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6일 월요일

사도행전 14:19-28 교회가 견고하여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교회가 견고하여짐
사도행전 14:19-28

14:19 그런데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유대인들이 와서 무리들을 충동하여 바울을 돌로 쳐서 그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성읍 밖으로 끌어냈다. 

14:20 그러나 제자들이 그를 둘러섰을 때에 그가 일어나서 성읍 안으로 들어갔으며 이튿날 그가 바나바와 함께 테베로갔다. 

14:21 그들이 그 성읍에서 복음을 전하고 많은 이들을 제자로 삼은 후에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되돌아갔다. 

14:22 그들이 제자들의 마음을 굳건히 해 주고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면하였으며,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다." 라고 권면하였다. 

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임명하고 금식기도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14:24 그들이 비시디아를 두루 다닌 후에 밤빌리아에 이르렀고, 

14:25 버가에서 말씀을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갔다. 

14:26 거기서 배를 타고 안디옥으로 갔으니, 이곳은 전에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자신을 맡겼던 곳인데 그 일을 이루었다. 

14:27 그들이 도착하여 교회를 불러 모으고,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행하신 모든 일들과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였다. 

14:28 그들이 오랫동안 제자들과 함께 지냈다.


1.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바울을 돌로 침

마귀의 역사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일어남

본문 19절에,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끌어 내치니라”고 했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것에 대한 시기의 마귀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언제나 큰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면 마귀가 반드시 역사를 합니다.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무리를 데려다가 바울과 바나바를 죽이려고 돌로 쳤습니다. 마귀의 역사는 예기치도 않게 닥칩니다. 이번에는 그 지방 사람이 아니라 먼 곳,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사람을 데려와서 했습니다. 상상도 못하는 일입니다. 거기서 사람들이 와서 때려죽이려 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렇게 마귀역사는 하나님의 역사가 크게 나타날 때에 반드시 옵니다.
이번에는 심하게 왔습니다. 돌로 때려죽이려는 역사가 왔습니다. 바울이 돌에 맞고 쓰러져서 그 사람들이 보기에 죽은 것과 같이 되었습니다. 죽은 줄로 알만큼 거의 죽은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으로 내쳤습니다.

전도하다가 매 맞은 사람은 복이 있다

본문 20-21절에,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 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돌에 맞고 성 밖에 내쳐졌을 때에 제자들이 둘러서서 바울의 목숨이 여기서 끊어질는지 회생하겠는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서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와중에 회생되어 벌떡 일어섰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 사람들은 죽이려고 했고, 죽은 줄로 알았지만 바울은 나음을 얻고 그 성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돌에 맞아서 죽은 상태에 빠진 것을 보면 돌에 많이 맞은 것 같습니다. 돌을 사방에서 막 던져서 다 터지고 피가 났을 텐데 그래도 뼈는 안 부러졌나 봅니다. 그렇게 심하게 맞았는데, 전도하다가 매맞은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전도하다 매 좀 맞아보았습니까? 바울은 얼마나 맞았습니까? 돌에 죽도록 맞았습니다.
전도하다 매 맞은 사람은 복이 있는데, 하늘나라에 가면 그 매 맞은 상급이 있습니다. 그 매 맞은 것에 대한 상급이 큽니다. 주를 위해서 매를 안 맞고 간 사람과 매를 맞고 간 사람과 차이가 큽니다. 주를 위해서 핍박을 받고, 능욕을 받고, 매 맞고, 쫓겨나고, 감옥에 갇히고 간 사람, 그렇게 주를 위해서 많이 고난을 받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면 큰 자가 되고 상급이 많습니다.

죽게 되었던 바울이 이튿날 더베로 가서 전도함

바울이 돌로 죽을 만큼 맞고 끌어냄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온 몸에 피가 나고 머리에도 돌을 맞아 다치고 그랬을 것인데, 제자들이 둘러 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 이튿날 무얼 했습니까?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곳에서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하룻밤을 자고나서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할 수가 있겠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이렇게 돌을 맞고 복음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다 낫게 해주십니다. 그 이튿날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을 수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믿었습니다. 이렇게 환란이 많고 핍박이 많은 곳에 하나님의 역사도 더 크게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많은 곳에 마귀의 역사도 많고, 마귀의 역사가 많고 핍박이 많은 곳에 하나님 은혜도 큽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더욱 커집니다. 그래서 바울의 말을 듣고 더 많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핍박이 있다고 해서 전도하지 못한다고 하면 안됩니다. 핍박이 클수록 하나님의 역사도 커집니다. 반대가 심하면 하나님의 역사도 커지는 것을 알고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중지하면 안 됩니다. 전도할 때가 아니라고 하면서 중지하면 전도해서 얻을 많은 사람들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돌로 맞고서 죽을지도 모르니 이젠 가서 쉬어야겠다고 하면서 전도하지 않았다면 더베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그 더베 사람들에게 전하지 못한 책임을 바울이 지게 됩니다. 아무리 환란과 핍박이 많다고 해도 전도를 하면서 상황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죽게 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전도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전도하는 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하실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2. 바울이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다시 돌아감

본문 21절에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라고 했는데, 바울이 더베에서 복음을 전하고 자기가 돌에 맞아 죽게되었던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바울이 기도 중에 성령께서 다시 돌아가서 제자들 마음을 굳게 하라는 감동을 주신 것같습니다.

마음을 굳게 하여 믿음에 서서 환란을 겪어라

본문 22절에,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돌아가서 제자들을 불러놓고 마음을 굳게 하라고 권하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늘나라에 가긴 가는데, 환란을 안 받으면, 연단도 못 받고 자라나지도 못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환란을 겪어야 자라나게 됩니다.
이북에서 1950년도 6월 25일에 6.25전쟁이 일어났는데, 그것보다 6개월 전인 1949년도 크리스마스 때에 공산당들이 청년학생들을 보내서 야유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동네 민청, 지금으로 말하면 청년동맹에서 안 믿는 청년들을 교회로 보내서 “왼뺨 치는 자에게 오른뺨 돌려댄다고 하던데 어디한번 그러는지 보자”면서 집사들을 때리고 교인들을 때렸습니다. 게다가 강대상을 발로 차서 다 쪼개 부숴뜨려서 그날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당시 제가 교인들에게 읽어준 말씀이 본문의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는 이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는 말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는 환란이 올 때에 달게 받아야 합니다. 환란이 왜 오는가 하고 이상히 여기지 말고 그것이 성경대로 되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환란을 받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환란을 안 받으면 무슨 남는 게 있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전도하며 나가는 자에게 환란이 있고 천국이 있다

사도바울이 전도 안 했으면 환란을 받았겠습니까?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환란이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전도하면서 나가기 때문에 환란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하고도 예수님 믿을 수 있습니다. 전도 안하고 평안히 앉아서 찬송할 수 있고,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평안히 앉아있지 않고 핍박 받는데도 적극적으로 전도하러 나갔습니다.
적극적으로 전도하고 나가니까 환란이 오고 핍박이 있고, 돌에 맞아 죽게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부터 와서 바울을 핍박했습니다. 적극적으로 전도하는 믿음을 가지고 나가다가 많은 환란을 받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가서 많은 복을 받는 법입니다.
이것이 천국을 빼앗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12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했습니다. 적극적으로 침노해 들어가야 합니다. 천국을 빼앗아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서 예수님 믿을 생각하지 말고, “전도하러 나가자!”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해야 합니다. 주를 위해 봉사하러 나갈 생각을 하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핍박을 받는 일이 참좋은 일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나가는 정신을 가지자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인데, 안 겪으면 평안하겠지만 하늘나라에 가서는 받을 게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나가야만 환란이 오고 그 환란을 통과해야만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있습니다. 우리가 나가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주를 위해서 일하러 나가고자 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러 나가고자 해야 합니다. 선교사로 나가고자 해야 합니다. 봉사하러 나가고자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해 나가는 정신입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의 지위, 향락, 재물을 내놓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나갔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고난 받는 자리로 나갔습니다. 왕궁을 버린 뒤에 많은 환란이 왔지만 하늘나라의 상급이 커지지 않았습니까? 물론 모세가 힘들었지만 하늘나라에 갔을 때에 얼마나 큰 자가 되었겠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안 나가고 공주의 아들로 평안히 살다가 죽었더라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게다가 이스라엘 구원운동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서 나가는 정신을 가져야겠습니다.

각 교회가 금식기도를 하면서 장로를 뽑음

본문 23-24절에,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가서 밤빌리아에 이르러”라고 했습니다. 장로를 세울 때에 금식기도를 하면서 세웠습니다. 장로 될 사람도 금식기도하고 교회도 금식기도를 하면서 장로를 세웠습니다.
이것을 보면 장로는 명예영광 직이 아니고 주를 위하여 희생하는 직위입니다. 에스겔 9장에 보면 환란이 들어올 때에 장로를 먼저 죽였다고 했습니다. 환란이 들어올 때에 먼저 죽는 것이 장로입니다. 환란도 먼저 받고, 주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장로니까 앞으로 장로를 선택할 때에 명예영광으로 자기가 장로가 되려는 마음을 가지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가 장로가 하고 싶다면 죽을 일이 닥칠 때에 자기가 먼저 죽을수 있겠는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장로는 먼저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장로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부터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장로가 되면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가 먼저 되어야겠다는 것은 교만입니다.
자신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늘 말씀에 비추어서 자신은 부족한 줄로 생각하고 있다가, 어떻게 당선이 되고나면 두렵고 떨림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장로를 금식하면서 세웠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선교 파송의 본거지인 안디옥교회로 돌아감
 
본문 25-26절에, “도를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곳은 두 사도의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안디옥교회로 돌아갔습니다. 안디옥은 처음에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으로 그들을 선교사로 파송한 곳입니다. 본거지로 돌아갔습니다.
 
본문 27-28절에,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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