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6일 월요일

사도행전 16:1-31 빌립보에서 복음 전파.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빌립보에서 복음 전파
사도행전 16:1-31

16:1 바울이 테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니, 마침 거기에 디모데라고 하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믿는 유대 여자의 아들이었고,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으며, 

16:2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서 칭찬받는 자였다. 

16:3 바울이 그 사람과 함께 떠나고자 하여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들 때문에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이는 그의 아버지가 헬라인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6:4 그들이 여러 성읍들을 두루 다니며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장로들이 정한 규정들을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였다. 

16:5 그리하여 교회들이 믿음이 견고해지고 날마다 그 수가 늘어났다. 

16:6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시므로,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두루 다녔고, 

16:7 무시아 가까이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려고 힘썼으나, 예수님의 영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지 않으시므로, 

16:8 그들이 무시아를 지나 트로이로 내려갔다. 

16:9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보였는데, 어떤 마케도니아 사람이 서서 그에게 간청하여 말하기를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였다. 

16:10 그가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즉시 마케도니아로 떠나려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시는 줄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16:11 우리가 트로이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폴리스로 갔다가, 

16:12 거기서 빌립보로 가니, 그곳은 마케도니아 지방의 첫 성읍으로 로마의 식민지였다. 우리가 이 성읍에서 며칠 동안 머물렀다. 

16:13 우리가 안식일에 기도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성문 밖 강가로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16:14 두아디라 성의 자주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루디아라고 하는 한 여자가 듣고 있었는데, 주께서 그 여자의 마음을 열어 바울이 말하는 것들을 잘 듣게 하셨다. 

16:15 그 여자와 그 여자의 집이 세례를 받은후에 그 여자가 간청하여 말하기를 "만일 당신들이 저를 주께 신실한 자라고 여기신다면, 저의 집에 들어와 머무십시오." 하고 우리를 강권하였다. 

16:16 그 후에 우리가 기도처로 갈 때에 점치는 영이 들린 한 여종을 만났는데, 그 여자는 점을 쳐서 그 여자의 주인들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16:17 그 여자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오면서 소리 지르며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로서 너희에게 구원의 길을 선포하고 있다." 라고 하였다. 

16:18 여러 날 동안 이렇게 하므로 바울이 참다 못하여 돌아서서 그 영에게 말하였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령하니, 그 여자에게서 나와라." 하니, 그순간 영이 그 여자에게서 나갔다. 

16:19 그러자 그 여자의 주인들이 자신들의 수익의 희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서 시장으로 끌고가 지도자들 앞에 세웠다. 

16:20 또 그들이 두 사람을 치안관리들에게 데리고 가서 말하기를 "이 사람들은 유대인들로서 우리 성읍을 크게 소란하게 하여, 

16:21 로마인인 우리가 받아들이거나 행하는 것에 옳지 않은 관습을 전한다." 하였다. 

16:22 무리가 그들을 대적하여 일제히 일어났고, 치안관리들이 그들의 옷을 찢고 매로 치라 명령하여, 

16:23 그들에게 채찍질을 많이 가한 후에 감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그들을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16: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안쪽 감옥에 가두고 그들의 발을 족쇄로 단단히 채웠다. 

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죄수들이 들었다. 

16:26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흔들리고, 곧 모든 문들이 열리며 모든 죄수들의 사슬들이 풀렸다. 

16:27 간수가 잠에서 깨어 감옥 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친 것으로 생각하여 검을 빼어 자살하려고 하였다. 

16:28 바울이 큰 소리로 외쳐 말하기를 "너는 자신을 해치지 마라. 우리가 모두 여기 있다." 하니, 

16:29 그가 등불을 달라고 해서 뛰어들어가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다. 

16:30 그리고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말하기를 "선생님들, 내가 구원받으려면 무엇을 행해야 합니까?" 라고 하였다. 

16:31 그들이 말하기를 "주 예수님을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하고, 

16:32 그와 그의 집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1. 바울이 디모데를 수종자로 데리고 다님

본문 1-2절에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제1차전도 때에 예수를 믿은 것 같습니다. 더베와 루스드라게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었다는 것을 보면 이 때 믿은 것이 아니고 1차 전도 때에 믿은 것 같습니다. 디모데의 모친은 유대 여자이고 부친은 헬라인이었습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독실하고, 충성된 사람으로 처음 믿을 때부터 그 지방에서 칭찬받는 신자였습니다. 디모데는 충성된 사람이고, 모든 일에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고, 열심이 있는 사람이고, 주를 위해서 희생하는 청년입니다.

본문 3절에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보니 쓸 만합니다. 제자로 삼아 데리고 다니면 하나님의 일에 큰 유익이 될 것 같고, 또 앞으로 훈련시키면 좋은 일꾼이 될 것 같습니다. 즉 유망합니다. 유망한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보면 압니다. 충성되고, 독실히 믿고, 주를 위해서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모든 면에 칭
찬받는 덕망이 있으므로 앞으로 이런 사람을 길러 쓰면 좋은 일꾼이 되겠단 말입니다. 현재에도 데리고 다니면 쓸 만한 사람입니다. 큰 유익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디모데를 수종자로 즉 조사로 데리고 다니기를 작정을 했습니다.
조사는 스승을 도와주는 사람이 조사입니다. 즉 선생님 가방 들고 다니는 사람이 조사입니다. 조사라는 말이 좋은 말입니다. 요새 전도사라고 다 갖다 붙였는데 전도사보다 조사가 바른 이름입니다. 요새는 다 ‘사’자 붙이기를 좋아하는 시대가 되어서 간호사, 변호사, 의사, 기사, 또 유치원 보모도 ‘사’자를 붙였다고 합니다. 이젠, 유치원 보모도 보모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유치원 교사라고 합니다. 또 전도부인은 전도사로 붙여놓았습니다. 전도부인은 목사를 도와서 하나님의
일에 심부름 하는 것입니다. 목사 보조자입니다. 조사도 목사 보조이고, 전도부인도 목사 보조 역할입니다. 그런데 “나도 전도사이다, 나도 여종이다”하며 돌아다니는 것은 전도부인 자격이 없습니다. 언제나 목사의 수종자로서, 도와주는 사람의 위치에 서야만 됩니다. 자기 위치를 잘 지키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도 합당치 않고, 또 교회에도 유익이 없고 하나님의 일이 잘 안됩니다.

디모데는 조사로 쓸 만합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조사로 데려가기로 작정했습니다. 데려가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왜 문제가 있는가? 하면 디모데의 아버지가 헬라사람인 줄을 다 알기 때문에 이방사람을 데리고 다니면, 유대사람에게 전도할 때에 지장이 많습니다.
“이방 사람과 교제하지 않는다”는 것이 유대사람의 풍속입니다. 또 할례 받지 않은 사람과 같이 먹으면 안 된다는 유대 전통이 있습니다. 그래서 할례를 행하고 나서 데리고 다녀야겠다고 하여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이것은 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이 할례 문제 때문에 서로 걸림이 되면 안 되겠으므로 전도의 유익을 위하여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여 데리고 갔습니다. 유대사람에게 전도 할 때에 디모데에게 헬라 사람이 아니냐? 하면 “할례 행했다, 어머니가 또 유대사람이다”하며 이방사람과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할례를 행한 후 데리고 다녔습니다.

여기서는 전도의 유익을 위해 할례를 행했지만 갈라디아 2장에 보면 할례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할 때에는 일시라도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교리 문제가 걸릴 때에는 일시라도 복종 하지 않았습니다. 갈라디아서 2:5에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고 2:3에는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할례를 받아야 구원 받는다고 할 때에는 일시라도
복종하지 않기 위해서 디도에게는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디모데를 데리고 갈 때에는 교리 문제가 걸리지 않았을 때입니다. 전도하는 데 유익을 위하여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여 데리고 다녔습니다.

본문 4절에 “여러 성으로 다녀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고 하였습니다.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주어서 저희에게 지키게 했다는 것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메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는 규례를 말합니다. 이방교회들도 이 네 가지를 지켜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고, 피 먹지 말고, 목메어 죽인 것 먹지 말고, 음행을 멀리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각 교회에 다니면서 전달해 주었습니다.

본문 5절에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욱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교회가 날마다 수가 많아지고 또 믿음이 더 굳어졌습니다. 진리를 바로 세워나가면 교회가 믿음이 굳어지고, 수가 또 날마다 더할 수 있습니다.

2. 아시아 전도를 성령이 허락하지 않음

본문 6-7절에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아시아로 오려고 애를 써도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았단 말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유럽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에 바울이 아시아로 왔다면 아시아가 서양보다 모든 면에 앞설 뻔 했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복이 임하고, 또 모든 것이 문명이 되
고, 모든 것이 발달이 되고, 모든 것이 진보가 됩니다. 그런데 아시아로 복음이 안 오고 서양으로 갔기 때문에 서양이 동양보다 모든 면이 앞섰습니다.

바울이 가는 곳은 복음을 가지고 갔지만 세계문명을 가지고 간 것이라고 합니다. 아시아로 가느냐? 유럽으로 가느냐? 동양으로 가느냐? 서양으로 가느냐?에 따라 세계문명이 갈린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아시아로 오는 것을 허락지 않았습니다. 왜 허락하지 않았는지 내용은 없는데, 아마 아시아 사람들이 우상을 많이 섬겼기 때문에 허락하지 않았는가? 추측해 보는 것입니다. 이사야 2장에 보면 동방 사람들이 우상을 아주 많이 섬겼습니다.

이사야 2:6에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같이 술객이 되며 이방인으로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동방 풍속이 가득하였기 때문에 야곱 족속을 버렸다고 하였는데 동방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사수를 행하고,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동방에는 공자의 교가 많이 퍼져 있었고, 또 불교가 많이 퍼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자교가 좋은 면도 있는데, 도덕면은 좋은 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데는 그것이 방해물입니다. 차라리 공자교를 모르는 사람 같으면 복음을 전하면 잘 받습니다. 그러나 공자교 받은 사람은 복음을 전하면 잘 안 받습니다. 공자 교훈에 비교해서 맞으면 믿고, 안 맞으면 안 믿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하는데는 큰 장애물이 됩니다. 공자교 믿는 사람 중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불교 사상이 또 동방에 많이 있었는데 그것들이 전부 복음을 막는 일을 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상 섬기는 일, 동방 사람들은 우상 섬기는 것이 유명한 모양입니다. 몽골 사람들이 우상 많이 섬겼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동방사람에게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아시아 사람이 아메리카 대륙도 다 가서 점령했던 것입니다. 영국 사람이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오기 전에 인디안이라는 사람들이 전부 살았습니다. 그런데 박물관에 가보면 우상 섬기는 것이 유명합니다. 하늘에 연기가 충천하도록 우상을 섬기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메리카 대륙을 빼앗아 서양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사실은 동양 사람의 땅입니다. 서양 사람이 와서 인디안 다 내어 쫓고, 자기네가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는 이것은 동양 사람의 땅인데 서양 사람이 와서 빼앗아 가지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내 주었는데 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옛날에 동양 사람이 살았어도 그 때에 우상만 섬겼기 때문에 다 빼앗아서 서양 사람에게 주었단 말입니다. 동양 사람은 이제 거기 가서 맥을 못 춥니다. 서양 사람한테 가서 붙어 살게 되어있습니다.

복음이 아시아로 가는 것을 성령이 막았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서양으로 가서, 그 다음에 또 미국으로 건너가고, 또 아시아로 건너 왔습니다. 얼마나 돌았습니까? 한 바퀴 도는 바람에 몇 천 년 걸렸습니다.
직통으로 왔으면 벌써 천 년 전에 아시아로 왔겠는데 아시아 사람들이 우상만 섬기고, 공자 맹자 따라가고, 복음에 반역하는 일만 하기 때문에 성령께서 허락하지 아니하고 서양으로 건너가게 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가려고 애를 써도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영이 어떻게 허락하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직접 말씀으로 가지 말라고 했는지, 또 감동으로 가지 말라고 했는지, 또 마귀의 세력이 너무 많으니까 그 마귀 세력을 통해서 막았는지, 하여간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즉 성령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허락하지 않는 곳은 바울이 안 갔습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가 성령이 허락하는 데로만 가야되겠습니다. 성령이 허락하지 않는 곳은 안 가야 된단 말입니다. 모든 것을 성령이 허락하는 데로만 해야 됩니다. 기도 많이 하고, 또 성경 말씀을 최대한 참작을 하여 하나님의 을 바로 찾아서 성령이 인도하는 데로만 하여야 됩니다. 바울이 아무리 가려고 해도 안되니까 밤에 기도하던 모양입니다.

3. 마게도냐 전도

본문 9-10절에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고 하였습니다. 밤에 기도하는 가운데 환상을 보았습니다.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하는 그런 환상을 보았습니다.

유럽의 첫 개척교회 빌립보 교회

본문 11-14절에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환상을 본 다음에 이제는 마게
도냐로 건너갔습니다. 건너간 다음에 ‘빌립보’라고 하는 제일 첫 성을 만났습니다. 거기에 들어갔습니다. 유럽으로 복음이 건너가서 제일 처음으로 빌립보 성에 들어 갔습니다.

빌립보는 로마 식민지인데 거기서 수일을 유하다가, 그 다음에 안식일이 닥쳤는데 안식일에 기도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하고 강가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강에 나가서 기도하는 습관이 유대 사람들에게 있었던 모양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산에 가서 기도하는 것도 좋고, 강가에 나가서 기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아직도 예수를 몰라도 하나님을 섬기므로 기도하는 유대 사람이 혹시 있을까? 하고 강가에 나갔습니다.

강가에 나가니까 모여 앉은 여자들이 있습니다. 거기 가보니까 여자들이 기도하는 중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느라고 모여 있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유대 사람이 유럽으로 건너가서 낯선 이방 땅이지만 안식일에 모여서 기도 하며, 성경말씀을 읽는 일을 한 것 같습니다.
여자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수를 전하니까 루디아라는 여자가 말씀을 받았습니다. 루디아는 두아디라 성에 자주 장사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의 마음을 주께서 열어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루디아가 처음으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 제일 처음으로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루디아는 자주 천 장사하는 사람입니다. 그 때에는 자주 천이 상당히 고급 천으로 인정받던 모양입니다. 여러 여자들 가운데 자주 천 장사를 하는 루디아가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그 말을 청종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주님이 마음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울의 말을 옳게 여기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생깁니다.

주께서 마음을 열어주시면 반드시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 말해야 믿을까? 이 여자들이 유대 교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인데, 유대교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인데,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다 못 박지 않았습니까? 예수 전해야 이 사람들이 받아들일까? 이렇게 생각해서 전하지 않았으면 루디아가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전하니까 하나님이 그 마음을 열어 주었단 말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열어주면 됩니다. 열어주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믿게 됩니다. 전하기 전에는 유대교 사람이고, 예수를 반대하는 편에 선 사람이라도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이 마음을 열어서 받아들이게 하면 믿는단 말입니다.

아무리 예수를 반대하는 파에 속했어도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이 예수를 믿을까? 하고 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조상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어도 그 자손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주님이 마음을 열어주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불교 가정인데 전도해야 믿겠는가? 이렇게 생각해서 전도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공자교 믿는 가정인데 말해야 받아들이겠는가? 또 마호메트교, 이슬람교 권인데 이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래서 전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슬람교라도 전도할 때에 하나님이 마음을 열어주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슬람교에서도 아브라함을 믿고 모세 오경을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안 믿습니다. 예수는 반대합니다. 마호메트가 예수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 믿는 것이 아니고 마호메트를 믿습니다. 그래도 마호메트가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고,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 못 박힌 것도 없습니다. 그저 아라비아 메카에서 나와서 자기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며 기록 한 것이 코란경인데 거기에 구속의 도리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모세 오경을 믿고, 아브라함을 믿지만 구속의 도리가 없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가지고 구원 받겠습니까? 그것은 구원 받을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어야 죄 사함을 받고, 죄사함을 받아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삼 일 만에 부활하셨고, 또 승천하셨으며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여 주시는 산 예수를 믿어야지 죽은 마호메트를 믿어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이슬람교권이라도 가서 복음을 전하면 거기에서도 믿는 사람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열면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복음을 어디든지 전해야 됩니다. “안 믿을 것 같다, 완고하다, 우상 섬기는 가정이다, 공산당이다”하지만 공산당도 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받아들이고 믿으면 죄 사함 받고 구원 받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면 공산당도 예수 믿고 구원 받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여간 하나님이 누구 마음을 열어 줄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에게든지 이 복음을 전해야 되겠습니다. 루디아가 예수를 믿고 유럽에서 제일 첫 번째 신자가 되었습니다.

본문 15절에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 하여 있게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루디아의 집이 다 예수 믿고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루디아만 믿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집이 다 믿고 우리를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고 하였는데 참으로 복음을 받은 다음에는 전도자를 귀히 여기고 전도자를 대접할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권해서 자기 집에 모시고 대접을 했습니다.

4. 바울이 점하는 여자의 귀신을 쫓아냄

본문 16-18절에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와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라고 하였는데 바울이 어디에 가나 기도하는 생활을 한 것 같습니다. 기도하는 곳에 가는 습관을 세워놓았습니다. 우리도 기도하러 가는 습관을 세워놓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광주 기도원에 기도하러 가는 습관을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사경회를 제가 가게 되면 사경회하기 전날 기도원에 보통 가곤 합니다. 목포에서 사경회 할 때에는 유달산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유달산 꼭대기에 올라가면 목포 앞바다가 다 보입니다. 섬이 얼마나 많은지 한 번 세어보니 아흔아홉 개를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보이는 섬이 아흔 아홉 개입니다. 그 다음에 경산에 기도하던 자리, 지금 경부선 타고 내려가면 내가 기도하던 산들이 다 보입니다.

예수님도 기도하러 가는 습관 세웠습니다. 누가복음 22:39에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다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습니다. 바울이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여자 하나를 만났습니다. 요새도 점하는 여자가 많습니다. 즉 무당들이 점을 치는데 점하는 여자들은 귀신이 들려서 점하는 것입니다. 귀신도 어느 정도 압니다. 점하는 여자가 돈을 많이 벌어서그 주인을 크게 이롭게 했다고 하였습니다. 점하는 여자의 주인이 귀신 들려서 돌아다니는 계집 아이를 점하는데 이용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점하는 여자가 바울의 일행을 따라 다니면서 소리 지르며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도를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여러 날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심히 괴로워했습니다. 귀신이 말하는 것이 바른 말입니까? 잘못된 말입니까?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한 이 말이 잘못된 말입니까? 바울과 바울의 일행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인 것은 맞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귀신은 알고 소개했습니다. 또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한다는 그 말도 맞습니다. 지금 바울과 바울의 일행이 구원의 길을 전하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바울과 실라와 누가의 일행이 하나님의 종인 줄 모르는데 마귀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이라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또 구원의 길을 말해주는 것도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데, 마귀는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바른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왜 괴로워하였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자기들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소개해주고, 또 구원의 길을 전한다고 소개해 주었는데 왜 괴로워했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것을 이 귀신들린 여자가 와서 알게 해주므로 “좀 유익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할 만도 한데 그것이 아니고 바울이 심히 괴로워했다고 하였습니다. 왜 괴로워했습니까? 귀신들인 여자라도 바른 말을 하고, 또 바울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이라고 바로 소개해주었고, 구원의 길을 말해준다고 다른 사람에게 바로 소개해주었는데 왜 괴로워합니까? 귀신들린 여자가 바울을 바로 소개하고, 바울이 전하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고 바로 말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들을 때에는 “바울은 귀신들린 여자와 한 패이다”라고 이렇게 취급을 하게 되어 있단 말입니다. 하나님의 도를 전하는데 귀신들린 사람과 한 패로 다른 사람에게 취급을 받으면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귀신들린 사람과 한 패인데 어떻게 예수님을 믿겠느냐?는 말입니다. 귀신들린 여자가 돈 버는데만 급급해 하는데 “바울도 한 패가 되어 돈 벌려고 하는가보다” 하면 얼마나 복음증거에 지장이 많겠습니까?

여기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고 한 것을 보면 점하는 여자가 돈을 많이 벌었단 말입니다. 언제나 돈을 많이 받으면 백성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돈을 많이 내라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공증을 하러 갔는데, 나는 공증 하는 것 얼마 안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육 만원을 내라고 합니다. 공증을 안하면 그 서류가 인정을 못 받는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육 만원을 주고 공증을 했습니다. 공증을 하고 오면서 “끔찍이도 받아 먹는다, 아니 도장 하나 찍어 주면
서 어떻게 육 만원씩이나 받는가?” 한국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왔습니다. 미국에서는 5불이면 공증을 한다고 합니다. 5불이면 사 천원입니다. 미국에서는 은행에서도 해주고, 여러 곳에서 해준다고 합니다. 5불만 주면 해주는 것입니다. 여러 곳에서 해주는 곳이 많기 때문에 5불만 내면 해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변호사한테 가야 됩니다. 한국법이 틀렸습니다. 또 변호사는 도장 한번 찍어주고 육 만원 받아먹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왔는데 천만원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채용증서를 써주는데, 공증하러 왔습니다. 그 사람은 사만원 주었다고 합니다. 공증법이 한국에서는 틀렸습니다. 변호사만 하지 말고 미국처럼 은행에서도 하고, 또 다른 곳에서도 다 하도록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여러 곳에서 하도록 만들고 한국에서도 몇천원 주면 하도록 만들어야지 어떻게 이렇게 많이 받아 가집니까? 백성들의 돈이 다 거기로 들어가면 일이 되겠습니까? 하여간 돈 많이 받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다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점하는 것이 맞는다고 해도 돈을 많이 받았으면 다 좋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 세리들을 다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와 같이 여기 점하는 여자를 모든 백성들이 좋아하지 않았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한 패로 취급받아 놓으면 “저것도 한 패다, 돈을 벌려고 온 것인가 보다” 이렇게 해 놓으면 전도의 문이 막힙니다. 또 마귀의 역사는 가다가 반드시 부도덕한 일이 나타납니다. 마귀의 역사는 거룩하고, 의롭고, 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
의 역사는 가다가 반드시 부도덕한 일, 또 다른 사람에게 지적 받을만한 일, 또 부정한 일 등으로 마귀의 열매가 맺힙니다. 그러면 백성들이 그것을 볼 때에는 마귀 들린 사람이 틀렸다고 하겠는데 바울도 한 패로 취급받으면 일이 되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심히 괴로워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성령이 충만해서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귀신이 즉시 나갔습니다. 바울이 성령으로 말하는데 귀신이 그 여자에게서 안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나오라” 하니 즉시로 귀신이 나왔습니다.

5.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힘

본문 19-21절에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점치는 여자의 주인들이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한다고 송사를 하였습니다.
여기가 지금 빌립보 성으로 빌립보는 유럽입니다. 즉 서양입니다.
바울의 일행이 유럽으로 건너 갔는데, 유대나라는 동양이 아닙니까? 유대사람이 서양에 와서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풍속을 전한다”고 하며 또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한다”고 하며 상관들에게 고소를 했습니다. 빌립보도 로마 시민지인데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고 송사를 했습니다.
송사하는 근본목적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이권 문제입니다. 자기의 이익이 끊어졌으므로, 즉 돈을 못 벌게 되었으므로 이제 바울과 실라를잡아가지고, 끌고 가서 많이 때리고, 법관에게 송사를 한 것입니다.

외부적인 명목으로 바울의 일행이 돈을 못 벌게 하기 때문에 잡아 왔다고 하면 말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외부적인 명목은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하기 때문에,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는 자이기 때문에 이런 자는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끌고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무슨 악한 풍속을 전하는 가보다 이렇게 생각을 했단 말입니다. 자기네가 알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하는 풍속을 전한다고 하니까 무슨 악한 일을 행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그 송사를 받아주기로 하고 끝을 맺었습니다.

본문 22-23절에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상관들은 알지도 못하고 송사하는 사람들의 말만 듣고 “성을 요란케 하는 자”로 알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로마 사람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고 하니까 또 무리가 일제히 다 일어났습니다. 일시에 다 일어서 “그 말이 옳다”고 찬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알지 못하고, 이 사람이 성을 요란케 한다 하니까, 이 사람이 틀렸다고 하니까, 군중들이 다 일어나 틀렸다고 송사하는 것입니다. 군중심리는 이렇게 내용을 모르고 일어나는 것이 보통입니다. “왜 잡아가지고 왔느냐, 무엇 때문에 송사하느냐” 이것도 아니고, 그저 몇 사람이 때리면서 로마 사람인 우리가 행하지 못할 풍속을 전한다고 하니까 일시에 다 일어서서 송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큰 죄를 지었는가보다 하여 옷을 찢어 벗기고 많이 때렸습니다. 바울이 매를 많이 맞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우”하면 다 따라가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거리에서 한 사람이 달아나니까, 또 다른 사람도 무슨 큰일이 생긴가 하여 따라서 달아났다는 것입니다. 또 몇 사람이 따라가니까 또 여러 사람이 무슨 큰 일이 생긴 줄 알고 또 따라갑니다. 한참 따라가다 보니까 맨 앞에 가는 사람이 화장실에 쑥 들어갑니다. 이 사람은 화장실 가려고 뛰어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따라가다가 그 사람이 화장실 들어가니까 다 끝난 것입니다. 군중심리가 이와 같은 것
입니다. 한 사람이 “우”하면 그렇다, 그렇다 하고 다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 사람도 이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다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을 확실히 알아보고, 모든 것을 해야 되겠는데, 그저 한 사람이 말하면 군중 심리로 다 따라갑니다.

6.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미 할 때에 옥문이 열림

본문 24-26절에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고 하였습니다. 깊은 감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채우고, 든든히 감옥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죄수들이 다 들었습니다. 그때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풀어졌습다.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바울이 그날 매를 많이 맞고 감옥에 갇혔는데, 그 밤에 감옥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러니까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렸습니다. 바울이 매를 많이 맞고 감옥에 갇혔는데 그날 밤에 마음이 심히 기뻐서 찬송이 나왔습니다.

감옥에 갇혔는데 무엇이 그리 기뻤겠습니까? 또 매를 많이 맞아서 밤새도록 아팠겠는데 무엇이 그리 기뻤겠습니까? 그러나 “복음을 전하다가 내가 매를 맞고 감옥에 들어왔으니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인가,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감옥에 들어왔으니 하나님이 말씀을 가지시고 역사하셔서 무슨 열매가 맺히게 해주실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감사와 기쁨이 나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찬미하므로 승리한 것입니다.

때려 준 사람이 승리가 아니라 맞은 사람이 승리입니다. 복음 전하다 맞았으므로, 또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들어왔으므로, 또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승리하고, 반드시 그 열매가 맺힐 것을 믿고 감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땅에 안 떨어지고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싹이 나서 열매를 맺힐 것을 믿고 생각하니 너무 감사했습니다. “주를 위해서 감옥에 갇힌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주를 위해서 매를 맞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사람이 애매히 매를 맞아도 주님을 생각하고 참으면 복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하며 감사한 것입니다. 애매히 감옥에 갇혀도 거기서 주를 생각하고 참으면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위해서 감옥에 갇힌 것이 얼마나 복이 있겠습니까? 참고, 감사하고, 기도하고, 승리를 확신하기 때문에 찬미하면서 믿음으로 기도하니까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토가 움직이고, 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풀어졌습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렇게 옥문을 열 수 있는 하나님의 역사고, 매인 것을 풀어줄 수 있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누가 걱정이 생겼습니까? 간수들이 걱정이 생겼습니다.

7.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전도함

본문 27-30절에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라고 하였습니다. 간수가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가 도망친 줄 알았습니다. 죄수가 도망치면 자기가 사형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간수가 아무래도 사형 받을 것이니 “자살하자”하고 검을 빼서 자살하려고 할 때에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 간수가 무슨 죄가 있다고 죽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그 사람을 건져 내려고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서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고 한 것입니다.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울과 실라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서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본문 31절에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구원받는 길은 예수님 밖에 없으며 예수님을 믿으면 그 집에 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눅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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