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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4일 토요일

열왕기상 22:1-53 미가야 선지자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미가야 선지자
열왕기상 22:1-53
1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없이 삼 년을 지내었더라 2제삼년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내려가매 3이스라엘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길르앗 라못은 본래 우리의 것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어찌 아람 왕의 손에서 취하지 아니하고 잠잠히 있으리요 하고 4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싸우시겠느뇨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요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일반이니이다 5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청컨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 6이스라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 인쯤 모으고 저희에게 이르되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저희가 가로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7여호사밧이 가로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8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오히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9이스라엘 왕이 한 내시를 불러 이르되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로 속히 오게 하라 하니라 10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왕복을 입고 사마리아 문어귀 광장에서 각기 보좌에 앉았고 모든 선지자가 그 앞에서 예언을 하는데 11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 12모든 선지자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하더라 13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자가 일러 가로되 선지자들의 말이 여출일구하여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컨대 당신의 말도 저희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 14미가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15이에 왕에게 이르니 왕이 저에게 이르되 미가야야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 가랴 말랴 저가 왕께 이르되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16왕이 저에게 이르되 내가 몇 번이나 너로 맹세케 하여야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으로만 내게 고하겠느냐 17저가 가로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가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그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18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저 사람이 내게
대하여 길한 것을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것을 예언하겠다고 당신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19미가야가 가로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20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21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22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
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23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24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말미암아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 25미가야가 가로되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 날에 보리라 26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미가야를 잡아 부윤 아몬과 왕자 요아스에게로 끌고 돌아가서 27말하기를 왕의 말씀이 이 놈을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로 먹이라 하라 28미가야가 가로되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될찐대
여호와께서 나로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또 가로되 너희 백성들아 다 들을찌어다 하니라 29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30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군중으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 왕이 변장하고 군중으로 들어가니라 31아람 왕이 그 병거의 장관 삼십이 인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 한지라 32병거의 장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필연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이켜 저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지르는지라 33병거의 장관들이 저가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보고 쫓기를 그치고 돌이켰더라 34한 사람이 우연히 활을 당기어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이켜 나로 군중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35이날에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왕이 병거 가운데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더라 36해가 질 즈음에 군중에서 외치는 소리 있어 가로되 각기 성읍으로 각기 본향으로 하더라 37왕이 이미 죽으매 그 시체를 메어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 장사하니라 38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 씻으매 개들이 그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의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거기는 창기들의 목욕하는 곳이었더라 39아합의 남은 행적과 무룻 그 행한 일과 그 건축한 상아궁과 그 건축한 모든 성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40아합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아들 아하시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41이스라엘 왕 아합 제사년에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유다 왕이 되니 42여호사밧이 왕이 될 때에 나이 삼십 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수바라 실히의 딸이더라 43여호사밧이 그 부친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 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
하였더라 44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으로 더불어 평화하니라 45여호사밧의 남은 사적과 그 베푼 권세와 그 어떻게 전쟁한 것은 다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46저가 그 부친 아사의 시대에 남아있던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47그때에 에돔에는 왕이 없고 섭정왕이 있었더라 48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척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취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게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매 49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의 종으로 당신의 종과 함께 배에 가게 하라 하나 여호사밧이 허락지 아니하였더라 50여호사밧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조상 다윗 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51유다 왕 여호사밧 제십칠년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 년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52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 아비의 길과 그 어미의 길과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53바알을 섬겨 숭배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동하기를 그 아비의 온갖 행위같이 하였더라

1. 아합과 여호사밧이 동맹하여 아람을 치려함
본문 1-2절에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없이 삼 년을 지내
었더라 제삼년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내려가
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람과 싸워 승리한 후 삼 년 동안
아람과 아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없었습니다. 그때에 유다 왕 여호사밧
이 이스라엘 왕 아합과 친선 우호를 위하여 사마리아로 내려갔습니다.
그전에 이미 여호사밧과 아합은 사돈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왕하
8:18, 대하 18:1-2).

본문 3절에 “이스라엘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길르앗 라못은 본래
우리의 것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어찌 아람 왕의 손에
서 취하지 아니하고 잠잠히 있으리요”라고 하였습니다. 본래 기르앗 라
못은 이스라엘 땅으로 요단 강 건너편에 있었습니다. 도피성의 하나였는데, 아람 사람한테 빼앗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전에 우리 땅이었던 길르앗을 아람 사람과 싸워 도로 찾자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
로 가서 싸우시겠느뇨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
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요 내 말들도 당신의 말
들과 일반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남쪽 나라 여호사밧 왕이 북쪽 나
라 악한 왕과 더불어 교제하고 타협하며 같이 싸우러 나간 것은 잘못
입니다. 싸우러 가겠느냐고 물어볼 때 안 간다고 했어야 합니다. 그런
데 여호사밧은 “내 백성은 북쪽의 백성과 일반이다, 나도 당신과 일반
이다,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일반이다”라고 하면서 싸우러 같이 가자는 것입니다. 

2. 두 왕이 선지자에게 물어 봄
선지자 400인의 말
본문 5-6절에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청컨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 이스라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 인쯤 모으고 저희에게 이르되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저희가 가로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
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선지자 사백 명을 데려고 왔습니
다. 여호사밧이 물어보려고 하니 선지자들이 “올라가서 싸우면 하나님
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여주실 것입니다”라고 다 같이 말했습니다.

미가야 선지자의 권유
1) 참 선지자 미가야 본문 7-8절에 “여호사밧이 가로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오히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이 “이 사백 명 외에 또 물을 만한 선지자가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왕은 미가야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자기에
대해서 길한 일만 예언하지 않고 늘 흉한 일만 예언하기 때문에 자신
은 저를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사밧이 그런 말씀을 마시고
미가야를 청하여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본문 9-12절에 “이스라엘 왕이 한 내시를 불러 이르되 이믈라의 아
들 미가야로 속히 오게 하라 하니라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
이 왕복을 입고 사마리아 문어귀 광장에서 각기 보좌에 앉았고 모든
선지자가 그 앞에서 예언을 하는데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
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 모든 선지자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
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시드기야라는 선지
자가 있었는데, 그도 사백 명의 선지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철로
뿔을 만들어 왕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고 했습니다. 다른 선지자들도 다 “길르앗 라
못으로 가서 승리를 얻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3-15절에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자가 일러 가로되 선지자들
의 말이 일출여구(一出與口)하여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컨대 당신의
말도 저희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 미가야가 가로되 여호
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
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이에 왕에게 이르니 왕이 저에게 이르되 미
가야야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 가랴 말랴 저가 왕께 이르되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미가야를 데리러 간 사람이 “모든 선지자가 다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싸움을 이긴다고 하는데, 당신도 가서 좋은 말을 하십시오”하고 말했습니다. 가서 좋게 하라는 것입니다. 협력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가야는 “내가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여
호와께서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호
와께서 말씀하시는 것, 즉 하나님의 뜻만 전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
고 이스라엘 왕이 미가야를 보고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
랴”하고 물었습니다. 미가야의 첫 마디는 가서 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서 싸워서 승리를 얻으소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러 선지자가 다 이렇게 말했으니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6-17절에 “왕이 저에게 이르되 내가 몇 번이나 너로 맹세케
하여야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으로만 내게 고하겠느냐 저
가 가로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
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가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그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미가야에게 아무
말을 해도 해치 않을 테니 진실한 것만 말하라고 맹세를 했습니다. 그
러자 미가야가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
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네 집으로 돌아
가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목자가 없다는 것은 왕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왕이 죽으니 함께 한 군사들이 목자 없는 양 같이 흩어져
있다가 각각 집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이스라엘
왕이 이 전쟁에 나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18-21절에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저 사람이 내
게 대하여 길한 것을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것을 예언하겠다고 당신
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미가야가 가로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
군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미가야 선지자는 사백 명의 선지자가 말한 대로 예언하지 아니하고 “여호
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그것만 내가 말
하겠나이다”하며 하나님의 뜻만 전했습니다. 이번 전쟁에 나가면 왕이
죽으니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왕이 미가야의 말을 듣고 안 나가면
좋지만, 사백 명의 말을 듣고 전쟁에 나갈 경우에 미가야는 감옥에 갇
히고 처형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가야를 데리러 간 사람
도 그에게 다른 선지자들처럼 말하라고 얘기한 것입니다. 사백 명의
선지자가 전쟁에 나가서 싸우면 이긴다고 한 것처럼 당신도 그들과 같
이 좋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길(吉)하게 말하면 좋습니다. 대접을 잘
받고 존경도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처럼 살면 되는데 왜
남들처럼 안하고 고생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백 명의 사람들은 바알 신을 섬기는 자들이 아닙니다. 이들
도 다 선지자들이고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시드기아
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바로 섬기지 못하는 선지자입니다. 그렇
다면 왜 미가야가 다른 선지자들과는 다르게 말한 것입니까? 미가야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만 전하려고 한 것이지 다른 선지자들을 반대하
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선지자 사백 명은 나가서 싸우면 이긴다
고 하였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전한 것이 아니라 왕이 듣
기에 좋도록 말해준 것입니다. 왕에게 아부한 것입니다. 왕이 이미 길
르앗에 가서 싸울 것을 결정했기 때문에, 왕이 듣기 좋도록 말해주어
야 왕도 평안하고 자기도 평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가야는 그렇
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아닌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움직이고 의를 위해서
나아가는 선지자입니다.

2) 하나님의 선지자 세례 요한 마태복음 11장 7-8절에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
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에 대해서 예수님께
서 증거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대세
주의로, 군중심리에 맞춰서, 사람들의 요구를 따라가는 사람이 아닙니
다. 그는 오로지 하나님의 뜻대로만 하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또
세례 요한은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부드러운 옷을
입기 위해서 왕에게 아첨하고 왕이 좋아하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
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강직하게, 생명을 내놓고 나간 세
례 요한은 사람과 시대의 요구나 풍조에 의해서 일어나고 쓰러지는 사
람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만 일어나고, 하나님의 뜻만
전달하다가 감옥에도 갇힌 것입니다. 왕에게 아부한 사람이 아닙니다.
왕에게 아부하는 사람은 왕궁의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다
시 말하지만 세례 요한은 대접을 잘 받으려고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
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환난이 와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강직
한 신앙을 가지고 나간 사람입니다. 대세주의로 모든 풍조를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의를 위
해서만 생명을 내놓고 나가는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자가 나은 사람 중에 세례 요한이 제일 크다고
했습니다(눅 7:28). 여기서 세례 요한이 제일 크다는 말은 진리를 깨달
은 면이 제일 많다는 것입니다. 창세로부터 세례 요한의 시대까지, 역
사적으로 세례 요한만큼 진리를 많이 깨달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
서 그가 제일 큽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고 했는데(마 11:11), 이 천국은 신약 교회 시대를 가리킵니다.
즉, 신약 교회 시대에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진리를 더많이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 성령 강림 등을 세례 요한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약 교회 시대에는 어린 학생이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삼 일 만에 부활하신 것, 승천하신 것, 성령 강림하신 것 등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 교회 시대에는 어린 아이라도 세
례 요한보다 진리를 더 많이 가지고 있어서 큰 자라는 것입니다. 진리
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큰 자입니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은 진리
를 어떻게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까?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셔서 많이
가지고 있었고, 또한 진리 그대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나감으로써
점점 그 진리가 자기 생명이 되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선지자가 많이 있습니
다. 그리고 그 시대의 풍조대로 하면 편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
씀을 그대로 전하며 말씀을 지키면 큰 환난이 옵니다. 미가야 선지자
는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의 말씀만 지켜나가는 선지자입니다. 어떠한
환난을 당해도 하나님의 의만 세워 나가고 진리만 세워 나가면 만족하
는 선지자였습니다. 미가야도 세례 요한처럼 생명보다 진리를 귀중하
게 여기는 선지자였습니다. 다른 선지자들처럼 좋은 것만 말하면 대접
을 잘 받고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만 전하다가 감옥
에 갇혔습니다. 갇혔어도 하나님의 명령만 전하고 그것으로 만족했습니다. 

3) 미가야가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며 영을 분별함 미가야가 왕
에게 가서 “이제 나가면 목자 없는 양같이 백성이 다 흩어진다”고 말
했습니다. 왕이 전쟁하다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고 왕이 물어볼 때 미가야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본문 19-23절에
“미가야가 가로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서있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
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 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
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
라 하셨은즉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라
고 하였습니다. 미가야 선지자가 힘든 말을 했습니다. 미가야는 하나님
의 말씀만 전하고 행하는 강직한 선지자입니다. 또 영을 분별하는 은
사가 있었습니다. 거짓된 영과 참 영, 거짓말하는 영과 진실한 영을 분
별하는 지식이 있었습니다. 

요한일서에는 영을 분별하라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오는데, 영을 다 믿
지 말라는 것입니다. 분별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온 영인
지, 참된 영인지, 거짓된 영인지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분별하지 못하면
마귀에게 유혹을 받아서 넘어갑니다. 그러면 참된 영인지 미혹의 영인
지 무엇으로 분별을 하겠습니까? 요새 영이 많이 있습니다. 성령 받는
다, 은사 받는다, 예언한다, 투시한다, 기도하니까 네게 무슨 죄가 있다,
너는 가다가 어떻게 된다는 등 많이 있는데, 무엇으로 분별합니까? 창
광 교회에도 그런 것이 있다고 합니다. ‘내 안에 무엇이 있다, 기도해보
니까 무슨 죄가 있다, 넌 어떻게 된다’고 한답니다. 그런데 진짜인지 가
짜인지 무엇으로 분별을 합니까? 성경에 맞는지 안 맞는지 그것으로
분별합니다. 표준이 성경입니다. 척도가 성경이므로 성경에 맞으면 진
짜이고 안 맞으면 다 가짜입니다. 거짓된 자는 무엇으로 분별합니까?
참 신자와 거짓 신자를 무엇으로 분별합니까? 그것도 성경말씀입니다.
성경에 맞으면 참 신자이고 성경에 안 맞으면 거짓 신자입니다. 분별
하기가 쉽습니다. 복잡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목사는 모든 병은 다 귀신 때문에 생긴다, 귀신 때문에 병이 생
긴 것이니 귀신만 내쫓으면 모든 병이 다 낫는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성경에 맞습니까? 모든 병이 귀신 때문입니까? 맞지 않습니다. 요한복
음 9장에는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소
경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된 것이지 귀신 때문에 된 것이라
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 요한복음 5장에는 38년 병자가 나았는데, 예수
님께서 그에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죄 때문
에 병이 난 것입니다. 귀신 때문이 아닙니다. 귀신 때문에 병이 나는
것도 있고, 도적을 만나서 있는 것 다 빼앗기고 매를 맞아 병이 나는
등 병이 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병은
귀신 때문에 생긴다, 귀신만 내쫓으면 다 낫는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
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것을 더 발전시켜서 너는 할머니 귀신이 들어
왔다, 너는 할아버지 귀신이 들어왔다, 내버려두면 또 얼마 있다가 더
들어온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왔으면 대접을 해야지 내쫓으면 말이 되
겠습니까? 죽은 할머니가 왔는데 ‘오랜만에 오셨네요, 들어오십시오, 나
가지 마시고 같이 삽시다’, 그래야 될 것 아닙니까? 할머니를 내쫓는
것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원리에 맞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
는 천당 아니면 지옥에 가기 때문에 다시는 못 옵니다. 한번 죽으면
예수님 믿은 사람은 천당에 가고 안 믿은 사람은 지옥에 갑니다. 오는
것은 마귀입니다. 조상이 아니라 마귀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안 믿는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어서 120년 동안 떠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어디 있습니까? 안 믿고 죽었는데 귀신이 되어 떠돌아다니
는 것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이 120년은 살아야 되는데, 20세
에 죽었으면 100년 동안 귀신으로 떠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50
세에 죽었으면 70년 동안 귀신 노릇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터무니가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에 120년이란 말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의
수명이 120년이 아니고 120년 후에 심판이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는 말이지 사람의 수명이 아닙니다. 

거짓 영도 많고 거짓 선지자도 많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말세
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서 택한 백성들을 미혹케 한다고 하
였습니다. 또한 거짓 영들도 많이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거짓
영을 무엇으로 분별합니까? 성경말씀으로 분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다는 것을 부인하는 자는 거짓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그리
스도에 대해서 잘못 말하는 것은 전부 거짓 선지자입니다. 성경에 맞
지 않는 것은 전부 참된 영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 상반절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
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진리에 맞지 않으면 거짓입니다.
그러므로 분별을 못하면 마귀에게 넘어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미가야
선지자에게 영 분별하는 지식을 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
만 전하고자 했습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싫어하든지 좋아하든지, 매
를 맞든지 감옥에 갇히든지, 전하다가 죽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왕이
좋아하든지 안 좋아하든지 그것을 보고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전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지 왕에게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또 왕
과 싸울 필요도 없습니다. 말씀만 전하는 것이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
다. 사명으로 살다가 사명으로 죽습니다. 사명에 살다가 감옥에 갇히고
사명을 다 하다 죽습니다. 그것이 미가야 선지자의 가는 길입니다. 

3. 미가야를 핍박하고 투옥함
본문 24절에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
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말미암아 가서 네게
말씀 하더냐”라고 하였습니다. 시드기야가 선지자 사백 명 가운데 제일
높은 사람 같습니다. 철로 뿔을 만들어 이것으로 아람 사람을 찌른다고 한 시드기야 선지자에게 미가야가 뺨을 맞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매를 맞으면 복 받은 것입니다. 좋은 것입니다. 상급이 올라갑니다. 매 한 대 맞으면 이다음에 상급이 올라갑니다. 열 대 맞으면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열 배 올라갑니다. 그러므로 주를 위해서 매 맞을 때에 “올라간다, 올라간다”하면서 매 맞으십시오. 때리는 사람이 “야, 올라가긴 무엇이 올라가느냐?”라고 하면 “하늘나라 상급이 올라간다”고 하십시오. 그러면 상 많이 올라간다고 좋아하는 것을 보고 때리던 사람이 그만둘 수 있습니다. 

본문 25절에 “미가야가 가로되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 날에
보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미가야는 압니다. ‘너희들이 하나님
께 벌 받아서 골방에 들어가 숨는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은 의기양양해
서 왕의 세력을 입고 나의 뺨을 치지만 조금 있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 하나님의 심판이 올 때에는 골방에 들어가서 숨을 것인데 그때
가 되면 내가 말한 것을 알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본문 26-27절에 “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미가야를 잡아 부윤 아몬과
왕자 요아스에게로 끌고 돌아가서 말하기를 왕의 말씀이 이 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로 먹이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미가야 선지자를 ‘이 놈’이라고 했습니다. ‘이 놈을
데려다가 옥에 가두어 내가 평안히 승리하고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
과 고생의 물로 먹이라’고 했는데, 옥에 가두라는 것입니다.

본문 28절에 “미가야가 가로되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될찐
대 여호와께서 나로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또 가로되 너희 백성
들아 다 들을찌어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미가야가 감옥에 들어가면
서 한 말입니다.

4. 이스라엘의 패전과 아합의 죽음
본문 29-31절에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으
로 올라가니라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군
중으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 왕이
변장하고 군중으로 들어가니라 아람 왕이 그 병거의 장관 삼십이 인에
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
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 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전쟁마
당에 나갔는데, 자신은 변장하고 군중으로 들어가서 싸울 테니 유다
왕 여호사밧은 왕복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변장을 하고
최전선에 가서 싸우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람 왕은 장관 삼십이
인에게 큰 자나 작은 자나 싸우지 말고 이스라엘 왕과만 싸우라고 했습니다.

본문 32-33절에 “병거의 장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필
연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이켜 저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지
르는지라 병거의 장관들이 저가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보고 쫓기를 그
치고 돌이켰더라”고 하였습니다. 변장한 이스라엘 왕이 전쟁마당 가운
데에 들어갔는데 이스라엘 왕인지 모릅니다. 변장하여 같은 군복을 입
었으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때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복
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람 군대가 여기 왕이 있다고 하면서 유
다 남쪽 나라 여호사밧 왕을 잡으려고 쫓아왔습니다. 이 사람이 이스
라엘 왕이다 하며 싸우려고 할 때 여호사밧이 어떻게 했습니까? 소리
를 질렀습니다. 소리를 지르니까 이스라엘 왕이 아닌 줄 알고 따라오
던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무엇이라고 소리를 질렀겠습니까? 사람이
죽게 되면 누구를 찾습니까? 하나님을 찾고, 또 어떤 사람은 아버지,
어머니를 찾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을 찾았다고 해도 이 사람이 이스라엘 왕아 아닌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말하는데,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 왕과 더불어 싸우려고 한 것
이 잘못입니다. 이스라엘 왕과 같이 나온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왜 잘
못된 것입니까? 이스라엘 왕은 죄만 짓는 악한 왕입니다. 여호사밧은
선한 왕입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이 악한 왕이 싸우는데 동참한 것입니
다. 여호사밧 왕이 선지자에게 물어보자고 해서 미가야에게 물어본 것
입니다. 그런데 미가야 선지자는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미가야 선지
자에게 물어봐서 나가지 말라고 했으면 안 나갔어야지, 나갈 바에는
무엇 때문에 물어봤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악한 왕과 짝하는 것이 잘못
임을 미가야에게 어느 정도 알게 해주셨습니다. 또 이번에 전쟁마당에
나가지 말아야 할 것을 참 선지자 미가야를 통해서 알게 해주셨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그 말을 순종했어야 합니다. 참 선지자가 이번 전쟁서
이스라엘 왕이 죽는다고 예언한 대로 실제로 이스라엘 왕으로 변장한
여호사밧 왕이 지금 죽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렀는데 “이스라엘 왕과 같이 오게 된 것을 용
서해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여호와여 이스라엘 왕과 같이 오게 된 것
을 용서해주시옵소서”라고 소리 질렀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을 아람 사
람이 듣고 이 사람이 이스라엘 왕이 아닌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왜
아닙니까? 이스라엘 왕과 같이 온 죄를 회개하는 것을 보고, 이 사람
이 이스라엘 왕이 아닌 것이 분명하므로 쫓던 것을 그치고 이스라엘
왕을 잡으려고 병거를 돌이킨 것입니다.

소리가 커서 안 죽게 된 것이 아니라 회개해서 안 죽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것을 귀히 여기십니다. 이스라엘 왕과 타협한
것, 참 선지자의 말을 안 듣고 거역하여 나간 것, 하나님께서 가지 말
라고 하셨는데 이스라엘 왕과 함께 길르앗 라못을 빼앗으러 간 것이
다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죽게 되었을 때 여호사밧 왕이 회
개하면서, 즉 ‘내가 이스라엘 왕과 같이 나온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면서 생명을 내놓고 부르짖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만 부르짖은 것입니다. 아람 사람들이 들으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회개하면서 맡겼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람 사람의 마음을 감동 시켜서 이 사람이 이스라엘 왕이 아닌 것을 알게 해주셨
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을 상황에서 건져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회개하
면 하나님께서 죽을 지경에 빠졌을 때에 건져주십니다. 그러나 회개를
안 하고 나가면 다 죽습니다. 여호사밧이 하나님만 찾은 것이 아니고,
회개하면서 부르짖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건져주신 것을 알아야 합니
다. 그래서 우리도 언제나 회개해야 합니다. 

유다 왕이 무엇을 회개해야 합니까? 북쪽 나라와 동맹해서 아람 왕
과 싸운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또 무엇을 회개해야 합니까? 참 선지
자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미가야를 가만 안 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미가야 선지자의 말을 무시한 것과 전쟁에 안 나가
야하는데 나간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길르앗은 아람 사람의 영토로 되어 있는데, 공연히 이스라엘 사람들
이 교만해서 길르앗 라못이 전에 자기네 땅이었다며 도로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침략전쟁입니다. 전에 자기네 땅이었다는 것
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에 것을 왜 말합니까? 전에 것을 말하면
서 만주도 한국 땅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동반도에 한국
유적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가서 여기는 고려 땅이었다고
말하면 중국에서 좋아하지 않습니다. 중국 땅인데 왜 자기네 땅이라
말하는가, 한국 땅이라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 옛날 얘기를 해서 불
똥을 튀게 하고 싸움을 일으키려고 합니까? 길르앗 라못도 비슷한 것
입니다. 싸우려고 한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또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
엘과 동맹한 것이 잘못되었고 참 선지자 말을 안 들은 것이 잘못되었
습니다. 이것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하니까 하나님께서 다 죽게
되었던 곳에서, 즉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주셨습니다.

본문 34-36절에 “한 사람이 우연히 활을 당기어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이켜 나로 군중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이날에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왕이 병거 가운데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
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더라 해가
질 즈음에 군중에서 외치는 소리 있어 가로되 각기 성읍으로 각기 본
향으로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이 변장하고 나갔지만
아람 군대가 우연히 쏜 활이 갑옷 솔기에 맞아서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그가 아람 사람을 막다가 병거 위에서 죽었습니다. 그래
서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다고 했습니다. 해가 질 즈음에
군중에서 외치는 소리 있어 가로되 “각기 성읍으로, 각기 본향으로”라
고 하였는데, 이것은 목자가 없으니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미가야 선지
자의 예언한 대로 된 것입니다. 참 선지자가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었
을 때 들었으면 될 것 아닙니까?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본문 37-40절에 “왕이 이미 죽으매 그 시체를 메어 사마리아에 이르
러 거기 장사하니라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 씻으매 개들이 그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의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거기는 창기들의 목욕
하는 곳이었더라 아합의 남은 행적과 무릇 그 행한 일과 그 건축한 상
아궁과 그 건축한 모든 성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
였느냐 아합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아들 아하시야가 대신하여 왕
이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엘리야를 통해서 여호와께서 하신 말
씀과 같이 된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열왕기상 21장 19절에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
리라”고 하였습니다. 나봇은 열조로부터 유전해 내려오는 기업을 다른
지파에게 주면 안 된다고 한 말씀을 지키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
러나 아합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믿음을 지키는 사람을 죽인 사람은저주를 받습니다. 개가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네 피를 핥게 된다고 했는데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아합이 탔던 수레를 사마리아 못에 씻어서 개들이 핥았으니까 딱 맞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언한 말씀, 그대로 되었습니다. 아합이 죽어서 그 행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대신 왕이 되었습니다. 

5. 여호사밧과 그의 선정(善政)
본문 41-46절에 “이스라엘 왕 아합 제사년에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
이 유다 왕이 되니 여호사밧이 왕이 될 때에 나이 삼십오 세라 예루살
렘에서 이십오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수바라 실히의 딸
이더라 여호사밧이 그 부친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
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여호사밧
이 이스라엘 왕으로 더불어 평화하니라 여호사밧의 남은 사적과 그 베
푼 권세와 그 어떻게 전쟁한 것은 다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
니하였느냐 저가 그 부친 아사의 시대에 남아 있던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아사 왕의 아들이며
선한 왕입니다. 그가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는데 아버지의 신앙을 잘
계승했습니다. 아사 왕은 41년간 왕위에 있었고 아들 여호사밧은 25년
간 왕위에 있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선한 왕으로 아버지의 신앙을 본받
아서 정직히 행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전을 정결케했습니다. 그러
나 여호사밧이 한 가지 잘못한 것이 바로 북쪽 나라와 타협한 것입니
다. 여호사밧이 아합 왕과 동맹해서 길르앗 라못에 싸우러 갔다가 죽
을 뻔했습니다. 아합은 죽었고 그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는데, 여
호사밧은 그 아들과도 타협을 했습니다. 북쪽 나라와 또 타협을 한 것입니다. 북쪽 나라는 성경대로 하지 않습니다. 북쪽 나라는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하나님이라 섬겼고, 7월 15일을 8월 15일로 절기를 고쳤고, 제사장은 레위 지파가 아닌 사람을 세웠습니다. 하나님 섬기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몇 가지가 다릅니다. 진리에 대해서 몇 가지만 다르게
한, 타락한 북쪽 이스라엘입니다. 게다가 북쪽 나라는 다 악한 왕입니
다. 아합도 악한 왕이고 그 아들 아하시야도 악한 왕이고 그 아들 요
람도 악한 왕입니다. 그러므로 4대만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대가 끊어
졌습니다.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로부터 4대에 걸쳐서 왕을 하다가 예
후가 혁명을 해서 다 잡아 죽였습니다. 

아사 왕은 선한 왕이고 아사 왕의 아들 여호사밧도 선한 왕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여호사밧이 아버지의 신앙을 본받아서 아주 잘했습니다.
정직히 행했습니다. 말씀대로 순종을 잘했습니다. 또 모든 우상을 철폐
하고 남색하는 자를 다 쫓아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잘못은 무엇입
니까? 북쪽 나라와 타협한 것입니다. 타락하여 변질되고, 성경말씀을
어긴 북쪽 나라와 타협한 것, 아합 왕과 동맹한 것입니다. 길르앗 라못
에 가서 죽게 되었을 때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하나님께서 건져
주셨으면 정신을 차리고 다시는 진리를 위반하는 사람과는 타협하지
말아야하는데, 여호사밧이 그 아들 아하시야와 또 타협했습니다. 

본문 47절에 “그때에 에돔에는 왕이 없고 섭정왕이 있었더라”고 하
였습니다. 그때에 에돔에는 왕이 없고 섭정왕이 있었다고 한 것은 유
다 왕이 임명한 대리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섭정왕은 대리인입니다.
유다 왕이 임명한 대리인이 에돔의 왕 노릇을 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48-50절에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척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취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게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의 종으
로 당신의 종과 함께 배에 가게 하라 하나 여호사밧이 허락지 아니하
였더라 여호사밧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조상 다윗 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역대하 20장 35-39절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나중에 이스라엘 왕 아하
시야와 교제하였는데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이었더라 두 왕
이 서로 결합하고 배를 지어 다시스로 보내고자 하여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지었더니 마레사 사람 도다와후의 아들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을
향하여 예언하여 가로되 왕이 아하시야와 교제하는 고로 여호와께서
왕의 지은 것을 파하시리라 하더니 이에 그 배가 파상하여 다시스로
가지 못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나중에 이스라엘 왕 아하
시야와 더불어 교제했습니다. 타협한 것입니다. 아하시야는 자기 아버
지 아합을 본받아서 심히 악한 왕인데 타협을 하고 교제한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 왕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가 서로 결합해서 배
를 지었습니다. 다시스로 가서 금을 실어 오려고 배를 지었는데 그때
‘마레사 사람 도다와후의 아들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을 향하여 예언하
여 가로되 왕이 아하시야와 교제하는고로 여호와께서 왕의 지은 것을
파하시리라’고 하더니, 이에 그 배가 파선되었습니다. 악한 사람과 타협
하여 교제하면서 어떤 사업을 하면 하나님께서 파선시키십니다. 그것
은 믿음이 아닙니다. 배를 지어 다시스로 금을 실어 온다 해도 믿음으
로,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북쪽 나라의 악한 왕과 결합하고 둘
이 합동하여 배를 만들어 다시스에 가서 금을 실어다가 잘하겠다고 했
지만 악한 왕과 더불어 타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않으십니
다. 그래서 큰 소망을 가지고 그 배를 지었겠지만 결국에는 파선되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이렇게 미워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 ‘죄와
더불어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는 너희가 대항치 않았다”고 하였는데, 우
리는 악한 자와 더불어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심히 악한 사람들과
같이 동맹하고 배를 만들어 사업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진
노하시는 일입니다. 여호사밧이 믿음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했어야 하는 그러지 못한 것입니다. 악을 제거하고 믿음으로 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악을 제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지도 않고 배를 만들었습니다. 돈만 벌겠다고 배를 만들었습니다. 믿음이 어디 있습니까? 믿음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찾
아본 것도 없습니다. 세상 것과 물질만 급해서 믿음을 양보하고 악한
사람과 타협했기 때문에 다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
가지입니다.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서 하는 것은 다 파선입니다. 믿음을
양보하고 악한 사람과 짝하고 주일도 안 지키고 믿는 일을 안 하면 믿
음을 절대 못 지킵니다. 실패합니다. 성공 같으나 실패합니다. 믿음으
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죄를 떠나서 말씀대로만, 믿음으로만 모든 것을 해나가야 되겠습니다.

6. 아하시야의 악정(惡政)
본문 51-53절에 “유다 왕 여호사밧 제 십칠 년에 아합의 아들 아하
시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 년을 이스라엘을 다스리
니라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 아비의 길과 그 어미의 길
과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바알을
섬겨 숭배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동하기를 그 아비의
온갖 행위같이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는 악한
왕으로 그의 통치 기간은 2년이었습니다. ‘저가 그 아비 아합 왕의 길
과 어미 이세벨의 길과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는 것은
우상 숭배한 것을 가리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그는 멸망했습니다.

열왕기상 21:1-29 나봇의 포도원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나봇의 포도원
열왕기상 21:1-29

1그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 왕 아합의 궁에서 가깝더니 2아합이 나봇에게 일러 가로되 네 포도원이 내 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나물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만일 합의하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3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찌로다 하니 4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업을 왕께 줄 수 없다 함을 인하여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와서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이키고 식사를 아니하니 5그 아내 이세벨이 저에게 나아와 가로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6왕이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저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않겠노라 함을 인함이로라 7그 아내 이세벨이 저에게 이르되 왕이 이제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8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쳐서 그 성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인들에게 보내니 9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힌 후에 10비류 두 사람을 그 앞에 마주 앉히고 저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저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 11그 성 사람 곧 그 성에 사는 장로와 귀인들이 이세벨의 분부 곧 저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 12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히매 13때에 비류 두 사람이 들어와서 그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거를 지어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저를 성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고 14이세벨에게 통보하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니 15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포도원을 취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16아합이 나봇의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17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18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거하는 이스라엘 왕 아합을 만나라 저가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19너는 저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하셨다 하고 또 저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셨다 하라 20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나의 대적이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21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22또 네 집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의 노를 격동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까닭이니라 하셨고 23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가라사대 개들이 이스르엘 성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찌라 24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25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저가 그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되었음이라 26저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한 것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하였더라 27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한지라 28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29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저가 내 앞에서 겸비함을 인하여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1. 아합이 나봇에게 포도원을 요구함

본문 1-2절에 “그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 왕 아합의 궁에서 가깝더니 아합이 니봇에게 일러 가로되 네 포도원이 내 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나물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합의하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은 나봇의 포도원을 아합이 빼앗은 일에 대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아합 왕의 궁전이 사마리아에 있었는데, 사마리아 부근에 이스르엘 지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마리아까지 포함되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는데, 아무튼 사마리아 부근에 이스르엘이라는 지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나봇의 포도원이 있었습니다. 아합 왕이 나봇에게 일러 가로되 “네 포도원이 네 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나물 밭을 삼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대신에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주든지, 아니면 합의해서 그 값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나봇의 포도원이 아합 왕 궁궐 가까운데 있으니까, 그것을 달라는 것입니다. 왕궁 곁에 있으니 내가 그 포도원을 사면 좋겠다고 한 것입니다. 아니면 다른 것으로 바꾸어주겠다는 것입니다.

2. 나봇이 거절하자 아합이 근심하며 답답해 함

나봇이 왕의 요구를 거절함

본문 3절에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찌로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나봇이 아합에게 “네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찌로다”라고 하면서 아합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그가 왜 거절하였습니까? 열조의 유업이기 때문에 왕에게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왕에게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열조의 유업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을 성경에서 금하셨습니다. 레위기 25장 23-25절에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 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찌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토지는 여호와의 것이므로 너희에게 분배한 것은 다른 지파로 넘어가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또 민수기 36장 7절에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이 다 각기 조상 지파의 기업을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지파에게 준 기업을 다른 지파로 옮겨가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지파에게 준 땅은 자
기 지파가 지키라는 것입니다.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만 다섯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토지 분배 받은 것을 딸들이 나눠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딸들이 다른 지파로 시집을 가면 원 지파에 땅 준 것이 다른 지파에게 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물어보니 자기 지파에게로만 시집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겨가지 않고, 자기 지파에 준 것을 자기 지파가 지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유업으로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다른 지파에게 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봇이 아합 왕에게 포도원을 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너희 하나님께서 주신 땅은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을 지키려는 것입니다. 그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아합이 포도원을 돈을 주고 사자고 해도, 더 좋은 것으로 바꾸자고 해도 못 바꾼다고 한 것입니다. 

왕이 그 포도원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놓고 싶어 하는데, 거절한 것입니다. 까딱하면 죽습니다. 옛날 왕은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거저 달라고 해도 줘야 합니다. 그런데 돈 달라는 대로 다 주고, 더 좋은 포도원으로 바꿔주겠다는데도 거절하면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그래도 나봇은 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왜 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양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포도원은 자기 지파의 기업입니다. 자기 지파의 기업이기 때문에 기업을 지키려고 한 것입니다. 자기에게 준 분깃을 빼앗기지 말고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지파에게 준 좋은 땅, 좋은 풍속, 좋은 전통,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유업을 잘 지켜야 합니다. 나봇은 그러한 것들을 지키려는 신앙으로 포도원을 양보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신앙의 좋은 전통들을 잘 지켜나가야 함

예레미아 35장 5-10절에 “내가 레갑 족속 사람들 앞에 포도주가 가득한 사발과 잔을 놓고 마시라 권하매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원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도 재배치 말며 두지도 말고 너희 평생에 장막에 거처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우거하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하였으므로 우리가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에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거처할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두지 아니하고 장막에 거처하여 우리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대로 다 준행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레갑 족속인 요나답이 선조
들이 전해준 좋은 전통, 좋은 교훈을 끝까지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요나답의 교훈은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집을 짓지 말고, 장막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또 포도원 재배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 평생에 장막에 거처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우거하는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요나답이 교훈을 해주었는데, 그 자손들이 계속 이 교훈을 지켰습니다. 예레미야 때까지 몇 년 동안 지켰습니까? 레갑 족속 때부터 250년간을 요나답이 준 좋은 교훈을 지켜 내려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았습니다. 포도주를 다른 사람들은 마셨지만 이 레갑 족속만은 마시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포도원 재배도 했지만 레갑 족속만은 포도원 재배를 안 했습니다. 또 장막에 거했습니다. 몇 년 동안 했습니까? 250년간 했습니다. 성경에는 그런 원문은 없습니다. 포도 재배하지 말라는 말씀도 없습니다. 또 장막에 거하라는 말씀도 없습니다. 그래도 요나답이 전해준 좋은 전통, 좋은 교훈을 계속 지켜 내려갔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에도 좋은 전통들이 있습니다. 술, 담배 안 먹는 것입니다. 미국 목사들은 재떨이를 사무실에 갖다놓고 담배 먹으면서 회의를 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한심합니까? 그 사람들은 그것을 보통으로 생각합니다. 술도 한 잔씩 먹습니다. 우리 한국 전통은 예수 믿으면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술 마시지 않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또 주일날을 거룩히 지킵니다. 새벽 기도를 합니다. 다른 나라는 이렇게 새벽 기도 안 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가보아도 미국 사람들, 캐나다사람들은 새벽 기도 안 합니다. 기도원에도 잘 안 갑니다. 미국에는 기도원을 잘 지어 놓은 곳이 많은데, 미국 사람들은 잘 안 온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만 기도원에 갑니다. 이것을 보면 한국에는 좋은 전통이 많습니다. 술 마시지 않고, 담배 피지 않고, 주일날을 거룩히 지키라고하고, 새벽 기도하는 좋은 전통이 많습니다.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는 것도 좋은 전통입니다. 기도원에서 사경회하는 전통도 좋은 것입니다.
또 진리 면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진리를 많이 주셨습니다. 중생한 영이 자라나는 진리, 하늘나라 가도 큰 자가 되는 진리, 세미한 음성을 듣는 진리, 즉 바람과 불과 지진 가운데에는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고 세미한 음성에 계신다는 진리, 생명 운동하는 진리, 영이 사는 진리, 이러한 것들을 우리가 잘 지켜나가야겠습니다.

레갑 족속 사람들은 좋은 전통을 몇 년간 지켰다고 했습니까? 250년간 지켰다고 합니다. 우리도 좋은 이 전통들을 지키는 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요즈음 발표하는 것을 보면 담배를 피우면 폐암, 인후암 등이 생기는데, 피우지 않는 사람보다 6배가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담배만 안 피워도 6배나 유익합니다. 그 외에 다른 것도 얼마나 유익이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좋은 전통에는 일 년에 두 번 사경회를 기도원에서 하고, 두 번 교역자 수련회를 하고, 두 번 산 기도 가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좋은 전통입니다.

나봇이 자기에게 전통으로 준 기업, 하나님의 명령을 양보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생명을 내어놓은 것과 같습니다. 그는 전통으로 내려오는 바른 신앙,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바른 신앙을 양보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생명을 내놓고 아합 왕에게 포도원을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주면 하나님의 명령을 양보하는 것입니다. 전통으로 내려오는 바른 것을 양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셨기 때문에 못 준다고 한 것입니다.

아합의 교만

본문 4절에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업을 왕께 줄 수 없다 함을 인하여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와서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이키고 식사를 아니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아합 왕이 얼마나 교만합니까? 나봇이 포도원을 안 준다고 해서 밥도 먹지 아니하고, 침상에 누워서 얼굴을 돌이켜 심히 근심하고 답답해하였습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많이 주면 더욱 욕심이 많아집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근심하고, 답답해하는 것입니다. 자기 것을 빼앗은 것도 아닌데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안 되니까 근심하고 답답해서 밥도 먹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근심하고, 답답해하며, 얼굴을 들지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하는 것에는 차이가 많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렇게 남의 것을 바라보다
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답답해하지 않습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은 감옥에서 나오기만 해도 감사하다고 합니다. 밥을 못 먹는 사람은 밥 한 끼만 먹어도 참 감사하다고 합니다. 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밥을 잘 먹으니까 남의 것을 빼앗지 못해서 속상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굶어봐야 아는 것입니다. 낮아져 봐야 압니다. 풍족하니까 교만해서 자기 요구대로 안 된다고 답답해하고 밥도 안 먹는 것입니다, 요구가 너무 커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극히 낮은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낮은 자리에서 자족(自足)을 배우고, 거기에서 믿음을 잘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낮은 자리에서 자족을 배워 믿음 잘 지킨 사람이 누구입니까? 나사로입니다. 나사로는 부자 집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어도 만족하며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그 이상 바라볼 것이 없어서 항상 만족하는 것입니다. 눈이 높지 않아야 항상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합 왕은 눈이 높고 욕심이 많아서, 자기 뜻대로 안되니까 밥도 안 먹고, 속상해서 잠도 못자고, 침상에 누워있는 것입니다.

3. 이세벨이 나봇을 죽이려고 악한 계교를 꾸밈

본문 5-7절에 “그 아내 이세벨이 저에게 나아와 가로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왕이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저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않겠노라 함을 인함이로라 그 아내 이세벨이 저에게 이르되 왕이 이제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불난 데에 부채질을 한 것과 같습니다. 도적과 삼 년을 살면 둘 다 도적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세벨이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겠으니 왕은 마음을 즐겁게 하고 식사를 하시라고 말하였습니다. 

본문 8-10절에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쳐서 그 성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인들에게 보내니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힌 후에 비류 두 사람을 그 앞에 마주 앉히고 저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저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세벨이 성읍 장로들과 귀인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높이 올려 앉히고 비류 두 사람, 즉 불량자 두 사람을 거짓증거하게 만들어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말하도록 했습니다. 당시에는 왕과 하나님을 저주하면 돌로 때려서 죽이는 법이 있었습니다. 결국 이세벨은 나봇을 높이 앉힌 후에 금식을 선포하고 왕과 하나님을 저주했다고 비류 두 사람으로 거짓
증거하게 만들어서 백성들이 돌로 쳐 죽이게 했습니다.

4.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음

본문 11-15절에 “그 성 사람 곧 그 성에 사는 장로와 귀인들이 이세벨의 분부 곧 저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히매 때에 비류 두 사람이 들어와서 그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거를 지어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저를 성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고 이세벨에게 통보하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니 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포도원을 취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세벨이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한 것이 아닌데, 거짓증거로 죄를 만들어서 그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하고 돌로 쳐 죽
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와서 나봇이 죽었으니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16절에 “아합이 나봇의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악합니까?

5. 엘리아가 아합을 경책하여 저주를 선고함 

본문 17-19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거하는 이스라엘 왕 아합을 만나라 저가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너는 저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하셨다 하고 또 저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셨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엘리야를 보내셨습니다.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려고 내려왔는데, 엘리야를 보내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하셨다 하고 또 저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0-21절에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이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내려가니,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이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내가 찾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생명을 내놓고 내려간 것입니다. 나봇이 포도원을 양보하지 않은 것도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을 내놓고 지키려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애매히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엘리야를 통해서 아합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엘리야를 언제나 대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아합 왕에 대한 저주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하면 까닥하다가 죽게 됩니다. “잡아 죽여라”고 하면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서 아합에게 이 말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임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아합에게 갔습니다. 아합이 “내 대적이여 네가 내가 왔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내가 왔습니다. 전할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엘리야가 전할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본문 21-24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또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의 노를 격동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까닭이니라 하셨고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가라사대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찌라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는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하셨느니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참된 선지자입니다. 아합 왕이 엘리야를 대적으로 여기고 있으므로 좋은 말을 전해도 위험합니다. 그렇지만 엘리야는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여로보암의 집은 네 대 만에 망했고, 바아사의 집도 두 대만에 망했습니다. 여로보암이 북쪽 이스라엘 나라를 가르지 않았습니까? 그때 여로보암은 네 대만에 망했고, 바아사는 두 대만에 망했습니다. 아합은 네 대 만에 망했습니다. 씨가 없어졌습니다. 이렇게 진리를 파수하고, 하나님의 기업을 지키며, 믿음 지키겠다는 사람을 거짓 증거하여 죽게 만들었으니 얼마나 잘못하였습니까? 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만들어서 죽였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엘리야가 전한 말씀대로 아합은 사 대 만에 망했습니다. 저주 받은 것입니다. 믿음 지키는 사람에게 손해를 준 사람, 하나님의 기업에 손해를 준 사람들은 저주 받습니다. 언제나 기업에 손해를 주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지키는 사람을 핍박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나봇은 하나님의 기업과 믿음을 지키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지키다 죽었습니다. 이것은 귀한 것입니다. 순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말씀 지키다 죽었으니 순교로 볼 수 있습니다.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은 자신도 망하고 아내도 망하고 자녀들도 다 망하게 되었습니다. 사 대만에 집안이 망했습니다. 씨가 다 없어졌습니다.

본문 25절에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저가 그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되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스스로 팔려’라는 말은 죄악에 팔렸다는 뜻입니다.
죄악에 팔려 죄의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욕심과 죄의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유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욕심과 죄악의 종이 되어 자유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이처럼 악을 행한 자가 예로부터 없었습니다. 아합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되었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충동 받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왜 충동을 받습니까? 성경이 있고 신앙양심이 있습니다. 아합이 누구에게 충동 받았다고 했습니까? 자기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 받았다고 했습니다. 아담은 누구에게 충동 받아 선악과를 따먹었습니까? 아내 하와에게 충동 받아 따먹었습니다. 마귀는 그 사람을 넘어뜨리려고 그 사람이 말을 제일 잘 듣는 사람을 이용합니다. 그로 하여금 그 사람을 충동시켜 결국 넘어 뜨립니다. 보통 가깝지 않은 사람이 말하면 듣겠습니까? 제일 가깝고, 제일 사랑하고, 말을 제일 잘 들어주고 싶은 아내가 아합을 충동시켜서 망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 와서 말해도 성경말씀에 맞지 않는 것은 거절해야 합니다.

누가 아내를 거절했습니까? 욥이 거절했습니다. 욥은 아내에게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과 같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했습니까? 아내가 아무리 와서 충동을 해도 담대히 거절하고 나간 것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 와서 말해도 하나님 앞에 옳지 않은 말은 안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어머니가 와서 말 할 때에 뭐라고 하셨습니까?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을 들어 마귀가 충동해서 멸망시키려고 할 때에 거기에 충동되면 안 됩니다. 말씀이 있고, 신앙양심이 있고, 진리가 있고, 자기의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어째서 가까운 사람이 와서 충동한다고 넘어갑니까? 그러므로 양심과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6. 아합이 겸비함

본문 27-29절에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한지라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저가 내 앞에서 겸비함을 인하여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아니 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아합이 무서운 죄를 짓고도 하나님께 겸비하고 금식하면서 천천히 다니니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아니하시고 그 아들의 시대에 내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업을 양보하지 말고 지켜야 할 것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전통적인 신앙을 지켜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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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0:1-43 아람 왕 벤하닷의 내침(來侵)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아람 왕 벤하닷의 내침(來侵)
열왕기상 20:1-43
1아람 왕 벤하닷이 그 군대를 다 모으니 왕 삼십이 인이 저와 함께 있고 또 말과 병거들이 있더라 이에 올라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치며 2사자들을 성중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벤하닷은 이르노니 3네 은금은 내 것이요 네 처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 하매 4이스라엘 왕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같이 나와 나의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 하였더니 5사자가 다시 와서 이르기를 벤하닷은 이르노라 내가 이미 네게 보내어 말하기를 너는 네 은금과 처들과 자녀들을 내게 붙이라 하였거니와 6내일 이맘때에 내가 내 신복을 네게 보내리니 저희가 네 집과 네 신복의 집을 수탐하여 무릇 네 눈이 기뻐하는 것을 그 손으로 잡아 가져가리라 한지라 7이에 이스라엘 왕이 나라의 장로를 다 불러 이르되 너희는 이 사람이 잔해하려고 구하는 줄을 자세히 알라 저가 나의 처들과 자녀들과 은금을 취하려고 사람을 내게 보내었으나 내가 거절치 못하였노라 8모
든 장로와 백성들이 다 왕께 고하되 왕은 듣지도 말고 허락지도 마옵소서 한지라 9그러므로 왕이 벤하닷의 사자에게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왕께 고하기를 왕이 처음에 보내어 종에게 구하신 것은 내가 다 그대로 하려니와 이것은 내가 할 수 없나이다 하라 사자들이 돌아가서 고하니라 10벤하닷이 다시 저에게 보내어 이르되 사마리아의 부스러진 것이 나를 좇는 백성의 무리의 손에 채우기에 족할 것 같으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하매 11이스라엘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갑옷 입는 자가 갑옷 벗는 자같이 자랑치 못할 것이라 하라 하니라 12벤하닷이 왕들과 장막에서 마시다가 이 말을 듣고 그 신복에게 이르되 너희는 진을 베풀라 하매 곧 성을 향하여 진을 베푸니라 13한 선지자가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나아가서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저희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나이다 14아합이 가로되 누구로 하시리이까 대
답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각도의 방백의 소년들로 하리라 하셨나이다 아합이 가로되 누가 싸움을 시작하리이까 대답하되 왕이니이다 15아합이 이에 각 도의 방백의 소년들을 계수하니 이백삼십이 인이요 그 외에 모든 백성 곧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을 계수하니 칠천 인이더라 16저희가 오정에 나가니 벤하닷은 장막에서 돕는 왕 삼십이 인으로 더불어 마시고 취한 중이라 17각 도의 방백의 소년들이 먼저 나갔더라 벤하닷이 탐지꾼을 보내었더니 저희가 회보하여 가로되 사마리아에서 사람들이 나오더이다 하매 18저가 이르되 화친하러 나올찌라도 사로잡고 싸우러 나올찌라도 사로잡으라 하니라 19각 도의 방백의 소년들과 저희를
좇는 군대들이 성에서 나가서 20각각 적군을 쳐죽이매 아람 사람이 도망하는지라 이스라엘이 쫓으니 아람 왕 벤하닷이 말을 타고 마병으로 더불어 도망하여 면하니라 21이스라엘 왕이 나가서 말과 병거를 치고 또 아람 사람을 쳐서 크게 도륙하였더라 22그 선지자가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가로되 왕은 가서 힘을 기르고 왕의 행할 일을 알고 준비하소서 해가 돌아오면 아람 왕이 왕을 치러 오리이다 하니라 23아람 왕의 신복들이 왕께 고하되 저희의 신은 산의 신이므로 저희가 우리보다 강하였거니와 우리가 만일 평지에서 저희와 싸우면 정녕 저희보다 강할찌라 24왕은 이 일을 행하실찌니 곧 왕들을 제하여 각각 그곳에서 떠나게 하고 저희 대신에 장관들을 두시고 25또 왕의 잃어버린 군대와 같은 군대를 왕을 위하여 충수하고 말도 말대로, 병거도 병거대로 충수하고 우리가 평지에서 저희와 싸우면 정녕 저희보다 강하리이다 왕이 그 말을 듣고 그리하니라 26해가 돌아오매 벤하닷이 아람 사람을 점고하고 아벡으로 올라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매 27이스라엘 자손도 점고함을 입고 군량을 받고 마주 나가서 저희 앞에 진을 치니 이스라엘은 염소 새끼의 두 적은 떼와 같고 아람 사람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28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붙이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29진이 서로 대한지 칠 일이라 제칠일에 접전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하루에 아람 보병 십만을 죽이매 30그 남은 자는 아벡으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갔더니 그 성이 그 남은 자 이만 칠천 위에 무너지고 벤하닷은 도망하여 성읍에 이르러 골방으로 들어가니라 31그 신복들이 저에게 고하되 우리가 들은즉 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하니 만일 우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테두리를 머리에 이고 이스라엘 왕에게로 나아가면 저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이다 하고 32저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테두리를 머리에 이고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러 가로되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나의 생명을 살려주옵소서 하더이다 아합이 가로되 저가 오히려 살았느냐 저는 나의 형제니라 33그 사람들이 징조로 여기고 그 말을 얼른 받아 대답하여 가로되 벤하닷은 왕의 형제니이다 왕이 가로되
너희는 가서 저를 인도하여 오라 벤하닷이 이에 왕에게 나아오니 왕이 저를 병거에 올린지라 34벤하닷이 왕께 고하되 내 부친이 당신의 부친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내가 돌려 보내리이다 또 나의 부친이 사마리아에서 만든 것 같이 당신도 다메섹에서 당신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소서 아합이 가로되 내가 이 약조로 당신을 놓으리라 하고 이에 더불어 약조하고 저를 놓았더라 35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그 동무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지라 36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저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 37저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가로되 너는 나를 치라 하매 그 사람이 저를 치되 상하도록 친지라 38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그 눈을 가리워 변형하고 길 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 39왕이 지나갈 때에 소리질러 왕을 불러 가로
되 종이 전장 가운데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저를 잃어버리면 네 생명으로 저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 40종이 이리 저리 일 볼 동안에 저가 없어졌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41저가 급히 그 눈에 가리운 수건을 벗으니 이스라엘 왕이 저는 선지자 중 한 사람인 줄 알아 본지라 42저가 왕께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저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저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43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 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1. 아람 왕 벤하닷의 내침과 요구
본문 1-6절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 군대를 다 모으니 왕 삼십이
인이 저와 함께 있고 또 말과 병거들이 있더라 이에 올라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치며 사자들을 성중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보내
어 이르기를 벤하닷은 이르노니 네 은금은 내 것이요 네 처들과 네 자
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 하매 이스라엘 왕이 대답하여 말하
기를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같이 나와 나의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
하였더니 사자가 다시 와서 이르기를 벤하닷은 이르노라 내가 이미 네
게 보내어 말하기를 너는 네 은금과 처들과 자녀들을 내게 붙이라 하
였거니와 내일 이맘때에 내가 내 신복을 네게 보내리니 저희가 네 집
과 네 신복의 집을 수탐하여 무릇 네 눈이 기뻐하는 것을 그 손으로
잡아 가져가리라 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아람은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나라인데,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 성을 치러왔습니다. 그리고 아람
왕이 아합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말하기를 “네 은과 금은 다 내 것이
고 네 처들과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고 하였고, 또 이
스라엘 왕에게 다시 통고하기를 아합 왕의 집뿐만 아니라 신하의 집까
지 수탐하여 간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마귀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가려는 역사와 같습니다. 마귀의 역사는 하나님 백성의 가장 요긴한 것을 다 빼앗아 이스라엘 나라를 멸망시키려는 것이 원 목적입니다. 

2. 아합이 아람 왕의 요구를 거절함
본문 7-9절에 “이에 이스라엘 왕이 나라의 장로를 다 불러 이르되
너희는 이 사람이 잔해하려고 구하는 줄을 자세히 알라 저가 나의 처
들과 자녀들과 은금을 취하려고 사람을 내게 보내었으나 내가 거절치
못하였노라 모든 장로와 백성들이 다 왕께 고하되 왕은 듣지도 말고
허락지도 마옵소서 한지라 그러므로 왕이 벤하닷의 사자에게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왕께 고하기를 왕이 처음에 보내어 종에게 구하신 것은
내가 다 그대로 하려니와 이것은 내가 할 수 없나이다 하라 사자들이
돌아가서 고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아합 왕이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아
놓고 아람 왕이 좋은 모든 것을 수탐하여 가겠다고 한 것에 대하여 의
논하였는데, 장로들은 허락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합 왕은
아람 왕의 요구를 거절하였습니다.

본문 10-12절에 “벤하닷이 다시 저에게 보내어 이르되 사마리아의
부스러진 것이 나를 좇는 백성의 무리의 손에 채우기에 족할 것 같으
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하매 이스라엘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갑옷 입는 자가 갑옷 벗는 자같이 자랑치 못할 것이
라 하라 하니라 벤하닷이 왕들과 장막에서 마시다가 이 말을 듣고 그
신복에게 이르되 너희는 진을 베풀라 하매 곧 성을 향하여 진을 베푸
니라”고 하였습니다. ‘갑옷 입는 자’는 전쟁을 하려고 준비하는 자를 가
리키고, ‘갑옷 벗는 자’는 전쟁에서 이미 승리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
로, 이스라엘 왕이 벤하닷 왕에게 이미 전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교만
하게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람 왕 벤하닷이 화가 나
서 사마리아를 치기 위해 진을 베풀었습니다.

3. 선지자가 아합에게 승전(勝戰)의 길을 교도(敎道)함
본문 13-15절에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나아가서 가로
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저희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나이다 아합이 가로
되 누구로 하시리이까 대답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각 도의 방백의 소년
들로 하리라 하셨나이다 아합이 가로되 누가 싸움을 시작하리이까 대
답하되 왕이니이다 아합이 이에 각 도의 방백의 소년들을 계수하니 이
백삼십이 인이요 그 외에 모든 백성 곧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을 계수
하니 칠천 인이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합 왕에게 한 선지자
를 보내어 이스라엘이 이길 것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때 아합이
하나님께 누가 먼저 나가서 싸워야겠는가를 물어보니까, 하나님께서
왕이 먼저 나가서 싸우고, 또 소년들이 나가서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소년은 젊은 사람, 즉 청년을 의미하는데, 용맹한 사람들로서
힘 있게 대적을 물리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마귀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젊은 사람처럼 날마다 신앙의 달음박질을 하며 새 생명의 역
사가 있는 신앙의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며, 이것이 싸움에서 이기는 비결입니다. 왕이 먼저 앞장
서고, 또 젊은 소년 232명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마귀의 세력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보호할 수가 있고 지킬 수가 있습
니다. 이 젊은 소년 232명은 기드온 300명 용사와 같습니다. 두려워하
는 사람과 늙은 사람들로는 원수와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다윗과 같
이, 기드온 용사와 같이, 용기가 있는 사람, 원수를 향해서 달려드는 사
람을 하나님께서 쓰십니다. 그런데 나이가 젊은 사람이라고 해도 속에
생명의 역사가 없으면 젊은 사람이 아닙니다. 연령이 노인이라고 해도,
속에서 날로 새롭게 생명의 역사가 있으면 젊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구원운동의 역사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젊은 사람들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아무리 원수가 많아도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십니다.

4. 아합이 아람 군을 이김
본문 16-18절에 “저희가 오정에 나가니 벤하닷은 장막에서 돕는 왕
삼십이 인으로 더불어 마시고 취한 중이라 각 도의 방백의 소년들이
먼저 나갔더라 벤하닷이 탐지군을 보내었더니 저희가 회보하여 가로되
사마리아에서 사람들이 나오더이다 하매 저가 이르되 화친하러 나올찌
라도 사로잡고 싸우러 나올찌라도 사로잡으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벤하닷이 이스라엘 백성이 나오면 다 사로잡으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9-21절에 “각 도의 방백의 소년들과 저희를 좇는 군대들이 성
에서 나가서 각각 적군을 쳐 죽이매 아람 사람이 도망하는지라 이스라
엘이 쫓으니 아람 왕 벤하닷이 말을 타고 마병으로 더불어 도망하여
면하니라 이스라엘 왕이 나가서 말과 병거를 치고 또 아람 사람을 쳐
서 크게 도륙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왕과 군대가 아람 군대
를 이겼습니다. 전쟁에 패한 아람 왕은 말을 타고 도망쳤습니다. 언제
나 하나님의 싸움은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앞장서 나가는 신앙의 용사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
서 함께 하시고 그 자로 승리하게 하십니다.

5. 아람 군의 재침(再侵)과 아합의 승리
본문 22절에 “그 선지자가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가로되 왕은 가
서 힘을 기르고 왕의 행할 일을 알고 준비하소서 해가 돌아오면 아람
왕이 왕을 치러 오리이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선지자가 왕에게 일
년 후에는 아람 군대가 다시 쳐들어 올 것이니 미리 준비를 잘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승리했다고 해서 다 된 줄 알면 안 됩니다. 항상 영적으로 무장하고 선한 싸움 싸울 준비를 해야 합니다.

본문 23-25절에 “아람 왕의 신복들이 왕께 고하되 저희의 신은 산의
신이므로 저희가 우리보다 강하였거니와 우리가 만일 평지에서 저희와
싸우면 정녕 저희보다 강할찌라 왕은 이 일을 행하실찌니 곧 왕들을
제하여 각각 그곳에서 떠나게 하고 저희 대신에 장관들을 두시고 또
왕의 잃어버린 군대와 같은 군대를 왕을 위하여 충수하고 말도 말대로,
병거도 병거대로 충수하고 우리가 평지에서 저희와 싸우면 정녕 저희
보다 강하리이다 왕이 그 말을 듣고 그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람
왕의 신복들이 이스라엘 군대에 패한 것은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
때문이라고 하며, 그 하나님은 산의 신이므로 평지에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람 왕이 다음에는 평지에서 싸우려고
군대를 보충하였습니다. 아람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신은 산의 신이라
고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보고 말
한 것입니다. 기브온 산당에 가서 제사한 것과 모리아 산에 가서 제사
한 것, 또 그곳에 성전 지은 것을 그들이 알기 때문입니다(대하 3:1).

본문 26-28절에 “해가 돌아오매 벤하닷이 아람 사람을 점고하고 아
벡으로 올라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매 이스라엘 자손도 점고함을
입고 군량을 받고 마주 나가서 저희 앞에 진을 치니 이스라엘은 염소
새끼의 두 적은 떼와 같고 아람 사람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때에 하
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
이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붙이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일 년이 지나자
벤하닷이 아벡으로 올라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하므로 이스라엘 왕
과 백성들이 마주 나가서 진을 쳤는데, 그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나와
서 이스라엘 왕에게 아람의 큰 군대를 왕의 손에 붙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 있게 아람 군대와 싸우게 되었습니다.

본문 29-30절에 “진이 서로 대한 지 칠 일이라 제 칠일에 접전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하루에 아람 보병 십만을 죽이매 그 남은 자는 아벡
으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갔더니 그 성이 그 남은 자 이만 칠천 위
에 무너지고 벤하닷은 도망하여 성읍에 이르러 골방으로 들어가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람 사람들을 십만 명이나 죽였고,
남은 자 이만 칠천 명은 아벡 성으로 도망하였으나 그 성이 무너져서
다 죽었습니다. 벤하닷 왕은 도망하여 골방에 들어가 숨었습니다.

6. 아합이 벤하닷을 놓아주고 약조함
본문 31-34절에 “그 신복들이 저에게 고하되 우리가 들은즉 이스라
엘 집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하니 만일 우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묶
고 테두리를 머리에 이고 이스라엘 왕에게로 나아가면 저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이다 하고 저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테두리를 머리
에 이고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러 가로되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나의 생명을 살려 주옵소서 하더이다 아합이 가로되 저가 오히려 살았
느냐 저는 나의 형제니라 그 사람들이 징조로 여기고 그 말을 얼른 받
아 대답하여 가로되 벤하닷은 왕의 형제니이다 왕이 가로되 너희는 가
서 저를 인도하여 오라 벤하닷이 이에 왕에게 나아오니 왕이 저를 병
거에 올린지라 벤하닷이 왕께 고하되 내 부친이 당신의 부친에게서 빼
앗은 모든 성읍을 내가 돌려 보내리이다 또 나의 부친이 사마리아에서
만든 것같이 당신도 다메섹에서 당신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소서 아합
이 가로되 내가 이 약조로 당신을 놓으리라 하고 이에 더불어 약조하
고 저를 놓았더라”고 하였습니다. 벤하닷 왕이 도망쳐 골방에 숨어있는
데, 그 신하들이 벤하닷 왕에게 나가서 “이스라엘 왕은 인자한 왕이라
고 들었으니 우리가 굵은 베로 허리에 묶고 테두리를 머리에 이고 이
스라엘 왕에게로 나아가면 살려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람 왕이 그대로 하였습니다. 굵은 베를 입는 것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표시하는 것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이는 것도 죄인임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즉, 죄인이 용서를 빌 때 취하는 태도입니다.

벤하닷의 신하들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가서 벤하닷의 생명을 살려달
라고 청원을 했고, 이 말을 들은 아합이 “저는 나의 형제니라”고 하며
용납하였습니다. 그리고 벤하닷은 두 가지 약조를 내세웠습니다. 첫째
는 자기 부친이 아합의 부친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돌려 보내준다
는 것과 둘째는 벤하닷의 부친이 사마리아에 자기를 위한 거리를 만든
것같이, 다메섹에 아합을 위하여 거리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다메섹은
아람의 수도입니다. 이 두 가지 약조를 하고 아합이 아람 왕을 놓아주
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하신
것은 죽여야 하는데, 살린 것은 죄를 용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
메섹에 아합 왕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은 일입니다. 아합 왕이 인자한 것은 좋지만, 인자하다고 해도 하나
님께서 멸하기로 작정된 사람을 놓아주는 것은 죄를 용납하는 것이 되
어서 잘못된 것입니다. 마귀를 용납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인자해
도 마귀를 용납하면 안 됩니다.
마귀가 다 빼앗아 가려고 하는데, 우리가 진리를 양보하면 안 됩니
다. 진리를 양보하면 다 빼앗아 갑니다. 예수님께서 인자하시지만, 베
드로에게 “사단아, 물러가라”고 하셨고(마 16:23), 어머니한테는 “여자
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하셨습니다(요 2:4). 이렇게 예수
님께서는 끊어버려야 할 때에 끊어버리셨습니다. 끊어버릴 것을 끊어
버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바울은 비진리에 대해서는 일시라도 용납하
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갈 2:5). 진리를 파수하는 데에 끊어버릴 것은
끊어버리며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양보하면 죽습니다.

7. 선지자가 아합을 경책함
본문 35-37절에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그
동무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
지라 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
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저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 저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가
로되 너는 나를 치라 하매 그 사람이 저를 치되 상하도록 친지라”고
하였습니다. 선지자의 생도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동무를 치지
않았으므로 사자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치라고 할 때에
는 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예레미야 48장 10절에 “여호와의 일을 태
만히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
니하는 자도 저주를 당할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다음에 또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서 동무 선지자를 상하도록 쳤는데,
그렇게 하므로 하나님의 일이 잘되었습니다. 치라고 할 때 치는 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이 믿음입니다. 상하도록까지 쳤으니 이것은 순종을
잘한 것으로 하나님께 합격입니다. 치라고 할 때에 안 친 사람은 하나
님의 일을 무너뜨린 사람입니다. 

본문 38-40절에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그 눈을 가리워 변형하고
길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 왕이 지나갈 때에 소리 질러 왕을 불러 가
로되 종이 전장 가운데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저를 잃어버리면 네 생
명으로 저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 종이 이리저리 일 볼 동안에 저가 없어졌나이
다 이스라엘 왕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
하여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맞은 선지자가 그 맞은 자리를 가리기 위해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선지자인 줄 모르게 하고 왕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마침 왕이 지나가므로 선지자가 왕에게 자기가 생명을 걸고 전쟁 포로를 맡았다가 놓쳐버렸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왕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41-42절에 “저가 급히 그 눈에 가리운 수건을 벗으니 이스라엘
왕이 저는 선지자 중 한 사람인 줄 알아본지라 저가 왕께 고하되 여호
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
숨은 저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저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
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선지자가 수건을 벗고 자기가 선지자인 것을 알
게 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것은 아람 왕 벤하닷을 놓아
준 것을 책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이기로 결정하신 자를 죽이지
않고 놓아주는 것은 죄이고, 그 사람 대신 자기가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43절에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 궁으로 돌아가려
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선지자의 책망
을 받고 근심하며 사마리아로 돌아갔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왕이 아람 왕과 같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이 아람
백성과 같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께서 멸하기로 작정하신 사람을 그냥 놔두면 안 됩니다다. 절대 죄를
용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진리로 나가는데 진리를 양보하지 말라
는 것입니다. 신앙양심을 양보하면 죽습니다. 주일날 일 하는 것, 주일
날 결혼식에 가는 것, 주일날 놀러 가는 것 등을 용납하는 것은 아랍
왕을 용납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양보하지 말고 생명을 내놓고
지켜야 합니다. 생명을 내놓고 지키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양보
하면 내 생명이 그 사람 생명같이 되는 것입니다. 양보하면 네 백성이
그 백성과 같이 되고, 양보하면 마귀의 종과 같이 되어서 결국 망한다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양보하지 말고, 생명을 내놓고 진리를 지켜야 합니다. 왕이 그 말을 듣고 답답해서 심히 근심하며 사마리아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다 손에 붙여주셨는데, 왜 용납해서 그 왕을 살려 돌려보냅니까? 자기가 잘해서 이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셨는데 왜 그 왕을 살려서 돌려보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양보하면 안 됩니다. 

은과 금도 마귀에게 빼앗기면 안 되고, 자녀들도 마귀에게 빼앗기면
안 됩니다. 안 빼앗기려면 진리를 지켜야 합니다. 죄와 더불어 싸워야
합니다. 죄와 더불어 싸워서 죄를 이겨야 마귀를 이기는 것입니다. 마
귀와 더불어 타협하고 인정하고 용납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마귀에게
다 빼앗기는 것입니다. 절대 용납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굳게 서서
하나님께서 손에 붙여주신 것을 놔주면 안 됩니다.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재산을 지키고, 하나님의 교회를 지키고, 신앙양심을 지키고, 하나님 명령을 죽도록 순종해야겠습니다.

열왕기상 19:12-18 참 성도의 갈 길과 할 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참 성도의 갈 길과 할 일
열왕기상 19:12-18
12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
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
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
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15여호와께
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16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
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17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
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18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
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
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1. 참 교회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됨
성도가 갈 길이 있고, 할 일이 있습니다. 참 성도의 갈 길은 세
미한 음성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강한 바람, 지진,
불, 이런 것들은 다 외부적 음성이고, 또 강론도 외부적 감동이고, 외
부적 부흥 운동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아
니하고 외부적 운동으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제쳐놓고 주일날을 안 지
키고, 주일을 범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새벽에 일찍 와서 예배 한 시간
참여하였다가 놀러 다니고, 재직회하고 주일에 음식점에 가서 사먹고,
찬양대를 위해 주일에 음식을 사다 먹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계명
범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싫어하시고 진노하십니다. 이것은 신사 참
배한 죄와 같고, 간음하고 살인하는 죄와 같습니다. 계명은 다 같은 것
입니다. 하나님의 계명, 십계명을 다 내버리고 나가는데 하나님께서 진
노하지 않으실 수가 없습니다. 또 간음죄가 교회 안에 많이 들어와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지 않으실 수가 없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간음죄가
들어왔을 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육신은 쫄딱 망하
고 영혼만 주 예수의 날에 구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죄가 한국 교회에도 가득해서 서로 싸우고, 다투고, 물고, 찢습
니다. 요새 한국 교회에도 ‘여자 목사 세우자, 여자 장로 세우자’하는
운동이 일어났고, 또 에큐메니칼 운동, 연합 운동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6.25 사변 후에는 진리를 세우느라고 고려파가 갈라지고, 기장측이 갈
라져 나갔습니다. 기장측은 성경 유오설(有誤說)로 김재준 목사가 갈라
져 나가서 치리했습니다. 그다음에 에큐메니칼 운동, WCC 운동, 이것
때문에 합동과 통합이 갈라졌습니다. 요새도 NCC, 한국기독교연합회로기독교가 다 하나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진리는 세울 바가 못 되고, 기장이나 신신학이나 통합이나 할 것 없이 다 하나가 되자고 합니다. 그래서 서로 간에 강단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고려파도 신신학을 하고 강단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고려파는 괜찮았는데
이제는 다 타락이 되고, 진리 세우는 것은 이제 없습니다. 고려신학대
학원, 대학교 재정이 300억 원 적자가 났다고 합니다. 적자가 난 것뿐
만 아니라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300억 원이 다 없어졌다고
합니다. 횡령을 누가 하였는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300억원이 왜 없어
졌겠습니까? 200억 원을 내야만 은행에서 용납(유예)하게 되어 있는데
200억 원을 못 내서 경매를 붙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려신학
을 사려고 명성 교회 김삼환 목사가 나섰다고 합니다. 즉, 통합측에서
고려신학교를 사려고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형편없이
지금 몰락이 되어 내려가는데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을 수 없습니
다. 진리는 다 내버리고, 하나님의 계명은 다 헌신짝같이 내버리고, 인
본주의로 ‘서로 합하자’고 하는데, 이것은 바벨탑 쌓는 상태와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지 않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신신학, 신비주의, 열린 예배, 복음성가 곡조들, 합
당치 않은 곡조들이 다 들어 와서 교회가 지금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춤추고, 손들고 왔다 갔다 하고, 교회가 난장판이 되니까
세상도 난장판이 된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 책임이 있습니다. 또 ‘신비
주의로 나가서 불 받는다, 큰 운동을 한다’라고 하며, 바람․지진․불의
역사를 따라가며 나가고 있는데, 이것 또한 하나님께서 진노하지 않으
실 수가 없습니다.

본문 12-14절에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나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
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
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바로 세워나가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참 교회가 무엇입니까?
세미한 음성을 듣는 데서부터 바로 세워야 합니다. 참 교회는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세미한 음성은 가늘고 작은, 영적 감동입니다.
깊은 기도, 회개, 자기라는 것이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세미한 감동을
받아 거기에서 참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세미한 감동으로 오는 진
리를 깨달아서 ‘아! 이것이 진리다’하고 그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그
래서 그 세미한 음성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은밀한 골방에서부
터 이루어지는 것이고, 깊은 기도 속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
람, 지진, 불, 거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
서 계시지 않는 운동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실 수가 없는 것입
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세미한 음성을 듣는 그런 성도, 그
런 교회, 그런 교역자, 그런 교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숫자가 많든 적
든 간에 참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세미한 음성을 듣는 그런 성도
와 교회와 교단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에 참여해야겠
습니다. 세미한 음성을 듣는 데서부터, 깊은 진리를 깨닫는 데서부터
우리가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기도를 안
하고서는 세미한 음성을 절대 들을 수 없고, 기도를 하지 않고는 골방
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깊은 기도를 하는 가운데서 은밀한 골방을 찾
아 세미한 음성, 감동을 받고 거기에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임해야
합니다. 그것이 첫째입니다. 한국 교회가 바로 서려면 여기서부터 해야 합니다. 

지금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떠들썩하고, 손뼉치고, 북 치고, 야단법석을 하는데 어떻게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까? 감동은 일시적으로 있을 수 있습니다. 외부적 감동은 되지만 내적 세밀한 음성은 듣지 못합니다. 한국 교회가 세밀한 음성을 들은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가 지금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다 내버리고 연
합 운동을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한기총, 보수교단연합회 등 연합회
가 많습니다. 저에게 연합회에서 오라고 여러 번 연락이 왔는데 한 군
데도 안 갔습니다. 다만 성경공회에만 갑니다. 성경공회 외에 다른 곳
은 안 갑니다. 대통령 조찬 기도회라고 해서 전에 갔었는데, 요새는 안
갑니다. 가야 믿지도 않는 대통령을 옆에 놓고서 무엇을 합니까? 시간
만 버립니다. 그래서 아예 오라고 해도 안 갑니다. 갈 시간도 없는데 피차간 잘 됐습니다.

2. 자기 할 일을 바로 하며 순종하는 신앙을 가져야 함
본문 15-16절에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
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
엘 왕이 되게 하고 도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
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다메섹에 가라는 것입니다. 

먼저 ‘다메섹에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라’
하는 것입니다. 다메섹, 아람 왕은 안 믿는 세계, 믿지 않는 이방 나라
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이방 나라에 대해서도 네가 할 일을 바로 하라’
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바로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이외에
안 믿는 세상은 다 이방 나라입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다 마찬가지
입니다. 이방 나라에 대해서 왕으로 세울 자를 바로 세우라는 것입니
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하사엘이라는 이방 나라의 왕을 세워야겠는데
네가 거기서 책임을 다 하라는 것입니다. 네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사엘을 찾아서 세우라는 것입니다. ‘믿사오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방 나라에 대해서 네 할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심부름을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타락된 종교인데, 타락된 교회들을 위해서도 네 할 일을 똑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서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후계자가 되게 해서
참 교회를 계속해서 세워나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로 말하자면 이방 나
라의 왕을 세우는 것은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 해당됩니다.
교회 밖은 이방 나라이기 때문에 이방 나라 왕을 바로 세우는 것이 하
나님을 바로 순종하는 것이고, 또 바로 되는 것입니다. 또 내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본문 17절에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
스라엘 나라,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도움이 될 사람을 세우라는 것입니
다, 구원운동에 협조할 사람, 협력할 사람, 도와줄 사람, 그런 사람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는 일에 이방 나라
왕이라도 도움이 될 사람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국회의원도 구원운동
에 도움이 될 사람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세워야
도움이 되겠는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국회의원 선거 투표일이 가
까 왔는데, 어떤 사람을 세워야 하나님의 나라 구원운동에 도움이 되
겠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바로
못하고 비뚤어 놓고 아무리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해도 안 됩니다. 하
사엘을 세우라고 했는데 다른 사람을 세워놓고 ‘믿사오니’하고 하나님
께 도와달라고 하면 안 됩니다. 세울 사람을 바로 세우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뜻이 임한 사람을 바로 세워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후보자들이 다 부정을 저질렀기 때문에 뽑을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투표를 안해야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모두가 부정을 저
질렀겠습니까? 부정을 저지른 사람만 저질렀을 것입니다. 또 부정을
저질렀다고 해도 나타난 것만 징벌하고, 나타나지 않은 것은 묵인하고
나가야 합니다. 부정을 저지른 사람이 나타났으면 그것은 징벌해야 합
니다. 그러나 나타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징벌하겠습니까? 그 사람에
게 다음에 부정이 나타나면 그때는 징벌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이외
에는 묵인하고 나가야 합니다. 전혀 부정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을 찾
으려면 몇 사람이나 찾겠습니까? 정치가, 국회의원 가운데 하나도 안
해먹은 사람을 찾으려면 백 명 가운데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국회
의원이 백 명이라고 하면 한 번도 부정을 안 저지른 사람이 몇 사람이
나 되겠습니까? 한 사람? 백 명에 두 사람? 그러면 구십팔 명이나 구
십구 명은 다 해먹었다는 것입니다. 정치가들에게는 사람들이 돈을 가
져오기 때문에 부정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혹시 있
어도, 그것은 극소수일 것이고 대개 부정을 저질렀다고 봐야 할 것입
니다. 그렇다면 현재 정치가들 다 싹 내버리고 고등학생들, 깨끗한 학
생들을 세워 놓으면 나라가 되겠습니까? 그래도 나라를 다스리려면 재
능이 겸비되어야 하는데, 그만한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많이
먹은 자든, 적게 먹은 자든 먹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타난 것만 징벌하고, 나타나지 않은 것은 그냥 묵인하고 나가야 합니다.

또 유능해야 합니다. 일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일할 줄 모르는 사람을
깨끗하다고 세워 놓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나라가 되겠습니까?
그리고 외교를 바로 해야 합니다. 외교를 바로 못하면 나라가 망합니
다. 우리가 조선 대원군 때 망한 것도 다른 나라와 더불어 외교를 잘못해서입니다. 일본은 그 당시 벌써 서양과 외교를 해서 총을 사서 쌓아놓고 있는데, 한국은 외교를 잘 못해서 “서양 놈들 못 들어오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천주교인들의 목을 다 잘라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 바람에 서양 문화가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일본이 침략해 들어올 때에
일본은 총을 가지고 왔는데, 한국 사람은 활과 창을 가지고 그들과 맞
섰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일본을 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외교
를 잘 못해서 망한 것입니다. 일본사람들이 황실에게까지 들어와서 명
성황후를 칼로 죽이고, 고종황제를 잡아가고, 한국이 비참하게 되었습
니다. 일본의 손에 다 들어간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외교를 잘 못해
서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 백제가 망한 것도 외교를 잘 못해
서 망했고, 성경에 북쪽 이스라엘 나라가 망한 것도 호세아 왕이 앗수
르 왕과 더불어 동맹했다가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야김 왕도 바벨
론 왕과 동맹했다가 배반했기 때문에 망했고, 히스기야 왕도 바벨론과
동맹했다가 배반하고 외교를 잘 못해서 망했습니다. 약소국가는 외교
가 첫째입니다. 외교를 잘 못하면 다른 것을 아무리 잘해도 외세가 들
어오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람을 세울 때에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을 세워야
겠습니다. 교회에 유익이 될 사람을 세워야겠습니다. 그리고 유익이 되
려면 외교를 잘해야 하겠습니다. 외교를 잘 못하면 교회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요새로 말하면 미국과 동맹한 것, 한미동맹을 잘 지키는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한미동맹, 이것을 안 지키고 “미국 물러가라”고
반미운동을 하면 미국이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 국방장관 럼스
펠드가 미군을 원치 않는 나라에 주둔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꾸
물러가라고 하면 왜 있겠습니까? 아무튼 외교 잘 못하는 사람을 세워
두면 안 됩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이 원수가 이북이 아니고 미국이라
고 한다고 합니다. ‘이북은 우리 민족과 하나이고, 적은 미국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군은 물러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통일해야 된다. 그리고 미군은 물러가고 이북과 우리는 하나이니 통일하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통일이 좋긴 좋은데, 민주주의 통일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북 정부 그대로 두고 한국 정부도 그대로 두고 연방정부를 세우
자, 연합정부를 세우자, 연립정부를 세우자’는 주장은 어렵게 생각됩니
다. 하여간 양쪽 정부는 다 두자는 것입니다. 이북은 이북대로 두고 한
국은 한국대로 두고, 그 위에 정부를 하나 더 세우자는 것입니다. 그러
면 통일 대통령을 뽑아야 할 텐데, 통일 대통령은 누가 될 것 같습니
까? 투표하면 누가 될 것 같습니까? 통일 대통령을 뽑으면 이북의 김
정일도 출마하고, 또 한국의 여러 사람도 출마할 것입니다, 그럼 통일
대통령으로 누가 될 것 같습니까? 만약 북한의 김정일이 통일 대통령이 되면 아주 힘들게 될 것입니다.

3.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며 기도하는 신앙을 가져야 함
본문 18절에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증거하며 빛을 비
추어 나가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도를 통해
서 적극적으로 일해 나가십니다.

요새 바른 말하는 사람들이 소수입니다. 우리도 소수 교단인데, 크기
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에 바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고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줄 모릅니다. 소수
교단이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사엘을 바로 세우고, 그다음에는 타락
된 교회에 대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바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 현
실, 교회에 대해서 할 바를 바로 해야 합니다. 합동측 총회장인 인 목사를 만나서 여자 목사, 여자 장로 안 세운다고 발언한 것은 잘했다고, 성경적이라고, 하나님께서 같이 하실 것이니까 굳세게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인 목사가 여자 목사 세우지 않는다고 상당히 곤란을 당했는데, 제가 굳세게 나가라니까 좋아했습니다. 성경에 여자는 교
회를 주장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왜 목사로 세우려고 하느냐는 것입니
다. 하여간 우리가 타락된 교회에 대해서도 할 바를 바로 해나가는 것
이 성경에 바로 하는 것입니다. 또 많은 교단이 우리 교단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것들이 어떻게 하나 보자, 저 사람들이라도 바로 하려고
하지 않느냐’라고 하면서 많은 교단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첫째는 죄부터 싹 다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죄, 내 개인 죄, 우리 가정이나 교회 죄부터 싹 다 제거해야 하고, 우리
교단 죄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고 심부름을 바로 해야 합니다. 하사
엘을 바로 세우고, 예후를 바로 세우고, 마지막에는 무엇을 바로 하라
고 하였습니까? 참 선지자, 참 교회, 엘리사를 세워서 너 대신 선지자
가 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참 교회를 세워 나가고, 참 선지자를 세워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참 선지자를 세우려면 신학교가 있어야 합
니다. 우리 신학교, 신학대학원을 잘 세워서 어떻게 하든지 이 시대에
하나님의 참 종, 이 시대의 기뻐하는, 성경말씀대로 나가는 참 종들을
세워나가는 일,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인간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역사로 앞으로 우리나라를 잘 되게 해주실 것입니다.
또 잘못된 사람들이 많이 안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 뜻에 맞는 국
회의원이 많이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겠습니다. 회개하면
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계명과 하
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믿음에서 떠나고, 인본주의로 나가고, 바람 운
동, 불 운동, 지진 운동, 외부적인 감동 운동하다가 다 이렇게 망치고만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밀한 음성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서 말씀을 세워 나
가고, 이방 나라에 대해서 투표할 때 바로 하고, 그다음에는 타락된 교
회에 대해서 바로 하고, 참 교회를 세워 나가는 일, 이것을 하면서 하
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버리지 않으
실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 버리실 것 같습니다. 잘못하
면 월남같이 될 것 같습니다. 월남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는 정신
을 바짝 차리고 우리가 바로 서서, 우리 교단이 바로 서면서, 합심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처럼 합심해서 기도하는 것이 참 좋은 것입니다.
합심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진노를 푸시고 다시 우리나라로 하여금
잘 되도록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다 같이 기도하십시다. 앞으로 회개하
면서 우리가 바로 서고, 심부름을 바로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항상 기
도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2017년 2월 3일 금요일

열왕기상 19:1-21 세미한 음성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세미한 음성
열왕기상 19:1-21
1아합이 엘리야의 무릇 행한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것을 이세벨에게 고하니 2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9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취하려 하나이다 11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
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
지 아니하며 12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
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엘리야가 듣고 겉옷
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
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저가 대답하되 내
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
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
다 15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
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16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
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17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
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18그러나 내가 이스라
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19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
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20저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
르리이다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
느냐 하니라 21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

1.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잠이 듦
본문 1-2절에 “아합이 엘리야의 무릇 행한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것을 이세벨에게 고하니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이세벨은 아합 왕의
아내로 이방 시돈 왕의 딸인데, 자기 나라에서 섬기던 바알 신과 아세
라 신을 이스라엘에 들여와 온 백성으로 우상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세벨이 아합 왕으로부터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모든 백성들
을 일시에 하나님께로 돌이킨 것과 거짓 선지자들 850명을 기손 강에
서 죽인 것, 또 엘리야가 기도하므로 비가 온 사실을 듣고 사자를 엘
리야에게 보내어 내일 이맘때에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3-4절에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
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
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하니까 엘리야가 브엘세바로 도망가 로뎀나무 아
래에 앉아서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였는데, 이것은 잘못된 기도입니다.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자기
가 죽여 달라고 해서 죽이시고, 살려 달라고 해서 살려주시는 하나님
이 아니십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올 때도 세상에 보내달라고 해서 왔
습니까? 그러므로 죽여 달라는 기도는 불신앙입니다. 이와 같은 기도
를 엘리야가 한 것은 신앙의 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와 같은
사람도 신앙의 잠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도 신앙의 잠이 들었을 때에는 예수님께 제자를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물어 보았습니다(마 11:3). 세례 요한이 얼마나 확실하게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까? 그런데 감옥에 들어가서 몇 달 있는 동안에 신앙의 잠이 드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인가, 아닌가?’하며 의아한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신앙의 잠이 드는 때가 더러 있습니다.

엘리야가 신앙의 잠이 든 이유 첫째는 자기가 하려고 하였기 때문입
니다. 즉, 자기가 하려고 하다가 안 되니까 쓰러졌습니다. 그러므로 어
떤 일이 하나 되었을 때, 자기가 해서 된 줄로 알면 안 됩니다. 갈멜
산에서 백성을 일시에 하나님께로 돌리고 거짓 선지자들을 숙청한 것
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지 자기가 한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가 자기
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돌리고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겠다는 마음으로
나갔는데, 그것이 안되니까 쓰러졌습니다. 낙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한 것이 없는 줄 알아야 합니다. 갈멜 산에서 불이 내려온 것
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고, 백성들이 일시에 돌아온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고, 거짓 선지자들을 숙청한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고,
비가 온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자기는 심부름만 한 것뿐입
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전적무능한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본래부터 자
기는 무(無)요, 공(空)인 줄 알면 쓰러질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대성공한 줄 알고 돌아가다가, 그것이 다 수포로 돌아가니까 낙심 가
운데 빠져서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낙심하는 것은
자기가 하려고 하다가, 즉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하다가 안 되니까 낙심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이고, 전적부패
한 자이고, 전적무능한 자인 줄 알아야 합니다. 또 벗은 몸으로 와서
벗은 몸으로 가는 것이 본전입니다. 올 때에 아들과 딸, 돈을 가지고
왔습니까?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며, 거두어 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데, 무슨 낙심입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에서 쓰러진 이때가 본전을 찾는 때입니다. 본전을 찾으면 그때부터 됩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둘째는 환난을 보고 두려워했기 때문에 신앙의 잠이 들었습니다.

셋째는 생명에 대한 애착심 때문입니다.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
나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육신의 생명에 대하여 애착심을 가진 것입
니다. 육신의 생명을 내놓고, ‘죽이면 죽자’는 마음으로 나가야 하는데,
육신의 생명에 애착심이 있기 때문에 쓰러진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이
위태하므로 이제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넷째는 조급한 마음 때문입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일시에 하나님께로 돌리려고 하다가 잘 안되므로 낙심하여 쓰러진 것입니다. 

다섯째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잘 안되는
것 같아도, 때가 되면 하나님의 만능으로 성취하실 것인데, 하나님의
권능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여섯째는 하나님께서 친히 하실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
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믿지 못하고 자
기가 하겠다고 하다가 안 되니까 낙망하고 쓰러진 것입니다. 시편 118
편 6절에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엘리야와 같이 낙망하는 가운데 빠
지지 않아야겠습니다.

2. 엘리야가 깨어 호렙 산으로 감
본문 5-8절에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
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 누워서 잠이 들었는데,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어루만지시며 “일어나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낙
망하여 쓰러져 있는 엘리야를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일으켜 세워주
시려고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또 떡과 물을 주신 것은 엘리야에게 필
요한 모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엘리
야가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는데, 여호와의 사
자가 두 번째로 와서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다시 일어나서 먹고 밤낮 40일을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어떤
면으로든지 권고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십니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떡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고, 물은 성령
의 역사를 가리킵니다(요 7:37-39). 사십(四十)은 고난의 수입니다. 예
수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 기도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 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 생
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의 수가 다 차기까지 계속해서
영적 시온 산을 향해 달음박질하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3. 호렙 산에서 여호와께서 나타나심
본문 9-10절에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
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
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
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이 엘리야를 잡아 죽이겠다고 하는 바람에 엘리야가 호렙 산에 가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만 떼어 놓고 보면, 불행한 일 같고 실패한 것 같습니다. 또 살 가망이 없고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없으면 호
렙 산에 못 갑니다. 즉, 이세벨이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고 체포령을 내
리지 않았다면 엘리야가 호렙 산에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엘리야를 호렙 산으로 보내셨고, 이것을 통해서 하
나님의 일을 해나가시는 것입니다. 실패한 것 같아도 그 실패를 통해
서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후에 예수
께로 나옵니다’라고 하는 찬송이 있는데, 우리가 살 길이 막히고 실패
하였을 때에 하나님 앞으로 와서 부르짖으며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므
로 잘되는 것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일이 못되는 것도 영적으로 유익
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떡과 물을 주셨으면 그것을 먹고
가야 되겠는데, 엘리야는 안 가고 또 누워서 잤습니다. 하나님께서 가
라고 하시는데 왜 다시 눕습니까? 하라는 것을 안 하는 것을 보면 하
나님께서 벌을 내려 죽이시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긍휼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엘리야에게 떡과
물을 주셨고, 재차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4. 세미한 소리를 들음
본문 11-12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
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
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
지 아니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굴에서 나가 여호와 앞에 섰을 때에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바람과 지진과 불의 세 가지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첫째,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면서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산’은 큰 세력을 가리키
는 것으로, 불교․유교․마호메트교 등과 같은 큰 세력이 기독교 특수
운동 앞에 깨어져 나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위’는 완강한 마음을 가
리키는 것으로, 완고한 세력과 사상들이 기독교 특수 운동 앞에 깨어
져 나가는 것을 뜻합니다. 둘째, 지진이 지나갔는데, 그 가운데도 여호
와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지진’은 진동하는 역사를 가리키는 것인데,
기독교 특수 운동이 일어날 때 전국의 교회가 동요되는 때가 있었습니
다. 셋째, 불이 지나갔는데, 그 맹렬한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신비주의나 감정주의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러면 바람과 불과 지진은 마귀의 역사입니까, 하나님의 역사입니
까? 하나님의 역사라면, 왜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계시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에서 일어나는 특수 운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에도 이 세 가지 특수 역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다 여호와 앞에서 일어나는 운동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여
호와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지 않았
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생명 운동이 아니라
는 것입니다. 바람, 지진, 불은 여호와께서 지나간 다음에 일어난 작용
들입니다. 그러므로 바람, 지진, 불이 여호와인 줄 알고 그것을 가지고
한 몫 보려고 하면 실패합니다. 또 이런 방법으로 일하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 것과 거짓 선지자들을 죽인
것으로 하나님의 일이 되는 줄 알고 거기에서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였
습니다. 즉, 아버지가 자동차를 타고 지나갈 때에 먼지와 바람이 일어
나는데, 그 바람과 먼지 가운데서 아버지를 찾으려는 것과 같은 것입
니다. 바람, 지진, 불과 같은 외부적 운동은 영의 운동 같지만 영적 운동이 아닙니다. 참된 기독교는 외부적 운동이 아니라 내적 생명의 역사에 있습니다. 이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뜨겁고 맹렬하니까 감동이 크지 않습니까? 그러나 외부적 감동입니다. 감동에는 육신의 감동과 영적 감동이 있습니다. 또 외적 감동과 내적 감동이 있습니다. 신비주의자들은 외적 감동입니다. 외적 감동은 심령 속 깊은 가운데에 감동이 없습니다. 그리고 외적 감동은 빨리 됩니다. 그러나 내적 감동은 빨리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 지진, 불과 같은 역사가 다 지나간 다음에 세미한 소리가 들렸
는데, ‘세미한 소리’는 은밀하고 고요한 가운데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세미한 소리는 영적 감동으로서 심령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옵니다. 이
러한 세미한 소리가 들려오려면 자기가 온전히 죽어져야 합니다. 은밀
한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은밀하다는
것은 고요하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어져야 고요해집니다. 자기는 아
무것도 할 수 없는 자, 전적으로 실패한 자, 전적으로 무능한 자임을
깨달을 때, 세미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자기가 무엇을 하겠다고 할 때
에는 안 들려옵니다. 완전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가 죽어져야 들려옵
니다. 자기 주장, 자기 생각, 자기 계획은 없고, 그저 하나님 앞에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입니다’하며 거꾸러질 때에, 하나님께서 감동
하시는 세미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때에는 말씀이 바로 깨달아집니
다. ‘아, 이렇게 해야 되겠다’하며 깨닫는 것이 세미한 음성을 듣는 것
입니다. 그것은 우리 심령 속 깊은 내적 감동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래
서 이제는 그 세미한 음성을 붙들고 따라갑니다. 살든지 죽든지, 어디
든지 따라가는 것입니다. 끝까지 따라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생명이 있
습니다. 따라가면 영이 자라나고, 또 따라가면 또 영이 자라나는 것입
니다. 외적 감동은 물을 가져다 끼얹는 것이므로 다시 목마름이 있으
나, 내적 감동인 세미한 음성은 생명 강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거기
에는 목마름이 없고 영생하는 생수가 속에서 흘러나옵니다. 이것 하나만 바로 깨달아도 아주 큰 것입니다. 

본문 13-14절에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
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
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
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세미한
음성을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갔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을
실제로 만난 것입니다. 강한 바람, 지진, 불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안
계셨는데,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엘리야가 겉옷으로 얼굴을
가린 것은 감히 하나님을 뵐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하실 때, 엘리야가 자신의 처지에 대해 대답하였습니다.

5. 엘리야의 사명
본문 15-16절에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
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
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
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
야에게 세 가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엘리야에게 주신 사명 첫째는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
게 하라는 것입니다. 아람은 이방 나라인데, 이방 나라 왕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방 나라, 즉 세상 나라에 대
해서 모든 것을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도 하나님이 주관하
시는데, 세상 나라를 바로 보고, 세상 나라에 대한 심부름을 바로 하라
는 것입니다. 하사엘은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왕하 8:10-12). 그래도 하
나님께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을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이스
라엘을 도와줄 사람을 왕으로 세우면 좋겠는데, 이스라엘에게 큰 손해
를 줄 사람을 세우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세워야 하며, 이방에 대한 관점을 바로 갖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바로
하여야 합니다. 세상 나라에 대해서 바로 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아
닙니다. 예수님께서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하셨는데,
세상 국가에 대해 해야 할 의무를 바로 감당하여야 합니다.

둘째는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은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섬겼습니다(왕하 10:29).
또 7월 15일 절기를 8월 15일로 변경 시켰으며, 제사장은 레위 사람만
세워야 되는데 아무나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성경을
어기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요새로 말하면 타락된 교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타락된 교회를 바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즉, 잘못된 교회
를 바로 볼 줄 알고, 거기에 대해서 바른 관계를 가지고 나가라는 것
입니다. 바른 관계라는 것은 한계를 두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해야 될
것은 하고, 안 해야 될 것은 안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
를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타락된 북쪽 이스라엘 나라로는 하나님의
일이 안됩니다. 성경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남쪽 이스라엘 나라를 통해
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계속 내려왔습니다. 그러므로 타락된 교회를
바로 알고 비진리와 타협하지 말고 자기가 할 일을 바로 해 나가야 합니다.

셋째는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는 것입니다. 이것은 후계자를 세워 참 교회를 세워 나가라는 것입니
다. 참 교회를 세워 어두운 세상에 진리의 등불을 비취게 하라는 것입
니다. 또 엘리사를 후계자로 세우라는 것은 엘리사를 참된 일군으로
세워서 후계자를 삼아 엘리야가 하던 구원운동을 후대까지 계승시키라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
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고 하였습니다. 하사엘이 죄를
정결케 해 나가다가 못 다한 것을 예후가 하고, 예후가 다 하지 못한
것을 엘리사가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사엘은 큰 죄만 청산하는
것이고, 그다음의 중간 죄는 예후가 청산하고, 그 다음의 작은 죄는 엘
리사가 청산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불신 세상에서도 어느 정도 정
화를 시키고, 그다음에는 타락된 교회가 좀 더 정화시키고, 마지막에는
참 교회가 성경대로 정화시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성경대로 바로 세워 나가는 참 교역자가 필요합니다. 제
일 중요한 것은 참 교역자를 길러내는 것입니다. 참 교역자가 나와야
만 모든 것을 깨끗하게 만들고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본문 18절에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자기 혼자 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숨
어서 믿는 사람 칠천 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칠천 명은 우상에게 절하
지 않고 숨어서 믿는 사람입니다. 숨어서 믿는 사람은 자기 신앙만 지
켜 나가지,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리지는 못합니다. 많은 환난을
받으면서도 진리를 나가서 전파하고 세워나가는 한 사람이 숨어서 믿
는 천 명보다 낫습니다. 즉, 환난과 핍박이 심한 곳일지라도 엘리야와
같이 복음을 가지고 가서 전파할 수 있는 용기 있는 교역자가 필요하
며, 이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해 나가십니다.

6. 엘리사를 부름
본문 19절에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둘째 겨리와 함
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라고 하였는데, 엘리야
의 두루마기는 능력의 두루마기로 이 상황은 하나님의 권능을 엘리사
에게 주는 것을 가리킵니다(왕하 2:8-14). 즉, 엘리야에게 있던 권능과
사명을 엘리사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
으면 대가 끊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바른 신학교를 세워서 바른 교
역자들을 길러내야 합니다.

본문 20-21절에 “저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 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
르리이다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
느냐 하니라 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가 부모와
입 맞춘 후에 엘리야를 따르겠다고 할 때에 엘리야가 허락하였습니다.
누가복음 9장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가족을 작별하고 오겠다고 할
때에는 예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보다 가족을 첫째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엘리사는 믿
는 일을 첫째로 하고 가족과 작별하겠다고 하였으므로 엘리야가 허락
한 것입니다. 엘리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전적으로 몸 바쳐서 엘리야
를 따르기로 작정하였는데, 우리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
라가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열왕기상 18:16-46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제단에 불로 응답하심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제단에
불로 응답하심
열왕기상 18:16-46
16오바댜가 가서 아합을 만나 고하매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려 하여 가
다가 17엘리야를 볼 때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18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
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19그런즉 보내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
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인을 갈
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20아합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자
손에게로 보내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21엘리야가 모든 백
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
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
이면 그를 좇을찌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22엘
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
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인이로다 23그런즉 두 송아지를 우리에게 가져
오게 하고 저희는 한 송아지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의에 놓고 불은
놓지 말며 나도 한 송아지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놓지 말고 24너
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25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니 불을 놓지 말라 26저희가 그 받은 송아지를 취하여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가로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
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저희가 그 쌓은 단 주의에서 뛰놀더
라 27오정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저희를 조롱하여 가로되 큰 소리로 부
르라 저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간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
지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28이에 저희가 큰 소리로 부
르고 그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
더라 29이같이 하여 오정이 지났으나 저희가 오히려 진언을 하여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를찌라도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더라 30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
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저에게 가까이 오매 저가 무너진 여
호와의 단을 수축하되 31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열두 돌
을 취하니 이 야곱은 여호와께서 옛적에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32저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
하여 그 돌로 단을 쌓고 단으로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용납할
만한 도랑을 만들고 33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 그리
하라 하여 세 번 그리하니 35물이 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하게 되었더라 36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
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
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37여호와여 내
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
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
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40엘리야가 저희
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저희를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41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42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
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가로
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
니 46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
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1. 엘리야가 아합을 만나 모든 선지자를 갈멜 산으로 모으라고 함
환난 때에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음
본문 16-19절에 “오바댜가 가서 아합을 만나 고하매 아합이 엘리
야를 만나려 하여 가다가 엘리야를 볼 때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
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
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그런즉 보내어 온 이
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인과 아세라
의 선지자 사백 인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16-19절에 “오바댜가 가서 아합을 만나 고하매 아합이 엘리야를 만
나려 하여 가다가 엘리야를 볼 때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하는 자여 네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그런즉 보내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 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인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안 내렸습니다. 전국적으로 물이 말
라서 큰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가서
아합 왕을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아합을 직접 만나면
당장 죽을 염려가 있으므로, 아합의 궁내 대신 오바댜라는 사람을 먼저 만났습니다.

오바댜는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경외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어려서부
터 하나님을 알고 두려워하며 잘 섬긴 오바댜입니다. 이세벨이 하나님
의 선지자를 다 잡아 죽일 때에 오바댜가 그 중에서 백 명을 숨겨놓았
습니다. 굴 한 개에 오십 명씩, 굴 두 개에 백 명을 숨겨놓고 떡과 물
을 갖다 먹였다고 했습니다. 오바댜가 참으로 귀한 하나님의 사람입니
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한 것이 귀하고, 또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오십 명씩 굴에다 숨겨놓고 매일 백 명에게 떡과 물을 날라다 먹인 것
이 귀합니다. 그러다 발각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발각되면 죽습
니다. 아합 왕이 하나님의 종을 죽이라고 했는데, 안 죽이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또 숨겨놓고 떡과 물을 먹인 것이 발각되면 오바댜를 살려
놓겠습니까? 즉, 오바댜는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의 종들을 숨겨주고
공궤한 것입니다. 그 일을 하다가 죽을 각오를 한 것입니다. 죽으면 죽
으리라 하면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숨기고 섬긴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
도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다락에 숨겨 삼 년 동안 공궤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고,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바댜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입니다. 같이 받는 것입니다. 지금 엘리야는 최전방에 서서 복음을 전하고 있고 오바댜는 뒤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숨겨주며 숨어 있는 것입니다.
또 몇 사람들은 바알에게 절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열왕기상 19장
18절에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고 하였습니다. 칠천 명의 사람들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
들 중에서 자기 혼자만 죽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다 죽은 줄 안 것입
니다. 그렇지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숨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칠천 명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님의 선지자 백 명
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이 백 명은 특별한 하나님의 종 같습니다. 이름
이 드러나서, 조금만 있으면 다 잡혀 죽을만한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 백 명을 오바댜가 숨겨놓고 떡과 물로 대접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스라엘에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엘
리야와 같이 아예 내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오바댜와 같이 숨은 선지자를 대접하는 사람, 숨겨주는 사람이 있
습니다. 또 칠천 명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숨어서 하나님
을 섬긴 사람들입니다. 

큰 환난이 들어올 때에 여러 종류의 사람이 나타납니다. 엘리야와 같
이 내놓고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있고 오바댜와 같이 대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숨어서 말씀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거에 신사 참배
바람이 불 때에 목사들이 많이 잡혀 갔습니다. 그런데 직분 없이 교회
에 나오는 초 신자들은 단속을 안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초 신자들은
혼자서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 하나님의 선지자들,
즉 교역자들은 숨어서 하나님을 섬기기도 했습니다. 또 숨은 사람을 대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순종하면 살 길을 열어주심
그런데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순종을 하면 하나님께서 살게
해주십니다. 엘리야가 순종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일이 다 되게 해주
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선지자들도 순종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오바댜
같은 사람을 시켜서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아니
하고 그저 믿음만 지켜나가면,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를 시켜서라도 먹
여주시고 오바댜와 같은 자를 통해서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십니다.
이제 엘리야가 아합 왕을 만나 온 이스라엘에서 바알 선지자와 아세
라 선지자를 불러 갈멜 산으로 모으라고 했습니다. 지금 여호와의 명
령을 버리고 우상을 섬김으로써 이스라엘에 큰 고통이 임해 있습니다.
나라의 책임자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나아가고, 백성들도
왕이 잘못하는 것을 따라가고 있으니 고통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래서 엘리야가 갈멜 산으로 다 모이자고 했습니다. 누가 이스라엘로
괴롭게 하였는지 판결해보자는 것입니다.

2.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임
본문 20-24절에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보내어 선
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
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
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
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
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인이로다 그런즉 두 송아지를 우리에게 가져 오게 하고 저희는 한 송
아지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의에 놓고 불은 놓지 말며 나도 한 송
아지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놓지 말고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엘리야와 모든 백성들, 그리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팔백오십 명이 다 갈멜 산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백성들은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머뭇머뭇하고 있습니
다. 이게 옳은지, 저게 옳은지 판단하지 못하고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
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옳은지, 바알을 섬기는 것이 옳은지 분별하지 못하고 있
습니다. 이 백성이 전에 성경을 바로 배웠는데도 그렇습니다. 솔로몬
왕 때에 다 바로 배우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왜 백성들이 이렇게 흐리
멍덩해서 머뭇머뭇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에스겔에는 ‘거
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거짓말을 곧이
듣습니다.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즉, 바알을 섬기는
것이 진짜인지,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진짜인지 모르고 나가는 것입니
다. 그래서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분별력
이 없으니까 거짓 선지자들은 쓴 것을 달다고 하고 단 것을 쓰다고 하
면서 자꾸 잘못 가르치는 것입니다. 바알 신이 하나님이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새도 잘못 가르쳐서 백성들이 그릇되게 알
고 있는 것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옛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새 신 신학자들, 해방신학자들, 신비주의자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
니다. 또 열린 예배, 축복 기도, 기복 신앙 등, 그릇된 것들이 자꾸 벌
어집니다. 거짓 선지자들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머뭇머뭇하고 있습니
다. 또 목사들 중에도 바로 분별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머뭇머뭇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3. 거짓 선지자의 신은 응답이 없음
본문 25-29절에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
니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니 불
을 놓지 말라 저희가 그 받은 송아지를 취하여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가로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저희가 그 쌓은 단 주의에
서 뛰놀더라 오정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저희를 조롱하여 가로되 큰 소
리로 부르라 저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간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지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이에 저희가 큰 소리
로 부르고 그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
게 하더라 이같이 하여 오정이 지났으나 저희가 오히려 진언을 하여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를찌라도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더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바알의 선
지자들이 아침에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나무를 놓고 송아
지를 잡아 올렸습니다. 그다음 바알에게 불로 응답해주기를 간구했는
데, 오정이 되어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이에 엘리야가 바알과
바알의 선지자들을 무시하는 말로 그들을 조롱했습니다. 결국 바알 선
지자들이 몸이 달아서 그들의 규례대로 칼과 창으로 자신들의 몸을 상
하게 하면서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구하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
답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알 우상의 거짓됨이 확실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4.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제단에 불로 응답하심
이제 엘리야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본문 30-38절에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저에게 가까이오매 저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되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열두 돌을 취하니 이 야곱은 여호와께서 옛적에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저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단을 쌓고 단으로 돌아가며 곡식 종
자 두 세아를 용납할 만한 도랑을 만들고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
무 위에 부으라 하고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 그리하라 하여 세 번 그리하니 물이 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하게 되었더라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
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
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
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
께 기도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심과 자신이 주의 종이 된
것, 또 자기가 전한 말씀이 주의 말씀인 것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습
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응답해주셨습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려주심
으로 응답해주셨습니다. 여호와의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까지 다 마르게 하였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이
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만이 참 신이신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이것은 하나님께서 거짓 선지자들을 숙청해주신 것입니다. 하
나님께서 참 선지자가 하나님의 종임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또 하나님
께서 응답해주심으로 참 선지자가 전하는 말씀이 여호와의 말씀인 것
이 드러났습니다. 백성들이 처음에는 누가 참인지 몰랐습니다. 저기서
는 자기들이 참이라고 하고, 여기서는 자기가 참이라고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응답하셨습니다.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말씀대로 나타난 것입니다. 

5. 엘리야가 거짓 선지자들을 숙청함
본문 39-40절에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
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엘리야가 저희에게 이르
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
지라 엘리야가 저희를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고 하였
습니다. 이제 백성들이 불로 응답하신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께로 돌아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을 모두 잡으라고 했
고, 백성들이 그들을 잡아 기손 시냇가로 가서 죽였습니다. 

6. 엘리야가 기도하매 비가 내림
본문 41-46절에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
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
고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
보고 고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
어나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
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
스르엘로 가니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
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고 하였습니
다. 엘리야가 비가 오게 해달라고 일곱 번 기도할 때에 비가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한, 두 번 기도해서 안 된다고 중단하지 말고, 일곱 번까지, 즉 끝까지 기도하는 정신을 가져야겠습니다. 칠(七)수는 만수(滿數)인데, 완전수까지 차도록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또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손 바닥만한 구름이 큰 구름이 되어 많은 비가 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일이라고 멸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면 점점 커져서 큰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로 성취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갑자기 큰 일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큰 일도 이루어주십니다.

열왕기상 18:1-24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임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임
열왕기상 18:1-24
1많은 날을 지내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2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 3아합이 궁내 대신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크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4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일백 인을 가져 오십 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었더라 5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르되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러면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짐승을 다 잃지 않게 되리라 하고 6두 사람이 두루 다닐 땅을 나누어 아합은 홀로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가니라 7오바댜가 길에 있을 때에 엘리야가 저를 만난지라 저가 알아보고 엎드려 말하되 내 주 엘리야여 당신이시니이까 8대답하되 그러하다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9가로되 내가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당신이 당신의 종을 아합의
손에 붙여 죽이게 하려 하시나이까 10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주께서 사람을 보내어 당신을 찾지 아니한 족속이나 나라가 없었는데 저희가 말하기를 엘리야가 없다 하면 그 나라와 그 족속으로 당신을 보지 못하였다는 맹세를 하게 하였거늘 11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나 12내가 당신을 떠나간 후에 여호와의 신이 나의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가시리니 내가 가서 아합에게 고하였다가 저가 당신을 찾지 못하면 내가 죽임을 당하리이다 당신의 종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13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
호와의 선지자 중에 일백 인을 오십 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께 들리지 아니하였나이까 14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
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니 그리하면 저가 나를
죽이리이다 15엘리야가 이르되 내가 모시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
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오늘날 아합에게 보이리라 16오바댜가 가서 아합
을 만나 고하매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려 하여 가다가 17엘리야를 볼 때
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18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19
그런즉 보내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
백오십 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인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
오게 하소서 20아합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보내어 선지자들
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21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
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
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 하
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22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인
이로다 23그런즉 두 송아지를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저희는 한 송아
지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놓지 말며 나도 한 송아
지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놓지 말고 24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1. 기근이 심한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함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심한 기근이 있음
본문 1절에 “많은 날을 지내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
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
면에 내리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흉년이 시작된 지 3년 6개월째
되는 해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지면에
비를 내리리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2절에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한 때라고 했
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심했던 때입니까? 

본문 3-6절에 “아합이 궁내 대신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크
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일백 인을 가져 오십 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
였었더라 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르되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
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러면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짐승을 다
잃지 않게 되리라 하고 두 사람이 두루 다닐 땅을 나누어 아합은 홀로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가니라”고 하였습니다. 3년 동안
의 기근 때문에 모든 풀들이 다 말라 죽었습니다. 웬만한 시내는 다
말랐습니다. 기근이 막심한 때를 당했습니다. 형편없는 환난을 만난 것
입니다. 심지어 왕궁에 있는 말과 나귀까지 먹이가 없을 정도가 되었
습니다. 그래서 아합 왕이 궁내 대신 오바댜과 함께 나가서 물의 근원
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사방으로 다니면서 물 근원에 풀이 조금이라
도 있는지 찾아보기로 한 것입니다. 아합 왕이 풀을 찾으면 말과 나귀
에게 먹여서 짐승들을 잃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그렇지 않으면 다 잃어버리고 말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지금 왕궁의 말과 나귀, 노새까지도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흉년이 심하게 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 모든 강과 웬만한 것들은 다 말라서 짐승 먹을
풀마저도 없는 것입니다. 아합 왕이 궁내 대신과 친히 풀을 찾으러 다
니는 것을 보면 얼마나 상태가 비참해졌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웬만
하면 왕이 명령 한 마디로 풀 같은 것은 찾아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디 가서 풀을 좀 찾아오라고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방
의 모든 사람들이 풀과 물의 근원이 어디 있는지 찾아서 왕에게 보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보고를 들은 다음에 왕이 그 풀이 있는 곳에 가
서 짐승을 먹이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왕이 친히 떠난 것을 보면 다
른 사람을 보냈어도 풀을 찾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매일 다른
사람을 보내도 풀을 찾지 못하니까 직접 찾아 나선 것입니다. 풀이 없
으니까 곡식은 또 얼마나 기근이 들었겠습니까? 곡식도 3년 동안 농사
를 하지 못하여 막심한 흉년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합 왕이 궁내 대신을 데리고 친히 나가보게 되었습니다. 다
른 사람을 보내서 못 찾을 때에는 언제나 책임자가 나가게 되어 있습
니다. 책임자가 나갈 때에는 다른 사람을 아무리 보내도 안 되니까 나
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아무리 보내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되어서
이제는 왕이 출동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기근이
얼마나 막심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큰 환난 가운데 빠졌습니다. 그런
때에 여호와의 명령이 임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시기
를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고 하였습
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깨달을 만큼 막심하게 징계하셨
다가 그다음에 하나님의 종을 보내셨습니다. 엘리야에게 이제는 네가
아합을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징계를 받아야만 이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
다. 3년 동안이나 흉년이 들었으니까 얼마나 많은 징계를 받았겠습니까? 3년 6개월 동안 백성들 중에 굶어 죽은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나귀나 소 등의 짐승도 많이 죽었을 것입니다. 왕궁에 있는 말까지 먹
을 것이 없이 되었으니, 다른 곳에 있는 일반 백성들이 키우는 동물들
은 얼마나 굶어 죽었겠습니까? 그럴 때에는 왕도 징계가 너무 심하니
까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나님 앞에 벌을 받는구나’라고 생각해야 합
니다. 모든 백성들도 ‘전에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에는 안 그랬는데’
라고 생각하며 예전의 생활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예전에 여호와 하나
님을 섬기며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드리던 것을 떠올려야 합니다.
백성들도 예전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사장도 레위 사람들로 세우고,
절기는 성경대로 7월 15일에 지켰던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입니
다. 즉, ‘예전에 하나님을 성경대로 섬겼을 때에는 우리에게 이런 고난
이 없었는데, 이세벨이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의 우상을 섬기라고 한 때
부터 고난이 막심하게 왔구나. 아마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
것이 잘못되었나 보구나’라며 모든 백성들이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택하신 백성들을 보호하심
많은 경계가 올 때에 사람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도 찾아보게
됩니다. 처음에 믿던 것도 생각해보고, 성경말씀도 다시 한 번 상고해
보며, 여러 면으로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삼가 근신하는 태도를
많이 가지게 됩니다. 그럴 때, 이제는 백성들이 돌아올 만하고 깨달을
만한 때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셨습
니다. 이 백성들이 권면을 하면 돌아올 것 같은, 어느 정도의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아합 왕에게 보내신 것입니
다. 엘리야를 아합 왕에게 보내신 목적은 엘리야로 하여금 아합 왕을
만나 갈멜 산에 올라가서 거짓 선지자와 더불어 대결하게 하심입니다.
즉, 갈멜 산으로 올라올 많은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바댜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본문 3-4절에 “아합이
궁내 대신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크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일백 인
을 가져 오십 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오바댜는 궁내 대신인데, 예전에 하나님의 선지자 백 명을 오십 명씩
나누어 두 곳의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날라 먹여 살린 사람입니다.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다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 중 백 명을 숨겨 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리시는
일은 사람이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죽이라
는 명령이 왕으로부터 떨어졌는데, 그 왕의 궁내 대신이 백 명을 숨겨
살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입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 중에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다 죽이라는 바로
왕의 명령이 떨어졌을 때에 태어나 숨겨 키워지다가 강에 버려졌습니
다. 그런데 바로의 딸이 강에 목욕하러 갔다가, 버려진 모세를 발견하
여 궁에 데리고 가서 기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바로의 궁에
서 자랐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순종해야할 따름
입니다. 순종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께 달렸
습니다. 오바댜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살리실 자를 살리시는 것입니
다. 또 하나님께서 데려가실 자는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택하신 백성을 보호해주십니다. 여
러 가지 방법으로 지켜주시면서 당신의 구원운동을 계속 해나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하여 지켜주실 지는 모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잡아 죽이라는 아합 왕의 명령이 있을 때에, 하
나님께서 왕의 궁내 대신을 통해서 그들을 살리실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다 죽을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살리실 자는 누구를 통해서라도 살게 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실패가 없습니다. 반드시 뜻대로 해나가시는 것입니다. 

2. 엘리야가 오바댜를 만남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본문 7-15절에 “오바댜가 길에 있을 때에 엘리야가 저를 만난지라
저가 알아보고 엎드려 말하되 내 주 엘리야여 당신이시니이까 대답하
되 그러하다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가로
되 내가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당신이 당신의 종을 아합의 손에 붙여
죽이게 하려 하시나이까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
하노니 내 주께서 사람을 보내어 당신을 찾지 아니한 족속이나 나라가
없었는데 저희가 말하기를 엘리야가 없다 하면 그 나라와 그 족속으로
당신을 보지 못하였다는 맹세를 하게 하였거늘 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
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나 내가 당신을
떠나간 후에 여호와의 신이 나의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가시리니 내가 가서 아합에게 고하였다가 저가 당신을 찾지 못하면 내
가 죽임을 당하리이다 당신의 종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
에 일백 인을 오십 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께 들
리지 아니하였나이까 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
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니 그리하면 저가 나를 죽이리이다 엘리야
가 이르되 내가 모시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가 오늘날 아합에게 보이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아합은 궁내 대신,
오바댜를 데리고 물의 근원과 풀을 구하기 위해 나가 있습니다. 왕과 궁내 대신이 갈라져서 왔다 갔다 하면서 풀이 있는 곳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길에서 오바댜를 만났습니다. 오바댜는 엘리야를 만날 때에 길에 엎드려 “내 주 엘리야여 당신이니이까”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야는 그렇다고 대답을 하며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하라고 했습니다. 이에 궁내 대신 오바댜가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당신의 종을 아합의 손에 붙여 죽게 하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여지껏 아합 왕이 엘리야를 찾았습니다. 어느 곳을 찾다가 못 찾으면 그 나라와 족속으로 엘리야가 없다고 맹세까지 하게 했습니다. 

엘리야가 오바댜의 의심과 두려움을 없애줌
그런데 지금 오바댜의 말은 자신이 아합 왕에게 엘리야가 여기에 있
다고 하면, 그때 하나님의 신이 엘리야, 당신을 옮겨갈 것이라는 것입
니다. 즉, 아합 왕이 여기로 오면 하나님의 신이 당신을 옮겨 갔기 때
문에 당신은 여기 없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합 왕이 자
기를 거짓말했다고, 또는 보고도 잡지 않았다고 죽이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마 아합이 아랫사람들에게 엘리야를 보면 바로 잡아 죽이
겠다는 맹세를 하게 한 것 같습니다. 각 족속이 엘리야가 자신들의 머
무는 곳에 없으면 “여기에 엘리야가 없습니다”라고 하고, “보면 잡아
죽이겠습니다”라고 하기로 맹세한 것 같습니다. 전부 다 잡아 죽이겠다
는 맹세를 시켜놓은 것입니다. 잡아두지 않으면 그 사람이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오바댜가 “내가 무슨 죄를 범했기에 당신이 나를
죽이려고 합니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말이 옳습니다. 오바댜가
지금 죽을까봐 겁이 난 것입니다. 꼼짝없이 죽게 됩니다. 오바댜 생각
에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데려가실 것이 확실합니다. ‘하나님께서 엘
리야를 죽게 내버려두실 리가 없다. 데려가실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입
니다. 그러니까 엘리야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본문 15절에 “엘리야가 이르되 내가 모시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
니 내가 오늘날 아합에게 보이리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말을 잘했
습니다. 오바댜가 지금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죽을까봐 두려워하고 있
습니다. 그러므로 그 의심을 깨뜨려줘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의심을
하고 두려워할 때에는 그 의심을 깨뜨려줘야 합니다. 그것을 깨뜨려주
지 않으면 일을 못합니다. 그러면 오바댜의 의심에 대한 엘리야의 답
은 무엇입니까? ‘내가 오늘날 아합에게 보이리라’는 것이 그 답입니다.
확실한 답입니다. 엘리야가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오늘날 아합에게 보이리라”고 말했습니다. 오바댜가 이제 안심이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하는구나. 내가 지금 아합에게
전해도 엘리야가 다른 데 안 가겠구나. 하나님께서 다른 데로 안 데려
가시겠구나’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바다갸 마음을 푹 놓고 가서 아합에게 고한 것입니다. 

선지자는 다른 사람을 안심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밝히 전해주어야 함
다시 말하지만, 다른 사람이 어떤 의문이 생겨서 물어볼 때에 그에
대한 답변부터 먼저 해야 합니다. 답변 이후에 다른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답변을 하지 않고 다른 말을 계속하면
안 됩니다. 대화하는 것이 다 그렇습니다. 강단에서 강도를 할 때에도
계속 설교해나가다가 어떤 문제가 하나 생길 수 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고 다른 말을 다 하고 마지막에 답변을 하려고 하
면 사람들이 그 문제를 생각하느라 설교를 잘 듣지 않습니다. 문제 해
결을 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계속하다가 마지막에 말하려고 하면 사
람들이 중간에 하는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 것입니다. 왜 안 듣는가하
면 ‘그것이 무엇일까?’하며 계속 생각하느라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의문
에 대한 답변부터 해놓고 그다음에 다른 말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강도법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 병자가 죄 사함 받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리새인
이 그것을 참람하다고 생각할 때, “네가 상을 들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쉽겠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말이 쉽겠느냐?”라고 예수님
께서 질문하셨습니다. 그런데 그와 관련하여 강도자가 답변을 하지 않
고 다른 이야기만 계속하면, 성도들은 그 문제를 생각하느라 다른 이
야기를 듣지 못하게 됩니다. ‘걸어가라는 것이 쉽겠는가? 죄 사함 받는
것이 쉽겠는가?’하면서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강도자는 설교가
끝날 때까지도 답변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문제는 계속 남아 있게 됩니다. 

어렸을 때에 김 장로님이 본 교회에 있었는데, 어느 날 강도를 하셨
습니다. 강도를 하는 중에 의문 나는 한 문제를 이야기한 다음,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하시고는 강도가 끝날 때 까지 답변을 해주지 않았습니
다. 오늘까지도 말을 안 합니다. 그렇게 질문만 던져놓고 답변을 안 해
주니 상당히 큰 걱정거리를 만들어준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
다. “네가 상을 들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쉽겠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
느니라 하는 것이 쉽겠느냐?”라는 질문이 나왔을 때에 걸어가라고 하
는 말이 더 어렵습니다. 왜 어려울까요? 죄 사함 받은 증거로 걸어가
라고 한 것이기 때문에 더 어렵습니다. 이렇게 답변을 해주고 다른 이
야기를 해야 잘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서도 오바댜가 ‘내가 아합
왕에게 간 다음에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데려가시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내가 죽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며 걱정이 가득하고 죽을까봐
겁이 나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대한 답변을 먼저 해줘야
합니다. 엘리야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아
합의 눈에 보이리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다 해결이 되
었습니다. 마음을 푹 놓고 오바댜가 아합에게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지자는 다른 사람을 안심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밝히 전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부름을 밝게 하도록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오바댜가 아합 왕에게 가는 것도 하나님의 심부름인 것입니다. 

3. 엘리야가 아합을 만나 갈멜 산으로 선지자들을 모이게 함
성경말씀을 어기거나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
본문 16-18절에 “오바댜가 가서 아합을 만나 고하매 아합이 엘리야
를 만나려 하여 가다가 엘리야를 볼 때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
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오바댜가 아
합 왕에게 ‘엘리야가 저기에 있는데 왕을 만나기 원한다’라고 전하러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그를 만
났습니다. 아합도 걸어오고 엘리야도 걸어왔기 때문에 그 중간에서 만
났습니다. 그들이 볼 때에 아합이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가 네냐?”고 했습니다. 첫 인사가 이것입니다. 인사라도 하고 말을
하면 좋은데, 첫 마디가 이것입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대답하였습니다.
본문 18절에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정통으로 한 마디를 했습니다. 엘
리야가 답변을 잘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리고 당
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합 왕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와야
합니다. 덮어놓고 “너 때문에 이스라엘이 괴롭게 되었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 누구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는가에 대한 확실한 답변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그 답변을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누구 때문에 징계가 내려왔습니까? 누구 때문에 이스라엘이 괴롭게 되었습니까? 확실한 답변을 얻어야 하는데, 어디서 얻어야 합니까? 어디서 그 답변을 찾아야 합니까? 이스라엘이 왜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자연적으로 당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괴로움을 당하고 벌을 받는 것입니까? 답은 성경으로 풀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새 우리도 괴로움과 환난이 들어올
때에 이 괴로움과 환난을 우연히 당한 것인지, 내가 잘못해서 당하는
것인지에 대한 답변을 얻어야 합니다. 또 누구 때문에 온 것인지에 대
한 답변도 얻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확실한 답변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문제가 해결이 돼야 하는데, 어디에 가서 해
결을 봐야 할지가 또 문제입니다. 어디서 해결을 봐야 하겠습니까? 본
문에 나와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라고 하였습니다.
성경말씀을 떠났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괴로워졌다는 것입니다. 

즉, 성경말씀을 떠난 다음에는 하나님께로부터 고통이 오고 반드시
징계가 옵니다. 환난이 옵니다. 성경말씀이 표준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서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고난과 환난을 당하는가 하는
질문이 생기면 성경을 상고해봐야 합니다. ‘성경을 어겼는가? 어기지
않았는가? 성경대로 바로 되었는가? 안 되었는가?’를 찾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어긋난 것을 찾아야 합니다. ‘성경을 어겼기 때문에
환난과 하나님의 징계가 오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성경말씀에서 질문
의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또 아합 왕이 이스라엘로 괴롭게 한 증거로는 그가 바알 신을 좇았
던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환난이 오는 것은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엘
리야가 성경말씀을 어긴 것과 우상을 숭배한, 이 두 가지로 말했습니
다. 이스라엘이 성경말씀을 어기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우상을 섬기면반드시 하나님의 환난과 고통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3년 6개월 동안 기근이 들어 이스라엘이 큰 환난과 도탄 가운데 빠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한 어려움 대한 답을 엘리야 때문이라고 하
면 안 됩니다. 아합 왕은 엘리야 때문이라고 하지 말고 성경말씀을 근
거로 해서 답을 찾아봐야 합니다. 아합 왕 자신이 성경말씀을 어긴 것
이 분명이 있지 않습니까?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고, 제사장
을 아무 사람으로나 세우고, 7월 15일에서 8월 15일로 절기를 바꿔 지
켰습니다. 여로보암의 길을 떠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여로보암은 북
쪽 이스라엘 나라의 제1대 왕입니다. 그 이후 나답이 2대, 바아사가 3
대, 엘라가 4대, 시므리가 5대, 오므리가 6대, 아합이 7대 왕입니다. 아
합이 북쪽 이스라엘 나라의 7대 왕인 것입니다. 그런데 북쪽 나라는
제1대 왕부터 벌써 금송아지를 섬겼습니다. 또 7월 15일 절기를 8월 15
일로 고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이들이 하나님을 떠
나 우상을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만들
어 그것들을 섬깁니다. 그러니 이렇게 우상을 섬기고 나아갈 때에 어
떻게 하나님께서 징계를 안 하시겠습니까? 온 나라가 다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 두 가지 면을 두고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어긴 것이 없는가, 또 우상을 섬기지는 않았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상은 하나님보다 더 크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배
보다 더 지배 받는 것,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하나
님보다 단체의 지배를 더 받으면 단체가 우상, 사람의 지배를 더 받으
면 사람이 우상, 국가의 지배를 더 받으면 국가가 우상, 직장의 지배를
더 받으면 직장이 우상입니다.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가? 사람의 지배
를 받는가? 무엇이 더 큰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가? 사람
의 말을 따라가는가? 이러한 것들을 두고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람의
말을 따라가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괴로움과 환난, 고통이 누구 때문에 왔는지 그 원인을 찾으려면 이 두 가지 면에서 찾아야 합니다. 성경말씀에 바로 되었는가, 안 되었는가? 또는 우상이 있는가, 없는가? 말씀만 따라가는가, 다른 것도 따라가는가?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들을 찾아야 합니다.

선지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멜 산에 모임
본문 19절에 “그런즉 보내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인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바알
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 모두 팔백오십 명
을 내일 갈멜 산으로 다 모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 자신도
그곳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인지, 바알
과 아세라 신이 참 신인지를 내일 갈멜 산에서 시험해보자고 했습니다.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인데, 어느 신이 불로 응답하시는지 한 번
확인해보자고 말했습니다. 이에 아합이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리
고는 그가 그 다음날 선지자 팔백오십 명을 데리고 갈멜 산으로 올라
갔습니다. 백성들도 이 말을 듣고 올라가보기로 했습니다. 어떤 신이
참 신인지 확인하기 위하여 백성들이 전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것
을 보면 백성들이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을 섬긴지 여러 해가 지났는데,
아직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옳은지, 바알 신을 섬기는 것이 옳은지
확실히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중간에서 머뭇머뭇하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4.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임
불 응답으로 참 신과 거짓 신을 분별하라
본문 21절에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
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바알 신을 섬기는
것이 옳은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옳은지 모르고 중간에서 머뭇머뭇
하고 있었습니다. 또 아합 왕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합 왕도 원래는 하
나님을 섬기던 사람입니다. 벧엘에 가서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는
하지만, 그도 하나님을 섬기기는 섬겼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긴
섬겼는데, 이세벨이 시돈 나라에서 우상을 가지고 들어오는 바람에 전
국적으로 우상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아합 왕도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인지, 아세라 신이 참신인지 몰라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것이라도 자꾸 주장을 하면 의아한 생각이 들게 되어
머뭇머뭇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인가? 저것인가?’하는 마음이 들어옵
니다. 명백하게 확실히 깨달아 나갈 때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깨닫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자꾸 잘못된 것을 주장하면, ‘이것인가?
저것인가?’하며 의아한 생각이 들어옵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온 백성이
그런 상태에 빠지고, 아합 왕도 그런 상태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신비
주의자가 자꾸 신비주의를 강요하면 사람들이 머뭇머뭇해집니다. ‘그렇
게 해야 되나? 안 해야 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비주의로 넘어가
는 것도 처음에는 안 넘어갑니다. “방언을 해야 한다. 열심을 갖고 해
야 한다. 박수를 쳐야한다”고 신비주의자들이 말할 때, 대부분이 처음
에는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자꾸 주장하면 마지막에 다 넘어가고 맙니다. 이것도 옳은 것 같고, 저것도 옳은 것 같고, ‘그래, 그럼 이렇게 한 번 해보자’며 다 넘어가는 것입니다. 얼떨떨해지는 것입니다. 또 틀렸다고 주장하면, ‘틀렸는가?’하다가, 또 옳다고 하면 ‘옳은가?’하며 갈팡질팡합니다. 분별을 하지 못합니다. 분별을 잘 못하기가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신비주의와 잘못된 모든 것들에 다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판단을 해야 합니까? 이것인가 저것인가 하며 분별
을 못하는 상태에 빠졌는데, 무엇으로 옳은 것과 참 신을 판결해야 하
겠습니까? 무엇으로 해야 합니까? 이제 갈멜 산으로 올라가자는 것입
니다. 그래서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인데, 어떤 신이 불로 응답하는
지 확인해보자는 것입니다. 

본문 20-24절에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보내어 선
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
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
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
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
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인이로다 그런즉 두 송아지를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저희는 한 송아
지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놓지 말며 나도 한 송아
지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놓지 말고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제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 사백오십 명, 아세라 선지자 사백 명, 그리고
많은 백성들이 산에 올라갔습니다. 지금 백성들은 머뭇머뭇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
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 오십 인이로다 그런즉 두 송아지를 우리에
게 가져오게 하고 저희는 한 송아지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놓지 말며 나도 한 송아지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놓지 말고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에 백성이 다 대답하여 ‘그 말이 옳도다’라고 했습니다. 아까는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대답을 했습니다. 옳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이다’라는 말을 한 번 생각해봅시
다. 거짓 선지자들은 이적을 행할 수 없습니까? 불로 응답하는 것도
이적입니다. 마태복음 24장 24절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
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
혹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이
적을 많이 행한다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9절에도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라고 하
였습니다. 악한 자가 표적과 능력과 거짓 기사로 일한다는 것입니다.
즉, 악한 자들도 표적과 이적과 능력을 행합니다. 그런 일을 한다고 했
습니다. 또 요한계시록 13장 13절에는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
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가 큰 이적을 행하여 하늘로부터 땅에 불을 내려오게 할 수도 있습니다.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이라는 말의 뜻
1) 성경대로 맞아야 바로 된 것임 그러면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이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엘리야가 산에 올라가서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이라고 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마귀도 하늘에서 불을 내려
오게 할 수 있습니다. 표적과 능력, 기사를 행합니다. 여기서 갈멜 산
에서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이라는 것은 사탄 마귀가 행한 이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불로 응답하는 거짓 선지자들은 오늘날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이 참 신의 증거가 아닙니다. 문제는 성경에 맞는 것인가, 안 맞는 것인가의 여부입니다. 불이 내려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할 때에 성경에 맞는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성경에 안 맞으면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대로 맞아야 바로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박태선 씨는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성경의 어느 곳에 박
태선 씨가 감람나무라고 했습니까? 자기를 통해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
이 잘못입니다. 박태선 씨는 자기가 감람나무이기 때문에 자기를 통해
서만 구원을 받고 자기를 통하지 않으면 구원을 못 받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입니다. 거짓 그리스도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고 자기를 통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
면, 그들 모두가 적그리스도, 거짓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잘못된 것입니
다. 자기가 그리스도의 자리에 올라간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2) 불은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를 상징함 또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불은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불이라는 것은 예레미야서에 나와 있습
니다. 예레미야 5장 14절에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들이 이 말을 하였은즉 볼찌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19장 18절에는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
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불은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불같은 율법이 나온다는 말
씀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이라는 것은 하나
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참 신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불로 상징되었고, 하나님의 임재가 불로 상징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함께 계셔서 그 말씀대로 역사하시어 말씀대로 이루어나가는 것이 불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 신의 증거입니다. 갑자기 뒤집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일 동안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역사하시고, 말씀대로 행하셔서,
그 말씀대로 모든 구원운동을 이루어나가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시는 증거입니다. 오랜 시일을 두고 보
면 다 알 수 있습니다. ‘성경말씀대로 이루어 나가는 것인가, 아닌가?
성경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것인가, 아닌가?’, 말씀대로 믿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이루어주십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하지 않은 것
은 가다가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이적과 기사를 아무리
많이 나타내도 말씀대로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심판
하시고, 멸망시키십니다. 다 드러내어 마지막에는 마귀에게 내어주고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오랜 시일을 두고 보면 알게 됩니다. 말씀이 아닌 것
은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멸망시키십니다.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말
씀대로 나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거기에 임재하셔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역사가 이
루어져야 합니다. 또 성도는 말씀대로 순종하고, 영적으로 하나님의 임
재를 영접하며, 모든 것을 말씀대로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한 결과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볼
때에, ‘당신의 섬기는 하나님이 참 신이시다. 당신이 말씀대로 걸어 나
가고 말씀대로 하나님을 의뢰하고 영적으로 하나님을 영접하며 나가는
결과에 하나님께서 임해주시는 것을 보니, 과연 하나님이 당신의 하나
님이다’라는 반응이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나님이 참
신이신 것을 알게 해주십니다. 

아브라함은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말씀을 따라갈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행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이루어주신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브라함이 섬기는 하나님이 참 신이신 증거입니다. 그것이 참 신입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순종하고, 영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영접해야 합니다. 그 말씀대로 절대 복종해나가는 신앙을 가지고 오랜 세월을 살아 나가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그 임한 결과가 환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것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참 신이시라는 증거입니다. 그 증거가 나타난 것입니다. 모든
백성들도 보고 알게 됩니다. ‘당신의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다. 당신이
섬기는 예수가 진짜 예수이다. 당신이 진짜 바로 믿는 것이고 진짜 하
나님을 섬기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모두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까지도 마지막에는 칭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 알게 되
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결국 모든 세상이 다 옳다고 인
정하게 됩니다. 백성들이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중간에서 알지 못해
머뭇머뭇하는 사람들도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에는 옳다고 인
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볼 때에도 옳다고 다 인
정하도록 되어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신앙의 길을 걸어 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