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6일 월요일

사도행전 16:31-34 바울이 간수에게 전도함.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바울이 간수에게 전도함
사도행전 16:31-34

16:31 그들이 말하기를 "주 예수님을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하고, 

16:32 그와 그의 집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16:33 간수가 그 밤 그 시각에 그들을 데려다가 매맞은 상처를 씻겨 주고 자신과 그 모든 가족이 곧 세례를 받았으며, 

16:34 그들을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음식을 대접하며 그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였다. 

16:35 날이 새자, 치안관리들이 부하들을 보내어 말하기를 "그 사람들을 풀어 주어라." 하니, 

16:36 간수가 바울에게 이 말을 전하여 말하였다. "치안관리들이 사람을 보내어 당신들을 풀어 주라고 하였으니, 이제 나가서 평안히 가시오." 

16:37 바울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로마 사람들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않고 대중 앞에서 매질하고 감옥에 가두었다가 이제 와서 우리를 은밀히 내보내느냐? 아니다.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할 것이다." 

16:38 부하들이 치안관리들에게 이 말을 전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들이라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였다. 

16:39 치안관리들이 와서 그들을 위로하고 데리고 나가 그 성읍에서 떠나 달라고 간청하니, 

16:40 그들이 감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 형제들을 보고 격려한 후에 떠났다.

1. 간수가 예수를 믿음

본문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앞절에 간수들이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어 보았는데 그 때에 바울이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복음을 간단하게 전했습니다. 즉 간수가 예수를 믿으면 그 집 식구들도 예수를 믿게 되고 그러면 집 전체가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보통 호주가 믿으면 그 가정식구들이 믿기 쉽습니다. 간수의 집이 예수를 다 믿었습니다. 간수가 먼저 예수를 믿고 또 그 가정 식구에게 복음을 전하므로 그 가정 식구들이 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그 사람을 통해서 식구들도 구원을 받고 또 가까운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한 사람이 구원 받는 것이 아주 큰 것입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여러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라도 전해서 예수 믿게 하는 일이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본문 32-34절에 “주의 말씀을 그 사람에게도 전하고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간수가 바울을 그의 집에 모시게 된 것은 큰 복입니다. 바울이 그 집에 가서 무엇을 했습니까?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고 하였
는데, 바울을 그 집에 모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 집에 모신 것과 같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자를 그 집에 모셨기 때문에 그 집에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이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온 식구가 알고, 말씀을 받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바울을 모신 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대통령을 모시는 것보다 더 큰 복입니다. 그 밤에 간수가 자기 집에 저희를 데려다가 맞은 자리를 씻겨 주었다고 하였는데, 매 맞은 자리를 찬물로 씻겨주는 것이 어혈을 풀어주므로 치료가 된다고 합니다. 매 맞은 자리가 열이 났을 것인데 밤에 바울과 실라를 간수의 집에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찬
물로 다 씻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권속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으므로 이 사람들의 심령이 치료를 받고 시원해졌습니다. 간수는 바울의 매 맞은 자리를 씻겨주므로 그 매 맞은 자리가 시원하게 나음을 얻었고, 또 바울은 그 사람들의 심령의 죽음과 병든 부분을 복음으로 살려 놓았기 때문에 또 그 사람들은 심령이 상쾌함을 얻었습니다. 피차간 다 시원함을 얻었습니다.
즉 간수의 집 식구는 바울에게 무엇을 하여 주었습니까? 바울의 매 맞은 자리를 씻어주므로 그 상처가 낮고 시원해졌으며, 또 바울은 간수의 집에 대해서 무엇을 하여 주었습니까? 복음을 전해서 심령을 살려 놓았으니까 심령의 병이 다 낮고, 심령이 상쾌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때에는 예수를 믿으면 즉시로 세례줄 수 있었습니다. 그 때의 믿음들은 아주 독실한 믿음입니다. 요새는 육 개월 혹은 일년 있다가 세례를 주지만 그 때는 믿자마자 신앙이 독실한 믿음으로 들어섰기 때문에 즉시로 세례를 주어도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새 즉시로 세례를 준다고 하면 그 사람이 참으로 예수를 믿는지 안 믿는지 모르기 때문에, 지내보고 세례를 주어야만 틀림이 없습니다.

한 육개월이나 일년이나 얼마 지내보다가 그 사람이 참으로 믿는 증거가 나타나고, 믿는 열매를 보아서 세례를 주느라고 요새는 즉시로 세례를 주지 않고, 한 일년 후에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바울 당시에는 즉시로 세례를 주는 것이 바로 한 것이고, 요새는 육개월이나 한 일년 후에 세례주는 것이 바로 하는 것입니다. 일년 있다가 세례를 주는 것은 성경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맞는 것입니다. 한 육개월이나 일년 있어야 확실한 것을 알지 않습니까?

또 초대교회 때에는 목사만 세례를 준 것이 아니고 집사도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 때의 집사는 요새 목사보다 낫습니다. 교인이 몇 만명이 되었는데 집사는 7명입니다. 몇 만 명 가운데 일곱 명 집사는 성령이 충만한 집사를 택했기 때문에 요새 목사보다 나은 것입니다. 요새는 집사가 세레를 준다고 하면 교회질서가 문란해 집니다. 그러므로 아무 교인이나 세례를 주는 것을 금합니다. 또 집사들이 세례를 준다고 하면 세례문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집사도 많고, 세례를 안 줄 자에게 세례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새는 목사가 세례를 주는 것으로 정했는데 이것이 성경적으로 맞습니다. 초대교회에 집사가 세례를 주었으므로 요새도 집사가 세례를 주자고 하면 그것은 성경에맞지 않습니다. 그 때의 집사는 요새의 목사보다 나은 줄 알아야 됩니다. 목사보다 나은 사람이 세례를 주었기 때문에 그것이 성경에 맞고, 요새는 목사가 세례를 주는 것이 성경에 맞습니다.

본문 34절에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전도자를 대접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대접할 마음이 생겨서 음식을 차려주고 온 집이 하나님을 믿고 기뻐했습니다. 참으로 은혜를 받으면 은혜를 받게 한 사람을 대접할 마음이 생깁니다.

2.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고 말하지 않은 이유

예수님을 위해 능욕 받는 일을 기뻐함

본문 35-36절에 “날이 새매 상관들이 아전을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간수가 이 말대로 바울에게 고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라고 하였습니다. 간수가 바울보고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라, 평안히 가라고 하였습니다. 아전이란 상관의 아래서 일하는 사람으로 하사관과 같습니다. 상관이 있고, 상관 아래서 일보는 그런 관리같습니다. 상관이 있으므로 아랫 사람이 있을 것아닙니까? 아래에서 일보는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상관들이 아전을 보내어 바울과 실라를 놓아 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간수가 상관이 너희를 내보내라고 하니 이제는 나와서 평안히 가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소식입니다. 어저께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다가 이제는 상관의 석방하라는 명령이 났으니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평안히 가라는 것입니다. 그 때에 바울이 즐거움으로 나왔습니까?

본문 37절에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보내어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 대”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에게 로마 시민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사람들 앞에서 때리고 공중 앞에서 또 감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보내고자 함이냐, 옳지 않다,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
고 나가야 함이라”고 하였는데 바울이 잘했습니까? 바울이 로마 사람의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면 전날 매 맞을 때에 “나는 로마 사람이라”고 하였다면 매를 안 맞았을 것입니다. 로마 사람은 때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 감옥에 가두려고 할 때에 “나는 로마 사람인데 죄도 정치 않고 감옥에 가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면 못 가둡니다. 그런데 왜 로마 사람이라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으므로 매를 다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까?
그리고 오늘 나갈 때에 왜 로마 사람이라고 하였습니까? 로마 사람이라고 한 마디만 하였으면 매도 안 맞고, 감옥에 갇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가만히 있어서 매를 다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까?

사도행전 5:40-41에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 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매를 맞고 베드로, 요한이 나올 때에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자기가 선택함을 받은 것에 대해서 기뻐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위해서 매 맞은 일, 예수를 위해서 능욕 받는 일은 하나님의 큰 복입니다. 그러므로 크게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났다고 했는데 바울도 이것입니다. 즉 예수를 위해 매 맞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겨 준 것, 예수를 위해서 능욕 받는 일에 자기를 참여 시켜 준 것, 그것이 하늘나라에 가면 한량없는 큰 복입니다. 예수를 위해서 매 한 대 맞은 것, 매 두 대 맞은 것, 매 열대 맞은 것은 하늘나라에 가면 다 면류관 상급입니다.

예수의 고난에 참여하므로 하늘나라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음 또 예수를 위해서 능욕 받는 것은 하늘나라에 가면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므로, 예수를 위해서 매 맞는 것을 기뻐합니다. 매 한대 맞는 것이 하늘나라에 가면 별 하나씩 올라가는 것입니다. 매 두 대 맞으면 별 두개, 매를 세대 맞으면 별 세개입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급이 올라갑니다. 얼마나 큰 복입니까? 로마 사람이라고 말하였다면 그 상급을 못 받을 뻔하지 않았겠습니까? 로마사람이라고 말했으면 하늘나라에 가서 상급을 못 받을텐데, 여기에서 로마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매를 맞았으므로 지금 큰 복이 떨어진 것입니다. 큰 복이 임하는 자리인데 지금 로마 사람이라고 말 하면 그 큰 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로마 사람이 아닌체 하고 매를 맞아 주었습니다. 예수를 위해서 매 맞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위해서 능욕 받는 것, 또 멸시와 천대 받는 것, 비방 받는 것 등이 하늘 나라에 가면 다 상급입니다.

예수를 위해서 욕을 먹어 보았습니까? 예수를 위해서 매를 맞아 보았습니까? 예수를 위해서 감옥에 갇혀 보았습니까? 예수를 위해서 멸시를 받아 보았습니까? 이것이 큰 복인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위해서 매 맞고, 능욕 받고, 감옥에 갇히는 것이 하늘나라에 가면 큰 영광과 상급으로 변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함

또 로마 시민이라고 말하지 않은 이유는, 상관들을 회개시키고, 또 예수님을 알게 하고,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본문 38-39절에 “아전들이 이 말로 상관들에게 고하니 저희가 로마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상관들이 친히 와서 데리고 나가야 된다”고 할 때에 상관들이 떨었습니다. 바울이 고소하면 상관들은 감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관들이 와서 떨면서 사과 하였습니다.
그 때에 바울이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전도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거기서 나왔습니다. 

본문 40절에 “두 사람이 옥에서 나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가니라”고 하였습니다. 루디아의 집은 빌립보성에서 제일 처음 예수 믿은 집입니다. 그러므로 가서 심방하고 권면하고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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