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과의 전쟁 뒷처리
사사기 21:1-25
1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2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대성 통곡하여 3가로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까 하더니 4이튿날에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서 거기 한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라 5이스라엘 자손이 가로되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 총회와 함께 하여 여호와 앞에 올라오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 하니 이는 그들이 크게 맹세하기를 미스바에 와서 여호와 앞에 이르지 아니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하였음이라 6이스라엘 자손이 그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가로되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쳤도다 7그 남은 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게 하리요 우리가 전에 여호와로 맹세하여 우리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8또 가로되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 하고 본즉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진에 이르러 총회에 참예치 아니하였으니 9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거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보았음이라 10회중이 큰 용사 일만 이천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야베스 길르앗 거민과 및 부녀와 어린아이를 칼날로 치라 11너희의 행할 일은 모든 남자와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할 것이니라 하였더니 12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거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백 인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자지 아니하여서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 그들이 실로 진으로 끌어 오니라 이는 가나안 땅이더라 13온 회중이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보내어 평화를 공포하게 하였더니 14그때에 베냐민이 돌아온지라 이에 이스라엘 사람이 야베스 길르앗 여인 중에서 살려둔 여자를 그들에게 주었으나 오히려 부족하므로 15백성들이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쳤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궐이 나게 하셨음이더라 16회중 장로들이 가로되 베냐민의 여인이 다 멸절되었으니 이제 그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하여야 아내를 얻게 할꼬 17또 가로되 베냐민의 도망하여 면한 자에게 마땅히 기업이 있어야 하리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사라짐이 없으
리라 18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못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맹세하여 이르기를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하였음이로다 19또 가로되 보라 벧엘 북편, 르보나 남편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길 동편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절기가 있도다 하고 20베냐민 자손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21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무도하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그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22만일 그 아비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쟁론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컨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
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 23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 중에서 자기들의 수효대로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니라 24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곳을 떠나 각각 그 지파, 그 가족에게로 돌아가되 곧 각각 그곳에서 나와서 자기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25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21:1-25
1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2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대성 통곡하여 3가로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까 하더니 4이튿날에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서 거기 한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라 5이스라엘 자손이 가로되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 총회와 함께 하여 여호와 앞에 올라오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 하니 이는 그들이 크게 맹세하기를 미스바에 와서 여호와 앞에 이르지 아니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하였음이라 6이스라엘 자손이 그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가로되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쳤도다 7그 남은 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게 하리요 우리가 전에 여호와로 맹세하여 우리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8또 가로되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 하고 본즉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진에 이르러 총회에 참예치 아니하였으니 9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거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보았음이라 10회중이 큰 용사 일만 이천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야베스 길르앗 거민과 및 부녀와 어린아이를 칼날로 치라 11너희의 행할 일은 모든 남자와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할 것이니라 하였더니 12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거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백 인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자지 아니하여서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 그들이 실로 진으로 끌어 오니라 이는 가나안 땅이더라 13온 회중이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보내어 평화를 공포하게 하였더니 14그때에 베냐민이 돌아온지라 이에 이스라엘 사람이 야베스 길르앗 여인 중에서 살려둔 여자를 그들에게 주었으나 오히려 부족하므로 15백성들이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쳤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궐이 나게 하셨음이더라 16회중 장로들이 가로되 베냐민의 여인이 다 멸절되었으니 이제 그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하여야 아내를 얻게 할꼬 17또 가로되 베냐민의 도망하여 면한 자에게 마땅히 기업이 있어야 하리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사라짐이 없으
리라 18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못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맹세하여 이르기를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하였음이로다 19또 가로되 보라 벧엘 북편, 르보나 남편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길 동편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절기가 있도다 하고 20베냐민 자손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21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무도하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그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22만일 그 아비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쟁론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컨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
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 23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 중에서 자기들의 수효대로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니라 24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곳을 떠나 각각 그 지파, 그 가족에게로 돌아가되 곧 각각 그곳에서 나와서 자기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25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1. 베냐민 사람에게 딸을 주지 않기로 맹세함
본문 1절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베냐민과 전쟁을 한 후에 베냐민 사람을 거의 다 죽이고 나서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고 맹세했습니다.
본문 2-3절에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대성 통곡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까 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지파 중에 한 지파, 베냐민 지파가 죽어서 거의 다 없어졌기 때문에 백성이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맹세한 것과 베냐민 지파가 이즈러졌다고 통곡한 것이 서로 맞지가 않습니다. 베냐민 지파가 이즈러졌다고 통곡을 하려면 딸을 안 주기를 맹세를 하지 말든지 딸을 안 주려면 이즈러졌다고 통곡을 안 했어야 합니다.
이것은 첫째, 맹세한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기네 감정대로 맹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냐민 지파에게 딸을 주지 말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들과 더불어 전쟁을 했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이제 베냐민 지파에게 딸을 주
지 아니하겠다고 맹세한 것을 보면 그 맹세가 잘못된 것입니다. 언제나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큰 손해를 보았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 사람 사만 명이 죽었고 베냐민 사람은 이만 오천 백 명이 죽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더 많이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냐민 지파의 군사 중 이만 오천 백 명이 죽었고 육백 명만 남았으니 거의 다 죽은 셈입니다. 얼마 되지 않는 군대가 악독하게 동족을 해하고 말할 수 없는 악한 일을 하다가 마침내 진멸당하고 만 것입니다. 베냐민 사람들이 레위 사람에게 악한 일을 했고 음란과 악독이 사무쳤으므로 영영히 이스라엘의 딸을 줄 수가 없고 멸망을 시켜야 마땅한 자들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지도 않고 맹세하면서 감정으로 일을 처리한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지 아니하겠다고 맹세한 것을 보면 그 맹세가 잘못된 것입니다. 언제나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큰 손해를 보았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 사람 사만 명이 죽었고 베냐민 사람은 이만 오천 백 명이 죽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더 많이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냐민 지파의 군사 중 이만 오천 백 명이 죽었고 육백 명만 남았으니 거의 다 죽은 셈입니다. 얼마 되지 않는 군대가 악독하게 동족을 해하고 말할 수 없는 악한 일을 하다가 마침내 진멸당하고 만 것입니다. 베냐민 사람들이 레위 사람에게 악한 일을 했고 음란과 악독이 사무쳤으므로 영영히 이스라엘의 딸을 줄 수가 없고 멸망을 시켜야 마땅한 자들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지도 않고 맹세하면서 감정으로 일을 처리한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으므로 맹세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기 때문에 맹세하면 이 다음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데 그것이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나가야겠는데 처음에 그것이 옳은 것 같아서 맹세를 해 놓으면 맹세해 놓은 것 때문에 잘못된 것도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안 가겠다고 일단 맹세를 한 후에는 가는 것이 옳아도 안가겠다는 맹세 때문에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데에 방해가 됨으로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령 내가 무엇을 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안 한다고 했는데 얼마 후에 보니 그것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알게 될 경우에 전에 맹세한 것을 어떻게 해야합니까? 맹세한 것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하는 데 그것이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또 내가 무엇을 한다고 맹세했다가 얼마 후에 보니 그것을 하면 안 되겠기에 하지 말아야겠는데 한다고 한 맹세가 있어서 그만 두기가 곤란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맹세는 아예 하지 말고 무엇이나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나가야만 하나님의 뜻을 잘 따라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정으로 맹세를 했는데 우리는 무슨 일이나 감정으로 일을 처리하면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감정으로 무슨 일을 처리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되고 또 손해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분김에 무슨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분이
나서 무엇을 해버리면 그것이 바로 되지 않습니다. 분김에 싸우고 분김에 집 문을 다 부수고 분김에 상을 다 뒤집어엎고 분김에 독을 다 깨뜨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리고 나서 분이 풀어지면 후회를 하는 것입니다. 분김에 싸우다가 어떤 집에서 겨울에 문을 다 때려부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추우니까 때려부수었던 문을 실로 잡아매고 못으로 쳤답니다. 그럴 바에는 문을 부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 아닙니까? 문을 부술 때는 분이 나서 그랬는데 저녁이 되어 추워지자 문을 도로 붙이고 못질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김에 무슨 일을 처리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원리원칙을 찾아서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합니다. 또 맹세하지 말고 옳은 것은 옳다, 또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여 하나님의 뜻만 찾아가야지 분김에 하다가는 후회하게 됩니다. 이 사람들도 후회하지 않습니까? 징벌도 너무 지나치게 해놓고 한 지파가 없어졌다고 후회한 것입니다. 그리고 대성통곡을 한 것입니다.
나서 무엇을 해버리면 그것이 바로 되지 않습니다. 분김에 싸우고 분김에 집 문을 다 부수고 분김에 상을 다 뒤집어엎고 분김에 독을 다 깨뜨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리고 나서 분이 풀어지면 후회를 하는 것입니다. 분김에 싸우다가 어떤 집에서 겨울에 문을 다 때려부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추우니까 때려부수었던 문을 실로 잡아매고 못으로 쳤답니다. 그럴 바에는 문을 부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 아닙니까? 문을 부술 때는 분이 나서 그랬는데 저녁이 되어 추워지자 문을 도로 붙이고 못질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김에 무슨 일을 처리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원리원칙을 찾아서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합니다. 또 맹세하지 말고 옳은 것은 옳다, 또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여 하나님의 뜻만 찾아가야지 분김에 하다가는 후회하게 됩니다. 이 사람들도 후회하지 않습니까? 징벌도 너무 지나치게 해놓고 한 지파가 없어졌다고 후회한 것입니다. 그리고 대성통곡을 한 것입니다.
2.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림
본문 3-4절에 “가로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까 하더니 이튿날에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서 거기 한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잘한 일입니다. 언제나 일이 끝난 다음에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무슨 일이나 회개하고 바로 서는 것이 좋습니다. 전쟁하기 전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고 또 전쟁을 다 한 다음에도 하나님 앞에 모든 죄를 회개하고 일을 처리할 때 잘못한 것을 회개했는데 싸울 때에 잘못한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너무 잔인하게 해서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한 지파를 다 이지러지게 했으므로 이겼지만 하나님 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회개한 것입니다.
회개하는 신앙
이겼다고 의기양양해서 자기가 잘한 줄로 알고 거만하고 오만불손하게 돌아가는 사람은 앞으로 하나님께 매 맞을 사람입니다. 이긴 다음에도 겸손해져야 하고 또 언제나 자기도 잘못한 것이 있는 줄로 알아야 합니다. 이긴 사람은 잘못한 것이 없습니까? 자기도 잘못한 것이
있는지 살펴서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1절에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잘못한 것이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베냐민 지파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 사람이 잘못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모인 자체가 격동이 되어 모인 것이고 전쟁도 격동이 되어서 했고 주동 세력을 꺾은 다음에도 끝까지 따라가면서 잔인하게 이삭 줍듯 사람들을 죽였으니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그래서 하나님 앞에 뉘우치고 회개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진 사람이 망한 것보다 이긴 사람이 망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 못하고 망하는 사람보다 잘하고 망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못한 사람은 겸손하게 회개할 수 있지만 잘한 사람은 교만하여 회개하지 못하므로 망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우리는 무엇을 좀 잘한 다음에 잘한 것만 생각하지 말고 못한 것이 많은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일은 바르게 했지만 방법에 있어서 내가 잘한 것이 아니다,
또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다, 죄를 미워하는 것은 잘했지만 사람까지 미워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 온유한 방법으로 하지 못하고 과격한 방법으로 남에게 손해를 줄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면서 회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긴 사람도 잘못한 것이 많이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싸움을 하면 양편이 다 같아진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은 잘못했고 한 사람은 옳아서 싸움을 하지만 싸움을 한창 하다 보면 둘 다 같아져서 미워하고 격동하고 혈기 부리고 무자비해지고 사랑하는 마음이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모두가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한 것은 참 잘한 일입니다. 이기고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또 진 사람은 얼마나 회개했겠습니까? 진 사람은 림몬 바위 틈에 들어가서 지내었다고 했는데 그곳은 사람이 들어가기가 쉬웠던 모양입니다. 숨어서 넉 달 동안 회개했을 것입니다. 다 망했기 때
문입니다. 낮아지고 깨져나가고 후회가 막심했을 것입니다. 과거에 비류들 몇 사람을 내달라고 할 때 그들을 내주어 죄를 징계했으면 편안 했을 것인데 비류를 내주지 않고 자기 세력만 믿고 자기 힘만 의지하고 가다가 쫄딱 다 망했습니다. 작은 지파 하나가 전체 이스라엘을 무시하고 전쟁을 일으켜 놓았으니 이것이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그래서 많이 회개하고 깨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사만 명을 죽게 만들어 놓으셨으므로 그때 다 깨졌습니다. 베냐민 자손은 다 죽고 육백 명만 남았습니다. 죽은 사람은 이만 오천백 명이고 천 명은 어디로 갔는지 행방 불명이고 육백 명만 바위 틈에 남아 있으니 쫄딱 다 망한 것입니다. 한 지파가 다 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후회하면서 회개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 사람도 회개해야 하고 이긴 사람도 회개해야 하고 잘못한 사람도 회개해야 하고 잘한 사람도 회개해야 합니다. 잘한 사람은 한 가지는 잘했지만 그 방법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한 대 때리라고 했는데 두 대를 때리고 가볍게 때리라고 했
는데 더 쎄게 때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때리라고 했는데 미워하는 마음으로 때리고 혈기 부리고 격분하고 분김에 처리한 것 등 잘못한 것이 많은데, 그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을 못하면 손해가 막심합니다. 회개하는 사람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습니다. 누구나 회개하는 사람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겠습니다. 이 사람이다 저 사람이다 라고 봐주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회개를 누가 하는가, 누가 하나님 앞에 낮아져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사람인가가 중요한데 바로 그 사람의 하나님이십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물리치십니다.
는데 더 쎄게 때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때리라고 했는데 미워하는 마음으로 때리고 혈기 부리고 격분하고 분김에 처리한 것 등 잘못한 것이 많은데, 그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을 못하면 손해가 막심합니다. 회개하는 사람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습니다. 누구나 회개하는 사람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겠습니다. 이 사람이다 저 사람이다 라고 봐주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회개를 누가 하는가, 누가 하나님 앞에 낮아져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사람인가가 중요한데 바로 그 사람의 하나님이십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물리치십니다.
화목하는 제사를 드렸는데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이나 기도로 시작했다가 기도로 끝마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일을 하고 또 그 일을 다 한 다음에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서 보고하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아침에 기도하고 모든 것을 시작하고 저녁에 기도로써 모든 것을 보고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3. 협력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응징
본문 5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가로되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 총회와 함께 하여 여호와 앞에 올라오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 하니 이는 그들이 크게 맹세하기를 미스바에 와서 여호와 앞에 이르지 아니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베냐민 지파와
전쟁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다 모였을 때에 맹세한 것이 있는데 사사기 20장 8-9절에 “모든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며 가로되 우리가 하나라도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지 아니하며 하나라도 자기 집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우리가 기브아 사람에게 이렇게 행하리니 곧 제비뽑아서 그들을 치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오지 아니한 족속은 다 죽인다는 그런 맹세를 한 것입니다. 또 전쟁이 다 끝난 다음에이 전쟁에 오지 아니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아본 것입니다.
본문 6-7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가로되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쳤도다 그 남은 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게 하리요 우리가 전에 여호와로 맹세하여 우리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 여기는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쳤다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그들의 아내 얻는 문제 때문에 걱정이 생겼습니다. 전에는 뉘우치기만 하고 이번에는 뉘우치고 아내를 얻게 해주려고 하는데 베냐민 사람들은 다 도망친 상태입니다. 베냐민 지파 육백 명이 도망쳐서 림몬 바위 틈에
가서 숨어있었는데 이제 베냐민 지파가 아주 다 없어질 위기에 처하게 되자 그 사람들을 도로 데려다가 아내를 얻게 해서 다시 베냐민 지파을 세워야 되지 않겠느냐고 후회하고 염려를 한 것입니다.
더불어 함께 하지 않은 자들
본문 8-9절에 “또 가로되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 하고 본즉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진에 이르러 총회에 참예치 아니하였으니 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거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보았음이라”고 하였
습니다. 어느 지파가 오지 않았다고 하였습니까? 야베스 길르앗 사람이 하나도 오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요단 강 동쪽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 전쟁할 때에 하나도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총회에 같이 오지 아니하고 개인 행동을 취한 것입니
다. 남들은 다 올라가서 전쟁을 하자고 할 때 안 올라간 것입니다. 이스라엘 지파들 전체가 단결해서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야겠는데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 단결하지 아니하고 빠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벌해야 하겠다고 작정을 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전체적으로 함께 해야 할 때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빠지면 그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 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올라가서 총회로 모이자고 할 때 다 같이 올라가야 하는데 거기서 빠지면 그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합심해서 하자고 할 때 다 같이 해야 하는데 ‘나 같은 것 하나 없으면 어떤가, 내가 안 해도 다른 사람들이 하겠지’하고 생각하여 빠지는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내가 안 해도 다른 사람이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안 하면 다른 사람이 하겠지만 그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합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이 안 왔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또 처음 싸움에 대해서는 안 물어보았지만 두번째는 물어보니 하나님께서 전쟁을 하라고 하셨는데 그러므로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냐민을 징계하려고 시키신 베냐민과의 전쟁에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오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에 참여하지 않은 것인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들만 평안히 있으려는 것이고 또 전쟁하러 나가면 죽을 지도 모르니까 안 온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같이 참여하고 합심하고 한 몫 거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이나 일을 할 때에는 같이 일하고 받들어 나갈 때에는 받들어 나가는 협력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협력하는 정신이 없어서는 안됩니다. 협동하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일도 그렇습니다. 이전에 신문에 난 기사에 어떤 큰 두 기업체 인사부장에게 어떤 사람이 당신의 회사에 필요하냐고 물어보니까 첫째는 유능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고 둘째는 협동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또 한 회사에서는 열심히 일을 하고 또 성격
이 원만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것을 보면 두 회사 모두 유능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원하는 동시에 협동할 줄 아는 원만한 사람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협동할 줄 알고 원만한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또 교회에서도 그렇고 진리 운동하는 데도 그렇습니다. 언제나 모든 일에 충성하고 열심히 받들어 나갈 줄 알고 자기 일을 하고 또 충성스럽고 전체에게 협력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주의로 나가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전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 때에는 다 참여해야 합니다. 교인들도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자고 할 때에는 다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건축연보해야 할 때에 다 참여해야 합니다. 또 선교 연보에도 다 참여해야
합니다. 자기 있는 힘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돈 많이 낼 사람은 많이 내고 엽전 두 푼만 낼 사람은 엽전 두 푼만 내도 좋습니다. 하여간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여 안 하면 안 됩니다. 평교인들까지 다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최소한 직분 가진 사람은 다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무엇이나 하자고 할 때에 참여하는 것이 좋습니다. 참여할 때에는 자기의 힘에 맞도록 참여해야 합니다. 자기의 힘에 맞도록 참여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을 잘 배워서 할 때 연단이 되어나가고 하나님의 일이 잘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일이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도 훈련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자고 할 때에 전부 참여하는 정신, 참여할 때에 자기 있는 모든 것을 다 기울여서 참여해야 하나님의 일이 잘되어 나갑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정신, 할 때에 하나도 빠지지 않고 가서 참여하는 정신을 가져야 하고 또 교역자들도 교단적으로 무엇을 하나 해야 할 때에 빠지지 말고 다 참여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더불어 함께 한 사람이라야 사도의 자격이 있음
사도행전 1장 23절에 가룟 유다가 죽은 다음에도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 궐이 났으므로 사도 보충을 시켰는데 어떤 사람을 추천했습니까? 후보자의 자격은 사도행전 1장 21절에 있습니다. 요한의 세례로부터 승천하신 날까지 같이 하고, 즉 오랜 신앙 경력이 있어야 하고 우리와 항상 함께 다니면서 은혜를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항상 함께 다니는 가운데에 얻어지는 것이 많습니다. 이렇다하고 내놓을 것은 없는 것처럼 보여도 거기서 얻어지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학교에 가서 공부를 별로 안 하는 것 같아도 학교를 오랫동안 다닌 경력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공부를 안 하는 것 같아도 무엇이 하나 있어도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에 “서당개 삼 년에 풍월을 한다”고 했고 군대에서는 밥그릇을 따진다고 합니다.
우리 기도원에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집회 때에 항상 다니는 사람은 무엇이 하나 생겨도 생깁니다. 안 다니는 사람보다 무엇이라도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영적 면이나 깨달은 면이나 다른 것이 있습니다. 산에 가서 엎드려 기도하는 것도 괜히 갔다 오는 것 같아도 그 가운데 또 무엇이 하나 생깁니다.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조금씩 무엇이 하나 생깁니다. 항상 같이 다니는 데에서 얻을 것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책상에서 얻을 것이 따로 있고 산에 가서 얻을 것이 따로 있고 또 이렇게 전체적으로 모여서 얻을 것이 따로 있고 개인적으로 얻을 것이 따로 있습니다. 이번에 안 온 사람은 여기서 얻을 것을 못 얻는 것입니다. 여기 안 오고 다른 것을 했다고 합시다. 여기서 얻을 것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번에 많은 것을 주셨는데 다른 데 가서는 못 얻습니다. 산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기도하는 것도 그렇고 얻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같이 다니는 가운데 거기에 특별한 은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궐이 난 사도자리에 첫째는 요한의 세례로부터 신앙 경력이 많은 사람, 둘째는 항상 우리와 같이 다닌 사람, 셋째는 우리로 더불어 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만 사도의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더불어 정신이 없으면 독선주의가 되고 개인주의가 되니, 언제나 우리로 더불어 같이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야 쓸 만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을 택하리라 하고서 추천된 바사바라 하는 요셉과 맛디아, 이 두 사람을 놓고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봉사하는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사람을 보이시옵소서’하고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신주주의(神主主義)
제비 뽑는 것과 투표하는 것은 다릅니다. 투표는 다수의 사람의 의견으로 되는 것이고 제비는 주권을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택하셨든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을 보여달라는 것이고 투표는 사람의 뜻으로 가려내는 것이므로 투표가 다 하나님의 뜻은아닙니다. 민주주의방법이라고 다 성경에 바른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신주주의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하나님의 하시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성경대로 하는 신주주의지 민주주의대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 즉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끌려가야 하겠는데 그렇게 할 수 없을 때에는 그저 여러 사람의 의견대로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다 바로 된 것이 아닙니다. 요새 여러 총회들에서 민주주의로 해나간다고 하는데 싸움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대로, 즉 신주주의로 하나님의 주권대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여기 투표를 하지 아니하고 제비를 뽑은 것은 주권을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제비 뽑는 것과 투표하는 것은 다릅니다. 투표는 다수의 사람의 의견으로 되는 것이고 제비는 주권을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택하셨든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을 보여달라는 것이고 투표는 사람의 뜻으로 가려내는 것이므로 투표가 다 하나님의 뜻은아닙니다. 민주주의방법이라고 다 성경에 바른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신주주의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하나님의 하시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성경대로 하는 신주주의지 민주주의대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 즉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끌려가야 하겠는데 그렇게 할 수 없을 때에는 그저 여러 사람의 의견대로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다 바로 된 것이 아닙니다. 요새 여러 총회들에서 민주주의로 해나간다고 하는데 싸움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대로, 즉 신주주의로 하나님의 주권대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여기 투표를 하지 아니하고 제비를 뽑은 것은 주권을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더불어 함께 함’의 정신이 없는 사람은 사도의 자격이 없습니다. 또 목사의 자격도 없고 장로나 집사의 자격도 없습니다. 교인도 그렇습니다. 사도의 자격은 더불어 함께 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기도 이스라엘이 다 모여서 여호와의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데 길르앗 야베스 사람이 빠졌으므로 벌해야 한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을 벌하고 처녀 사백 인을 데리고 옴
본문 10-12절에 “회중이 큰 용사 일만 이천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야베스 길르앗 거민과 및 부녀와 어린아이를 칼날로 치라 너희의 행할 일은 모든 남자와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할 것이니라 하였더니 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거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백 인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자지 아니하여서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 그들이 실로 진으로 끌어 오니라 이는 가나안 땅이더라”고 하였습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이 베냐민과의 전쟁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용사 일만 이천을 택하여 그들을 다 잡아죽이라고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부녀와 어린아이와 남자와 남자와 잔 여자를 다 죽이고 처녀들만 사백 명을 끌어왔습니다. 길르앗 야베스가 이기주의, 개인 행동으로 나가고 전체에 대해 협력하지 않고 자기 혼자 편안히 있겠다고 하다가 이렇게 몰살되었습니다. 본문 말씀은 전체를 위해
서 같이 협력하지 아니하고 받들지 아니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힘껏, 정성 껏, 자기의 실력껏 협력할 줄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여기에 참여하지 않는 자는 어떻게 했습니까? 아예 죽였습니다. 그 사람만 죽인 것이 아니고 부녀와 어린아이까지 다 죽이고 처녀만 남겼습니다. 베냐민 사람들에게 시집 보내려고 끌고 온 것입니다.
본문 10-12절에 “회중이 큰 용사 일만 이천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야베스 길르앗 거민과 및 부녀와 어린아이를 칼날로 치라 너희의 행할 일은 모든 남자와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할 것이니라 하였더니 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거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백 인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자지 아니하여서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 그들이 실로 진으로 끌어 오니라 이는 가나안 땅이더라”고 하였습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이 베냐민과의 전쟁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용사 일만 이천을 택하여 그들을 다 잡아죽이라고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부녀와 어린아이와 남자와 남자와 잔 여자를 다 죽이고 처녀들만 사백 명을 끌어왔습니다. 길르앗 야베스가 이기주의, 개인 행동으로 나가고 전체에 대해 협력하지 않고 자기 혼자 편안히 있겠다고 하다가 이렇게 몰살되었습니다. 본문 말씀은 전체를 위해
서 같이 협력하지 아니하고 받들지 아니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힘껏, 정성 껏, 자기의 실력껏 협력할 줄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여기에 참여하지 않는 자는 어떻게 했습니까? 아예 죽였습니다. 그 사람만 죽인 것이 아니고 부녀와 어린아이까지 다 죽이고 처녀만 남겼습니다. 베냐민 사람들에게 시집 보내려고 끌고 온 것입니다.
4. 전쟁이 끝나고 평화를 공포함
본문 13-15절에 “온 회중이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보내어 평화를 공포하게 하였더니 그 때에 베냐민이 돌아온지라 이에 이스라엘 사람이 야베스 길르앗 여인 중에서 살려둔 여자를 그들에게 주었으나 오히려 부족하므로 백성들이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쳤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궐이 나게 하셨음이더라”고 하였습니다. 평화를 공포하고 이제는 강화조약을 맺었습니다. 전쟁을 할 때에는 전쟁을 하더라도 전쟁이 다 끝난 다음에는 평화를 공포해야 합니다. 내내 전쟁 상태에 있으면 안 됩니다. 전쟁할 때에는 무섭게 전쟁을 하고 다 죽였지만 일단 전쟁이 끝나면 강화조약을 맺고 평화해야 합니다.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전쟁을 하다가 아르헨티나가 포크랜드에서 항복했습니다. 그리고 항복을 한 후 손해배상을 물리는 등의 뒷처리를 하고 다시 평화조약을 맺었는데 그것이 원리원칙입니다. 대동아 전쟁 때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했지만 전쟁이 끝난 다음에 강화조약을 맺고 일본과 미국이 서로 화평했습니다. 전쟁할 때에는 전쟁을 하지만 끝난 다음에는 서로 화평하는 것이 원리원칙입니다.
우리 개인도 다툴 때는 다투더라도 일단 사건이 끝난 다음에는 화평해야 합니다. 억울한데 어떻게 화평할 수 있느냐, 돈을 빼앗겼는데 어떻게 화평을 할 수 있느냐, 손해를 막심하게 봤는데 어떻게 화평할수 있느냐고 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신다고 하였는데 하나님께 맡기고 그저 화평해야 합니다. 만약 남의 돈을 가져간 사람이 싸움 후에 그냥 이제 화평하자고 하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남의 돈을 가져간 사람은 물어주고 화평을 해야 합니다. 그저 화평해주기만 하면 도적을 키우는 꼴이 되기 때문에 안 됩니다. 그 돈을 물어주고 서로 화평해야 되는데 물어줄 것이 없으면 가서 “내가 잘못했다”고 진정으로 자복하고 나중에라도 돈이 생기면 물어준다고 하고 화평을 해야 합니다. 웬만한 것은 다 팔아서라도 물어주고 정 물어줄 수 없으면 이제 앞으로 벌어서 물어주겠다고 하고 화평을 하라는 것입니다.
다리를 부러뜨렸다고 하면 어떻게 화평하겠습니까? 다리를 부러뜨린 것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자기 다리라도 잘라서 주면 좋겠다고 하는 심정과 회개하는 태도를 가지고 가서 화평하면 그때는 화평이 됩니다. 다리를 비록 잘라주지는 못했지만 할 수가 없어서 못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가지고 화평하려고 하면 상대방도 화평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가져간 사람은 물어주면서 화평하고, 남의 다리를 부러뜨린 사람은 자기 다리를 잘라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서 화평해야 합니다. 돈을 도둑맞은 사람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도둑맞게 하신 줄로 알고 화평하고 다리가 부러진 사람은 그 사람이 부러뜨렸다고 하지 말고 내 다리가 부러져야겠기에 하나님께서 내 다리를 부러뜨리신 줄로 알고 화평을 해야 합니다. 부러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부러뜨린 것으로 알고 화평을 하고 부러뜨린 사람은 자기 다리를 잘라서라도 내어줄 심정을 가지고 어떻게 해서라도 화평할 생각을 하며 가서 화평을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3-15절에 “온 회중이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보내어 평화를 공포하게 하였더니 그 때에 베냐민이 돌아온지라 이에 이스라엘 사람이 야베스 길르앗 여인 중에서 살려둔 여자를 그들에게 주었으나 오히려 부족하므로 백성들이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쳤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궐이 나게 하셨음이더라”고 하였습니다. 평화를 공포한 다음에는 야베스 길르앗에서 끌어온 처녀 사백 명을 림몬 바위 틈에 숨어있는 베냐민 지파 사람들의 아내로 주었습니다. 마침 잘 되었습니다. 죽일 사람을 끌어와서 죽이지 않고 베냐민 지파에게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은 완전히 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총회에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처녀들을 데려다가 다른 지파에게 주었기 때문에 다른 지파의 이용물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이를 낳아도 베냐민 지파의 아이를 낳지, 야베스 길르앗의 아이를 낳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육백 명 가운데 사백 명에게만 아내로 주었기 때문에 아직도 신부감 이백 명이 모자랍니다.
본문 16-17절에 “회중 장로들이 가로되 베냐민의 여인이 다 멸절되었으니 이제 그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하여야 아내를 얻게 할꼬 또 가로되 베냐민의 도망하여 면한 자에게 마땅히 기업이 있어야 하리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사라짐이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죽일 때는 여자까지 다 잡아죽였는데 사실 여자는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습니다. 칼을 가지고 싸우러 마주 나온 자는 죽여야 하겠지만 싸우러 나오지 않은 여자들까지 죽여놓았으니 이제 후회가 막심한 것입니다. 전쟁할 때 싸우러 마주 나온 사람은 죽여도 항복하는 사람이나 여자들은 싸우러 나오지 않았으므로 죽이지 말고 포로로 잡아두거나 도망치는 사람도 죽이지 않는 것이 원리원칙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조리 다 잡아죽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후회를 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베냐민 지파에게 딸을 주지 않기로 맹세했기 때문에 어디서 베냐민 지파에게 여자를 구해 줄 수 있냐는 것입니다.
5. 춤추러 올라가는 여자들을 아내로 삼게 함
본문 18-22절에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못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맹세하여 이르기를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하였음이로다 또 가로되 보라 벧엘 북편, 르보나 남편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길 동편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절기가 있도다 하고 베냐민 자손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무도하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그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만일 그 아비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쟁론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컨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이 사람들에게 아내를 얻어줄 수가 있을지 궁리 끝에 다음과 같은 결정을 하였습니다. 벧엘 북편 르보나 남편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편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절기가 있도다, 라고 하였는데 그때 실로에 하나님의 성막이 있었습니다. 벧엘은 임시로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갔던 곳이고 실제는 실로에 하나님의 성막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실로에 해마다 절기가 있는데 여호와의 절기가 되어 처녀들이 춤추러 실로로 올라갈 때 춤추러 올라간 처녀들을 베냐민 사람들로 하여금 붙잡아 데리고 가도록 하면 자기들이 베냐민 지파에게 딸을 주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에 걸리지 않아 괜찮을 것이니 그 방법을
사용하자고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고의로 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그 처녀들은 붙잡아 가도 괜찮은 여자들이었는가 봅니다. 춤추러 다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춤추러 다니는 것은 사실 바로 된 것이 아닙니다. 레위기에 보면 절기에 춤추라는 말씀이 없
습니다. 그런데 절기에 춤추러 올라간 것을 보면 그 시대가 타락되어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기에 올라가서 춤을 추고 즐겁게 놀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그 시대가 타락되었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가 타락되어 이렇게 춤추러 올라가는 풍속이 생긴 것입니다.
믿음의 길을 가지 않을 때 낭패를 당함
일 년에 세 번씩 올라가서 절기를 지키라고 하였는데, 즉 오순절, 수장절, 유월절 이렇게 일 년에 세 번씩 하나님의 성막이 있는 곳에 가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세 번 가야 할 것을 한 번씩만 간 것입니다. 또 가서는 춤추는 것을 보고 옵니다. 요새도 한 주일에 세 번씩 교회에 나와야 하는데 한 번만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전 예배, 오후 예배, 수요예배 이렇게 한 주일에 세 번은 나와야 되는데 에누리해서 한 번만 드리는 것은 사사기 당시 일년에 세 번 지키라고 한 것을 한 번만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키라고 하는 대로 다 지켜야 합니다. 한 번만 하지 말고 다 지키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경건하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원칙으로 삼지 않고 가서 춤추고 구경하면서 인간을 즐겁게 하는 예식을 행하였는데 그것이 타락된 현상입니다. 이렇게 절기를 지키는 것은 믿음의 길이 아니
므로 그들을 끌어다가 같이 데리고 사는 것은 괜찮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없는 베냐민 사람들이 포도원 가운데 숨어있다가 춤추러 올라가는 여자가 있으면 하나씩 잡아다가 데리고 살았습니다. 옛날 한국에서도 과부를 보쌈해서 데리고 와서 살았다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춤추러 올라가는 여자들을 끌어다가 데리고 간 것입니다. 그리고는 가두어놓고 안 보내는 것입니다. 끌려가서 사는 여자는 신앙의 정로를 걷지 않는 성도가 마귀에게 끌려가서 이용물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특별히 믿음의 길을 걷지 않고 인간의 길, 방탕의 길로 춤추러 다니고 놀러 다니는 여자들은 마귀의 족속들이 끌어다가 그만 자기의 이용물로 삼는 그런 일이 많이 있습니다. 갑자기 메고 가기 때문에 안 끌려 가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전에 성북동 산에 가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어떤 처녀 세 명이 느닷없이 뛰어 들어와서 내 옆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저기서 청년들이 잡으러 오니 살려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가서 보니 젊은 아이들이 오다가 내가 있으니까 더 이상 오지 못하고 멈춰섰습니다. 그래서 처
녀들에게 이제 가라고 하니 가다가는 저 사람들에게 잡히니 못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산에 올라왔느냐, 너희들이 정신이 없다, 산에 올라오면 이런 사람들이 있는 줄을 몰랐느냐 하고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가라고 해도 옆에 딱 앉아서 돌아갈 생각을 안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못하겠기에 오늘 기도하기는 다 틀렸다, 하고 내려가서 그들을 동네 가운데 데려다 주고 나는 집으로 오고 말았습니다.
요새도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자들끼리 무슨 캠핑 간다, 해수욕 간다 하면서 한 서너 명끼리 가 있다가 남자들이 와서 끌어갈 때는 못 당합니다. 그러므로 여자들끼리는 아예 외딴 곳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이 춤추러 다니는 사람들처럼 외딴 곳에 갔다가는 남자 깡패
들이 와서 습격합니다. 여자 서너 명이 있어도 예닐곱 명이 습격해 와서 끌어가면 못 당하고 끌려가는 것입니다. 소리를 치면 입을 딱 막아 놓고 끌어갑니다. 춤추는 이 여자들처럼 자기 몸을 건사하지 못하면 결국은 마귀의 이용물이 됩니다. 언제든지 스스로 자기를 지키고 불량자들이 졸지에 습격할 기회를 안 주어야 합니다. 이 여자들은 스스로 기회를 준 것입니다. 저희끼리 왜 춤추러 다닙니까? 부모가 따지고 물으면 부모나 형제의 탓이 아니며, 딸을 준 것이 자의로 준 것이 아니라고 말해준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3-25절에 “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 중에서 자기들의 수효대로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니라 그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곳을 떠나 각각 그 지파, 그 가족에게로 돌아가되 곧 각각 그곳에서 나와서 자기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이렇게 질서가 없고 분김에 일을 처리했으며 죄악이 가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