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늘나라를 준비하라
시편 49:1-20
1만민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 2귀천 빈부를 물론하고 다 들을찌어다 3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묵상하리로다 4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5죄악이 나를 따라 에우는 환난의 날에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6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7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8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9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니 10저가 보리로다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우준하고 무지한 자도 같이 망하고 저희의 재물을 타인에게
끼치는도다 11저희의 속 생각에 그 집이 영영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치리라 하여 그 전지를 자기 이름으로 칭하도다 12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13저희의 이 행위는 저희의 우매함이나 후세 사람은 오히려 저희 말을 칭찬하리로다(셀라)
14양같이 저희를 음부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저희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가 아침에 저희를 다스리리니 저희 아름다움이 음부에서 소멸하여 그 거처조차 없어지려니와 15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셀라)
16사람이 치부하여그 집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 말찌어다 17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18저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찌라도 19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시편 49:1-20
1만민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 2귀천 빈부를 물론하고 다 들을찌어다 3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묵상하리로다 4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5죄악이 나를 따라 에우는 환난의 날에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6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7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8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9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니 10저가 보리로다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우준하고 무지한 자도 같이 망하고 저희의 재물을 타인에게
끼치는도다 11저희의 속 생각에 그 집이 영영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치리라 하여 그 전지를 자기 이름으로 칭하도다 12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13저희의 이 행위는 저희의 우매함이나 후세 사람은 오히려 저희 말을 칭찬하리로다(셀라)
14양같이 저희를 음부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저희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가 아침에 저희를 다스리리니 저희 아름다움이 음부에서 소멸하여 그 거처조차 없어지려니와 15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셀라)
16사람이 치부하여그 집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 말찌어다 17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18저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찌라도 19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1.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자는 두려워하지 않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전하라
본문 1-2절에 “만민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 귀천 빈부를 물론하고 다 들을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빈부와 귀천을 무론하고 세상의 거민들이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사람, 말씀을 받지 못한 사람은 흑암에 있는 사람입니다. 갈 길을 알지 못하는 짐승과 같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빛이 비추어져 살 길을 밝히 볼수 있습니다. 영생하는 길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나가 전하는 것이 아주 귀한 일입니다. 그것은 어두움에 있는 사람에게 빛을 주고, 생명의 길을 보여 주며,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해주고, 또 영생의 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어떤 사람이든,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본문 3절에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묵상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혜입니다. 또 내 마음이 묵상하여 하나님의 진리 깨달은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깨달은 진리를 말하는 것, 성령의 감동으로 신령한 도리를 말하는 것이 귀합니다. 금보다 귀하고 정금보다도 귀한, 매우 존귀한 도리입니다.
성경말씀 그대로를 쉽게 가르쳐야 함
본문 4절에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비유로 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중요한 도리를 알기 쉬운 말로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음악으로 하나님의 오묘한 말씀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오묘한 진리를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리라는 뜻도 됩니다. 또 수금이라는 것은 감동이라고도 합니다. 하여간에 오묘한 진리를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고, 하나님의 깊은 진리, 중요한 진리를 알기 쉽게 표현해서 너희가 알만하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오묘한 진리를 알기 쉽게 모든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석을 풀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본주의로 하지 말고, 변질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내용 그대로를 평범하게 쉬운 말로 알기 쉽게 가르쳐야 되겠습니다. 알기 어려운 오묘한 도리를 쉽게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비유로 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중요한 도리를 알기 쉬운 말로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음악으로 하나님의 오묘한 말씀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오묘한 진리를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리라는 뜻도 됩니다. 또 수금이라는 것은 감동이라고도 합니다. 하여간에 오묘한 진리를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고, 하나님의 깊은 진리, 중요한 진리를 알기 쉽게 표현해서 너희가 알만하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오묘한 진리를 알기 쉽게 모든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석을 풀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본주의로 하지 말고, 변질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내용 그대로를 평범하게 쉬운 말로 알기 쉽게 가르쳐야 되겠습니다. 알기 어려운 오묘한 도리를 쉽게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에는 그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본문에서 말하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의 뜻을 변질시켜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즉, 신령한 영적 도리를 알기 쉽도록 풀어 가르쳐주는 것은 좋지만, 변질시켜서 육신에 맞도록 가르치는 것은 생명을 죽이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렇게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가면 신앙을 다 버리게 됩니다. 신 신학자들이 요새 학생들이나 교인들에게 성경을 변질시켜서 오묘한 도리를 육신과 세상에 맞추어 세상주의, 육신주의로 가르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생명을 죽이는 것이고, 참된 신령한 도리를 말살시키는 마귀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데까지 가르쳐주고,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가만 두어야 합니다. 후에 영이 자라나 심령이 깨어나면 알 수 있도록 그냥 두어야 합니다. 그것을 육신에 속한 말로 가르쳐 놓으면,그 아이들이 이 다음에 자라나도 그 깊은 뜻을 모르고 신령한 도리에 설 수 없습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자는 두려워하지 않음
본문 5절에 “죄악이 나를 따라 에우는 환난의 날에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죄악이 관영해갑니다. 악한 자가 득세하는 세상입니다. 그들이 성도를 핍박하여 성도로 하여금 환난을 받게 합니다. 그러나 그런 날이 와도,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불시에 오고 성도의 구원도 불시에 올 것을 믿기 때문에, 악한 자들이 세상에서 잘되고 성도를 핍박해도 성도는 고난 받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2. 재물(財物)로 생명을 구속하지 못함
그리스도의 피로만 죄 사함을 받음
본문 6-7절에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재물을 의지하고 자기의 풍부함을 자랑하는 자는 어리석습니다. 출세하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런 자는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贖錢)을 바치지도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속전을 바친다’는 것은 속죄하기 위하여 돈을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죄를 진 다음 그에 상응한 속전을 바치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죄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속전 바치는 일이 있었던 것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 속해주실 것을 예표(豫表)한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돈으로는 죄를 속할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만 죄 사함을 받음
본문 6-7절에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재물을 의지하고 자기의 풍부함을 자랑하는 자는 어리석습니다. 출세하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런 자는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贖錢)을 바치지도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속전을 바친다’는 것은 속죄하기 위하여 돈을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죄를 진 다음 그에 상응한 속전을 바치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죄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속전 바치는 일이 있었던 것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 속해주실 것을 예표(豫表)한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돈으로는 죄를 속할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8절에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한 것이므로, 돈을 가지고는 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구속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본문 9절에 “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니”라고 하였는데, 돈으로는 영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것을 가지고 죽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은 부자라도 그의 돈이 그 사람의 목숨을 일각이라도 더 있게 할 수 없습니다.
본문 10절에 “저가 보리로다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우준하고 무지한 자도 같이 망하고 저희의 재물을 타인에게 끼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도 죽고, 지혜 있는 사람이나 무지한 사람이나 다 살다가 죽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재물은 다른 사람이 다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 부자들의 자손 중에 요새도 부자인 사람이 있습니까? 미국에서는 부자들이 큰 집 지어놓은 것을 국가에 바쳐 그것을 도서관으로 사용하는 경우들이 꽤 있습니다. 홍콩에도 큰 부잣집이 있었는데, 그 부자가 살던 곳이 요새 관광지가 됐습니다. 또 옛날 왕들이 살던 덕수궁이나 창덕궁도 요새 다 관광지가 됐습니다. 아무리 큰 집을 짓고, 아무리 돈을 많이 가지고 살았더라도, 그 자손이 그것들을 내내 지키지 못합니다. 얼마 가면 다른 사람에게 가고 맙니다. 자손도 장차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무덤을 크게 하고 비석을 세우고 해도, 그것이 영원하지 못합니다. 옛날의 왕릉들인들 그것이 지금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요새는 왕의 자손들이 누구인지도 잘 모릅니다. 지나가면 다 헛된 것입니다. 예전에 우이동 우리 기도원 했던 자리에 옛날에 상당히 돈이 많던 사람들이 무덤을 여러 개 잘 꾸며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보면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큰 비석도 다 굴러다니고 파묻히고 했습니다. 제대로 된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보면 비석도 오래 못가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다 없어지고 맙니다. 이 세상 것은 아무리 잘 해놓아도 먼 장래에는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세상 것은 다 허무한 것입니다.
옛날 부자들의 자손 중에 요새도 부자인 사람이 있습니까? 미국에서는 부자들이 큰 집 지어놓은 것을 국가에 바쳐 그것을 도서관으로 사용하는 경우들이 꽤 있습니다. 홍콩에도 큰 부잣집이 있었는데, 그 부자가 살던 곳이 요새 관광지가 됐습니다. 또 옛날 왕들이 살던 덕수궁이나 창덕궁도 요새 다 관광지가 됐습니다. 아무리 큰 집을 짓고, 아무리 돈을 많이 가지고 살았더라도, 그 자손이 그것들을 내내 지키지 못합니다. 얼마 가면 다른 사람에게 가고 맙니다. 자손도 장차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무덤을 크게 하고 비석을 세우고 해도, 그것이 영원하지 못합니다. 옛날의 왕릉들인들 그것이 지금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요새는 왕의 자손들이 누구인지도 잘 모릅니다. 지나가면 다 헛된 것입니다. 예전에 우이동 우리 기도원 했던 자리에 옛날에 상당히 돈이 많던 사람들이 무덤을 여러 개 잘 꾸며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보면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큰 비석도 다 굴러다니고 파묻히고 했습니다. 제대로 된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보면 비석도 오래 못가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다 없어지고 맙니다. 이 세상 것은 아무리 잘 해놓아도 먼 장래에는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세상 것은 다 허무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지내는 동안, 믿음 생활을 잘해야 함
본문 11절에 “저희의 속 생각에 그 집이 영영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치리라 하여 그 전지를 자기 이름으로 칭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 집이 영영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거처도 대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또 전지(田地), 즉 땅을 자기 이름
으로 칭하지만, 그것이 얼마 가면 누구의 것이 될지 모르는 것입니다. 재벌이 억만금을 들여 지은 빌딩이라도 죽을 때 하나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치고 갔으면 하나님 앞에 가서도 남아 있습니다. 세상에 놓고 가면 영영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사는 집도 임시로 사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누구나 자기 이름으로 전답을 등기해놓지만, 세상을 떠나면 대대로 내려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 변동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나그네처럼 왔다 가는데, 나그네로 지내는 동안에 믿는 생활을 잘해야겠습니다. 하늘나라에 많이 쌓고 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잘해놓아도 구름 위에 집을 지어놓은 것과 같고, 모래 위에 지은 것과 같습니다. 모래 위에 아무리 잘 지어놓았어도,한 번 창수가 나고 장마가 지고 바람이 불면, 다 무너져 없어집니다.
본문 12절에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존귀하지만 장구(長久)하지 못합니다. 얼마 살다가 다 간다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볼 때에는 짐승과 다른 것이 없습니다. 짐승도 이 세상에 나서, 먹고, 자고, 번식하고 죽습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은 원숭이가 사람이 됐다고 하고, 영혼이 있는 것을 모르므로 원숭이와 사람이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고 원숭이에게는 영혼이 없습니다. 원숭이가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원숭이는 처음부터 원숭이로 창조하셨고, 사람은 처음부터 사람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서로 다르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존귀는 영으로 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 하나님과 같이 영생복락을 누리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은 원숭이가 사람이 됐다고 하고, 영혼이 있는 것을 모르므로 원숭이와 사람이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고 원숭이에게는 영혼이 없습니다. 원숭이가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원숭이는 처음부터 원숭이로 창조하셨고, 사람은 처음부터 사람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서로 다르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존귀는 영으로 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 하나님과 같이 영생복락을 누리는 데에 있습니다.
세상의 칭찬에는 유익이 없음
본문 13절에 “저희의 이 행위는 저희의 우매함이나 후세 사람은 오히려 저희 말을 칭찬하리로다(셀라)”라고 하였습니다. 불신자들은 세상에서 썩어져 없어질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후대 사람들이 그들이 행한 일들을 칭찬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미 죽은 자들을 공로자(功勞者)라고 칭찬하고, 그들 행적을 기념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 믿었으면 다 지옥으로 간 것입니다. 그리고 다 썩어졌는데, 무슨 소용입니까? 예수님을 믿었으면 천당에 갔을 것이고 안 믿었으면 지옥에 갔는데, 온 세계가 떠들어도 죽은 자에게 무슨 유익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다만 이 세상 사람들이 그를 높이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이 세대가 잘되겠다 하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떠난 사람에게는 실질적 유익이 없습니다.
부활의 아침, 재림의 날 아침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심
본문 14절에 “양같이 저희를 음부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저희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가 아침에 저희를 다스리리니 저희 아름다움이 음부에서 소멸하여 그 거처조차 없어지려니와”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양을 우리에 가두는 것처럼 음부에 가두기로 작정되어 있으니, 마침내는 사망이 저희 목자처럼 그들을 끌고 무덤으로 인도하여 간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들의 아름다움이 다 소멸되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아름다운 것과 권세와 재물은 잠깐 후에 다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아침은 새로운 날, 새로운 세대인데, 그때는 정직한 자가 세상을 다스리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부활의 아침, 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아침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문 14절에 “양같이 저희를 음부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저희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가 아침에 저희를 다스리리니 저희 아름다움이 음부에서 소멸하여 그 거처조차 없어지려니와”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양을 우리에 가두는 것처럼 음부에 가두기로 작정되어 있으니, 마침내는 사망이 저희 목자처럼 그들을 끌고 무덤으로 인도하여 간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들의 아름다움이 다 소멸되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아름다운 것과 권세와 재물은 잠깐 후에 다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아침은 새로운 날, 새로운 세대인데, 그때는 정직한 자가 세상을 다스리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부활의 아침, 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아침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죽어서 음부, 무덤에서 다 소멸되고 맙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도 잠깐이고 고운 것도 지나가고 만다고 하였습니다. 잠언31장 30절에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고운 여자, 아름다운 여자를 택하려 하지 말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를 택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잘 경외하는 여자가 참 아름다운 여자입니다.
3. 구속자는 오직 하나님뿐이심
본문 15절에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셀라)”라고 하였습니다. 구속자는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내 영혼을 음부의 세력에서 구속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그 사람이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세상 재물은 다 쓸데 없습니다. 고운 것도 잠깐이고, 아름다운 것도 잠깐입니다. 또 세상 지혜 있는 것도 잠깐이고, 전답(田畓)과 좋은 집이 다 잠깐입니다. 다 없어질 것들입니다. 다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만 영원히 남습니다. 내세에 가서 영원히 살고, 무덤에서 부활하여 영생을 얻게 됩니다. 믿음만이 참 보배라는 것입니다.
4.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자는 짐승과 같음
세상에서의 치부(致富)와 영광을 두려워할 것 없음
본문 16절에 “사람이 치부하여 그 집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 말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부자가 돼서 영광이 더해도 그것을 부러워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세도(勢道)를 써도 무서워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아침안개와 같습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세무십년과(勢無十年過)’라고 하였듯이 십년이 가면 다하는 것입니다. 잠깐이면 다 지나갑니다. 목련 꽃도 일 년 중 한 열흘만 피니, 심을 재미가 없는 나무입니다. 좀 더 가는 것도 있지만, 보통 꽃은 다 열흘 밖에 못갑니다. 사람이 치부하고, 영광이 더하고, 뭐가 잘됐다고 해도 잠깐이면 지나가는 것이니, 부러워할 것도 없고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세상에서의 치부(致富)와 영광을 두려워할 것 없음
본문 16절에 “사람이 치부하여 그 집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 말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부자가 돼서 영광이 더해도 그것을 부러워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세도(勢道)를 써도 무서워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아침안개와 같습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세무십년과(勢無十年過)’라고 하였듯이 십년이 가면 다하는 것입니다. 잠깐이면 다 지나갑니다. 목련 꽃도 일 년 중 한 열흘만 피니, 심을 재미가 없는 나무입니다. 좀 더 가는 것도 있지만, 보통 꽃은 다 열흘 밖에 못갑니다. 사람이 치부하고, 영광이 더하고, 뭐가 잘됐다고 해도 잠깐이면 지나가는 것이니, 부러워할 것도 없고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예수 믿는 일보다 존귀한 것이 없음
본문 17절에 “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죽을 때 가져가지 못하고, 그 영광이 그 사람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빈 손 들고, 하나도 못 가져갑니다.
본문 17절에 “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죽을 때 가져가지 못하고, 그 영광이 그 사람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빈 손 들고, 하나도 못 가져갑니다.
본문 18-19절에 “저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찌라도 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불신자가 이 세상에서 좋은 일을 하여 생시(生時)에 자기를 축하하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할지라도, 죽으면 지옥에 가서 빛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다 헛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일 하나 밖에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보다 존귀한 것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자기 영적인 구원을 하늘나라에 쌓는 것밖에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가난해도 부해도, 하루 밥 세 끼 먹는 것은 마찬가지고 하였습니다. ‘양전만경(良田萬頃)이라도 일식이승(日食二升)’이라고 하였고, ‘대하천간(大廈千間)이라도 야와팔척(夜臥八尺)’이라고 하였습니다. 천 간짜리 집이 있어도 밤에 잘 때는 여덟 자밖에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쌀이 아무리 많아도 하루 한 가마니를 먹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아
무리 자기를 추구하고 칭찬을 많이 받아도, 죽으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믿는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 영적 일, 내세의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는 세상에서 먹고 자고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짐승과 꼭 같습니다.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습니다. 영이 사는 데 있고, 예수 그리스도로 구속을 받아 생명이 사는 데에 있습니다. 또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데에 있습니다. 내세 준비, 영생 복락에 참여하는 일, 이것이 사람의 갈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