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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2일 일요일

고린도후서 4:11-18 겉 사람과 속사람.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겉 사람과 속사람
고린도후서 4:11-18

11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12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13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14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15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6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17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1.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함

본문 11-12절에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죽음의 길이라도 자원하여 복음을 전파하면서 나갔습니다. 바울이 이러한 길을 걸어갔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바울 안에서 역사하였고 또 다른 사람들을 살려내는 생명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날마다 복음 전
파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서 죽음의 길을 걸어간 것이 사망이 바울 안에서 역사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는 교인들 속에는 생명이 역사하였습니다. 자신이 생명 길을 걸어가면서 주를 위해 희생하면 그만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려 낼 수 있습니다.

전도자들이 생명을 내놓고 복음을 전파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살아난 것입니다. 또 많은 전도자들이 생명을 내놓고 가서 전도하다가 순교 당했지만 그로 인하여 생명의 역사가 그 지방에서 일어났습니다.
토마스 목사가 순교 당한 때부터 한국 교회가 일어난 겁니다. 또 주기철 목사, 손양원 목사가 순교 당하였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지키다가 또 말씀을 증거하다가, 주를 위해서 땅에 떨어지는 밀알 하나가 되었습니다. 땅에 떨어지는 밀알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거기서 많은 열매가 나왔습니다. 땅에 떨어지지 않고 밀알 하나가 그대로 있다고 하면 열매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어지므로 거기서 많은 열매가 나온 것입니다.

밀알이 안 떨어지고 그냥 있으면 몇 개 입니까? 한 개 그냥 있습니다. 밀알이 떨어져서 죽으므로 거기서 싹이 나와서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볍씨 하나 심으면 거기서 가지를 10개 이상 칩니다. 그러면 벼이삭 하나에 볍씨 백 개로 잡고 계산해보면 1000알이 나옵니다. 볍씨 하나 심어 1000개 얻은 겁니다. 그런데 안 썩어지겠다고 한 알 그대로 벌벌 떨며 남아 있으면 내내 한 알 그대로 있습니다. 내내 한 알 그대로 있다가 새가 와서 쫒아 먹으면 다 없어지는 겁니다. 아예 심어 놓아야 나옵니다. 심어 놓으면 싹이 나와서 가지를 치고 많은 열매가 맺힙니다. 그것이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겁니다. 즉 복음을 위해서 죽는 데로 나가고, 복음을 전하느라고 생명을 내놓고 나가면 생명이 너희 안에서 역사합니다. 이렇게 생명을 내놓고 자신을 죽음에 넘기워 주면서 결사각오하고 나가서 전했더니,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했습니다. 그러므로 전할만 합니다. 전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한알 그대로 있다가 그저 없어지고 말 것인데, 이제 주를 위해서 심어 놓으니까 많은 열매가 나와서 많은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 하였는데,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해야 생명이 다른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희생해야 합니다. 자기 하나 죽어서 몇 사람이 살아났습니까? 아까 한 알의 벼가 썩어지므로 1000개의 벼 알을 맺었다고 했는데, 자기 하나 죽어서 천 사람이 살아난다고 하면 죽을 만 하지 않습니까? 죽을 만 합니다. 살아야 얼마나 살겠습니까? 암만 살아도 백년 전에 다 죽습니다. 기껏 살아야 70~80년 밖에 못 살 것인데, 한알 그대로 있다가 죽으면 그것은 아무 열매가 없습니다. 아예, 땅에 떨어지는 밀알이 되어서 죽음에 넘기우면 거기서 많은 생명이 살아납니다. 한 사람이 죽어서 천 명이 살아난다면 얼마나 좋은 겁니까? 또 천명이 살아나고 끝나는 겁니까? 그것을 또 갔다가 심으면 그 다음에 또 얼마가 나오겠습니까? 천을 갔다가 심으면 백 만 명이 살아납니다. 또 백만을 갔다가 심으면 10억, 10억을 심으면 1조입니다. 참 좋습니다. 그러나 주를 위해서 희생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한 알 그대로 나가면 한 알 그대로 있습니다.

교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역자들도 주를 위해서 희생할 생각을 하고 나가야 합니다. 즉 사망에 넘기워 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서 많은 생명이 살아납니다. 그런데 내가 죽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하고 염려하는데, 아이들은 자기 아이들인 줄 압니까? 하나님의 아이들입니다. 또 아이들은 자기 밥 먹고 사는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도 자기 밥 먹고 살지, 부모 밥 먹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배고플 때 엄마에게 “엄마 내 밥 줘!” 하지 “엄마 나 배고프니 엄마
밥 줘!”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도 다 자기 밥 먹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나갈 때에, 아이들도 다 잘 됩니다. 즉 자기가 복음을 위해 죽을 때에 아이들이 잘 됩니다. 아이들을 잘 되게 하려면 복음을 위해서 죽으면 됩니다. 그러면 잘 됩니다. 자기가 살았을 때는 내가 책임을 졌지만 복음을 위해서 자기가 죽으면 하나님이 책임을 지십니다. 내가 책임지는 것이 낫겠습니까? 하나님이 책임을 지시는 것이 낫겠습니까? 하나님이 책임을 지면 나보다 몇 억 만 배는 잘 됩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 당하였지만 주기철 목사님의 아들들이 얼마나 잘되었습니까? 다 잘 되었습니다. 내가 주기철 목사님의 아들, 주영진 목사님을 아는데 그분이 이북에서 교회를 맡으셨는데 아주 철두철미한 자기 아버지 신앙을 본받고 나가다가 순교 당했습니다. 또 내가 아는 주기철 목사님의 아들이 있는데, 영락교회 주광조 장로로 주기철 목사님에 관한 책도 써냈고, 극동방송 이사이기도 한 훌륭한 사람입니다. 아버지가 죽었지만 훌륭하게 되었습니다. 순교자의 가정이 다 훌륭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3절에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고로 또한 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16:10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고로 또한 말하리라”는 것은 믿는 고로 말한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 믿고 말한다는 겁니다.

2. 예수님을 위해서 죽음에 넘기우면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리심

본문 14-15절에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란 예수를 위해서 항상 죽음에 넘기우는 생활을 하는 자는 하나님이 예수와 함께 다시 살려서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한다고 하였는데, 은혜가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이 많이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즉 바울이 여러 가지 환난과 고통 속에서도 자기를 죽음에 넘겨주면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구원받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하든지 죽음에 넘기워,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야 되겠습니다.

3.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짐

본문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겉 사람이 후패한다는 것은 늙어서 후패하는 것이 아니고, 죽음에 넘기우느라고 후패한다는 겁니다.
또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고 가느라고 후패한다는 겁니다. 즉 예수의 생명이 속에 살아서 역사하는 그 생명의 역사를 따라가느라고 겉 사람은 후패한다는 것입니다. 질그릇 속에 보화를 가졌는데, 그 보화의 직무를 잘 감당하려고 죽음에 넘기워 주고,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고 나가므로 겉 사람이 후패합니다.

복음을 위해 핍박과 환난을 당하므로 겉 사람이 후패함

복음을 위해 핍박과 환난을 당하느라고 겉 사람이 후패합니다. 즉 복음을 위해 욕을 먹고, 멸시와 천대를 받고 나가므로 겉 사람이 후패합니다. 그러나 속은 날로 새롭습니다. 우리도 겉 사람은 날마다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자리에 나가야 됩니다. 

예수님의 새 생명으로 살 때에 속사람은 새로워짐

예수님의 새 생명을 가지고 살아야 되고,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야 되고, 또 복음의 직무를 감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겉 사람은 점점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습니다. 달란트 장사에 다 투자했으므로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겉 사람은 후패해졌습니다. 그러나 속은 날로 새로워 졌습니다. 믿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윤 할머니하고 어떤 처녀 집에 심방을 갔는데, 윤 할머니가 그 처녀에게 시집 좋은데 가게 되었으므로 복 받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윤 할머니에게 “왜 그런 말을 하느냐?, 육신에 대한 것은 말하지 말고 영적인 것만 말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 다음에 다시 그런 말 하면 안 데리고 다니겠다”고 했더니 “안 그럴 테니 데리고 다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또 그런 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서는 잘못 했다는 겁니다. 이 다음에는 다시 안 그런다는 겁니다. 그러나 얼마 있다가 또 다시 육신적인 말이 나오는데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다음에는 조금 나아졌습니다. 윤 할머니는 93세 때에 천당 가셨습니다. 천당 가기 얼마 전까지도 전도지를 보따리에 넣고 파고다 공원에 가서 전도하고, 남산에 가서 전도하고, 형무소에 가서 전도했습니다. 그렇게 전도하시다가 천당 가셨는데, 그것이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위해서 전적으로 몸 바쳐 희생 봉사하고,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 신앙의 달음박질을 해나가면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성도는 이런 길을 걸어가야 됩니다.

4.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에 중한 것을 이룸

본문 17절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에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받는 환난은 경한 것이고 잠시 동안입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잠시 동안 받는 환난이 지극히 크고 중하고 영원한 영광을 이루게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를 위하여 희생하고, 죽음에 넘기우는 것은 잠시 잠깐입니다. 잠시 받는 환난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에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룹니다. 그러므로 주를 위해서 희생해야 되며, 죽음에 넘기워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영적 생명이 살아나고 영원한 영광에 중한 것이 자기에게 옵니다. 영원히 그 영광을 가지고 삽니다. 영원히 면류관을 쓰고 삽니다. 주를 위해서 잠시 받는 환난, 즉 죽음에 넘기우는 환난은 하늘나라에 면류관을 만들어서 가는 겁니다.

5. 보이는 것은 잠깐이며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

본문 18절에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보이는 것은 육에 속한 것들이며, 보이지 않은 것은 영에 속한 것들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며,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즉 현상세계는 잠깐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이루어 나가느라고 우리는 죽음에 넘기우고 또 주를 위해서 희생하고, 고난을 단 마음으로 받고 나갑니다. 주를 위해서 내게 있는 모든 것, 즉 생명까지 다 바쳐놓고 죽도록 충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