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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4일 수요일

창세기 41:1-36 바로의 꿈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바로의 꿈
창세기 41:1-36

1만 이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서 있는데 2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3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서 있더니 4그 흉하고 파리한 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5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6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7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 즉 꿈이라 8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9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애개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10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가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친위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11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뜻이
있는 꿈이라 12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던니 13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느 매달렸나이다 14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깍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15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16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라이다 17바로가 요셉이기 이르되 내가 꿈에 나일강
가에 서서 18보니 살지고 아름다은 일곱 암소가 나일강 가에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19그 뒤에 또 약하고 심히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올라오니 그같이 흉한 것들은 애굽 땅에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라 20그 파리하고 흉한 소가 처음의 일곱 살진 소를 먹었으며 21먹었으나 먹은 듯 한지 아니하고 여전히 흉하더라 내가 곧 깨었다가 22다시 꿈에 보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23그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더니 24그 가는 이삭이 좋은 일곱 이삭을 삼키더라 내가 그 꿈을 점술가에게 말하였으나 그것을 내게 풀이해 주는 자가 없느니라 25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버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26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라 27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한 일곱 소는 칠 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 해 흉년이니 28내가 바로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29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30후에 일곱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그 기근으로 말하리니 31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 32바로께서 꿈을 두 번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33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하시고 34바로께서는 또 이 같이 행하사 나라 안에 감독관들을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35그들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믈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
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읍에 쌓아 두게 하소서 36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에 대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

1. 바로가 꿈을 꾸고 해몽하지 못함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셔서 앞으로 될 일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꿈을 두 번 꾸게 하셨습니다. 본문 2-7절에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 먹고 그 뒤에 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하숫가에 섰더니 그 흉악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 세약한 일곱 이삭이 무성하
고 충실안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고 하였습니다.

첫 번째 꿈에는 바로가 하숫가에 섰는데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을 뜯어먹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서 먼저 올라온 그 일곱 살진 암소를 다 잡아 먹었습니다. 또 두 번째 꿈은 한 줄
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왔는데 그 후에 세약하고 동풍에 바짝 마른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다 삼켰다고 하였습니다. 바로는 이 꿈을 꾸고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해서 번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모든 술객과 박사들을 불러다가 꾼 꿈을 해
석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 이 꿈을 해석하는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특별계시로 주신 꿈이기 때문에 성령으로라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때에 술 관원장이 나섰습니다. 본문 10-13절에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시위 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징조가 있는 꿈이라 그곳에 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소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고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인에게 해석하더니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하고 그는 매여 달렸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2. 바로 앞에 선 요셉

바로가 요셉에게 꿈을 해몽하기를 명함

그 말을 듣고 바로가 명령을 해서 그 히브리 소년을 불러오라고 하였습니다. 그 히브리 소년이 누구입니까? 요셉입니다. 요셉은 2년 동안 감옥 생활하다가 왕이 불러서 마침내 왕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본문 14절에, 요셉이 감옥에서 깨끗하게 수염을 깎지 못한 모양입니
다. 특별히 왕의 명령을 따라서 요셉이 수염을 다 깎고 옷을 갈아입고 바로 왕 앞으로 나왔습니다. 본문 15-16절에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고 하였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꿈을 해석해 줄 것을 명했습니다. 그때 요셉은 바로에게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서 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해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맡겼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특별계시로 알게 하심

바로가 꾼 꿈을 말하니까 요셉은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본문 25절에 “요셉이 바로에게 고하되 바로의 꿈은 하나이라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보통 꿈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장차 어떻게 하실 것을 미리 바로 왕에게 보인 특별계시
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줄 때에 꿈이나 음성이나 환상으로 알게 해주실 때가 많습니다. 또 우림과 둠밈과 비의적 현상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바로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꿈으로 알게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시와 말씀을 꿈으로 준 것입니다.

이렇게 구약시대에는 꿈과 환상과 음성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시다가, 신구약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표준계시가 종결되었습니다. 표준계시를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시대까지 주시다가 종결되어 완성된 것입니다. 즉 예수님 때까지 주시다가 끊기고, 이후에 사도와 그 수종자를 통해서 성경에 전부 기록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시대 이후에는 기록된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준 것입니다. 이제는 성경 이외에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표준계시는 없습니다. 표준계시는 성경이 완성됨으로 종결이 된 것입니다. 그후에도 꿈이나 다른 것들이 더러 있는데, 그것은 표준계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꿈을 믿으면 마귀의 미혹을 받습니다. 보통 우리가 꿈꾸는 것은 다 제 꿈(자기 꿈) 아니면 개꿈이므로 꿈을 믿으면 안 됩니다. 또한 꿈꾸는 것을 가지고 점치는 식으로 믿으면 불건전한 신앙입니다. 또 마귀의 미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꿈꾸는 것을 숭상하면 안 됩니다. 꿈
꾼 것이 그대로 맞았다고 해도 별 것 아니니까 그것을 따라가면 안됩니다. 성경을 믿어야 됩니다. 꿈이 성경에 맞았어도 성경을 믿어야지 꿈을 믿으면 안 됩니다. 또 성경에 안 맞는 것은 마귀로부터 오는 꿈이 또 많습니다. 꿈은 평소에 자기의 심리적인 것에서나 생리적인데
서 오는 것이 많으니까 꿈을 믿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꿈을 꾸었어도 꿈은 믿을 바가 못 되고, 못된 꿈을 꾸었어도 그것은 개꿈 아니면 제 꿈 하나 꾸었다고 생각하고 지나버려야 합니다. 못된 꿈을 꾸었다고 잘못 될 것 없고, 좋은 꿈꾸었다고 잘 되는 것 아닙니다. 자기가 믿음 잘 지키면 잘 되고, 믿음 못 지키면 못 됩니다. 믿는 일을 잘 해야지, 꿈 잘 꿨다고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에 특별계시로 바로에게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로에게 특별계시인 꿈으로 말씀을 주셨는데, 이것을 해석할 자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술객이나 여러 박사를 다 불렀어도 그 꿈을 해석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성령으로 해석을 해야만 알 수가 있습니다. 성령이 아니면 알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2:13~14절에,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일을 받지 못하고 또 깨닫지도 못 합니다. 즉 육에 속한 사람은 아무리 지혜가 있고, 아무리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분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으로만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말씀입니다. 그래서 모든 박사나 술객들을 다 불렀어도 그 꿈을 알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왕은 대단히 번민하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가 꾼 꿈으로 인해 번민하는 것을 보고, 전에 요셉이 꿈을 해석해 준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전에 요셉이 꿈 해석을 해주면서 복직하면 나를 건져내달라고 했는데, 술 맡은 관원장이 그것을 잊고 있다가 이번에 생각났던 것입니다.

심은 것을 열매 맺은 요셉

이것은 전에 요셉이 심어 놓은 것이 이제 열매를 거둔 것입니다. 몇년 전에 심어 놓은 것입니까? 2년 전에 관원장에게 꿈을 해석해주어서 하나님의 계시를 알게 해주고, 선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술관원장은 배은망덕하게 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이제야 생각난 것입니다. 이것은 요셉이 심어 놓았기 때문에 비록 술 관원장이 다 잊어버렸어도, 생각지도 않은 때에 심은 것에서 열매를 거둔 것입니다.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의를 심으면 의를 거둘 날이 옵니다. 말씀을 심으면 말씀을 거둘 날이 옵니다. 바로가 술 맡은 관원장을 통해서 요셉을 불렀습니다. 요셉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요셉이 아니면 이 일을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었어도, 하나님이 부를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 배워야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 ‘억울하다 내가 애매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생활을 한다’, 또 ‘술 맡은 관원장이 배은망덕하게 나를 돌봐주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요셉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또 보디발의 아내를 저주하지 않았
습니다. 2년 동안 감옥 생활하는 것도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잔인줄 알고, 거기에서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맡겼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선을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도 꿈을 해석해 줌으로서 선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또 윗사람에게 충성을 하였습니다. 창세기 39장 22절에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전옥이 옥중의 모든 일을 요셉에게 다 맡겼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 맡겨놓으니까 그 맡은 일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충성스럽게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윗사람을 우러러 잘 받들고 순종하는 요셉이었습니다. 그렇게 믿음 지키면서 충성하면 남이 알아주지 않고, 또 감옥에 가둬 매장시켜 놓아도 언젠가는 부를 날이 옵니다. ‘요셉이 필요하다 요셉이 아니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으니 요셉을 불러라’라고 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알아주지 않고 애매히 감옥에 썩는 것이 아닙니다. 감옥에서 썩어야 쓸 만해지기 때문에 썩히는 것입니다. 땅에 묻혀서 그 씨앗이 썩어져야만 새싹이 나와서 새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한 알의 씨가 땅에 묻혀서 밟히고, 땅에 묻혀서 썩는 그 과정이 필요합니다. 특히 젊은
신학생들이나 젊은 층들은 묻혀서 썩어지는 과정이 정말 필요합니다.
‘알아주지 않는다. 애매히 오해를 받았다. 죄인으로 취급한다. 감옥생활처럼 똘똘 몰아서 나를 매장했다. 나는 죄인 가운데 괴수가 됐다. 죄 안 지었는데 죄진 사람처럼 됐다’ 그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썩어야 됩니다.

언제까지 썩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알아주는 날까지 썩어야 합니다. 썩으면 알아줍니다. 꼭 필요할 날이 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어디 있느냐? 요셉이 필요하다”고 부를 날이 옵니다. 그런데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직 설익은 것입
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또 ‘왜 나를 집사 안 세우느냐? 다른 사람이 나보다 나은 것이 뭐 있느냐? 내가 저 사람보다 못한 것이 뭐 있느냐? 아무개는 집사 세워주고 나는 안 세워준다’고 섭섭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례를 못 받아서 울면
서 간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세례 못 받았다고 울면서 돌아가지 말고 자기가 믿음 못 지킨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주일을 잘 못 지켰기 때문에 세례 안 준 것이고, 다른 사람은 주일을 잘 지켜서 세례 준 것입니다. 세례 못 받은 것을 원통해 하지 말고, 주일날 못 지킨 것을 원
통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집사 못 되어서 섭섭한 사람은 요셉한테 가서 배워야겠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바로 앞에 서게 된 요셉

요셉은 처음부터 종으로 팔려갔고, 아예 사람 취급도 못 받았습니다.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했습니다. 큰 죄인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도 거기서 요셉이 감옥에서 무엇이라 했습니까? 섭섭하게 생각했습니까? 섭섭한 생각 없었습니다. 왕에게 진정(陳情)한 것도 없었습니다. 불평 한마디 안 했습니다. 가서 불평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아니하리오”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버지께서 주신 잔인 줄 알고 그것을 달게 마셨습니다. 요한복음 18장 11절에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십자가의 잔은 가룟 유다 때문에 오는 것도 아니고, 제사장과 바리세인 때문에 오는 것도 아닙니다. 빌라도가 불의한 재판을 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 칼과 몽치를 가진 무리들과 백성들이 아우성치는 것 때문에 오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잔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사람들이 시기가 나서 잡아 가두고, 빌라도가 불의한 재판을 하고, 백성들이 대세주의로 배은망덕하고, 예수님 앞에 와서 떡을 먹고 배불렀던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죽이라고 아우성쳤지만,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잔인 줄 알고 예수님께서는 잘 받았습니다. 요셉도 이것을 아버지께서 주신 잔인 줄 알고, 2년 동안 감옥 생활하면서 충성을 다했습니다. 무엇을 했다고 하였습니까? 거기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바라보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감옥생활을 하면서 윗사람을 존경하고, 맡은 일에 충성하면서
모든 일에 능했다고 하였습니다. 맡은 일에 능해서 일을 잘 처리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항상 같이 하셔서 형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요셉을 불렀던 것입니다. 요셉이 감옥에 안 들어갔으면 바로 앞에 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들어 간 것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에 지금 바로 앞에 설 수 있습니다. 만일 요셉이 감옥에 안 들어갔으면 그 요셉을 어떻게 알고 불러 가겠습니까? 불러갈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었고,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요셉을 소개 했던 것입니다. 감옥에 안 들어갔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꼭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요셉을 연단시키고, 요셉의 앞길을 열어주려고 하나님께서 감옥에 가는 것도 허락하신 것입니다. 

3. 바로의 꿈을 바로 해석한 요셉

요셉이 바로 앞에 설 때에 나이 몇 살이었습니까? 나이 30세에 바로 앞에 섰습니다. 요셉은 바로에게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꿈을 해석하는 것은 자기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예언의 말씀을 바로에게 준 것입니다. 바로의 꿈의 살진 소와 살진 이삭은 풍년이 들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앞으로 7년 동안 풍년이 들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풍년이 들어서 살이 펑펑 찌도록, 곡식이 땡땡 여물도록 7년 동안 큰 풍년이 들어서 풍성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어서 7년 흉년이 옵니다. 7년 동안 흉년이 들어서, 먼저 풍년의 곡식 많던 것을 생각 못할 만큼 다 잡아 삼키고, 도리어 흉악한 가운데 있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7년 풍년이 들고, 그 다음에는 7년 흉년이 들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꿈으로 미리 알게 해주신 것이라고 바로 해석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해석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석이 바르지 못하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만일 요셉이 없었다고 하면, 바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살진 소 일곱 마리가 나오고, 그 일곱 소를 빼빼 마른 소 일곱 마리가 나와서 다 잡아먹었다’ ‘또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또 흉악한 알이 없는 일곱 이삭이 나와서 다 잡아먹었다’는 꿈을 미리 알려 주었어도 그 뜻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성경 해석을 바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 해석을 바로 하지 못하면 신앙준비가 안 됩니다. 성경 해석을 바로 한 다음에야 거기에 대한 신앙 준비를 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 말씀 해석을 누가 바로 했습니까? 요셉이 했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꿈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해석하니까, 바로가 ‘이제 앞으로 큰 흉년이 다가와서 7년 풍년 다음엔 흉년이 오겠고 그 흉년엔 다 굶어 죽게 되겠구나’ 하며 정신이 바짝 들은 것입니다. ‘7년 흉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가 걱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때 요셉이 흉년에 대비할 해결책을 말해 주었습니다. 


4. 요셉이 칠 년 흉년의 대책을 말함

7년 풍년 기간을 통하여, 7년 흉년을 대비하라

본문 33-36절에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치리하게 하시고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국중에 여러 관리를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그 관리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
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성에 적치하게 하소서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을 예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을 인하여 멸망치 아니하리이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말한 대로 하면 바로가 근심하던 것이 딱 해결된다는 말입니다. 무슨 근심이 있었습니까? ‘앞으로 7년 동안 큰 흉년이 들겠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문제였는데 요셉이 해결책을 제시해 준 것입니다. 말씀을 바로 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또 해결책도 바로
말해주었습니다.

해결책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지혜 있고 명철한 사람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적재적소에 적임자를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혜있고 명철한 사람을 세워서 7년 풍년 동안에 각 도시마다 창고를 지어놓고 많은 곡식을 저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풍년이 들 때를 대비
해서 많이 쌓아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오는 7년 흉년에 내다 팔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모든 백성이 안 굶어죽고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해결책입니다. 바로가 이제 안심이 됩니다. 이것이 성경 해석을 바로 해서 거기에 맞는 해결책을 바로 제시해 준 것입니다. 어려운 난관을 통과하기 위해 어떤 방책을 써야 되고 어떤 길을 걸어가야 되는지를 바르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의 해결책을 바로가 감사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배워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7년 흉년이 오기 전에 7년 풍년이 온다는 것입니다. 즉 7년 풍년이 온 다음에는 7년 흉년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영적으로 하면 7년 흉년은 7년 대환란을 가르칩니다. 말세에 7년 대환란이 있는데 7년 대환
란을 어떻게 해야 통과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환란 가운데 빠져서 죽게 되는데 이것은 심령이 굶주려서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환란이 오기 전에 7년 동안 풍성한 양식을 먼저 많이 내려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7년 풍년에 저장한 양식을 가지고 7년 흉년을 통과하도록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어떤 시기입니까? 7년 대환란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대환란을 앞에 두고 있어서 지금은 풍성하게 우리에게 양식을 주는 때 같습니다. 그리고 양식을 풍성히 주시는 7년 풍년이 아직도 채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올 7년 흉년을 대비하게 하기 위해서 7년 풍년에 양식을 풍성하게 많이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풍성하게 줄 때에 풍년들었다고 좋다고만 하지 말고 앞으로 들 흉년을 대비해야 됩니다. 이 양식을 주는 목적은 지금만 잘 먹으라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7년 대환란을 통과시키기 위한 준비로써 양식을 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풍년이 들었을 때 양식을 저장해야 됩니다. 먼저 자기가 먹어서 실력을 키우는 동시에 잘 저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 흉년들 때에 신령한 양식을 내다 쓸 수 있는 그런 실력을 길러 나가야 되겠습니다.

아모스 8장 11-12절에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환난 날에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모든 사람이 피곤하고 쓰러지는 가운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지 못해서 주리고 갈할 때, 풍성할 때에 저장한 양식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복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양식을 풍성히 주는 시대입니다. 이때에 풍성한 양식을 거두어 들이고 저장해야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사경회하는 기간도 하나님께서 양식을 많이 주시는 때입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 풍성하게 영적 양식을 하나님이 내려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신령한 양식은 이다음에 환란 때에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란을 늘 의식하면서 신령한 양식을 받아서 준비해야
됩니다. 영적 양식을 받아서 환란을 잘 통과하고 이기기 위해서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이렇게 영적 양식을 늘 풍성하게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늘 주시지 않습니다. 안 주시는 때가 올 것입니다. 받을 수 없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요즘도 이북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받기 힘듭니다. 또 중국에 있는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가 참 힘듭니다. 중국은 어느 정도 지금 받긴 받는데 그래도 아직 힘든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풍성히 주는 때가 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은혜 받을 때가 있고 그 하나님 말씀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1-2절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은혜를 받을 만한 때에 받으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신령한 양식을 풍성히 내려 주시는 은혜 많이 주시는 때가 있습니다. 은혜 많이 주시는 것은 왜 주십니까? 왜 신령한 양식인 하나님 말씀을 많이 주십니까? 앞으로 올 환란을 잘 준비해서 통과시키려고 많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란이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풍성한 말씀 많이 주셔서 미리 준비를 시키십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가지고 환란을 통과하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를, 절대 그냥 지나쳐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냥 지나쳐 버리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다시 오지 않으면 양식을 준비하지 못한 채 흉년을 당해야 됩니다. 양식 없이 흉년을 당하면 굶어 죽습니다. 가다가 쓰러지고 맙니다. 그러니까 앞날의 환란을 통과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특별한 영적 양식을 7년 동안 배급해 주시
는 것입니다. 앞날의 환란을 다 통과할 만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신 안 차리고 있는 사람은 그만 그 풍년들 때 떡이나 해 먹고, 또 막걸리나 해 먹으면서, 곡식 팔아서 구경이나 다니면서 다 허비하고 맙니다. 그러면 몇 년은 괜찮지만, 흉년이 들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다 끝나서 이제 다시 곡식을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평안할 때, 즉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에 그때에 많이 받아서 저장해야 됩니다. 또 자기 실력도 그때 만들어야 되고, 양식도 많이 저장해야 됩니다. 또한 은혜를 많이 받아서 자신이
은혜 가운데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야 앞으로 오는 환란을 통과할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으면 환란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7년 풍년 다음에 오는 7년 흉년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해석하고 바로 해결책을 세운 요셉처럼,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바로 해석해야 되겠습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또 앞으로 어떤 환란이 올 것인가?’를 성경에서 바로 해석하여 환란이 오는 것을 대비해
서 바로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반드시 올 환란 때에 다 쓰러지고 맙니다.

요즘 사람들이 하나님을 점점 다 떠나고 있습니다. 구미 각국에 있는 교회는 젊은 사람들이 자꾸 떠나서 요즘엔 노인들만 남았습니다. 젊은이들은 현실주의에 빠져서 주일날 세상으로 놀러가고 있습니다. 곳곳에 스키장과 공원과 놀기 좋은 곳들이 많아서, 교회에 잘 안 나옵
니다. 한국에도 그러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예를 들어 1부 예배를 오전 7시 반이나 8시에 드립니다. 이것은 교인들을 놀이꾼들로 만드는 것입니다. 주일아침 일찍, 1시간 예배드리고 놀러가고 장사하라고 하나님 떠나는 길을 열어 준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환난이 올
때 환란을 이길만한 실력이 없습니다. 영적 양식을 준비하지 않았는데 흉년에 어떻게 연명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흉년이 올 때, 흉년을 통과할 말씀을 넉넉히 가지고 있는가를 늘 살펴야 되겠습니다. 흉년이 오기 전에, 환란이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받아서 먹어야겠습니다. 영적 생명이 살고 자라나도록, 풍성한 양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오는 환란을 말씀으로 통과하고, 영적인 실력을 키워서 환난을 승리적으로 통과하는 우리가 되어야하겠습니다.

2017년 1월 2일 월요일

창세기 6.1-22 노아시대의 죄악과 방주준비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창세기 6:1-22

1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3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악할 뿐임을 보시고 6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11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12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13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4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15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16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중하 삼 층으로 할찌니라 17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18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새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19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20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21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22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1. 하나님의 탄식과 심판 결정

심판 결정

본문 5-7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노아시대에는 죄악이 관영했다고 했습니다. 노아는 아담으로부터 10대 손이니까 주전 3000년 전 쯤 될 것 같습니다. 그때에 이 세상에 죄악이 관영했습니다. 죄악이 관영했다고 했는데, 관영이라는 것은 ‘가득찼다’는 뜻입니다. 하늘에까지 죄악이 가득 사무쳤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25-29절에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는 노아시대와 같은 세상이 된다고 했습니
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고 음란 방탕하였습니다. 먹자주의와 방탕과 향락주가 땅 위가 가득 찼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노아시대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탄식

그러면 그때의 성도들은 어땠습니까? 성도들은 오늘 본문 1절에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성도들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람의 딸들은 불택자, 불신자를 가리킵니다. 즉 성도들이 불신자들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의 아내를 삼았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결혼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대로 결혼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대로 결혼했다는 것은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으로 기울어진 것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고 의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안목의 정욕대로 육신의 정욕대로 기울어져서 아내도 삼고또 모든 것을 취한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라가야지, 물질과 사람과 눈에 보기 좋은 것 따라가면 안 됩니다. 또한 먹자주의와 사치와 향락으로 기울어지면 안 됩니다. 그것은 성도가 타락된 현상입니다. 그 당시에 성도들이 다 타락하고 세상 사람들이 악해져서 음란 방탕하고 물질주의와 세상주의로 다 기울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탄식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탄식을 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셔서 심판을 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어느 시대나 죄악이 관영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성경에 노아시대에 죄악이 관영하니까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말씀, 이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말세에는 노아시대와 같이 죄악이 가득해집니다. 그때에는 세상 끝인 줄을 알라고 했습니다. 본문 13절에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강포가 가득하니까 끝 날이 된 줄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멸망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악이 가득 찬 말세가 되었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요새는 말세다”라고 합니다. “세상 끝이 다 되었다”라고 합니다. 도덕이 부패해지고 세상에 악이 가득하고 이런 악한 세상이 되어서 심판과 멸망이 오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2. 노아의 경건 생활

의인이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사는 사람

다음으로 노아의 경건 생활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그래도 그 당시 노아는 경건 생활을 했습니다. 본문 9절에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또 본문 8절에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하였습니다. 그 시대에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고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으며 당세에 완전한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며 그 은혜에 보답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노아 같은 사람을 찾으시는 줄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시대가 다 부패하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하나님의 아들들도 다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으로 기울어져서 타락이 되어갑니다.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는 이 시대에 노아와 같이 의를 이루어 나가는 사람,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항상 거하며 그 은혜를 보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내가 많이 받았으니 그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이 늘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받고 보답하려는 생각이 없으면 배은망덕한 사람입니다. 히스기야가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은혜를 보답하지 않았다가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을 때에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주셨는데, 은혜받은 사람은 받은 은혜에 보답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무엇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갚을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앞에 바로 충성을 하고 하나님 마음에 기뻐하는 일을 할까’, 이것을 생각해서 은혜에 보답하는 길을 날마다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언제나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 섬기는 것을 늘 첫째로 한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전심을 다 기울여서 하나님 섬기는 것을 첫째로 하고 그 다음에 다른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위해서 충성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것이 노아의 길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첫째로 하여 정성을 제일 많이 들이고 힘을 제일 많이 쓰고 마음을 제일 많이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세상에 모든 것을 다 기울이고 마음이 세상에 다 가 있고 세상 것만 취하려고 하다가는 하나님의 심판이 올 때에 다 망하고 그만 두게 됩니다. 세상 것만 취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데 전폭을 쏟아 힘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노아가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했는데, 그 당시에 제일 완전한 길을 걸은 노아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리고 죽도록 충성하려고 힘을 썼습니다. 이런 성도가 그 시대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가 다 타락이 되고 세대가 부패한 때에도, 노아와 같이 경건한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3. 방주제조 명령

노아에게 하나님께서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본문 13절에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 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고 하였습니다. ‘방주를 지어라, 앞으로 홍수가 임할 것이라’ 고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방주 제조 기간

본문 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는 것은 영으로 살지 않고 육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영으로 살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살아야 합니다. 영으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 살지 않으면, 육체의 욕심대로 살게 되고 정욕으로 기울어져서 자기의 뜻대로 살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옵니다. 심판이 오는데 일백이십 년 뒤입니다. 숫자 12는하나님의 만수(滿數)입니다. 하나님의 만수, 그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는 걸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고 하신 것은 일백이십 년 있다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때부터 일백이십 년 있다가 홍수로 심판할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는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일백이십 세까지 살게 만들어 놓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잘 못된 주장입니다. 왜 그럽니까? 창세기 5장에 보면, 제일 오래 산 사람이 구백육십구 세까지 살았습니다. 사람이 구백세 쯤까지 살았는데, 왜 일백이십 년입니까? 또 노아 홍수가 지난 다음에도 일백삼십 세, 오래 산 아브라함은 일백칠십 오 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일백이십 년을 정해 놓은 것이라는 것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일백이십 년 있다가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하신 다음부터, 즉 ‘방주를 지어라’ 명령하신 다음부터 일백이십 년이 아닙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세 아들을 낳고 자부 데리고 온 다음에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18절에 ‘네 자부들과 그 방주에 들어가라’고 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 아들 낳은 때는 언제인가하면 노아가 오백 세 된 후입니다. 창세기 5:32절에 “노아가 오백 세가 된 후에 샘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홍수는 노아의 나이 육백 세에 일어났습니다. 즉 노아가 오백 세 후에 세 아들을 낳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길러 자부까지 데리고 온 후에 방주를 지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홍수는 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육백 세에 내렸으니까 백년 정도 남았다는 말입니다. 심판을 예고하신 후로는 이십 년이 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다음에 아들 셋을 낳고 오백 세로부터 자부 셋을 데리고 온 다음에 방주를 준비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명령하신 것을 보면 방주를 지은 년도는 아마 칠십년 정도 되지 않았겠나 생각해 봅니다. 오백 세 된 후에 아들 셋을 낳고 자부 셋을 데리고 왔으니까 한 삼십년 걸리지 않았겠습니까? 육백세에 홍수가 났으니까 방주 짓는데 ‘칠십 년이나 팔십 년’이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홍수로 이 세상을 다 멸절 시키시는데, 사람과 짐승도 다 멸망시킨다는 것입니다.

방주의 재료와 규모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해서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왜 잣나무로 방주를 지으라고 하신 것일까요? 여기에는 신령한 뜻이 있습니다. 아가서 1:17절에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석가래로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보면 집을 잣나무 석가래로 지었다고 했습니다. 잣나무는 영적으로 사시사철 청청한 생명력이 넘치는 나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방주 짓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방주는 생명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으라는 것입니다. 또 학개 1:8절에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영적 성전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영적 성전 준비하는 것은 노아가 방주 준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잣나무는 영원 불명의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에 올라가 나무 가져오라는 것은 신령한 산, 시온 산, 영적 신령한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다가 영적 방주를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옛날 노아는 실제로 잣나무를 잘라다가 그것으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칠 십 여 년 동안 지었다고 봅니다. 방주 짓는 데에 노아가 모든 것을 다 기울였습니다. 자기 재산은 물론 시간과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잣나무를 찍어다가 방주를 짓는데, 얼마나 크게 지으라고 하셨습니까? 본문 15절에 보면 ‘장이 삼백 규빗’이라고 했습니다. 한 규빗이 한 자 반인데 삼백 규빗이면 사백오십 척입니다. ‘광이 오십 규빗’, 이것은 칠십오 척입니다. ‘고는 삼십 규빗’, 이것은 사십오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큰 나무로 짓는 배, 굉장히 큰 배를 지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4. 방주 짓는데 모든 것을 투자한 노아

그런데 이러한 방주는 사람이 많이 있어야만 작업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노아는 하나님께서 주신 재산을 다 방주 짓는데 투자한 것입니다. 일꾼들을 가능한 한 전부 다 붙이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올 수만 있으면 다 와서 방주를 지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붙여서 그 사람들 인건비로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의 며느리들은 방주 지을 때 점심하느라고 내내 수고했을 것입니다. 점심해 나르느라고 노아 며느리들이 수고 많이 했을 것입니다. 또 노아와 노아 아들들은 일꾼들 감독하는 일을 했을 것입니다. 일꾼들이 많이 있었으니까 매일 일하는데 감독을 했을 것입니다. 많은 일꾼들에게 매일 인건비를 주었을 것입니다. 재산 다 팔아서 방주하나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 하나만 하면 성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못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이제 얼마 있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오는데, 홍수가 나서 멸망 하게 되어있는데, 빨리 방주를 지어야 한다’고 노아는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을 할 여가가 없었을 것입니다. 방주 짓는 데에 전폭을 다 쏟아 붓는 것입니다. 온 식구가 다 달라붙은 것입니다. 온 동네사람들을 다 이용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이용해서 방주 짓는 데만 전심전력을 기울인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잣나무를 잘라다가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는데, 짓는 모양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면 안 됩니다. 기장은 얼마나 길게 하라고 했습니까? 삼백 규빗입니다.
그리고 폭은 오십 규빗, 고는 삼십 규빗입니다. 또 상, 중, 하 삼층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간들은 다 막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간들을 전부 막아 여러 간들을 만들고 여러 간들에 땅 위의 동물들을 다 들어가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문은 맨 위에서 한 규빗 내려와 내라고 하셨습니다. 물결 칠 때, 물이 들어가면 안 되니까 한 규빗 내려와서 문을 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문을 열면 하늘을 바라볼수 있게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역청으로 칠하라고 하셨습니다. 역청은 아스팔트와 비슷한 것인데, 안팎을 역청을 칠해서, 홍수가 나고 물결이 아무리 심해도 물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역청이 방수하는 데에 좋은 모양입니다. 출애굽기 2장에 보면 모세 때 갈대로 상자를 만들어 역청을 칠해서 내다놓았다고 했습니다. 갈 상자라도 역청을 칠해서 놓으면 물이 안 들어오는 모양입니다. 그만큼 역청이 좋은가 봅니다.

이렇게 노아는 칠십년 동안 모든 것을 다 기울여서 방주를 준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시대가 어느 때인가를 분별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예수 믿는 사람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물욕과 정욕과 사욕으로 다 기울어져서 영으로 살지 아니하고 육으로 사는 때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자기 뜻대로, 자기를 위해 살며 말세가 된 때입니다.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았나’를 생각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아와 같이 하나님 앞에 경건한 생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 하나님 은혜에 보답하는 생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하신대로 이제는 방주를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믿음의 방주를 준비해야 합니다. 앞으로 올 홍수, 이 세상이 다 잠길 만한 홍수가 온다고 했습니다. 이제 앞으로 말세에는 물 심판이 아니라 불 심판이 온다고 했습니다. 불로 이 세상을 다 멸망시킨다고 하셨습니다. 노아시대는 물 심판입니다. 어떤 분이 “노아시대에 이 지구가 다 잠겼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구가 어떻게 잠겼냐는 것입니다. 비가 많이 내려도 바다로 다 흘러 들어가지 어떻게 산꼭대기까지 물이 잠길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바다의 물을 일시에 공중에 증기가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구름이 되어 올라가게 만드시고 일시에 밑으로 내려 보내게 만드십니다.
밑으로 바다에 내려갈 시간이 없습니다. 계속 내려 쏟아 붓는데 다 내려갈 수가 없습니다. 산이 다 바다에 잠길 수밖에 없습니다. 요새도 비가 많이 올 때, 갑자기 비가 쏟아 질 때에는 내린 비가 미처 다 내려가지 못해서 집이 다 잠기고 떠내려가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일시에 바다의 물을 구름장으로 실어다가 일시에 쏟아 부으니까 산꼭대기까지 물이 차서 미처 내려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 잠길 수 있습니다. 다 잠기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심판 날을 바라보고 노아는 미리 준비한 것입니다. 미리 준비를 잘 했습니다.

5. 영적 방주 준비하는 법

우리도 앞으로 올 대환난을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이제 대환난이 옵니다. 불 심판이 오고 세상이 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할 날이 옵니다. 악한 세상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환난을 내다보고 그 환난을 이길 만한 준비를 하는 것이 영적 방주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난을 이길 만한 준비해야 하는데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나무를 가져다가 방주를 만들 것

산에 올라가 나무를 가져다가 배를 만드는 것처럼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나무는 하나님 말씀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다가 자기를 영적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영의 사람을 만들어라, 믿음의 방주를 만들어라’,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물론 다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만든 만큼 앞으로 올 환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자기를 잘 만들지 못하면 환난을 못 이깁니다. 다 빠져 버려서 환난 가운데 넘어 갑니다. 우리는 환난을 앞에다 놓고 영적 믿음의 방주를 잘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방주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가 방주가 됩니다. 신령한 방주가 됩니다. 그것도 맞습니다. 예수를 믿지만 자기 자신의 실력이 없는 사람은 앞으로 가다가 환난 가운데 시험에 넘어 갑니다. 이기지 못합니다. 환난에 빠집니다. 앞으로 올 환난을 이길만한 영적으로 실력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또 믿음의 방주를 준비하는 것이 됩니다. 산에 올라가 나무 하나씩 찍어 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생명 있는 말씀을 하나씩 받아다가 자신을 그 말씀처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방주 만드는 법입니다.

나무를 가져다가 방주를 반드는 법

1) 기도하라 

그러려면 먼저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시온 산에
올라가려면 기도를 많이 하고 영적 세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 가운데서 깨달게 됩니다. 성경 말씀을 바로 깨닫는다는 말입니다. 그 말씀을 가져다가 자기 믿음의 방주를 만들어야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먼저 교역자가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교역자가 기도 안하는 교회는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역자들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장로님들과 집사님들, 직분 맡은 자들이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또 주일학교 학생들을 맡은 반장(교사)들도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령한 나무,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생명으로 받을 수가 있습니다. 기도 안하면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합니다. 교회에 처음으로 나오는 교인들도 매일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매일 한 시간은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한 시간도 나와 같이 깨어 기도할 수 없더냐”고 하셨는데, 매일 한 시간씩 기도해야 합니다. 정 바쁘면 반 시간이라도 해야 합니다. 기도 안하는 사람은 시험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마귀도 이길 수 없습니다. 매일 기도합시다. 그러므로 매일 새벽기도 참석에 힘을 쏟으십시오.

2) 성경을 읽고 깨닫고 나누어 먹으라 

그리고 교역자들은 산에 올라가서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을 읽으면서 깨달아서 먼저 자기자신을 만들고 교인들에게 그 신령한 양식을 나누어 먹여야 합니다.

3) 말씀에 순종함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만들어 가라 

교인들로 이 말씀을 양식으로 받게 하고 교인들도 자신을 만드는 것, 이것이 방주 짓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점점 실력이 자라나야 합니다. 영적능력이 늘어가고 말씀대로 인격이 만들어져 가고 점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방주 만드는 것입니다. 영적실력이 늘고 사람이 점점 온전해 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점점 만들어 져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점점 그 사랑이 이루어지고 마음이 좁은 사람은 그 말씀대로 마음이 점점 넓어지고 참지 못하는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참고 자신을 점점 만드는 것입니다. 기도 못하는 사람은 기도하고, 성경 안 보던 사람은 성경 보고, 전도 못하던 사람은 전도하고, 점점 말씀대로 만들어져 가는 것, 이것이 방주 짓는 것입니다. 여러 해가 지나도 믿는 것이 밤낮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방주 안 짓는 것입니다. 금년도 벌써 사월 중순이 되었는데, 얼마나 만들어졌나 생각해 봅시다. 연초보다 나아진 것이 무엇이 있나, 밤낮 하나님 섬기는데 뜨뜻미지근하고,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충성 하지도 못합니다. 이런 자는 예수님께서 그 입에서 토하여 내신다고 했습니다. 회개하여야 합니다. 회개하고 말씀을 받아서 자신을 만들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자신을 만들어야 하고, 말씀을 순종해야 해야 합니다. 순종해야 할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자기가 순종하지 못하는 말씀이 무엇인가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순종하지 못하는 말씀과 양심에 가책되는 문제들과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것 등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하지 못하는 말씀과, 알면서도 하지 못한 것들을 찾았으면 그것부터 순종하기를 작정하십시오.
아예 몸을 바치고 그 말씀을 순종하려고 나서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만큼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자기가 시험당하는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험으로 주시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을 순종해야 합니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 자기가 마땅히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각자에게 다 있습니다. 그것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순종 안하면 다른 것을 다 해도 안 됩니다. 마땅히 자기에게 준 그 말씀이 있는데, 그것을 순종하면 만들어 질 것이고 그것을 순종 안하면 몇 십 년 믿어도 안 만들어집니다. 자기가 현재 무엇을 순종하지 못하는가, 또 내가 어떠한 시험을 당하고 있는데 내가 무슨 말씀을 순종해야만 이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은 성경대로 하기가 아주 힘이 든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는데, 힘이 들어도 생명 내놓고 참고 견디면서 말씀대로 실행해야 합니다.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만들어집니다.
실력이 자라는 것입니다. 영적 실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인격이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만들어집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용서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참지 못하는 사람은 참으라는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이기지 못하는 사람은 이기라는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끊지 못하는 사람은 끊으라는 말씀을 순종하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선한 일을 못하는 사람은 선한 일을 행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누구나 다 있습니다. 인색한 사람은 인색함을 버리라는 그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감사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우리가 얼마나 받은 은혜가 많습니까?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를 감사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감사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랑하라는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남을 도와주라는 말을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만들어집니다. 방주를 그리스도라 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만들어 지는 것이 방주 짓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방주 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닮아 가는 것이 방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신령한 방주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를 닮아 나가야 합니다.

세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역청으로 칠할 것

그다음에 역청으로 칠하라고 하셨는데, 역청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역청을 안팎으로 칠해서 물결이 그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서 그리스도로 힘입어 살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힘입어서 살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고,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기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기며 나가는 것이 역청으로 칠한 것입니다. 세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역청으로 칠하면 세상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세상 물결이 안에 들어오지 않아야 합니다. 아예 예수 그리스도의 역청을 칠해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못 들어온다, 나는 예수 안에 있다, 나는 믿음으로 산다, 사탄아 물러가라’고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고 물욕과 정욕과 사욕이 들어와서 여러 가지 죄를 짓자고 하여도 ‘나는 예수 안에 있다, 예수의 생명이 내 생명이다, 육신의 생명을 내놓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산다’고 해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 속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기쁘고 즐겁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세상 시험을 발로 밟고 그 위로 떠다니는 것입니다. 앞으로 홍수가 와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오는 시험을 믿음으로 이기면서 발로 밟고 나가면 대환난이 와도 발로 밟고 승리 적으로 찬송하며 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방주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노아시대와 같이 악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데, 성도들도 까닥하면 다 물욕과 정욕과 사욕에 빠져서 육체대로 살고 영으로 살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자기 뜻대로 살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지 못하고 자기를 위해 살게 되는 때입니다. 노아시대와 같이 말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아와 같이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방주를 지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주를 짓는 우리가 되어서 환난을 발로 밟고, 환난의 물결 위로 승리적으로 찬송을 부르면서 나가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방주를 잘 준비해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창세기 6.1-14 노아시대의 죄와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이병규성경강해 계약신학

창세기 6:1-14

1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3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11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12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당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13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4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1. 범죄

시대에 죄악이 관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었고 노아를 통하여 방주를 지어 구원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본문 1-2절에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성도고 사람의 딸들은 불신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인 성도가 불신자의 아름다움을 보고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으로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아내를 삼았습니다. 이것은 가인의 계통에서 난 사람의 딸들과 셋의 계통에서 난 하나님의 아들들이 혼합된 것입니다. 즉 성도가 불신자의 딸들을 아내로 맞아 들였습니다.
영적 신앙의 길을 걷는 계통과 육신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계통이 혼합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죄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인 성도들은 하나님이 좋아하는 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되고 결혼을 해도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사람의 딸의 아름다움을 보고 안목의 정욕대로 육신의 정욕대로 취해서 아내를 삼았습니다.

세상적인 물질이나 명예 등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좋아하는 대로 취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채우기 위해서 모든 것을 취합니다. 사업도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사업을 하고, 돈을 쓰는 것도 자기들의 좋아하는 대로 돈을 씁니다. 이것이 타락의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결혼을 해도 하나님의 뜻에 맞게 결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결혼을 하려면 첫째가 믿음입니다. “얼마나 잘 생겼느냐?, 돈이 얼마나 있느냐?, 직장이 무엇이냐?, 학교는 어디 나왔느냐?”를 먼저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첫째로 보는 것이 “돈”과 “직장”입니다. 그 다음이 외모입니다. “키가 얼마이냐? 잘 생겼느냐?”입니다. 그 다음에는 학교 입니다. 이것을 보고 결혼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순전히 노아 시대와 같은 타락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결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안목의 정욕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욥은 눈이 원하는 것을 따라가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욥기 31:7절에 “언제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던가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라갔던가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던가”라고 하였습니다. 눈이 원하는 것을 따라가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들의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욕심을 따라가고, 육신 중심으로 나아가는 것은 타락된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는 자가 하나님의 참된 종입니다. 또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무엇이나 감사히 받습니다. 환난도 감사히 받고, 고난도 감사히 받습니다. 환난과 고난이 육신의 생각으로는 좋지 않은 것 같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다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비방해도 “믿음” 하나만 보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거기에서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 장로 별명이 “아부하는 장로”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전적으로 목사를 받드니까 저 사람은 목사에게 아부하는 사람이라는별명이 붙은 것입니다. 재직회에서 그 장로에게 “왜 아부하느냐?”는 말이 나온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 장로는 “나는 본래 배우기를 어렸을때부터 목사를 전적으로 받드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다른 것은 못한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 장로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인정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 장로가 공학박사가 되어 알래스카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 가서도 교회를 잘 받들고 나갔다고 합니다. 아주 귀한 장로입니다. 결혼할 때에 “믿음” 하나만 보고 결혼했는데, 이처럼 귀한 장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범사를 믿음으로 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결혼하는 것도 물론 믿음으로 해야 되겠지만, 물질을 소유하는 것도 믿음으로 소유해야 됩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믿음이 아니면 하면 안됩니다. 돈 버는 것도 믿음으로 해야 되겠고, 직장도 믿음으로 취하여야 합니다. 좋은 직장에 가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직장에 가야 되며, 일단 직장에 간 다음에는 아무리 돈을 적게 주어도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보냈으니까 “여기에서 내가 충성한다”하며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야 됩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믿음으로 합니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식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돌아가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로마서 14:23에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일을 잘 해도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죄입니다. 인본주의와 사업주의로 아무리 크게 했다고 해도 믿음으로 하지 않은 것은 죄입니다. 일이 크던지 작던지 믿음으로 하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합격입니다.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고 하였는데, 자기들의 좋아하는 자로 하면 되겠습니까? 누구 좋아하는 대로 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대로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내게 손해가 나도 순종하며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면 환난과 결박이 있다고 해도 마주 나가서 환난과 결박을 받아야 합니다. 십자가가 있다고 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라면 그 십자가를 지고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하는 것은 벌써 타락된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꺾어 버려야 됩니다. 즉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꺾어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나가야 합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고 아버지의 뜻만 따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가는 길이고,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소돔 고모라, 아골 골짜기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곳으로 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선교사가 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면 선교사로 나가야 합니다.
선교사로 나갔다가 그곳에서 믿음을 지키다가 죽으면 순교자가 되는것입니다. 순교자의 반열은 특별 반열입니다.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것이 순교자입니다. 순교자는 하나님 앞에 가면 영원히 빛나는 면류관을 쓰며, 영원한 영광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짧은 세상입니다. 이 짧은 세상에서 만들어진 것이 하늘나라에 가면 영원히 남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늘나라의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연단과 시험을 참는 것입니다. 짧은 세상에서 영원한 것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다가 받는 고난은 잠깐입니다. 십자가를 져도 잠깐입니다. 잠깐만 믿음으로 통과하면 영원한 것이 자기에게 이루어집니다. 이런 큰 것을 하나님이 주시려고 우리를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목의 정욕에 기울어져서 믿음으로 하지 않고,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나가는 것은 영원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뜻대로 나가지 말고, 모든 걸 다 하나님의 뜻에 맞추고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뜻을 바로 찾아서 나가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2. 심판 결정

일백이십 년 후에 심판하심

본문 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영으로 살지 않고 육체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신이 떠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는 것은 육신 중심으로 돌아섰다는 말입니다. 성도가 육신 중심으로 돌아서면 신앙이 타락 됩니다. 신앙이 타락이 되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십니다. 신자가 영으로 살아야 되겠는데 영으로 살지 못하고, 육신대로 살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만 따라가게 됩니다.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고 하였는데, 120년 후에는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120수는 하나님의 만수이므로 오늘날에도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자를 즉시 심판하시는 때도 있으나 대개는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오래 참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벧후 3:8-9). 그러므로 회개할 기회를 주실 때에 즉시 회개하고 바로서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일백이십 년 있다가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일백이십 년 후에 노아 방주를 지었다는 말이 아니고 일백이십 년 후에 심판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가지고 사람의 수명이 일백이십 년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일백이십 세가 되기 전에 죽으면 전부 귀신이 된 다는 것입니다. 귀신들이 떠돌아다니다가 와서 병도 나게 하고 모든 재앙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을 내쫒는 사람한테 기도를 받으면 귀신이 다 나간다고 말합니다. 귀신 내쫓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이 일백이십 년 살게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일백이십 년 있다 심판한다는 뜻입니다. 그 전에 죽는 사람은 귀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귀신은 마귀인데 사람이 왜 마귀가 되겠습니까? 또 언제 죽어도 그 사람이 예수를 믿었으면 천당 가고, 안 믿었으면 지옥에 갑니다.
그런데 자기 조상이 귀신이 되었다는 것은 마귀를 자기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 할아버지가 귀신이 되어 아이들한테 들어와서 병을 주었다고 하면 할아버지를 내쫓아야 됩니다. 그런데 진짜 할아버지가 왔으면 대접을 해야지, 할아버지를 내쫓는 데가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전부가 다 마귀놀음입니다. 사람이 일백이십 년 살게 되었다는 말은 일백이십 년 있다가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또 노아방주는 몇 년 동안 지었습니까? 노아방주는 한 칠십년 동안 지었다고 봅니다.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에 하나님께서 명령하셔서 방주를 지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가서 함과 셈과 야벳을 낳았던 것입니다. ‘일백이십 년 있다 심판하리라’한 명령 다음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아서 며느리를 데려왔던 것입니다. 육백 세 까지 방주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노아방주를 지은 기한을 한 칠십년간으로 잡아야 되겠습니다. 일백이십 년 동안 노아방주를 지었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일백이십 년 살게 되었다는 것은 일백이십 년 있다 심판한다는 것이지 노아방주를 지은 기한이 아닙니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여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심

본문 5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고, 후회하시고, 근심하시고 다 멸망시킨다 하셨습니다. 관영했다는 말은, 노아시대의 죄악이 관영했다는 것입니다. 관영이라는 건 가득 찬 것입니다. 더할 나위 없이 가득 찬 게 관영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노아시대의 죄악이 관영했습니다. 가득 찼다 이것입니다. 가득 찼으니까 이제 처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3. 노아의 신앙과 그 시대의 죄악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함

본문 9절에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노아는 어떤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노아는 의인이고 당세에 완전한 자고 하나님과 동행한 자라고 하였는데 우리도 노아와 같이 의로운 길을 걸어가야 됩니다. 의가 아니면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바꾸지 말아야 합니다.

의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를 세우려고 불의를 미워하셔서 독생자를 죽이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치 못한 걸 고쳐서 완전한 자가 되어서 노아와 같이 늘 깨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함

본문 11절에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라고 했는데 그 당시에는 패괴함과 강포가 가득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것이 막대기라고 하면, 여기에 뭘 끼웁니다. 요샌 떡도 끼우는 것 같은데 막대기에 하나씩 둘씩 끼워가지고 끝까지 차면 그걸 관영이라고 합니다. 죄가 이렇게 끝까지, 꼭대기까지 찼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패괴함이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패괴라는 것은 ‘부패’, ‘썩어진 것’ 등의 여러 가지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데 마태복은 24:37-39절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도 노아의 때와 같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노아의 때의 죄악은 두 가지로 말했는데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대표적인 죄입니다. 즉, 패괴함이 대표적인 죄입니다. 온 세계가 먹고 마시는 대로, 시집가고 장가가는 대로 기울어 집니다. 그래서 죄악이 가득해집니다.
오늘날에 ‘인자의 임함 때도 그러하리라’ 한 것을 보면 마지막 때도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도 노아시대와 같이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데만 다 치우치고 열중하고, 또 시집가고 장가가는데만 열중합니다. 이것은 정상적으로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아닙니다. 음란, 방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지금 노아시대와 같이되었다 하는 것을 지금 어디를 보나 실감이 납니다. 어디를 보나 다 썩었고 어디를 보나 죄악이 가득했습니다. 의가 없습니다. 공의가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부패가 가득하고 말았습니다. 한국도 얼마나 부패해졌습니까? 관리들은 얼마나 부패합니까? 요새 신문에 매일 나는 것을 보면 도적질 하고, 도적과 짝하고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지경에 빠졌습니다. 또 얼마나 많은 돈을 횡령했습니까? 스물여섯 살 난 사람이 천억을 해 먹었답니다. 천만 원 해먹었어도 큰 건데 천억을 해먹었단 말입니다. 지금. 전부 다 부패해 졌습니다. 물론 깨끗한 사람도 있습니다.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있겠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부패한 사람이 많이 있고, 또 백성들은 방탕합니다. 술 취하고, 방탕하고, 음란하고, 먹고 마시십니다. 또 요즘은 음란, 방탕 한 사업이 돈 잘 번다고 해서 곳곳마다 러브호텔이 있습니다. 가는 데마다 술집과 노래방 없는 데가 없습니다. 술도 한국 술만 먹는 게 아닙니다. 포도주 한 병에 삼십만 원 짜리인 비싼 것을 먹고 방탕하고, 또 없는 사람은 없어서 굶고, 이거 한심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가 죄악이 관영했다고 했습니다. ‘가득 찼다’ 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악하고 의인만 방주를 타게 되어 있습니다. 남색, 여색, 동성연애 등이 만연합니다. 이들은 남자끼리 혹은 여자끼리 사귀고 결혼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징계하셔서 오늘날 수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에 걸렸습니다. 우리 한국에는 마약이 많이 들어와서 술집에 가면 술에다 마약을 타서 준답니다. 요새는 마약 탄 술이 이름이 따로 있다고 하는데 하여간 그 술을 달라고 하면 준다고 합니다. 말세가 다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5:7-8절에 “내가 어찌 너를 사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행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그들은 살지고 두루 다니는 수말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배부르고 살찌게 해주셨는데 배부르게 해주니까 음행하고, 살찌게 해주니까 밖의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었습니다. 가정부인들도 지금 호텔에 가서 음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여튼 죄악이 관영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탄식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께서 탄식을 하십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심판하심

하나님의 아들들은 어떻게 결혼했습니까? 자기 눈의 아름다운 것만 보고, 좋아하는 사람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패괴함이 가득하고, 또 강포가 가득하여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심판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가 없어지는 것을 그대로 가만 두시지 않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공의가 굽어지면 어느 한도까지 있다가 그 다음에 심판 하십니다. 공의를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한도까지 참아주시는지는 모르지만 참을 때 까지 참아주시다가 그 다음 하나님께서 손을 대시는 것입니다. 손을 대면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이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 이때가 어느 때인 줄을 바로 알고, 시대를 바로 분별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자다가 마땅히 깰 때입니다. 잠자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아내를 삼을 때가 아니란 말입니다.


4. 방주 제조 명령

방주 만드는 준비를 잘 해야 함

본문 14절에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잣나무로 방주를 만들어서 그 간을 막고 역청으로 안팎을 칠하고 방주 만들라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방주를 만들어야 됩니다. 방주는 요새 말로 말하면 영적 성전건축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오겠는데 영적 성전건축을 하지 않고 그대로 잠자고 있다가는 홍수와 같은 환난이 올 때에 다 빠져 죽습니다. 또 홍수와 같은 환난이 와도 그 환난에 빠지지 않도록, 환난을 이길 수 있도록 영적 성전을 잘 건축하라는 것입니다.

방주 제조 방법

1)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야 함 

무엇으로 건축을 해야 됩니까?
잣나무로 건축하라고 하였는데 학개서 1:8절에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나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잣나무를 갖다 하라는 것은 ‘잣나무는 사시불변 언제나 청청한, 절개가 있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다가 생명 있는 말씀, 생명 있는 진리의 말씀을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방주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2) 진리와 영감으로 지어야 함 

학개 때의 성전건축이나 노아 때 방주건축이나 방주 짓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금은보석으로 짓는 것이 있고 나무, 풀로 짓는 것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12절에서 금은보석으로 지은 것은 불이 타지 않고 나무나 풀로 지은 것은 불이 타서 없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4: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고 하였는데 우리도 신령과 진정으로 성전건축을 해야 합니다. 성전건축도 신령과 진정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참된 진리를 받아가지고 영적으로 진리와 영감이 같이 하는 영적 성전을 건축해 나가는 것이 방주준비입니다.

말씀대로 지어나가야 합니다. 성전은 말씀대로 지어져야 됩니다. 참 교회, 참 성전, 신령한 교회, 신령한 성전을 지어 나가야 됩니다. 또 우리는 여러 곳에 참 진리의 교회, 신령한 교회, 생명력 있는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방주 짓는 것입니다.

3) 먼저 자기 자신부터 만들어야 함 

고린도전서 3: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였는데 방주 짓는 건 자기 자신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신령한 성전으로, 진리의 성전으로 먼저 지어나가야 됩니다. 자신을 만들지 못하면 그 다음에 다른 것을 아무리 잘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이 망하는데 다른 것 많이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방주를 지을 땐 먼저 자기부터 지어야 합니다. 자기 인격건설. 자기 영의 성장. 자기 심령이 만들어지는 거, 이거부터 먼저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썩어진 것을 다 제거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음란, 방탕, 또 먹고 마시고, 술 취하고, 이렇게 하는 사람은 불쌍합니다. 조금 있으면 다 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정신 바짝 차려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이냐, 이 시대에 방주 짓는 거다, 우리 자신의 영적 성전건축이다. 성전건축 하는데 나부터 먼저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자기부터 말씀대로 만들어져야 하고, 또 중생한 영이 자라나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방주 짓는 것입니다. 먼저 자기 인격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들어져야 됩니다. 고린도전서 9:27절에 사도 바울이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많이 전파했지만 자기가 버림받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자기 몸을 쳐서 복종을 시키고,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가서, 자기 자신부터 만들어 나가는 것을 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하나씩 받아다가 자신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 썩어진 재목이 있으면 썩어진 것은 잘라 내버리고 새 나무를 갖다 붙이며 만들어야 됩니다.

4) 능력, 힘, 지혜, 도덕적인 면으로 만들어져야 함 

만들어지는 건 네 가지 부분으로 만들어져야 됩니다. 
첫째, 영적으로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물결을 이길 수 있는 능력, 아무리 바람이 세도 홍수가 와도 환난이 와도 다 이길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럼 능력은 어디서 옵니까? 시험을 이기는데서 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이기는데서 능력이 생깁니다. 환난, 풍파,여러 가지 시험, 참고 견디고는 데서 능력이 생깁니다.

둘째, 방주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이 없으면 방주가 가다가 파도에 다 부셔지게 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무 힘이 없으면 안 됩니다. 성경대로 되지 않은 것을 이겨야 됩니다. 성경대로 순종하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이기면 힘이 생깁니다.

셋째는 지혜 면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진리를 바로 깨달아야 되고, 영의 눈이 밝아져야 되고, 지혜가 생겨야 됩니다. 지혜는 어디서 옵니까? 순종하는데서 나옵니다. 하나님을 순종해보면 지혜가 생깁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지혜가 나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넷째, 예수 믿는 사람이 도덕 면에서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조금이라도 더러운 것이 들어오면 안 됩니다. 더러운 것은 다 제거시키고 의로운 옷, 의로운 세마포, 진실, 거룩함으로 도덕 면을 잘 만들어 나가야 됩니다. 또 교회도 그렇게 만들어가야 됩니다. 진리의 교회로, 영적 생명 있는 교회로, 능력과 지혜와 도덕이 이루어지는 교회로 세워야 됩니다.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고 진리와 생명 있는 영적인 교회를 사방에 세워야 되고, 또 선교사 보내서 외국에까지 세워야 됩니다. 이게 방주 짓는 일입니다. 자기만 만드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을 만들어야 됩니다. 여러 지방에 만들어야 됩니다. 또 여러 나라에 방주를 짓는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모든 것을 전부 방주 짓는 데 기울여야 함

이 시대에는 방주 짓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쓸데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홍수가 나겠는데 홍수 나면 다 떠내려 갈 것 아니겠습니까? 다 없어집니다. 방주 짓는 일 하나가 유일한 목표, 최고의 목표인 것입니다. 재산 나두었다 뭘 하겠습니까? 이제 홍수나면 세상 다 떠내려 갈 거 아닙니까? 홍수로 죽을 건데 재산이 무슨소용이 있습니까? 그래서 노아는 모든 재산을 팔아, 방주 짓는데 전부를 투자한 것이 분명합니다. 방주 짓는 일만 전적으로 한 것입니다. 이것만이 구원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모든 재산을 다 정리해가지고 사람을 많이 붙여 산에 가서 나무를 찍어 오게 만든 것입니다. 방주를 크게 지으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붙여야겠습니까? 나무 찍어오는 사람, 나무 자르는 사람, 대패 미는 사람, 또 배다 맞추는 사람, 수백 명의 사람들이 동원되어서 방주를 지을 게 분명합니다. 그 때 노아 며느리들은 뭘 했겠습니까? 점심해서 먹이는 것을 했을 것 같습니다. 방주 짓는 사람들이 일을 하는데 그 사람들 점심을 해 먹여야 됩니다. 매일 노아 며느리들은 점심을 했을 것입니다. 셋이서 백 명씩 매일 점심하려면 상당히 힘들 것 같습니다. 셋이서 백 명 점심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답니다.

매일 하는 것입니다. 한 번 하고 그만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아들들은 뭘 했겠습니까? 아들들은 감독을 하는 것입니다. 산에 가서 나무 찍어서 가지고 오는 것, 나무 자르는 일, 대패 미는 것 등의 일하는 것을 감독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매일 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하지 않습니다. 노아는 총감독, 총지휘관입니다. 노아 부인은 아마 집 봐주고 며느리들과 같이 점심을 해주었겠지요. ‘모든 재산을 전부 방주 짓는 데에 투자한다. 모든 시간을 방주 짓는 것에다가 사용한다. 모든 인력을 방주 짓는 것에다가 이용한다’고만 생각하면 방주가 잘 될 것 아니겠습니까?

또, 한 칠십 년 일 하는 중에 20~30년 전부터 밑에서 썩은 데가 있으면 썩은 것은 빼내버리고, 새 나무를 갖다 대는 것입니다. 우리도 모든 것을 전부 방주 짓는 것에 기울어야 됩니다. 세상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오고 예수님의 재림이 올 때는 다 없어지고 말 것인데 세상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다 쓸데없는 것입니다.

창세기 5.22-32 에녹의 신앙과 신앙의 계보 이병규성경강해 계약신학

창세기 5:22-32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23그가 삼백육십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5므두셀라는 일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6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7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28라멕은 일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29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30라멕이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31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32노아가 오백 세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1. 에녹의 신앙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

본문 22-24절에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기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담의 칠대손 에녹은 65세부터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하여 300년 동안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지 않고 산 채로 하늘에 올라갔습니다.
구약시대에 죽지 않고 살아서 승천한 사람은 에녹과 엘리야, 두 사람입니다. 에녹과 엘리야, 두 사람이 죽음을 보지 않고 산 채로 올라갔는데, 첫째로는 장차 모든 성도들이 다 하나님 앞으로 올라갈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즉 모든 성도들이 부활 승천할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둘째는 성도는 영생한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억하시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가게 하십니다. 셋째는 우리가 살 나라는 하늘나라인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빌 3:20). 

성도는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삽니다.
에녹의 신앙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입니다. “자녀를 낳았으며”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보면 자녀를 낳으면서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즉 가정을 가지고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길을 걸어갈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은 어떤 생활입니까? 히브리서 11:5-6절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

1) 그리스도를 믿음 

첫째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은 믿는 것입니다. 즉 오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약속하신 오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며, 또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도 에녹과 같이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동행
하여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 

둘째는 하나님을 늘 기쁘시게 하는 생활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로 걸어가는 신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29절에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혼자 두지 아니하시고 늘 동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하며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무슨 일에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을 하여야겠습니다. 범사의 모든 일처리와 행동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해야 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비방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찾아서 그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오른뺨을 치면 왼뺨도 돌려대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걸어가야 됩니다. 속옷을 취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겉옷을 주면서까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걸어가야 됩니다. 이것이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가지 못하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전도를 할 때에도 어떻게 전도하여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지를 생각하며 전도하여야 합니다. 선교하는 것도 어떻게 선교하여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교가 되겠는가를 생각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찾아서 그 길로 가야 됩니다. 범사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나가야 합니다. 언행심사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언행심사를 가져야 하며, 원수가 나를 대적하고 죽이려고 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만 걸어가야 됩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 갈 때에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지만 사명을 위해서 올라간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걸어간 것입니다.

3)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하나님을 찾음 

또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하나님을 찾는 신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하나님을 찾는 생활을 계속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 나아가는 생활을 계속해야 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생활은 기도하는 생활이고,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생활입니다.

4)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믿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 것을 믿어야 됩니다. 마태복음 28:20절에 “예수님이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같이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의 눈을 촉범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사 3:8). 항상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며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여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뜻을 다 내어버리고 하나님께 피동되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5) 상 주시는 하나님을 믿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상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가면 하나님이 상 주실 것을 믿고, 상 받을 만한 일을 날마다 해나가는 생활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면류관 받을 소망을 가지고 달려갈 길을 달려가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켰다고 했습니다(딤후4:7).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상은 영원한 상입니다. 그 영원한 상 받을 것을 소망하고 나가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입니다. 바울도 하늘나라에 가서 상 받을 것을 바라보고 모든 환난을 달게 받으며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자기의 달려갈 길을 잘 달려갔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은 아주 귀한 신앙입니다. 우리도 이런 길을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큰 환난과 핍박이 있을지라도 하늘나라에 가서 상 받을 것을 바라보며 믿음을 잘 지켜 나가야겠습니다. 에녹이 65세부터 하나님과 동행을 했는데, 금년에 65세 된 사람은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결심하고 나가면 에녹과 같은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또 65세 되지 못한 사람은 거기서부터 에녹과 같은 신앙의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이제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나가면 에녹과 같은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것을 믿고 날마다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걸어가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일에 ‘예수님이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며 나갔다고 합니다. 즉 어떤 사건이 닥쳤을 때에 ‘예수님이시라면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셨을까?’, 또 핍박이 들어올 때는 ‘예수님이시면 이 때에 어떻게 하셨을까?’ 하며, 무슨 일이 하나 생기면 ‘예수님이시면 이 일을 어떻게 하셨을까?’ 하며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찾아 행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이며, 하나님을 찾는 생활이며,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상 주심을바라보는 생활입니다. 우리가 짧은 이 세상에서 살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에녹과 같은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겠습니다.

2. 므두셀라에서 노아까지의 계보

본문 25-27절에 “므두셀라는 일백 팔십 칠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 팔십 이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 육십 구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라멕은 일백 팔십 이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라멕이 노아를 낳은 후 오백 구십오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칠백 칠십 칠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노아가 오백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노아가 나왔는데, 노아는 아담의 10대 손이고, 아브라함은 노아의 10대손입니다. 에녹은 노아의 7대손입니다.

이 신앙의 계통에서 제일 많이 산 사람도 나왔습니다. 그 사람은 므두셀라인데, 969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계통은 하나님을 공경했지만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신령한 신앙의 계통
은 아닙니다. 육신 중심의 신앙의 계통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만 이루고자 하는 신앙의 계통과 자기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계통이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참 신앙의 계통인 노아의 신앙의 계통, 에녹의 신앙의 계통을 따라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