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6일 월요일

사도행전 15:35-41 바울의 2차 전도여행.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바울의 2차 전도여행
사도행전 15:35-41

15: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머물며 많은 다른 이들과 함께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였다. 

15: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전한 모든 성읍으로 돌아가서 형제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보자." 라고 하였다. 

15:37 바나바는 마가라고 불리는 요한도 함께 데려가려고 하였으나, 

15: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신들을 떠나 자신들과 함께 일하러 가지 않은 이 사람을 데려가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15:39 그러므로 그들이 서로 심한 논쟁을 하고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갔고, 

15:40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형제들로부터 주님의 은혜에 맡기는 인사를 받고 떠나, 

15:41 시리아와 길리기아를 두루 다니며 교회들을 굳건히 하였다.


1.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서 말씀전파

본문 35절에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다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갔던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 공회를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갔습니다. 바울이 어디를 가든지 많은 사람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 했고, 또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계속 했습니다. 쉬지 않았습니다.
성경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우리도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을 모아다 놓고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여 앉으면 쓸 데 없는 세상 이야기는 하지 말고,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한 마디라도 성경을 가르치면 그 사람들은 말씀을 생명으로 받습니다. 또 처음 듣는 말씀입니다. 다 아는 것 같아도 모릅니다. 오래 믿은 집사들이라도 우리가 여기서 배운 말씀 한 마디라도 가르쳐주면 아주 좋아합니다. 처음 듣는 말씀이라고 하며 기록 하고, 가서 또 읽어 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여 앉으면 세상 이야기 잠깐 할 수 있겠죠. “요새 부안 앞바다에서 파선된 페리호 배를 건질려고 한다, 사람이 죽었다” 몇 사람이 죽었다고 하였습니까? 179명, 많이 죽었습니다. 선장, 기관사, 갑판원 다 죽었습니다. 그 배가 왜 파선되었는지 압니까? 원인이 뭡니까? 조그마한 어선이 전복 안 된 것을 보면 파도 때문에 전복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떻게 보는가 하면, 이 배 운전한 사람이 원 운전사가 아니랍니다. 갑판원이랍니다. 원 배 운전하는 사람을 뭐라고 합니까? 조종사라그럽니까, 기관사라 그럽니까? 비행기는 조종사이고, 자동차는 운전사이고, 배는 항해사이고, 운전하는 사람 하여간, 이 사람이 잘못입니다. 한 70, 80%는 이 사람이 잘못입니다. 가만히 있는 것을 갑자기 꺾어대니까 그게 안 넘어갑니까? 90%는 넘어갑니다. 자동차도 가다가 갑자기 꺾으면 넘어갑니다. 빨리 가다가 갑자기 꺾어대면 안 넘어 갈리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항해사가 잘못입니다.
그 다음엔 정원 초과한 것, 또 페리호 배를 어디서 만들었는지 잘못 만들었습니다. 내가 보기엔 페리호 배 자체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왜 잘못됐느냐? 그림을 보니까 2층인가, 3층인가, 같은데 그렇게 높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 위에 올라가고 짐 많이 실으니까 그 배가 안 넘어가겠습니까? 위에는 높이 해도 거기에 뭘 싣는 것이 아닙니다. 미관상 높이 해도 사람은 밑에 타야 됩니다. 짐도 싣지 않아야 됩니다. 배가 조금만 기울어져도 위에가 무거우므로 넘어갈 것 아닙니까? 위에는 안 실어야 됩니다. 아래만 다 실어야 됩니다. 아래만 실으면 배가 암만 기울어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높이 해서 사람 타고, 짐 많이 실어 놓으니까 조금만 기울어도 눌려서 전복된 것입니다. 그 배 만든 회사를 이번에 징계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그 위에 올라타게 만든 사람, 그건 뭐 죽었으니까 말할 필요 없고, 하여간 누가 위에 타게 했느냐? 말입니다. 짐을 위에 싣는 것이 아닙니다. 다 밑에 쌓아야 됩니다.
밑에 실으면 좀 찌그러져도 괜찮습니다. 찌그러져도 밑에만 다 있으니까 바로 설 수 있습니다.
하여튼, 자세한 원인은 난 잘 모르지만 내 생각에는 항해사가 갑자기 꺾어댄 것, 갑자기 한쪽으로 돌린 것, 항해사 안 탄 것부터 잘못입니다. 훈련을 받지 않고 강습을 못 받은 사람, 갑판원이 갑자기 꺾어대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습니까? 항해사 면허증 있는 사람은 시험쳐서 합격이 돼야 되니까, 지식이 다 있습니다. 바람 불면 어떻게 된다, 조금 꺾으면 어떻게 된다는 지식이 다 있는데, 면허증 없으니까 지식이 없단 말입니다. 그래서 막 꺾어대다 넘어간 것입니다. 또 갑자
기 꺾은 것이 첫째 원인이고, 2층이나 3층에 사람이 많이 타고 짐을 많이 실은 것이 둘째 원인이고, 바람 분 것이 셋째 원인입니다. 다른 어선이 침몰 안한 것을 보면 바람은 침몰하는 바람 아닙니다. 살살 갔으면 괜찮았을 것입니다.
이것도 성경적으로 보면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서 죽은 열 여덟 사람이 너희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였는데(눅 13:1-5), 이것도 망대가 무너져서 불의의 사고로 죽었지만 그것이 다 그 당시 사람들의 죄 값으로 죽었습니다. 탑이 무너져 죽은 사람들이 너희보다 죄가 더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죽는 것은 죄 값으로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은 사람은 죄가 없는가? 안 죽은 사람도 죄가 많습니다. 즉 우리도 죄가 많습니다. 우리도 죄 값으로 다 죽을 것인데, 그 몇 사람만 죽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우리가 회개해야 됩니다.
요새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습니까? 목포에서 비행기가 떨어져서 죽었고, 구포에서 기차가 전복되어서 사람이 많이 죽었습니다. 또 목포 비행기 추락으로 몇 사람 죽었습니까? 아시아나 항공, 그것도 한 백 명 이상 죽었습니까? 구포에서 기차 전복된 것은 몇 명 죽었습니까? 다 잊어버렸습니다. 잊어 버리기 잘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럽니다. 정치가들이 거짓말 밤낮 해도 해먹게 돼있다는 겁니다. 먼저 한 것 다 잊어버리니까, 먼저 약속한 것 다 잊어버리고, 또
거짓말하면 또 새로 듣는 것 같습니다. 기차 전복된 것 얼마 되었습니까? 비행기 떨어진 것 몇 달 되었습니까? 다 잊어버렸단 말입니다. 하여간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은 확실합니다. 육지와 바다와 공중에서 사람이 많이 죽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김영삼씨가 대통령이 되어서 많이 죽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다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 죄 값으로 멸망당할 것인데 그 사람들 일부만 죽은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몇 분에 다 빠졌다고 하였습니까? 1분 30초인가, 2분도 안 걸려서 바다에 쏙 들어간 것입니다. 숨 몇 번 쉬는 동안에 다 들어간 것입니다. 배 속에 있는 사람이 나올 수 없습니다. 배 안에 유리창이 있고, 출입구가 있는데 언제 나옵니까? 서로 나가려고 아우성 치다가 물속에 들어가서 다 죽은 것입니다. 나올 시간이 없습니다. 산 사람들은 위에 탔던 사람들로 내리 뛰어서 무엇을 붙잡았으면 살았을 것이고, 못 붙잡았으면 떠내려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국 사람들 정신 차리라고, 회개하라고 징계하신 것 같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잘 해 주셨습니까? 모든 것을 풍성하게 해주셨지만 감사할 줄 모르고 죄만 짓고 나가니까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죄만 짓고 나가니까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을 볼 때에 항상 회개하기를 우리가 힘을 써야 됩니다. 가는 곳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몇 사람 모아놓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또 가정에서 한 사람이라도 가르치는 것입니다.
김의홍 목사님은 이북에서 요한계시록을 30년을 연구한 목사님인데, 나도 그 목사님한테 배웠습니다. 그 목사님은 한 사람이 와도 한 사람 놓고 한 주간을 가르칩니다. 옛날 둥그란 밥상을 갖다 놓고 앉아서 한 사람 놓고 한 주간 가르칩니다. 또 두 사람이 오면 두 사람을 한 주간 가르치는 것입니다. 명절날 성경 가르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명절 날 다 놀지 않습니까? 그날 모아다 놓고 성경 가르치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본 교회인 덕암 교회에서 명절날 청년들을 다 모아다 놓고 성경을 가르치곤 했습니다. 김의홍 목사님한테 배워서 우리 교회 학생들 모아다 놓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때 공부하던 사람이 목사 된사람이 많습니다. 명절날 한 사나흘 씩 밤이나 낮이나 불구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한 사흘에 다 떼는 것입니다. 또 다니엘 다 떼는 것입니다. 명절날이면 우리 청년들, 학생들은 아예 성경 배울 것을 미리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삼십 명 쯤 되는 것 같습니다. 김병도 집사님 집에서 하는 것입니다. 예배당 가면 목사님한테 허락 받아야 되고, 장로님한테 허락 받아야 되므로 “그럴 것 없다, 김병도 집사님 집에서 하자”하고 김병도 집사님 집에서 성경공부 하는 것입니다. 김병도 집사님의 집이 우리가 모이는 장소입니다. 그 김병도 집사님 부부는 나이가 좀 드시고 낮에 일하시는 분이므로, 좀 배우다가 피곤하시면 윗방에 가서 잡니다. 아랫방은 우리가 성경 공부하는 기간에 다 차지합니다. 그때 한 삼십 명 되었는데, 최낙일 목사도 그때 거기서 배웠습니다. 이북 우리 본 교회에서 나와서 목사된 사람이 꽤 되는데 그때에 다 공부하던 사람들입니다. 음력 정월 초하루 명절날, 보름 명절, 또 팔월 추석 명절, 하여간 명절이 되면 다 모아다 놓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많이 배웠습니다. 또 배워주는 바람에 더 많이 배웁니다. 배워주려고 하니까 가서 잘 배워 가지고 와야 됩니다. 와서 가르치려니 또 모르는 것이 나옵니다. 또 가서 물어봅니다. 한 번 배워주면 한 일곱 번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이 배웁니다. 더 확실해집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가는 곳마다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여러분들도 성경을 가르치시길 바랍니다.
이번에 추석에 고향에 갔다 온 사람들 있습니까? 가서 성경 가르치고 왔습니까? 성경을 가르치십시오. 성경 안 가르칠 바엔 가지 말아야지, 뭐하러 갑니까? 썩어질 일 하러 갈 필요 없습니다. 가서 다 모아다 놓고 성경 가르치고 오라는 말입니다. 우리 기도원 공사 도와주는 허 장로님, 예수 믿은지 오래입니다. 며칠 전에 만나서 성경 한 구절을 가르쳐 주었는데 아주 좋다는 것입니다. 너무 좋아서 그 말씀 늘 잊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다 아는 것 같아도 사실 모릅니다. 한 구절
가르쳐 주면 귀가 번쩍 합니다. “다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고 하였는데 전도하는 일을 쉬지 않아야겠습니다.

2. 제 2차 전도 여행

본문 36-38에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바나바더러 2차 전도를 떠나자고 하였습니다. 1차 전도는 마치고 돌아왔으니까 제 2차 전도를 떠나서 우리가 먼저 전한 교회도 방문하고 또 다른데 전도하자고 바나바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고자 하였습니다(37절).
마가 요한은 바나바의 생질입니다. 자기 생질을 데리고 가자고 하였습니다. 제 1차 전도에도 요한을 데리고 가다가 밤빌리아에서 돌아서지 않았습니까?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였습니다(38절). 제 1차 전도 때에 마가 요한을 수종자로 데리고 갔는데, 밤빌리아에 가서 너무 고생이 심하니까 뒤로 돌아갔단 말입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제 2차 전도를 떠나는 길에 이 사람을 또 데리고
가면, 가다가 또 어려운 일을 만나면 또 돌아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끝까지 수종들 사람을 데리고 가야지, 가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도망 치는 사람, 이런 사람을 데리고 가면 하나님의 일에 지장이 많으므로 데려가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 바울의 말입니다.

바나바는 마가 요한도 데리고 가자는 것입니다. 즉 바울은 데려가지 말자, 바나바는 데려가자는 것입니다. 바나바가 왜 자꾸 데려가자고 그랬을까? 자기 생질이니까 이걸 어떻게 하든지 좀 데리고 다니면서 배워 주어서 앞으로 좋은 일꾼을 삼으면 좋지 않겠는가?하며 바나바가 건설적으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같이 다니면서 배워 주면 앞으로 좋은 일꾼 되지 않겠나? 이런 소망을 가지고 아마 데리고 가자고 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마가 요한은 가정 출신이 좋습니까? 예수님께서 성찬 예식 하신 다락방, 또 120명이 성령 받은 다락방이 마가요한의 다락방이므로 출신이 좋습니다. 또 어머니가 좋고. 그러니까 이 사람이 좀 부족하지만 데리고 다니면서 잘 훈련을 시켜서 앞으로 쓰면 어떻겠나? 이런 생각으로 바나바는 데리고 가자고 하였을 것이고, 바울은 당장에 일하는데 지장 있으니까, 당장에 일하는데 지장 있는 사람을 데려가면, 하나님의 일이 당장 잘 되어야 되겠는데, 일하는데 지장이 있도록 하면 되겠느냐? 그런 사람 데려갈 수 없다하여 이렇게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았습니다. 누구 의견이 옳습니까? 바나바의 의견이 옳습니까? 바울의 의견이 옳습니까? 바나바의 의견도 상당히 좋은 것입니다. 마가요한의 어머니가 믿음이 좋고, 마가 요한도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이 확실하고, 예루살렘까지 베 홑이불 두르고 간 것을 보면, 밤빌리아에서 연약하여서 일시적 후퇴를 했지만 그러나 이것을 데리고 다니면서 길러서 써야되지 않겠는가?하는 바나바의 생각도 좋은 의견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당장에 일하는데 지장이 있으면 안 된다, 당장에 일하는 데 지장이 없이 해야지, 일하는데 지장이 있을 것 같으면 안 된다하여 바울은 데려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누구 의견이 옳습니까? 
바나바 의견이 옳습니까? 바울의 의견이 옳습니까? 누구 의견이 옳습니까? 바나바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바울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바울의 의견이 옳은 것같습니다. 당장에 일이 잘되도록 해야지, 훈련시켜서 나중에 잘 되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또 오늘이 잘되어야 나중 일도 잘 되지, 오늘 일이 잘못되는데 나중 일이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물론, 연약한 사람을 잘 길러서 쓰는 것은 좋지만, 오늘의 일이 잘 되도록 하면
서 길러야지, 오늘의 일이 잘못되게 하면서 기른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늘의 일을 바로 하면서 길러나가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일이 잘못되어 나가는데도 불구하고 이 다음에 잘되겠거니 하면, 오늘의 일에 지장이 있으므로 그렇게 하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일을 잘 되게 하고, 나중에 마가 요한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고 안 되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오늘의 일이 잘 되도록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가는 방법입니다. 내일은 하나님이 어떻게 해 주실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쓰시려면 앞으로 마가요한을 회개시켜 더 좋은 일꾼으로 쓰실 수 있으므로,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의 일만 바로 해나가도록 하는 것이 바울의 의견입니다. 바울의 의견이 맞았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바울이 가는 곳마다 그 일이
잘되었고, 마가를 안 데리고 갔어도 하나님께서 마가를 회개시키셔서 좋은 일꾼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디모데후서 4:11에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하는 것을 보면 마가가 회개했습니다. 회개하고 바울에게 큰 유익을 주는 좋은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에 바로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오늘에 믿는 일이 바로 되고, 오늘에 하나님의 일이 바로 되어야 됩니다. 나중은 하나님께 맡겨야 됩니다. 장래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에 사는 생활, 오늘에 바로 하는 생활, 오늘에 믿음 지키는 생활, 오늘에 하나님의 일이 잘 되도록 하는 생활이 중요합니다. “나중에 잘해야 되겠다, 오늘은 내가 잘못하지만 이 다음엔 잘해야 되겠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은 내가 잘못해도 “이 다음에는 잘한다, 이 다음에는 무슨 돈 좀 벌어놓고 내가 잘한다, 딸 시집 보내고 잘한다, 학교 졸업하고 잘한다, 직장 좋은데 취직하면 잘한다”는 것은 다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오늘에 잘못하는 것이 나중에 어떻게 잘할 수 있습니까? 오늘에 바로 해야 나중에도 잘할 수 있습니다. 이 다음에 보자는 사람 무섭지 않다는 속담 있지 않습니까? “이 다음에”하는 것은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오늘에 바로 해야 내일도 하나님께서 바로 해주
십니다. 오늘에 잘못하면 내일이 어떻게 잘되겠습니까? 결과를 보십시오. 바나바가 잘되었습니까? 바울과 심히 다투다가 갈라졌습니다.

3.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짐

본문 39-41절에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 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에 바로 하자는 정신을 가진 바울은 잘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오늘에 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가 기르는데 치중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누가 잘되었습니까? 바나바가 잘되었습니까? 여기서부터는 바나바에 대한 이야기가 일절 없습니다. 바나바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가 끝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에 보면 마가가 누구한테 간 것이 분명합니까? 바울한테 갔습니다. 그것을 보면 바나바는 일을 변변히 못한 것 같습니다. 바나바가 일을 제대로 잘했으면 바나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야 되는데 일절 나오지 않습니다. 마가도 끝까지 바나바를 섬겼어야 되는데 바울에게 왔습니다. 그것을 보면 바나바는 가다가 실패한 것 같습니다.
오늘에 바로 하자는 신앙 가지고 마가를 일시적 끊어 버렸지만, 그래도 이것이 성공입니다. 오늘에 바로 하니까 마가도 바로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에 바로 하는 믿음, 오늘에 믿음 지키는 것, 오늘에 바로 충성하는 것, 오늘에 하나님 일이 잘되도록 하는 것, 이런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장래에도 잘되게 하시고, 범사가 다 잘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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