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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4일 수요일

창세기 42:1-23 회개 권유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게약신학

회개 권유
창세기 42:1-23

1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관망만 하느냐 2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 오라 그리하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3요셉의 형 십 인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4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을 그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이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렵다 함이었더라 5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 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6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7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가로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8요셉은 그 형들을 아나 그들은 요셉을 알지 못하더라 9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10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11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로서 독실한 자니 종들은 정탐이 아니니이다 12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13그들이 가로되 주의 종 우리들은 십이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말째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14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15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말째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16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이니라 하고 17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18삼 일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 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19너희가 독실한 자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들의 주림을 구하고 20너희 말째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리하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21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 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22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더러 그 아이에게 득죄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피 값을 내게 되었도다 하니 23피차간에 통변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그 말을 알아들은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1. 요셉의 형들이 애굽으로 곡식 사러 감

본문 1절에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관망만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온 땅에 기근이 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애굽에는 곡식이 있었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여 풍년 때에 지혜롭게 곡식을 사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흉년을 당하여 모든 나라의 백성들이 곡식이 있는 애굽으로 곡식을 사기 위해서 들어왔습니다. 가나안 땅에도 큰흉년으로 인해서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기근이 심합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많은 것을 보면서 가서 사올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왜 관망만 하고 있느냐?”고 아들들을 책망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해결책을 반드시 주십니다. 그 때 피할 길을 찾아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해서 갈 생각하지 아니하고 관망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관망하지 말고 피할 길을 속히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곤란을 당하므로 피할 길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애굽에 가서 양식을 사올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관망만 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시험과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이 있을 때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열어 놓으십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바로 해 나가면 해결책이 다 있는데,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관망만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야곱의 신앙이 아들들보다 나았습니다. 야곱이 오랫동안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왜 관망만 하고 있느냐? 가서 곡식을 사오너라”하며 아들들을 보냈습니다.

본문 3-4절에 “요셉의 형 십 인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을 그 형제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이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렵다 함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아들들을 보내는데, 아들 열 명만 보냈습니다. 막
내 아들인 베냐민 하나는 보내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과거에 잃어버린 것을 생각해서 베냐민을 여러 형들과 함께 보내면 또 무슨 변을 당하지 않겠는가 하고 염려해서 베냐민을 빼놓고 열 명의 형들만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왜 종들을 보내서 사오지 않고 직접 아들들을 보냈겠습니까? 야곱이 곡식을 사기 위해 종들을 보내서 사올 수도 있겠는데, 직접 아들들이 가게 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돈으로 양식을 사오려면 돈을 많이 줘서 보내야 되겠는데, 종들이 가는 것 보다는 아들들이 가는 것이 틀림없이 일을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들은 곡식 사는 일에 실수 없이 처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애굽에서 아무에게나 쌀을 팔 것 같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애굽에서 곡식을
팔 때, 신분을 다 알아본 후 “네 말이 사실이냐? 네가 장사꾼이 아니냐? 실제로 가져다가 식구가 먹을 것이 분명하냐?”라고 물어보아서 본인이 와야만 되는 법을 세워 놓았을 것 같습니다. 매우 심한 흉년이 들어서 백성을 구제해 줄 방법으로 지금 곡식을 나라에서 내는 것인
데, 장사꾼이 중간에 끼어든다고 하면 그 본뜻에 어긋나고 도리어 곡식이 낭비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본인들이 와야만 거기에 대해서 얼마씩 파는 법도를 만들어 놓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아들들을 보냈을 것입니다. 


2. 형들이 요셉에게 절함

형들이 요셉에게 와서 절함

본문 5-8절에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 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가로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요셉은 그 형들을 아나 그들은 요셉을 알지 못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총리로서 이렇게 곡식 파는 자리에 앉아 직접 곡식을 판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총리의 국사가 매우 복잡할 텐데, 곡식 파는 곳 에 나와서 앉아 있다는 것은 보통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시켜도 넉넉히 팔 수 있는데, 왜 직접 총리가 나가서 팔고 앉아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아마 요셉이 그 형들이 오는 것을 발견하려고 그곳에 나가 앉았던 것 같습니다. ‘반드시 형들이 올 것이다. 형들이 올 테니 내가 나가서 직접 앉아서 형들이 오는 것을 발견해야 되겠다’ 하고 나가 앉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형들이 왔습니다. 요셉에게 와서 그 앞에 엎드려 절을 하였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였으나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때 요셉은 전에 꾼 꿈을 생각했습니다.

요셉의 꿈은 사람이 지어낸 꿈과 다름

본문 9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형들이 온 것을 보고, 그들에게 대해서 자신이 전에 꾼 꿈을 생각하였습니다. 형들의 곡식 단이 자기가 세운 곡식 단에게
절한 꿈이었습니다. 또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그는 꿈이 지금 이루어 진 것을 이때에 깨달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꿈을 품으면 꿈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라고 말하면서, 요셉이 꿈을 꾸었기 때문에 그 꿈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또 아브라함도 꿈을 꿨는데, 그 꿈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겠다’ 하는 말씀대로 자손이 별과 같
이 많아질 꿈을 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늘 하늘의 무수한 별을 쳐다볼 때마다, 반짝반짝 하는 별들을 쳐다볼 때마다, 자기 자손이 그만큼 많아져서 하늘의 별과 같이 반짝반짝 할 것을 늘 상상을 하면서 그 꿈을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침내는 자손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도 그런 꿈을 꾸고 늘 상상하면서 기도해 나가면 반드시 그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야곱도놓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꿈을 가지고 그 써 놓은 것을 보면서 노력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된다는 것입니다. 또 큰 교회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늘 기도하면 큰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큰 교회를 만들겠다고 꿈을 아무리 꿔도 안 되는 사람은 안 됩니다. 도적놈의 두목이라도 자격이 있어야 두목을 해먹지 누구나 두목이 되겠다고 한다고 해서 두목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 그만한 뭐가 좀 있었기 때문에 되는 것이지 꿈을 꾼다고 보통 사람이 아무리 해보려고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괜히 뱁새가 황새걸음을 하려다간 다리가 찢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뱁새 노릇도 못하게 됩니다.
뱁새가 뱁새 걸음을 했으면 일생 동안 잘 살 것인데, 황새 걸음을 하려다가 얼마 못 가서 다리가 찢어져서 죽게 됩니다.

어떤 한 사람이 크게 꿈을 꾸고 예배당도 크게 계획을 하고 돈도 없는데 크게 하다가 예배당을 채 짓기도 전에 빚을 잔뜩 졌습니다. 크게 꿈을 꾸고 했는데 너무 빚이 많으니까 예배당 짓다가 그냥 중단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산에 금식기도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한테 빚 물어 달라고 금식기도하다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40일 금식기도 하다가 끝나기 닷새 전에 죽었다고 합니다. 허영심으로 예배당을 크게 짓는 꿈을 꾸고 예산 없이 하다가 안 되니까, 하나님께 빚을 물어 달라고 기도하다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목사가 예배당을 하나 지었는데, 그것도 아마 큰 꿈을 꾸고 크게 지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빚을 잔뜩 졌습니다. 빚쟁이가 자꾸 와서 야단치니까 삼각산에 가서 금식기도를 40일을 하러 갔다고 합니다. 40일을 기도 하러 갔는데, 30여일 정도 금식을 했을 때, 황기정 목사 어머니 송 권사님이 그 목사님을 찾아가서 만났답니다. “금식기도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니까, 세 가지라고 하더랍니다. 첫째는 예배당 짓다가 빚 진 것을 물어 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 딸이 지금 술집인지 다방에서 일을 하는데 그것을 그만두게 해 달라는 것이고, 마지막은 삼팔선이 무너지게 해 달라는 기도였답니다. 그래서 황기정 목사 어머니가 그 세 가지 가운데 쓸 것이 하나도 없으니 관두고 내려가라고 했답니다. 그 중 하나도 기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빚 졌으면 빚 물어주면 될 것이고, 딸이 그렇게 잘못된 길을 걸어갔으면 그만 두라고 하면 될 것이고, 삼팔선 무너지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야지 기도한다고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식기도 할 바가 못 된다고 하였더니, 그 목사가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기에 쫓겨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사는 40일 금식기도를 다 마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40일을 다 채우고 집에 와서 죽었습니다. 죽을 때, “송송송” 하면서 죽었답니다. 왜 “송송송” 하면서 죽었느냐 하면, 송권사의 말을 안 듣다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탄아 물러가라” 할 때 송권사가 그만 두라고 얘길 했는데, 그 말을 들었으면 안 죽었을 텐데, 그만 그 말을 안 듣고 죽을 때 “송송송송” 하면서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꿈을 품으면 다 된다는 미혹에 우리가 빠지면 안됩니다. ‘꿈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면 다 된다’는 것은 좋습니다.
‘말씀이면 다 된다.’ 또 ‘하나님의 뜻이면 다 된다. 만능이다’, ‘하나님의 뜻이면 태산도 물러가고 뽕나무도 빠져나가고 다 된다’ 하는 확신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뜻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도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해야 되고, 무슨 일을 하
는 것도 하나님의 뜻에 맞춰 일을 해야 됩니다. 예배당 짓는 것도 하나님의 뜻에 맞추라는 것입니다. 정도에 맞게 해야지, 지나치게 큰 꿈을 가지고 한다고 하면, 가다가 함정에 빠집니다. 자기 꿈을 다 집어 치워야 됩니다. 자기 꿈은 마귀 꿈입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께서 계시로 주신 말씀입니다. 계시로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이 오랜만에 형들을 만났습니다. 몇 년 만에 만났습니까? 열 일곱 살에 집을 떠나서 서른 살에 총리가 되었고 칠 년 풍년을 지냈으니, 이십 년 만에 만난 것입니다.요셉이 형들을 회개시키기 위해 기다림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20년이 지나도록 그동안 요셉이 왜 자기 아버지 집에 한 번도 연락을 안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기 전에 보디발의 집에서 11년간 종살이 했습니다. 종살이를 11년 할 때도 기별할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옥에 2년간 있을때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총리 된 다음에는 분명히 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입니다. 총리가 된 후 7, 8년이 지났는데, 총리가 된 다음에는 자기가 한 번 고향에 다녀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애굽의 병거들이 얼마나 좋은 것이 많았겠습니까? 가는 길이 대략 삼일 길 정도 되었는데, 한 사흘 정도 갔다가 만나고 다시 사흘 걸려서 돌아오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즉 한 주간이면 아버지께 가서 인사도 드리고 안부도 물을 수 있습니다. 또 흉년이 들어서 양식이 떨어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곡식 하나 안 보내주었는데, 왜 이렇게 했겠느냐는 것 입니다.

물론 요셉이 고향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또 곡식을 좀 보내주고 싶은 생각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올 것이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자신이 아버지와 식구들을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반드시 애굽에 곡식
을 사러 올 것이므로, 온 다음에 일의 순서를 따라서 하려고 아마 아버지 집에 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님께 기도해보니까 하나님께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요셉이 늘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했을 것입니다. 형제들이 회개해야만 바로 되겠는데, 자기가 집으로 간다고 하면 형들이 회개할 기회가 한 번도 없을 것입니다. 총리가 되어서 가령 애굽의 병거를 타고 간다고 하면, 형들이 회개하기는커녕 도리어 교만해져서 ‘우리 동생이 애굽의 총리다’라고 하면서 더 날뛸 것 아니겠습니까? 형들을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에 대해서는 책임을 자기가 지기로 작정해 놓았으므로 아무 때나 책임 질 각오를 하고, 형들을 바로 세우는 것이 하나님 앞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집에 가지 않은 것도 하나님의 지시대로 한 것이고, 형들이 온 다음에도 동생으로 나타나지 말고 형들을 회개시킨 것도 하나님께서 지시하셔서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인간의 생각으로 봐서는 집에 빨리 가야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움직이
기 때문에 못 갔다고 봐야합니다. 또 형들이 왔을 때, 먼저 자기가 요셉이라고 말하고 반가워서 목을 안고 인사할 수도 있었겠지만, 요셉은 인정을 다 초월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전에 형들이 자기를 팔아먹은 생각을 하면, 복수할 만한 기회였겠지만 그 복수심도 초월했습니다. 인정도 초월하고, 복수심도 초월하고, 요셉이 오직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길로만 걸어 나갔던 것을 우리가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나가야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겠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또한 형들에게 대한 인정, 동정심, 복수심, 이런 것을 품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나가는데 방해물들입니다. 그것을 다 초월해야만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나갈 수 있습니다. 과거에 형들이 자기에게 잘못한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 때 형들이 오더라도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가혹한 일을 행했는가, 악한 일을 행했는가, 그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몇 번까지 용서해 주라고 하셨습니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다 용서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용서하고, 또한 과거에 형제가 잘못한 것에 대해 복수심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또한 인정으로 어떤 것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정으로 할 때, 하나님의 의가 멀어지게 됩니다. 요셉은 형들이 와서 절할 때에, 과거에 하나님께서 꿈으로 보여주신 하나님의 말씀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나가시는 것을 믿고 또 지금도 하나님의 뜻대로, 그 뜻에 의해서 형들에게 모든 일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들이 모르게 행했습니다. 자기는 형들을 알아보았으까 형들에게 자기가 요셉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20년 후에 만난 사람을 알아볼 수 있습니까? 20년 후에 만났어도 나이 많은 사람은 변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 사람은 20년이 흐르면 모릅니다. 어린아이들은 20년이 아니라 몇 년 만 지나도 몰라보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요셉을 몰랐던 것입니다. 아이가 한 10년만 있으면 다른 사람이 됩니다. 이전에 그 아이의 모습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그런 아이가 많습니다. 그런데 좀 나이든 사람은, 예를 들어 한 30세 정도 된 사람은 50세에 만나도 비슷합니다. 그대로라는 말입니다. 큰 변화가 없습니다.
어렸을 때는 자라나면서 상당히 변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팔릴 때가 17세였고, 지금은 20년이 지나면서 상당히 얼굴이 변했을 것입니다. 또 애굽 사람의 복장을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생각을 못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형들이 감히 자세히 쳐다보지도 못 했을 것입
니다. 너무 엄하기도 하고, 잘못했다가는 곡식을 안 판다고 하면 큰일이니까, 그저 벌벌 떨면서 요셉 앞에서 엎드렸기 때문에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 형들이 오길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별로 변하지 않은 형제들이 지금 요셉에게 온 것입니다. 그래도 모르는체 하고 엄한 소리로 말하기를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형들이 요셉에게 절하고서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 땅에서 왔나이다”라고 겸손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지금 요셉 앞에 굴복시키신 것입니다.

3. 요셉의 형들이 정탐으로 몰림

본문 8-9절에 “요셉은 그 형들을 아나 그들은 요셉을 알지 못하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너희는 정탐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
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형들을 회개시킬 목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아무 쓸 데가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곤궁한 난관에 빠뜨려 애매한 누명을 쓰게 했습니다. 정탐들이라고 하는 애매한 누명을 쓰고 이제 환난을 당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형제들을 회개시킬 목적으로 요셉을 시켜서 지금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10-13절에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로서 독실한 자니 종들은 정탐이 아니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그들이 가로되 주의 종 우리들은 십이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말째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형들이 하나는 없어졌다고 한 것은 요셉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정탐으로 몰렸으니까 지금 어떻게 해서라도 그것을 벗어나려고 사실대로 전부
다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들은 지금 속이 얼마나 안타까워서 하는 말들인지 모릅니다.

본문 14-15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말째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형들의 말에 요셉이 증명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말째 아우가 오지 아니하면 정녕 거기서 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째 아우가 있다고 했으니까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한 대로 말째 아우를 데려 오면 그들의 말이 사실이고, 오지 않으면 그들의 말이 다 거짓말이고 그들은 정탐이 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본문 16-17절에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이니라 하고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고 하
였습니다. 그들이 삼 일 동안을 전부 갇혀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 중 한 사람을 보내서 말째 아우를 데려오면, 그들의 말한 대로 열두 형제인데 말째 아우는 집에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정탐이 아닌 것을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째 아우를 데려오지 않으면 그들의 말이 다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원래 열두 형제라는 것도 거짓말이고, 정탐이 아니라고 한 것도 거짓말이고, 전부 다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보내서 말째 아우를 데려오고, 데려오기까지 다 감옥에 갇혀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삼일 동안을 전부 감옥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삼일 동안 갇혀 있는 동안에 형들이 많이 회개했을 것입니다. 또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고통을 많이 당할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그들이 정탐으로 몰렸기 때문입니다. 꼼짝 못하고 죽게 된 것입니다. 죄 가운데 정탐죄는 사형 받을 죄가 아니겠습니까? 간첩죄인데, 간첩죄로 걸리면 사형 받을만한 죄입니다. 그러니까 감옥에서 삼일 동안 얼마나 고민을 많이 하고 얼마나 고통을 많이 당했겠습니까? 그래도 전에 지은 죄에 대해서 아직도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 전에 요셉 팔아먹은 죄를 회개했다는 말이 아직 없습니다. 고통을 많이 당하고, 하나님께 많이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는 아직도 못 깨달았습니다. 사실은 그 죄 내놓으려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가두어 놓으신 것인데, 그 죄는 못 내놓고, 많은 고난을 당하면서 자꾸 건져달라고만 합니다. 삼일 동안은 그랬을 것 같습니다.

본문 15절에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말째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한 것은 첫째는 자기가 애굽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바로의 세력이 이때 막강한 세력이니까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한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확증의 맹세라는 뜻입니다. 즉, 자기가 애굽 사람인 것을 확증하려고 하는 것과, 또 하나는 정탐이 확실한데, 정탐이 아닌 것을 증명하는 길은 말째 아우를 데려오면 되고 다른 편법이 없다는 것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정탐으로 벗어날 가망이 없도록 해놓으려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로만 아니라고 하는 것은 통하지 못하고, 유일한 길은 말째 아우 데려오면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여 이것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형들이 용서받을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졌습니다. 나갈 구멍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바로의 생명으로까지 맹세해서 정탐으로 몰아 놓았는데, 나갈 길이 어디 있겠습니까? 용서받을 수 없는 길이고 나갈 길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이렇게 전혀 빠져나갈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다 몰아넣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회개시키게 하시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한 것을 움직이기 전에는 전혀 나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한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고 성도로 하여금 회개시키려고 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때때로 있습니다. 그때 회개할 바를 찾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회개할 환경을 만들어 주셔도 회개하지 못합니다. 삼 일 동안 무슨 기도만 했겠습니까? 살려달라는 기도만 했습니다. 그것밖에 안 한 것 같습니다. 회개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민을 한량없이 당했을 것입니다. 바로의 생명으로까지 맹세해서 정탐으로 몰아 놓았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도 삼일 후에는 소망이 조금 생겼습니다. 조금 구멍을 열어 놓았습니다.


4. 형들의 뉘우침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본문 18-20절에 “삼 일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너희가 독실한 자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들의 주림을 구하고 너희 말째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리하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감옥에 갇힌 지 삼 일만에 요셉이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라고 하여 그들의 숨통을 조금 열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도 믿는 사람이 아무래도 조금 낫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정탐으로 몰아도 그 책임자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무자비하게 잡아 죽이기야 하겠는가? 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뭐 이렇게 정탐이 아닌데 정탐으로 몰아가면서까지 할 수가 있겠는가? 무슨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만난 것이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제 조금 숨통이 트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대하는 방침도 조금 누그러졌습니다. 처음에는 전부 가둬놓고 하나만 가서 말째 아우를 데려오라고 하였는데, 이제는 그들 중 하나만 가두어 놓고, 다 집에 갔다가 말째 아우를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상당히 완화되었습니다.
한 사람만 빼고, 나머지는 다 해금(解禁)되었습니다. 삼 일이 지난 후 오늘에서야 해금되는 것입니다. 내내 갇혀 있었는데, 이제는 한 사람만 옥에 가두고 나머지는 다 풀어줄 테니, 집에 곡식을 가지고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도 계시다고 하니까, 아버지와 그 가족들의 주림을 구원하고, 말째 아우를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조금 소망이 생겼습니다. 무엇 때문에 조금 소망이 생겼습니까? 요셉이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라고 말한 것, 즉 그 책임자인 총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했기 때문에 소망이 생겼습니다.

또 형제들이 너무 낙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좀 더 힌트를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너무 낙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은혜의 서광을 조금 비춰주실 때가 있습니다. 때로 어려운 가운데 빠질 때에도 하나님의 권고하는 말씀이 조금 오는 때가 있습니다. 아주 희망이
없는 곳에 빠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어느 한 모퉁이에 하나님의 권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방침도 처음에는 다 가둬 넣으려고 했는데, 이제는 한 사람만 가두어 놓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나머지는 다 갔다 오라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대단히 안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안심은 못 됩니다. 왜 아직 안심이 못 됩니까? 형제 중 하나를 두고 가야 하는데, 누구를 두고 갈지 알 수 없고, 또 한 가지는 가두어 놓고 간다는 것 자체가 그리 안심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저 다 죽는 것은 면한 것같습니다. 또 한 사람이 갇혀도 총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했으니까 그래도 조금이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권고하시는 것 같다고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시려고 조금 권고하시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회개하라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금 권고하는 것입니다.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또 한 사람만 가둔다는 것은 전에 아우 요셉 한 사람 팔아먹은 것을 연상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

본문 21절에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야 회개가 나왔습니다. 사흘 동안은 회개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회개가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권고가 임할 때 회개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 가혹하게 할 때에는 회개하지 못하고 그저 안타까워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만 하고 있다가, 이제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라고 숨통을 열어 놓고 또 “다 갇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만 갇혀라. 가서 너희 말째 아우 데려오면 다 놔준다. 너희 가족도 구하러 가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여러면으로 위로의 말을 하여서 소망을 좀 열어 준 것입니다. 그럴 때에
‘아, 전에 잘못한 것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당하는구나’ 라고 한 번 그들의 죄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야 전에 지은 죄가 생각이 났습니다. 효과가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이 나오게 하려고, 이 죄를 깨닫게 하려고 지금까지 하시는 것인데 이제야 회개가 나왔습니다.

또 형들이 말하기를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잡아서 구렁텅이에 빠뜨릴 때 요셉이 형들한테 애걸했던 모양입니다. 그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지금 그 괴로움이 자신들에게 임해서 그 죄 값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이제야 죄를 깨닫고 회개가 나왔습니다. 20년 전에 지은 죄를 회개하라고 하나님께서 이들을 이런 고통 가운데 빠뜨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는 몇 십 년 지나도 내놔야 되게
되어 있습니다. 내놓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십니다.

어떤 한 집사가 어떤 교회에서 왔는데, 나보고 하는 말이 자기 교회 교역자가 400년 전에 지은 죄 값으로 아말렉이 망했다고 강도를 했답니다. 400년 전에 지은 죄도 다 벌 받는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집사님이 그 말을 듣고 ‘그러면 400년 전에 우리 조상들이 지은 죄를 내가 다 책임지려면 아주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뒤로 나가 넘어져서 교회도 안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한 주간 정도 안 나가고 심방도 다 집어치우고, 400년 전에 지은 죄까지 다 갚으려면 희망이 없으니 아예 그냥 관두자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심방해서 위로하여 교회를 다시 나가기는 나갔는데, 그래도 그 고민이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400년 전에 조상들이 지은 죄를 다 벌 받으려면 어떻게 받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그 아말렉 사람은 이방사람으로 불택자이고 불신자이다. 이방사람으로 불신자는 400년 전에 지은 죄도 다 받아야 된다. 그러나 택한 백성, 곧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을 때 400년 전에 지은 죄도 다 용서 받았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용서 받은 것이 아니냐? 다 용서 받았으니 이제는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 회개한 사람의 죄는 다시 기억지도 않으신다. 그것은 우리에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니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기쁘고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잘 순종하면 된다.”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가르칠 때, 그런 면을 좀 생각하고 가르쳐야 됩니다. 400년 전에 지은 죄를 가지고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가르쳐주면, 그것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들을 것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교인들이 그것에 대해 근심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무조건 성경에 나와 있다고 회개하라고 하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말할 때는 ‘400년 전에 지은 죄도 벌 받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다 용서해 주셨으니 예수 믿는 사람은 얼마나 큰 복이냐? 믿는 사람은 이제 회개하면 다 용서를 받고 하나님 앞에 이제 자녀가 됐다’는 것까지 말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말하지 않고 전체를 알려주는 면이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요셉의 형들에게 20년 전에 지은 죄를 내놓으라고 했는데, 이것을 안 내놓는다고 해서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또 그 죄 값으로 지금 벌 받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이것은 하나님께서 회개하라고 사랑으로 주는 징계에 불과한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죄를 복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가 당하는 환난은 죄에 대한 보복적 고난이 아니고 회개를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입니다. 회개를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징계와 죄 값을 벌하는 보복적인 징벌은 분별해야 되겠습니다. 지금 요셉의 형들이 당하는 것은 죄 값으
로 당하는 벌이 아니고, 회개를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가 임할 때에 ‘내게 왜 이런 하나님의 징계가 왔을까?’ 하며 전에 지은 죄를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20년 전에 지은 죄가 무엇인가? 양심의 가책이 되는 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사람들에게 양심의 가책이 되었나 봅니다. 전에 지은 죄가 늘
속에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환난을 만날 때 이런 것이 쑥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동생 때문에 고통당하게 되니까 동생 생각이 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징계를 해서 회개시키려고 20년 전에 다른 데서 지은 죄가 오늘날 여기 와서 생각이 나도록 하신 것입니다. 얼마에 팔아먹었습니까? 은 20개에 팔아먹었습니다. 은 20개를 나눠 먹었어도 먹고도 벌써 오래 지났습니다. 얼마 되지도 않은 것을 받아 먹고는 죽을 통에 빠진 것입니다. 20년이 지나서 지금 죽을 지경에 빠졌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눈 앞의 작은 유익 때문에 장래에 오는 하나님의 큰 징계를 무시하고 나가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나 이 징계 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 앞에서 그 지은 죄 값을 받는다고 하면 아주 희망이 없을 텐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회개시키시려고 이런 징계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때에 회개해야 되겠습니다.어떤 분이 병이 나서 세상 떠나게 됐는데, 다른 교인이 찾아가서 회개하라고 하였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가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했더니 하는 말이 “내가 오랫동안 앓으면서 무슨 죄를 회개하지 않았겠습니까? 내게 있는 죄는 다 회개 하려고 했습니다. 회개 안한 죄가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답니다. 오랜 고난 가운데 있는 동안에 별의 별 것을 다 찾아서 회개한 모양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고난 가운데 빠지면 모든 죄를 찾아서 회개하게 되어 있습니다. 미리부터 아예 다 회개하고 나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양심에 가책되는 것은 다 회개하고, 원수맺은 것은 풀고, 어떻게 하든지 남한테 막히는 것이 없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다 풀고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나 양심에나 거리낌이 없는, 모든 것을 바로 하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왜 삼 일 동안은 이런 회개가 안 나오고 이제야 나옵니까? 하나님의 권고가 조금 임하여야 회개가 나오는 것입니다. 징계를 해도 징계 가운데서 하나님의 권고가 있을 때 회개가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다른 사람을 책망을 해도 책망만 해서는 회개가 안 나옵니다. 책망한 다음에는 사랑의 권고가 좀 있어야 됩니다. 매를 세게 때리고, 사과는 일곱 개를 사다 주어야 합니다. 매 맞을 때 회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과 일곱 개를 사다 줄 때 회개가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죄값으로 매를 맞았지만, 아버지가 이렇게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하면서 그때 ‘제가 참 잘못했습니다’라고 회개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린 다음에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때리는 것이 필요하나, 그 다음엔 소망을 조금 열어주고, 위로도 조금 해주고 그럴 때 회개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형들이 사랑에 감동이 되니까 “아, 이거 참 아우의 일로 잘못 됐다. 범죄 했다. 애걸 할 때에 그 괴로움을 보고도 우리가 듣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그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였다”라고 한 것입니다.

죄의 경중을 드러내심

본문 22절에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더러 그 아이에게 득죄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피 값을 내게 되었도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형들이 죄를 회개하자 맏형인 르우벤이 동생들을 꾸짖었습
니다. 요셉은 이것을 처음 듣는 것입니다. 자기가 팔릴 때, 르우벤이 이렇게 말한 것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르우벤이 요셉을 죽이지 말고, 아이에게 득죄하지 말라고 형제들을 말린 것입니다. 그래서 죽이려고 할 때에 죽이지 못하게 하고, 구렁텅이에 넣게 한 것이 르우벤이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요셉을 죽여서 그 피를 옷에다가 묻혀서 아버지께 가져가려 했는데, 르우벤이 아이를 죽이지 말자고 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 생명은 상하지 말자…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창
37:21-22). 그런 다음에 건져서 아버지께로 보내려고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르우벤이 어디 갔다 오는 동안에 다른 형제들이 팔아먹은 것입니다.

르우벤이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게 득죄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고 하였습니다. 처음에 말린 것은 잘했으나 끝까지 막지 못했으니까, 르우벤에게도 책임이 있기는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동책임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 형제들이 죄를 지으려고 할 때 르우벤
이 반대했지만, 결과적으로 공동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르우벤이 막을 수 있었겠는데, 안 막은 것 같습니다. 처음에 구렁텅이에 빠뜨릴 때까지는 건져내려고 했다 해도, 사실 그것은 양보한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아예 르우벤이 구렁텅이에 안 빠지도록 했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그를 애굽에 팔아먹을 때에는 르우벤이 없었는데, 동생이 구렁텅이에 있는 것을 아는 이상, 르우벤이 어떻게 해서든지 그 자리를 떠나 다른 곳에 가지 않고 그 부근에서 일을 보면서 아이를 지켰어야 좋을 뻔 했습니다. 일단 구덩이에 빠뜨린 다음에는 안심하고 멀리 딴 데 가있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분명히 죄를 막았으면 될 뻔 했습니다. 또 다른 곳에 안 갔으면 될 뻔 했습니다. 안 갔더라면 못 팔아먹었을 것입니다. 빠뜨려 놓은 다음에도 자리를 피하지 않고 있었으면, 이스마엘 장사꾼한테 팔려고 할 때 반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르우벤에게도 막지 못한 책임이 어느 정도 있습니다. 공동책임이 있기 때문에 형제들과 같이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득죄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하고 말하여 사실대로 밝힌 것입니다. 르우벤이 제일 낫습니다. 그러나 책임은 져야 합니다. 죄는 지은 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실대로 드러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서도 사실 그대로 낱낱이 적나라하게 그 죄의 경중이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의 피 값을 내게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회개가 이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피차간에 통변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그 말을 알아 들은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서로 간에 통역을 세워서 말을 하였기 때문에 형들은 요셉이 자신들의 말을 알아들을 줄을 알지 못하고 그들의 죄를 서로 말했으나, 요셉은 다 알아들은 것입니다.

환난 가운데 죄를 찾아 회개해야 함

우리가 어떠한 일을 당할 때에 회개할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거에 지은 죄와 현재에 당하는 환난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현재의 환난이 과거의 죄 값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전에 지은 죄를 회개시키려고 그런 환난을 당하게 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에 지은 죄를 하나님께서 내어 놓으라는 것인데, 그 죄를 그냥 두고 나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삼 일 동안 갇혀있을 때 아무리 살려달라고 애를 썼지만 그것으로는 합격이 안 됩니다. 전에 지은 죄를 내어 놓아야만 합격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과거의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야곱도 에서가 사백명을 거느리며 올 때에 살려달라고 애를 써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가지고는 통과가 안 됩니다. 야곱이 천사하고 밤새도록 씨름했습니다. 그것도 살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이
씨름한 것은 하나님께 살려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네가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살려달라는 소리하지 말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전에 지은 죄를 내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일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내가 전에 지은 죄를 회개 시키시려고 이런 어려움을 당하게 된 줄 알고, 잘못한 것을 언제나 찾아봐야 됩니다. 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잘못된 것이 무엇인가?’ 하고 언제나 그 잘못된 것을 찾아서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어려움을 당할 때에 살려달라고만 하지 말고 잘못된 것이 무엇인가, 전에 죄 지은 것이 무엇인가, 또 현재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찾아서 회개하고 바로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권고가 다시 오게 됩니다.

창세기 41:1-36 바로의 꿈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바로의 꿈
창세기 41:1-36

1만 이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서 있는데 2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3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서 있더니 4그 흉하고 파리한 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5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6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7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 즉 꿈이라 8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9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애개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10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가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친위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11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뜻이
있는 꿈이라 12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던니 13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느 매달렸나이다 14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깍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15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16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라이다 17바로가 요셉이기 이르되 내가 꿈에 나일강
가에 서서 18보니 살지고 아름다은 일곱 암소가 나일강 가에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19그 뒤에 또 약하고 심히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올라오니 그같이 흉한 것들은 애굽 땅에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라 20그 파리하고 흉한 소가 처음의 일곱 살진 소를 먹었으며 21먹었으나 먹은 듯 한지 아니하고 여전히 흉하더라 내가 곧 깨었다가 22다시 꿈에 보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23그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더니 24그 가는 이삭이 좋은 일곱 이삭을 삼키더라 내가 그 꿈을 점술가에게 말하였으나 그것을 내게 풀이해 주는 자가 없느니라 25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버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26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라 27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한 일곱 소는 칠 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 해 흉년이니 28내가 바로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29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30후에 일곱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그 기근으로 말하리니 31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 32바로께서 꿈을 두 번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33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하시고 34바로께서는 또 이 같이 행하사 나라 안에 감독관들을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35그들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믈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
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읍에 쌓아 두게 하소서 36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에 대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

1. 바로가 꿈을 꾸고 해몽하지 못함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셔서 앞으로 될 일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꿈을 두 번 꾸게 하셨습니다. 본문 2-7절에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 먹고 그 뒤에 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하숫가에 섰더니 그 흉악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 세약한 일곱 이삭이 무성하
고 충실안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고 하였습니다.

첫 번째 꿈에는 바로가 하숫가에 섰는데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을 뜯어먹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서 먼저 올라온 그 일곱 살진 암소를 다 잡아 먹었습니다. 또 두 번째 꿈은 한 줄
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왔는데 그 후에 세약하고 동풍에 바짝 마른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다 삼켰다고 하였습니다. 바로는 이 꿈을 꾸고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해서 번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모든 술객과 박사들을 불러다가 꾼 꿈을 해
석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 이 꿈을 해석하는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특별계시로 주신 꿈이기 때문에 성령으로라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때에 술 관원장이 나섰습니다. 본문 10-13절에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시위 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징조가 있는 꿈이라 그곳에 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소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고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인에게 해석하더니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하고 그는 매여 달렸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2. 바로 앞에 선 요셉

바로가 요셉에게 꿈을 해몽하기를 명함

그 말을 듣고 바로가 명령을 해서 그 히브리 소년을 불러오라고 하였습니다. 그 히브리 소년이 누구입니까? 요셉입니다. 요셉은 2년 동안 감옥 생활하다가 왕이 불러서 마침내 왕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본문 14절에, 요셉이 감옥에서 깨끗하게 수염을 깎지 못한 모양입니
다. 특별히 왕의 명령을 따라서 요셉이 수염을 다 깎고 옷을 갈아입고 바로 왕 앞으로 나왔습니다. 본문 15-16절에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고 하였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꿈을 해석해 줄 것을 명했습니다. 그때 요셉은 바로에게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서 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해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맡겼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특별계시로 알게 하심

바로가 꾼 꿈을 말하니까 요셉은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본문 25절에 “요셉이 바로에게 고하되 바로의 꿈은 하나이라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보통 꿈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장차 어떻게 하실 것을 미리 바로 왕에게 보인 특별계시
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줄 때에 꿈이나 음성이나 환상으로 알게 해주실 때가 많습니다. 또 우림과 둠밈과 비의적 현상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바로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꿈으로 알게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시와 말씀을 꿈으로 준 것입니다.

이렇게 구약시대에는 꿈과 환상과 음성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시다가, 신구약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표준계시가 종결되었습니다. 표준계시를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시대까지 주시다가 종결되어 완성된 것입니다. 즉 예수님 때까지 주시다가 끊기고, 이후에 사도와 그 수종자를 통해서 성경에 전부 기록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시대 이후에는 기록된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준 것입니다. 이제는 성경 이외에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표준계시는 없습니다. 표준계시는 성경이 완성됨으로 종결이 된 것입니다. 그후에도 꿈이나 다른 것들이 더러 있는데, 그것은 표준계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꿈을 믿으면 마귀의 미혹을 받습니다. 보통 우리가 꿈꾸는 것은 다 제 꿈(자기 꿈) 아니면 개꿈이므로 꿈을 믿으면 안 됩니다. 또한 꿈꾸는 것을 가지고 점치는 식으로 믿으면 불건전한 신앙입니다. 또 마귀의 미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꿈꾸는 것을 숭상하면 안 됩니다. 꿈
꾼 것이 그대로 맞았다고 해도 별 것 아니니까 그것을 따라가면 안됩니다. 성경을 믿어야 됩니다. 꿈이 성경에 맞았어도 성경을 믿어야지 꿈을 믿으면 안 됩니다. 또 성경에 안 맞는 것은 마귀로부터 오는 꿈이 또 많습니다. 꿈은 평소에 자기의 심리적인 것에서나 생리적인데
서 오는 것이 많으니까 꿈을 믿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꿈을 꾸었어도 꿈은 믿을 바가 못 되고, 못된 꿈을 꾸었어도 그것은 개꿈 아니면 제 꿈 하나 꾸었다고 생각하고 지나버려야 합니다. 못된 꿈을 꾸었다고 잘못 될 것 없고, 좋은 꿈꾸었다고 잘 되는 것 아닙니다. 자기가 믿음 잘 지키면 잘 되고, 믿음 못 지키면 못 됩니다. 믿는 일을 잘 해야지, 꿈 잘 꿨다고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에 특별계시로 바로에게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로에게 특별계시인 꿈으로 말씀을 주셨는데, 이것을 해석할 자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술객이나 여러 박사를 다 불렀어도 그 꿈을 해석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성령으로 해석을 해야만 알 수가 있습니다. 성령이 아니면 알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2:13~14절에,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일을 받지 못하고 또 깨닫지도 못 합니다. 즉 육에 속한 사람은 아무리 지혜가 있고, 아무리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분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으로만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말씀입니다. 그래서 모든 박사나 술객들을 다 불렀어도 그 꿈을 알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왕은 대단히 번민하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가 꾼 꿈으로 인해 번민하는 것을 보고, 전에 요셉이 꿈을 해석해 준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전에 요셉이 꿈 해석을 해주면서 복직하면 나를 건져내달라고 했는데, 술 맡은 관원장이 그것을 잊고 있다가 이번에 생각났던 것입니다.

심은 것을 열매 맺은 요셉

이것은 전에 요셉이 심어 놓은 것이 이제 열매를 거둔 것입니다. 몇년 전에 심어 놓은 것입니까? 2년 전에 관원장에게 꿈을 해석해주어서 하나님의 계시를 알게 해주고, 선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술관원장은 배은망덕하게 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이제야 생각난 것입니다. 이것은 요셉이 심어 놓았기 때문에 비록 술 관원장이 다 잊어버렸어도, 생각지도 않은 때에 심은 것에서 열매를 거둔 것입니다.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의를 심으면 의를 거둘 날이 옵니다. 말씀을 심으면 말씀을 거둘 날이 옵니다. 바로가 술 맡은 관원장을 통해서 요셉을 불렀습니다. 요셉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요셉이 아니면 이 일을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었어도, 하나님이 부를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 배워야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 ‘억울하다 내가 애매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생활을 한다’, 또 ‘술 맡은 관원장이 배은망덕하게 나를 돌봐주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요셉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또 보디발의 아내를 저주하지 않았
습니다. 2년 동안 감옥 생활하는 것도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잔인줄 알고, 거기에서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맡겼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선을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도 꿈을 해석해 줌으로서 선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또 윗사람에게 충성을 하였습니다. 창세기 39장 22절에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전옥이 옥중의 모든 일을 요셉에게 다 맡겼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 맡겨놓으니까 그 맡은 일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충성스럽게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윗사람을 우러러 잘 받들고 순종하는 요셉이었습니다. 그렇게 믿음 지키면서 충성하면 남이 알아주지 않고, 또 감옥에 가둬 매장시켜 놓아도 언젠가는 부를 날이 옵니다. ‘요셉이 필요하다 요셉이 아니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으니 요셉을 불러라’라고 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알아주지 않고 애매히 감옥에 썩는 것이 아닙니다. 감옥에서 썩어야 쓸 만해지기 때문에 썩히는 것입니다. 땅에 묻혀서 그 씨앗이 썩어져야만 새싹이 나와서 새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한 알의 씨가 땅에 묻혀서 밟히고, 땅에 묻혀서 썩는 그 과정이 필요합니다. 특히 젊은
신학생들이나 젊은 층들은 묻혀서 썩어지는 과정이 정말 필요합니다.
‘알아주지 않는다. 애매히 오해를 받았다. 죄인으로 취급한다. 감옥생활처럼 똘똘 몰아서 나를 매장했다. 나는 죄인 가운데 괴수가 됐다. 죄 안 지었는데 죄진 사람처럼 됐다’ 그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썩어야 됩니다.

언제까지 썩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알아주는 날까지 썩어야 합니다. 썩으면 알아줍니다. 꼭 필요할 날이 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어디 있느냐? 요셉이 필요하다”고 부를 날이 옵니다. 그런데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직 설익은 것입
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또 ‘왜 나를 집사 안 세우느냐? 다른 사람이 나보다 나은 것이 뭐 있느냐? 내가 저 사람보다 못한 것이 뭐 있느냐? 아무개는 집사 세워주고 나는 안 세워준다’고 섭섭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례를 못 받아서 울면
서 간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세례 못 받았다고 울면서 돌아가지 말고 자기가 믿음 못 지킨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주일을 잘 못 지켰기 때문에 세례 안 준 것이고, 다른 사람은 주일을 잘 지켜서 세례 준 것입니다. 세례 못 받은 것을 원통해 하지 말고, 주일날 못 지킨 것을 원
통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집사 못 되어서 섭섭한 사람은 요셉한테 가서 배워야겠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바로 앞에 서게 된 요셉

요셉은 처음부터 종으로 팔려갔고, 아예 사람 취급도 못 받았습니다.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했습니다. 큰 죄인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도 거기서 요셉이 감옥에서 무엇이라 했습니까? 섭섭하게 생각했습니까? 섭섭한 생각 없었습니다. 왕에게 진정(陳情)한 것도 없었습니다. 불평 한마디 안 했습니다. 가서 불평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아니하리오”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버지께서 주신 잔인 줄 알고 그것을 달게 마셨습니다. 요한복음 18장 11절에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십자가의 잔은 가룟 유다 때문에 오는 것도 아니고, 제사장과 바리세인 때문에 오는 것도 아닙니다. 빌라도가 불의한 재판을 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 칼과 몽치를 가진 무리들과 백성들이 아우성치는 것 때문에 오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잔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사람들이 시기가 나서 잡아 가두고, 빌라도가 불의한 재판을 하고, 백성들이 대세주의로 배은망덕하고, 예수님 앞에 와서 떡을 먹고 배불렀던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죽이라고 아우성쳤지만,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잔인 줄 알고 예수님께서는 잘 받았습니다. 요셉도 이것을 아버지께서 주신 잔인 줄 알고, 2년 동안 감옥 생활하면서 충성을 다했습니다. 무엇을 했다고 하였습니까? 거기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바라보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감옥생활을 하면서 윗사람을 존경하고, 맡은 일에 충성하면서
모든 일에 능했다고 하였습니다. 맡은 일에 능해서 일을 잘 처리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항상 같이 하셔서 형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요셉을 불렀던 것입니다. 요셉이 감옥에 안 들어갔으면 바로 앞에 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들어 간 것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에 지금 바로 앞에 설 수 있습니다. 만일 요셉이 감옥에 안 들어갔으면 그 요셉을 어떻게 알고 불러 가겠습니까? 불러갈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었고,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요셉을 소개 했던 것입니다. 감옥에 안 들어갔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꼭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요셉을 연단시키고, 요셉의 앞길을 열어주려고 하나님께서 감옥에 가는 것도 허락하신 것입니다. 

3. 바로의 꿈을 바로 해석한 요셉

요셉이 바로 앞에 설 때에 나이 몇 살이었습니까? 나이 30세에 바로 앞에 섰습니다. 요셉은 바로에게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꿈을 해석하는 것은 자기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예언의 말씀을 바로에게 준 것입니다. 바로의 꿈의 살진 소와 살진 이삭은 풍년이 들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앞으로 7년 동안 풍년이 들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풍년이 들어서 살이 펑펑 찌도록, 곡식이 땡땡 여물도록 7년 동안 큰 풍년이 들어서 풍성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어서 7년 흉년이 옵니다. 7년 동안 흉년이 들어서, 먼저 풍년의 곡식 많던 것을 생각 못할 만큼 다 잡아 삼키고, 도리어 흉악한 가운데 있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7년 풍년이 들고, 그 다음에는 7년 흉년이 들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꿈으로 미리 알게 해주신 것이라고 바로 해석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해석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석이 바르지 못하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만일 요셉이 없었다고 하면, 바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살진 소 일곱 마리가 나오고, 그 일곱 소를 빼빼 마른 소 일곱 마리가 나와서 다 잡아먹었다’ ‘또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또 흉악한 알이 없는 일곱 이삭이 나와서 다 잡아먹었다’는 꿈을 미리 알려 주었어도 그 뜻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성경 해석을 바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 해석을 바로 하지 못하면 신앙준비가 안 됩니다. 성경 해석을 바로 한 다음에야 거기에 대한 신앙 준비를 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 말씀 해석을 누가 바로 했습니까? 요셉이 했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꿈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해석하니까, 바로가 ‘이제 앞으로 큰 흉년이 다가와서 7년 풍년 다음엔 흉년이 오겠고 그 흉년엔 다 굶어 죽게 되겠구나’ 하며 정신이 바짝 들은 것입니다. ‘7년 흉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가 걱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때 요셉이 흉년에 대비할 해결책을 말해 주었습니다. 


4. 요셉이 칠 년 흉년의 대책을 말함

7년 풍년 기간을 통하여, 7년 흉년을 대비하라

본문 33-36절에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치리하게 하시고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국중에 여러 관리를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그 관리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
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성에 적치하게 하소서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을 예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을 인하여 멸망치 아니하리이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말한 대로 하면 바로가 근심하던 것이 딱 해결된다는 말입니다. 무슨 근심이 있었습니까? ‘앞으로 7년 동안 큰 흉년이 들겠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문제였는데 요셉이 해결책을 제시해 준 것입니다. 말씀을 바로 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또 해결책도 바로
말해주었습니다.

해결책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지혜 있고 명철한 사람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적재적소에 적임자를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혜있고 명철한 사람을 세워서 7년 풍년 동안에 각 도시마다 창고를 지어놓고 많은 곡식을 저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풍년이 들 때를 대비
해서 많이 쌓아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오는 7년 흉년에 내다 팔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모든 백성이 안 굶어죽고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해결책입니다. 바로가 이제 안심이 됩니다. 이것이 성경 해석을 바로 해서 거기에 맞는 해결책을 바로 제시해 준 것입니다. 어려운 난관을 통과하기 위해 어떤 방책을 써야 되고 어떤 길을 걸어가야 되는지를 바르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의 해결책을 바로가 감사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배워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7년 흉년이 오기 전에 7년 풍년이 온다는 것입니다. 즉 7년 풍년이 온 다음에는 7년 흉년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영적으로 하면 7년 흉년은 7년 대환란을 가르칩니다. 말세에 7년 대환란이 있는데 7년 대환
란을 어떻게 해야 통과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환란 가운데 빠져서 죽게 되는데 이것은 심령이 굶주려서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환란이 오기 전에 7년 동안 풍성한 양식을 먼저 많이 내려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7년 풍년에 저장한 양식을 가지고 7년 흉년을 통과하도록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어떤 시기입니까? 7년 대환란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대환란을 앞에 두고 있어서 지금은 풍성하게 우리에게 양식을 주는 때 같습니다. 그리고 양식을 풍성히 주시는 7년 풍년이 아직도 채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올 7년 흉년을 대비하게 하기 위해서 7년 풍년에 양식을 풍성하게 많이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풍성하게 줄 때에 풍년들었다고 좋다고만 하지 말고 앞으로 들 흉년을 대비해야 됩니다. 이 양식을 주는 목적은 지금만 잘 먹으라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7년 대환란을 통과시키기 위한 준비로써 양식을 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풍년이 들었을 때 양식을 저장해야 됩니다. 먼저 자기가 먹어서 실력을 키우는 동시에 잘 저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 흉년들 때에 신령한 양식을 내다 쓸 수 있는 그런 실력을 길러 나가야 되겠습니다.

아모스 8장 11-12절에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환난 날에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모든 사람이 피곤하고 쓰러지는 가운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지 못해서 주리고 갈할 때, 풍성할 때에 저장한 양식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복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양식을 풍성히 주는 시대입니다. 이때에 풍성한 양식을 거두어 들이고 저장해야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사경회하는 기간도 하나님께서 양식을 많이 주시는 때입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 풍성하게 영적 양식을 하나님이 내려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신령한 양식은 이다음에 환란 때에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란을 늘 의식하면서 신령한 양식을 받아서 준비해야
됩니다. 영적 양식을 받아서 환란을 잘 통과하고 이기기 위해서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이렇게 영적 양식을 늘 풍성하게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늘 주시지 않습니다. 안 주시는 때가 올 것입니다. 받을 수 없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요즘도 이북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받기 힘듭니다. 또 중국에 있는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가 참 힘듭니다. 중국은 어느 정도 지금 받긴 받는데 그래도 아직 힘든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풍성히 주는 때가 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은혜 받을 때가 있고 그 하나님 말씀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1-2절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은혜를 받을 만한 때에 받으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신령한 양식을 풍성히 내려 주시는 은혜 많이 주시는 때가 있습니다. 은혜 많이 주시는 것은 왜 주십니까? 왜 신령한 양식인 하나님 말씀을 많이 주십니까? 앞으로 올 환란을 잘 준비해서 통과시키려고 많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란이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풍성한 말씀 많이 주셔서 미리 준비를 시키십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가지고 환란을 통과하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를, 절대 그냥 지나쳐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냥 지나쳐 버리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다시 오지 않으면 양식을 준비하지 못한 채 흉년을 당해야 됩니다. 양식 없이 흉년을 당하면 굶어 죽습니다. 가다가 쓰러지고 맙니다. 그러니까 앞날의 환란을 통과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특별한 영적 양식을 7년 동안 배급해 주시
는 것입니다. 앞날의 환란을 다 통과할 만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신 안 차리고 있는 사람은 그만 그 풍년들 때 떡이나 해 먹고, 또 막걸리나 해 먹으면서, 곡식 팔아서 구경이나 다니면서 다 허비하고 맙니다. 그러면 몇 년은 괜찮지만, 흉년이 들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다 끝나서 이제 다시 곡식을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평안할 때, 즉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에 그때에 많이 받아서 저장해야 됩니다. 또 자기 실력도 그때 만들어야 되고, 양식도 많이 저장해야 됩니다. 또한 은혜를 많이 받아서 자신이
은혜 가운데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야 앞으로 오는 환란을 통과할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으면 환란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7년 풍년 다음에 오는 7년 흉년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해석하고 바로 해결책을 세운 요셉처럼,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바로 해석해야 되겠습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또 앞으로 어떤 환란이 올 것인가?’를 성경에서 바로 해석하여 환란이 오는 것을 대비해
서 바로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반드시 올 환란 때에 다 쓰러지고 맙니다.

요즘 사람들이 하나님을 점점 다 떠나고 있습니다. 구미 각국에 있는 교회는 젊은 사람들이 자꾸 떠나서 요즘엔 노인들만 남았습니다. 젊은이들은 현실주의에 빠져서 주일날 세상으로 놀러가고 있습니다. 곳곳에 스키장과 공원과 놀기 좋은 곳들이 많아서, 교회에 잘 안 나옵
니다. 한국에도 그러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예를 들어 1부 예배를 오전 7시 반이나 8시에 드립니다. 이것은 교인들을 놀이꾼들로 만드는 것입니다. 주일아침 일찍, 1시간 예배드리고 놀러가고 장사하라고 하나님 떠나는 길을 열어 준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환난이 올
때 환란을 이길만한 실력이 없습니다. 영적 양식을 준비하지 않았는데 흉년에 어떻게 연명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흉년이 올 때, 흉년을 통과할 말씀을 넉넉히 가지고 있는가를 늘 살펴야 되겠습니다. 흉년이 오기 전에, 환란이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받아서 먹어야겠습니다. 영적 생명이 살고 자라나도록, 풍성한 양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오는 환란을 말씀으로 통과하고, 영적인 실력을 키워서 환난을 승리적으로 통과하는 우리가 되어야하겠습니다.

2017년 1월 3일 화요일

창세기 29:1-35 야곱이 아내를 얻음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야곱이 아내를 얻음
창세기 29:1-35

1야곱이 발행하여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2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웠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물을 양떼에게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구를 덮었다가 3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양에게 물을 먹이고는 여전히 우물 아구 그 자리에 돌을 덮더라 4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형제여 어디로서뇨 그들이 가로되 하란에서로라 5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가로되 아노라 6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가로되 평안하니라 그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7야곱이 가로되 해가 아직 높은즉 짐승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뜯기라 8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리라 9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중에 라헬이 그 아비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침이었더라 10야곱이 그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서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 11그가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12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비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고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비에게 고하매 13라반이 그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 맞추고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고하매 14라반이 가로되 너는 참으로 나의 골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하더니 15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의 생질이나 어찌 공으로 내 일만 하겠느냐 무엇이 네 보수겠느냐 내게 고하라 16라반이 두 딸이 있으니 형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17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18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년을 봉사하리이다 19라반이 가로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20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 21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22라반이 그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23저녁에 그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24라반이 또 그 여종 실바를 그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25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 26라반이 가로되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27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그를 위하여 또 칠 년을 내게 봉사할지니라 28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29라반이 또 그 여종 빌하를 그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30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고 다시 칠 년을 라반에게 봉사하였더라 31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 32레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33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도 주셨도다 하고 그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34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35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가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생산이 멈추었더라

1.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감

야곱이 에서가 죽이겠다고 하니까 자기 형의 낯을 피해서 외삼촌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창세기 28장 1-2절에는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가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야곱이 부모의 보내심을 받아서 밧단아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밧단아람으로 가다가 해가 져서 벧엘에서 돌베개하고 잠을 자다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창세기 28장 13절에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
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
리라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밧단아람으로 가는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축복해 주시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야곱이 벧엘에서 떠나서 계속 동방으로 갔습니다. 밧단아람은 동방에 있었습니다.

2. 야곱이 라헬을 만남

본문 1-3절에 “야곱이 발행하여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웠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물을 양떼에게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구를 덮었다가 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양에게 물을 먹이고는 여전히 우물 아구 그 자리에 돌을 덮더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의 한 우물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우물곁에 양 세 때가 누워 있는데 목자들이 양떼를 몰고 와서 물을 먹이는 곳입니다. 그 곳은 물이 귀한 곳이므로 아무나 와서 양떼들에게 물을 먹이지 못하도록 큰 돌
로 우물 아구를 덮어 두었다가, 여러 목자들이 올 때에 그 돌을 옮겨 놓고 다 같이 양 떼에게 물을 다 먹인 다음에는 다시 큰 돌로 우물 아구를 덮어 놓습니다.

본문 4-5절에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형제여 어디로서뇨 그들이 가로되 하란에서로라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가로되 아노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목자들에게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나홀은 아브라함의 동생입니다. 나홀의 아들은 브두엘이고, 나홀의 손자는 라반입니다. 

본문 6절에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가로되 평안하니라 그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목자들에게 외삼촌 라반이 평안하냐고 물어 볼 때에 그들이 평안하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온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마침 잘 만나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외삼촌의 딸 라헬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 걸음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본문 7-8절에 “야곱이 가로되 해가 아직 높은즉 짐승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뜯기라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목자들에게 양
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기라고 하였더니 목자들이 여러 목자가 다 모인 다음에 돌을 옮겨 놓고 우물 물을 먹여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본문 9-10절에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중에 라헬이 그 아비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침이었더라 야곱이 그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서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목자들과 말하는 중에 라헬이 그 아비의 양을 몰고 왔습니다. 이것을 보면 라헬이 아버지의 양을 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 야곱이 우물 아구의 돌을 옮기고 라헬이 몰고 온 양에게 물을 먹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여러 명이 모여야만 옮겨 놓는 돌을 야곱이 혼자 옮
겨 놓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야곱이 상당히 힘이 세었던 것 같습니다.
모세도 힘이 세었습니다. 모세가 힘이 세었던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하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 올 때에 십계명 돌판 둘을 한 손에 하나씩 들고 내려오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보면 상당히 힘이 센 것 같습니다.

본문 11-14에 “그가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비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고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비에게 고하매 라반이 그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 맞추고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고하매 라반이 가로되 너는 참으로 나의 골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라헬을 만나게 해준 것은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야곱이 라헬에게 신분을 밝힌 후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그에게 자기가 그 아비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임을 말했습니다. 야곱이 소리 내어 운 것은 하나님께서 험난한 길에서 자기를 보호하여 주시고 무사히 외삼촌의 딸을 만나게 해 주신데 대한 기쁨에서 나온 울음입니다. 라반이 딸 라헬을 통해서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 나와 야곱을 영접하여 입 맞추고 자기 집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처음에 집을 떠날 때에는 외삼촌의 집에 가라고 해서 가긴 가지만 처음으로 가는 길이므로 어떻게 찾아가야 될 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무조건 가는 것입니다. 무사히 먼 길을 잘 갈 수 있겠는지, 또 짐승이나 도적을 만나서 해를 받지 않겠는지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많지만 그저 하나님만 믿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믿고 가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 길을 잘 인도해 주셔서 형통한 길을 갔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고, 또 좋은 사람도 만나게 해 주십니다.

라헬이 양떼에게 물을 먹이려고 할 때에 야곱이 돌을 옮겨 준 것을 보면 야곱은 봉사 정신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누가 양떼에게 물을 먹이라고 한 것도 아닌데, 야곱이 스스로 돌을 옮기고 양떼에게 물을 먹였습니다. 또 라헬은 지혜가 있습니다. 모르는 남자가 와서 “내가 너희 아버지의 생질이다”라고 할 때에 의심이 생길 수도 있었을 텐데, 라헬은 아버지한테 빨리 가서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라반이 야곱에게 달려가서 영접하여 안고 입 맞추고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였습니다.
외삼촌이 친절하게 야곱을 잘 영접해 준 것도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친절하지 않은 외삼촌도 많습니다. “무엇을 달라고 내게로 왔나? 내게 무슨 손해를 주러 오지 않았나?” 하며 친척이라도 오면 친절하게 영접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라반은 좋은 마음을 가지
고 친절하게 영접을 해 주면서 자기 집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야곱이 나가니까 이렇게 하나님께서 잘 인도해 주셨습니다. 목적지까지 잘 도달하도록 인도해 주셨고 또 사람들에게 많은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3. 라헬을 위해 7년간 봉사함

본문 15절에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의 생질이나 어찌 공으로 내 일만 하겠느냐 무엇이 네 보수겠느냐 내게 고하라”고 하였습니다. 라반은 야곱을 생질이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의 어머니는 리브가인데, 리브가의 오라비가 라반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라반의 여동생의 아들로 생질입니다. 촌수가 가까운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거기에 있은지 한 달쯤 되었습니다. 한 달 후에 라반이 야곱에게 “네가 비록 나의 생질이나 어찌 공으로 내 일만 하겠느냐” 하며, 보수를 정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6-18절에 “라반이 두 딸이 있으니 형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년을 봉사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칠 년을 외삼촌에게 무료로 봉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칠 년간 무료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칠 년간의 봉사를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요새 한 달 월급이 백만 원이라면 일 년에 천 이백 만원, 칠 년이면 팔천사백만 원인데,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팔천사백만 원이면 집 한 채 값도 못 됩니다. 옛날에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돈 받고 딸을 팔았습니다.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그냥 팔려가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집도 딸을 오백 냥을 받고 팔았습니다. 돈 오백 냥이 없으면 장가도 못갑니다. 그때 오백 냥이면 상당히 많은 돈입니다. 그러나 딸을 돈 받고 파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튼 야곱은 자원해서 칠 년 동안 봉사한다고 하였습니다. 자원해서 봉사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딸을 낳아서 지금까지 길러 준 것이 있지 않습니까? 길러준 공로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이 하나를 기르려면 손이 오만 번 가야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북에서는 어머니를 ‘오마니’라고 합니다. 그렇게 손이 많이 가고, 노력이 많이 들어가서 길러 놓았는데, 그에 대한 보답을 좀 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보답하는 마음으로 칠 년간 봉사하기로 작정한 것 같습니다.

본문 19-20절에 “라반이 가로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은혜를 보답하는 것입니다.
장인 장모도 부모이고, 시부모도 부모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를 대접하고, 부모를 위해서 쓰는 것은 은혜를 보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야곱이 칠 년을 수일과 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외삼촌에게 봉사 했습니다. 또 라헬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칠 년이 수일과 같이 지나갔습니다.

4. 라반이 야곱을 속이고 레아를 아내로 줌

본문 21-25절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저녁에 그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라반이 또 그 여종 실바를 그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외삼촌과 약속한 칠 년이 지났으므로 야곱이 라헬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기 아내가 라헬이 아니고 레아였습니다.칠년을 봉사하였는데 레아를 아내로 준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외삼촌에게 속았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외삼촌에게 속은 것은 과거에 아버지와 형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그 속인 죄값을 지금 받는 것입니다. 야곱이 자기 아버지한테 가서 뭐라고 하며
속였습니까? 자기가 맏아들 에서라고 하며 장자의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남을 속이면 자기도 속게 되어 있습니다.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5. 야곱이 라헬을 위해 7년 더 일함

본문 26-27절에 “라반이 가로되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이를 위하여 칠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그를 위하여 또 칠년을 내게 봉사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라반이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않는 일이라고 하면서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면 라헬도 주겠으니 그 대가로 칠 년을 더 봉사하라고 라반이 야곱에게 제안했습니다.
또 칠 년 동안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외삼촌 라반에게 속아 또 칠 년을 일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1장 15절에 “우리를 외인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은 아버지가 딸을 외인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야곱이 자원해서 칠 년간 봉사하겠다는 것은 괜찮은 것 같은데, 그 다음에 다시 칠 년간 레아를 위해서 봉사하라는 것은 딸을 팔아먹은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딸한테 아버지가 우리를 팔았다는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본문 28-30절에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라반이 또 그 여종 빌하를 그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고 다시 칠 년을 라반에게 봉사하였더라”고하였습니다. 딸들을 야곱에게 다 주었는데 이것은 라반이 잘못한 것입니다. 한 남자에게 두 딸을 준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일남일녀를 창조한 창조의 원리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말라기 2장 15절에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
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아내 둘 얻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때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다릅니다. 신약시대에는 아내를 둘 얻는 것은 허락이 안 됩니다. 라반이 딸 둘을 야곱에게 주었으므로 야곱의 가정에 질투와 시기와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고통이 계속 되었습니다.

6. 레아가 네 아들을 낳음

본문 31-32절에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 레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레아가 맏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잉태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잉태를 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맏아들을 ‘르우벤’이라 하였습니다. 르우벤이란 뜻은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다’하는 뜻입니다. 각주에 보면 ‘보아라,
아들이로다. 괴로움을 권고하셔서 나에게 아들을 주었다’하여 르우벤이라 지었습니다. 레아가 남편의 사랑을 잘 받지 못하였던 괴로움을 하나님께서 권고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제 아들을 낳았으므로 남편의 사랑을 받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본문 33절에 “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도 주셨도다 하고 그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아들을 낳았는데, ‘시므온’이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시므온이란 뜻은 ‘하나님이 들어주셨다’라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또한 여호와께서 자기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을 들어 주셔서 감사한 것입니다. 

본문 34절에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레위’라 지었습니다. 자기 남편과 연합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레
위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35절에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가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생산이 멈추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넷째 아들은 ‘유다’입니다. 유다란 뜻은 ‘찬송하리로다’라는 뜻입니다. 유다 지파에서 예수 그
리스도가 나십니다. 그래서 장차 될 일을 인하여 ‘찬송하리로다’라는 뜻으로 지은 것입니다. 그러나 레아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자기 생각대로 지은 것입니다.

이렇게 아들들을 낳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열두 아들을 주셔서 귀한 이스라엘을 건설하게 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 아들의 이름은 하나님의 뜻대로 지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레아는 그것을 육신중심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맏아들에 대해서 ‘르우벤이라 보아라, 아들이라’고 하였고, 둘째 아들에 대해서는 ‘시므온이라, 하나님이 들으심을 들었다’고 하였으며, 셋째는 ‘레위라, 자기 남편과 연합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레위라는 뜻이 연합이란 뜻인데 이것은 신령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레위는 장차 제사장 지파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마 연합이란 뜻으로 짓게 하신 것 같습니다. 특별히 유다 지파에서 그리스도를 낳게 하시려고 ‘찬송하리로다’라는 뜻으로 ‘유다’라고 짓게 하신 것입니다. 레아는 자신의 입장에서 육신중심으로생각해서 각각 이름을 지었지만, 이렇게 하나님께서 아들들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건설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고, 그 각각의 이름의 뜻도 하나님께서 신령한 뜻을 포함시킨 것입니다.

창세기 27:1-46 이삭의 축복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이삭의 축복
창세기 27:1-46

1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가로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2 이삭이 가로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노니 3 그런즉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4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5 이삭이 그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6 리브가가 그 아들 야곱에게 일러 가로되 네 부친이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7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나로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8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9 염소떼에 가서 거기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부친을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10네가 그것을 가져 네 부친께 드려서 그로 죽으시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11야곱이 그 모친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12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13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14그가 가서 취하여 어미에게로 가져왔더니 그 어미가그 아비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 15리브가가 집 안 자기 처소에 있는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취하여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16또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그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꾸미고 17그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매 18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른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19야곱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 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20이삭이 그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21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지려 하노라 22야곱이 그 아비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가로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23그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능히 분별치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24이삭이 가로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25이삭이 가로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26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27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
다 28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30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 아비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 31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비에게로 가지고 가서 가로되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32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33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34에서가 그 아비의 말을 듣고 방성 대곡하며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 35이삭이 가로되 네 아우가 간교하게 와서 네 복을 빼앗았도다 36에서가 가로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가로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37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공급하였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수 있으랴 38에서가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39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40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41그 아비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을 인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
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42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이에 보내어 작은 아들 야곱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 하나니 43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 피하여 44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날 동안 그와 함께 거하라 45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46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을 인하여 나의 생명을 싫어 하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면 나의 생명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1. 이삭이 별미를 먹고 에서에게 축복하고자 함

본문 1-7절에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가로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이삭이 가로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그런즉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리브가가 그 아들 야곱에게 일러 가로되 네 부친이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나로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져서 잘 보지 못하여, 죽기 전에 맏아들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에서에게 들에 나가서 사냥하여 별미를 만들어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들었습니다.
이삭이 별미를 먹고 축복하려고 한 것은 신앙적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셨는데(창 25:23), 이삭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고 에서에게 축복해 주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첫째,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전통을 더 따라간 것입니다. 그 당시 장자의 축복은 장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전통이었습니다. 둘째, 이삭이 인정에 끌린 것입니다. 이삭은 맏아들 에서를 사랑했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창 25:27-28). 셋째, 이삭이 별미를 먹
고 축복해 주려고 한 것이 잘못되었습니다. 이삭이 물질로 대접을 받은 후 축복해 준다고 한 것은 축복의 조건을 물질에 둔 것입니다.이와 같이 이삭이 말씀보다 전통과 인정과 물질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결국 그의 아내 리브가와 아들 야곱이 인본주의를 쓰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2. 리브가가 궤계를 꾸밈

본문 8-10절에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명하는대로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네 부친께 드려서 그로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리브가가 장자의 축복을 야곱이 받게 하기 위하여, 염소 새끼를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별미를 만들어 줄 테니 그것을 가지고 가서 부친에게 드려 잡수시게 하고 축복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1-12절에 “야곱이 그 모친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고, 자기는 매끈매끈한 사람인데 아버지께서 자기를 만져 보시고 속이는 자로 발견되면 축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어머니 리브가에게 말했습니다.

본문 13-17절에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그가 가서 취하여 어미에게로 가져왔더니 그 어미가 그 아비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 리브가가 집안 자기 처소에 있는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취하여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또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그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꾸미고 그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매”라고 하였습니다. 리브가가 자기 남편 이삭이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에서의 의복을 입히고, 야곱의 손과 목에 염소 새끼 가죽으로 꾸며 털사람으로 가장하고, 만든 별미를 야곱에게 주어 부친에게 나아가게 하였습니다.

3. 야곱이 부친을 속임

본문 18-19절에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른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야곱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 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야곱에게 물으니 “맏아들 에서로소이다”라고 하였는데, 당시에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므로 야곱이 에서라고 속여 대답한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하나님과 부친에게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은 거짓된 계책 때문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야곱이 출생하기 전 모친의 복중에 있을 때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신(창 25:23),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으로 말미암아 장자의 복을 받은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이삭이 그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라고 하였을 때에 야곱은 하나님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큰 잘못입니다.

본문 21-23절에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지려 하노라 야곱이 그 아비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가로되 음성은 야곱의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그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능히 분별치 못하고 축복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라고 하였는데, 이삭이 깨달을 만한 증거가 있었으나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이삭이 이와 같이 속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전통을 따라 맏아들 에서에게 축복해 주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본문 24-26절에 “이삭이 가로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이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고 여러 번 물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속게 하신 것은 속게 됩니다. 이삭이 속아 넘어간 것은 이삭이 속아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
기 때문입니다.

4.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함

본문 25-26절에 “이삭이 가로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7-29절에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라고 하였는데, 이삭이 자기 아들의 옷에서 향취를 맡고 장자의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장자는 복의 기관이므로 복의 기관에 대한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의 기관이었으므로 그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나게 할 때에 축복을 받습니다. 오늘날의 축복의 기관은 하나님의 교회와 참된 교역자입니다.
이 축복의 기관 앞에 더러운 냄새를 피우게 되면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야곱이 받을 장자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영적 축복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에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는데, ‘하늘의 이슬’은 신령한 영적 축복을 말합니다. ‘풍성한 곡식’은 영적 양식을 말하고, ‘포도주’는 은혜를 말합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영적 양식과 은혜를 축복해 주었으며 여기에는 물질의 축복도 있습니다.

그리스도

또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라고 하였는데, 야곱의 자손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오셔서 열국이 그리스도에게 굴복하여 구원 받을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장자의 축복입니다.

복의 기관이 될 축복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과 같습니다(창 12:1-3). 이것이 장자의 축복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이 이삭
에게 임하였고, 이삭에게 주신 복이 야곱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것은 복의 기관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장자의 축복입니다. 장자의 축복이 야곱에게 돌아간 것은 하나님의 예정대로 된 것입니다. 창세기 25장 23절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이 출생하기 전에 야곱에게 장자의 권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예정대로 된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이 속이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속이지 않았다면 에서가 사냥하여 아버지를 대접하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겠습니까? 하나님이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주기로 예정하셨기 때문에 못받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가만히 있어도 장자의 명분이 자기에게로
돌아올 텐데, 아버지를 속이고 에서에게서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으로 사는 인본주의를 쓰는 바람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까? 거짓말하고 속이면 그 대가를 반드시 받습니다. 장자의 명분은 하나님의 예정대로 야곱에게 가게 되어 있으므로 야곱은 믿음만 지키면 됩니다.
우리도 장자의 명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야곱과 같이 장자의 명분을 귀중히 여기며, 보이지 않는 복을 받으려고 애를 쓰면 받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고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즉 물질보다 신령한 복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자의 명분을 등한히 여기는 자는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고 그것을 받으려고 애를 쓰며 믿음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장자의 축복을 주십니다. 히브리서 12장 23절에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라고 하였는데, 장자들의 총회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 장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에서와 같이 물질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서 살아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나가면 다 장자들의 총회에 속하는 것입니다. 장자들의 총회에 속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진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물질만 바라보며 살지 말아야겠습니다.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한다”고 하였는데, 믿음 좋은 사람에게는 모든 사람이 다 굴복합니다. 즉 장자의 축복을 받은 사람에게 모두 나와서 굴복하게 됩니다. 또한 장자의 축복을 받은 사람을 축복하면 그 복을 받고, 장자의 축복을 받은 사람 저주하면 그 저주를 받습니다. 이만큼 장자의 축복 받은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즉 장자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복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장자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 귀한 줄 알아야 됩니다. 장자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 가는 집은 복이 오는 것입니다.

5. 에서가 축복 받기를 구함

본문 30-33절에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 아비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 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비에게로 가지고 가서 가로되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그 아비 이삭
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에서가 사냥해 온 것을 가지고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 이삭에게 들어가 축복해 달라고 했습니다. 에서도 하나님의 축복 받기를 원했으나 에서는 세상의 것과 물질이 첫째이며, 하나님의 축복은 둘째이었습니다. 축복해 달라는 에서에게 이삭이 “넌 누구냐?”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에서가 “나는 아버지의 아들 에서로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이삭이 심히 크게 떨었습니다. 이삭도 야곱에게 속은 것입니다. 이삭이 먹고 축복을 해주겠다고 하였기 때문에 속았습니다. 물질이 앞서면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앞서야 하며, 영의 역사가 앞서야 합니다.

본문 34-38절에 “에서가 그 아비의 말을 듣고 방성대곡하며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 이삭이 가로되 네 아우가 간교하게 와서 네 복을 빼앗았도다 에서가 가로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가로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공급하였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에서가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라고 하였습니다. 에서가 방성대곡하면서 남은 축복이라도 해 달라고 이삭에게 말했습니다. 에서가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까? 장자의 축복을 못 받았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6절에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다. 에서가 눈물을 흘리면서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했지만 기회가 지나가서 받지 못했습니다. 기회가 지나가면 눈물을 흘리며 빌어도 안됩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회개를 하여야 하고,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은혜를 받아야 되고,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할 수 있는 것을 하여야 합니다. 기회는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6. 이삭의 에서에 대한 예언

본문 39-40절에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이 에서 에게 축복하였는데, 그 내용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습니다. 에서에게는 남은 복이 없었습니다.
“너의 주소는 하늘의 기름짐에서 뜨고”라고 하였는데,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령한 복을 못 받는다는 것입니다.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라고 하였는데, 에서 족속이 다른 족속들을 약탈하며 살게 될 것을 말하며, 또 하나님의 보호가 떠났으므로 칼을 믿고 살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믿었다면 장자의 명분을 팔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판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 때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복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또 사모하는 마음도 없이, 하나님의 복을 등한이 여겼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가 떠나셨습니다. 또 “네 아우를 섬길 것”이라고 하였는데, 에서 족속은 야곱 족속에게 속해 살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섬기며 살아야 할 것을 말합니다.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남에게 속박되어 살 것을 말합니다. 장자의 명분을 잃어버린 사람은 이와 같이 됩니다.

이삭이 아들 에서도 사랑하므로 복을 빌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복을 빌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삭이 자기 마음대로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감동을 따라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실한 기도입니다. 요즘 축복기도를 해준다고 하면서 별의별 복을 다 빌어주
는데 그것은 가짜입니다. 어떤 목사가 어떤 집에 가서 축복기도를 해주는데 자녀도 잘 되고, 사업도 잘 되고, 돈도 잘 버는 등 복을 많이 빌어 주니까 그 집의 할머니가 아주 좋아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복이 그 집에 다 임하겠습니까? 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속이는것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해 준 것이 아니고 그저 그 사람 좋게 하여 자기가 대접 받으려고 무당 푸념 하듯 한 것입니다. 그런 자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됩니다.

7. 에서가 야곱을 미워함

본문 41절에 “그 아비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을 인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별세할 때가 가까웠기 때문에 에서는 동생 야곱이 자기의 장자의
축복을 빼앗은 것을 분하게 여겨, 기회를 보아 야곱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에서는 자기가 장자의 축복을 경홀히 여기고 팔아먹은 죄를 회개하여야 하겠는데,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야곱을 죽이려고 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가 믿음으로 바로 하면 다른 사람이 복을 빼앗으려고 해도 빼앗기지 않습니다.

8. 야곱을 하란으로 보내려 함

본문 42-45절에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이에 보내어 작은 아들 야곱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하나니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 피하여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하라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고 하였습니다.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을 불러서 ‘형에서가 너를 죽이려고 하니까 외삼촌 라반에게 가서 몇 날 동안 있으면, 형의 노가 풀렸을 때에 내가 사람을 보내어서 너를 불러들이겠다’고 하였는데, 그 몇 날 동안이 얼마나 갔습니까? 20년이 되었습니다.
20년 만에 야곱이 고향에 돌아와서 자기 어머니 리브가를 만났습니까? 이삭은 만났지만 리브가는 만났다는 말이 없습니다. 아마 리브가 가 먼저 죽은 것 같습니다. 

본문 46절에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을 인하여 나의 생명을 싫어하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면 나의 생명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리브가가 야곱을 피난시키기 위해서 하란으로 보낼 때에 “야곱이 이 땅에 있는 헷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게 되면 세상에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라고 하며 이삭에게 며느리 취하는 일로 보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갔습니다.

2017년 1월 2일 월요일

창세기 11.1-32 바벨탑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창세기 11:1-32

1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2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3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6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7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9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10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11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2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13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4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 15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6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17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8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19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0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21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2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23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4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25데라를 낳은 후에 일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6데라는 칠십 세에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27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29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30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32데라는 이백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1. 바벨탑을 쌓음

바벨탑을 쌓은 이유

본문 1-4절에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때에는 세계의 언어가 하나였고, 아직 말이 각 나라의 말로 갈라지기 전이었습니다. 땅의 구음이 하나이고, 그 자손들이 다 동방으로 옮겨서 시날 평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시날 평지가 상당히 넓고 살기가 좋았던 모양입니다.이제 바벨탑을 어디까지 쌓자고 그랬습니까? 하늘에까지 닿도록 쌓자고 그랬습니다. 그것은 왜 쌓자고 했습니까? 이름을 내는 것과, 또 흩어짐을 면하는 것과, 또 홍수를 면하려고 쌓았습니다. 이전에 노아시대에 홍수로 다 멸망 받은 것이 생각이 나서, 또 홍수로 멸망할 것 같은 생각이 드니까, 이제 대를 높이 꼭대기로 하늘까지 쌓아서, 아무리 홍수가 임해도 꼭대기까지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또 역청으로 벽돌을 만들어서 역청으로 흙을 대신해서 쌓으면 물 샐 틈이 없어 홍수가 나더라도 물이 안 들어오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이름을 내자고 하며, 또 우리의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서 쌓는데, 우리가 하자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하나님 이름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없습니다. 또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인이시니 하나님께서 주장하시고 하나님으로 살아야 될 자들인데, 하나님은 뒷전에 돌려놓고 자기들끼리 대를 쌓자고 했습니다. 또 다시는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말씀을 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뒷전에 두고 다시 홍수가 나도 우리가 침몰되지 않게 꼭대기까지 대를 쌓자, 우리 이름을 내자고 단결을 했습니다.
온 땅 사람들이 모여서 지면에 흩어지지 말고 같이 살자고 일치단결 했습니다. 또 일치단결해서 그 대와 탑을 높이 쌓았는데 공사가 착착 진행이 되었습니다. 온 백성이 다 모여서 그것을 쌓는데 얼마나 진행이 잘 되겠습니까? 탑이 자꾸 올라갑니다. 하나님을 뒷전에 놓고 쌓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긴 섬겼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도 물론 노아의 자손이니까 하나님을 섬겼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을 섬기지만 하나님을 주인과 주권자로 모시지 않고,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자기들끼리 탑을 쌓으려고 하려는 것이고, 또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멸망 시키지 않겠다고 무지개를 두고 계약을 했는데도 그 계약은 뒷전에돌려놓고 믿지 않고, 다시 홍수나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가 쌓아서 홍수를 면하자, 또 우리 이름을 내자, 이 탑을 높이 쌓아놓으면 후대에도 우리 이름이 얼마나 나겠느냐, 또 우리가 이 땅에서 흩어짐을 면하자, 그냥 있으면 흩어지겠는데 대를 쌓고 있으면 흩어지지 않지 않겠는가, 그래서 대를 높이 쌓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섭섭한 것은 하나님을 뒷전에 돌려놓았습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 것, 또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생명이 되지 못한 것, 말씀을 뒤에다 세워놓고, 뒷전에 돌려놓고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 거기에 하나님이 안 계시고 말씀이 없습니다. 자기들끼리 단결하고, 자기들끼리 견고히 하고, 자기들끼리 흩어지지 아니하고, 자기들끼리 후대에 전하기로 결심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내야 되겠는데 우리끼리 일해보자는 것이 틀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일해보자 그래야지, 우리끼리 일해보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인도대로 일해보자라고 했어야 하는데, “우리끼리 일해보자”고 한 것이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우리끼리 뭐 해보자는 생각을 다 버려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이용당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대로,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의 주장을 받고, 하나님께 이용을 당하고, 하나님의 명령만 순종하고, 그 뜻만 이루어드리면 인간의 공로 하나도 없어도 괜찮습니다. 흩어지지 않게 해주시면 흩어지지 않을 것이고, 또 하나님께서 흩어지게 해주시면 흩어질 것이므로 하나님께 맡겨야 됩니다. 자기네끼리 흩어지지 않아야 되겠다, 이런 결심한 것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뜻만 생각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본 바벨탑

바벨탑이라고 하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 말씀을 믿음으로 살지 아니하고 인간의 단결로 살려고 한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보호를 믿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로 살지 않고, 자기들의 힘과 사업으로 보호를 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보호로 살지 않고, 자기들의 세력 확장으로 살려고 한 것입니다. 자기들의 힘과 세력 확장으로 살려고 했습니다. 
넷째는 자기들의 이름과 명예 영광을 나타내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벨탑입니다. 그러므로 바벨탑은 인본주의입니다.
또 진리보다 통일 단결주의로 나가는 것입니다. 또 명예영광주의입니다. 인간이 하늘에까지 높아지려는 주의입니다. 이것이 바벨탑입니다.
바벨탑은 창세기 11장에서부터 시작이 되어서, 바벨론 나라의 느부갓네살 왕에게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 4:30절에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우리가 건설하자’와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나의 도성을 삼고”라는 것은 '내 것이다’라는 것인데, ‘우리 것이 커져야 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다음에는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라는 말은 '우리의 이름을 내자’와 같은 것으로 자기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제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을 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는 것, 인간의 것으로 삼는 것, 인간이 무엇인가를 잘해서 하나님을 떠나서 잘 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위엄과 영광을 나타내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베드로전서 5:13절에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바벨론은 로마를 가리킵니다. 베드로가 로마에서 베드로전서를 기록했는데, 로마를 바벨론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로마는 바벨론과 같습니다. 다니엘 때 바벨론은 세계의 주권 국가로 메대바사 전에 있는 나라입니다. 세계를 통일하고 세계를 주장하는 주권국가가 바벨론입니다. 베드로 때에는 로마가 세계 주권국가였기 때문에그 나라가 바벨론인 것입니다.

말세의 바벨탑

또한 요한계시록 18:3-8절에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말세의 바벨론입니다. 말세의 바벨론은 인본주의 세상 나라를 가리킵니다. 이 세상 나라가 다 바벨론입니다. 인본주의로 높아져서 하늘에까지 닿으려고 하는 이 세상 나라들, 하나님으로 살지 아니하고 자력으로 건설하고 자력으로 무엇을 다 하여 살려고 하는 이 인본주의의 세상들, 하늘에까지 높아지려고 하는 이 세상 사람들, 하나님 말씀을 떠나서 자기들의 힘과 세력을 확장해서 살고 하나님의 보호로 살지 않고 자기들의 사업으로 살려고 하는 이 세상 나라들, 그것이 바벨론인 것입니다. 정치적 바벨론, 종교적 바벨론, 문화적 바벨론이 있습니다. 말세는 바벨론 세대입니다. 정치적 바벨론과 국가적 바벨론은 하나님을 떠나서 ‘국가주의’로 나가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세력과 자기들의 건설과 자기들의 힘으로 살려고 하고, 점점 높아져서 하늘에까지 그 세력을 확장시키려고 하는 나라들이 바벨론입니다. 문화적 바벨론, 과학적 바벨론도 있습니다. 이제 인공위성 같은 것을 발사하여 달나라도 가고 별나라도 가는 과학 만능을 부르짖고, 하나님보다 과학을 더 크게 생각하고 하나님 없이 과학으로만 살려고 하는 과학의 바벨탑을 오늘날 쌓고 있습니다. 소련에서는 인공위성을 타고 가면서 아무리 천당이 있나 하고 쳐다봐도 천당이 없다고 발표했답니다. 인공위성을 타고 공중에 올라가면 그것이 다 인줄 알고, 그 이상은 없는 줄 알고,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간 것입니다. 그것이 과학의 바벨탑입니다.

말세에는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고, 자기를 더 영화롭게 하고, 자기를 더 높이려고 하는데, 이것이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또한 종교적 바벨탑이 있는데, 종교적 바벨탑을 쌓는 것은 진리보다 각 종교간의 단결을 위주로 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떠나서 단결, 세력 확장, 세력과시, 명예 영광주의로 나가는 것이 종교적 바벨탑입니다. 진리로 하나 되고 진리를 세워나가고 진리를 높이고 진리를 믿음으로 살려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중히 여기기보다는 종교적 단합을 위주로 합니다. 그래서 여러 교파와 종교들이 연합운동을 하는에큐메니컬운동인 WCC 같은 것은 종교적 바벨탑입니다. 아무리 그 세력이 크고 하늘에 닿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종교적 바벨탑입니다.
진리를 세워나가지 않고 세력만 크게 만들려하고 숫자만 많게 하려 하는 바벨탑입니다. 교단도 진리를 세워나가지 아니하고 교단만 크게 만들려고 하면 그것이 무엇이 됩니까? 교단 바벨탑이 됩니다. 교단은 진리를 세워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인데, 진리는 세워나가지 않고, 인간의 단결과 교세확장을 위주로 교단을 크게 만들려고 하면 교단적 바벨탑이 됩니다.
에큐메니컬은 에큐메니컬대로 바벨탑을 쌓아서, 진리를 양보하고 여러교파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신신학까지 하나가 되고,. 보수는 겉으로는 보수를 내세우지만 실제 WCC에 들어가서는 진리보다는 자기들의 세력 확장에 더욱 힘을 씁니다. 종교적 바벨탑이 높아지는 지금, 기독교 100주년 기념을 한다면서 바벨탑을 또 쌓고 있습니다.
기독교 100주년을 기념한다고 바벨탑을 쌓는데 신신학과 신비주의자들이 연합해서 100주년 기념행사를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100주년 행사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그 속에 진리가 없습니다. 신비주의도 용납하고 온갖 인본주의를 다 쓰며 진리를 떠나서 교단만 확장하려고 합니다. 교회를 크게 하려고 하는 바람에 진리 세우는 것이 무너졌습니다. 목적이 크게 만드는 것이니까, 잘못된 것을 다스리면 커질 수가 없으니 진리를 세워 나가지 못합니다. 바른 진리를 세워 나가려면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무조건 다 갖다가 넣어서 교파 하나 크게 만듭니다. 이것이 교파 바벨탑입니다. 진리를 세우기보다는 교회 확장시키는 데만 중점을 두었단 말입니다.
어떤 교회에서 교인들은 몇 백 명밖에 안 되는 데, 예배당은 몇 천 명 들어가는 것 지어놨습니다. 그리고는 교회에 교인수를 채우는 것이 목적이 되었습니다. 교회를 채우려니까 보통해서는 안되겠으니까 신비주의로 나갔습니다. 이 교회는 보수 교회입니다. 또 어떤 교회는 예배당을 다른 데로 옮겨 갔는데, 옮겨가기 전에는 교인이 얼마 없었습니다. 불과 몇 백 명밖에 안 되는 교회였는데, 옮기면서 굉장히 크게 지어놨습니다 세계 최고로 하려고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교회에서는 이전에 있던 목사는 내보내고, 이제 신비주의 목사를 데려왔습니다. 장로교도 아니고, 순복음교회도 아니고, 다른 교파인데 그 교회가 지금 굉장히 큰 교회가 된 모양입니다. 큰 교회 됐으면 무엇 하겠습니까?
교회는 신비주의 다 된 것 아닙니까? 교인 많이 모이는 것을 위주로 하고, 예배당 잘 짓는 것을 위주로 하고, 교회 난방장치 잘 하는 것으로, 세계 제일 잘하는 것을 위주로 하니 어떤 결과를 초래하겠습니까?이것이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진리가 없는데 인간의 힘과 단결로 외적으로만 커지고 높아지려고 하는 것이 바벨탑입니다. 종교적 바벨론입니다.
교회에서도 집사를 세우는데 표준 없이 집사를 세우고 장로를 세우는데 표준 없이 장로를 세우게 되면 바벨론이 됩니다. 그것이 바벨탑이 됩니다. 어떤 집사를 세우면 바벨탑이 됩니까? 주일날 안 지키고 술 먹고 담배 피는 사람을 집사로 세우면 그 교회는 바벨탑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집사가 술을 먹고 담배 먹고 주일날 안 지키면, 그 교회가 어떻게 진리를 세우겠냐는 말입니다. 교인들 보고 “주일날 지켜라” 하면 교인들은“ 집사도 안 지킨다, 장로도 안 지킨다”고 합니다,
또 술 먹지 말고 담배 피지 말라고 하면 “집사는 왜 피냐? 술 먹는 집사 잘만 세워놓는다”고 합니다. 직분을 잘못 세워놓으면 진리 세워 놓는 일은 다 틀려집니다. 그러나 이제 진리 세우는 것은 그만두고 사람 많이 모으고 돈 많이 내게 만들어서 교회 크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주일을 가끔 빼먹고 또 술 먹고 담배 피는 사람을 집사로 세워놓으면 그런 사람은 돈은 또 잘 냅니다. 돈은 잘 내고 열심이 있단 말입니다. 그런 사람 직분 세워놓으면 교인은 많이 모을 수 있고, 또 돈 잘 내서 예배당도 크게 짓고, 사람 많이 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틀어집니까? 진리 세우는 것이 틀어집니다. 진리를 어떻게 세우겠느냐 말입니다. 주일날 지키라고 아무리 해도 직분자들이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다른 교회로 갈까봐, 사람 하나 붙잡으려고 집사로 세웠기 때문에, 결국엔 사람 붙잡으려다가 무엇을 잃어버렸습니까? 진리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사람 붙잡으려다가 진리 잃어버리고, 하나님 모시는 것 잃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진리 세우는 것이 다 틀어지고 진리를 다 내버리면, 사람 많이 모이고 단결하는 바벨탑이 됩니다. 바벨론이란 말 입니다.한 마디로 말하자면 잘 살려고 하나님을 섬깁니다. 섬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인본주의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적 바벨탑입니다. 그러니까 집사 세울 때 주일 빠지는 사람 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날 빠지는 사람은 집사 되었으니까 빠지려면 사표 내고 빠져야 합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바벨탑이 되어야겠습니까, 목사가 술 먹고 담배 먹고 주일 안 지키는 사람 집사 내면 그 목사는 바벨탑 쌓는 목사입니다. 그 목사는 교회 일 하는 것이 아니고 진리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바벨탑 쌓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 다 잃어버렸는데 일하면 뭐합니까? 그것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종교적 바벨탑을 쌓았는데 말입니다.

이제 말세에는 바벨탑을 쌓는 시대입니다. 말세에 바벨탑을 쌓는다고 했는데, 바벨탑은 옛날 창세기 때에도 쌓았고 또 언제 쌓다고 했습니까? 다니엘 때입니다. 다니엘 4장에 느부갓네살 왕 때의 바벨론 나라가 인본주의의 바벨탑을 쌓은 것입니다. 또 베드로전서가 쓰여진 때는 어느 나라입니까? 베드로가 어디 있는 성도가 문안한다고 했습니까? 바벨론에 있는 성도가 문안한다고 했죠? 그 로마에 있는 성도가 바벨론에 있는 성도입니다. 이제 말세에 가서도 바벨론이 나오고 바벨탑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말세의 바벨론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말세에는 몇 가지 바벨론이 있다고 했습니까? 몇 가지 바벨탑 쌓는다고 했습니까? 이 세상 국가적 바벨론이 있습니다. 인본주의 국가의 인본주의와 국가적 단결이 바벨론입니다. 또 문화적 바벨론과 과학적 바벨론이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문화가 향상되고 과학이 발전되어서 세력이 하늘에까지 들이닿고 그 힘으로 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사치하고 향락하고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말세의 문화적 바벨론입니다. 그 다음엔 무슨 바벨론이 있다고 했습니까? 종교적 바벨탑, 바벨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 바벨론이라는 것은 진리보다 인간의 단합을 앞세우고 인간의 힘으로 크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말세의 교회들이 진리를 세우는 것은 등한히 여겨서 둘째, 셋째로 하고 첫째가 외적으로 커지는 것입니다. 교회를 부흥시키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씁니다. 먼저 교인 많이 모으려고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교회는 커질 수 있지만 진리를 세워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비주의나 인본주의나 온갖 방법들이 다 들어와서 교회는 커졌지만 진리가 없어집니다.

뭐가 바벨탑입니까?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이용당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지 아니하고 인간들을 위해서 인간의 힘으로 하겠다는 것이 바벨탑입니다. 하나님의 일도, 우리 힘으로 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바벨탑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나님께 이용당해서 하겠다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끼리 모여서 하겠다, 단결을 위해서 한번 높이 쌓아보자 하는 것이 바벨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못하면 바벨탑 쌓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아니하고 사람끼리 해보자는 것은 바벨탑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말씀의 주장을 받지 않는 것이 바벨탑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놓으셨기 때문에 하늘에까지 높아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 말씀을 잊고, 인간의 지혜와 힘으로 앞으로 올 환난을 면할 것이고 자기들의 이름을 내겠다고 하는 것이 바벨탑입니다. 또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고 노력하자는 것도 바벨탑입니다. 하나님께서 흩어지게 하시면 흩어지는 것입니다. 흩어지게 하셨어도 하나님 공경하고 말씀을 순종하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언약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께서 하시는대로 순종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 하려는 것은 바벨탑이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순종하자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2. 여호와의 심판

본문 5절에,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계속 쌓아 올라가는데 하나님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안 계시면 자기네끼리 잘 하지만 하나님께서 계신데, 또 하나님께서 주인이신데 그 하나님 뒷전에 돌려놓고 자기네끼리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가만 보시니까 바벨탑을 자꾸 쌓아 올라간단 말입니다. 그 바벨탑을 쌓으면 하나님께 손해입니다. 무엇이 손해가 납니까? 바벨탑이 점점 성공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못 들어갑니다. 바벨탑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인본주의로 쌓는 것이니까, 그들이 세력이 점점 강해지는 만큼, 그들이 점점 교만해지고 하나님 없이 살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 떠나고 하나님 없이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종교적 바벨탑도 하나님의 진리보다는 자기의 세력 확장을 더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주로 해서 커지면 진리는 세워나갈 수 없습니다. 진리는 아예 세우지 못하도록 단체를 크게 만들어놨기 때문에 진리를 말해도 되질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깨뜨려야 진리를 세워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깨뜨리셨습니까?

언어를 혼잡케 하심

본문 6-9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시면 이 무리가 하나요, 언어도 하나이니까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고, 결국 탑 쌓는 일이 성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7절에,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고 했습니다. 우리가 내려간다는 건 누구십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의논하셨습니다.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해서 그들의 성 쌓는 것을 못하게 하자고 하신 것입니다. 이 세계가 하나님의 세계인데, 또 하나님의 약속은 홍수로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도 다 버리고 인간끼리 단결, 단합, 인간적 사업, 이렇게 자기들 이름을 내고, 또 인생들의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못하게 하시면 못합니다. 아무리 사람의 생각으로는 될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안 됩니다. 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셨습니다. 이제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했습니다. 그래서 돌 가지고 오라면 나무 가져오고, 불 가져오라고 하면 물 가져오고, 물 가져오라고 하면 불 가져오고, 오라면 가고, 가라면 오니까 바벨탑을 쌓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해도 쌓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바벨탑을 쌓으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안 두십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겨야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준행해야 됩니다. 자기네 공로, 자기네 이름 내자, 또 흩어짐을 면하자 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흩으시면 흩어지는 것이지, 흩어짐을 면하자 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여 살게 하시면 모여 살고, 하나님께서 흩으시면 흩어질 수밖에 없다 하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바벨탑을 쌓으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게 만들어 놓습니다. 언어가 혼잡해지니 의사소통이 안 되고 대화가 안됩니다. 이제 바벨탑 쌓을 수 있습니까? 쌓을 수 없습니다. 쌓을 수 없으니까 이제 어떻게 합니까?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나님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말이 안 통합니다. 가져오라는데 가져 갔습니다, 세우라는데 헐어놨습니다. 지금, 어떡합니까? 누구 하나 말할 데가 없습니다, 반대만 자꾸 나옵니다.” 하고 하나님께 달려 붙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벨탑 쌓는 일이 잘 되면 하나님께 달라붙지 않습니다. 서로 의사소통이 잘 되어 마음이 딱딱 맞고, 손이 딱딱 맞아나가고, 착착 일이 돼나가면, 잘 될 것 같으니까 기도하지 않습니다. 쌓는 것이 너무 재미가 있습니다. 돌을 쌓고 또 쌓아서 자꾸 쌓아 올라가니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그러면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게 해서 일을 못하게 만들어놨습니다. 그러니까 바벨탑 쌓던 것을 중지하고, 이젠 하나님께만 달라붙게 됩니다. “말씀만 따라가야 되겠다. 하나님만 따라가야지 별 수가 없다. 이젠. 다 쓸 데 없다. 하려고 해도 못하겠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서 하나님께 돌아서게 되는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으면 의견이 맞지 않게 됩니다. 의견이 맞지 아니하고 서로 충돌이 될 때에 반대방향으로 자꾸 생각하고 의사소통이 안 될 때에는 내가 바벨탑 쌓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인본주의로 나가지 않았나, 내가 인간의 힘으로 뭘 잘해보고, 뭘 좀 크게 만들어보려는 것이 없었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바벨탑 쌓던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이제 마지막엔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대로 바로 해나가는데도 반대가 나오고 또 의견 충돌이 있으면, 진리의 말씀대로 굳게 서서 그 진리의 말씀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끝까지 세워나가야지 마귀가 반대한다고 그만하겠습니까? 말씀대로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는데 반대하는 것은 마귀의 시험이니 굳게 서서 말씀대로 끝까지 생명 내놓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잘해보려고 크게 해보려고 돈을 많이 모아 보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잘해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잘해보려고 하는 것이 바벨탑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지키면서 커나가는 것은 괜찮습니다. 말씀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제일주의로 삼으면서 커나가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제일주의로 삼지 아니하고, 말씀을 지키는 것을 첫째로 하지 않고, 커나가는 것은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벨탑 쌓는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다음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섬기는 것을 제일주의로 하고 또 말씀을 세워나가면서 커지고 확장되고 견고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커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진리의 세계가 커지고 진리의 등대가 높아지는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진리는 등한히 여기고 인본주의로 커지는 것이냐?’를 우리가 분별해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바벨탑 쌓으면서도 바벨탑인지도 모르고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셨는지도 모르고, 다른 사람만 자꾸 잘못했다고 싸우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쌓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말세는 모든 것이 다 바벨탑과 같이 되었는데, 바벨탑을 심판하시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십니다. 바벨탑이 높아짐에 따라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임박한 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모든 세계가 국가적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또한 인공위성, 원자무기인 핵폭탄을 만들면서 과학적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문화적 바벨탑, 국가적 바벨탑, 종교적 바벨탑, 과학적 바벨탑 등, 진리보다는 단합을 위주로 하는 것과 세력 확장하는 것 등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말세에 살고 있는데, 바벨탑을 쌓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직 진리만 세워나가야 됩니다. 하나님이 첫째이고 진리만 커지는 것은 괜찮습니다.
요한계시록 18:7절에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 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주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코 애통히 여기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시간 동안에 멸망을 시키셨다고 했습니다. 일시에 멸망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루 동안에 멸망을 시키시고 한 시간에 멸망을 시키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 백성은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요한계시록18:4절에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내 백성은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하셨단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바벨론 같은 세상에서 바벨탑을 쌓는 것에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받을 재앙 들을 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바벨론에서 바벨탑을 같이 쌓으면서 있으면 안 됩니다. 바벨론에 같이 있으면 바벨론 멸망할 때 같이 멸망합니다. 이제 바벨론은 조금 있으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바벨론을 심판하실 것인데 거기서 나오지 않으면 심판받으니 나와야 됩니다. 그 바벨론에 있어서는 신앙을 못 지킬 것이니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인본주의로 하던 모든 일에서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고 믿음에 서서 하나님으로 사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으로 사는 그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줄을 알고 늘 하나님께로 나가서 말씀으로 자신을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재림을 고대하면서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우리가되어야 되겠습니다.

3. 셈의 후예

본문 10-26절에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 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데라를 낳은 후에 일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셈의 후예를 기록함에 있어서 본장에서는 특히 아브라함의 조상들을 기록하였습니다. 10:21-30절에 있는 셈의 족보와 다른 점은, 벨렉까지는 같으나 10장에서는 벨렉의 아우 욕단의 후예를 기록했고, 11장에서는 벨렉의 후예를 기록하여 아브라함까지 기록한 셈입니다. 그러므로 본 장에 셈의 족보는 신앙 계통의 족보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며 셈의 후손입니다. 이것은 노아가 셈의 하나님이라고 예언한 대로 된 것입니다. 노아 홍수 후에, 사람들의 수명이 현저하게 짧아졌습니다. 특히 벨렉 이후에는 사람의 수명이 더욱 짧아 졌습니다. 또 벨렉의 때에 세상이 나뉘어지고 족속들이 흩어졌습니다(창10:25). 이렇게 홍수 후에 수명이 짧아 진 것은 홍수 후에 죄악이 세상에 많아졌기 때문이요, 그때부터 육식을 한 데에도 원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4. 데라의 후예

본문 27-32절에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데라는이백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데라의 아들과 손자에 대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아브람은 데라의 맏아들이며, 롯은 아브람의 아우, 하란의 아들입니다. 하란은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습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그 자부 사래와 그 손자 롯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입니다. 가던 중에 하란에 거할 때에, 데라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데라는 본래 우상을 섬겼으나(수24:2-3), 가나안 땅에 가려고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명령한 그 말씀(창12:1)을 따라 가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데라는 그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도중에 하란에서 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