을 하려고 보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눈꺼풀을 곧게 하지 못한 것입니다. 눈은 바로 보고, 눈꺼풀은 곧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발의 행할 첩경은 평탄케 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발을 든든히 하라는 것입니다. 발로 든든한 길에 다니게 하라는 것입니다. 위험한 길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예 산비탈과 같이 위험한 데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든든한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악한 길은 근처에도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더하
지도 말고, 덜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할 것을 안 해도 안 되고, 안 할 것을 해도 안 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마음은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상심하거나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무엇을 받아들이라고 하였습니까? ‘내 말’, 즉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잠언 4장 20-21절에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에서 떠나지 말며 마음속에 지키라는 것입니다. 참 좋습니다. 다 지혜가 부르짖는 것입니다.

첫째가 말씀입니다. 말씀을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주의하고, 또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을 말씀에서 떠나게 말며, 마음속에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첫째입니다. 둘째는 무엇입니까? 마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잘 지켜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눈은 바로 보고, 눈꺼풀은 곧게 하며, 그 다음에 길은 평탄케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발을 든든히 하라고 하였습니다. 든든한 길로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혜가 부르짖는 말을 잘 듣고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지혜 있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명철 있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임

본문 7-11절에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이는 다 총명 있는 자의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의 정직히 여기는 바니라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원하는 것을 여기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선하고 정직하며, 진리입니다. 또 의롭고, 굽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총명한 자가 그것을 받아야 하는데, 너희는 은을 받지 말고 무엇을 받으라고 하였습니까?

본문 10절에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훈계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또 정금보다 무엇을 얻으라고 하였습니까? 말씀의 지식, 바른 지식을 얻으라는것입니다. 지혜가 무엇보다 귀하다고 하였습니까? 진주보다 낫습니다.
원하는 모든 것을 여기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많이 있지만 이 지혜에다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행복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서 사는 것이 제일 귀한 것입니다. 진주와 정금보다 그것이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2. 지혜를 구하라

본문 12-13절에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악을 행하면서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다 헛된 것입니다.
잠언 1장 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복의 근본, 지식의 근본입니다. 그것이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선이시기 때문에 언제든지 악과는 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을 용납하실 수 없고, 악을 행하는 자와 동행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악을 미워하고 악에서 떠나게 됩니다. 따라서 성도는 악한 것이 들어오면 언제나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것, 거만한 자, 악한 행실, 패역한 입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말 등을 미워하십니다.
다시 말하는데 악과 하나님은 동행할 수 없습니다. 악을 행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헛된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악을 회개해야만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 속에 있는 악을 찾아서 회개하며 나가야 합니다. 입으로 범한 죄, 마음으로 범한 죄, 교만한 죄, 거만한 죄 등을 찾아서 회개하고, 항상 겸손한 가운데에서 악을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 14절에 “내게는 도략과 참 지식이 있으며 나는 명철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라고 하였습니다. 지혜에는 도략이 있고, 좋은 모략이 있으며, 지식과 명철, 능력이 있습니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지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일, 말씀을 순종하는 일이 다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모략을 베풀려고 할 것 없습니다. 성경말씀대로만 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모략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의 설계이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참된 지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이 있습니다. ‘명철’은 바른 판단력입니다.

본문 15-16절에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나로 말미암아 재상과 존귀한 자 곧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나로 말미암아’라는 것은 신령한 지혜가 아니라 세상 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와 그 섭리를 말합니다.
지혜가 두 가지입니다. 신령한 지혜가 있고, 육신의 지혜가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를 보면 세상 지혜로는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육신의 지혜는 세상 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잠시 동안 말하는 것입니다. 왕들이 세상 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치리하고, 방백들이 공의를 세웁니다. 즉, 세상 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왕들과 재판장, 방백들이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령한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말씀을 가지고 다스리면 더 잘 다스릴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습니다. 성경말씀대로 다스리는 왕과 방백, 또 성경 말씀대로 다스리는 재상, 재판관들이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 계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일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더욱 기뻐하십니다. 그런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만물에도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나 있습니다. 세상 만물과 만물 가운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역사가 들어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그것을 보고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물에 나타난 지혜도 잘 이용하면 괜찮습니다. 세상 법은 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만든 것이고, 다스리는 것도 하나님의 지혜로 하는 것인데, 특별 계시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룰 수는 없습니다. 만물에 나타난 지혜는 하나님께서 해놓으신 것을 가지고 찾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하나님께서 만물에 지혜와 능력과 모든 것을 나타내주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바로 찾으면 세상에서도 괜찮습니다. 또 바로 이용하면 세상에서 괜찮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영생이 없습니다. 특별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지혜에 생명과 영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별 계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 성경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일을 해나가야겠습니다.

본문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혜를 찾을 수 있습니까? 만날 수 있습니까? 지혜를 찾는 자, 사랑하는 자, 높이는 자, 품는 자, 지혜를 간절히 찾는 자가 만납니다.
잠언 4장 6-9절에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찌니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를 버리지 말라, 지혜를 사랑하라, 지혜를 얻으라, 얻는 자가 지혜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잠언 4장 8절에는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를 찾는 자와 사모하는 자가 지혜를 만나고,
지혜를 품는 자가 그것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를 높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지혜를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찾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언제나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서, 이 지혜를 소유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며, 간절히 찾는 자가 만납니다. 사모하는 마음, 간절한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떠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를 떠난 증거가 됩니다. 우리가 언제나 회개하고 돌이켜서, 사랑하는 마음과 간절한 마음, 찾는 마음을 가져야 지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지혜를 떠나지 말라고 하였는데, 언제나 지혜를 품고, 지혜를 높이고, 지혜를 사모하며, 지혜와 동행하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3. 부귀와 장수와 재물이 지혜에 있음

본문 18절에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부귀와 재물, 의도 지혜에 있습니다.

본문 19절에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천은(天銀)’은 은을 잘 연단한 좋은 은입니다. 지혜의 열매가 금이나 정금보다 낫습니다. 지혜의 열매는 생명입니다. 지혜의 열매는 영이 사는 것이고, 존귀해지는 것이며, 머리에 면류관을 씌워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존귀하게 해주고 높이는 것입니다. 금이나 정금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금이나 정금은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혜의 열매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혜의 소득은 천은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잠언 4장 22절에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지혜에 생명이 있고 건강도 있어서, 지혜를 가지고 살면 생명이 살고 건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을 모시고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면, 생명이 살고 건강합니다.

본문 20-21절에 “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는 의로운 길로 행하고, 공평한 길로 다닙니다. 그리고 지혜를 사랑하는 자는 얻는 것이 많습니다. 세상의 물질과 는 다른, 여러 가지 종류의 것들로 얻는 것이 많습니다. 지혜를 찾는 자에게 많은 소득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혜는 언제나 의로운 길과 공평한 길로 인도해줍니다. 지혜가 악을 미워하기 때문에 악에서 떠나게 되며, 의로운 길과 공평한 길로 이끌어줍니다. 사랑으로 인도해줍니다. 그리고 지혜는 지혜를 찾는 자, 사모하는 자가 찾을 수 있다고 하였는데, 지혜
를 찾으면 생명이 살고 육체도 건강해집니다. 모든 것이 다 지혜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지혜가 정금보다 낫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지혜를 찾아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며, 그 말씀을 생명으로 삼아 말씀대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을 가져야만 되겠습니다.

4.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일

본문 22-23절에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성자 그리스도를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24-26절에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고 하였습니다.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나셨다는 것입니다. 산과 언덕을 세우시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나셨다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작이 없이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신데, 삼위일체로 계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가 일체입니다. 아들은 아버지께로부터 났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로부터 납니다. 영원히 납니다. 나지 않았을 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부터 계시었는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영원 전부터 계셨습니다. 시작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시작이 없고, 아들이 아버지께로부터 나신 시작이 없습니다. 이것은 항상 계속되면서도 항상 완료된, 신적 역사입니다. 과거사나 미래사로 해도 안 되고 미완성일 때도 없습니다. 난 것에 대해서는 항상 완료입니다. 항상 계속되는 신적 역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영원히 계시기 때문에 성령도 영원히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만물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서 예정하고 계신 것들을 창조하시고 실현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멘’으로써 실현시키시는 성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그 곁에서 창조자가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창조자는 성자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지만, 삼 위 가운데 제2위인 성자께서 창조하셨습니다.

5. 생명과 사망의 길

본문 27-31절에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로 명령을 거스리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고 만물의 창조자이십니다. 땅 위의 모든 만물을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셨습니다. 계획은 하나님께서 하시고 창조하실 때에 그리스도께서 너무 좋아서 날마다 기뻐하시면서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분도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만물의 창조자를 믿는 것입니다. 창조주는 하나님 아버지시고, 창조자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히브리서 1장 2절에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도, 십자가의 도, 예수 그리스도의 도 가운데 참여하는 자, 생명에 참예하는 자, 그리스도를 생명의 주로 받는 자,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 자, 생명에 참여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본문 32-33절에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가리키는 자의 말을 잘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 신령한 지혜를 듣고 얻은 다음에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34절에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문 곁에서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문설주 곁에서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그를 영접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시편 84편 10절에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악인의 장막에 거하는 천 날보다 좋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의 전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장 42절에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집에 있는 것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은 성전이고, 하나님의 집입니다. 예배당이 아버지의 집이 아닙니다. 영적 성전, 하나님이 계신
곳이 아버지의 집입니다. 그리고 그곳의 문지기라도 좋다는 것입니다.
대통령 집의 문지기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집의 문지기보다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가 훨씬 좋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는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이 아닙니까! 문을 척 열고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늘 들려옵니다. 그 문지기는 예배당의 문지기가 아니라, 영적 성전의 문지기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찾아서 거기서 문지기로 있는 것입니다. 하여간 하나님의 문 곁,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다리고, 훈계를 기다리고, 도를 기다리고, 말씀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본문 35-36절에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문설주 곁에 있다가 그리스도, 즉 말씀을 얻으면 생명을 얻고 은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잃어버리면 자기 영혼을 해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미워하면 사망입니다. 즉살(卽殺)입니다. 그러니 언제든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영원 전부터 계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영원히 계신 그리스도, 삼위일체 하나님,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늘 영광을 다 내어놓으시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셔서 당신의 피와 살을 십자가에서 다 주신 예수님, 우리 죄를 정결케 해주시고 하나님 우편에 올라가시어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장차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그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문 곁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문설주 곁에서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말씀을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또 은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자는 자기 영혼을 해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리스도만 떠나면 즉살입니다. 그리스도를 떠나는 자는 즉살입니다. 항상 문 곁에서 기다리고 문설주 곁에서 영접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 힘을 써야 하고, 받으려고 애를 쓰고, 영접 하려고 애를 쓰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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