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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5일 토요일

에스겔 41:1-26 성소 척량(尺量)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성소 척량(尺量)
에스겔 41:1-26

1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에 이르러 그 문벽을 척량하니 이편 두께도 육척이요 저편 두께도 육 척이라 두께가 이와 같으며 2그 문통의 광이 십 척이요 문통 이편 벽의 광이 오 척이요 저편 벽의 광이 오 척이며 그가 성소를 척량하니 그 장이 사십 척이요 그 광이 이십 척이며 3그가 안으로 들어가서 내전 문통의 벽을 척량하니 두께가 이 척이요 문통이 육 척이요 문통의 벽의 광이 각기 칠 척이며 4그가 내전을 척량하니 장이 이십 척이요 광이 이십 척이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지성소니라 하고 5전의 벽을 척량하니 두께가 육 척이며 전 삼면에 골방이 있는데 광이 각기 사 척이며 6골방은 삼층인데 골방 위에 골방이 있어 모두 삼십이라 그 삼면 골방이 전 벽 밖으로 그 벽에 의지하였고 전 벽 속은 범하지 아니하였으며 7이 두루 있는 골방이 그 층이 높아갈수록 넓으므로 전에 둘린 이 골방이 높아갈수록 전에 가까와졌으나 전의 넓이는 아래 위가 같으며 골방은 아래층에서 중층으로 위층에 올라가게 되었더라 8내가 보니 전 삼면의 지대 곧 모든 골방 밑 지대의 고가 한 장대 곧 큰 자로 육 척인데 9전을 의지한 그 골방 바깥벽 두께는 오 척이요 그 외에 빈터가 남았으며 10전 골방 삼면에 광이 이십 척되는 뜰이 둘려 있으며 11그 골방 문은 다 빈터로 향하였는데 한 문은 북으로 향하였고 한 문은 남으로 향하였으며 그 둘려 있는 빈터의 광은 오 척이더라 12서편 뜰 뒤에 건물이 있는데 광이 칠십 척이요 장이 구십 척이며 그 사면 벽의 두께가 오 척이더라 13그가 전을 척량하니 장이 일백 척이요 또 서편 뜰과 그 건물과 그 벽을 합하여 장이 일백 척이요 14전 전면의 광이 일백 척이요 그 앞 동향한 뜰의 광도 그러하며 15그가 뒤뜰 뒤에 있는 건물을 척량하니 그 좌우편 다락까지 일백 척이더라 내전과 외전과 그 뜰의 현관과 16문통 벽과 닫힌 창과 삼면에 둘려 있는 다락은 문통 안편에서부터 땅에서 창까지 널판으로 가리웠고 (창은 이미 닫히었더라) 17문통 위와 내관과 외전의 사면 벽도 다 그러하니 곧 척량한 대소대로며 18널판에는 그룹들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두 그룹 사이에 종려나무 하나가 있으며 매 그룹에 두 얼굴이 있으니 19하나는 사람의 얼굴이라 이편 종려나무를 향하였고 하나는 어린 사자의 얼굴이라 저편 종려나무를 향하였으며 온 전 사면이 다 그러하여 20땅에서부터 문통 위에까지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을 새겼으니 성전 벽이 다 그러하더라 21외전 문설주는 네모졌고 내전 전면에 있는 식양은 이러하니 22곧 나무 제단의 고가 삼 척이요 장이 이 척이며 그 모퉁이와 옆과 면을 다 나무로 만들었더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앞의 상이라 하더라 23내전과 외전에 각기 문이 있는데 24문마다 각기 두 문짝 곧 접치는 두 문짝이 있어 이 문에 두 짝이요 저 문에 두 짝이며 25이 성전 문에 그룹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벽에 있는 것과 같고 현관 앞에는 나무 디딤판이 있으며 26현관 좌우편에는 닫힌 창도 있고 종려나무도 새겼고 전의 골방과 디딤판도 그러하더라

1. 성소 척량

본문 1절에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에 이르러 그 문 벽을 척량하니 이편 두께도 육 척이요 저편 두께도 육 척이라 두께가 이와 같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천사가 에스겔을 데리고 성소에 가서
문 벽의 두께를 척량하였습니다. 그 두께는 육 척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자그마치 약 3m나 되는 것입니다(1척은 53cm로 6척은 3.18m). 그렇게 두껍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적 성전 건축도 이렇게 견고하게 해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문 벽의 두께가 육척이면 얼마나 두껍습니까? 바깥에서 쳐들어오려고 해도 못 들어오고, 안에서 나가려고 해도 못 나가는 견고한 성전입니다.

본문 2절에 “그 문통의 광이 십 척이요 문통 이편 벽의 광이 오척이요 저편 벽의 광이 오 척이며 그가 성소를 척량하니 그 장이 사십 척이요 그 광이 이십 척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문통은 문의 폭인데, 문이 말하자면 십 척, 즉 5m가 넘는다는 것입니다. 성소의 문을 넓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들어오게 하였습니다.
우리의 영적 성전 문도 이렇게 넓어야 합니다. 마음 문을 넓혀 많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바로 세우고 살려나가는 일을 할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아량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본문 3절에 “그가 안으로 들어가서 내전 문통의 벽을 척량하니 두께가 이 척이요 문통이 육 척이요 문통의 벽의 광이 각기 칠 척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내전은 지성소를 가리키는데, 그곳에는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에스겔은 들어가지 못하고 천사만 들어가서 척량하였습니다. 내전의 문통은 육 척으로 외전의 문통 십척보다 좁습니다. 그리고 벽의 두께도 이 척으로 외전의 벽 두께 육척보다 얇습니다. 또 벽의 폭도 칠 척으로 외전 벽의 십 척보다 좁아졌습니다. 여기서 문통이 좁아진 것은 영적 지성소로 들어가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될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벽은 얇아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거리가 가까운데, 이것은 성소에 들어간 사람에게 지성소가 가까워진 것을 뜻합니다.

본문 4절에 “그가 내전을 척량하니 장이 이십 척이요 광이 이십척이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지성소니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성소는 폭이 이십 척, 길이가 사십 척으로 큰 직사각 모양입니다. 지성소는 그보다 작고, 장과 광, 즉 가로 세로가 같은 정방형으로, 법궤가 있는 가장 은밀한 곳입니다.

2. 전(殿)의 삼면에 있는 골방들

골방의 층 수

본문 5-6절에 “전의 벽을 척량하니 두께가 육 척이며 전 삼면에 골방이 있는데 광이 각기 사 척이며 골방은 삼층인데 골방 위에 골방이 있어 모두 삼십이라 그 삼면 골방이 전 벽 밖으로 그 벽에 의지하였고 전 벽 속은 범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성소의 벽은 두께가 육 척으로 두꺼워서 원수가 침입하지 못하며, 또 안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소 생활이 은밀한 생활임을 가리키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골방은 삼층인데 골방 위에 골방이 있어 모두 삼십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전과 접한 골방이 많은 것은 언제나 영적으로 골방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은밀하게 골방 생활을 하는 성도가 참 성도입니다. 골방을 잃어버리고 골방 생활을 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또 골방에 층수가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1층 골방 생활하는 사람이 있고, 2층골방 생활하는 사람이 있고, 3층 골방 생활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1층 골방 생활하는 사람이 많고, 2층 골방 생활하는 사람은 그보다 적으며, 3층 골방 생활하는 사람은 더욱 적습니다. 우리는 골방이 하나님의 성전을 중심으로 접해 있는 것처럼, 성소생활을 삶의 중심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하기를 힘쓰며 영적 골방 생활을 하여 신령한 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골방 생활을 하려면 예배당 근처에 사는 것이 좋습니다. 성전에 붙어사는 생활이 하나님께 복 받는 생활입니다. 여기서 삼은 하나님의 수요, 삼십은 만수입니다. 성도는 점점 높은 골방으로 올라가는 생활, 은밀한 골방 생활을 해야 합니다. 골방에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보시고, 갚아주십니다. 마태복음 6장 6절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은밀한 골방에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보아주시며, 갚아 주십니다. 일층 골방에서 이층 골방으로, 이층 골방에서 삼층 골방으로 한 계단씩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내려가기도 합니다. 올라가야겠는데, 가재처럼 뒷걸음을 쳐서 내려가다가 아예 골방을 잃어버리고 세상으로 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다 골방으로 들어가야 하고, 또 골방에 들어가면 차츰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성전을 떠나지 않아야합니다.

골방의 규모

본문 7절에 “이 두루 있는 골방이 그 층이 높아갈수록 넓으므로 전에 둘린 이 골방이 높아갈수록 전에 가까와졌으나 전의 넓이는 아래 위가 같으며 골방은 아래층에서 중층으로 위층에 올라가게 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골방이 층이 높아갈수록 넓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아래층보다 위층이 더 넓다는 것입니다. 세상 집은 위로 올라갈수록 더 좁습니다. 그런데 골방은 아래층보다 이층이 더 넓고, 이층보다 삼층이 더 넓습니다. 이것은 영적 세계가 올라갈수록 넓어짐을 뜻합니다. 올라갈수록 신앙의 세계가 넓어지고, 올라갈수록 믿음을 쓰는 것이 넓어집니다. 올라갈수록 모든 사람을 용납하고, 모든 사람을 포섭할 수 있는 너그러운 성품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님의 마음을 닮아가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또 골방에 높이 올라갈수록 전이 더 가깝습니다. 아래층보다는 이층이 더 가깝고, 이층보다는 삼층이 하나님의 성전에 가깝습니다. 내려갈수록 전이 멀어집니다. 신령한 세계에 올라간 사람은 늘 성전에서 마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려가는 사람은그 마음이 성전에서 멀어집니다. ‘아래층에서 중층으로 위층에 올라 가게 되었더라’고 하였는데, 영적 세계는 단계를 밟아 올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차례로 단계를 밟지 않고 뛰어넘어갈 수 없습니다.
신앙은 1단계에서 2단계로 올라가는 연단을 받고, 2단계에서 또 많은 연단을 받아 3단계로 올라가야 합니다. 또 3단계에서 많은 시련을 받으면 그 이상의 단계로 올라갑니다. 많은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믿음을 지켜야 한 계단씩 올라가는 것입니다. 계단을 밟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갈 수 없는 것처럼, 신앙은 단계가 있습니다. 믿음은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연단을 받고 많은 시련을 겪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한 계단씩 올라가는 것입니다.

예전에 심을철 조사와 이기선 목사님은 감옥에서 여러 해 동안 연단을 많이 받았습니다. 홍 조사는 그 당시 감옥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아무리 기도해도 심을철 조사를 따라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심을철 조사와 같이 자기도 감옥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몇 십 년 고난을 받은 사람과 고난을 받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많습니다. 갑자기 40일 금식 기도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요새 금식 기도 며칠하고 그것을 자랑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어림도 없습니다. 갑자기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 조금씩, 여러 가지 연단을 받으면서 올라가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힘쓰는 것이 있어야 합니
다. 환난을 많이 겪고, 시험을 많이 통과해야 합니다.

본문 8-9절에 “내가 보니 전 삼면의 지대 곧 모든 골방 밑 지대의 고가 한 장대 곧 큰 자로 육 척인데 전을 의지한 그 골방 바깥벽 두께는 오 척이요 그 외에 빈터가 남았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전 지대와 골방 지대의 높이가 같고, 골방 벽 두께는 오 척으로 두껍께 하였습니다. 이렇게 벽을 두껍게 한 것은 성전 안을 은밀하게 하고 외부의 침략을 막으며 견고하여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영적 성전도 은밀하게 하고 견고하게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빈터가 남았으며’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성전 생활하는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함을 뜻합니다. 세상의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꽉 차있거나 조급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0절에 “전 골방 삼면에 광이 이십 척되는 뜰이 둘려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골방 삼면에 광이 이십 척되는 뜰이 둘려 있었는데, 이렇게 넓은 뜰을 둔 것은 성전 생활하는 자가 여유 있게 안식할 수 있을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11절에 “그 골방 문은 다 빈터로 향하였는데 한 문은 북으로 향하였고 한 문은 남으로 향하였으며 그 둘려 있는 빈터의 광은 오척이더라”고 하였습니다. 골방 문이 다 어디로 났습니까? 빈터로 향하였습니다. 한적한 곳으로 향하였습니다. 한 문은 북으로, 한 문은 남으로 향하였습니다. 골방 문이 다 빈터로 향한 것은 골방 생활하는 자가 (모든 것에서 눈을 떼고 마음을 비워) 한적한 곳을 바라보기 위함입니다.

3. 뜰 뒤에 있는 별관과 기타의 척수

본문 12절에 “서편 뜰 뒤에 건물이 있는데 광이 칠십 척이요 장이 구십 척이며 그 사면 벽의 두께가 오 척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서편 뜰 뒤에 별관이 있는데, 광이 칠십 척, 장이 구십 척이라고 하였습니다. 성전보다 넓습니다. 성소는 장이 사십 척, 광이 이십 척이었으며, 내전의 장과 광은 각각 이십 척이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 성전에는 없는 것으로, 장차 이방인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을 것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본문 13절에 “그가 전을 척량하니 장이 일백 척이요 또 서편 뜰과 그 건물과 그 벽을 합하여 장이 일백 척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뜰을 척량하는 것입니다.

본문 14-15절에 “전 전면의 광이 일백 척이요 그 앞 동향한 뜰의 광도 그러하며 그가 뒤뜰 뒤에 있는 건물을 척량하니 그 좌우편 다락까지 일백 척이더라 내전과 외전과 그 뜰의 현관과”라고 하였습니다. 전 전면의 폭도 일백 척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동향한 뜰의 광도 그러하며’라고 하였는데, 이것도 일백 척입니다. 그리고 뒤뜰에 있는 건물과 좌우편 다락까지 다 일백 척입니다. 성전은 이렇게 척수에 맞게 건축되었습니다.

본문 16-17절에 “문통 벽과 닫힌 창과 삼면에 둘려 있는 다락은 문통 안편에서부터 땅에서 창까지 널판으로 가리웠고(창은 이미 닫히었더라) 문통 위와 내관과 외전의 사면 벽도 다 그러하니 곧 척량한 대소대로며”라고 하였습니다. ‘널판으로 가리웠고’라고 하였는데, 외전과 내전 사면 벽과 현관과 다락, 문통 안팎을 땅에서 창까지 널판으로 가리었다는 것입니다.

4. 성전의 내부 장식과 제단

본문 18절에 “널판에는 그룹들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두 그룹 사이에 종려나무 하나가 있으며 매 그룹에 두 얼굴이 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널판에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을 번갈아 가며 새겼습니다.
이것은 성전을 아름답고 값지게 꾸미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성전도 이와 같이 값지고 아름답게 건축해나가야 합니다. ‘종려나무’는 승리를 상징하는데, 세상에서 성도가 승리적으로 신앙 생활을 해나가야 함을 가리킵니다. 그래야 영적 성전이 잘 건축될 수 있습니다. ‘그룹’은 천사를 가리키는데,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영적 성전을 보호하시고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9-20절에 “하나는 사람의 얼굴이라 이편 종려나무를 향하였고 하나는 어린 사자의 얼굴이라 저편 종려나무를 향하였으며 온 전 사면이 다 그러하여 땅에서부터 문통 위에까지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을 새겼으니 성전 벽이 다 그러하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룹들에게 두 얼굴이 있는데, 하나는 사람의 얼굴이고 하나는 어린 사자의 얼굴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지혜, ‘사자’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성도를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며, 성도로 하여금 모든 마귀를 이기게 하실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하여 영적 성전을 잘 건축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21-22절에 “외전 문설주는 네모졌고 내전 전면에 있는 식양은 이러하니 곧 나무 제단의 고가 삼 척이요 장이 이 척이며 그 모퉁이와 옆과 면을 다 나무로 만들었더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앞의 상이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나무 제단’은 진설병 상(床)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겔 44:16). 이것은 장래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나무에 달려 속죄 제사를 드려주실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23-25절에 “내전과 외전에 각기 문이 있는데 문마다 각기 두 문짝 곧 접치는 두 문짝이 있어 이 문에 두 짝이요 저 문에 두 짝이며 이 성전 문에 그룹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벽에 있는 것과 같고 현관 앞에는 나무 디딤판이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외전과 내전의 출입문들은 문을 두 짝씩 달았는데, 그 문짝에는 그룹과 종려나무를 새겼다고 하였습니다. ‘나무 디딤판’은 자신이 희생 제물이 되어 가면서 하나님의 영적 성전이 잘 건축되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자기가 희생하여 디딤판이 되어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 올라서서 영적 성전을 건축해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 26절에 “현관 좌우편에는 닫힌 창도 있고 종려나무도 새겼고 전의 골방과 디딤판도 그러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에 디딤판과 종려나무, 즉 희생과 승리로써 들어갈 것을 가리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