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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8일 토요일

욥기 16:1-22 욥이 친구들을 책망하며 자신의 고난을 토로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욥이 친구들을 책망하며 자신의 고난을 토로함
욥기 16:1-22

1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2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번뇌케 하는 안위자로구나 3허망한 말이 어찌 끝이 있으랴 네가 무엇에 격동되어 이같이 대답하는고 4나도 너희처럼 말할 수 있나니 가령 너희 마음이 내 마음 자리에 있다 하자 나도 말을 지어 너희를 치며 너희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 수 있느니라 5그래도 입으로 너희를 강하게 하며 입술의 위로로 너희의 근심을 풀었으리라 6내가 말하여도 내 근심이 풀리지 아니하나니 잠잠한들 어찌 평안하랴 7이제 주께서 나를 곤고케 하시고 나의 무리를 패괴케 하셨나이다 8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나의 파리한 모양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나의 죄를 증거하나이다 9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군박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대적이 되어 뾰족한 눈으로 나를 보시고 10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나를 천대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 11하나님이 나를 경건치 않은 자에게 붙이시며 악인의 손에 던지셨구나 12내가 평안하더니 그가 나를 꺾으시며 내 목을 잡아 던져 나를 부숴뜨리시며 나를 세워 과녁을 삼으시고 13그 살로 나를 사방으로 쏘아 인정없이 내 허리를 뚫고 내 쓸개로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 14그가 나를 꺾고 다시 꺾고 용사같이 내게 달려드시니 15내가 굵은 베를 꿰어 매어 내 피부에 덮고 내 뿔을 티끌에 더럽혔구나 16내 얼굴은 울음으로 붉었고 내 눈꺼풀에는 죽음의 그늘이 있구나 17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 18땅아 내 피를 가리우지 말라 나의 부르짖음으로 쉴 곳이 없게 되기를 원하노라 19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보인이 높은 데 계시니라 20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나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고 21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변백하시기를 원하노니 22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 

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

죄 없는 사람을 죄가 있다고 정죄하는 것은 허망한 일임

본문 1-2절에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번뇌케 하는 안위자로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의 앞 장에는 엘리바스가 욥에게 말한 내용이 나옵니다. 엘리바스가 욥에게 말을 할 때에 보편적인 진리를 들어서 공격했습니다. 즉,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벌을 주신다는 것, 모든 고난은 죄 값으로 당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네가 고난당하는 것은 죄 값으로 말미암은 것이므로 회개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욥은 “너희는 다 번뇌케 하는 안위자로구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친구
들은 욥을 위안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위로가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욥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욥은 특수한 사정으로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엘리바스를 포함한 욥의 친구들은 보편적인 진리를 가지고 욥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욥이 친구들을 가리켜 번뇌케 하는 안위자라고 했습니다.

본문 3절에 “허망한 말이 어찌 끝이 있으랴 네가 무엇에 격동되어 이같이 대답하는고”라고 하였습니다. 엘리바스의 말이 욥에게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허망한 말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죄 없는 사람을 죄가 있다고 정죄하는 것은 허망한 일입니다. ‘죄 값으로 고난당한다’는 것은 진리이지만, 죄가 없는 사람에게 죄가 있다고 하는 것은 허망한 일입니다. 

본문 4절에 “나도 너희처럼 말할 수 있나니 가령 너희 마음이 내 마음 자리에 있다 하자 나도 말을 지어 너희를 치며 너희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 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친구들에게 피차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고 하면, 나도 너희들처럼 공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머리를 흔들 수 있다’는 것은 고난당하는 사람을 무시하고 비난하며 공격한다는 뜻입니다. 

욥이 자신의 생각을 밝힘

본문 5절에 “그래도 입으로 너희를 강하게 하며 입술의 위로로 너희의 근심을 풀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중요한 말입니다. 보편적인 진리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책망하는 것은 좋은 방책이 아니며, 그 사람을 위로해주고 그 사람을 강하게 해주며 근심을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욥은 그런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죄 때문에 고난을 받는다고 하며 도리어 고난을 더하고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 받는 사람을 대할 때 입으로 강하게 해주며 입술의 위로로 그 근심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풀었으리라’가 중요한 말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로해주고 그 근심을 풀어주며 약한 사람을 강하게 해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욥은 그런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에게 심방을 가서 죄 값으로 징계를 받는다고 책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옳은 말이긴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병자(病者)에게 “징계를 받고 있다. 회개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때에 많은 경우 병 난 사람이 아주 낙심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왔다고 하면 ‘또 와서 벌 받는다고 하겠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 일이 더러 있었습니다. 죄를 회개하라는 것은 좋은 말이지만 죄를 회개하라는 말만 하지 말고, 그 사람을 강하게 하고 위로해주며 근심을 풀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욥은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그런 일은 못하고 계속 욥을 책망만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책망 가운데에서 그 사람을 위로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싸매주고 돌봐주는 것이 중요하고,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주고 강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책망만 하지 않으십니다. 아프게만 하지 아니하시고 싸매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욥기 5장 17-19절에 “볼찌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찌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도 싸매주시는 하나님이시고, 상하게 하시다가도 그 손으로 고쳐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을 위로해주고 싸매주며 일으켜 세워주고 강하게 해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물론 죄를 짓고도 죄인지 모르면, 그 죄를 알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둘을 다 해나가야 되겠습니다. 한 쪽만 하면 안 됩니다. 책망은 하지 아니하고 병이 치료되지도 않았는데 거기에다 그저 “괜찮다, 괜찮다”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곪은 것은 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째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그 다음에는 싸매주고 치료해주고 낫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두 가지를 모두 병행해야만 하나님께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은 한 가지만 합니다. 싸매주는 일을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위로해주는 일, 강하게 해주는 일, 근심을 풀어주는 일은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 욥은 모든 고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 줄을 믿음

자신이 처한 상황과 고난을 죄의 증거로 삼음

본문 6절에 “내가 말하여도 내 근심이 풀리지 아니하나니 잠잠한들 어찌 평안하랴”라고 하였는데, 욥은 자기가 환난 받는 것에 대해 해결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은 죄 때문에 환난을 받는다고 하지만, 욥 자신은 생각나는 죄가 없는 것입니다. 잠잠해도 근심이 풀리지않고 해결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본문 7절에 “이제 주께서 나를 곤고케 하시고 나의 무리를 패괴케 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무리’는 욥의 가족을 가리킵니다. 주께서 나를 곤고케 하셨는데, 자기의 가족을 패괴(敗壞)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욥의 가족 중, 아들 일곱과 딸 셋이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욥의 재산은 다 없어졌으며, 욥의 부인은 그에게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욥의 가족이 전부 패괴했다는 것입니다. 십남매가 하루에 다 죽고 아내도 지금 자신의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산산조각이 나버렸다는 것입니다. 다 패괴했다는 것입니다. 곤고케 되었습니다.

본문 8절에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나의 파리한 모양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나의 죄를 증거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다 시들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욥이 병이 들고 독창이 나서 파리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죄를 증거하나이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죄를 꾸짖으시는 것 같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즉, 그 파리한 모양, 가정이 다 패괴케 되고 몸은 온통 망가져 수척한 것을 보면 주님께서 자신을 꾸짖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죄를 꾸짖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말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다 증거가 되는데, 자신이 무슨 말을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군박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대적이 되어 뾰족한 눈으로 나를 보시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 대해 이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진노하시고 사자가 먹을 것을 찢는 것처럼 자신을 찢으셨다는 것입니다. 군박(窘迫)하셨다는 것입니다. 몰아치셨다는 것입니다. 또 ‘뾰족한 눈으로 본다’는 것은 아주 좋지 않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욥을 향해 대적이 되신 것처럼 군박하시고 몰아치시며 쫓아 잡으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좋지 않은 눈으로 욥을 보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나를 천대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도 몰아치시고 다른 무리들도 몰아친다는 것입니다. 무리가 욥을 향해서 비방하는 입을 벌리며 천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뺨을 친다고 하였습니다. 또 함께 모여 욥을 대적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욥은 지금 하나님 앞에도 몰리고 사람들 앞에도 몰렸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하나님이 나를 경건치 않은 자에게 붙이시며 악인의 손에 던지셨구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욥을 경건치 않은 사람의 손에 붙이셨고 악인의 손에 던지셨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악한 사람들이 욥에게 와서 임의대로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이와도 하나님께서는 보호해주지 않으시고 징벌만 내리고 계십니다. 뺨을 쳐도 가만히 놔두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한 사람들은 입을 벌리며 계속 훼방을 하고, 모여와서 계속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욥이 이런 지경에 빠졌습니다. 

본문 12-13절에 “내가 평안하더니 그가 나를 꺾으시며 내 목을 잡아 던져 나를 부숴뜨리시며 나를 세워 과녁을 삼으시고 그 살로 나를 사방으로 쏘아 인정없이 내 허리를 뚫고 내 쓸개로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욥이 이렇게 큰 환난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평안했는데, 하나님께서 이제 자신을 아예 꺾으셨다는 것입니다. 나무를 꺾는 것처럼 욥의 세력을 꺾어버리시고 목을 잡아 던지시며 몸은 부서뜨리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세워 과녁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활을 쏘는 목표가 과녁인데, 자기를 목표를 삼아놓고 사방으로 인정 없이 쏘아서 화살이 욥의 허리를 뚫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방에서 쏘아대는 것처럼 하여,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습니다. 다 꺾어버림을 당했습니다. ‘내 쓸개로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라는 것은 시적 표현인데, 욥이 지금 그런 상태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쓸개가 땅에 흘러나온 것처럼, 마음이 다 쏟아져서 이제는 가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그가 나를 꺾고 다시 꺾고 용사같이 내게 달려드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한 번 꺾고 가만 놓아두시는 것이 아니라 재차 꺾으신다는 것입니다. 반복해서 꺾으십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입니다. 한번 꺾어버리시면 그 뒤에 가만히 놔두시는 것이 아니라, 또 오셔서 꺾으신다는 것입니다. 한 번 꺾으셔서 겨우 다시 일어서려고 하면, 또 오셔서 꺾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용사같이 달려드셔서 꺾어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내가 굵은 베를 꿰어 매어 내 피부에 덮고 내 뿔을 티끌에 더럽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굵은 베를 꿰어 매어’라는 것은 비천한 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데, 욥이 지금 그렇게 비천한 자리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부에 덮었다’는 것은 그렇게 비천한 자기의 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또 ‘내 뿔을 티끌에 더럽혔구나’라는 하였습니다. 뿔은 세력을 가리키는데, 즉 욥이 과거에 가졌던 권세가 버려지고 비천하게 더럽혀졌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모든 세력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욥은 자신이 당하는 모든 환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알고, 이렇게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환난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환난은 하나님께로부터 옴

우리도 모든 환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알아야 합니다. 우연히 왔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어떠한 환난이 와도 우연히 온 것이 아닙니다. 또 팔자가 사나워서 온 것도 아니고 누구 때문에 온 것도 아닙니다. ‘아무개 때문에 왔다’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환난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고난에 대하여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이라고 하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었지만, 가룟 유다가 주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시기해서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그 제사장들이 주는 잔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빌라도가 재판을 잘못해서 십자가가 왔지만, 빌라도가 주는 잔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입니다. 요한복음 18장 11절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르로가 말고의 귀를 자르니까 예수님께서 그 검을 집에 꽂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셔야 된다는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가룟 유다가 주는 잔이 아닙니다. 제사장들이 주는 잔도 아닙니다. 제사장들이 시기가 나서 예수님을 죽이지만, 그 제사장들이 주는 잔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입니다. 또 빌라도가 재판을 잘못해서 십자가를 지게 되셨지만, 빌라도가 주는 잔도 아닌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입니다. 사도신경에는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기도원에 나갔는데, 기도원 뒷산의 주인 노인이 와서 만나자는 것입니다. 뒷산의 세금 때문에 온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 저것 물어보았는데 교회 나간 지가 13년이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천당 가는 얘기를 좀 하니까 자기는 못 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잘 믿어야 가지, 어떻게 천당을 가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천국 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가는 것보다 힘들다고 했는데, 그거 가기 쉽겠소”라고 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사도신경만 믿으면 간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 그리고 우리 죄 때문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믿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으면 천당에 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이 13년 동안 한 주일도 빠지지 않고 교회에 잘 나갔다고 해서, 내가 요한복음5장 24절, 3장 16절 등 여러 성경말씀을 일러주고 사도신경도 한 번 읽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믿으면 이 다음에 천당 간다고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이 여전히 자신은 천당에 못 갈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 참 큰 문제입니다. 그 할아버지가 다닌 교회가 어떻게 가르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13년 동안 한 주일도 안 빠지고 나갔는데, 어떻게 가르쳤기에 천당에는 갈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을 합니까? 

요새 교회들이 참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지, 행함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믿으면 구원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 받는 것입니다. 자기의 공로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직도 잘못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아무리 말해도, 귀에 안 들어가나 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다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 지키는 것은 상급의 차이라고 하였는데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지키지 못하면 매, 징계를 받고, 하늘나라에 가서 상급이 없는 것이지, 믿기만 하면 구원은 받는다고 가르쳐줬습니다. 또 성경대로 잘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상급을 받는다고 했는데, 그 전에 성경을 어떻게 배웠는지 도무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했는데,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쉽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노인이 유다 나라에 가서 겨자씨 한 알을 심어봤답니다. 그리고는 겨자씨 설명만 하고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지난 주일날 겨자씨 믿음에 대해 설교했는데, 다음 주일 오후 1시에 극동방송에서 나오는 말씀을 좀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모든 고난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어가시며 우리에게 유익이 되게 하시려고 주시는 것임
아무튼 우리는 모든 고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 우리의 모든 환경도 아버지께서 주신 잔이고 아버지께서 주신 십자가와 가시인 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 누가 틀렸다’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가시요, 십자가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잔이요, 전부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다’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나가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참을 것은 참고, 이길 것은 이기고, 끊을 것은 끊으며 나가야겠습니다. 회개할 것은 회개해야겠습니다. 또 믿음으로 통과할 것은 믿음으로 통과하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고, 사랑할 것은 사랑하며, 죄는 끊어버리면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통해서 구원을 이루어 가시려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것입니다. 

욥에게도 유익이 되라고 여러 가지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욥에게 여러 가지 고난이 많이 왔는데, 다 하나님께서 욥으로 하여금 좀 더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좀 더 연단되어 정금같이 나오게 만드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지금 여러 가지 환난 가운데 연단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단을 다 받은 다음에는 정금같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자리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고난을 해결하는 방법

1) 하나님께 해결 받아야 함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셨으므로, 해결도 하나님께 받아야 합니다. 모든 해결을 하나님께 가서 받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가서 받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해결하겠다는 것은 자기가 우상이 된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닥칠 때 내가 해결해봐야겠다는 사람은 다 인본주의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만큼, 모든 해결은 하나님께 가서 해결 받아야 합니다. 

2) 기도의 장소로 들어가야 함

그러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기도의 장소로 들어가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므로 해결도 하나님께로부터가 아니겠습니까? 이제는 보따리 싸서 기도의 자리로 들어가야 합니다. 골방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매 주일 저녁에 기도원에 가는데, 기도하러 나가는 좌석이 모자란다고 해서 버스를 한 대 더 샀습니다. 그런데 지나간 주일은 버스에 자리가 많이 남았다고 합니다. 멍석을 펴놓고 깔아주면 재주를 안 부린다고 하는데,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고 버스를 한 대 사놓자 오히려 안 타는 것입니다. 청개구리가 반대로 나간다고, 자리가 부족하다고 해서 25인승 버스를 한 대 더 샀더니 이번에는 텅텅 비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은 하나님께 해결을 받아야지, 다른 방법을 쓰면 해결이 안 됩니다. 

용인에 둔전 교회라고 있는데, 그 교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김 집사님이라는 분이 교회 세우는 데 자기 밭을 바친다고 해서 몇 년 전에 가건물을 지어놨습니다. 교인은 한 2∼30명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김 집사가 자기 동생 교회로 가서 이제는 그것을 안 바친다는 것입니다. 그냥 안 바친다고 하고 동생 교회로 나가면 되겠는데, 구청에서는 그 건물이 밭에 지은 것이기 때문에 무허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거하라고 철거장이 내려왔답니다. 그리고 철거하지 않는 방법은 땅 임자가 그것을 대지로 변경시켜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철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 집사에게 찾아가서 그 밭을 대지로 변경해달라고 하니까 그렇게 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바친다고 했는데, 이제는 못 바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방을 다니면서 알아보는 모양입니다. 

제게도 왔었는데 내가 “이제는 하나님께 가서 매달려라.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셔야지 사람은 할 수 없다. 하나님께 가서 해결해라. 여기, 저기 찾아다니고 변호사를 찾아가면 무슨 수가 생기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매달려서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면 건져주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고, 괜히 돌아만 다니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가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든지 아예 보따리를 싸서 기도실로 가라는 것입니다. 가서 매달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계속해서 매달리면 희망이 있습니다. 반드시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고 사람의 생각대로 하려고 돌아가면 희망이 없습니다. 아무리 될 것 같아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가서 매달리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도와주시든지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도와주시면 됩니다. 안 될 것 같아도 됩니다. 죽을 것 같아도 삽니다. 실패할 것 같아도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데 왜 실패하겠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 줄 알고, 하나님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기도도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내 얼굴은 울음으로 붉었고 내 눈꺼풀에는 죽음의 그늘이 있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얼마나 많이 부르짖은 것입니까? ‘붉었고’라는 것은 너무 울어서 얼굴이 퉁퉁 붓고 눈은 충혈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눈꺼풀에는 죽음의 그늘이 있다’고 했는데, 다 죽을 지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얼굴은 부었고 눈도 죽음의 그늘이 온 것처럼 시원찮아졌다는 것입니다. 

3. 욥은 환난 중에도 온유하고 정결한 기도를 함

모든 일을 분김에, 인본주의로 행하지 말고 기도하며 성경대로 처리해야 함

본문 17절에 “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욥이 인본주의는 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죽을 지경에 빠졌어도 완력이나 폭력으로 하려는 것이 없고 하나님께 정결한 기도를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정결한 기도를 계속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자기 손으로 포학을 쓰면 안 됩니다. 완력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혈기로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분김에 하지 말아야 하는데, 분김에 무엇을 하면 실패합니다. 분김에 불을 놓는 사람, 분김에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실패합니다. 공중 전화기에서 전화를 하는데 뒤에서 빨리 좀 통화하라고 했다고 돌아서서 그 사람을 칼로 찔러 죽였답니다. 그것도 분김에 한 것입니다. 분김에 하지 마십시오. 어떤 여자는 남편이 바람을 폈다고 자기도 바람을 핀다고 합니다. 너무 화가 나서 자기도 바람을 피러 나간다는 것입니다. 분김에 그렇게 하니까 둘 다 망하게 생겼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분김에 하면 안 됩니다. 또 부부 간에 돈을 막 쓰고 돌아가면 안 됩니다. “네가 만 원 쓰면 나도 만 원 쓴다. 네가 백 만원이면 나도 백 만원, 네가 천 만원이면 나도 천 만원이다”하고 돈을 쓰며 돌아가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한 쪽이 잘못해도 분김에 맞대응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한 사람이 믿음으로 나가면, 얼마 가다가 마귀의 역사가 없어집니다. 이기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6-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분을 냈을 때에 마귀가 틈을 탑니다. 또 분김에 하는 모든 것은 마귀에게 져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분이 나도 인간의 생각대로 하지
말고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아무리 분이 나도 성경대로 바로 해야 마귀를 이기는 법입니다. 그저 인간의 생각대로 포악하게 하는 것은 마귀한테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한 편이 잘못하여 분이 난다고 해도, 같은 방식으로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성경적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해야 합니다. 성경에 뭐라고 말했는지 보고, 기도로 해결하며 성경대로 해결해야 합니다.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온유하고 정결한 기도, 즉 바른 기도와 바른 신앙, 바른 해결 방법으로만 해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4. 욥은 중보자가 하늘에 계심을 믿음

중보자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시고 공의대로 역사하심

본문 18절에 “땅아 내 피를 가리우지 말라 나의 부르짖음으로 쉴 곳이 없게 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고난이 다 드러나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쉴 곳이 없게 되기를 원한다’는 것은 세상에 는 안식처가 없다는 뜻입니다.

본문 19절에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보인이 높은 데 계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증인이시라는 것, 또 보인(保人)이시라는 것입니다. 중보자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중보를 해주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욥기 19장 25-26절에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하였습니다. 중보자가 살아계신다는 것입니다. 구속자가 살아계십니다.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셔서 하늘에서 다 해결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공정하게 살피시고 공의롭게 살피주십니다. 또 중보자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십니다. 중보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다 도와주시고 기도해주시며 변호해주시고 권고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 가운데서도 반드시 건져주실 것을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나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고”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조롱할 때에 같이 조롱하거나 혈육으로 대응하지 말고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21절에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변백 하시기를 원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중보자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변백해주시며, 옳은 것은 옳다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주십니다. 아무리 억울하게 당한다 할지라도 중보자 그리스도께서 죄는 죄대로 갚아주실 것이며, 의는 의대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중보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 또 사람과 사람, 즉 이웃 사이의 모든 것을 판단해주시고 변백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악은 악대로 드러내주시고 선은 선대로 드러내주실 줄을 믿어야 합니다.

본향(本鄕)인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그곳에 갈 준비를 잘해야 함

본문 22절에 “수 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수 년이 지나면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갑니다. 나그네 생활을 끝마치면 본향인 하나님 곁으로 가는 것입니다. 나그네 생활은 잠깐인데, 그 생활이 끝나면 본향되는 하늘나라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돌아가면 못 돌아옵니다. 

그래서 그곳에 갈 준비를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이제 수 년이 지나면 우리는 나그네 생활을 끝마치고 돌아오지 못할 본향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갈 준비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수 년이 지나면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을 알고 그것을 의식해야 합니다. 안 갈 사람 없이 다 가게 되어 있는데, 거기 갈 준비를 잘해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늘나라이므로 본향을 날마다 사모하면서 그리스도와 같이 살기를 원하며 ‘언제 갈까’하고 지내야 합니다. 사모하는 신앙을 가지고 늘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