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 권유
창세기 42:1-23
1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관망만 하느냐 2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 오라 그리하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3요셉의 형 십 인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4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을 그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이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렵다 함이었더라 5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 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6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7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가로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8요셉은 그 형들을 아나 그들은 요셉을 알지 못하더라 9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10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11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로서 독실한 자니 종들은 정탐이 아니니이다 12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13그들이 가로되 주의 종 우리들은 십이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말째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14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15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말째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16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이니라 하고 17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18삼 일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 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19너희가 독실한 자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들의 주림을 구하고 20너희 말째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리하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21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 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22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더러 그 아이에게 득죄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피 값을 내게 되었도다 하니 23피차간에 통변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그 말을 알아들은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창세기 42:1-23
1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관망만 하느냐 2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 오라 그리하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3요셉의 형 십 인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4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을 그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이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렵다 함이었더라 5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 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6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7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가로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8요셉은 그 형들을 아나 그들은 요셉을 알지 못하더라 9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10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11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로서 독실한 자니 종들은 정탐이 아니니이다 12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13그들이 가로되 주의 종 우리들은 십이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말째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14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15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말째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16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이니라 하고 17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18삼 일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 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19너희가 독실한 자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들의 주림을 구하고 20너희 말째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리하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21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 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22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더러 그 아이에게 득죄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피 값을 내게 되었도다 하니 23피차간에 통변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그 말을 알아들은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1. 요셉의 형들이 애굽으로 곡식 사러 감
본문 1절에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관망만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온 땅에 기근이 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애굽에는 곡식이 있었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여 풍년 때에 지혜롭게 곡식을 사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흉년을 당하여 모든 나라의 백성들이 곡식이 있는 애굽으로 곡식을 사기 위해서 들어왔습니다. 가나안 땅에도 큰흉년으로 인해서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기근이 심합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많은 것을 보면서 가서 사올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왜 관망만 하고 있느냐?”고 아들들을 책망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해결책을 반드시 주십니다. 그 때 피할 길을 찾아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해서 갈 생각하지 아니하고 관망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관망하지 말고 피할 길을 속히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곤란을 당하므로 피할 길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애굽에 가서 양식을 사올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관망만 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시험과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이 있을 때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열어 놓으십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바로 해 나가면 해결책이 다 있는데,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관망만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야곱의 신앙이 아들들보다 나았습니다. 야곱이 오랫동안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왜 관망만 하고 있느냐? 가서 곡식을 사오너라”하며 아들들을 보냈습니다.
본문 3-4절에 “요셉의 형 십 인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을 그 형제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이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렵다 함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아들들을 보내는데, 아들 열 명만 보냈습니다. 막
내 아들인 베냐민 하나는 보내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과거에 잃어버린 것을 생각해서 베냐민을 여러 형들과 함께 보내면 또 무슨 변을 당하지 않겠는가 하고 염려해서 베냐민을 빼놓고 열 명의 형들만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왜 종들을 보내서 사오지 않고 직접 아들들을 보냈겠습니까? 야곱이 곡식을 사기 위해 종들을 보내서 사올 수도 있겠는데, 직접 아들들이 가게 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돈으로 양식을 사오려면 돈을 많이 줘서 보내야 되겠는데, 종들이 가는 것 보다는 아들들이 가는 것이 틀림없이 일을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들은 곡식 사는 일에 실수 없이 처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애굽에서 아무에게나 쌀을 팔 것 같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애굽에서 곡식을
팔 때, 신분을 다 알아본 후 “네 말이 사실이냐? 네가 장사꾼이 아니냐? 실제로 가져다가 식구가 먹을 것이 분명하냐?”라고 물어보아서 본인이 와야만 되는 법을 세워 놓았을 것 같습니다. 매우 심한 흉년이 들어서 백성을 구제해 줄 방법으로 지금 곡식을 나라에서 내는 것인
데, 장사꾼이 중간에 끼어든다고 하면 그 본뜻에 어긋나고 도리어 곡식이 낭비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본인들이 와야만 거기에 대해서 얼마씩 파는 법도를 만들어 놓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아들들을 보냈을 것입니다.
2. 형들이 요셉에게 절함
형들이 요셉에게 와서 절함
본문 5-8절에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 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가로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요셉은 그 형들을 아나 그들은 요셉을 알지 못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총리로서 이렇게 곡식 파는 자리에 앉아 직접 곡식을 판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총리의 국사가 매우 복잡할 텐데, 곡식 파는 곳 에 나와서 앉아 있다는 것은 보통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시켜도 넉넉히 팔 수 있는데, 왜 직접 총리가 나가서 팔고 앉아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아마 요셉이 그 형들이 오는 것을 발견하려고 그곳에 나가 앉았던 것 같습니다. ‘반드시 형들이 올 것이다. 형들이 올 테니 내가 나가서 직접 앉아서 형들이 오는 것을 발견해야 되겠다’ 하고 나가 앉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형들이 왔습니다. 요셉에게 와서 그 앞에 엎드려 절을 하였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였으나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때 요셉은 전에 꾼 꿈을 생각했습니다.
요셉의 꿈은 사람이 지어낸 꿈과 다름
본문 9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형들이 온 것을 보고, 그들에게 대해서 자신이 전에 꾼 꿈을 생각하였습니다. 형들의 곡식 단이 자기가 세운 곡식 단에게
절한 꿈이었습니다. 또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그는 꿈이 지금 이루어 진 것을 이때에 깨달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꿈을 품으면 꿈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라고 말하면서, 요셉이 꿈을 꾸었기 때문에 그 꿈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또 아브라함도 꿈을 꿨는데, 그 꿈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겠다’ 하는 말씀대로 자손이 별과 같
이 많아질 꿈을 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늘 하늘의 무수한 별을 쳐다볼 때마다, 반짝반짝 하는 별들을 쳐다볼 때마다, 자기 자손이 그만큼 많아져서 하늘의 별과 같이 반짝반짝 할 것을 늘 상상을 하면서 그 꿈을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침내는 자손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도 그런 꿈을 꾸고 늘 상상하면서 기도해 나가면 반드시 그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야곱도놓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꿈을 가지고 그 써 놓은 것을 보면서 노력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된다는 것입니다. 또 큰 교회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늘 기도하면 큰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큰 교회를 만들겠다고 꿈을 아무리 꿔도 안 되는 사람은 안 됩니다. 도적놈의 두목이라도 자격이 있어야 두목을 해먹지 누구나 두목이 되겠다고 한다고 해서 두목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 그만한 뭐가 좀 있었기 때문에 되는 것이지 꿈을 꾼다고 보통 사람이 아무리 해보려고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괜히 뱁새가 황새걸음을 하려다간 다리가 찢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뱁새 노릇도 못하게 됩니다.
뱁새가 뱁새 걸음을 했으면 일생 동안 잘 살 것인데, 황새 걸음을 하려다가 얼마 못 가서 다리가 찢어져서 죽게 됩니다.
어떤 한 사람이 크게 꿈을 꾸고 예배당도 크게 계획을 하고 돈도 없는데 크게 하다가 예배당을 채 짓기도 전에 빚을 잔뜩 졌습니다. 크게 꿈을 꾸고 했는데 너무 빚이 많으니까 예배당 짓다가 그냥 중단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산에 금식기도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한테 빚 물어 달라고 금식기도하다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40일 금식기도 하다가 끝나기 닷새 전에 죽었다고 합니다. 허영심으로 예배당을 크게 짓는 꿈을 꾸고 예산 없이 하다가 안 되니까, 하나님께 빚을 물어 달라고 기도하다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목사가 예배당을 하나 지었는데, 그것도 아마 큰 꿈을 꾸고 크게 지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빚을 잔뜩 졌습니다. 빚쟁이가 자꾸 와서 야단치니까 삼각산에 가서 금식기도를 40일을 하러 갔다고 합니다. 40일을 기도 하러 갔는데, 30여일 정도 금식을 했을 때, 황기정 목사 어머니 송 권사님이 그 목사님을 찾아가서 만났답니다. “금식기도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니까, 세 가지라고 하더랍니다. 첫째는 예배당 짓다가 빚 진 것을 물어 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 딸이 지금 술집인지 다방에서 일을 하는데 그것을 그만두게 해 달라는 것이고, 마지막은 삼팔선이 무너지게 해 달라는 기도였답니다. 그래서 황기정 목사 어머니가 그 세 가지 가운데 쓸 것이 하나도 없으니 관두고 내려가라고 했답니다. 그 중 하나도 기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빚 졌으면 빚 물어주면 될 것이고, 딸이 그렇게 잘못된 길을 걸어갔으면 그만 두라고 하면 될 것이고, 삼팔선 무너지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야지 기도한다고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식기도 할 바가 못 된다고 하였더니, 그 목사가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기에 쫓겨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사는 40일 금식기도를 다 마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40일을 다 채우고 집에 와서 죽었습니다. 죽을 때, “송송송” 하면서 죽었답니다. 왜 “송송송” 하면서 죽었느냐 하면, 송권사의 말을 안 듣다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탄아 물러가라” 할 때 송권사가 그만 두라고 얘길 했는데, 그 말을 들었으면 안 죽었을 텐데, 그만 그 말을 안 듣고 죽을 때 “송송송송” 하면서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꿈을 품으면 다 된다는 미혹에 우리가 빠지면 안됩니다. ‘꿈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면 다 된다’는 것은 좋습니다.
‘말씀이면 다 된다.’ 또 ‘하나님의 뜻이면 다 된다. 만능이다’, ‘하나님의 뜻이면 태산도 물러가고 뽕나무도 빠져나가고 다 된다’ 하는 확신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뜻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도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해야 되고, 무슨 일을 하
는 것도 하나님의 뜻에 맞춰 일을 해야 됩니다. 예배당 짓는 것도 하나님의 뜻에 맞추라는 것입니다. 정도에 맞게 해야지, 지나치게 큰 꿈을 가지고 한다고 하면, 가다가 함정에 빠집니다. 자기 꿈을 다 집어 치워야 됩니다. 자기 꿈은 마귀 꿈입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께서 계시로 주신 말씀입니다. 계시로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이 오랜만에 형들을 만났습니다. 몇 년 만에 만났습니까? 열 일곱 살에 집을 떠나서 서른 살에 총리가 되었고 칠 년 풍년을 지냈으니, 이십 년 만에 만난 것입니다.요셉이 형들을 회개시키기 위해 기다림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20년이 지나도록 그동안 요셉이 왜 자기 아버지 집에 한 번도 연락을 안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기 전에 보디발의 집에서 11년간 종살이 했습니다. 종살이를 11년 할 때도 기별할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옥에 2년간 있을때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총리 된 다음에는 분명히 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입니다. 총리가 된 후 7, 8년이 지났는데, 총리가 된 다음에는 자기가 한 번 고향에 다녀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애굽의 병거들이 얼마나 좋은 것이 많았겠습니까? 가는 길이 대략 삼일 길 정도 되었는데, 한 사흘 정도 갔다가 만나고 다시 사흘 걸려서 돌아오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즉 한 주간이면 아버지께 가서 인사도 드리고 안부도 물을 수 있습니다. 또 흉년이 들어서 양식이 떨어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곡식 하나 안 보내주었는데, 왜 이렇게 했겠느냐는 것 입니다.
물론 요셉이 고향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또 곡식을 좀 보내주고 싶은 생각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올 것이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자신이 아버지와 식구들을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반드시 애굽에 곡식
을 사러 올 것이므로, 온 다음에 일의 순서를 따라서 하려고 아마 아버지 집에 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님께 기도해보니까 하나님께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요셉이 늘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했을 것입니다. 형제들이 회개해야만 바로 되겠는데, 자기가 집으로 간다고 하면 형들이 회개할 기회가 한 번도 없을 것입니다. 총리가 되어서 가령 애굽의 병거를 타고 간다고 하면, 형들이 회개하기는커녕 도리어 교만해져서 ‘우리 동생이 애굽의 총리다’라고 하면서 더 날뛸 것 아니겠습니까? 형들을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에 대해서는 책임을 자기가 지기로 작정해 놓았으므로 아무 때나 책임 질 각오를 하고, 형들을 바로 세우는 것이 하나님 앞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집에 가지 않은 것도 하나님의 지시대로 한 것이고, 형들이 온 다음에도 동생으로 나타나지 말고 형들을 회개시킨 것도 하나님께서 지시하셔서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인간의 생각으로 봐서는 집에 빨리 가야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움직이
기 때문에 못 갔다고 봐야합니다. 또 형들이 왔을 때, 먼저 자기가 요셉이라고 말하고 반가워서 목을 안고 인사할 수도 있었겠지만, 요셉은 인정을 다 초월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전에 형들이 자기를 팔아먹은 생각을 하면, 복수할 만한 기회였겠지만 그 복수심도 초월했습니다. 인정도 초월하고, 복수심도 초월하고, 요셉이 오직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길로만 걸어 나갔던 것을 우리가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나가야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겠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또한 형들에게 대한 인정, 동정심, 복수심, 이런 것을 품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나가는데 방해물들입니다. 그것을 다 초월해야만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나갈 수 있습니다. 과거에 형들이 자기에게 잘못한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 때 형들이 오더라도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가혹한 일을 행했는가, 악한 일을 행했는가, 그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몇 번까지 용서해 주라고 하셨습니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다 용서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용서하고, 또한 과거에 형제가 잘못한 것에 대해 복수심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또한 인정으로 어떤 것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정으로 할 때, 하나님의 의가 멀어지게 됩니다. 요셉은 형들이 와서 절할 때에, 과거에 하나님께서 꿈으로 보여주신 하나님의 말씀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나가시는 것을 믿고 또 지금도 하나님의 뜻대로, 그 뜻에 의해서 형들에게 모든 일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들이 모르게 행했습니다. 자기는 형들을 알아보았으까 형들에게 자기가 요셉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20년 후에 만난 사람을 알아볼 수 있습니까? 20년 후에 만났어도 나이 많은 사람은 변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 사람은 20년이 흐르면 모릅니다. 어린아이들은 20년이 아니라 몇 년 만 지나도 몰라보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요셉을 몰랐던 것입니다. 아이가 한 10년만 있으면 다른 사람이 됩니다. 이전에 그 아이의 모습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그런 아이가 많습니다. 그런데 좀 나이든 사람은, 예를 들어 한 30세 정도 된 사람은 50세에 만나도 비슷합니다. 그대로라는 말입니다. 큰 변화가 없습니다.
어렸을 때는 자라나면서 상당히 변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팔릴 때가 17세였고, 지금은 20년이 지나면서 상당히 얼굴이 변했을 것입니다. 또 애굽 사람의 복장을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생각을 못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형들이 감히 자세히 쳐다보지도 못 했을 것입
니다. 너무 엄하기도 하고, 잘못했다가는 곡식을 안 판다고 하면 큰일이니까, 그저 벌벌 떨면서 요셉 앞에서 엎드렸기 때문에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 형들이 오길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별로 변하지 않은 형제들이 지금 요셉에게 온 것입니다. 그래도 모르는체 하고 엄한 소리로 말하기를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형들이 요셉에게 절하고서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 땅에서 왔나이다”라고 겸손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지금 요셉 앞에 굴복시키신 것입니다.
3. 요셉의 형들이 정탐으로 몰림
본문 8-9절에 “요셉은 그 형들을 아나 그들은 요셉을 알지 못하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너희는 정탐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
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형들을 회개시킬 목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아무 쓸 데가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곤궁한 난관에 빠뜨려 애매한 누명을 쓰게 했습니다. 정탐들이라고 하는 애매한 누명을 쓰고 이제 환난을 당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형제들을 회개시킬 목적으로 요셉을 시켜서 지금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10-13절에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로서 독실한 자니 종들은 정탐이 아니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그들이 가로되 주의 종 우리들은 십이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말째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형들이 하나는 없어졌다고 한 것은 요셉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정탐으로 몰렸으니까 지금 어떻게 해서라도 그것을 벗어나려고 사실대로 전부
다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들은 지금 속이 얼마나 안타까워서 하는 말들인지 모릅니다.
본문 14-15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말째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형들의 말에 요셉이 증명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말째 아우가 오지 아니하면 정녕 거기서 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째 아우가 있다고 했으니까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한 대로 말째 아우를 데려 오면 그들의 말이 사실이고, 오지 않으면 그들의 말이 다 거짓말이고 그들은 정탐이 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본문 16-17절에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이니라 하고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고 하
였습니다. 그들이 삼 일 동안을 전부 갇혀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 중 한 사람을 보내서 말째 아우를 데려오면, 그들의 말한 대로 열두 형제인데 말째 아우는 집에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정탐이 아닌 것을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째 아우를 데려오지 않으면 그들의 말이 다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원래 열두 형제라는 것도 거짓말이고, 정탐이 아니라고 한 것도 거짓말이고, 전부 다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보내서 말째 아우를 데려오고, 데려오기까지 다 감옥에 갇혀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삼일 동안을 전부 감옥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삼일 동안 갇혀 있는 동안에 형들이 많이 회개했을 것입니다. 또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고통을 많이 당할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그들이 정탐으로 몰렸기 때문입니다. 꼼짝 못하고 죽게 된 것입니다. 죄 가운데 정탐죄는 사형 받을 죄가 아니겠습니까? 간첩죄인데, 간첩죄로 걸리면 사형 받을만한 죄입니다. 그러니까 감옥에서 삼일 동안 얼마나 고민을 많이 하고 얼마나 고통을 많이 당했겠습니까? 그래도 전에 지은 죄에 대해서 아직도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 전에 요셉 팔아먹은 죄를 회개했다는 말이 아직 없습니다. 고통을 많이 당하고, 하나님께 많이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는 아직도 못 깨달았습니다. 사실은 그 죄 내놓으려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가두어 놓으신 것인데, 그 죄는 못 내놓고, 많은 고난을 당하면서 자꾸 건져달라고만 합니다. 삼일 동안은 그랬을 것 같습니다.
본문 15절에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말째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한 것은 첫째는 자기가 애굽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바로의 세력이 이때 막강한 세력이니까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한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확증의 맹세라는 뜻입니다. 즉, 자기가 애굽 사람인 것을 확증하려고 하는 것과, 또 하나는 정탐이 확실한데, 정탐이 아닌 것을 증명하는 길은 말째 아우를 데려오면 되고 다른 편법이 없다는 것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정탐으로 벗어날 가망이 없도록 해놓으려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로만 아니라고 하는 것은 통하지 못하고, 유일한 길은 말째 아우 데려오면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여 이것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형들이 용서받을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졌습니다. 나갈 구멍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바로의 생명으로까지 맹세해서 정탐으로 몰아 놓았는데, 나갈 길이 어디 있겠습니까? 용서받을 수 없는 길이고 나갈 길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이렇게 전혀 빠져나갈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다 몰아넣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회개시키게 하시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한 것을 움직이기 전에는 전혀 나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한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고 성도로 하여금 회개시키려고 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때때로 있습니다. 그때 회개할 바를 찾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회개할 환경을 만들어 주셔도 회개하지 못합니다. 삼 일 동안 무슨 기도만 했겠습니까? 살려달라는 기도만 했습니다. 그것밖에 안 한 것 같습니다. 회개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민을 한량없이 당했을 것입니다. 바로의 생명으로까지 맹세해서 정탐으로 몰아 놓았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도 삼일 후에는 소망이 조금 생겼습니다. 조금 구멍을 열어 놓았습니다.
4. 형들의 뉘우침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본문 18-20절에 “삼 일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너희가 독실한 자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들의 주림을 구하고 너희 말째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리하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감옥에 갇힌 지 삼 일만에 요셉이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라고 하여 그들의 숨통을 조금 열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도 믿는 사람이 아무래도 조금 낫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정탐으로 몰아도 그 책임자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무자비하게 잡아 죽이기야 하겠는가? 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뭐 이렇게 정탐이 아닌데 정탐으로 몰아가면서까지 할 수가 있겠는가? 무슨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만난 것이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제 조금 숨통이 트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대하는 방침도 조금 누그러졌습니다. 처음에는 전부 가둬놓고 하나만 가서 말째 아우를 데려오라고 하였는데, 이제는 그들 중 하나만 가두어 놓고, 다 집에 갔다가 말째 아우를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상당히 완화되었습니다.
한 사람만 빼고, 나머지는 다 해금(解禁)되었습니다. 삼 일이 지난 후 오늘에서야 해금되는 것입니다. 내내 갇혀 있었는데, 이제는 한 사람만 옥에 가두고 나머지는 다 풀어줄 테니, 집에 곡식을 가지고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도 계시다고 하니까, 아버지와 그 가족들의 주림을 구원하고, 말째 아우를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조금 소망이 생겼습니다. 무엇 때문에 조금 소망이 생겼습니까? 요셉이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라고 말한 것, 즉 그 책임자인 총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했기 때문에 소망이 생겼습니다.
또 형제들이 너무 낙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좀 더 힌트를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너무 낙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은혜의 서광을 조금 비춰주실 때가 있습니다. 때로 어려운 가운데 빠질 때에도 하나님의 권고하는 말씀이 조금 오는 때가 있습니다. 아주 희망이
없는 곳에 빠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어느 한 모퉁이에 하나님의 권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방침도 처음에는 다 가둬 넣으려고 했는데, 이제는 한 사람만 가두어 놓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나머지는 다 갔다 오라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대단히 안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안심은 못 됩니다. 왜 아직 안심이 못 됩니까? 형제 중 하나를 두고 가야 하는데, 누구를 두고 갈지 알 수 없고, 또 한 가지는 가두어 놓고 간다는 것 자체가 그리 안심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저 다 죽는 것은 면한 것같습니다. 또 한 사람이 갇혀도 총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했으니까 그래도 조금이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권고하시는 것 같다고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시려고 조금 권고하시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회개하라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금 권고하는 것입니다.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또 한 사람만 가둔다는 것은 전에 아우 요셉 한 사람 팔아먹은 것을 연상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본문 18-20절에 “삼 일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너희가 독실한 자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들의 주림을 구하고 너희 말째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리하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감옥에 갇힌 지 삼 일만에 요셉이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라고 하여 그들의 숨통을 조금 열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도 믿는 사람이 아무래도 조금 낫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정탐으로 몰아도 그 책임자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무자비하게 잡아 죽이기야 하겠는가? 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뭐 이렇게 정탐이 아닌데 정탐으로 몰아가면서까지 할 수가 있겠는가? 무슨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만난 것이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제 조금 숨통이 트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대하는 방침도 조금 누그러졌습니다. 처음에는 전부 가둬놓고 하나만 가서 말째 아우를 데려오라고 하였는데, 이제는 그들 중 하나만 가두어 놓고, 다 집에 갔다가 말째 아우를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상당히 완화되었습니다.
한 사람만 빼고, 나머지는 다 해금(解禁)되었습니다. 삼 일이 지난 후 오늘에서야 해금되는 것입니다. 내내 갇혀 있었는데, 이제는 한 사람만 옥에 가두고 나머지는 다 풀어줄 테니, 집에 곡식을 가지고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도 계시다고 하니까, 아버지와 그 가족들의 주림을 구원하고, 말째 아우를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조금 소망이 생겼습니다. 무엇 때문에 조금 소망이 생겼습니까? 요셉이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라고 말한 것, 즉 그 책임자인 총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했기 때문에 소망이 생겼습니다.
또 형제들이 너무 낙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좀 더 힌트를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너무 낙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은혜의 서광을 조금 비춰주실 때가 있습니다. 때로 어려운 가운데 빠질 때에도 하나님의 권고하는 말씀이 조금 오는 때가 있습니다. 아주 희망이
없는 곳에 빠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어느 한 모퉁이에 하나님의 권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방침도 처음에는 다 가둬 넣으려고 했는데, 이제는 한 사람만 가두어 놓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나머지는 다 갔다 오라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대단히 안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안심은 못 됩니다. 왜 아직 안심이 못 됩니까? 형제 중 하나를 두고 가야 하는데, 누구를 두고 갈지 알 수 없고, 또 한 가지는 가두어 놓고 간다는 것 자체가 그리 안심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저 다 죽는 것은 면한 것같습니다. 또 한 사람이 갇혀도 총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했으니까 그래도 조금이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권고하시는 것 같다고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시려고 조금 권고하시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회개하라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금 권고하는 것입니다.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또 한 사람만 가둔다는 것은 전에 아우 요셉 한 사람 팔아먹은 것을 연상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
본문 21절에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야 회개가 나왔습니다. 사흘 동안은 회개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회개가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권고가 임할 때 회개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 가혹하게 할 때에는 회개하지 못하고 그저 안타까워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만 하고 있다가, 이제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라고 숨통을 열어 놓고 또 “다 갇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만 갇혀라. 가서 너희 말째 아우 데려오면 다 놔준다. 너희 가족도 구하러 가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여러면으로 위로의 말을 하여서 소망을 좀 열어 준 것입니다. 그럴 때에
‘아, 전에 잘못한 것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당하는구나’ 라고 한 번 그들의 죄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야 전에 지은 죄가 생각이 났습니다. 효과가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이 나오게 하려고, 이 죄를 깨닫게 하려고 지금까지 하시는 것인데 이제야 회개가 나왔습니다.
또 형들이 말하기를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잡아서 구렁텅이에 빠뜨릴 때 요셉이 형들한테 애걸했던 모양입니다. 그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지금 그 괴로움이 자신들에게 임해서 그 죄 값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이제야 죄를 깨닫고 회개가 나왔습니다. 20년 전에 지은 죄를 회개하라고 하나님께서 이들을 이런 고통 가운데 빠뜨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는 몇 십 년 지나도 내놔야 되게
되어 있습니다. 내놓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십니다.
어떤 한 집사가 어떤 교회에서 왔는데, 나보고 하는 말이 자기 교회 교역자가 400년 전에 지은 죄 값으로 아말렉이 망했다고 강도를 했답니다. 400년 전에 지은 죄도 다 벌 받는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집사님이 그 말을 듣고 ‘그러면 400년 전에 우리 조상들이 지은 죄를 내가 다 책임지려면 아주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뒤로 나가 넘어져서 교회도 안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한 주간 정도 안 나가고 심방도 다 집어치우고, 400년 전에 지은 죄까지 다 갚으려면 희망이 없으니 아예 그냥 관두자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심방해서 위로하여 교회를 다시 나가기는 나갔는데, 그래도 그 고민이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400년 전에 조상들이 지은 죄를 다 벌 받으려면 어떻게 받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그 아말렉 사람은 이방사람으로 불택자이고 불신자이다. 이방사람으로 불신자는 400년 전에 지은 죄도 다 받아야 된다. 그러나 택한 백성, 곧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을 때 400년 전에 지은 죄도 다 용서 받았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용서 받은 것이 아니냐? 다 용서 받았으니 이제는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 회개한 사람의 죄는 다시 기억지도 않으신다. 그것은 우리에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니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기쁘고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잘 순종하면 된다.”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가르칠 때, 그런 면을 좀 생각하고 가르쳐야 됩니다. 400년 전에 지은 죄를 가지고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가르쳐주면, 그것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들을 것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교인들이 그것에 대해 근심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무조건 성경에 나와 있다고 회개하라고 하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말할 때는 ‘400년 전에 지은 죄도 벌 받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다 용서해 주셨으니 예수 믿는 사람은 얼마나 큰 복이냐? 믿는 사람은 이제 회개하면 다 용서를 받고 하나님 앞에 이제 자녀가 됐다’는 것까지 말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말하지 않고 전체를 알려주는 면이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요셉의 형들에게 20년 전에 지은 죄를 내놓으라고 했는데, 이것을 안 내놓는다고 해서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또 그 죄 값으로 지금 벌 받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이것은 하나님께서 회개하라고 사랑으로 주는 징계에 불과한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죄를 복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가 당하는 환난은 죄에 대한 보복적 고난이 아니고 회개를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입니다. 회개를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징계와 죄 값을 벌하는 보복적인 징벌은 분별해야 되겠습니다. 지금 요셉의 형들이 당하는 것은 죄 값으
로 당하는 벌이 아니고, 회개를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가 임할 때에 ‘내게 왜 이런 하나님의 징계가 왔을까?’ 하며 전에 지은 죄를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20년 전에 지은 죄가 무엇인가? 양심의 가책이 되는 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사람들에게 양심의 가책이 되었나 봅니다. 전에 지은 죄가 늘
속에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환난을 만날 때 이런 것이 쑥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동생 때문에 고통당하게 되니까 동생 생각이 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징계를 해서 회개시키려고 20년 전에 다른 데서 지은 죄가 오늘날 여기 와서 생각이 나도록 하신 것입니다. 얼마에 팔아먹었습니까? 은 20개에 팔아먹었습니다. 은 20개를 나눠 먹었어도 먹고도 벌써 오래 지났습니다. 얼마 되지도 않은 것을 받아 먹고는 죽을 통에 빠진 것입니다. 20년이 지나서 지금 죽을 지경에 빠졌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눈 앞의 작은 유익 때문에 장래에 오는 하나님의 큰 징계를 무시하고 나가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나 이 징계 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 앞에서 그 지은 죄 값을 받는다고 하면 아주 희망이 없을 텐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회개시키시려고 이런 징계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때에 회개해야 되겠습니다.어떤 분이 병이 나서 세상 떠나게 됐는데, 다른 교인이 찾아가서 회개하라고 하였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가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했더니 하는 말이 “내가 오랫동안 앓으면서 무슨 죄를 회개하지 않았겠습니까? 내게 있는 죄는 다 회개 하려고 했습니다. 회개 안한 죄가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답니다. 오랜 고난 가운데 있는 동안에 별의 별 것을 다 찾아서 회개한 모양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고난 가운데 빠지면 모든 죄를 찾아서 회개하게 되어 있습니다. 미리부터 아예 다 회개하고 나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양심에 가책되는 것은 다 회개하고, 원수맺은 것은 풀고, 어떻게 하든지 남한테 막히는 것이 없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다 풀고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나 양심에나 거리낌이 없는, 모든 것을 바로 하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왜 삼 일 동안은 이런 회개가 안 나오고 이제야 나옵니까? 하나님의 권고가 조금 임하여야 회개가 나오는 것입니다. 징계를 해도 징계 가운데서 하나님의 권고가 있을 때 회개가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다른 사람을 책망을 해도 책망만 해서는 회개가 안 나옵니다. 책망한 다음에는 사랑의 권고가 좀 있어야 됩니다. 매를 세게 때리고, 사과는 일곱 개를 사다 주어야 합니다. 매 맞을 때 회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과 일곱 개를 사다 줄 때 회개가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죄값으로 매를 맞았지만, 아버지가 이렇게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하면서 그때 ‘제가 참 잘못했습니다’라고 회개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린 다음에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때리는 것이 필요하나, 그 다음엔 소망을 조금 열어주고, 위로도 조금 해주고 그럴 때 회개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형들이 사랑에 감동이 되니까 “아, 이거 참 아우의 일로 잘못 됐다. 범죄 했다. 애걸 할 때에 그 괴로움을 보고도 우리가 듣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그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였다”라고 한 것입니다.
죄의 경중을 드러내심
본문 22절에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더러 그 아이에게 득죄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피 값을 내게 되었도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형들이 죄를 회개하자 맏형인 르우벤이 동생들을 꾸짖었습
니다. 요셉은 이것을 처음 듣는 것입니다. 자기가 팔릴 때, 르우벤이 이렇게 말한 것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르우벤이 요셉을 죽이지 말고, 아이에게 득죄하지 말라고 형제들을 말린 것입니다. 그래서 죽이려고 할 때에 죽이지 못하게 하고, 구렁텅이에 넣게 한 것이 르우벤이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요셉을 죽여서 그 피를 옷에다가 묻혀서 아버지께 가져가려 했는데, 르우벤이 아이를 죽이지 말자고 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 생명은 상하지 말자…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창
37:21-22). 그런 다음에 건져서 아버지께로 보내려고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르우벤이 어디 갔다 오는 동안에 다른 형제들이 팔아먹은 것입니다.
르우벤이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게 득죄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고 하였습니다. 처음에 말린 것은 잘했으나 끝까지 막지 못했으니까, 르우벤에게도 책임이 있기는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동책임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 형제들이 죄를 지으려고 할 때 르우벤
이 반대했지만, 결과적으로 공동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르우벤이 막을 수 있었겠는데, 안 막은 것 같습니다. 처음에 구렁텅이에 빠뜨릴 때까지는 건져내려고 했다 해도, 사실 그것은 양보한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아예 르우벤이 구렁텅이에 안 빠지도록 했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그를 애굽에 팔아먹을 때에는 르우벤이 없었는데, 동생이 구렁텅이에 있는 것을 아는 이상, 르우벤이 어떻게 해서든지 그 자리를 떠나 다른 곳에 가지 않고 그 부근에서 일을 보면서 아이를 지켰어야 좋을 뻔 했습니다. 일단 구덩이에 빠뜨린 다음에는 안심하고 멀리 딴 데 가있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분명히 죄를 막았으면 될 뻔 했습니다. 또 다른 곳에 안 갔으면 될 뻔 했습니다. 안 갔더라면 못 팔아먹었을 것입니다. 빠뜨려 놓은 다음에도 자리를 피하지 않고 있었으면, 이스마엘 장사꾼한테 팔려고 할 때 반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르우벤에게도 막지 못한 책임이 어느 정도 있습니다. 공동책임이 있기 때문에 형제들과 같이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득죄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하고 말하여 사실대로 밝힌 것입니다. 르우벤이 제일 낫습니다. 그러나 책임은 져야 합니다. 죄는 지은 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실대로 드러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서도 사실 그대로 낱낱이 적나라하게 그 죄의 경중이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의 피 값을 내게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회개가 이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피차간에 통변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그 말을 알아 들은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서로 간에 통역을 세워서 말을 하였기 때문에 형들은 요셉이 자신들의 말을 알아들을 줄을 알지 못하고 그들의 죄를 서로 말했으나, 요셉은 다 알아들은 것입니다.
환난 가운데 죄를 찾아 회개해야 함
우리가 어떠한 일을 당할 때에 회개할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거에 지은 죄와 현재에 당하는 환난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현재의 환난이 과거의 죄 값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전에 지은 죄를 회개시키려고 그런 환난을 당하게 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에 지은 죄를 하나님께서 내어 놓으라는 것인데, 그 죄를 그냥 두고 나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삼 일 동안 갇혀있을 때 아무리 살려달라고 애를 썼지만 그것으로는 합격이 안 됩니다. 전에 지은 죄를 내어 놓아야만 합격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과거의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야곱도 에서가 사백명을 거느리며 올 때에 살려달라고 애를 써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가지고는 통과가 안 됩니다. 야곱이 천사하고 밤새도록 씨름했습니다. 그것도 살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이
씨름한 것은 하나님께 살려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네가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살려달라는 소리하지 말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전에 지은 죄를 내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일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내가 전에 지은 죄를 회개 시키시려고 이런 어려움을 당하게 된 줄 알고, 잘못한 것을 언제나 찾아봐야 됩니다. 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잘못된 것이 무엇인가?’ 하고 언제나 그 잘못된 것을 찾아서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어려움을 당할 때에 살려달라고만 하지 말고 잘못된 것이 무엇인가, 전에 죄 지은 것이 무엇인가, 또 현재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찾아서 회개하고 바로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권고가 다시 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