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에스더강해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에스더강해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년 2월 18일 토요일

에스더 10:1-3 모르드개의 공적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모르드개의 공적
에스더 10:1-3

1아하수에로 왕이 그 본토와 바다 섬들로 공을 바치게 하였더라 2왕의 능력의 모든 행적과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케 한 사적이 메대와 바사 열왕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존대하여 그 허다한 형제에게 굄을 받고 그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1. 아하수에로 왕이 큰 능력 있는 왕이 됨

모르드개의 신앙

본문 1절에 “아하수에로 왕이 그 본토와 바다 섬들로 공을 바치게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큰 능력 있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육지 뿐 아니라 바다 섬들까지 지배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세금들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하수에로 왕이 이같이 부요한 나라를 이루며 큰 능력 있는 왕이 된 것은 모르드개를 등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모르드개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첫째, 신앙의 사람입니다. 전에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 받을 것이나 너와 네 집은 멸망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모르드개는 하나님께서 유다 사람들과 반드시 같이 하실 것을 믿은 사람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실 것을 믿은, 신앙의 사람입니다. 에스더에게 말한 내용 으로 보아, 그는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창성하고 잘될 것을 믿은, 신앙의 사람인 것입니다.
둘째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모르드개의 기도로 에스더도 왕후가 되었습니다. 또 삼 일 동안 금식한 것을 봐도 그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모르드개는 신앙의 사람인 동시에 기도의 사람이며, 

세 번째는 진리를 사수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아말렉 사람을 멸망시킨다고 하셨기 때문에, 모르드개는 그것을 믿고 아말렉 사람에게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아말렉 사람에게 경배를 하지 않음으로써 신앙을 지킨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으로 지킨 것이 아니라 생명을 내놓고 지킨 것입니다. 하만에게 절하지 않으면 그가 분명히 가만히 두지 않을 것도
알았고, 죽일 것도 알았는데, 결사 각오를 하고 진리를 지켜나간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진리의 사람인 것입니다. 진리를 파수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또 진리를 위해 타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불의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비 진리와 타협하지 아니하며, 진리에 어긋나는 사람에게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잘못된 것에 굴복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생명을 내어놓고 신앙 양심을 지켜나간 진리의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잘되었습니다.
네 번째로 모르드개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입니다. 문지기의 일을 한 것을 봐도 그렇고, 에스더를 왕궁에 들여보내 놓고도 안부를 물으며 후궁 뜰 앞으로 왕래하는 것을 보면, 그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입니다. 에스더를 잘 양육한 다음에도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돌봐준 것입니다. 또 재에 앉아 베옷을 입었을지라도 대궐문 앞에 나와 문지기로서의 자기 자리를 잘 지켰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기의 책임을 다 한 모르드개입니다. 그는 하만의 꾀로 인해 조금 있다가 죽게 될 정도로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핍박을 받아도 문지기의 직분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베옷을 입고 통곡을 할지라도 문지기 자리에 나와서 통곡을 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것을 보면 모르드개는 자기 책임을 다 한 사람입니다. 

또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 사람들을 위해서도 자기 책임을 다 하였습니다. 백성을 위해 희생의 제물이 된 모르드개입니다. 이것이 아주 귀한 것입니다. 자기는 죽어도 하나님의 백성, 유다 백성은 살려야 되겠다는 정신을 가진 것입니다. 에스더도 이런 신앙을 가졌습니다. 에스더가 ‘내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으로 왕 앞에 들어간 것은 죽어도 유다 백성들을 살려야겠다는 신앙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희생의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자기를 위해 목회를 하지 말고, 교회를 위해 희생하는 정신으로 목회를 해야 되겠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목회를 하면 삯꾼 목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항상 희생하며 언제나 죽음의 자리라도 담대히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하여간 왕이 모르드개에게 일을 맡겨놓으면 모든 일이 잘되었습니다. 모르드개가 왕과 나라에 대한 충성된 마음으로, 왕의 오른손이 되어 모든 일을 선하게 처리한 것입니다. 왕이 하는 것보다 더 잘되니까 왕이 간섭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한 번 맡겨놓으면 자기가 하는 것보다 일이 더 잘되고 모든 사람에게 맡긴 것보다 더 잘되니까, 결국 나라가 잘되어나가는 것입니다.
요셉과 다니엘 때에도 그랬습니다. 요셉 때에도 바로 왕이 요셉에게 모든 것을 맡겼는데, 모든 일마다 다 잘되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다니엘 때에도 왕들이 다니엘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나라가 잘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맡긴 것보다 더 잘되었고, 자기가 하는 것보다 더 잘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무슨 일을 하든지 신앙으로 해나갈 때에 잘 되어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민은 기뻐하고 나라는 점점 안정되며 발전되어 나갔습니다.

모르드개의 신앙을 본받아야 함

오늘날도 우리 성도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성도들 때문에 나라가 평안하고 발전되며 많은 유익을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역 사회도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이 정상적일 것 같습니다. 나라의 총리가 전국에 영향을 못 미쳐도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부터라도 빛을 비춰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든지 우리는 우리가 사는 나라가 평안하기를 원하고 이 나라가 안정되기를 원해야 합니다. 성도가 사는 나라가 안정되어야 믿는 일을 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정치 싸움에 가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 야의 정치 싸움에 가담하지 말고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라가 안정되기를 힘써야 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의 일은 우리의 할 바가 아닙니다. 우리는 빛을 비추어 내보내는 것 뿐이고 소금의 직분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희생의 제물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모르드개는 왕을 많이 도와줬고 바사 나라에도 선한 일을 하였습니다. 바사 나라의 평안과 발전을 위해 기여한 사람입니다. 유다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후손에게까지 평화를 전해주고 안정을 주며 유다 사람들이 바벨론에 있을 때에 번영하도록 한 사람입니다. 그 결과로 자신
이 존귀해졌는데, 오늘날의 성도들이 이렇게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성도가 어디를 가나, 무슨 일을 맡으나, 어디에서 사나, 높은 자리나 낮은 자리나 어디에 있든지 이렇게 나가면 존귀해질 것입니다. 특히 안믿는 사람에게도 빛을 비추어나가고 선한 일을 많이 해야 되겠습니다.
또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백성들의 평안과 안정, 번영과 교회 발전 등의 유익을 주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또 자신의 인격이 점점 존귀해져나가도록 자기를 만들어나가야겠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 앞에 멸시와 천대를 받지 않고 존대를 받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높아지고자 해서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 앞에 높임을 받고자 하는 자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오히려 낮아집니다. 존귀함을 받는 것은 높임을 받기 위해 행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항상 겸손한 믿음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존대할 수밖에 없고 우러러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자리에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자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2. 모르드개의 존귀와 유다 사람들을 위한 공적

모르드개의 존귀가 일기에 기록됨

본문 2절에 “왕의 능력의 모든 행적과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케 한 사적이 메대와 바사 열왕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왕의 능력의 행적은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고, 구원 역사를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르드개를 중심으로 한 유다인의 구원을 기록한 것입니다. 메대 바사 열왕의 일기에다 이것을 자세히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또 바사 열왕의 능력 있는 행사를 기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에는 그런 행적이 많지 않습니다. 에스더서에도 유다인에 관계된 것만 기록하였고 왕의 능력 있는 행적은 전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간단하게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인의 구원 역사는 전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바사 일기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왕의 능력 있는 행적들을 많이 기록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다 없어졌습니다. 오랜 시일이 경과됨에 따라 분실된 것입니다.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요새는 옛날 아하수에로 왕의 능력 있는 행적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저 희미하게 조금씩 기록된 것뿐입니다. 일기장은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늘까지 남아 있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큰 능력의 역사가 나타났다고 해도 얼마 가면 다 없어지지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새겨놓은 것은 세세토록 남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까지 있습니다. 또 앞으로도 세세토록 남을 것입니다. 아무리 능력 있는 행적이 세상에 많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시일이 지남에 따라 다 지나가며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구원 역사는 세세토록 남아서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귀중한 것입니다. 

모르드개의 신앙이 에스더에게 전수됨

그리고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신앙을 본받았습니다. 모르드개가 에스더를 길러 왕후가 되기까지 옆에서 도와주었는데, 에스더도 그의 신앙을 본받아 모르드개의 말을 끝까지 순종하였습니다. 에스더의 신앙은 모르드개의 신앙을 본받은 것입니다.
에스더는 겸손과 순종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습니다. 모르드개가 자기를 길러줄 때와 같이 왕후가 되어도 끝까지 모르드개를 순종한 것입니다. 또 왕후가 되었어도 자기를 길러준 신앙의 아버지요, 선생인 사촌 오빠 모르드개에 대한 의리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지위가 아무리 높은 데로 올라갔어도 끝까지 모르드개에게 순종한 에스더입니다. 또 에스더는 유다 백성들을 위해서 희생하였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는 믿음으로 나갔는데,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희생하는 모르드개에게 배운 것입니다. 또 기도하면 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기르는 사람들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쳐주어야 되겠습니다. 겸손과 순종, 또 기도하는 것,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희생하는 일들을 가르쳐야 되겠습니다. 특별히 우리 자녀들과 교회 교인들, 그리고 유년부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되겠습니다. 이제 4월에 기도하러 산에다 천막을 쳐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냥 혼자 갈 생각입니다. 여럿이 가면 기도하는 것이 반 타작도 안 됩니다. 혼자 가는 것보다 한 삼분지 일이나 할까, 말까 합니다. 그래도 그것을 가르쳐주려고 데리고 가려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데리고 가지 않아도 따라가는 사람이 있지만, 안 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좀 가르쳐 주려고 손해를 좀 봐도 데리고 가려는 것입니다. 4월에 갈까, 말까 생각 중인데, 가게 되면 한 주간 동안은 강해서 정리를 못합니다. 혼자 가면 강해서 정리도 하면서 기도도 할 수 있는데, 여럿이 가면 하루에 한 번이라도 예배 인도를 해야 하니까 반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예배는 잠깐 인도하는 것 같지만 거기에 마음이 다 가 있기 때문에 하루 종일 다른 것은 하지 못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 설교하는 것도 세 구절 밖에는 안 되지만, 어제 저녁에도 준비하고 이전에도 준비했습니다. 오늘 새벽 2시경에 깨서 오늘 아침까지 써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설교를 하려면 시간을 많이 드려야만 합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하나도 준비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산에 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가면 강해서를 한 주간 동안 못하고, 혼자서 기도하는 것보다 반 타작도 안되니까 손해 보는 것이 여러 가지입니다. 우리 교역자들이 나보다 나은 사람이 여기 많이 있지만, 전체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또 학생들도 한 번 데리고 가는 것이 유익이 될 것 같아서 희생은 좀 되지만 가려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습니까? 산 기도를 혼자 가려면 잘못 가게 되니까 한꺼번에 가는 것입니다. 특별히 신학생들이 많이 갔으면 좋겠습니다.

에스더가 기도하는 것은 모르드개한테서 배운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희생하는 정신을 가지고 생명을 내놓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가르쳐주니까 에스더가 왕후가 되어서도 늘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 가르쳐놓으면 늙도록 까지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주 귀합니다. 어렸을 때 배우면 늙어서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갔어도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유다 사람들을 위한 공적을 행함

본문 3절에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존대하여 그 허다한 형제에게 굄을 받고 그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그 모든 종족을 안위(安慰)하였더라”는 말은 백성의 후손들의 평화를 도모했다는 뜻입니다. 모르드개 때문에 그 후손들까지도 많은 덕을 본 것입니다. 몇 백 년 후의 이스라엘 백성의 후손들도 요셉의 덕택으로 평화를 누린 것처럼, 모르드개의 덕으로 그 후손들까지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물론 바벨론 나라도 모르드개 때문에 잘되었지만 그것은 다 부속물입니다. 원 목적은 바벨론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 즉, 유다 사람들이 잘되어나가고 안정되며 번영하고 창성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인 중에 존대하여 그 허다한 형제에게 굄을 받고’라고 한 것은 모르드개가 사랑과 호의, 환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높아지고자 하는 것은 잘못되었지만,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믿음으로 봉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어 존대 받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멸시와 천대를 받는 사람은 잘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 앞에 믿음을 쓰고 빛을 비추어서 소금의 직분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이 존대한다는 것은 좋은 일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그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는 것은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여 백성의 후손들에게 평화를 주었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님의 백성이 우리 때문에 이익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익이라는 것은 물질적인 이익이 아닙니다. 신앙적 유익, 교회의 부흥, 백성의 심령이 살아 평화로운 마음으로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마음의 화평을 누리고 영적 성장이 되어나가는 자리에 날마다 서야 되겠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모르드개와 같은 사람이 참 귀한 사람입니다. 우리도 모르드개와 같이, 에스더와 같은 사람을 많이 길러내고 생명을 내어놓고 기도하며 나가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모르드개와 같은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그 사람 하나 때문에 전체가 바로 된 것입니다.
나라도 바로 되고 유다인도 잘되고 자기도 잘되는 것입니다.

악을 용납하지 말고 진리대로 공적을 행해야 함

오늘날 우리도 끝까지 선한 싸움 싸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악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제거하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악한 하만과 하만의 열 아들, 그리고 그 이전의 대적들이 다 멸함을 당하였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처럼 악을 용납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지혜로 해야 합니다. 에스더가 왕에게 잔치에 두 번 나오라고 한 것과 왕에게 했던 모든 말들을 보면 참 지혜가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모든 일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모르드개가 있던 바사 나라도 잘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도 잘되었고, 바사 백성들도 기뻐하며 잘되었습니다. 특별히 유다 백성들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모르드개 때문에 죽을 가운데서 살아났고, 번영하며 창성해나갔습니다. 나아가 후손들에게도 평화가 전해졌습니다. 모르드개가 유다 사람들의 대적 아말렉 사람을 다 죽였으니, 후대에도 평안이 있게 된 것입니다. 또 모르드개가 공적을 세웠기 때문에 유다 사람들이 평안하게 된 것입니다. 유다 사람들이 평안하게 된 데는 첫째 대적을 다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후대에도 힘을 못 쓰는 것입니다. 자손까지 다 죽여서 뿌리를 다 뽑아놓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모르드개의 공적 때문에 어디를 가나 유다 사람들이 떳떳한 것입니다. 과거에도 요셉의 공적 때문에 후대 백 년 동안 유다 사람들이 대접을 받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이와 같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잘되도록 하나님 백성들의 이익을 도모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악을 뿌리까지 뽑아야 합니다. 악을 용납하지 말고 진리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비 진리를 용납하지 말고 그것을 지적해주고 대대손손, 해방신학이나 신비주의나 세속주의 같은 것과 대적하며 싸워나가야 합니다.
모르드개가 하만의 대적을 멸한 것처럼, 비 진리를 대적해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후손들도 싸우게 만들고 하나님의 교회를 번영하며 창성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는 교인들이 은혜를 받아 심령의 살이 찌고 배가 부르며, 점점 청성해나가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모르드개는 높아지려고 하지 않고 낮아지려고 해도 인격이 존귀해지고 높아졌습니다. 선한 일을 하니까 자동적으로 존귀해진 것입니다. 존대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존대를 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안 받으려고 할 때 존대가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나아갈 바입니다.
우리도 어디를 가든지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윗사람이 좋은 열매가 맺히도록 도와주고, 이방 나라에 대해서도 유익을 주며, 평안과 발전이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도 안정과 번영을 주어 창성시켜나가야 되겠습니다. 또 에스더와 같은 사람을 길러서 하나님의 일이 협력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자기는 왕궁 안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자기가 기른 사람은 왕궁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겸손과 순종과 기도로 합력해야 되겠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기른 사람이 군대 장관도 될 수 있고, 높은 지위를 얻어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통해 이 나라가 바로 되고 안정되며 평안하여 교회도 발전되어나가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있는 교회가 부흥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희생을 하더라도 교회가 부흥되고 발전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2017년 2월 17일 금요일

에스더 9:1-32 부림절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부림절
에스더 9:1-32

1아달 월 곧 십이 월 십삼 일은 왕의 조명을 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이 저희를 제어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를 미워 하는 자를 제어하게 된 그날에 2유다인들이 아하수에로 왕의 각 도, 각 읍에 모여 자기를 해하고자 하는 자를 죽이려 하니 모든 민족이 저희를 두려워하여 능히 막을 자가 없고 3각 도 모든 관원과 대신과 방백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우니 4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도에 퍼지더라 5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 6유다인이 또 도성 수산에서 오백 인을 죽이고 멸하고 7또 바산다다와 달본과 아스바다와 8보라다와 아달리야와 아리다다와 9바마스다와 아리새와 아리대와 왜사다 10곧 함므다다의 손자요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나 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11그 날에 도성 수산에
서 도륙한 자의 수효를 왕께 고하니 12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이르되 유다인이 도성 수산에서 이미 오백 인을 죽이고 멸하고 또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니 왕의 다른 도에서는 어떠하였겠느뇨 이제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또한 시행하겠노라 13에스더가 가로되 왕이 만일 선히 여기시거든 수산에 거하는 유다인으로 내일도 오늘날 조서대로 행하게 하시고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달게 하소서 14왕이 그대로 행하기를 허락하고 조서를 수산에 내리니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가 달리니라 15아달 월 십사 일에도 수산에 있는 유다인이 모여 또 삼백 인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16왕의 각 도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를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인을 도륙하되 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17아달월 십삼 일에 그 일을 행하였고 십사일에 쉬며 그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고 18수산에 거한 유다인은 십삼 일과 십사 일에 모였고 십오 일에 쉬며 이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긴지라 19그러므로 촌촌의 유다인 곧 성이 없는 고을 고을에 거하는 자들이 아달 월 십사 일로 경절을 삼아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더라 20모르드개가 이 일을 기록하고 아하수에로 왕의 각 도에 있는 모든 유다인에게 무론 원근하고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21한 규례를 세워 해마다 아달 월 십사 일과 십오 일을 지키라 22이 달 이날에 유다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23유다인이 자기들의 이미 시작한 대로 또는 모르드개의 보낸 글대로 계속하여 행하였으니 24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모든 유다인의 대적 하만이 유다인을 진멸하기를 꾀하고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저희를 죽이고 멸하려 하였으나 25에스더가 왕의 앞에 나아감을 인하여 왕이 조서를 내려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던 악한 꾀를 그 머리에 돌려보내어 하만과 그 여러 아들을 나무에 달게 하였으므로 26무리가 부르의 이름을 좇아 이 두 날을 부림이라 하고 유다인이 이 글의 모든 말과 이 일에 보고 당한 것을 인하여 27뜻을 정하고 자기와 자손과 자기와 화합한 자들이 해마다 그 기록한 정기에 이 두 날을 연하여 지켜 폐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28각 도,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일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 자손 중에서도 기념함이 폐하지 않게 하였더라 29아비하일의 딸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가 전권으로 글을 쓰고 부림에
대한 이 둘째 편지를 굳이 지키게 하되 30화평하고 진실한 말로 편지를 써서 아하수에로의 나라 일백이십칠 도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에게 보내어 31정한 기한에 이 부림일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는 유다인 모르드개와 왕후 에스더의 명한 바와 유다인이 금식하며 부르짖은 것을 인하여 자기와 자기 자손을 위하여 정한 바가 있음이더라 32에스더의 명령이 이 부림에 대한 일을 견고히 하였고 그 일이 책에 기록되었더라 

1. 유다인의 세력이 창대해짐

본문 1절에 “아달 월 곧 십이 월 십삼 일은 왕의 조명을 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이 저희를 제어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제어하게 된 그날에”라고 하였습니다. 십이 월 십삼 일은 유다인을 다 멸하기로 한 날입니다. 악한 하만이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다고 해서 꾀를 내어 유다 민족을 다 죽이는 법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하나님께서 그날에 유다인을 대적하는 대적을 죽이라는 법령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모르드개가 총리가 되어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려는 나무에 자기가 달려 죽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뒤집어진 것입니다. 십이 월 십삼 일에 바사 나라 전국에 있는 유다인을 다 죽이기로 했는데, 도리어 법이 바뀐 것입니다. 그날에 유다인의 대적들을 전부 죽이도록 법을 다시 공포하였습니다.

본문 2-3절에 “유다인들이 아하수에로 왕의 각 도, 각 읍에 모여 자기를 해하고자 하는 자를 죽이려 하니 모든 민족이 저희를 두려워하여 능히 막을 자가 없고 각 도 모든 관원과 대신과 방백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우니”라고 하였습니다. 다 유다인을 도왔습니다. 유다인을 돕는 데로 돌아왔습니다. 모르드개가 총리가 됐고 유다인이 왕후가 되었으니 모든 민족이 저희를 두려워하여 다 돌아왔습니다. 막을 자가 없고 각 도 모든 관원과 대신과 방백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왔습니다.

본문 4절에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도에 퍼지더라”고 하였습니다. 모르드개가 총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총리는 왕 다음입니다. 점점 창대하여 가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도에 전부 퍼지게 되었습니다.

2. 유다인을 해하려는 자들이 죽임을 당함

하나님께서 하만의 계획과 반대의 상황을 만들어주심

본문 5절에 “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라는 것은 대적들을 죽였다는 말입니다. 또 ‘자기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마음대로 행하고’라고 하였는데, 대적을 다 죽였다는 것입니다.

본문 6-10절에 “유다인이 또 도성 수산에서 오백 인을 죽이고 멸하고 또 바산다다와 달본과 아스바다와 보라다와 아달리야와 아리다다와 바마스다와 아리새와 아리대와 왜사다 곧 함므다다의 손자요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나 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도성 수산에서 오백 명을 죽였습니다. 수도가 수산인데, 그 수산이라는 도시에서 유다인의 대적 오백 명을 죽이고 하만의 열 아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만의 열 아들이 굉장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나라의 둘째 자리, 왕 다음 가는 총리의 아들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얼마나 훌륭하였겠습니까? 권세가 또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잘 양육을 받았을 것이고 공부도 좋은 학교에서 많이 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뛰어났을 것입니다. 인물도 잘 났을 것이고 영광이 떵떵 울리는 그러한 아들들이었을 것입니다. 말 한 마디만 하면 모든 것이 다 되는, 그런 하만의 열 아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훌륭해도 또 아무리 권세가 있어도 하루아침에 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전에 이기붕 씨 아들이 상당히 권세가 있었다고 하는데, 4.19 이후 하루아침에 다 죽고 말았습니다. 오토바이 타고 내려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아주 두려워하고, 그 사람이 한 번만 말하면 모든 것이 다 되고 하는 그러한 권세가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다 망한 것입니다. 아
무리 권세가 있고 인물이 잘 나고 공부를 많이 하여 세력이 세도, 그러한 것들은 다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은 다 없어집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25절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다 떨어지고 말라지고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 것은 다 쓸데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영원히 남게 됩니다.
그런데 유다인을 죽이려 하던 대적들을 다 죽였는데, 백성 전체가 다 대적은 아니고 대적들이 따로 있었던 모양입니다. “십이 월 십삼 일에 유다인을 죽이자”라고 하는, 반 유다인 단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다인을 죽이려 하는 모임들이 각 처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불량자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자들이 다 모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유다인을 죽이면 그들의 재산을 다 분배한다’는 법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본문에서 유다 사람들이 대적들의 재산에 손대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그 사람들이 유다인을 죽인 다음에 유다 사람들의 재산을 다 가지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다인은 재산 때문에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는 뜻에서 대적들의 재산에는 손을 안 댄 것 같습니다. 

하여간 하나님께서 반대로 역사하셨습니다. 유다인을 죽이려 하던 날, 자기네들이 다 죽었습니다. 남을 죽이려고 하면 제가 죽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죽을 결심을 하고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살았습니다. 자기네는 유다인을 죽이고 살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자기네들이 다 죽었습니다. 

창세기 12장 1-3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성도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십니다. 그리고 성도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저주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유다인들이 성도가 아닙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특별히 모르드개는 믿음을 잘 지키는 자인데, 그 모르드개를 죽이려던 사람은 자기가 죽게 되었습니다. 믿음 지키는 사람을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그리고 믿음 지키는 사람을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성경말씀대로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적들에게 죽게 되었을 때에 그 대적들을 하나님께서 멸해주시는 일, 도리어 대적들이 죽는 일이 때때로 있습니다.
과거에 일본 사람들이 해방되기 전에 한국에 있는 목사, 장로들을 다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 일본이 패전을 하여 항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뒤에 항복을 했더라면 목사들이 다 죽을 뻔했는데, 8월 15일에 일본이 항복을 했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이 다 죽게
되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항복한 다음에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많이 또 죽었습니다. 만주에서 관동군에 많이 죽고 일본 사람들이 피난 나오다 많이 죽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성도를 죽이려고 했는데, 도리어 법이 바뀌어서 그 사람들이 많이 죽은 것입니다. 그 일과 비슷합니다. 또 6.25 사변 때에 공산당들이 성도를 많이 죽일 예정에 있었는데, 유엔군이 올라오니까 도리어 공산당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때 공산당이 얼마나 많이 죽었습니까? 뒤집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유다인을 돕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각 도 모든 관원과 대신과 방백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우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대적들을 죽인 다음에도 유다인들이 평안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유다인을 죽이려던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불량자들 같습니다. 어느 지방에나 불량자들, 악한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아마도 그 사람들이 유다인을 죽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이 그 사람들을 죽이니까 모든 백성이 기뻐했습니다. 악한 자들이 다 없어져서 깨끗해졌다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잘했다’, 이렇게까지 된 것 같습니다. 악한 자들이 선한 자를 죽이려고 할 때에 백성들은 두려워하고, 악한 자를 죽이면 백성들은 기뻐합니다. 이와 같은 일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든지 성도를 보호하시며,

구원 운동이 잘 이루어져 나가게 하심

아무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 법, 메대 바사의 법이 아무리 변경할 수 없는 견고한 법이라고 해도, 그것이 하루아침에 다 뒤집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보호하시려고 에스더를 잘 기르셔서 왕후가 되게 만드셨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전 왕후가 남편을 거역하게 만드시고, 그녀를 파면하게 만드시고, 왕이 다른 사람을 택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에스더로 들어가게 만드시고, 왕을 죽이려고 모의하는 두 사람을 모르드개가 왕께 고발하게 만드시고, 일기책에 그 사건을 기록하게 만드셨습니다. 또 그 일기책을 읽으라고 해서 왕으로 하여금 예전의 사건을 듣게 만드시고, 모르드개에게 관직을 주게 하셨다가 하만이 죽은 다음에는 그 자리를 모르드개에게 주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보호하시려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하신 일입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성도 구원에 필요하기 때문에 다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든지 성도를 보호하려 하십니다. 성도를 보호해나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물론 어떤 때는 성도로 하여금 많은 핍박을 받도록 하나님께서 허하시지만, 어떤 때는 성도를 만능으로 보호하셔서 아무리 악한 법이라도 그 법을 다 고치시고 성도를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를 잘되게끔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무슨 사건을 통해서든지 하나님께서 구원 운동을 잘되게 만드십니다.
과거에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네로 황제 때부터 200년간 핍박했습니다. 신자들을 많이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러다가 한 300년쯤 되어서 콘스탄티노플 황제 때에 종교의 자유를 주어졌습니다. 그때에 모든 성도들이 음지에서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어 대세계선교회의인 니케아회의로부터 325년까지 계속 종교 회의를 열어서 기독론을 바로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갑자기 부흥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이렇게 놀라운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철두철미한 로마의 법이라고 해도 마지막에는 다 변경시켜놓으신 것입니다. 또 바벨론, 메대 바사의 법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다 변경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나라를 주관하시고, 왕을 주관하시고, 또 법을 주관하시며, 사람이 만든 모든 것을 다 주관하십니다.

만능의 하나님만 의지하며, 믿음으로 나가라

그러므로 우리는 만능의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으로 나가야 되겠습니다.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편이 되어주십니다. 악한 자를 하나님께서 심판해주십니다. 성도를 죽이려는 자가 죽고, 성도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로 해주십니다.
그러면 원수 갚는 것은 누구에게 있다고 했습니까? 로마서 12장 19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유다인을 죽이려던 사람을 죽이게 만드셨으니,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주신 것이 아닙니까? 그때에 하나님께서 해놓으신 일을 모든 사람들이 다 기뻐하고 즐거워 했습니다. 성도를 도와주는, 성도 편에 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는 일을 잘하면 뭐든지 다 문제없습니다. 믿는 일을 잘하면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고, 믿음을 잘 지키면 원수도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믿음을 잘 지키면 반대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저주하시고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만능이십니다. 나라의 왕도 주관하시고, 세상 법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보호해나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믿고 항상 믿음을 잘 지켜야 되겠습니다. 모르드개처럼 불의에 복종하지 말고 말씀에 굳게 서서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만사형통하게 하십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많아도 거기서 건져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본문 11-14절에, “그 날에 도성 수산에서 도륙한 자의 수효를 왕께 고하니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이르되 유다인이 도성 수산에서 이미 오백 인을 죽이고 멸하고 또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니 왕의 다른 도에서는 어떠하였겠느뇨 이제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또한 시행하겠노라 에스더가 가로되 왕이 만일 선히 여기시거든 수산에 거하는 유다인으로 내일도 오늘날 조서대로 행하게 하시고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달게 하소서 왕이 그대로 행하기를 허락하고 조서를 수산에 내리니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가 달리니라” 고 하였습니다. 아달월 십삼일에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고 믿음 지키는 것으로 인한 것과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으로 인해서 유다인을 다 죽이게 한 날입니다. 어느 날에 그들을 죽여야 하겠는가를 제비 뽑으니까 12월 13일로 나왔습니다. 이 날은 바사에 있는 모든 유다인을 다 죽이기로 공포한 날입니다. 그 때에 모르드개가 금식하며 기도하고 유다인들도 금식하며 재를 쓰고 기도하고 또 에스더도 기도하고 왕 앞에 나갔습니다. 왕에게 유다인이 다 멸하게 되었으며 나와 내 동족과 민족이 다 망하게 되었으니까 내 민족을 살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그 서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는 에스더의 말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유다인을 멸하지 않고 도리어 모르드개를 달고자 한 나무에 하만을 달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법령을 다시 정해서 아달 월은 십이 월인데 12월 13일 날 유다인을 죽이려고 하던 대적을 죽이라는 법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원래 12월 13일 날은 유다인들이 다 죽게 된 날인데 일이 바뀌어서 유다인은 죽음을 당한 데서 구원을 받고 도리어 대적들을 그 날에 죽이기로 했습니다. 법령을 공포했습니다. 수산 도성 수도에서는 유다인의 대적 오백 인을 죽였다는 말입니다. 각 처에서도 다 죽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왕이 에스더에게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으며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곧 시행하겠노라”고 하니까 에스더가 또 왕에게 간구하기를 “가로되 왕이 만일 선히 여기시거든 수산에 거하는 유다인으로 내일도 오늘날 조서대로 행하게 하시고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달게 하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가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달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 전날은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고 그 다음 15일에는 하만의 아들을 나무에 달았습니다. 그리고 14일에도 그 전날 13일과 같이 유다인의 대적을 멸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14일에도 유다인의 대적을 멸하고 유다인은 거기서 보호를 받았습니다. 

본문 14-16절에 “왕이 그대로 행하기를 허락하고 조서를 수산에 내리니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가 달리니라 아달 월 십사 일에도 수산에 있는 유다인이 모여 또 삼백 인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왕의 각 도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를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인을 도륙하되 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몇 명을 도륙했다고 했습니까? 유다인을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인을 다 죽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각 도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라고 하였는데, 유다인들이 모여서 생명을 보존했다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다 죽을 상황입니다. 대적들이 언제 유다 사람들을 죽일지 모릅니다. 물론 법은 그 사람들을 죽이도록 되어 있지만, 대적들은 자기들이 죽겠으니 유다인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이 한 데 모여서 기도하며 생명을 보존했습니다. 그리고 유다인을 죽이려던 그 사람들을 다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적들이 반항하지 못하도록 해주시고, 그 일을 하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3. 부림절을 제정함

아달 월 십삼 일과 십사 일에 모이고, 십오 일에는 쉼

본문 17-18절에 “아달 월 십삼 일에 그 일을 행하였고 십사 일에 쉬며 그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고 수산에 거한 유다인은 십삼 일과 십사 일에 모였고 십오 일에 쉬며 이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긴지라”고 하였습니다. 십삼 일과 십사 일은 기념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잔치를 베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십오 일은 쉬었습니다.

본문 19-22절에 “그러므로 촌촌의 유다인 곧 성이 없는 고을 고을에 거하는 자들이 아달 월 십사 일로 경절을 삼아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더라 모르드개가 이 일을 기록하고 아하수에로 왕의 각 도에 있는 모든 유다인에게 무론 원근하고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한 규례를 세워 해마다 아달 월 십사 일과 십오 일을 지키라 이 달 이날에 유다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모르드개가 명령을 내렸습니다. 아달 월, 12월 14일과 15일을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이 달의 이날에 유다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함을 얻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며 애통이 변하여 길하게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서로 예물을 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잔치를 베풀어주고 서로 예물을 주라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잔치를 베풀고 성도를 도와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합니까? 원래 그 날 다 죽을 처지에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살려주셨다는데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감사의 잔치를 베풀고 또 예물을 서로 보내라는 것입니다. 성도를 서로 도와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부림절 -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택한 백성들을 구원해주실 것을 예표하는 절기임

본문 23-28절에 “유다인이 자기들의 이미 시작한 대로 또는 모르드개의 보낸 글대로 계속하여 행하였으니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모든 유다인의 대적 하만이 유다인을 진멸하기를 꾀하고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저희를 죽이고 멸하려 하였으나 에스더가 왕의 앞에 나아감을 인하여 왕이 조서를 내려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던 악한 꾀를 그 머리에 돌려 보내어 하만과 그 여러 아들을 나무에 달게 하였으므로 무리가 부르의 이름을 좇아 이 두 날을 부림이라 하고 유다인이 이 글의 모든 말과 이 일에 보고 당한 것을 인하여 뜻을 정하고 자기와 자손과 자기와 화합한 자들이 해마다 그 기록한 정기에 이 두 날을 연하여 지켜 폐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각 도,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일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 자손 중에서도 기념함이 폐하지 않게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날이 부림절입니다. 즉, 아달 월 14일과 15일이 부림절입니다. 부림이라는 뜻은 제비를 뽑는다는 것입니다. 본래 그날은 제비를 뽑아서 유다인을 죽이려 한 날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날 유다인이 죽은 것이 아니라 유다인은 구원을 받고, 하만의 아들들과 또 유다의 대적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날은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으며,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좋은 날이라는 것입니다. 또 유다인들이 대적의 손에서 벗어나 해방을 맛본 날입니다. 그래서 부림절을 해마다 지키라고 하여 12월 14일과 15일, 두 날을 부림절로 계속 지켰습니다. 이 부림절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 자손 중에서도 기념함이 폐하지 않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이렇게 부림절을 내내 지켜라, 하는 뜻은 유다인들이 사망의 세력에 눌려 다 죽게 된 자리에서 해방이 되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된 이 날을 내내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며 예고하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죄로 인해 다 죽게 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해방시키셔서 대적에서 벗어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하게 될 것이라는 예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해방시켜주신 그날을 예표적인 의미를 담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유다인들에게 부림절을 주셨습니다.

과거 유다인들의 명절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예표하는 명절이 대부분입니다. 유월절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망을 면하게 해 주실 것을 예표하는 절기입니다. 또 속죄일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속죄해주신다는 절기이며, 맥추절은 성령께서 강림하신다는 것을 예표하는 절기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부림절도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원해주실 것을 예표하는 절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날을 잘 지키면서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바라보는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부림절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망과 죄의 세력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주시고 원수된 것을 다 멸하시며 십자가로 승리하시고 구원해주실 것을 예표해주는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 가운데서 해방시켜주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22절에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죄 값으로 다 멸망하게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셔서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죄악의 세력을 멸해주셨습니다. 또 우리의 원수된 것들을 십자가로 도말했다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4-15절에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거스리고 대적하던 것들을 다 십자가로 멸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승리하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구원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부림절 지키는 정신 - 우리를 구원해주신 예수님께 항상 감사하며,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그들과 화목하라

이 부림절의 큰 뜻이 참 좋습니다. 유다인들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했으며 이후로 바벨론이 메대와 바사가 되어서 여전히 약 칠십 년간 포로 신세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하만의 악한 꾀로 인해서 다 죽게 되었습니다. 모르드개의 믿음 지킨 일로 인해서 하만이 악한 꾀를
내어 유다인들이 다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에 에스더가 왕후가 되어 생명을 내놓고 왕에게 들어갔습니다. 에스더가 금식 기도를 하고, 또 유다인들 전체가 금식 기도를 하였습니다. 베옷을 입고 앉아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진정으로 기도하고 생명을 내어놓고 왕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 당시에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왕 앞에 나아가면 죽을 위험이 있습니다. 그때에 왕이 금홀을 내어 밀어주지 않으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여서 왕이 에스더에게 금홀을 내어 밀어주었고, 에스더는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에스더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에스더가 왕과 하만이 자신이 준비한 잔치에 올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왕이 하만과 잔치에 가서 에스더에게 소원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에스더가 내일 다시 왕과 하만을 위해 잔치를 베풀 텐데 그때에 참석하시면 말씀을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에 왕이 에스더에게 소원을 묻자 에스더가 말하기를 자기 민족이 다 멸망하게 되었으니 자기 민족을 구원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왕이 어떤 사람이 이런 꾀를 냈느냐 하고 물으니, 바로 하만이 그렇게 했다고 에스더가 답하였습니다. 이에 왕이 하만을 처벌하려고 할 때에, 옆에 있던 사람이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워놓은 나무가 있다고 하여, 왕이 하만을 거기에다 달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에스더의 역할은 생명을 내놓고 일하는 역할입니다. 에스더의 이 역할 때문에 유다 백성들이 죽지 않고 해방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내놓으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죽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놓고 아버지 앞에 나아가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림으로, 다 멸망 받게 될 우리들이 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부림절, 지금으로 말하면 구원 받은 것을 우리가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구원 받은 것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죄와 사망에서 구원 받은 일, 내가 마땅히 죽어야 할 것인데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내놓으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나아가 도리어 대적들을 하나님께서 멸해주셨습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에 대해서
항상 감사하는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화목해야 합니다. 늘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언제나 감사해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림절을 지키는 정신입니다. 본문에서 부림절은 다 망해서 죽게 된 유다인들이 구원 받은 날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생명을 내놓고 왕에게 나아가서 사정을 말하고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에 늘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함

하여간 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 날을 폐하지 말고 늘 감사하며 자손들까지 대대손손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십자가에 피 흘려 속죄의 제사를 드림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에 대해서 늘 감사해야하겠습니다. 늘 잊지 말고 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생활을 폐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자손들에게도 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생활을 가르쳐주고 기념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29-30절에 “아비하일의 딸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가 전권으로 글을 쓰고 부림에 대한 이 둘째 편지를 굳이 지키게 하되 화평하고 진실한 말로 편지를 써서 아하수에로의 나라 일백 이십 칠 도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에게 보내어”라고 하였습니다. 화평하고 진실한 말로 썼다는 것입니다. 

화평하고 진실한 말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에도 화평하고 진실한 말로 전도해야 됩니다. 농담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안 믿어 지옥에 가면 어떻게 하려 합니까?”, 진실함으로 이 사람이 진짜 지옥에 가면 큰일 나겠다 하면서, 화평하고 진실한 말을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화평하고 진실한 말로 부림절을 지키라는 편지를 써서 일백이십칠 도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들에게 보냈습니다.

본문 31절에 “정한 기한에 이 부림일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는 유다인 모르드개와 왕후 에스더의 명한 바와 유다인이 금식하며 부르짖은 것을 인하여 자기와 자기 자손을 위하여 정한 바가 있음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정한 기한이 언제입니까? 죽게 된 것을 살려준 날과 또 대
적을 멸하여 준 날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앞으로 구원해주실 날입니다. 

아무튼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해서 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신앙을 항상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그리스도의 구속에 늘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를 매일 힘입어서 구원해주신 것에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 유다인들이 금식하며 부르짖는 것으로 인해서 이날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을 기념하라는 것입니다. 다 죽게 되어서 금식하며 부르짖은 것과 그때 에스더가 생명을 내놓고 왕 앞에 나가서 구원해준 것, 그래서 자기가 멸하게 된 날 도리어 구원을 받았고 대적이 도리어 그 날에 멸망하게 된 것을 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32절에 “에스더의 명령이 이 부림에 대한 일을 견고히 하였고 그 일이 책에 기록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결론은 에스더의 명령이라고 했습니다. 에스더 때문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 때문에 받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가지시고 속죄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인하여, 다 죽어 멸망 받게 되었고 지옥에 가서 영원히 불구덩이 가운데서 고통 받게 된 우리들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날에 바로 우리들이 해방된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대적을 멸해주시고, 사망과 죄를 멸해주셨습니다. 원수된 것을 다 멸해주셨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우리를 죽을 데에서 해방시켜주신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해서 늘 깊이 생각하며 감사하고 기뻐해야겠습니다. 또 서로 예물을 보내며 가난한 사람 도와주는 일을 계속해서 해나가야겠습니다.

에스더 8:15-17 재상(宰相) 모르드개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재상(宰相) 모르드개
에스더 8:15-17

15모르드개가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면류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겉옷을 입고 왕의 앞에서 나오니 수산 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16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 17왕의 조명이 이르는 각 도, 각 읍에서 유다인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로 경절을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되는 자가 많더라

1. 모르드개가 재상이 된 것을 모든 사람들이 기뻐함

믿음을 지킨 모르드개

본문 15절에 “모르드개가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면류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 왕의 앞에서 나오니 수산 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수산 성은 왕이 있는 수도를 말합니다. 잠언 28장 12절에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는다고 하였는데, 믿음을 잘 지킨 의인 모르드개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왕의 다음 가는 자리로 높여놓으셨습니다. 또 푸르고 흰 조복과 자색 가는 베 겉옷은 영광의 옷들입니다. 그리고 모르드개는 금면류관을 썼다고 했습니다. 이제 수산 성이 즐거워하고 기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모르드개를 구원해서 높이셨는데, 그 이유는 모르드개가 믿음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에스더 3장 1-6절에 “그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모든 함께 있는 대신 위에 두니 대궐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복이 다 왕의 명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복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고하였더니 저희가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고하였더라 하만이 모르드개가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심히 노하더니 저희가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고한 고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경하다 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유다인의 대적, 아각 사람 하만

하만은 아각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높은 지위인 왕의 다음 자리, 총리가 되었습니다. 에스더 3장 3절에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복이 다 왕의 명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모르드개가 총리에게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하만이 모르드개뿐만 아니라 모르드개가 유다인인 것을 알고 유다인들까지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모르드개가 유다인임을 고했다고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유다 사람은 아각 사람(아말렉 사람)에게 굴복하여 절할 수 없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무엘상 15장 2-3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의 대적입니다. 또 사무엘상 15장 32-33절에는 “사무엘이 가로되 너희는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내게로 이끌어오라 하였더니 아각이 즐거이 오며 가로되 진실로 사망이 괴로움이 지났도다 하니라 사무엘이 가로되 네 칼이 여인들로 무자케 한 것같이 여인 중 네 어미가 무자하리라 하고 그가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이 아각 왕을 죽였습니다. 하만이 아각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아말렉 사람 아각 왕의 후손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의 대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각 사람 하만은 지위로 보면 총리이므로, 모르드개는 마땅히 꿇어 절해야 합니다. 그러나 절하지 않은 것은 종교적인 믿음에 기인하여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아말렉 사람, 아각 사람은 다 이스라엘의 대적입니다. 아무튼 모르드개가 절하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다 권면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나는 유다인이므로 못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르드개가 유다 사람으로서 아각 사람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 것은 신앙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느라 하만에게 절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하만에게 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절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고 믿음이 아닙니다. 절하면 마귀에게 굴복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유다 사람들을 다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모르드개의 결사 각오하는 신앙

에스더 3장 9절에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저희를 진멸 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부쳐 왕의 부고에 드리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만이 이렇게 많은 돈을 주면서 유다 백성들을 다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르드개가 믿음을 지키려고 하만에게 절을 하지 않을 때에는 결사각오를 하고 하지 않은 것입니다. 총리는 왕의 다음 가는 사람인데, 그 총리에게 꿇어 절하지 아니하면 자신을 가만히 두겠습니까? 왕에게 가서 말을 하면 자신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을 하고 신앙 양심을 지키며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러자 하만이 유다인을 잡아 죽이려고 꾀를 내어서 왕이 도장을 찍어 그 해 12월 13일에 유다 사람들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 잡아 죽이도록 법령을 공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키면 일시적인 핍박과 환난이 옵니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하였는데, 경건하게 살고자 하며 믿음을 지키면 이런 환난이 옵니다. 그러나 그때 온 유다인 전체가 다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에스더를 이때에 한 몫 쓰시려고 하나님께서 왕후가 되게 하셨다고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이 사정을 알게 하였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에스더의 신앙

에스더 4장 11-16절에 “왕의 신복과 왕의 각 도 백성이 다 알거니와 무론 남녀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홀을 내어 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그가 에스더의 말로 모르드개에게 고하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당신은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가 최선을 다했습니다. 모르드개도 금식 기도를 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왕후 에스더도 삼 일간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고 금식 기도를 하며 모든 힘을 다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내놓고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면서 왕에게 나가니 왕이 금홀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를 죽이지 않고 그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에스더가 하만을 두 번씩이나 왕과 같이 연회석에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왕이 “네 소원이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에스더가 본래 전할 말을 하지 않고 다음날 다시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왕이 다시 가서 “소원이 무엇이뇨?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준다”고 하였습니다.
에스더 7장 4-6절 상반절에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만일 우리가 노비로 팔렸다면 내가 잠잠 하였으리이다 그래도 대적이 왕의 손해를 보충하지 못하였으리이다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일러 가로되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뇨 에스더가 가로되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왕이 노하여 뜰로 나갔는데, 하만은 에스더 앞에 엎드려 구원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왕이 돌아와서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려 하느냐”고 하자 사람들이 하만의 얼굴을 싸고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옆에 있다가 왕에게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기 위해서 하만이 자기 집에 고가 오십 규빗이나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다고 말해 주었고, 이에 왕이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워놓은 나무에 하만이 달려서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주심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만이 믿음을 지키는 모르드개와 유다 백성들을 다 죽이려고 했지만,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셨습니다. 또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생명을 내놓고 왕에게 나갔는데, 모든 정성과 힘을 다 기울여서 나가 때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만을 죽이시고 하만의 아들들을 나무에 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을 결심을 하고 나간 모르드개를 총리로 높이셨고, 또 유다인을 죽이려고 하던 12월 13일에 하만의 계획과는 반대의 상황을 이끌어내셨습니다. 즉, 유다인을 죽이려고 하던 대적들을 죽이게 하도록 법령을 바꾸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유다인의 대적들로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르드개는 하나님께서 높여놓으신 것입니다.
에스더 8장 1-2절에 “당일에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니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 왕께 고한 고로 모르드개가 왕의 앞에 나아오니 왕이 하만에게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하만에게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 반지에는 왕의 도장이 새겨져 있어서 그것만 찍으면 변경치 못하는 법률이 됩니다. 즉, 왕이 모르드개에게 왕의 권세를 준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모르드개를 높여서 존귀하게 해주시고 금면류관을 씌워주시며 자색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높여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을 내놓고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십니다. 그러나 만일 모르드개가 믿음을 안 지키고 하만에게 무릎을 꿇고 절했더라면 일이 다 틀어집니다.

신앙 양심을 양보하여 굴복하지 않을 사람에게 굴복하면 모르드개가 신앙을 다 팔아먹은 것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가 떠날 것이고, 유다인의 대적 하만이 총리가 되어서 유다인을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유다인을 다 죽였을 것이고 모르드개도 죽었을 것입니다. 즉,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을 해도, 하만은 유다인을 미워하는 대적이므로, 결국 모르드개와 유다 사람들은 죽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도 어떤 시점에 가면 다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을 하지 않아야 할 때에는 절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길 것은 이겨야 합니다. 절을 하는 것은 우상 숭배와 같은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하나님의 보호가 떠납니다. 하나님께서 원수에게 내맡기십니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했다면 그 사람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양보하지 말아야 할 때에 양보하고, 절하지 않을 때에 절하면서 굴복하면 시험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마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나갈 때에 하나님의 보호가 떠나게 됩니다. 그것은 유다인 전체를 마귀에게 내주는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신앙을 지키고 절을 하지 아니하므로 모르드개도 살고 유다인 전체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스라엘 구원 운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하지 않아야 할 때에는 절하지 않아야 합니다. 두아디라 교회가 이세벨을 용납했기 때문에 침상에 던지며 사망으로 자녀를 죽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절하지 않으려면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하면서 생명을 내놓고 나가야 합니다.
또 에스더는 왕이 부르지 않았을 때에 왕 앞에 나가면 죽습니다. 그러므로 금식 기도를 사흘하고서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하고 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죽이지 않으시고 에스더의 말을 왕이 들어주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만을 나무에 달게 하시고 반대 법령을 내어서 유다인을 죽이려고 하던 12월 13일에 이제는 유다인의 대적을 죽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르드개는 높이신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는 자가 결국 복됨

본문 16-17절에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 왕의 조명이 이르는 각 도, 각 읍에서 유다인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로 경절을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되는 자가 많더라”고 하였습니다.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존경하고 두려워하여 “나도 유다인이 되어야겠다”라고 하면서 유다인에게로 돌아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믿음 지키는 자를 높여주시고 존귀하게 해주십니다. 또 믿음을 지키면 자기만 살 뿐 아니라 자기 민족이 살고, 가족이 삽니다. 

그러나 믿음을 안 지키면 그 반대입니다. 믿음을 안 지키고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했다면 자기도 죽고, 유다 사람들도 결국 죽게 될 것입니다. 유다 민족이 대적의 수하에 들어가게 되므로, 대적 하만이 유다사람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느 시점에 가면 유다인들이 다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보호해주시고 악한 자가 손을 대지 못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또 원수도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그리고 믿음 지킨 사람을 높여주시고 모든 사람이 존경하며 그에게 굴복하도록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르드개를 높여주셔서 모든 사람들이 그를 기뻐하고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앞에 와서 무릎을 꿇게 만드시고 “주라”고 칭하여 복종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이렇게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그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믿음을 지키면 이와 같이 되게 해주시는 것을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알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에스더 8:1-14 모르드개의 조서(詔書)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모르드개의 조서(詔書)
에스더 8:1-14

1당일에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니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 왕께 고한 고로 모르드개가 왕의 앞에 나아오니 2왕이 하만에게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로 하만의 집을 주관하게 하니라 3에스더가 다시 왕의 앞에서 말씀하며 왕의 발 아래 엎드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하기를 울며 구하니 4왕이 에스더를 향하여 금홀을 내어 미는지라 에스더가 일어나 왕의 앞에 서서 5가로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며 내가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고 또 왕이 이 일을 선히 여기시며 나를 기쁘게 보실찐대 조서를 내리사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왕의 각 도에 있는 유다인을 멸하려고 꾀하고 쓴 조서를 취소하소서 6내가 어찌 내 민족의 화 당함을 참아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참아 보리이까 7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하만이 유다인을 살해하려 하므
로 나무에 달렸고 내가 그 집으로 에스더에게 주었으니 8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찌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취소할 수 없음이니라 9그때 시완 월 곧 삼 월 이십삼 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고 무릇 모르드개의 시키는 대로 조서를 써서 인도로부터 구스까지의 일백 이십칠 도 유다인과 대신과 방백과 관원에게 전할쌔 각 도의 문자와 각 민족의 방언과 유다인의 문자와 방언대로 쓰되 10아하수에로 왕의 명의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치고 그 조서를 역졸들에게 부쳐 전하게 하니 저희는 왕궁에서 길러서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는 자들이라 11조서에는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저희로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도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저희를 치려 하는 자와 그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12아하수에로 왕의 각 도에서 아달 월 곧 십이 월 십삼 일 하루 동안에 하게 하였고 13이 조서 초본을 각 도에 전하고 각 민족에게 반포하고 유다인으로 예비하였다가 그날에 대적에게 원수를 갚게 한지라 14왕의 명이 심히 급하매 역졸이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고 빨리 나가고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라

1. 모르드개가 하만을 대신하여 재상이 됨

믿음 지킨 성도를 높이시는 하나님

본문 1절에 “당일에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니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 왕께 고한 고로 모르드개가 왕의 앞에 나아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 7장 9-10절에 “왕을 모신 내시 중에 하르보나가 왕에게 아뢰되 왕을 위하여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고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이 가로되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하매 모르드개를 달고자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만을 나무에 달아서 죽였습니다.
모르드개는 유다 사람이고 믿음을 잘 지킨 충성된 성도입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고가 오십 규빗이나 되는 큰 나무에 달아 죽이려고 자기 집에다 그것을 세워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에 하만 자신이 달려 죽었습니다. 성도를 죽이려고 했던 하만이 그 나무에 달려 죽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 날에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 사람들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었습니다. 임의로 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자신의 사촌 오빠라는 것을 왕께 고했습니다. 이때 왕은 모르드개를 아주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모르드개가 고발해서 자신이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르드개가 왕의 앞에 나아왔습니다. 

본문 2절에 “왕이 하만에게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로 하만의 집을 주관하게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하만에게 거둔 반지를 모르드개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 하만에게 거둔 반지는 왕의 도장입니다. 그 당시에는 반지에다 도장을 새겨서 직분을 나타냈습니다. 왜냐하면 도장을 잃어버릴까봐 반지에 새겨 손에 늘 끼고 있게 한 것입니다. 아무튼 왕이 도장이 새겨진 반지를 모르드개에게 주었습니다. 그 도장을 조서에 찍으면 다시 그 내용을 변경치 못합니다. 모든 법은 그 도장을 찍어서 반포하는 것입니다.

2. 에스더가 왕에게 하만의 꾀로 만든 조서를 취소해달라고 간청함

본문 3-6절에 “에스더가 다시 왕의 앞에서 말씀하며 왕의 발 아래 엎드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하기를 울며 구하니 왕이 에스더를 향하여 금홀을 내어 미는지라 에스더가 일어나 왕의 앞에 서서 가로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며 내가 왕의 목전에 은
혜를 입었고 또 왕이 이 일을 선히 여기시며 나를 기쁘게 보실찐대 조서를 내리사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왕의 각 도에 있는 유다인을 멸하려고 꾀하고 쓴 조서를 취소하소서 내가 어찌 내 민족의 화 당함을 참아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참아 보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가 왕에게 또 갔는데 울면서 나아갔습니다. 하만이 유다인을 죽이려고 왕의 조서를 내린 것이 있는데, 그것을 취소해달라고 나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도 왕이 에스더에게 금홀을 내밀었습니다.
당시에 왕이 부르지 않았을 때에 그 앞에 나가게 되면 다 죽게 되나 왕이 금홀을 내밀면 안 죽는 것입니다. 하여간 왕 앞에 나아간 에스더가 울면서 왕에게 구하기를 “조서를 내리사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왕의 각 도에 있는 유다인을 멸하려고 꾀하고 쓴 조서를 취소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왕이 에스더를 향해서 금홀을 내밀었습니다.

3. 왕이 에스더의 요구를 들어줌

본문 7-8절에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하만이 유다인을 살해하려 하므로 나무에 달렸고 내가 그 집으로 에스더에게 주었으니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찌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취소할 수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가 “내가 어찌 내 민족의 화 당함을 참아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참아 보리이까”라고 하니 아하수에로 왕이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찌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취소할 수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반지로 인을 친 것은 변경함이 없으므로 유다인에게 유리하도록 조서를 써서 왕의 도장을 찍어 반포하라는 것입니다.

4. 유다인을 해하려 하는 자를 죽이라는 조서를 반포함

정반대의 내용이 되어 버린 왕의 조서

본문 9-12절에 “그때 시완 월 곧 삼 월 이십삼 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고 무릇 모르드개의 시키는 대로 조서를 써서 인도로부터 구스까지의 일백 이십 칠 도 유다인과 대신과 방백과 관원에게 전할새 각 도의 문자와 각 민족의 방언과 유다인의 문자와 방언대로 쓰되 아하수에로 왕의 명의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치고 그 조서를 역졸들에게 부쳐 전하게 하니 저희는 왕궁에서 길러서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는 자들이라 조서에는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저희로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도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저희를 치려 하는 자와 그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아하수에로 왕의 각 도에서 아달 월 곧 십이 월 십삼 일 하루 동안에 하게 하였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르드개가 왕의 도장을 찍어서 조서를 다시 반포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본문 11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조서에는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저희로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도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저희를 치려 하는 자와 그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아하수에로 왕의 각 도에서 아달 월 곧 십이 월 십삼 일 하루 동안에 하게 하였고”라는 것이었습니다. 

전에 하만이 유다 사람들을 죽이려고 꾀를 내어 왕에게 허락을 받아서 전국에 조서를 반포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날짜는 에스더 3장 13절에 ‘십이 월 십삼 일 하루 동안’이라고 하였고, 그 내용은 ‘모든 유다인을 노소나 어린아이나 부녀를 무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다인을 죽이려고 하던 사람들을 다 죽이라는 조서가 내려진 것입니다. 12월 13일, 유다 사람들을 죽이려고 하만이 법률을 공포한 그날에 도리어 반대로 유다인은 보호를 받고 유다인을 해하려고 하던 사람들과 그들의 처자는 죽이고 진멸하며 그 재산을 다 탈취하도록 했습니다. 정반대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하만이 꾀를 내어 조서를 작성했고 왕이 허락을 하여 유다인은 그 나라의 법령으로 다 죽게 되었었습니다. 메대 바사에 있는 모든 유다 사람들은 하루 동안에 다 진멸을 당할 처지에 있었습니다.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다 죽임을 당하며 재산은 몰수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와는 반대로 일하셨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하만은 죽이시고 유다 사람들은 살게 하셨습니다. 그날에 유다인을 죽이려고 하던 대적들은 그 하루 동안에 당사자들과 처자들을 죽이고 재산을 다 탈취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남을 죽이려고 하면 자기가 죽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오십 규빗이 되는 나무를 세워놓았는데, 그 나무에 하만 자신이 달려 죽었습니다. 오십 규빗이면 한 규빗에 50cm로 계산할 때에 25m에 해당합니다. 보통 전주가 10m이니까 전주 두 개 반이나 되는
높이입니다. 그러므로 굉장히 높은 나무를 세워놓은 것입니다. 그렇게 높은 나무를 세워놓고 그 위에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 믿음을 지키는 성도인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모르드개를 살리시고 하만을 거기에 달아 죽게 만드신 것입니다. 

또 하만이 꾀를 내어 왕의 도장으로 법령을 만들어서 12월 13일 하루 동안 전국에 있는 유다인 중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전부 다 죽여 말살을 시키게 만들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와 반대로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다인은 그날 보호를 받고 유다인의 대적, 유다인을 죽이려고 하던 사람들은 그날 다 죽임을 당하고 재산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이렇게 구원해주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는 보호해주시고 성도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은 다 죽이셨습니다. 대적은 하나님께서 죽이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도가 다 죽을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안 죽이시면 안 죽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면 다 심판을 받게 됩니다.

만능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

예전에 8.15 이틀 후에 우리 한국에 있는 목사와 장로를 일본 사람들이 다 죽이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틀 전에 해방이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목사와 장로를 다 죽이라는 명령이 비밀리에 내려왔었는데, 죽이는 방법은 목사와 장로를 강습회를 한다고 하여 다 모이
게 하고, 굴을 파서 반공연습을 한다고 하면서 싸이렌을 불면 모두 굴 속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거기에 목사와 장로들로 하여금 다 들어가게 하고서, 그 다음으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이도록 계획했다는 것입니다. 굴 문을 막고 거기에 연기를 피워서 보내거나 전기를 쏴서 죽이도록 해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틀만 있었으면 다 죽었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8월 15일에 일본 사람들이 항복을 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렇게 역사하심으로 한국에 있는 목사와 장로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모르드개 때나 우리 한국의 1945년 해방 때나 다 같은 것입니다. 이런 일이 세계 각처 여러 곳에서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만능입니다. 성도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죽이시고 성도는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보호해주시는 것입니다. 믿음만 지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구원해주십니다. 그러나 믿음을 안 지키고, 살려고 믿음을 배반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죽이십니다. 살려고 믿음을 배반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죽이시고, 생명을 내놓고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살리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참 기이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이 복됨

그리고 안식일 지키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복을 내려 주십니다. 느헤미야 13장 22절에 “내가 또 레위 사람들을 명하여 몸을 정결케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로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옵시고 주의 큰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사람을 기억해주십니다. 안식일을 지킬 수 없을 때, 시험을 이기고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억해주십니다. 그리고 큰 은혜를 주시고 아껴 주셔서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모르드개가 믿음을 지키므로 하나님께서 모르드개는 살리시고 하만은 모르드개를 달려고 하던 나무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12월 13일에 유다인을 다 멸망시키려고 하였는데 도리어 유다인을 죽이려고 하던 대적들을 다 죽이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라는 법령이 내렸습니다. 그때 메대 바사의 법은 한 번 정하면 변개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만이 변개할 수 없는 법을 공포하였어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변경시키셔서 도리어 대적을 멸망시키시고 유다인을 구원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참 기이한 역사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해주실지 모르지만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역사해주시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안식일을 지키면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기억해주시고 큰 은혜를 주시며 아껴주십니다.

준마(駿馬)로 급히 왕의 조서를 온 나라에 전달함

본문 13-14절에 “이 조서 초본을 각 도에 전하고 각 민족에게 반포하고 유다인으로 예비하였다가 그날에 대적에게 원수를 갚게 한지라 왕의 명이 심히 급하매 역졸이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고 빨리 나가고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라”고 하였습니다. 역졸이 왕의
준마를 타고 급히 나갔다고 하였는데, 그때에는 말을 타고 소식을 전달하였습니다. 요새는 전화나 전기 등 여러 가지 전달 방식이 있지만, 옛날에는 사람이 직접 가서 전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이 나라가 일백이십칠 도이므로, 멀리 인도까지 소식을 전하려면, 그 거리가 상당합니다. 그래서 왕이 좋은 말들을 먹이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역졸들을 말에 태워 각처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서울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지방까지 그것을 전하여야 되니까 사람이 말을 타고 가야 했습니다. 말을 타고 왕의 조서나 편지, 그외 국가의 명령을 기록한 문서를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말이 몇 시간 달려가면 기운이 없어지니 중간에 말을 먹이는 데가
있어서 말을 바꿔 탔습니다. 또 몇 시간 말을 몰다가 힘이 들어 잘 가지 못하면 또 바꿔 타는 것입니다. 서울 양재동에 말죽거리라고 있었는데, 그곳은 월급을 받고 국가의 말을 먹이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이 여러 군데 있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말을 바꿔 타고 가면 금방 가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천 리인데, 자동차로 다섯 시간 이상이 걸린다고 하면 말은 열 다섯 시간이면 갈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편지를 가지고 부산까지 목포까지 열다섯 시간이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빠릅니까? 이 사람들도 그때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왕이 준
마를 두어서 왕의 조서를 각 도에 전달하였습니다. 조서의 내용은 유다인은 보호하고 대적들은 죽이며 그 재산을 몰수하되 12월 13일 하루 동안에 다 그렇게 하라는 법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나라가 커도 한 이틀이면 다 전파가 되었습니다.

에스더 8:1-6 에스더가 왕에게 하만의 조서를 취소해달라고 간청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에스더가 왕에게 하만의 조서를 취소해달라고 간청함
에스더 8:1-6

1당일에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니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 왕께 고한 고로 모르드개가 왕의 앞에 나아오니 2왕이 하만에게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로 하만의 집을 주관하게 하니라 3에스더가 다시 왕의 앞에서 말씀하며 왕의 발 아래 엎드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하기를 울며 구하니 4왕이 에스더를 향하여 금홀을 내어 미는지라 에스더가 일어나 왕의 앞에 서서 5가로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며 내가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고 또 왕이 이 일을 선히 여기시며 나를 기쁘게 보실찐대 조서를 내리사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왕의 각 도에 있는 유다인을 멸하려고 꾀하고 쓴 조서를 취소하소서 6내가 어찌 내 민족의 화 당함을 참아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참아 보리이까

1. 모르드개가 하만을 대신하여 재상이 됨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

본문 1-2절에 “당일에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니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 왕께 고한 고로 모르드개가 왕의 앞에 나아오니 왕이 하만에게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로 하만의 집을 주관하게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하만의 집을 에스더에게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또 하만의 재산도 주었습니다. 하만의 재산이 상당히 많았을 것입니다. 하만이 악한 짓을 해서 나라의 첫째 자리에 앉았는데, 얼마나 재산을 많이 모았겠습니까? 그 재산을 다 에스더에게 주었고 그 집도 에스더에게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자가 모아놓은 재산을 의인이 가진다고 하였습니다. 

잠언 13장 22절에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는 것이 됩니다. 또 전도서 2장 26절에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고 하였습니다. 죄인들이 재산을 모아 쌓지만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고 하였고 또 ‘여호와를 기뻐하는 자를 위해서 쌓는 것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만이 아무리 악한 짓을 많이 해서 재산을 많이 모아 쌓아놓았어도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의인인 에스더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켜야지 재산은 쓸 데가 없습니다. 재산을 아무리 많이 쌓아놓아도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 그 재산이 자기 것이 되지 못합니다. 또 자손에게 재산을 물려주어도 그 자손이 재산을 지키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손들에게 믿음을 물려주어야 하며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 찾는 것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재산을 물려주면 얼마 못 갑니다. 자기가 실력이 있어야지, 실력 없는 사람이 재산을 가지면 도리어 방탕하게 되고 도리어 올무가 될 염려가 많습니다. 

명예나 권세를 탐하지 않은 에스더와 모르드개

그 다음에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의 오라비요, 자기를 길러준 사람이요, 은인이요, 선생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르드개가 자신을 아버지와 같이 길러주었다고 왕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전에 말하지 않고 지금에 와서 말하는 것입니까?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 7년에 왕후가 되었는데, 지금은 왕 12년이므로 5년 동안 모르드개가 자신의 친척이라는 말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에스더나 모르드개가 무슨 명예나 권세를 탐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왕후인 자신의 말 한 마디면 왕이 모르드개를 등용할 수 있는데, 에스더가 5년 동안이나 전혀 그러한 말을 하지 않고 나간 것입니다. 모르드개도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원치 않고, 그저 자기 자리에서 믿음을 지키는 것을 원했습니다.
이것은 수넴 여자의 신앙과 같은 것입니다. 열왕기하 4장 13절에 엘리야가 수넴 여자에게 왕이나 군대 장관에게 말해서 관직 받기를 원하느냐고 하니까 수넴 여자가 말하기를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고 하니까 그 여인이 또 말하기를 16절에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 여자가 아들을 낳지 못하는데 보통 여자 같으면 명년 이때에 아들을 낳는다고 하면 상당히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넴 여인은 “아니로소이다(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속이지 마옵소서 - 믿음에 힘을 쓴 증거임

그런데 ‘속이지 말라’고 하는 말의 뜻은 아들을 낳으면 거기에 마음을 다 빼앗겨서, 즉 속아서 믿음을 지키지 못할까봐 아들 낳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 보통 아들이 없다가 아들을 하나 낳으면 거기에 마음을 다 빼앗기는 수가 많습니다. 특별히 여자들이 그렇습니
다. 젊은 처녀들이 처녀 때에는 믿음이 조금 있었는데 시집을 가서 아이를 하나 낳으면 그 아이에게 믿음을 다 빼앗기고, 다 팔아먹어서 믿음이 하나도 없어집니다. 그래서 믿을 수 없는 것이 세 가지인데, 그중의 하나가 처녀들 믿음이라고 합니다. 부자의 재산, 노인의 건강, 처녀들의 신앙, 이 3가지가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처녀들이 믿음이 좋습니다. 상당히 믿음 좋은 처녀들이 많습니다. 밤낮 예배당에서 기도하고 일심정력을 다 하지만 시집을 가면 뒤로 물러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더러 있으나 드물고, 보통은 믿음이 약해집니다. 아이를 하나 낳으면 속아서 그 아이를 쳐다보느라 믿음을 다 팔아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수넴 여자는 얼마나 좋은 믿음입니까? 아들이 없을 때에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100명 가운데 99명일 것입니다. 큰 소리로 기도하는 사람도 큰 소리로 다른 기도를 다 하다가 아들 낳게 해달라는 기도는 누가 들을까봐 속으로 소곤소곤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수넴 여자는 자기 자신을 알기 때문에 속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을 잘 압니다. 수넴 여자가 믿음이 얼마나 좋습니까? 자기 자신을 아는데 아무래도 아이가 있으면 자기가 속을 것 같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없는 것을 감사하고 아이가 있어서 속는 것보다 늘 낫게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교통하고 더불어 즐거워하면서 나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하므로 속이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수넴 여인이 아이가 죽은 다음에 “내가 속이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한 것을 보면 아이를 낳고는 속아 넘어가서 마음을 다 빼앗기고 마귀에게 걸려들어서 믿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 즉 ‘속이지 마옵소서’는 수넴 여인이 신앙에 잠이 들어서 믿는 일을 못하고 마귀에게 걸려들까봐,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늘 힘을 쓴 증거입니다. 

수넴 여인은 평소에 늘 힘을 쓴 것입니다. ‘내가 신앙에 잠이 들면 안 된다. 무엇에 내가 마음을 빼앗기면 안 된다. 세상 것이 오면 거기에 마음을 빼앗길 염려가 많다’고 하면서 자기가 연약한 것을 알고 사전에 미리부터 마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자기를 단속한 것입니다. 아들이 있는 것이 좋지만 그것을 이길 만한 실력이 자기에게 없으므로 미리부터 결심을 하고 속지 않으려고 단속을 하고 나갔던 것입니다. 우리도 자신에게 속을 만한 가능성이 있는 것을 알고 미리부터 자기를 단속하며 ‘내가 속으면 안 되겠다’고 하며 속지 않으려고 결심을 해야 합니다. 마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또 미리부터 속을 만한 것을 갖지 않고, 속을 만한 것에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합니다. 속을 만한 것에 취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다 속을 만한 가능성이 있으므로, 사전에 미리 방어해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사전에 방어해야 합니다. 음행을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음행 죄에 빠질 만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죄는 싸워서 이기라고 했지만 음행 죄를 이기는 방법은 피하는 것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피하면 이길 수가 있고 피하지 못하면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연약한 것을 알고 항상 마귀에게 속지 않도록 사전에 단속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기회를 주지 않아야 합니다. 로마서 7장에 ‘죄가 기회를 타고 들어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사전에 방비를 해나가야 합니다.
수넴 여자도 아이를 낳으면 좋기는 하겠지만 정작 아이를 낳으면 속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원치 않은 것입니다. 사전에 방지해나간 것입니다. 또 돈이 있으면 좋기는 좋지만 방탕하기 쉽고 속을 염려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도 사전에 방지해나가는 것입니다.
살다가 돈이 많아지면 그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놓고 거기에 속지 않으며 일체의 비결을 배워나가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도 마귀에게 걸려들 가능성이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에 방지해나가고 기회를 주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없어도 믿음을 지키는 것이 낫지, 아들이 있다가 망하면 뭐하겠습니까? 또 돈이 없어도 믿음을 지키는 것이 낫지, 돈을 가지고 망하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사전에 미리 방지해나가는 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방심하고 나가다가는 마귀가 언제 들어올지 모릅니다. 마귀는 방심하면 언제든지 들어오므로 잠시라도 방심하지 말고, 항상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속을 기회를 주지 말고, 언제나 사전에 방지해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모르드개가 이제는 하만에게 주었던 왕의 반지를 받아서 하만의 집을 주관하게 되었고 온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에스더가 모르드개가 자기의 삼촌이라는 것을 왕에게 말 한 마디만 했어도 그때에 등용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던 것을 보면, 모르드개
는 왕 앞에서 높은 자리를 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더가 왕후가 되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문지기 직분으로 만족하고 자기의 믿음을 잘 지켜나갔습니다. 모르드개처럼 좋은 자리를 원하지 않고, 현재 있는 곳에서 만족하고 감사하며 거기에서 믿음을 잘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옮기실 때까지는 옮기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옮겨 주시면 아골 골짜기나 소돔 같은 거리나 니느웨 같이 고난이 막심한 곳에도 가고, 하나님께서 옮겨주지 않으시면 옮겨주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이젠 옮겨야 되겠다 할 때에는 정당하게 옮기는 것입니다. 자기 일신상의 안일주의나 부요나 명예를 탐해서 옮긴다고 하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명예나 좋은 자리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는 것이 중요하지, 좋은 자리는 뭐합니까? 안일주의로 평안히 지내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람의 가치는 고난을 당하면서 자기의 본분을 다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평안히 지내는 것은 다 썩어진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하만이 죽은 후에 왕이 “누가 이 나라를 다스려야 하겠느냐?”고 할 때에 에스더가 왕에게 모르드개로 총리가 되게 해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왕은 모르드개가 전에 충성된 말로 반역자들을 고발했었던 것을 기억하며, 충성된 자를 하만의 자리에 앉혀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를 하만의 자리에 대신 앉혔을 것입니다. 그리고 도장이 새겨진 왕의 반지를 맡을 사람으로 모르드개를 택해서 그에게 반지를 맡겼습니다. 도장을 맡기는 사람은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전적으로 신뢰하고 틀림이 없으며 정직하고 다 맡겨도 괜찮을 사람에게 맡기는 것인데, 모르드개에게 맡긴 것입니다.

2. 에스더가 왕에게 하만의 꾀로 만든 조서를 취소해달라고 간청함

에스더의 눈물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눈물임

본문 3절에 “에스더가 다시 왕의 앞에서 말씀하며 왕의 발 아래 엎드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하기를 울며 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가 이제는 두 번째 왕에게 나아가서 간구했습니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하기를 울며 구하니’라고 하였는데, 첫 번째에는 울지 않고 잔치에 와달라고 청했고, 두 번째 잔치할 때에도 자기의 목숨과 자기 민족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에스더가 이번에는 울면서 간구하였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왕의 법률 때문에 다 죽게 된 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그런 것입니다. 하만은 죽였지만 왕의 법률은 그대로 있기 때문에 12월 13일에 유다 백성들이 다 죽게 되었으므로 에스더가 운 것입니다. 

에스더의 이 눈물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눈물입니다. 교회가 안 되고 교회가 어지러워지겠고 하나님의 백성이 다 망하게 되었으므로, 눈물을 흘리면서 간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9장에 눈물로 간구하였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간구입니다. 로마서 9장1-3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골육(骨肉) 친척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교회를 위한 근심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신앙으로 간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애통하고 어떻게 하든지 교회가 바로 되기를 모든 것을 기울여서 애통하면서 간구하는 신앙이 아주 귀한 신앙입니다. 우리도 에스더의 눈물로 기도하는 신앙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간구하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성경 이외의 법과 규칙 등은 고칠 수 있으나, 좋은 전통은 잘 세워나가야 함

본문 4-6절에 “왕이 에스더를 향하여 금홀을 내어 미는지라 에스더가 일어나 왕의 앞에 서서 가로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며 내가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고 또 왕이 이 일을 선히 여기시며 나를 기쁘게 보실찐대 조서를 내리사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왕의 각 도에 있는 유다인을 멸하려고 꾀하고 쓴 조서를 취소하소서 내가 어찌 내 민족의 화 당함을 참아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참아 보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의 요구는 유다인을 멸하라고 한 하만의 조서를 취소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만이 왕의 도장을 찍어서 각 도에 조서 내린 것을 취소해달라는 것입니다. 어찌 내 민족의 화 당함을 차마 볼 수 있으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볼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메대 바사의 법률로 정하여 공포해놓은 것은 취소할수 없었습니다. 에스더 1장 19절에 “왕이 만일 선히 여기실찐대 와스디로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 중에 기록하여 변역함이 없게 하고”라고 하였고 또 다니엘 6장 8절에 “그런즉 왕이여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메대와 바사의 법은 변개함이 없다는 것이 세계의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되었습니까? 한 번 정해놓은 다음에는 변개함이 없다는 것은 바로 되지 못한 것입니다. 법은 완전무결할 수가 없고 법을 제정하는 사람도 전지전능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제정한 법이 전부 다 완전무결해서 변경할 수 없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언제나 사람이 법을 제정할 수가 있고, 또 만약 잘못 제정했을 경우에는 후대에 고칠 수 있어야 바로 된 법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권위를 가진 신 외에는 고치지 못하는 법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 외에는 다른 것을 다 고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절대 완전한 것이므로 고칠 수 없지만, 성경 이외의 법과 교리는 완전무결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조도 성경과 같이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가다가 고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고칠 수 없다면 그것도 성경화된 것으로 우리는 성경 두 개를 가지고 믿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나 다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법을 자랑하던 사람은 법으로 망합니다. 메대 바사는 법으로 자랑을 했는데 이것 때문에 망할 날이 옵니다. 그러므로 성경 이외에 다른 것은 다 고칠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옳은 것은 고치면 안 됩니다. 또 좋은 전통은 고치면 안 됩니다. 성경에 보면 레갑 족속이 좋은 전통을 세워서 그것들을 고치지 않았습니다. 장막에 거하며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재배도 하지 않는 좋은 전통을 레갑 족속이 세워나갔습니다. 몇 백 년을 내려갔어도 그 족속이 그것을 지켜서 하나님께서 아주 기뻐하셨습니다. 그것이 성경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이 좋은 전통입니다. 그들이 세상에 좋은 집을 짓지 않고, 장막에 거하며, 사치 향락을 하지 않고, 나그네 생활을 하며,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포도주 먹는 것을 허용한 때였지만, 레갑 족속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을 전통으로 세워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대대손손 그것을 지켜나갔습니다. 얼마나 좋은 족속입니까? 우리 한국 교회가 술을 먹지 않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전통을 세워나가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외국에도 목사들이 술과 담배를 먹지 않는 계통이 있는데, 멕킨타이어 박사 계통이 그렇습니다. 그 계통은 술, 담배를 먹지 않는 문제와 천년 세계 문제 때문에 웨스트민스터 계통과 갈라져 훼이스 신학을 설립하였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가면 화장실에 담배꽁초가 가득 하지만, 훼이스 신학교에서는 술, 담배를 하면 퇴학을 맞습니다. 술, 담배를 하지 못하게 하는 학칙이 철저하기 때문에 우리와 맞습니다. 이렇게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 교회에게 주신 좋은 전통을 세워나가야겠습니다.

에스더 7:1-10 에스더를 통한 구원 운동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에스더를 통한 구원 운동
에스더 7:1-10

1왕이 하만과 함께 또 왕후 에스더의 잔치에 나아가니라 2왕이 이 둘째 날 잔치에 술을 마실 때에 다시 에스더에게 물어 가로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곧 나라의 절반이라 할찌라도 시행하겠노라 3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4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만일 우리가 노비로 팔렸다면 내가 잠잠하였으리이다 그래도 대적이 왕의 손해를 보충하지 못하였으리이다 5아하수에로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일러 가로되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뇨 6에스더가 가로되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 하니 하만이 왕과 왕후 앞에서 두려워하거늘 7왕이 노하여 일어나서 잔치 자리를 떠나 왕궁 후원으로 들어가니라 하만이 일어서서 왕후 에스더에게 생명을 구하니 이는 왕이 자기에게 화를 내리기로 결심한 줄 앎이더라 8왕이 후원으로부터 잔치 자리에 돌아오니 하만이 에스더의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거늘 왕이 가로되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싸더라 9왕을 모신 내시 중에 하르보나가 왕에게 아뢰되 왕을 위하여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고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이 가로되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하매 10모르드개를 달고자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

1. 에스더가 왕에게 자기와 자기 민족의 구원을 호소함

두 번째 잔치에 나아가는 하만과 왕의 마음

본문 1-2절에 “왕이 하만과 함께 또 왕후 에스더의 잔치에 나아가니라 왕이 이 둘째 날 잔치에 술을 마실 때에 다시 에스더에게 물어 가로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곧 나라의 절반이라 할찌라도 시행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하만과 함께 잔치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하만의 마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어제 저녁에 모르드개를 말에 태워가지고 왕의 높이는 사람은 이와 같이 할 것이라며 돌아다니고 집에 돌아올 때에는 머리를 싸고 돌아왔는데, 얼마 안 있다가 왕후의 잔치에 오라는 전갈이 와서 잔치에 갔습니다. 그러니 왕후의 잔치에 참여한 하만의 마음은 아주 좋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또 그 아내 세레스와 여러 지혜 있는 자들이 “만약 모르드개가 유다 민족이면 그 앞에 굴복하기 시작했으므로 이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기 때문에 하만이 속에 걱정과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나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왕은 에스더가 두 번째 잔치에 청하면서 소원을 내일 아뢰겠다고 했기 때문에 무슨 소청을 가지고 청했는지 궁금해 하며 잔치에 나갔을 것입니다. 본문 2절에서 ‘에스더여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곧 나라의 절반이라 할찌라도 시행하겠노라’고 한 것은 최대한 왕후의 요구를 다 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에스더의 세 가지 간구

본문 3-4절에 “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만일 우리가 노비로 팔렸다면 내가 잠잠하였으리이다 그래도 대적이 왕의 손해를 보충하지 못하였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가 여러 가지로 간구했습니다.
첫째 간구는 내 생명을 내게 달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이 팔려서 죽게 되었으니 자기의 생명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간구는 내 민족을 내게 주라는 것입니다. 자기 민족이 다 멸망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왕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왕후의 생명을 취하려고 하는 자가 누구냐?”고 하며 뜻밖의 말에 놀라 물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이렇게 두 번째 잔치에 왔을 때에는 왕후가 중대한 요구를 할 것임을 짐작했을 것입니다. 보통 같으면 왕후가 이렇게 두 번씩이나 자신을 초청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말을 하지 않다가 이렇게 두 번씩이나 잔치를 끌어나가는 것을 보면 아마 상당히 중대한 요청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왕후의 생명을 구해달라고 하니, 누가 왕후를 죽이려고 한 것이 분명 하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또 ‘내 민족을 내게 주시고’라고 하는 것을 보아 ‘누가 또 왕후의 민족을 죽이겠는가?’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셋째 간구는 본문 4절에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만일 우리가 노비로 팔렸다면 내가 잠잠하였으리이다 그래도 대적이 왕의 손해를 보충하지 못하였으리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을 당하고 도륙(屠戮)과 진멸(殄滅)함을 당하게 되었다고 하였는데, 도륙은 짐승을 죽이는 것처럼 죽게 된 것을 말하고 진멸은 다 멸망하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종으로 팔려갔다면 왕 앞에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내 민족이 진멸을 당하게 되면 왕에게 막심한 손해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마지막으로 간구하였습니다. 

지금 유다 사람들이 일을 잘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나라의 어려운 일들을 해나가고 있는데, 이제 유다 민족을 멸절시키면 그 어려운 일을 누가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일을 보충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유다 사람들이 세금도 많이 내는데, 그 민족을 진멸하면 얼마나 손해가 많이 나겠습니까? 에스더는 지금 유다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면 노동력을 상실할 것이고 세금을 걷어 들이지 못함으로 국가에 손해가 많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에스더는 자기와 자기 민족과 세금과 나라의 손해를 들어서 왕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이것은 아주 지혜로운 요청입니다. 에스더가 한 마디로 “나와 내 민족을 죽이려고 합니다”라고 한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로 구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생명을 구해달라고 했고, 다음에는 자기 민족을 구해 달라고 했으며, 나라에 손해가 나게 될 것을 말했습니다. 에스더의 이런 지혜는 그녀가 삼 일 동안 금식 기도하는 가운데서 얻었을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또 성경말씀을 많이 읽고 성경을 상고하면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런 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또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왕으로 하여금 에스더의 말을 들어주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에스더가 왕을 왜 두 번씩 잔치에 청했다고 하였습니까? 왕을 잘 대접하며 좀 더 깊이 사귄 다음에 자신의 요구를 말하려고 한 것입니다. 또 자신이 말하려는 일이 중대한 것임을 왕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2. 에스더가 하만의 악을 왕에게 고함

하만 앞에서 그의 악행을 드러낸 에스더

본문 5절에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일러 가로되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법을 낸 자는 아하수에로 왕입니다. 왕이 정신을 안 차리고 있다가 하만의 꾀에 넘어가서 자신의 반지를 빼주었습니다. 그래서 유다 민족이 죽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왕후에게까지 미칠 것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화가 잔뜩 난 것입니다.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어디 있느뇨’라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에스더가 왕에게까지는 책임을 지우지 않습니다.

본문 6절에 “에스더가 가로되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하니 하만이 왕과 왕후 앞에서 두려워하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가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하만이 이 자리에 오지 않았으면 왕이 하만을 불러와야 하는데, 하만을 데리고 오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하만 앞에서 이 말을 하려고 하만을 잔치 자리에 데려다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탄로 났으므로 하만이 왕과 왕후의 앞에서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왕을 속여서 유다 사람들을 멸망시키려고 했는데 그 사실이 탄로가 난 것입니다. 또 왕후 에스더가 유다사람인 것을 몰랐는데 에스더가 유다인인 것을 알고는 더욱 두려워하게 된 것입니다. 모르드개와 그 민족만 죽이려고 이런 모의를 꾸민 것인데, 이제는 에스더가 유다인인 것을 알고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만은 이제 죽게 되었다고 생각하였을 것이고, 왕은 하만에게 노하게 되었습니다.

3. 왕이 노하매 하만이 에스더에게 생명을 구함

왕의 복잡한 심경과 하만의 교만한 태도

본문 7절에 “왕이 노하여 일어나서 잔치 자리를 떠나 왕궁 후원으로 들어가니라 하만이 일어서서 왕후 에스더에게 생명을 구하니 이는 왕이 자기에게 화를 내리기로 결심한 줄 앎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하만과 같이 악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왕후와 왕후의 민족을 죽이려고 한 하만에게 대해서 아주 노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왕은 벌써 전날 저녁부터 하만에 대해서 좋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만이 교만하여 왕의 말과 의복과 왕관을 타고 입고 쓰겠다고 말할 때부터 하만이 잘못되었음을 왕이 어느 정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왕후까지 죽이려 한다는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이 대단히 노해서 일어나 잔치 자리를 떠나 왕궁 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왜 그 자리를 떠났겠습니까? 너무 속이 상했기 때문입니다. 배신당한 기분이 들어서 떠난 것입니다. 

왕은 하만을 자기 수하에 두고 귀하게 쓰려고 했는데, 그가 자기 아내를 죽이려고 계획할 것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니까 왕이 하만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가까이에 두고 쓰려고 했는데, 결국은 자신의 아내를 죽이고 자기의 관이나 의복, 말까지 사용하려 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화가 나는 것입니다. 내 자리까지 빼앗으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너무 화가 나서 잔치에서 벌떡 일어서 왕궁 후원으로 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나가서는 후원을 다니면서 하만을 어떻게 처치해야 될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왕도 당장에 그 자리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생각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내가 하만에게 속았다’하며 속은 것을 원통히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만이 왕후와 그 민족을 죽일 줄 알았겠습니까? 아무튼 왕이 하만에게 속은 것과 배신당한 것, 그리고 왕후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에 너무 분해 노해서 왕궁 후원으로 나아가 그를 어떻게 처치해야 할까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왕의 모사가 에스더 1장에 보면 7명이 나옵니다(에 1:14). 그런데 이때에 왕이 그 사람들을 불러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불러와봐야 하만에게 속은 자기의 수치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왕이 조서에 어인(御印)을 다 찍어놓았는데, 모사들을 불러와봐야 자기의 실수만 드러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왕의 모사를 불러올 처지도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불붙는 듯한 마음을 가지고 후원으로 뛰어나간 것입니다. 그러면 하만은 이제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만은 일어서서 왕후 에스더에게 생명을 구하니 이는 왕이 자기에게 화를 내리기로 결심한 줄을 앎이더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왕이 자기에게 화를 내리기로 결심한 줄을 알고 일어서서 왕후 에스더에게 생명을 구했습니다. 

본문 8절에 “왕이 후원으로부터 잔치 자리에 돌아오니 하만이 에스더의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거늘 왕이 가로되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싸더라”고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하만이 일어서서 왕후에게 자기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후원에서 돌아왔는데 하만이 에스더의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다고 하였습니다. 땅에 엎드려서 자기의 생명을 살려달라고 해야 마땅한데, 왜 왕후의 걸상에 엎드려서 생명을 살려달라고 했겠습니까? 처음에는 일어서서 용서를 빌다가 다음에는 땅에 엎드려서 용서를 빌다가 그래도 왕후가 가만히 있으니까 아마 가서 걸상을 붙들고 애걸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감히 걸상 위에는 못 올라갔을 것입니다. 그저 걸상을 붙들고 애걸을 하는데 멀리에서 보니까 걸상 위에 올라간 것처럼 보인 것 같습니다. 하여간 붙들고 애걸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왕이 눈에는 하만이 걸상 위에 엎드려진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만이 왕후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왕후를 두려워하고 우러러 존경했더라면 감히 어디라고 걸상을 붙들고 거기에 엎드렸겠습니까? 하만은 자기가 전국에서 제일 높은 재상이므로 왕후도 그다지 존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 왕후도 하만이 얻어준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될 때에 하만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왕후에 대해서 존경심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렇게 걸상에까지 나가서 간구한 것입니다. 이것을 봐도 하만의 교만이 나타난 것입니다. 윗사람을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죽게 되었어도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아니하고 왕후의 걸상에까지 엎드린 것을 보면, 그가 아주 교만한 것입니다. 왕후를 존경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큰 화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왕이 가로되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싸더라’고 하였는데, 하만의 얼굴은 왜 쌌겠습니까? 당시에 사형을 받을 사람은 얼굴을 싸는 법이 있는 모양인데, 하만을 죽이려고 얼굴을 싼 것입니다. 왕후를 강간까지 하려고 했다면 당장에 사형입니다. 그러므로 하만을 죽이려고 얼굴을 싸서 나갔습니다. 왕후를 강간까지 하려고 했다면 매우 악한 자이므로 그런 흉악한 자의 얼굴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될까봐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그 얼굴을 싼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사형당할 사람은 얼굴을 싸는 습관이 있어서 얼굴을 쌌던 것 같습니다.

4.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운 나무에 하만이 달려 죽음

함정을 파는 자는 자신이 그 함정에 빠짐

본문 9-10절에 “왕을 모신 내시 중에 하르보나가 왕에게 아뢰되 왕을 위하여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고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이 가로되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하매 모르드개를 달고자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고 하였습니다. 왕을 모신 내시 중에 하르보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왕에게 아뢰되 “왕을 위하여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고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르보나는 에스더 1장 10절에 나오는데 모사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는 내시이고 왕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인데, 벌써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고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 세운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때에 하르보나가 그 말을 한 것입니다. 모든 내시들과 그들과 가까운 사람들은 왕에 대하여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다 
알고 있었고 또 하만의 악한 계교도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말을 못하다가 하만이 이렇게 사형을 당하게 될 때에 비로소 말을 한 것입니다. 권세가 있을 때에는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권세가 없어질 때에 모든 사람이 한 마디씩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르드개가 충성된 말로 고발한 것을 전에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야 사실대로 말하게 되었습니다.
왕이 “그 나무에다가 이 하만을 달라”고 명하였습니다. 하만이 그 나무를 안 세웠더라면 나무에 달리지 않았을 것인데, 남을 죽이려고 나무를 세웠기 때문에 그만 거기에 자신이 달리게 되었습니다. 잠언 26장 27절에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함정을 파놓은 데에 빠지고 남을 죽이려고 돌을 굴리다가 제가 치어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남 잡이’가 ‘제 잡이’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고자 한 날에 자기가 그 나무에 달리고 그 날에 자기가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반대로 역사하십니다. 죽이고자 하는 사람은 죽게 만드셨고 죽고자 하는 사람은 살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실지 모릅니다.

에스더를 통한 구원 운동의 뜻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통해서 이렇게 이스라엘 구원 운동을 하셨습니다. 만일 에스더가 없었다면 모르드개는 여기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되지 않았다면 또 왕후가 되었다고 해도 생명을 내놓고 왕 앞에 들어가서 간구하지 않았다면, 모르드개가 죽고 유다 백성들도 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더도 마지막에 가서 망하게 될 뻔했습니다. 에스더는 왕궁에 있었지만 유다인이므로 법적으로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에스더가 안일주의에 빠져 평안한 자리에 있는 것을 좋아하여 왕 앞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도 죽었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유다민족이 다 죽고 모르드개가 죽으면 하만의 꾀로 에스더도 죽게 되는 것입니다. 왕후를 죽이러 왕궁에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유다 민족을 죽이면 하만의 세력이 얼마나 더 세지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어떠한 음모와 술수를 써서라도 에스더를 내쫓아 죽일 것입니다. 또 하만이 득세하게 되면 모든 신하들은 모가지를 잘리지 않기 위하여 하만의 편이 됩니다. 왕은 아무것도 모르고 하만이 도장을 달라고 하면 도장만 내어주기 때문에 하만이 전부 실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만이 유다 사람들을 다 죽이고 난 뒤에 에스더가 유다 사람인 줄을 알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에스더를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습니다. 평안하게 안일주의로 현재 자기 하나만 잘되면 된다 생각하고 나가는 자는 비참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나 자기 백성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나가면 하나님의 교회도 안 되고 성도도 안 되고 마침내는 자기도 망합니다. 그러나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충성할 때에 하나님의 교회도 살고 자기도 살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를 다스리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믿는 일을 해야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심판해주십니다. 믿는 일을 하지 않고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나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심판도 해주시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해주시지도 않습니다. 모르드개나 에스더와 같이 생명을 내놓고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에스더와 같이 생명을 내놓고 나가서 자기의 사명을 다할 때에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도 감동시켜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해주시고,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징벌도 해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생명을 내놓고 나갈 때에 사명을 감당할 때에 역사해주시지,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 다 틀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든지 영광된 자리, 안일주의의 자리를 내놓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서 나가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서 자기도 살고 하나님의 백성도 살고 악한 자를 하나님께서 징벌도 해주셔서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됩니다.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신 것입니다. 하만을 낮추고 모르드개를 들어서 구원해주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에스더 6:1-14 하만은 굴욕을 당하고 모르드개는 명예를 얻음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하만은 굴욕을 당하고 모르드개는 명예를 얻음
에스더 6:1-14

1이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2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 지킨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모살하려 하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 하였다 하였는지라 3왕이 가로되 이 일을 인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시신이 대답하되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 4왕이 가로되 누가 뜰에 있느냐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 뜰에 이른지라 5시신이 고하되 하만이 뜰에 섰나이다 왕이 가로되 들어오게 하라 하니 6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뇨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7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케 하시려면 8왕의 입으시는 왕복과 왕의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취하고 9그 왕복과 말을 왕의 방백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붙여서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10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취하여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11하만이 왕복과 말을 취하여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니라 12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와서 13자기의 당한 모든 일을 그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고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 아내 세레스가 가로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족속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저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14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의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 

1. 왕이 모르드개의 공적을 발견하고 존귀케 하려 함

선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행한 대로 갚아주심

본문 1-3절에 “이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 지킨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모살하려 하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왕이 가로되 이 일을 인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시신이 대답하되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날 밤에 왕이 잠이 안 왔습니다. 그래서 왕이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잠이 안 올 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바에야 기
도하고 성경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엇을 찾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본문 2절에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 지킨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모살하려 하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이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왕으로 하여금 잠이 안 오게 만들어놓으셨고 또 이것을 읽게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가 잠이 안 올 때에는 왜 잠이 안 올까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무엇을 잘못한 것이 없는가, 하나님께서 무엇을 깨우치시지 않는가를 생각해봐야 하고 성경도 읽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모르드개가 왕을 죽이려 하는 두 내시를 고발한 내용에 대해 읽게 하셨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왕이 읽다가 그 내용이 귀에 쏙 들어와서 거기에서 멈추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물어보기를 “이 일을 인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라고 하니 시신(侍臣)이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왕이 깜짝 놀랐습니다. ‘이럴 수가 있느냐? 내 생명을 살려준 사람에게 아무 것도 베풀지 않았으니 되겠느냐?’라고 하며 그 사람을 존귀케 하기로 작정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알아야 할 것은 모르드개가 전에 이 일 때문에 상을 받았다고 하면 이때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왕이 무슨 상급을 많이 주고 존귀하게 해주었다고 하면 “그래? 되었다. 그 다음 읽어라”고 하였을 텐데 그때 상을 안 받은 것의 효과가 지금 나오
게 된 것입니다. 왕이 그때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습니다. 알아주지 아니하고 관직도 안 주고 묻어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랬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모르드개에게 살 길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알아주지 않고 대가를 받지 않은 것은 다음에 가서 받을 때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 즉시로 받은 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선을 심어놓고 받지 못했다고 섭섭할 것이 없습니다. 안 받는 것이 좋습니다. 안 받고 두어야 다음에 한 몫 볼 때가 오는 것입니다. ‘내가 이 만큼 수고를 했는데 알아주지 않고 나를 무시한다. 아무도 본체만체 한다’하고 만일 모르드개가 불평을 했더라면, 지금 여
기에서 왕이 높여주는 자리에 나오지 못합니다. 아무 불평도 없이 아무것도 안 받았어도 그저 감사하고 생각도 하지 않고 ‘선을 행한 것(왕에게 보고한 것)은 자기의 할 책임이다’라고 만족하고 믿음으로 나가니까 그것이 효과를 보게 된 것입니다. 안 받았던 것, 왕이 몰라주었던 것, 파묻어놓았던 것이 효과가 날 날이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고 거기에 대한 대가를 못 받았다고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가를 안 받아야 이 다음에 한 몫 볼 날이 옵니다. 그때에 바로 받으면 그것으로 다 끝난 것이고 이 다음에 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가를 안 받으면 대목장에 가서 대가를 받을 날이 옵니다. 지금이 대목장이 아닙니까? 생사가 왔다 갔다 합니다. 몇 시간 있으면 죽을 것이 아닙니까? 

이날 저녁에 하만이 왕궁에 왔는데,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기 위하여 그 허락을 받으러 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만이 오기 조금 전에 왕이 일기를 읽다가 “그 사람에게 상급을 베푼 것이 있느냐?”고 물어보아서 없다고 하니까 그를 높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밖에 누가 있는가 보라”고 할 때 하만이 마침 왔기 때문에 그를 들어 오게 하여서 왕이 높여주고자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주면 좋겠는가를 물어본 것입니다. 이것은 위기일발(危機一髮)의 순간으로 조금만 지나면 모르드개는 모가지가 날아갈 것입니다. 나무에 달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에 아무것도 받지 않았던 것이 바로 이때에 기회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가장 요긴한 때에 대가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왕이 알아주지 않는다. 또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많이 일했는데 날 무시한다. 날 소외시킨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한 번 나올 날이 옵니다. 반드시 심으면 나게 되어 있습니다. 몰라줘도 좋습니다. 가장 요긴할 때, 대목장에 쓰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요긴할 때에 묻어둔 것을 쓰게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셉이 죄도 없는데 누명을 쓰고 감옥에 2년 동안 갇혔을 때, 알아주는 사람도 없이 억울하게 지냈습니다. 술 감독의 꿈을 해석 해주었지만 그가 감옥을 나가서는 그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요셉이
“나가서 당신이 득의(복직)하면 나를 생각해달라”고 하였지만 술 감독은 그 사실을 다 잊어버리고 요셉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효과가 났습니다. 왕이 꿈을 꾼 후에야 술 감독이 요셉 생각이 나서 왕에게 요셉이라는 자가 꿈을 잘 해석한다면서 요셉을 데리고 나온 것입니다. 예전에 요셉이 술 감독에게 꿈을 해석해준 뒤로 2년 동안 그 사실을 다 잊혀지고 묻혀놓은 바 되었습니다. 무효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2년 후에 효과가 나게 된 것입니다. 요셉을 부름을 받고 왕의 꿈을 해석한 것입니다.
그래서 몰라주는 것이 사실은 좋은 것입니다. 몰라주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심어놓은 것을 잘 길러서 쓰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야(草野)에 묻혀야 합니다. 묻혀야 그 사람이 바로 되어 나갑니다. 고구마 넝쿨도 땅에다가 묻어놓아야 잘되지, 자꾸 위로만 올라가면 안 된다고 합니다. 고구마를 뒤집고 뿌리를 자르고 땅에다가 묻어 놓는데, 묻어놓으면 그 안에서 알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행하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나를 무시한다. 나는 매장 당했다. 나를 이제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심은 대로 거두고 종자는 썩는 법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초야에 묻혔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한 번 나올 날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미리 받으면 안 됩니다. 모르드개가 미리 받았다면 끝날 뻔했고, 막대한 손해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 받았기 때문에 그 뒤에 거기에서 몇 천 배, 몇 만 배 더 큰 것을 받았습니다. 만일에 당장 그때에 무엇을 받았다면 얼마나 큰 것을 받았겠습니까? 그때 얼마 못 되는 것을 받는 것보다 유다인 전체의 생명을 받는 것이 훨씬 더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것을 배워서 어떻게 하든지 묻혀서 사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선을 행했어도 받지 못할 때가 있는데, 그것을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받게 하실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언젠가는 한 번 알아줄 날이 옵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누가 알아주었습니까? 그러나 알아줄 날이 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쓰실 날(등용시키실 날)이 옵니다. 다 묻혔고 감옥에 갇혔지만 한 번 하나님께서 쓰실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까지는 불만을 품지 말고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미 받은 사람보다 안 받은 사람이 낫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일을 드러 내셔서 갚아주실 날이 옵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가지고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나가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셔서 왕의 마음을 감동케 하심

본문 1-3절에 “이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 지킨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모살하려 하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왕이 가로되 이 일을 인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시신이 대답하되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것입니다. 왕으로 잠이 오지 않게 한 일, 일기를 가져다가 읽게 한 일, 또 읽을 때에 모르드개에 대한 사건을 읽게 한 일과 왕이 거기에 대해서 존귀케 하였는가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하는 생각 등은 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거저 읽고 지나갔으면 안 될 뻔했는데, 지금 왕의 마음을 주장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그 일이 참 고맙다고 생각하게 만드셨고 잘해주어야겠다는 생각도 하나님께서 들게 하신 것입니다. 

또 시신이 모르드개에게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다고 대답했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한 것이 이번에 모르드개와 유다 사람 전체를 살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거에 모르드개가 무엇을 좀 받았고 사신이 무엇을 베풀었다고 대답했으면 그냥 지나갈 뻔했습니다.
모르드개가 공은 세워놓았지만 존귀케 하는 일이나 무슨 상, 또는 아무 관직도 안 받고 무시되었던 사실이 이번에 자기를 살리게 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가 잘되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해놓고 무시당하는 일이 있어도 후에 그것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잘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꼭 상을 받고 누가알아주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에게 받지 아니하여야 하나님께 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상을 받지 않는 것이 도리어 하늘나라에서 큰 상을 받는 것이 됩니다. 또 앞으로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권고가 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미 상을 받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서 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2. 모르드개 존귀케 하는 일을 하만이 맡아 실행함

하만이 심중에 왕이 자기를 존귀케 하기를 기뻐한다고 생각함

본문 4-6절에 “왕이 가로되 누가 뜰에 있느냐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 뜰에 이른지라 시신이 고하되 하만이 뜰에 섰나이다 왕이 가로되 들어오게 하라 하니 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뇨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만도 밤잠을 못 잤는데, 그 이유는 모르드개가 보기 싫어서입니다. 노가 풀리지를 않고 속이 편안치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아 죽여야만 밤잠도 잘 오고 밥도 맛이 있고 속이 편안하겠다고 생각하고 밤에 자지 않고 왕 앞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뇨”라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에 하만이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라고 자기 심중에 생각하였습니다.
자기밖에 없는 줄로 알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잘난 맛에 삽니다. 자기가 제일 잘하는 줄로 알고 자기밖에 없는 줄로 아는데, 그것이 오산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자기가 제일 잘하는 줄로 알면 안 되고, 또 자기밖에 없는 줄로 알아도 안 됩니다. 언제나 겸손하지 않으면 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만의 속에 있는 욕심이 다 드러남

본문 7-9절에 “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케 하시려면 왕의 입으시는 왕복과 왕의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취하고 그 왕복과 말을 왕의 방백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붙여서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만이 지금 자기에게 대한 말인 줄로 알고 자기가 이렇게 되기를 원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생각했던 것이 지금 나온 것 같습니다. 하만이 왕복 입기를 원했습니다. 또 그가 평소에 ‘왕의 타시는 말이 상당히 좋을 것인데, 그 말을 한 번 타보면 좋겠다. 또 머리에 쓰는 왕관을 써보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왕같이 한 번 해보면 좋겠다고 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사람의 욕심이 한정이 없는 것입니다. 하만은 왕 다음으로 존귀한 방백으로 지금 모든 국민 가운데에서 제일 높은 자리에 있는데, 그것으로 하만이 만족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낮은 자리에 있는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굴복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만과 불평이 가득했습니다. 밤잠도 못 자고 노한 얼굴로 다녔습니다. 그리고 왕과 같이 높은 자리에 한 번 올라가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만은 지금 왕의 타는 말, 쓰는 왕관, 입는 의복을 자기도 한 번 타 보고 입어보고 써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을 해본다고 만족하겠습니까?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 다음에는 또 무슨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왕이 되고 싶을 것입니다. 의복을 입고 왕관을 쓰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아직 아무 실력이 없으면서도 왕이 한 번 되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또 왕이 되면 만족이 있겠습니까? 그 다음에는 천하를 통일할 생각이 또 들 것입니다.
한 나라를 가지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천하에 있는 모든 나라를 다 정복해서 만왕의 왕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귀가 하나님이 되겠다는 생각과 똑같습니다. 마귀가 속에 들어가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주어도 그 속에 만족이 없고 감사도 없습니다. 올라갈수록 점점 더 올라가려 하고, 가질수록 점점 더 많이 가지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많이 주셔도 더 가지려고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의 욕심이 땅보다 두껍다는 말이 있는데, 한정 없는 것이 사람의 욕심입니다. 

그런데 왕은 하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하만에 대해 아주 좋지 않게 여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네가 그렇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하만을 이렇게 낮추려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하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교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까딱하다가는 왕의 자리까지 빼앗길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왕의 관, 왕의 말, 왕의 의복을 쓰고 타고 입겠다고 한 것을 보면, ‘지금 네가 왕의 자리까지 빼앗으려고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말을 끌고 나가라”고 한 것 같습니다. 

누구나 다 교만한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말 한 마디만 들어보아도 벌써 압니다. 그러니까 왕이 지금까지 하만을 존귀하게 썼지만 벌써 그 마음이 교만한 것을 보면서 ‘이 사람이 위험 인물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왕이 하만에게 모르드개를 존귀케 하라고 명한 이유

본문 10-11절에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취하여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하만이 왕복과 말을 취하여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다녔구나’라고 여기며 왕이 하만을 괘씸하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만에게 명하기를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취하여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원칙은 왕의 말에 다른 사람을 태우는 것이 아닙니다. 왕의 의복을 입힐 수도 없고, 왕의 관을 씌울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 지금 좀 노한 것 같습니다. 노한 마음에 하만에게 네가 말한 대로 하라고 한 것 같습니다. 하만으로 하여금 말을 끌고 돌아다니게 하려고, 하
만이 이야기한 대로 빠짐없이 처리하라고 지시한 것 같습니다. 그러하여 하만이 왕의 명령대로 왕복과 말을 취하여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날 밤에 하만이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게 해달라고 왕께 청하러 갔었는데, 오히려 반대가 된 것입니다. 모르드개를 말에 태우고 자기는 말을 끄는 마부가 되어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고 온 거리에 다니면서 반포를 하게 된 것입니다. 말할수 없는 수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역사하십니다.
하만이 높아지면 무엇을 하려고 높아지려고 하는 것입니까? 언제나 자기의 분수에 만족해야 합니다. 하만은 지금 왕 다음 가는 방백으로, 가장 존귀한 자가 되었는데 그 이상 얻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우리는 현재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겸손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높아지면 무엇을 합니까? 왕복을 한 번 입어보고 왕의 말을 한 번 타보고 왕의 관을 한 번 써보면 무엇을 합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공연히 죽음의 길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도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그런 것들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높아지는 것과 명예, 영광심이 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총회장 감독의 임기가 2년밖에 안 되니까 대 교단에서 감독이 되려고 선거 운동을 하여 돈을 많이 쓴 사람이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선거할 때 자기 돈을 많이 썼으므로 감리 교단 재산을 조금 팔아서 자기의 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다 부패하고 타락된 증거입니다. 감리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이만큼 타락이 되어서 하나님께 연보한 돈을 가져다가 선거 운동에 사용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진노하지 않으실 수가 없습니다. 지난 월요일 새벽에 고천에서 나오는데, 안양을 지나오려면 산으로 산업도로가 나있습니다. 거기에서 안양 시내를 한 번 쳐다보니까 빨간 불로 된 십자가가 얼마나 많은지 수십 개, 수백 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 불빛을 보면서 이렇게 많은 교회에서 하나님을 부를 것이고 예수님을 찾을 것이고 찬송가를 부를 것이므로 어느 종교도 기독교보다 많을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첫째로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그 가운데에 하나님을 거역하는 교파가 상당히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해방신학, 신 신학, 기독교 사회주의와 같은 교회도 상당히 많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에 진노를 쌓고 섭섭하게 하며 참된 진리 운동을 방해하는 교회도 상당히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지 않습니까? 그런 교회도 많습니다. 앞으로 참 성도를 죽일 교회도 많고, 공산주의와 합할 교회도 많을 것 같습니다. 또 그런 종류는 아니라고 해도 바른 진리를 밝히는 교회와 잘못된 교회, 잘못된 진리를 주장하면서 교역자들이 자기 사욕을 채우려고 하는 교회가 얼마나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욕심을 부리면서 어떻게 하든지 교인들의 돈을 좀 더 받으려 하고 신비주의로 나가면서 자기의 호주머니를 챙기는 교역자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별미축복이라고 있는데, 별미축복이라는 것은 먹고 해주는 축복을 말합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돈을 받고 축복해주는 것입니다. 교인들의 돈을 빼앗아서 제 호주머니에 넣겠다는 것입니다. 요새는 교인이 기도를 해달라고 하려면 반드시 돈을 주어야 기도해주는 목사가 있다고 합니다. 또 기도해주면 어떤 일을 안다고 합니다. 자기 동생이 대학교 입학시험을 치려고 하는데 붙겠나, 안 붙겠나를 기도해달라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돈을 주고 기도해주어야 된답니다. 그래서 돈이 오간 다음에 기도하더니 반드시 이번에 붙는다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떨어졌습니다. 그것 참 잘 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물어본 값이므로 건넨 돈은 돌려받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나쁜 교회가 아니고 보통 교회입니다. 신촌에서 조금 더 가면 있습니다. 간판은 멀쩡합니다. 또 목사도 멀쩡합니다. 그런데 점치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에게 수입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또 여러 번을 물어보았답니다. 이런 교회가 부지기수인 줄로 알아야 합니다. 

또 추도 예배할 때에 사진을 가져다가 걸어놓고 촛불을 켜놓고 교회적으로 합동 추도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제사 드리는 것을 죄가 아니라고 한답니다. 십자가는 많지만 십자가 밑에서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
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얼마나 속이 상하시겠습니까? 십자가가 많은 것만 자랑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많은 십자가를 보면서 이런 생각들을 하며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시고 마음에 안타까워하시겠는가를 그 새벽에 나오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또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진리가 전체 100가지라고 했을 때 한 절반만 옳은 진리를 주장하고 한 절반은 잘못 전파하는 교회도 많습니다. 그리고 한 30%만 바로 전하고 70%는 잘못 전하는 교회도 많을 것입니다. 가지각색일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바로 많이 전하는 교회가 몇 개나 되겠는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십자가가 수 백 개가 되어도 그 십자가 밑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모릅니다.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부르고 찬송을 부릅니다. 목사들 중에 사리사욕을 채우는 목사가 많고 점하는 목사가 많을 것입니다.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목사도 있습니다.
어떤 안 믿는 사람이 나를 보고 “목사들이 요새 왜 그럽니까? 신문에 났는데 목사가 중학생을 납치하여 폭행하고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그랬는가?”하고 물어보니 오늘 아침 조선일보에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읽어보니까 그 사람은 이전에 목사를 하다가 그 자리에서 파면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일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또 물어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목사가 아니고 옛날에 목사하다가 그만 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목사가 아니고 마귀의 종이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교회 안에 악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보다 도리어 더 악한 사람들이 십자가 밑에 있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앞으로 참 기독교인을 죽일 사람은 기독교 안에서 나옵니다. 아무튼 지금 여러 가지 마귀의 역사가 십자가 밑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 명예, 영광심 때문에 총회장이나 노회장 선거하는 데에 돈을 많이 써서 교회를 망치며 타락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명예, 영광심을 버려야 믿음에 설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겠습니다. 시편 131편 1-3절에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세계입니다. 마음이 높은 것은 벌써 믿음에서 떠난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은 명예, 영광심입니다. 높아지겠다는 것, 어떤 직분을 받아서 높아지겠다는 것은 믿음에서 떠난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적당한 직분을 맡기라

그리고 각 사람에게 적당한 직분을 맡겨야 합니다. 가령 권찰 자격이되면 권찰 직분을 맡아야 합니다. 집사 자격이 되면 집사 직분을 맡아야 합니다. 속이 된 대로 의복을 입는 것입니다. 다섯 살 난 아이는 다섯 살짜리 의복을 입어야 하고 열 살 난 아이는 열 살짜리 의복을 입어야 합니다. 스무 살 난 사람은 스무 살짜리 의복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섯 살 난 아이에게 열 살 난 아이의 의복을 입혀놓으면 의복도 버리고 아이도 버리고 둘 다 버립니다. 또 열 살 난 아이에게 스무 살짜리의 의복을 입혀놓으면 의복도 버리고 사람도 버리고 다 버립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게 적당한 직분을 맡겨야 합니다. 적당치 않은 직분을 맡겨놓으면 그 사람도 망하고 그 일도 망치며, 다 망치는 것입니다. 국가로 말하면 장관 자격이 되는 사람에게 장관을 맡겨야지, 장관 자격이 안 되는 사람에게 장관을 맡기면 나라도 망하고 장관도 망하고 다 망할 것입니다. 총리 자격이 되는 사람에게 총리를 맡겨야 그 나라가 바로 되고 자기도 바로 되지, 총리 자격이 안되는 사람에게 총리를 맡겨놓으면 조금 가다가 총리도 망하고 그 나라도 망하고 다 망합니다. 교회도 직분을 줄 때에 그 사람의 신앙 정도,속 사람이 된 정도에 맞춰서 실력에 맞춰 직분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맡기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자격이 없는데 직분을 맡겨놓으면 어떻게 합니까? 자격이 없는 사람이 그 자리에 앉으므로 일을 망치게 됩니다. 또 그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그 사람도 망칩니다. 

컴퓨터를 다룰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컴퓨터를 맡겨놓으면 기계도 망가지게 해놓을 것이고 그 사람도 그 직분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속의 실력에 맞추어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직분을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버립
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존귀한 직분을 맡겨놓으면 “어”하고 돌아다니는 바람에 속 사람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속 사람이 만들어져야 되겠는데, 속 사람이 만들어지지 않고 둥둥 떠다니고 발이 땅에 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만치 아니하고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라고 했는데, 다시 말해 높은 곳을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높은 것을 바라보고 높아지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속 사람을 만들어야 되는데, 속사람은 높아져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낮아져야 만들어집니다. 땅에 묻혀야 만들어지는 것이지, 높아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큰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 신앙으로 믿음에 서지 못합니다. 또 큰 일이 되지 않습니다. 

미치지 못할 일에 힘쓰지 말아야 함

또 어떤 교회는 큰 건물을 짓겠다고 작정하고 빚을 많이 얻어서 외상으로 일하고 일꾼도 외상으로 데려다가 예배당을 크게 지어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중에 자꾸 돈이 모자라니까 금식 기도를 했답니다. 그런데 금식 기도하다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교회에서는 교인이 얼마 없는데 큰 교회를 짓다가 시험이 들어오고 이웃 주민들에게 욕을 얻어먹고 핍박을 받다가 쫓겨난 목사가 있습니다. 그런 목사가 꽤 많습니다. 

이렇게 예배당을 짓다가 쫓겨난 사람도 있고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니이다’라는 것은 자기의 실력만큼만 하고 너무 크게 하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사는 것도 자기의 능력이 되면 사고, 안 되면 그만 두어야 합니다. 자동차를 살 능력이 없는데 남이 산다고 나도 사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감당을 못하면 도로 팔아야 합니다. 노 목사님도 샀다가 팔았습니다. 그것도 잘한 것입니다. 실력이 없으면 실력에 맞춰야지, 빚만 잔뜩 져서 넘어가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팔아서라도 안 넘어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실력에 맞추어야 합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낮추심

그리고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고요하고 평온해야만 믿는 일이 됩니다. 젖 떨어진 아이와 같이 어머니로 만족하는 그 자리에 있어야만, 믿는 일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교만한 사람은 반드시 망하고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낮추신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높이십니다. 모르드개는 낮아지고자 한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다가 어떤 희생을 당해도 좋다. 낮아져도 좋다’라고 하며 낮아질 각오와 죽을 각오를 하고 이 신앙을 지킨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윗사람에게 절하지 않는 것이 무슨 신앙이냐, 윗사람에게 대한 인사는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경배가 아닙니다. 단순한 인사가 아닌 것입니다. 꿇어서 절하는 신적 경배인 것입니다. 또 하만은 아각 사람으로서 아말렉 사람인데, 성경에 아말렉 사람은 하나님의 대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대적에게 굴복을 하고 신적 경배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비 진리와 이단에게 굴복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단과 비 진리라는 마귀에게 신적경배를 하라는 것과 같기 때문에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낮아질 각오를 하고 낮아져서 말씀을 지키고자 할 때에 하나님께서 높여주십니다. 그것은 하지 않고 높아지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낮추십니다. 언젠가는 낮추십니다. 실력도 없는데 높아진 것은 본색이 탄로가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력이 없는데 높아지면 그 일이 잘 안 될 것이고, 그 일이 잘 안 될 때에는 모든 사람이 알게 됩니다. 그렇게 때문에 낮아지는 것입니다. 차라리 그 직분을 안 맡았으면 그렇게 망신을 안 당할 것인데, 직분을 맡았기 때문에 그만 낮아지는 것입니다.
하만이 말 탈 생각을 안 했으면, 자기가 마부가 안 되었을 것인데 왕의 말을 탈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왕의 말을 끌고 다니는 마부가 된 것입니다. 자기가 높아지고자 하지 않았다면 모르드개를 데리고 다니면서 그를 높이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인데, 자기가 높아지고자 했기
때문에 모르드개 높이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높아지고자 하면 반드시 이렇게 됩니다. 왕의 말을 타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공연히 왕의 말 탈 생각을 해서 자기가 왕의 말을 끌고 다니는 심부름꾼이 되어 그만큼 낮아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높아지고자 하는 생각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절대 변함이 없습니다. 높아지고자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낮추십니다. 왕의 말을 타고자 하면 반드시 왕의 말을 끌고 다니는 마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사람들이 다 좋아하지 않습니다. 누가 높아지려고 하는 자를 좋아합니까? 자기를 신임해서 등용하던 왕부터 높아지고자 하므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네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다녔느냐?’ 하고 괘씸하게 생각해서 말을 끌고 다니라고 한 것입니다. 높아지고자 하면 왕뿐만 아니라 백성도 알고 누구나 알게 됩니다. 그러면 누가 그 사람을 존경합니까? 지위만 높았지 다른 사람 앞에 손가락질을 받고 다른 사람이 속으로 무시합니다. 멸시를 받습니다. 높아지려 하지 않았다면 멸시를 받지 않았을 것인데, 높아지려 하다가 괜히 멸시만 받습니다. 그러므로 높아지고자 하는 생각을 하면 절대 안 됩니다. 

집사 자격이 없는데 집사가 되었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겠습니까? ‘집사? 그 사람이 무슨 집사야?’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집에서 담배 한 대씩 피우고 이따금 술도 한 잔씩 먹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가짜 집사라고 할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면 “집사님, 집사님”이라고 부르지만 아이들이 볼 때에, 또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가짜입니다. 또 언젠가는 교회에서 탄로가 날 것입니다. 그러면 교인들이 집사로 인정을 하겠습니까? “네가 이름만 집사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자기가 집사를 안 맡았으면, 아이들한테 그런 멸시를 받지 않고 교인들 앞에서도 그런 멸시를 받지 않았을 것인데 집사를 맡았기 때문에 그런 멸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속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이 큰 것입니다. 속 사람이 만들어지지 않고 높아지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세례를 빨리 받아야 되겠다. 집사를 빨리 받아야 되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세례를 안 주니까 다른 교회에 가서 받고 오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데에 가면 가자마자 집사 직분을 주는데, 여기(창광 교회)에서는 주일을 잘 못 지켰기 때문에 여러
해를 가도 못 받았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창광 교회에 여러 해 나왔지만 주일을 잘 못 지키고 담배를 못 끊었기 때문에 직분을 받지 못해서 천주교에 가서 영세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여기서는 받을 희망이 없습니다. 아무튼 그 사람이 영세를 받아가지고 얼마 있다가 온다고 합니다. 천주교에 가려고 해서 간 것이 아니고 영세를 받으러 간 것이랍니다. 그런데 여러 해가 되었는데 아직도 못 왔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창광 교회에서 집사를 안 주니까 다른 교회에 가서 받아가지고 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 혼자 집사지, 누가 집사라고 해줍니까? 다른 교회에서 몇 달 있다가 받고 왔는데, 다른 사람이 집사인지 어떻게 압니까?
또 목사 안수를 빨리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서는 목사 안수를 빨리 못 받겠으니까 다른 교단에 가서 목사 안수를 받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몇 년 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목사 안수를 받은 후에 우리 교단에 받아주겠는가 물어봅니다. 그래서 받아주기는 받아주는데, 순서대로 해야 받아준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우리 신학교 1년을 하고 다른 신학교를 1년인가 하고 안수를 받았는데, 신학교를 제대로 해야 받아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신학교 2년을 더해야 받아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합니까?”라고 하길래 “안 하려면 그만 두라”고 했습니다. 원리 원칙대로 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도 그 목사가 목사된 지 몇 년이 되었는데, 다니면서 우리를 좋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여기서 한 1년을 배웠다고 좋게 생각하는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 사정을 압니다. 그 사람이 가려고 해서 간 것이 아니고 목사 안수를 빨리 받으려니까 간 것입니다. 여기서 하면 신학교 2년을 더 해야 합니다. 그리고 했어도 또 1년을 더 있어야 하지만, 다른데에 가면 금방 목사 안수를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벌써 한 4, 5년 전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있었으면 아마 근래에 목사 안수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4, 5년 전에 목사 안수를 받았으면 또 뭐합니까? 신학교를 제대로 거쳐서 다 했으면 목사 안수를 여기에서 받았겠는데, 그것을 못 참아서 다른 데에 가서 받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목사 안수 받기 6개월 전에 참지 못하고 다른 데에 가서 받았습니다. 강도사 고시에 합격이 되고 6개월 후면 안수를 주게 되는데, 그것을 참지 못하고 다른 데에 가서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 그 사람이 묻기를 “6개월 전에 줄 수 없느냐?”고 하기에 “우리는 줄 수
없다. 조금 있으면 총회로 모이는데 그때 통과해서 안수하기로 되어 있으니 참으라”고 했는데, 그것을 못 참아서 다른 데에 가서 받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참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게 조급해서 자기가 되지 못한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사의 자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지, 목사의 직분을 받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다고 그렇게 처신을 합니까? 조금 먼저 받으면 뭐합니까? 6개월을 못 참습니까? 한 몇 년만 제대로 했으면 얼마나 바로 될 수 있었겠습니까? 신학교도 제대로 졸업하고 목사의 신덕(信德)도 기르고 제대로 해서 목사가 되어야 합니다. 신학교만 졸업한다고 다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니고, 목사의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신덕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격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목회의 실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제대로 바른 교역자가 되어야지, 쉽게 받는 데, 거저 주는 데에 가서 목사가 되면 뭐하겠습니까? 요새 신학교도 제대로 안 하고 목사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신학교 한 1년 반만 하고 목사안수 받은 사람도 있고, 돈만 내고 신학교를 다니지 않고도 목사 안수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요새 별의별 일이 다 있습니다. 돈만 조금 주면 졸업장을 주는 신학교가 있는데, 그리고는 안수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굉장히 좋은 명함을 찍어서 가지고 다니면서 목사라고 합니다. 일생 동안 받는 성직인데, 그렇게 돈만 내고 받으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무슨 목회를 하겠습니까? 신학교 간판을 붙여놓고 졸업장을 팔아먹고 목사의 이름을 남발하고 자격도 없는 사람에게 목사 안수를 주는데, 그들은 자기의 책임을 지고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이전에 청량리에 어떤 목사가 하나 있었는데, 여기에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목사가 신학교를 하고 자그마한 교회를 하나 했습니다. 또 대학원을 했습니다. 대학원 졸업장도 받았습니다. 자유당시대 때입니다. 그 학교의 대학원 원장하던 사람은 나한테서 배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오면 붙여주고 졸업장을 주는 것입니다. 대학원도 하고 신학교도 하는데, 신학교 졸업장도 주고 대학원 졸업장도 주고 또 목사 안수도 주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다 망했습니다. 대학원과 신학교가 망하고 그 목사도 어디에 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교회도 실패한 것입니다. 자기 교회나 잘하지, 무엇 때문에 졸업장을 팔아먹다가 다 망합니까? 그러므로 누구나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돈이나 받아먹고 팔면서 인본주의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셔서 망하는 것입니다. 심판 받는 것입니다. 교회를 어지럽게 만드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대학원 원장하던 사람은 지금 미국에 가 있는데,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미국에 갈 일이 있어서 가서 이따금 만나면 아주 기뻐하며 찾아와서 음식을 사준다고 합니다. 주동하던 목사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그다지 많지 않았는데 교회도 망치고 쫄딱 다 망친 것입니다. 그러니까 명예, 영광심과 인본주의로 하면 안 됩니다. 

3. 하만이 집에 돌아와서 친구와 가족에게 고함

작은 것에 불만을 품지 말고 용납하며 나가라

본문 12절에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와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만이 머리를 싸고 돌아왔습니다. 너무 부끄러워서 머리를 쌌을 것입니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일국의 재상이 문지기를 태워가지고 돌아다녔으니 위신이 땅에 떨어진 것입니다.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것보다 더 합니다. 그러니 사람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또 그 마음이 얼마나 번민했겠습니까? 그러니까 작은 것을 가지고 불만을 품기 시작하면 큰 불만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 왜 불만을 품습니까? 모르드개가 절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불만을 품을 필요가 무엇입니까? 절하지 않으면 안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라고 하며, 있어도 없는 것처럼 하고 나갔으면 이런 번민을 당하지 않았겠는데, 작은 것을 가지고 번민하면서 자꾸 생각하고 마지막에 죽이려고 하다가 결국은 자기가 이와 같이 몇 백 배 더 큰 번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큰 수치를 당하게 되었습니까? 문지기에게 절을 받지 않는 수치보다 얼마나 더 큰 수치입니까? 절 받지 못하는 조그마한 수치를 당했으면 되었을 것을 그것보다 몇 만 배 더 되는 수치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또 조그마한 번민이 하나 있었을 때 그것을 없는 것처럼 하고 나갔어야 되겠는데, 그것을 죽여 없애려고 하다가 그것보다 몇 백 배, 몇 만 배가 되는 번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것은 용납하고 나가야지, 용납하지 않고 나가면 그것보다 더 큰 것을 당할 날이 옵니다. 

우리 몸도 그렇습니다. 우리 몸의 어떤 부분은 약합니다. 어떤 부분은 병이 나기도 합니다. 다 건강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속에 시원치 않은 기관이 하나쯤 있는 법입니다. 또 사진을 찍어보면 양성은 아니더라도 음성 결핵균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속의 어떤 기관이 병이 난 사람이 있습니다. 치질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연약한 데가 있어도 그저 없는 것처럼 하고 나가야지, ‘나 치질 있다. 치질 있다’라고 계속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두면 몇 십년 가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일생 동안 치질이 있다고 해서 밤낮 속이 상해서 머리를 싸매고 앉아 있으면 치질 대신에 심장병이 생기고 노이로제에 걸려서 죽습니다. 작은 것이 하나 있어도 좀 과하지 않으면 그냥 가지고 나가면 괜찮습니다. 자그마한 것 하나를 갖다가 자꾸 신경을 써서 속이 상하기 시작하면 그 병은 아무것도 아닌데, 마지막에는 속이 상해서 죽습니다. 속이 상해 돌아가면 각종 병이 다 생기지 않겠습니까?
하만이 모르드개를 가만히 두지 못했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이렇게 큰 함정에 빠지고 큰 번민과 큰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수치를 당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작은 불만이 들어와도 불만이 없는 것처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작은 불만은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없는 것처럼 여기고 없는 것처럼 통과해 나가는 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것처럼, 큰 것이 하나 오면 음지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것이 많지만 작은 것도 있지 않습니까? 큰 것이 있는데 마귀 역사가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있어도 없는 것처럼 하고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에도 가룟 유다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때문에 속상할 필요가 없고 불만을 품으면 안 됩니다. 있어도 없는 것처럼 이용하면서 나갔기 때문에 예수님의 일이 되어 나간 것입니다. 가룟 유다 때문에 불만을 품었다고 하면 예수님의 일이 실패가 됩니다. 그러니까 작은 불만과 불상사가 있어도 큰 것을 생각해서 그것을 다 없는 것처럼 여기고 나가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만족하며 감사로 통과해야 되겠습니다. 큰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가정 파탄이 나는 집들도 큰 것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작은 것 때문에 파탄이 납니다. 어떤 사람은 비오는 날, 창구멍이 뚫어진 데로 바깥을 내다보다가 이혼을 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창구멍으로 가만히 내다보고 있으니까 부인이 있다가 “왜 내다보느냐?”고 했다고 합니다. “누구 생각이 나서 내다보느냐?”라고 하니까 남편 말이 “생각은 무슨 생각이냐? 그냥 내다보는데 뭘 그러느냐?”고 하니까 그 말을 듣던 부인이 “그래도 누구를 생각하기에 내다보겠지, 가만히 있는 것을 보니까 이전에 사귀던 여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지 못하겠나? 내가 무슨 생각을 한다고 그러느냐?”라고 하니 부인이 말하길 “내가 다 안다. 그렇게 생각하려면 가서 살지 뭐하러 여기 앉아 있느냐? 난 이혼해도 좋으니 가서 살아라. 내가 오고 싶어서 왔나? 난 이혼해도 하나 두려울 것이 없다”라고 하였답니다. 그러니 남자가 얼마나 화가 납니까? 그래서 대판 싸우고 ‘이럴 바에는 그만 두자”하고 이혼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극히 작은 문제를 소화하지 못해서 큰 것을 다 깨뜨려 내버리는 수가 많습니다. 그것이 참 한심한 것입니다. 

또 조금 높아지겠다고 하다가 즉살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큰 일을 하겠다고 하다가 죽은 목사, 쫓겨난 목사도 보았습니다. 결단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높아지고자 하는 생각과 큰 일을 하겠다는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큰 것을 생각해서 작은 것은 없는 것으로 여기며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많고,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종의 직분과 양 떼 먹이는 사명이 얼마나 큽니까? 그러므로 조그마한 것이 없는 것은 잘 참고,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은 다 양보하고 손해를 보며 나가야겠습니다. 

망건 값을 물어준 선교사 이야기

망건 값을 달라고 하면 망건 값을 물어주면 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김현봉 목사님한테 들은 것입니다. 선교사가 한국에 처음으로 와서 선교할 때에 우리나라에 자동차가 많이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말을 타고 다니면서 선교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교인이 선교사에게 말을 빌려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말을 빌려주었다고 합니다. 선교사이기 때문에 말을 빌려달라고 할 때에 빌려주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가지고 그 사람이 망건(갓 쓰기 전에 쓰는 것) 장사를 했는데 그것들을 말에다 싣고 멀리 가져다가 팔았답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망건을 잃어버렸답니다. 허술하게 싣고 가다가 떨어진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선교사한테 와서 망건 값을 내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 선교사가 “왜 망건 값을 내라고 하느냐?”고 하니까 “선교사님이 말을 빌려주었기 때문에 망건 장사하다가 망건을 잃어버렸다. 말을 안 빌려주었으면 안 잃어버렸을 것이므로 망건 값을 내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다가 얼마인가를 물어보았답니다. 그 망건 값이 상당히 비싼데, 그것을 그 선교사님이 물어주었답니다. 그래서 다른 선교사가 옆에 있다가 “제가 장사하다가 잃어버린 것인데 그 망건 값을 왜 물어주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선교사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조건적으로 희생했느냐? 무조건적으로 희생하지 않았느냐?”라고 하며 예수님께서 희생하신 것을 얘기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망건 값을 받아간 사람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망건을 잃어버려서 살림살이가 다 없어진 것 때문에 상심했을 것인데, 그 값을 받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마음이 흐뭇하고 좋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교사는 그것을 물어주었다고 못 살았겠습니까? 그러니까 작은 것을 가지고 불만을 품지 말고 감사로 통과해야겠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높아지고자 하는 생각을 다 버려야 합니다. 

또 작은 수치를 잘 감당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일개 문지기가 재상을 보고 절하지 않으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무시를 달게 받아야 합니다. 본문에서도 문지기가 무시하여 자기의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하만이 달게 받고 나갔더라면, 그가 일생동안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뻔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참지 못해서 불만을 토로하고 그를 죽여 없애려고 하다가 더 큰 번민이 오고, 몇 만 배 더 되는 큰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만일 며느리가 안 믿는 시아버지에게 절을 하지 않으면 좀 섭섭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아들을 생각하고 잘 참아야 합니다. 그러면 집안이 바로 될 것입니다. 못 참고 그 며느리를 내쫓으면 집안이 망하게 됩니다. 며느리가 절을 안 해도 절하지 않는 아이도 있는가보다, 하고 참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 절은 하면 안 됩니다. 신적 경배는 사람에게 합당치 않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인사는 해도 좋으나 사람이 신이 아니므로 사람에게 신에 대한 경배는 하면 안 됩니다.

하만이 하나님의 백성 앞에서 꺼꾸러지게 됨

본문 13-14절에 “자기의 당한 모든 일을 그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고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 아내 세레스가 가로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족속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저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의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세레스와 친구 중 지혜로운 자들이 하만에게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족속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저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만이 모르드개를 이기지 못하고 엎드러질 것을 알았겠습니까? 벌써 왕의 생각이 뻔한 것이 아닙니까? 왕의 생각이 모르드개를 높이려는 것입니다. 하만은 모르드개가 탄 말을 끌고 다니게 했으므로 하만보다 모르드개를 높이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만이 꺼꾸러질 것을 안 것입니다.
지혜 있는 자들이 집에서 모여서 의논을 하는데 벌써 다 안 것입니다. 그리고 대세가 기울어지는 것을 보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또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라고 한 것은 왕이 벌써 하만보다 모르드개를 높이겠다고 하는 것이 분명하므로 앞으로 꺼꾸러지지 어떻게 안 꺼꾸러질 수가 있겠느냐고 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지금 하만이 유다 족속과 싸우는 것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성도와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하만이 싸우는 것인데, 하나님의 백성 앞에 하만이 꺼꾸러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낮아지는 것과 수치를 당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작은 수치를 잘 당하면 다음에 큰 수치를 안 당합니다. 또 낮아지면 다음에 망하는 가운데에 안 빠집니다. 또 작은 불만을 잘 통과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다음에 큰 번민을 당하지 않습니다. 작은 번민을 잘 참고, 높아지려고 하지 않고, 큰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권고가 늘 그 사람과 같이 합니다.
또 모르드개가 왕과 그 나라를 위해서 충성을 하였는데, 그리고나서 보상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위해서나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나 진리 운동을 위해서 충성을 하고 보상을 받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보상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드개가 이와 같이 올라간 것 입니다. 전에 만약 보상을 받았더라면 모르드개는 이번에 죽습니다. 보상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살고 높아진 것입니다. 또 이 세상에서 죽을 때까지 보상을 받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가면 더 큰 상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될 수 있는 대로 보상을 받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래야 다음에 더 큰 것을 받고 또 이 세상에서 안 받으면 하늘나라에 가서 더 큰 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낮아져야 높아지는 것입니다.

에스더 5:1-14 연회를 베푼 에스더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연회를 베푼 에스더
에스더 5:1-14

1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보좌에 앉았다가 2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심히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홀을 그에게
내어 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홀 끝을 만진지라 3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4에스더가 가로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
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임하소서 5왕이 가로되 에스더의 말한 대로 하도록 하만을 급히 부르라 하고 이에 왕이 하만과 함께 에스더의 베푼 잔치에 나아가니라 6잔치의 술을 마실
때에 왕이 에스더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 할찌라도 시행하겠노라 7에스더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소청, 나의 요구가 이러하니이다 8내
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시기를 선히 여기시거든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나아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 9이날에 하
만이 마음이 기뻐 즐거이 나오더니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있어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아니하는 것을 보고 심히 노하나 10참고 집에 돌아와서 사람을 보내어 그 친구들과 그 아내 세레스를 청하
여 11자기의 부성한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왕이 자기를 들어 왕의 모든 방백이나 신복들보다 높인 것을 다 말하고 12또 가로되 왕후 에스더가 그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 받은 자는 나 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느니라 13그러나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이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아니하도다 14그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가 이르되 오십 규빗이나 높은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달기를 구하고 왕과 함께 즐거이 잔치에 나아가소서 하만이 그 말을 선히 여기고 명하여 나무를 세우니라

1. 에스더가 왕에게 나아가 청원함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왕으로 하여금 에스더에게 금홀을 내어 밀게 하심

본문 1-2절에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보좌에 앉았다가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심히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홀을 그에게 내어 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홀 끝을 만진지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가 금식 기도를 할 때에 베옷을 입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세수도 하고 머리에 기름도 바르며 왕후의 의복을 입고 모든 것을 다 갖춘 후에 왕궁 안으로 들어갔을 것입
니다. 금식 기도할 때에는 베옷을 입고 하는 것이 좋지만, 왕 앞에 나타날 때에는 예복을 갖춰 입고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대해서 예의를 갖추는 것입니다. 왕 앞에 가려고 하니까 왕후의 예복을
입어야 될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 매달릴 때에는 일심정력을 다해서 매달리는 것입니다. 머리는 한 광주리가 되고 세수할 새가 없이 의복도 남루하게 입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가 끝난 다음에는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며 예복을 입어 단정하게 하고 모든 사람 앞에 정상적인 차림으로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아무것이나 걸치고 나가면 안 됩니다. 정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나서 모든 일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만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왕으로 하여금 에스더가 심히 사랑스럽게 보여지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왕이 금홀을 내밀었는데, 이때 금홀을 내밀지 않았다면 에스더는 죽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가 왕 앞으로 가서 금홀 끝을 만졌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겸손히 왕을 존경하는 태도를 갖춘 것입니다. 에스더가 왕 앞에 가서 금홀 끝을 만졌습니다. 

에스더가 근본 요구를 말하지 않고 왕을 잔치에 초대함

본문 3-4절에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에스더가 가로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임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왕은 에스더가 자신에게 나아올 때가 아닌데, 온 것을 보고 특별한 일이 생긴 줄로 알았습니다. 보통은 오면 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에스더가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볼 때에 그녀에게 중요한 일이 생긴 줄로 안 것입니다. 그래서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보통 왕들이 무엇을
주겠다고 할 때에 특별히 하는 말입니다.
헤롯도 헤로디아의 딸이 와서 춤을 출 때에 이 말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최대한 네 요구를 다 들어주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에스더가 가로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선히 여기시
거든 하만과 함께 임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즉, 에스더가 그 자리에서 원 요구를 말하지 않고 잔치에 와달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의 근본 요구는 유다 사람들이 다 죽게 되었으니 그들을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은 하지 않고 잔치에 와달라고만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 시간에 말을 하지 않고 두 번씩이나 잔치에 와달라고 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2. 에스더의 잔치에 임한 왕과 하만을 다시 잔치에 초청함

왕을 잔치에 두 번이나 초대한 까닭

본문 5-8절에 “왕이 가로되 에스더의 말한 대로 하도록 하만을 급히 부르라 하고 이에 왕이 하만과 함께 에스더의 베푼 잔치에 나아가니라 잔치의 술을 마실 때에 왕이 에스더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
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 할찌라도 시행하겠노라 에스더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소청, 나의 요구가 이러하니이다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시기를 선히 여기시거든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나아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가 두 번째로 잔치에 나오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자기의 소청이며 내일은 말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에스더가 자신의 요청을 당장 말하지 않고 잔치를 베풀었으니 오시라고 하고, 왕이 잔치에 갔을 때에 내일 한 번 더 오시라고 한 것은 다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대접을 좀 더 많이 하면서 왕을 조금 더 깊이 사귀고 나서, 자신의 요청에 대한 허락을 잘 받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까딱하면 일이 틀어지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에스더가 왕에게 이번에 큰 것을 요청해야 하므로, 대접을 좀 더 잘하고 나서 그것을 요청하려 한 것입니다. 또 왕을 좀 더 깊이 사귀어서 좀 더 깊은 관심과 깊은 교제가 있은 다음에 요구를 말하려고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좀 더 대접하고 좀 더 깊이 사귀고 난 다음에 요구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편 91편 14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
를 높이리라”고 하였습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져내리라’고 한 것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건져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때에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5절에 “저가 내게 간구 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깊은 교
제가 있은 다음에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건져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함께하여주시고 영화롭게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깊이 사귀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조건 달라고만 하지
말고 먼저 대접하고 먼저 교제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심은 다음에 거두는 것입니다. 무엇이나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깊이 심은 다음에 요구를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더
가 왕을 연회에 두 번 초청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경외하며 하나님을 위하고 좀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좀 더 하나님을 대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요구를 다 들어주실 것입니다. 또 그러한 사람을 높여주시고 환난에서 건져주시고 같이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귀지 아니하고 그저 달라고만 하면 안 됩니다. 심어야 거두고 잘 대접을 해야 거기에서 좋은 것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좀 더 충성하고 하나님을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소원을 다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양도 잘 먹인 다음에 젖을 짜야 젖이 잘 나오고, 곡식도 많이 심어놓아야 다음에 거둘 것이 많습니다. 먹이지는 않고 젖만 짜겠다고 하면, 짤 것이 없습니다. 나무도 뿌리에다가 비료를 많이 치고 열매를 따려
고 해야, 좋은 열매가 맺힙니다. 그러니까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대접하는 대로 대접을 받는 줄을 알고,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보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많이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이루어주십니다.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고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며 하나님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많이 도와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요구를 다 들어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위하지는 않고 하나님의 것을 받아먹겠다고만 하면 하나님께서 안 주십니다.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며 하나님의 일을 도와나가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면에서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에스더도 왕과 좀 더 깊이 사귀고 왕이 좀 더 도와줄 마음을 가질 때에 요청하기 위하여 왕을 두 번씩이나 잔치에 초대한 것입니다. 좀 더 좋은 기회를 봐서 구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위해서 좀 더 충성한 다음에 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심은 다음에 거두고 대접을 잘해놓고 대접을 받으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할 것은 하지 않고 받기만 하겠다고 하는 사람
은 못 받습니다. 받으면서도 불평이나 하고 원망이나 하면 받을 수 없습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사랑
을 베풀어야 사랑이 온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베풀지 않고 어떻게 사랑을 받겠습니까? 사랑을 주고서야 사랑을 받고 사랑해야 사랑을 입고 하나님을 찾아야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에스더도 좀 더 간절히 왕에 대한 소원을 가지고 대접을 좀 더 하려 한 것입니다. 그리고 대접을 한 다음에 자기의 요청(소원)을 말하려고 한 것입니다.
아무튼 왕은 에스더의 소원을 들어주어서 하만과 같이 잔치에 참석하여 술을 마실 때에 에스더에게 다시 “네 소원이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허락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에스더가 두 번째로 말하
기를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 시행하시기를 선히 여기시거든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나아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라고 하
였습니다. 즉, 두 번째 잔치를 미리 베풀어놓고 들어가서 다시 잔치에 오기를 간청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왕을 감동시키셔서 왕이 다시 잔치에 올 것을 믿고 한 행동과 말입니다. 그것을 믿고 에스더가
잔치를 차려놓았을 것입니다. 또 만약에 왕이 다시 안 오면 자기는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차피 죽을 바에야 잔치를 베풀어놓고 죽으나 안 베풀어놓고 죽으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왕
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왕이 잔치에 온다고 하면, 잔치를 베풀어놓은 것이 큰 효과가 날 것입니다. 즉, 지금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왕을 잘 대접하고 좀 더 깊이 사귀며 왕의 환
심을 좀 더 많이 사고 난 다음에, 좋은 기회를 타서 말하려고 지금 이렇게 잔치를 베풀어놓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만을 잔치에 데리고 오라고 한 까닭

그런데 에스더가 하만은 무엇 때문에 데리고 오라고 하였겠습니까? 그 다음날도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가 하만이 있을 때에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만이 유다 사람들을 죽이려는 장본인인데, 장
본인이 있을 때에 말해두어야만 그것을 변명하지 못하고 뒤집지 못하겠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만이 없을 때에 말하면, 그 다음에 왕이 하만을 또 언제 불러오겠습니까? 그리고 자꾸 시간이 가면 왕의 마음이 식을 것이고 하만을 불러다가 물어보면 그가 딴 소리를 할 수도 있으므로, 아예 그가 있을 때에 직접 담판을 지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소뿔을 단김에 빼려고 하만을 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만은 아주 좋아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왕과 자기 두 사람만 오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에스더가 잔치 자리에서 하만에게 대단히 잘해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에스더가 하만에게 잘해준 이유는 하만으로 하여금 에스더의 숨은 뜻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하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또 왕이 하만의 말을 잘 듣고 있기 때문에 만약 하만이 눈치를 채서 어떤 계획을 꾸며 왕에게 시행하게 하려 할지도 모릅니다. 즉, 하만이 조금이라도 눈치를 채고 에스더가 자기를 어떻게 하려 한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 그가 왕 앞에서 다른 소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장 내일 잔치에 오기 전에 하만이 왕 앞에 가서 무슨 짓을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잘해주어서 눈치를 채지 않게 함으로, 하만으로 하여금 내일 다시 오게 하는 것이 에스더의 목적이었습니다. 하만이 있을 때에 왕에게 말하려고 특별히 에스더가 하만에게 잘해준 모양입니다. 물론 에스더가
왕에게 첫째로 잘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만에게도 잘해주었습니다. 아마 선물을 두둑하게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만은 왕후가 자신을 이만큼이나 생각해주고 잔치에 오라고 한 것만 해도 고마운데, 가서는 대접을 너무나 잘 받음으로 말미암아 매우 기분이 좋았던 것입니다. 하만이 왕후에게 많은 선물을 받고 접대도 잘 받은 것을 생각하면서 너무 감개가 무량하여 대단히 기분이 좋아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3. 하만의 자랑과 불만

하만이 기뻐하며 친구들을 불러 자신의 부성한 영광을 자랑함

본문 9-12절에 “이 날에 하만이 마음이 기뻐 즐거이 나오더니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있어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아니하는 것을 보고 심히 노하나 참고 집에 돌아와서 사람을 보내어 그 친구
들과 그 아내 세레스를 청하여 자기의 부성한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왕이 자기를 들어 왕의 모든 방백이나 신복들보다 높인 것을 다 말하고 또 가로되 왕후 에스더가 그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
받은 자는 나 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만이 마음이 대단히 기쁘고 즐거워서 대궐 문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속상한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가 대궐 문을 나서는데,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있다가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몸을 움직이지도아니하는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벌레새끼처럼 몸을 거꾸러뜨리고 있었습니다. 금식하면서 베옷을 입고 있으므로 사람 같지 아니할 것입니다.
시꺼매가지고 짐승과 같이 있으므로 그것을 볼 때에 하만에게 심한 노가 올라왔습니다. 당장에 그를 칼로 찔러 죽이면 시원하겠는데, 그래도 참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도 하만의 속이 편안치 않았습니다. 속
상한 것을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서 친구들과 그 아내 세레스를 청해가 지고 한 번 의논해보려고 했습니다. 속에 만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부성한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왕이 자기를 들어왕의 모든 방백이나 신복들보다 높인 것을 다 말하고 또 가로되 왕후 에스더가 그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 받은 자는 나 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 하나 때문에 불만을 품은 하만

본문 13절에 “그러나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이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아니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하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좋은 것들을 많이 주셨는데, 지극히 작은
것 하나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잠언 21장 24절에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행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무례하고 교만한 자(망령된 자)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한다고 하였습니다.
불만을 품는 자는 언제나 불만거리가 있습니다. 늘 불만거리가 생깁니다. 불만거리가 안 생길 날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주어도 불만을 품는 사람은 불만거리가 또 생깁니다. 하만만큼 많이 가진 사람이 없는데, 그래도 감사할 줄을 모르고 불만을 품게 되면 불만거리가 또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언제나 자족을 배우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불만을 품기 시작하면 아무리 많이 주어도 그것을 가지고 안 됩니다. 하만이 지금 얼마나 불만을 품었습니까? 그런데 그가 모르드개를 잡아
죽이면 또 다시 불만거리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불만거리가 내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것을 잡아 죽여도 불만이 또 나옵니다. 계속 불만거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모르드개를 죽이면 무슨 불
만이 나오겠습니까? 왕의 타는 말, 왕의 입는 의복, 왕의 면류관을 써볼 생각을 가졌는데, 그것을 못 해보는 것이 불만입니다.

사람은 욕구에 한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자족을 배우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절대 불만을 품지 말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주셨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조그마한 것 하나 때문에 속상해하면,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람이 조금만 불면 또 속상한 것입니다. 불만을 품으려고 하면 끝이 없는 것입니다.

불만을 감사로 이기라

그러나 감사하려고 하면 전부 감사한 것뿐입니다. 나는 넥타이 하나를 멜 때마다 감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께서 넥타이 멜 자격이 없는 나 같은 자에게 이런 넥타이를 주셨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감감사한지 모릅니다. 외국에 나갔다가 선물로 넥타이를 사오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외국제 넥타이를 멜 만한 자격이 없는데, 이런 것을 하나 주다니 예수님 덕분에 이런 넥타이를 한 번 메어본다’
하는 감사한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로 통과하는 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주셨습니까?우리 어렸을 때에만 해도 한심하기가 짝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밀감을 못 먹는 때였습니다. 그래서 밀감이 하나 생기면 한 쪽씩 나누어먹는
데, 그 한 쪽도 얻어먹을 수가 없어서 혹시 한 쪽을 얻어먹게 되면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휴지 같은 것도 우리 어렸을 때에는 못 썼습니다. 우리 학교 다닐 때에 어떤 아이가 휴지를 몇 장 가지고 왔는데,
그때 휴지를 처음 보았습니다. 나도 한 장 달라고 하여 얇은 것을 한 장 얻어서 코를 푸니까 종이가 얇아서 다 째지고 코가 손에 다 묻었습니다. 그 생각이 지금도 납니다. 여러 장은 생각도 못하는 것이고 얇은
것 한 장으로 코를 풀었으니 무엇이 되겠습니까? 손에 코가 다 묻어서도리어 안 푼 것보다 못합니다.
그런데 요새는 휴지가 어지간하면 화장실 가는 데마다 다 있습니다.
처음에 창광 교회에 휴지 시꺼먼 것을 가져다가 걸었는데, 요새 소련에 갔다 온 사람의 말을 들으면 소련도 시꺼먼 화장지를 가져다가 쓴다고 합니다. 또 비누도 냄새나는 것을 거저 쓴다고 합니다. 지금 소련
의 상황이 한국의 50년대 정도라고 하는데, 채소가 호텔에 가도 그렇게 없다고 합니다. 또 모스크바 거리는 차를 타고 30분이면 다 통과를 하는데, 규모가 서울의 오분지 일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괜히 모스크바라고 하면 환상적인 줄로 알지만, 실제로 가보면 작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레닌의 묘가 있는데, 그 묘에는 불이 늘 우글우글 붙고 있답니다. 그곳에는 관광객이 일 년에 5백만 명이 드나드는데, 항상 몇 백 명이 쭉 레닌 묘를 둘러서서 구경하느라 나란히 줄을 섰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 얘기를 듣고 ‘영혼은 지옥에 가고 몸뚱이는 지금 세상 불에 내내 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24시간 레닌 묘에서 불길이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자기네가 사실은 자랑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 불에 간 것을 가르쳐주느라고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련 사람들이 채소를 왜 안 먹는가 하면, 남쪽에 우크라이나 같은 데에는 채소가 잘되는 곳이 많은데 거기에서 실어오는 데에 여러 날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미국이나 한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먹을 것들
을 금방 실어오지만 거기는 기차로 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다가는 세우고 오다가는 세우고 해서 여러 날을 오기 때문에 채소는 다 시들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못 먹는다는 것입니다.
또 거기 사람들은 역에 있는 사람이나 비행장에 있는 사람이나 무슨 일을 빨리 처리하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냥 척 놔두고 한참 있다가 한 번씩 일하는데, 월급이 일하는 것과 관계없이 같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비행장에 자기 짐을 여러 개 붙여가지고 갔는데, 아무리 찾으려도 해도 안 나오더랍니다. 그렇게 몇 시간이 가도 조금 더 기다 리라고만 해서 계속 쳐다보니까 자기가 볼 수 있는 곳에 짐들이 있더랍니다. 그래서 저 짐들을 왜 안 주느냐고 하니까 가만히 기다리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또 여러 시간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산당들은 하루 나가서 시간만 채우면 되기 때문에 빨리 일을 처리해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근무 시간에 천천히 일하면서 시간만 채우면 되는 것입니다. 일을 빨리 하나 천천히 하나 월급은 똑같이 받습니다. 그러므로 한 시간 걸리면 할 일을 댓 시간 걸려 하고, 하루면 다할 것을 한 닷새가 걸리게 일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말한 대로 하루가 걸리나 닷새가 걸리나 월급은 똑같이 받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한국은 얼마나 많이 발전하였습니까? 

그런데도 요새 우리 한국 백성들은 불만이 많습니다. 특별히 젊은 사람들 층에서 불만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 6.25 사변 때에 비하면 GNP가 10배나 올라갔습니다. 그때에는 비행기도 없었습니다. 한
번은 최희선 선교사가 6.25 사변이 끝나고 1953, 4 년쯤에 미국에 간다고 비행장에 나자가고 했습니다. 그때 최 선교사와 부산에 같이 있었습니다. 그때 비행기가 여의도에서 뜨고 내렸는데, 가까이에서 비행기
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일본까지 가는 한 4, 50 명이 타는 조그마한 비행기인데, 거기에서 미국 가는 것으로 바꾸어 탄다는 것입니다. 그때 한국에는 미국에 바로 가는 비행기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 비행기가 굉장한 것 같아서 날개를 다 만져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비행기가 다 무엇입니까? 이제는 한국에 대한항공 비행기가 많습니다. 돈을 얼마 안 주면 부산이고 제주도고 다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만족이 없고 불만이 더 많습니다.
또 우리의 신앙 생활을 볼 때에도 하나님께서 많은 사랑으로 귀한 은혜와 다른 데에서는 알지 못하는 진리를 많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모르드개가 없는 곳이 없거늘, 조그마한 모르드개가 있는 것을 가지고 속상해하며 못살겠다고 노하며 돌아갑니다. 우리는 조그마한 것 하나 가지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노하지도 말아야겠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큰 것 주신 것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조그마한 모르드개는 굴하지 않겠으면 말라고 그냥 둬두고, 큰 것 주신 것을 가지고 감사해야겠습니다.
참으로 감사하며 늘 믿음으로 나가고 충성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모르드개 하나 있는 것을 죽여야만 속이 시원하겠다고 죽이지 못해서 안달을 하고 돌아가니, 어떻게 합니까? 모르드개는 일개 문지기에 지나지 않은 사람인데, 굴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습니다. 불만을 품으려면 아무리 많이 가져도 한정이 없습니다. 또 불만거리가 내내 있습니다. 하나가 지나가면 또 오고, 하나가 지나가면 또 오는 것입니다. 계속 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데모하는 것을 들어주면 괜찮을 것 같으나 들어주면 한정 없이 더 들어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새는 학생들이 어디까지 들어달라고 하는가 하면 대학교 총장 임명하는 권리를 달라고 합니다. 또 교수 임명도 학생이 학사의 행정에 참여해서 같이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학생이 어떻게 자기 선생 임명하는 데에 참여하겠습니까?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또 농사꾼들은 수리조합에서 물을 가져다가 농사를 하고는 수세(水稅)를 안 문다고 합니다. 또 고추를 많이 심어놓고 팔지 못하므로 정부를 상대로 떼를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추는 제가 많이 심어놓고 왜
정부를 상대로 싸우자고 합니까? 정부에서 많이 사주었는데 조금 남은 것을 마저 사달라고 떼를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구를 들어주면 들어달라고 하는 것이 더욱 더 많아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들어
달라고 해서 한, 두 가지를 들어주면 거기에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 한, 두 가지를 들어주면 두, 세 가지, 또 서, 너 가지, 또 대,여섯 가지의 불만이 나옵니다. 계속 불만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런데 다 들어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에 비싼 것을 내려달라고 하는 것은 좋으나 물어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욕심이 한정이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 대학교마다 신문이 있는데, 그 신문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대개 다 의식화된 학생들이라고 합니다. 선거를 하면, 그 사람들이 똘똘 뭉쳐가지고 돈을 쓰고 다니기 때문에 결국 그 사람들이 당선이 된
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못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신문을 만들면서 현 정부를 반대하고 민중 민주주의를 찬동하는 내용으로 기사를 작성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 신문은 공산당 선전지 밖에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이북에서 한 것을 그대로 가져다가 실은 신문도 있어 이북 신문과 비슷한 것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일에 불만을 품으려면 한정이 없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서도 그 당시에 하만과 같이 높아진 사람이 없고 그만큼 부요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에게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불만이 없는 곳은 이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를 죽여도 다른 불만이 또 있게 됩니다. 세상은 불만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성도도 불만이 그칠 날이 없으나 믿음을 써서 그 불만을 다 초월하며 살아야 합니다. 모든 상황을 감사로 통과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모르드개와 같은 사람이 있으면 있는 것이지, 뭐 큰 일이 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가룟 유다를 내내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그가 재정을 맡아서 내내 도둑질해가고 내내 불평하고 마지막에는 예수
님을 반역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가 보다 하시고 그도 데리고 다니시며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기뻐하시고 항상 감사하셨던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작은 불만거리가 하나 있다고 해서 그것을 불만거리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만거리는 없을 수가 없고 계속해서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불만을 품고 있자고 하면, 일 년 열 두 달 늙어 죽도록 불만을 품어야 합
니다. 그것이 없어질 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이기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불만거리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며 믿음으로 모든 것을 통과해
야만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만이 친구들과 자신의 아내를 모아다놓고 내일도 대궐에 나가게 된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본문 13절에 “그러나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이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아니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지금 하만은 그렇게 많은 것을 가지고 그렇게 높아져있는데, 지극히 작은 것 하나 때문에 만족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귀의 종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4.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높은 나무를 세움

하만이 불만을 없애려다 자기가 판 함정에 빠지게 됨
본문 14절에 “그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가 이르되 오십 규빗이나 높은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달기를 구하고 왕과 함께 즐거이 잔치에 나아가소서 하만이 그 말을 선히 여기고 명
하여 나무를 세우니라”고 하였습니다. 친구들이나 아내는 하만이 그렇게 불만을 품고 만족이 없으므로 같이 걱정을 하고 그 불만을 없애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방법은 오십 규빗이 되는 나무를 세워놓고
왕 앞에 가서 허락을 받아 내일 아침에 나무에 달고 그 다음에 왕후의 잔치에 나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잠언 26장 27절에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고 하
였습니다. 하만이 남을 죽이려고 지금 함정을 파지만 그 함정에 제가 빠지고, 남을 죽이려고 돌을 굴리지만 그 돌에 제가 치어 죽는다는 것입니다. 

오십 규빗이 되는 막대기를 세울 때에는 누가 거기에 자기가 달릴 줄을 알았겠습니까? 지금 하만은 그 막대에 모르드개를 달아놓고 불만을 다 없이 한 다음에 즐겁고 평안한 마음으로 잔치에 가려는 것입니다. 한 규빗이 자 반씩이므로, 오십 규빗이면 칠십 오 척입니다. 전신주가 보통 삼십 삼 척(10m)입니다. 그러므로 전신주 두 개 반쯤 되는 높은 막대기를 세워 놓은 것입니다. 그래놓고 오늘 저녁에 왕 앞에 가서 모르드개를 달기로 허락을 받아서 아침 일찍 그를 매달고 왕후의 잔치에는 평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가려는 것입니다. 
 
자신이 받아 누리는 것들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해야 하는데, 불만을 품고 노하며 그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함정에 제가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신 것에 대해서 항상 감사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