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열매 맺어 자라나는 신앙을 가져라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열매 맺어 자라나는 신앙을 가져라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년 11월 22일 수요일

골로새서 1:9-12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능력.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능력
골로새서 1:9-12

9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0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12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9 그러므로 우리도 소식을 들은 날부터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간구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는 너희가 모든 영적인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 되고, 

1:10 너희가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일에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고, 

1:11 그분의 영광의 권능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강하게 되어 기쁨으로 모든 것을 참고 견디게 되기를 기도한다. 

1:12 너희가 빛 가운데서 성도의 유업의 몫을 받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드리게 되기를 바란다. 


1. 신령한 지혜와 총명
하나님의 지혜로 마귀를 이김

본문 9절에,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라고 했는데, 지혜는 어디서 났습니까?

마가복음 10장 16절에,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의 지혜는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사람보다 마귀가 지혜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고서는 뱀의 지혜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사람과 마귀가 싸우면 마귀가 이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에 비하면 마귀의 지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마귀를 이기려면 인간의 지혜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그 지혜로서 마귀와 싸우면 무엇이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성경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저 성경대로 하면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제 생각 제 뜻대로 하면 아무리 잘 될 것 같아도 결과적으로는 마귀에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안 될 것 같아도 성경대로 하면 틀림이 없고 실패가 없으며, 반드시 마귀를 이기고 끝까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성경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성경으로 끝을 내야 합니다. 성경이 가라는 곳에 가고, 성경이 서라는 곳에 서고, 성경이 떠나라는 곳은 떠나야 합니다. 성경이 아니면 떠나고 성경이면 거기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총명

그러면 총명은 또 어디서 났습니까? 신령한 지혜는 성령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데서 나오고, 총명은 영이 깨어있는 세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을 쓸 때에 총명이 나옵니다.

본문 9절 하반 절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범사에 그 뜻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모를 때에는 성경대로 하면 됩니다. 이런 일에는 성경에 뭐라고 했을까 하며 성경을 찾아봐야 합니다. 성경에 이렇게 해라 했으면 그대로 하면 됩니다. 성경대로 하면 실패할 것 같아도 성공하고, 안 될 것 같아도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가 있을 때에는 성경에서 해결하면 됩니다. 

이기선 목사님은 누가 와서 무얼 물으면 성경말씀으로 대답했습니다. 성경 아무데를 가리키며 찾아 읽어보라 하시고 성경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을 찾아 읽게 하고 가서 그대로 하라고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사람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보다 성경대로 하라고 하는 방법이 제일 좋습니다. 성경대로 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돌팔이가 제조한 약들은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오랫동안 내려오는 책대로 제조한 것은 그런대로 효과가 있습니다. 책대로 제조해서 검사받고 만든 약은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지만, 자기 얄팍한 지식으로 만든 약은 믿을 수 없습니다. 혹시 좋은 약도 있겠지만, 그런 약 사먹다가는 언젠가는 후회할 날이 옵니다. 아예 그런 약은 먹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범사에 성경대로 행하고, 하나님의 뜻도 성경으로 찾아야 합니다. 성경대로 하면 실패할 것 같고 잘 안될 것 같아도, 무조건 해보십시오. 손해 볼 것 같고, 실제로 손해 보더라도 해보십시오. 손해가 나도 성경대로만 하면 얼마 지나서, “그렇게 안 했더라면 큰 일 날 뻔 했구나”할 때가옵니다. 성경대로 했기 때문에 잘 된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고, 성경 원리 원칙대로 하고, 신앙 양심을 써서 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하
고, 성경대로 하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는 법

어떤 침례교 선교사 한 분을 만났습니다. 한국에 와서 25년을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한국에서 살라고 한답니다. 저도 그렇게 권유했습니다. 그런데 그 선교사 말이, “하나님의 뜻대로 있는 곳이 제일 좋은 곳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말이 딱 맞는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가 있는 곳이 제일 좋은 곳이니까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그것이 문제인데, 하여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고 제일 복 받는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고, 축복이 되는 것이고 하늘나라 가서도 칭찬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만 범사에 행해야 합니다.

1) 욕심을 버릴 것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으려면 제일 먼저 제거시켜야 할 것이 욕심입니다. 욕심을 가지고 찾으려 하면 잘못된 길로 가기 때문에 가다가 그만 파선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모든 욕심을 버리고, 아주 무(無)요 공(空)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곳, 즉, 동으로 가라하면 동으로 가고, 서로 가라하면 서로 가고, 일하라 하면 일하고, 그만둬라 하면 그만두고, 앉으라하면 앉고, 서라 하면 서야 합니다.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찾기 전에, 자기가 먼저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발람의 기도가 됩니다. 발람의 기도는 자기의 욕심에 따라, ‘가면 좋겠다’는 주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한 기도입니다. 그러기에 가지 않아야 할 곳인데도,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욕심을 가지고 기도를 하는 것은, 나침판에 쇠붙이가 들어가서 나침판 침이 방향을 바로 가리키지 못함 같아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뜻인 것으로 생각하고 그 길로 알고 갑니다. 결국 망하고 맙니다. 발람의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감동이 왔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성경 위반입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에 위반되는 일을 하려고 해서, 제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권면하니까 그 사람이 “목사님 저도 기도하고 하려는 겁니다. 기도하고 감동이 있으니까 하려는 것이지 감동이 없으면 왜 하겠습니까?”라며 아예 자기더러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인지에 아닌지에 대한 말만 하고 다른 말은 할 필요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자기가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지시 받은 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감동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발람의 기도를 통한 감동입니다. 먼저 자기 욕심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기도했기 때문에 잘못 한 것입니다. 그 사람의 기도 내용은, 자기 아내를 내쫓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내를 내쫓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안 된다고 말해도, 그 사람은 그 말 하지 말라면서 다른 말은 다 순종해도 그 말은 순종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말은 할 거 없다. 그 말만 하겠다. 내쫓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경대로 해야 하는데 성경이 아닌 것을 욕심과 자기 생각을 두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감동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뭐라고 했는지를 언제든지 봐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기를 힘을 써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 자라나야 합니다.

2. 하나님께 합당히 행함

합당히 행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심

본문 10절에,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왜 찾아야 합니까? 주께 합당히 행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주께 합당히 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합당히 행한 결과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됩니다. 합당히 행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노하시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범사에 하나님 앞에 합당히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고 늘 하나님 앞에 합당하도록 힘을 써야겠습니다. 합당한지 아닌지 찾고, 합당하지 않다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합당한 일은 비록 그 일이 어렵고 손해가 나더라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하고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이기주의가 표준이 아닙니다. 자기는 다 내버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합당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표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주셔야 함

자기는 손해가 나고 원치 않는 일이라고 해도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면 됩니다. 자기가 당장 손해가 나고, 고통이 되고, 부담이 생기고, 짐이 무거워지고, 십자가가 오고 슬픔이 오는데 왜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면 된단 말입니까? 

요한복음 13장 32절,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그 사람에게 영광을 주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손해 보는 것 같고, 죽을 것 같고, 잘 안 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뜻대로 만 해 놓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해주시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존귀케 해주시고, 앞길을 열어주시고,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게 해주시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그 사람에게 다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이 해주셔야 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으로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으면 살고, 하나님이 없으면 못삽니다. 말씀이 있으면 살고, 말씀이 없으면 못삽니다. 물질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돈 많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살고, 그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되게 해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해도 안 되고 불행이 옵니다. 그곳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나야 함

본문 10절에,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고 바울이 기도했는데, 이런 기도가 나와야 합니다.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나야 합니다. 점점 더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나는 것이 영혼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자라나야 하나님을 점점 더 알게 되고, 점점 더 알아야 영혼이 자라납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안다고 해도 다 알지 못합니다. 지극히 작은 부분밖에는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고 해도 몇 억만 분의 일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지구덩어리 만치 크다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모래 알갱이 만큼밖에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다 알려면 얼마나 많이 알아야 하는지 생각을 해보십시오. 무궁무진한 것입니다. 우리가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도 그 사랑을 그저 모래알갱이 하나만큼만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 점점 자라나야만 영혼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지혜가 자라나는 것이 영혼이 자라
나는 것이고, 지식이 자라나는 것이 영혼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예수님께서 몸이 자라고 키가 자랐다고 했는데, 그것이 영혼이 자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52절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하였는데 지혜가 자랐다는 것은 영이 자랐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에 자라나야 합니다. 점점 더 하나님을 알면 걱정이 다 없어집니다. 하나님을 몰라서 걱정을 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알면 걱정이 다 없어집니다.
자기 아버지가 미국 대통령이라 하면 걱정이 있겠습니까?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어딜 가도 걱정이 없고, 돈이 없어도 걱정이 없고,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다 영접할 것입니다. 대통령의 영향 때문에, 그 아들에게 다들 잘 대접하려고 애쓸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면 모든 것이 다 잘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리 잘 될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의 힘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그 힘을 받게 됨

본문 11절에,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그 영광의 힘’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힘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힘은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전 인격에서 나오는 힘을 말합니다. 그 힘을 좇아서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능하게 해주시기를 바울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능력 있는 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능력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능력 있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영광의 힘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우리를 붙드시고 늘 역사하십니다. 
그 영광의 힘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뜻에 바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 분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뜻에 바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그 사람에게 와서 임합니다. 그 사람은 만능이 됩니다. 만능의 능력이 우리에게 와서 역사해야 하는데 그 능력을 우리에게 입혀주려고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걷게 하시려고, 말씀에 순종시키시려고 늘 애를 쓰십니다. 

우리가 순종만 하면 그 능력이 와서 머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되지 않을 것 같아도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순종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될 것 같은 것만 하지 말고, 될 것 같지 않은 것이라도 하나님의 뜻이면 그대로 순종을 해서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의 힘이 그 사람에게 와서 능력이 있게 하고, 영광이 있게 됩니다. 

친히 영광을 받으시고 영광이 되게 하시는 힘

하나님이 주신 능력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힘이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힘도 되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하는 힘도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십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내신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였습니다. 바로 왕을 강퍅하게 만들고 바로 왕을 심판하심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홍해바다를 가른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영광이 되게 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힘인데, 그 힘을 받은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만 하지 말고 그 영광의 힘을 받아서 그 힘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뜻을 이루어나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위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이제는 그 뜻을 알아서 그 일을 할 만한 능력을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 다음에는 그 뜻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사실 그 능력이 와 있습니다. 와 있는데도 쓰지를 않아서 못 받습니다. 능력을 쓰라는 것입니다. 능력을 쓰는 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갑니다!”하고 가는 것이 능력을 쓰는 법입니다. “어디든지 갑니다!”하고 가고, “무엇이든 합니다!”하고 하는 것입니다. 못한다는 소리는 관두어야 합니다. 불가능이란 말을 집어치우고 ‘하나님의 뜻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고 가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다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2절에는 바울이 뭐하고 합니까?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라고 합니다. 어떠한 형편이든지 능히 그것을 다 믿음으로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디든지 갈 수 있고, 하나님이 힘을 주시면 태산이라도 올라갈 수 있고, 또 옮길 수도 있고, 뽕나무 뿌리를 뽑아서 바다에 던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4. 선한 싸움을 잘 싸우는 자가 자라남
적극적으로 견디며 나가는 자를 하나님께서 도우심

본문 11절에,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사람에게는 뭐든지 다 주십니다. 필요하면 다 주십니다. 제대로 일하면 왜 안 도와주시겠습니까? 제대로 일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나가는 전쟁을 우리는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견뎌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지만 견뎌야합니다. 또 참아야 합니다. 낙심하지 말고 오래 참으면서 오랫동안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나가면서 견디고 거기에 대해서 어려움이 올 때는 오랫동안 참고, 계속해서 참고 견디면서 일을 잘 싸우면서 나가면, 마침내는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영광의 힘으로 그 사람을 붙들어서 능력이 있게 만들고, 능력을 줘서 다 이기게 하십니다. 큰 능력이 생깁니다. 그렇게 해서 자라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영권이 자란만큼 빛의 세계가 커짐

본문 12절에,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이라 했는데, 합당하게 해 나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기초적인 것은 어느 정도 합당하게 했고, 이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선한 일을 바로 해 나가면, 하나님의 기업을 받기에 점점 합당해 집니다. 점점 더 자격이 되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그 기업을 많이 사용할 수 있는 사용권이 주어집니다. 사용할 능력이 생기고, 사용할 지혜가 있게 되고, 하나님께서 사용할 권리를 주십니다. 이렇게 선한 싸움을 싸워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말씀대로 선한 일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서 그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도록, 하나님께서 점점 만들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라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영적 세계에서 점점 영이 자라나고, 영의 권세가 있게 되고, 점점 영권이 세지고, 점점 마귀의 세력을 넓게 정복해 나가는 그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많이 싸워서 이긴 사람에게 영권이 있습니다. 자라나야 영권이 생깁니다. 자라나지 아니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지 아니하고 영권만 있기를 원한다고 하면 영권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자라난 것만큼 영권이 생기고, 영권이 생긴 만큼 하늘나라 기업을 받게 되기 때문에, 자라나지 못하면 안 됩니다. 많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많이 자라난 사람이 강단에 서면 영권이 있습니다. 나가서 전도해도 권세가 있습니다. 영권이 있게 됩니다. 자라나지 못하면 그 만큼 영권이 없습니다. 말은 잘할지 몰라도, 영을 움직이는 영권이라는 것은 거짓말 할 수 없고 속일 수 없습니다.
사람 나이는 속일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나이는 속일 수 없습니다. 나이 들었으면 나이 든 것이 다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60세 된 사람은 60세 된 것이 나타나고, 70세 된 사람은 70세 된 것이 나타나고, 80세 된 사람은 80세 된 것이 나타납니다. 못 속입니다.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영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의 세계도 선한 싸움을 잘 싸워서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써서 그 능력을 이룬 사람, 자라난 사람은 그 만큼 영권이 있습니다. 제대로 믿는 일
하려면 세월이 많이 걸려야 합니다.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연륜이 없으면 안 됩니다. 영의 세계는 갑자기 자라나는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믿는 일 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선한 싸움을 제대로 싸우며,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선한 열매를 맺혀 나가면 그 만큼 그 사람의 영혼이 자라납니다. 

그러면 그 만큼 하늘나라의 것을 이다음에 얻을 수 있고,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빛의 세계가 그만큼 커졌기 때문입니다. 커졌고 그만큼 능력이 있어졌고, 그만큼 자라났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기업을 그만큼 받기에 합당하게끔 되는 것입니다.

5. 은혜에 감사하며 나아가는 신앙

바울의 골로새를 향한 기도 모본

‘아버지 하나님 감사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결과는 무엇입니까?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기업을 받기에 합당하게 되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자기가 한 것이 하나도 없고 전부 하나님께서 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 감격하게 됩니다. 물론 자기가 힘써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한 것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 입니다.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거저 준 것이지 그것이 공로가 된 것은 아닙니다. 순종한 사람에게 거저 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기도를 해준 것을 보면 얼마나 바르게 해줬습니까? 
바울이 골로새교회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 주었습니까? 
첫째는,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되니까,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 다음은 둘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그대로 행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뜻을 안 다음에는 행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대로 행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주께 합당하고 선한 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그대로 행하게 해 달라는 기도가 둘째입니다.

셋째는 무엇입니까? 행한 사람은 무엇을 달라고 했습니까? 능력입니다. 행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선 이제 능력이 있어야 되겠으니까, 그대로 행할만한 영광의 힘을 좇아서 그대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능력이 중요합니다. 능력이 있어야만 됩니다.

넷째는 뭐라고 기도했습니까? 능력으로 행할 때에 참고 견디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참고 견디지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오고 낙망할만한 일이 오고 십자가가 와도, 일이 완성되려면 참고 견디면서 끝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다섯째 무슨 기도 했습니까? 성도의 기업을 얻기에 합당한 자격이 점점 만들어 지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해달라는 그런 기도를 하나님께 했습니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 성장을 위한 기도

우리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이렇게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무조건 “잘 믿게 해달라”, “축복해 주시옵소서”, “복 받게 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하지 말고, “무엇을 구하느냐?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하고 예수님께서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그러니까 소경이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주여! 눈을 뜨게 해 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물으실 때에,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시옵소
서. 진리를 바로 알게 해 주시옵소서. 바른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옳은 것을 알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대로 행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능력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선한 하나님의 기업에 합당한 자격을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감사하게 해 달라는 그런 기도를 해야 합니다. 참으로 우리 기도의 모본입니다. 우리도 이런 신앙을 달라고 기도해야 되겠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이렇게 기도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를 위해서도 이렇게 기도해야 되겠고, 또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고는 나가야 되겠습니다. “선한 싸움을 하러 나간다”, “하나님의 영권에 힘, 능력에 힘입어서 나간다”, “복음을 들고 나간다”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말씀을 순종해서 나가는 신앙, 정복하는 신앙, 이기는 신앙, 마귀의 세계를 하나님의 세계로 만드는 신앙, 이런 적극성을 띄고 나가는 그 신앙의 길을 걸어 나가야겠습니다. 기도하면 서 나가면서, 능력을 갖추면서 자라나면서, 자격을 만들면서 나아가는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골로새서 1:6-9 열매 맺어 자라나는 신앙을 가져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열매 맺어 자라나는 신앙을 가져라
골로새서 1:6-9

6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7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8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니라 9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6 이 복음이 너희에게 이르렀고, 너희가 듣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안에서와 같이 온 세상에서도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다. 

1:7 너희는 이것을 우리와 함께 종이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서 배웠다.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며, 

1: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준 자이다. 

1:9 그러므로 우리도 소식을 들은 날부터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간구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는 너희가 모든 영적인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 되고, 


1.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열매를 맺어 자라남
 
본문 6절에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라고 하였는데,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호세아 4:14에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하여도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한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살면서 물의 혜택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은 공기 속에서 살면서 공기의 혜택을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 가운데 살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니까 감사하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깨달으면, 그것은 굉장히 큰 것입니다. 즉 독생자를 희생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깨달으면, 그것은 천지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눈동자같이 아끼고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을 골라 주시는 분이심을 깨달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아니면 주시지 아니하시고, 복이 아니면 주시지 아니하십니다. 반드시 은혜와 복으로 주십니
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얼마나 큰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우리에게 다 맡기셨습니다. 그 맡기신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 은혜 받는 것은 말씀을 받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가? 또 어떻게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우리를 건져주셨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친히 하나님의 능력의 손으로 붙잡으시고, 오늘날까지 우리를 인도해주신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사야 43:1-4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배롭게 여기시고, 존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즉 애굽을 속량물로, 또 구스와 스바를 내어주시면서까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우리를 건져주셨습니다. 그리고 물 가운데로 건널 때에도 물이 침몰치 못하게 하시고,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도 불꽃이 사르지 못하게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감사가 안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큰 은혜 속에 살면서도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만, 불평, 원망 속에 사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습니다. 시편 49:20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깨달으면 그저 감사뿐입니다. 나 같은 것이 무엇이관대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랑해주셨는가? 벌써 멸망 받았어야 할 자인데 이렇게 사랑해주시는가? 하며 감사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의 비밀의 말씀을 깨달을 때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며 말씀을 깨달을 때마다 참 기쁨이 생기고, 감사가 나옵니다. 깨달으면 전부 다 은혜이며 전부 다 복입니다. 또 우리가 당하는 모든 환난, 핍박, 가시 등도 깨달으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신 것이고, 은혜로 주신 것이고, 복으로 주신 것을 알게 됩니다. 바울이 가시를 없애달라고 기도 할 때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가시도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바울이 깨닫기 전에는 가시를 없애달라고 세 번씩이나 특별 기도를 했지만, 깨닫고 난 뒤에는 오히려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하였습니다. 약한데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는 것을 몰랐는데, 깨닫고 난 후에는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자기가 약할 때에 강합니다. 자기가 강할 때에는 약합니다.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집니다. 즉 된 줄로 아는 자는 벌써 넘어진 자라는 것입니다. 상한 심령을 가질 때에,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깨
달을 그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바울이 깨달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2:7-10에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을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육체의 가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너무 은혜를 많이 주셨기 때문에 아무리 훌륭한 바울이라고 해도 자고해질 염려가 있으므로 육체의 가시를 주셨습니다.
교만은 실력을 배경으로 하여 나오기 때문에, 하나라도 실력이 있으면 벌써 교만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교만을 없애지 못하면 망합니다. 바울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바울이 교만해 질 수 있겠기에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가시를 주신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육체의 가시는 눈병입니다.

바울이 눈병 때문에 글자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쿡쿡 찔리는 눈의 고통도 심하였습니다. 더우기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지장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눈병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을 몇 배 더 잘할 것 같았으나, 하나님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일 많이 하는 게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바울 네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크기 때문에, “교만해지기 쉬우니까, 너의 꼭대기를 내가 낮춰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고, 오히려 교만하여 망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바울이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육체의 가시를 주신 것입니다. 교만은 일 한 것만큼, 은혜 받은 것만큼, 실력 있는 것만큼 따라 옵니다. 

그러므로 교만하지 않도록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가시를 주신 것을 바울이 깨닫고 기뻐하며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자기가 약할 때에 하나님 능력이 그만큼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할 수 없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할 수 있다고 할 때에는 하나님이 안 해주십니다. 자기가 할수 없다고 할 때에 하나님만 의뢰하게 되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깨달으면 전부가 감사요, 기쁨이며, 좋은 열매가 맺혀지게 됩니다.

2. 신앙은 열매를 맺어야 자라남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라고 했는데, 곡식은 자라나야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신앙은 열매를 맺어야만 자라납니다. 자라나야 열매를 맺는 게 아니고, 열매를 맺어야 자라납니다.

믿음의 열매를 맺어라

그러면 무슨 열매를 맺어야 자라납니까?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 자라납니다. 즉 산 믿음이 있어야 열매를 맺고, 자라납니다. 죽은 것은 자라날 수 없고, 열매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산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고, 그 믿음을 쓰게 되면 믿음의 열매가 맺혀집니다. 그러면 열매가 맺힐 때마다 조금씩 자라납니다. 

◉ 아브라함

그러면 믿음의 열매는 어떤 것인가? 우리의 믿음의 조상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는 믿음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으로 따라가는 것이 믿음이며, 또 그것이 믿음을 쓰는 것입니다. 믿음을 쓰니까 열매가 맺혔습니다. 무슨 열매가 맺혔습니까? 가나안 땅을 얻는 열매가 맺혔습니다. 그러므로 영이 자라났습니다. 그 다음에 롯의 목자와 아브라함의 목자가 다툴 때에, 아브라함이 양보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만 붙들고 살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4:4절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였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나갔습니다. 그러니까 열매가 맺혔고, 자라났습니다. 하여 창세기 14:14절에, 그돌라오멜 4대 연합국이 소돔 고모라와 연합한 다섯 나라를 침략해서 소돔에 거하던 롯을 사로잡아갔을 때, 아브라함이 집에서 기르고 연습한 가신 삼백십팔 명을 데리고 가서 이겼습니다. 이것이 믿음을 쓴 것입니다.
다섯 나라 왕들이 연합하였어도, 그돌라오멜 4대 연합군을 물리치지 못했는데, 아브라함은 단독으로 불과 삼백십팔 명 되는 소수의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이겼습니다. 믿음을 쓰면, 아무리 대적이 강하더라도, 잘 싸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어디든지 간다”하며, 아무리 원수가 많고 강할찌라도 하나님의 명령이면 될 것을 믿고 담대히 나간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믿음의 열매를 맺고 그 영혼이 자라났습니다.

◉ 예수님

우리의 믿음의 모본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모본이신 예수님은 어떻게 믿음을 쓰셨는가? 믿음은 순종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순종하셔서 하늘의 영광을 다 내어 놓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낮아지시고, 종살이 하셨습니다. 또 죽기까지 복종하시므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것이 믿음을 쓰신 것입니다. 그 결과로 부활의 열매, 생명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높여주셨습니다. 우리도 범사에 믿음을 쓰면 믿음의 열매가 맺힙니다. 그러면 믿음의 열매가 맺힐 때마다 우리의 영도 자라납니다. 그러나 죽은 믿음은 열매가 없고, 자라나지도 못합니다. 산 믿음은 열매를 맺어 자라납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어라

사랑의 열매를 맺으면 사랑도 자라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사랑할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자기에게 손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면 사랑의 열매를 맺고 자라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된 줄 알고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 손해를 보았을 때에도 그 손해 준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내가 손해를 본 것이다”고 믿어야 합니다. 도적맞는 것도 하나님께서 도적에게 붙였기 때문에 도적을 맞는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42:24에 “야곱으로 탈취를 당케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도적에게 붙이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라고 하였습니다. 도적에게 붙인 자가 누구십니까? 여호와이십니다. 그러므로 도적맞았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도적에게 붙이셔서 도적맞은 줄 알고 거기에서 깨달을 바를 깨달아야 됩니다. “내가 도적맞을 짓을 했기 때문에 도적맞았다, 내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으므로 하나님께서 도적맞게 하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삼았으면 그것은 불의의 재물입니다. 불의의 재물이므로 하나님께서 도적맞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나 욕심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먼저 바로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로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도적맞게 하신 것입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을 때에 자기를 돌로 때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는 원수를 사랑하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도와주는 일, 그것이 사랑의 열매입니다. 사랑의 열매가 맺힐 때마다 영이 자라납니다. 그러므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여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소망의 열매를 맺어라

소망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며 소망을 가지고 나갈 때에 점점 소망에 도달하는 열매가 맺히고, 영혼이 자라납니다. 

연보의 열매를 맺어라

하나님께 연보 바치는 것도 열매입니다. 연보의 열매가 맺힐 때에 자라납니다. 빌립보서 4:17에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한다는 것은 연보하는 것이 풍성하기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연보하는 것도 믿음을 쓴 열매입니다. 열매가 맺힐 때마다 그 영이 자라납니다. 우리는 믿음, 소망, 사랑, 연보, 봉사, 낮아지는 것, 희생 등의 열매가 맺혀져야 됩니다. 열매가 맺혀지지 못하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믿음의 열매도 없고, 사랑의 열매도 없이 그저 싸움이나 하고, 원수나 맺고, 하나님께 연보할 때는 인색하고, 희생하지 않고, 봉사하지 않으면 열매가 없고, 그것은 백년 믿어도 자라나지 못합니다. 

열매 없는 자는 자라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찍혀서 불에 던지움을 당합니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을 때에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저주하셨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자라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교회도 자라나는 교회가 열매가 많습니다. 열매가 많은 교회는 자라나게 되어 있습니다.

봉사의 열매를 맺어라

그러므로 범사에 우리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대한 열매, 또 봉사에 대한 열매를 많이 맺어서 자라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희생, 봉사의 열매는 좋은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매를 맺어야겠습니다. 복음을 귀히 여기고, 복음 운동에 협력하려고 힘을 쓰면 열매가 맺히고 영혼이 자라납니다. 범사에 열매를 맺을 때마다 자라납니다. 열매를 맺지 않고, 자라나겠다는 것은 망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열매를 맺어야 자라나므로 믿음을 써서 희생하며 말씀을 따라가며, 순종을 해야 열매가 날마다 맺혀지고, 영이 자라나고 교회도 점점 자라납니다. 교회도 열매가 맺혀야 자라나고, 개인의 신앙도 열매가 맺혀야 자라납니다. 모든 면이 열매를 맺을 때마다 자라납니다.

3. 에바브라에게서 배운 바른 진리를 굳게 지키라

본문 7-8절에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라고 하였는데, 에바브라하고 빌립보서 2:24-25의 에바브로디도는 다른사람입니다. 

골로새서 4:12에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에바브라는 본래 골로새 교회의 교인으로서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힐 때에 찾아 온 사람입니다. 또 빌레몬서 1:23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라고 하였습니다. 바울과 같이 로마 감옥에 있었던 에바브라입니다. 에바브라가 바울에게 와서 골로새 교회의 모든 사정을 말해 주므로 그 형편을 알고 난 뒤에는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위해서 매일 기도해 주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도 바울이 감옥에 갇힌 소식을 듣고 바울을 사랑하여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갔었던 교회가 아닙니다. 또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바울과 골로새 교인들은 서로 보지 못하였으나 이렇게 신앙적인 교제를 하였습니다.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라고 하였는데, 골로새 교인들이 에바브라를 통하여 바른 진리를 배웠다는 뜻입니다. 또 그 시대에 여러 가지 미혹을 시키는 주장들이 많이 있었는데,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에바브라에게서 배운 바른 진리를 굳게 지키라는 뜻입니다.

미혹의 세력

1) 철학이 들어옴 

골로새서 2:8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고 하였는데, 교회 안에 철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2)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옴 

또 2:16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는데, 교회 안에 월삭이나 안식일을 지켜야한다는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와서 미혹을 시켰습니다.

3) 천사숭배가 들어옴 

또 2:18절에는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는데, 천사 숭배하는 미혹의 세력이 많았습니다. 

4) 금욕주의자들이 들어옴 

또 2:21절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라고 했는데, 금욕주의자들이 나와서 미혹시켰습니다. 이와 같이 철학자들이 와서 미혹시키는 일, 율법주의자들이 와서 미혹시키는 일, 천사 숭배자들이 와서 미혹시키는 일, 금욕주의자들이 와서 미혹시키는 일 등 여러 가지로 미혹을 시켰는데, 너희가 에바브라에게 배운 것이 바른 진리인 줄 알고, 그 진리
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여러 가지 시험, 여러 가지 학설, 여러 가지 교훈, 여러 당파가 있지만 너희는 에바브라에게 바로 배운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 바로 배운 것을 귀히 여기며, 바로 배운 바른 진리에서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4에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하였습니다. 뉘게서 배운 것을 알라는 것은 디모데가 바울에게서 바른 진리를 배웠는데, 그 바른 진리에 굳게 서라는 말입니다.

4. 골로새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음

본문 9절에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에바브라에게 골로새 교회의 형편을 듣고, 골로새 교회를 위해서 매일 기도해 주며, 골로새 교인을 사랑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은 또 바울에 대한 것을 듣고 바울을 사랑하고 바울을 사모하며 바울을 위해서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서로 보지는 못했지만 신앙적인 교제가 있었고, 영적인 교통이 있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란 바울이 에바브라에게 골로새 교회의 형편을 듣던 날부터,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는데, 바울이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였는가를 이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교역자들은 교회를 위하여 그치지 않고 늘 기도하여야 합니다. 먼저 자신이 하나님과 영적 교통하는 기도가 중요합니다. 흑암에서는 기도가 안 됩니다. 흑암에서 아무리 기도를 해도 그 기도에는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흑암을 만난 다음에는, 먼저 흑암을 제거시켜야 됩니다.
즉 먼저 자기의 죄를 회개하면서, 자기를 부인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막히는 것은 언제나 자기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됩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이 다 죽어지고 없어져야만 영적인 세계가 발견됩니다. 영적인 세계가 발견되고 나서 모든 것을 위해서 기도를 하면 은혜가 되고, 하나님이 힘을 주시고, 역사해 주십니다.

그러나 비록 흑암을 만나 빛의 세계를 잃어버린다 하여도, 그 가운데서 기도해야 하고, 기도가 안 나와도 계속 힘을 써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기도가 안 나와도 하루 두 시간 이상 기도를 채워야 됩니다. 기도가 안 나오는데 어떻게 기도하겠느냐고 하지 말고, 그래도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시간을 채워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십니다. 기도 시간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교역자는 더욱 더 기도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하루 여러 시간씩 기도해야 됩니다. 좀 더 많은 시간을 기울여서 힘써 기도를 해야만 자기 영이 살고, 영적 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영적세계를 발견해야만 기도도 되고, 성경 말씀도 은혜가 되고, 하나님의 감동이 있습니다. 기도 많이 하지 않는 교역자는 건달꾼과 다를 바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어떻게 교인들에게 신령한 생명의 양식을 먹여줄 수 있겠습니까? 자기도 신령한 양식을 못 먹는데 어떻게 남에게 신령한 양식을 먹여 주겠습니까? 그러므로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과 같이 늘 그치지 않고, 교회와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교인들도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복음이 잘 전파되어 나가도록 위해서 늘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돌보는 교회만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참된 교회들을
위해서, 동역자들이 돌보는 교회들을 위해서, 또 제자들이 돌보는 교회들을 위해서 늘 기도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있기를 기도함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라고 하였는데, 신령한 지혜는 육신의 지혜와 반대입니다. 신령한 지혜는 영적인 지혜를 가리킵니다. 지혜는 미련한 것과 반대이며, 총명은 둔한 것과 반대입니다. 미련하고 둔한 자는 마귀에게 미혹을 잘 받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신령한 지혜가 있어서 모든 것을 바로 알고, 바로 분별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즉 신령한 면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총명이란 분별력을 가리키는데, 어떤 것이 참인가?, 어떤 것이 거짓인가를 잘 판단해서 마귀에게 속지 않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분별력과 바로 아는 지혜가 없다고 하면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마귀에게 속아 넘어갑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바로 알고, 바로 판단하여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야 되겠습니다. 지혜와 총명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와 총명이 없는 자는 마귀의 뜻을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따라갑니다. 즉 마귀의 역사를 성령의 역사인 줄 알고 따라갑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총명이 없으면 마귀에게 미혹을 받고, 거짓을 따라가며, 사람에게 속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점점 더 바로 알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함

또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점점 더 아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좀더 깊이 알고, 좀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에, 어떻게 하는 게 하나님의 뜻인가를 찾으려면 
첫째는 성경에서 찾아야 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섭리적으로 일하십니다. 
셋째는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감동으로 찾습니다. 성령의 감동과 신앙양심을 쓸 때에 지혜와 총명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을 때에 제일 중요한 것은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려야만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욕심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지 못합니다.

또 자기가 표준이 되어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지 못합니다. 나침판 안에 쇠붙이가 들어가면 나침판의 바늘이 방향을 바로 가리키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속에 욕심이 들어오면 그와 같습니다. 아무리 바로 하려고 해도 잘못된 방향으로 나갑니다. 철야기도하고, 금식기도를 해도 욕심으로 기울어지면 암초에 걸려서 함정에 빠지고, 결국은 망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욕심부터 버려야 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이 되지 못하게 행동하면 복장부터 고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으려면 욕심부터 버리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즉 자기 위하는 것부터 버려야 됩니다. 자기 위하는 것이 죄 가운데 제일 큰 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져야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이 점점 자라나야겠습니다. 자기는 없어지고, 하나님만 위하는 생활로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고자 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이 신앙을 가질 때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을 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찾았으면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나가야 됩니다.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고난의 길을 걸어간 것처럼 우리도 그와 같아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의 연단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유익만을 보려고 하면, 그것은 벌써 자기 욕심을 좇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되겠는데, 요새는 무조건 “축복합니다”라고 기도 합니다. 어떤 교회 장로 부인이 자기 남편이 암에 걸렸는데, 기도를 해달라고 하니까 1억원을 주어야 해준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1억원이 없으니까 계약금만 걸고 좀 해달라고 하니까, 5천만 원 걸라고 합니다. 그래서 5천만 원 계약금을 걸고 기도를 받았는데, 암에 걸린 장로가 죽었습니다. 죽었으면 계약금을 내주어야 하는데, 도리어 얼마 있다가 잔금을 받으러 사람을 보내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잔금을 주겠냐고 하며 이 일을 사람들에게 폭로하였습니다. 무조건 “기도하면 낫는다, 자기가 축복해 주면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또 어떤 목사는 모든 병은 다 귀신 때문에 생겼다면서, 귀신을 잡아야 한다는 목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흥회 하면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귀신만 잡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귀신 때문에 병이 났다면 귀신을 잡으면 병이 나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병이 다 낫습니까? 병이 다 낫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과, 매사에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마귀의 미혹을 받지 않습니다. 지금 얼마나 미혹이 많습니까? 골로새 교회만 하여도 철학, 천사숭배, 율법주의, 금욕주의 등 여러 미혹하는 세력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지금도 미혹하는 세력들이 많은데 거기에 미혹을 받지 않으려면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혜에는 뱀 같이 하라고 했는데, 뱀의 지혜는 자기의 지혜가 아니고, 자기 밖에 있는 마귀에게서 받는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뱀같이 지혜롭게 하라는 말은 자기 지혜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마귀를 이기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있어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여 나가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