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을 주시고 선한 싸움을 하게하심
디모데전서 1:12-20
디모데전서 1:12-20
12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17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이다 아멘 18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19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20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
1:12 내가 나를 능력 있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감사를 드리는 것은 주께서 나를 충성되이 여기셔서 내게 직분을 맡겨 주셨기 때문이다.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오히려 긍휼히 여김을 받은 것은 내가 믿지 않을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기 때문이다.
1:14 우리 주님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다.
1:15 이 말씀은 믿을만하며, 또한 모든 이가 받을 만한 것이니, 곧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죄인 가운데 내가 괴수이다.
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것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먼저 나에게 오래 참음을 보여 주셔서, 앞으로 주님을 믿어 영생을 얻을 자들의 본보기로 삼으시려는 것이었다.
1: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않고 보이지 않고,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 무궁토록 있기를 기원한다. 아멘.
1: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너에게 이것을 명령하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들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고,
1:19 믿음과 선한 양심을 가져라. 어떤 이들은 선한 양심을 버리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으니,
1:20 그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다. 내가 그들을 사탄에게 넘겨주었으니, 이는 그들이 징계를 받아 하나님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오히려 긍휼히 여김을 받은 것은 내가 믿지 않을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기 때문이다.
1:14 우리 주님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다.
1:15 이 말씀은 믿을만하며, 또한 모든 이가 받을 만한 것이니, 곧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죄인 가운데 내가 괴수이다.
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것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먼저 나에게 오래 참음을 보여 주셔서, 앞으로 주님을 믿어 영생을 얻을 자들의 본보기로 삼으시려는 것이었다.
1: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않고 보이지 않고,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 무궁토록 있기를 기원한다. 아멘.
1: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너에게 이것을 명령하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들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고,
1:19 믿음과 선한 양심을 가져라. 어떤 이들은 선한 양심을 버리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으니,
1:20 그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다. 내가 그들을 사탄에게 넘겨주었으니, 이는 그들이 징계를 받아 하나님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1. 죄인 구원의 일
충성되이 여김으로 맡긴 직분
충성되이 여김으로 맡긴 직분
본문 12절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라 하였고, 또 충성되이 여겨서 직분을 맡겼다고 하였는데, 바울이 직분 맡은 것은 하나님이 충성되이 여겨서 맡긴 것이라 했습니다. 무슨 자격이 있어서 맡은 것이 아니고, 자원해서 맡은 것도 아니고 충성되어서 맡긴 것도 아니고, 충성되지 못하지만 충성되이 여겨서 사명을 맡겼다고 하였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직분은 충성되이 여겨서 하나님께서 맡겼고, 맡긴 다음에는 능하게 해서 그 일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분을 맡기신 것은 무슨 자격이 있어서 맡긴 것이 아닙니다. 복음 전하는 직분, 교회 봉사 하는 직분,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직분 등을 다 맡겼는데, 자격이 있어서 맡긴 것이 아니고 충성되이 여겨서 직분을 맡긴 것입니다. 그리고 맡은 사람을 능하게 해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직분자에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하게, 잘할 만한 힘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능력도 주십니다. 하나님이 충성되이 여겨서 사명을 맡겨 줬는데 그것을 순종하고 충성하면 능하게 됩니다. 사명을 맡겨줬는데 순종하지 아니하고, 충성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요나와 같이 가만히 두시지 않습니다. ‘난 자격이 없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자격이 없지만 그래도 충성되이 여겨서 맡겼습니다. 또 그 맡긴 바 일을 믿음으로 순종하면 하나님이 능하게 해 주십니다. 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잘 되도록 해주십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주옵소서” 하고 순종하면 능하게 해주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사명을 감당할만한 모든 은사를 더불어 주십니다.
받은 달란트대로 장사하면 남기게 됨
다 맡았습니다. 맡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 맡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맡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두 달란트 맡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달란트 맡았습니다. 다 맡았습니다. 안 맡은 사람이 없습니다.
다섯 달란트 맡은 사람은 곧 바로 가서 다 투자해서 잘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고, 두 달란트 맡은 사람은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한 달란트 맡은 사람도 가서 잘 장사 했다면 한 달란트 더 남겼을 것입니다. 그러면 칭찬과 상급이 같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어떻게 했습니까? 땅에 파묻어 놓았습니다. 왜 파묻었습니까? 밑질까봐, 장사하다가 본전까지 손해보면 어쩌나 하고 염려했습니다. 이 다음에 결산할 때에 밑지면 안 되겠으니까, 하나님은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시는 분이시고 심지 않은데서 거두시는 하나님이시라 생각했기 때문에 묻어 두었습니다. 까닥하다가 하나님이 잘못했다고 책망할까봐 두려워하여 땅에 감추어 뒀다가 본전만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하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한 달란트 맡은 사람이 나가서 한 달란트를 다 투자해서 장사했다면 한 달란트 더 남기게 됩니다. 배나 더 남깁니다. 하나님은 다 남기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실 때에는 배나 남기도록 다 해놓고 맡기시는 것입니다. 또한 능력도 주시고 지혜도 주셔서 남기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서 뿌리면 열매가 맺히도록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새 봄이 되어서 씨를 심는데, 씨가 보기에는 얼마나 작고 형편없습니까? 겨자씨 한 알 같은 것은 좁쌀보다 더 작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심어 놓으면 거기서 싹이 나옵니다. 줄기가 얼마나 큽니까? 명륜교회 앞에다 작년에 심어 놓은 것을 봤는데 겨자씨가 한길이 넘게 자랐습니다. 그 씨는 좁쌀 보다 더 작은 것을 심어 놨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상당히 큽니다.
심어놓으면 자라납니다. 자라나면 열매를 맺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 놓았습니다. 우리 기도원에 나무 심어 놓은 것도 많이 자라났습니다. 전에 심은 것, 작년에 심은 것, 그전에 심은 것이 지금 한 20미터이상 자랐습니다. 그것을 뽑아다가 예배당 옆에 심어서 산에 있는 기도실이 보이지 않게 하려고 옮겨 놨습니다. 하여간 심으면 씨가 나고, 옮겨 심으면 자라나고 왕성해지고, 열매 맺는 나무는 열매가 많이 맺힙니다. 그러니까 전도하는 게 필요합니다. 전도하는 게 씨를 뿌리는 것인데 씨를 뿌린 다음에는 거둬들여야 됩니다. 교회로 인도하여 길러나가야 됩니다. 우리에게 맡긴 사명이 중요한 줄 알아야 됩니다. 신학생들에게도 사명 맡길 때에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주소서”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러시아 갈사람, 또 다른데 선교하러 갈사람, 다 나서라는 것입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나 또 남미 등에 선교하러 갈사람,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 주소서” 하면,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서 보내주시고, 가서 일하면 능하게 해서 그 일을 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자기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생활
전에 지은 죄를 늘 회개한 바울
본문 13절에,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暴行者)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행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전에 지은 죄를 회개하는 생활이 중요합니다. 요새 지은 것도 물론 회개해야 하지만, 전에 지은 죄에 대해서 “전에 하나님을 훼방했었습니다. 핍박했었습니다. 폭행했었습니다”하며, 사도바울은 전에 지은 죄를 늘 회개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한 죄를 일생동안 닭이 울 때마다 일어나 앉아서 회개 했다고 합니다. 또한 다윗이 전에 지은 죄를 얼마나 회개했다고 했습니까? 시편 6장 6절에,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밤마다 일어나서 회개의 눈물을 흘려서 침상이 뜨고, 그리고 요가 다 젖었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한번 지은 죄 때문에 이렇게 철저하게 매일 회개했습니다.
우리도 전에 지은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살펴보면 전에 지은 죄가 다 있습니다. 우상 섬긴 죄, 안식일 범한 죄, 남의 것을 도적질한 죄, 남의 열매 따먹은 죄가 다 있는데, 자기가 어렸을 적부터 지었던 죄를 늘 생각하며 회개해야 됩니다. 바울은 전에 지은 죄를 늘 회개 했습니다. 바울이 전에는 핍박자요, 폭행자요, 또 훼방자였었지만 긍휼을 입은 까닭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 알지 못하고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을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긍휼을 입혀주셨습니다.
자신의 눈 속의 들보를 보고 회개하는 생활
본문 14절에,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게 내려왔습니다. 철철 넘치도록 믿음과 사랑과 함께 믿음도 주시고, 사랑도 주시고 그렇게 넘치도록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부어 주셨습니다.
본문 15절에,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세상에 임하셨습니까?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온 것입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예수님이 임하셨습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괴수라는 것은 제일 많다는 것입니다. 죄인가운데 제일 괴수라는 말입니다. 전에만 죄인 중에 괴수가 아니고 현재도 괴수입니다. 전에 괴수였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현재에도 ‘나는 모든 죄인 가운데 괴수다’, 즉 제일 죄가 많다고 하였는데, 왜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는 것입니까? 자기 속에 있는 죄 때문입니다. 자기 속에 있는 죄는 자기밖에 모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있는 죄는 외부로 나온 것만 알고 자기는 속에 있는 것은 스스로 다 압니다. 외부로 나타난 죄보다 속에 있는 죄가 더 큽니다.
형제에 눈 속에 티는 보고 내 눈 속의 들보는 깨닫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속에 들보가 있습니다. 들보 같은 큰 그 죄가 다 있습니다. 형제의 눈 속에는 무슨 죄가 얼마나 있습니까? 티와 같은 조그마한 죄가 있습니다. 티는 조그마합니다. 자기 눈 속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들보가 있습니다. 형제의 눈 속에는 외부로 나타난 것만 보이니까 티와 같은 것입니다. 형제의 눈 속에 티만 보지 말고,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어야 합니다. 자기 눈 속에 들보가 있
는데, 형제 눈 속의 티를 보고 “네 눈에 티가 있다”하며 잘못되었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늘 보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자기 속에 있는 들보를 본 것 같습니다. “죄인 가운데 내가 괴수니라”고 하였는데,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늘 보고 회개하는 생활이 중요합니다.
3.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에 가게 됨
그리스도의 오래 참으심으로 본이 되심
본문 16절에,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참아주심입니다. 일절을 일체라고도 합니다. 일절, 일체 두 가지 다 맞습니다. 일체라는 말씀은 모든 것, 또는 전체라는 말인데 모든 전체에 대해서 잘 참으심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래 참으셨습니다. 오래 참아서 후에 주를 믿어 영생하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오래 참았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회개를 제대로 하고, 오래 참았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믿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에 주를 믿는 사람에게 본이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래 참아주셨다는 것입니다. 참지 않고 징계했으면 벌써 멸망했을 텐데, 하나님이 오래 참아주셔서 망하지 않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것을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영원한 만세의 왕 하나님과 그의 나라 소망
본문 17절에,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만세의 왕’이라 했습니다.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만세의 왕이십니다. 만왕의 왕, 영원한 왕이십니다.
하나님은 왕이신데 천지만물을 다 주장하시는 대주재 왕이십니다.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왕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라고 합니다. 만세의 왕,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홀로 하나이신 만세의 왕 되는 하나님께 무엇이 있습니까?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습니다. 만세(萬歲)의 왕입니다. 만세라는 것은 영원한 왕이라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에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고 했는데,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합니다. 나라도 영원하고 하나님의 권세도 영원하고, 영광도 영원하고 영원히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예수 믿는 사람은 거기에 가서, 즉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하나님과 같이 영원히 삽니다. 하나님의 권세 아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영원히 하나님과 같이 살게 됩니다. 천당 간 사람들은 지금 다 거기서 사는 것입니다. ‘금세일일단(今世一日短)이면 내세일일장(來世一日長)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하루가 짧아지면 내세에 가서 하루가 길어진다는 말입니다. 만세의 왕 되시는 하나님께 가서, 그 권세와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는 거기에 가서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것 보다 아버지 나라에서 아버지와 같이 사는 것이 더 큰 영광이고 더 큰 은혜입니다.
이 세상은 잠깐입니다. 이 세상은 훈련받는 장소, 연단 받는 장소, 준비하는 장소입니다. 이제 진짜 살 곳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잠깐 동안 있다가 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늘에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나라는 하늘에 있습니다. 이 세상은 잠깐 동안 있으면서 연단 받고 준비하고 만들어지는 곳입니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의
신부를 잘 만들어가는 곳입니다. 말하자면 미장원과 같습니다. 결혼식하기 전에 미장원에 가서 신부를 예쁘게 만들어서 데려오지 않습니까? 신부가 머리도 만들고 뭐 별거 다 꾸며서 예쁘게 단장해서 결혼식 하려고 신랑한테 가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한테 가는 것입니다.
세상은 잠깐 동안 있으면서 신부의 자격을 만들어 가지고 가는 곳입니다. 만세의 왕에게 가서 우리가 만세를 삽니다. 세세무궁토록 살게 됩니다.
4. 선한 싸움을 싸우라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선한 싸움을 싸우라
본문 18-19절에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란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이 있는데 그 예언을 잘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것입니다.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이란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르쳐 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언을 따라가면 하나님이 잘 지도해 준다”는 것입니다. 예언이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따라가면 ‘하나님이 잘 지도해 준다, 전에도 네가 말씀을 따라 갔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잘 지도해 주었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면 하나님이 더 좋은 길로, 또 잘되는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즉 창성하고 형통하는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가면 하나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말씀을 따라가야겠는가? “지도한 예언”이라고 하였는데, 자기가 마땅히 지켜야 할 말씀을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금 어떻게 하여야 할지 잘 모르면, 성경말씀을 보고 성경말씀대로 따라 가면 하나님이 제일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말씀을 안 따라가면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지 않습니다. 내버려 두십니다. 말씀을 따라가면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붙드시고,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오늘까지 디모데가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기 때문에 하나님이 잘 인도해 주셔서 디모데가 된 것입니다. 어떠한 시험이 와도 그 시험가운데서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어떻게 하여야 내가 말씀을 따라갈까?’ 하면서 말씀을 따라 가려고 애를 쓰면 하나님이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주일 지키기 힘든 시험이 왔을 때에 주일을 잘 지키면 하나님이 잘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인도하실 때에도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가니까 좋은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릿시냇가로 가라고 하실 때에 엘리야가 그릿시냇가로 가니까 하나님이 까마귀를 시켜서 떡과 고기를 엘리야에게 갖다 주었습니다(왕상 17:2-6). 또 사르밧 과부의 집에 가라고 할 때에 가니까 3년 6개월 동안 가루와 기름이 다하지 않게 해주셨습니다(왕상 17:11-16). 갈멜산으로 가라고 할 때에 갈멜산으로 가니까 불이 내려와서 거짓 선지자 850명을 숙청을 했습니다(왕상 18:38-40). 그러므로 말씀을 지키면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말씀을 지킬 때에 일시적 시험이 오지만 거기서 말씀을 지키면 더 좋은 길로, 또 거기서 시험을 이기고 말씀을 지키면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나도 이북에서 말씀을 지키니까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안 지키는 청년들은 인민군에 나가서 뒷산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말씀 지킨 사람들을 하나님이 대한민국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시험이 들어왔을 때에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요셉이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을 지키니까 형들이 애굽에 팔았습니다. 또 보디발의 아내가 동침하자고 할 때에 말씀을 지키려고 거절하다가 감옥에 갔습니다. 감옥에 가서 말씀을 지키니까 바로 왕 앞에 불리워 갔습니다. 바로 왕 앞에가서 말씀대로 꿈을 해석해 주니까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잘 되었습니까?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말씀을 지키니까 부모, 형제들이 애굽으로 와서 죽음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나 말씀을 안 지키면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지 않습니다. 가다가 구렁텅이에 빠지고, 이리에게 삼키우게 되고 비참하게 됩니다. 선한싸움을 싸우면서 말씀을 지키면 제일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좀더 나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말씀을 지키니까 총리가 되게 하셨고, 거기서 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말씀을 지키니까 도지사가 되었습니다. 하여간 어디를 가든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예언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언이란 자기가 지켜야 할 말씀입니다. 말씀을 따라 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어떻게 하여야 말씀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가령 이사를 간다고 하면 어디로 이사를 가야 믿음을 잘 지킬까? 하며, 믿음을 잘 지킬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 바른 진리를 배울까? 여기에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바른 진리 배울 수 있는 곳으로 이사 가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신학교를 가도 어느 신학교를 가야 바른 진리를 배울까? 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내 경험으로 보면, 평양에서 성화신학교를 다녔는데, 1년만 더 공부하면 졸업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기선 목사님이 평양에 성경 연구회를 만들어 신학생을 양성한다고 해서 성화신학교를 그만 두고 이기선 목사님이 가르치는 곳으로 갔는데, 하나님이 좋은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정규 신학교는 아니지만 성경연구회에서 배우다가 6.25사변이 났습니다. 그래서 부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어느 신학교를 다녀야겠는가?”하며 신학교를 알아보니까 고려신학교가 제일 바로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바로 가르치는 신학교로 가서 공부하고 졸업을 했습니다. 또 서울에 와서는 어디에 가서 배워야 하는가? 찾았는데, 아현교회의 김현봉 목사님이 잘 가르치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또 거기에 가서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바로 가르치는 교회, 또 믿음을 잘 지킬 수 있는 교회를 표준으로 해서 이사를 가야 합니다. 그것이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가면 하나님이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 창광교회도 얼마나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셨습니까? 말씀을 따라가니까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좋은데 찾아가려고 하지 말고, 말씀을 따라가면 제일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말씀을 따라가지 않고 세상을 따라가면 잘될 것 같아도 안 되고, 살 것 같아도 죽습니다. 말씀을 따라가면 제일 좋은 것으로, 한 계단 높이 올려 주십니다. 양심을 써서 말씀을 따라가면 하나님이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은 확실히 압니다. 그러나 말씀을 안 따라가면 구렁텅이에 빠집니다.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지 않으십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어거스틴이 방탕과 음란과 호색함과 쟁투과 시기하는 생활을 하다가 회개하고 말씀을 따라가니까 성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 이후에 제일 유명한 학자는 주후 4세기경의 어거스틴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따라가면 반드시 하나님이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 신학교에 온 학생들 가운데 말씀을 따라 온 신학생들이 많습니다. 말씀을 따라오니까 하나님이 좋은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 교단 교역자들 중에도 하나님이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신 교역자들이 많습니다. 이전에 고석남 목사님이 창광교회에 왔는데, 고석남 목사님도 통합측 동소문교회에 다니다가 일본에 공부하러 갔는데, 그곳에서 김성갑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김성갑 목사님이 한국에 가면 말씀을 바로 가르치는 계약신학교에 다니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신학교에 왔습니다.
그런데 동소문 교회 목사님이 학비 다 대 줄 테니 광나루 장로회신학교대학원에 가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지 않고 우리 신학교에 와서 졸업을 했는데,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데로 인도해 주셨습니까? 말씀을 따라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라고 하였는데,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계속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본문 19절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양심을 버린 것은 믿음이 파선된 것입니다. 믿음은 안 버리고 양심만 버렸는데, 깨지기는 믿음이 깨졌습니다. 파선이란 배가 깨진 것을 말합니다. 배를 타고 오다가 배가 깨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이 들어와서 침몰하여 사람들이 다 죽습니다. 착한 양심을 버린 사람은 이와 같이 깨진 배와 같습니다. 즉 믿음이 다 깨진 것입니다.
양심이란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해서 바른 길로 가는 것이 양심입니다. 착한 양심은 성경에 비판받은 양심을 말합니다. 즉 믿음을 쓰는 양심입니다. 또 중생한 영혼이 사용하는 양심이 착한 양심입니다. 그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도록 인도합니다. 양심은 의로운 것입니다. 양심은 옳은 데로 갑니다. 마태복음 5:37에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양심을 써서 옳은 것은 옳다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악으로 좇아 난다는 것입니다. 옳은 것은 옳다하여 따라가고, 아닌 것은 아니라하고 끊어 버려야 합니다. 양심이 이것은 “옳다”하면 그것을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한 양심을 쓰는 것이고 믿음입니다.
왜, 양심을 버렸는데, 믿음이 파선됩니까? 믿음은 그냥 가지고 있고 버리기는 양심만 버렸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다 파선이 되었습니다. 물이 들어옵니다. 가라앉습니다. 김현봉 목사님이 여기에 대해서 예를 들은 것이 있는데, 양심을 버린 신앙은 무엇과 같다고 하셨는가? 하면 벼 알에서 쌀알을 빼버린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벼 알 속에 있는 쌀을 빼어 버리면 무엇이 됩니까? “왕겨”밖에는 안 됩니다. 그것은 생명이 없습니다. 선한 양심을 버린 사람은 벼에서 쌀알을 빼내어버린 것처럼 생명체는 없어졌고, 껍데기만 남은 것입니다. 그것은 바람이 불면 날아갑니다. 선한 양심을 버린 사람은 믿음의 껍데기만 남은 것입니다. “믿습니다”라고 아무리 하여도 그것은 껍데기 믿음입니다. 즉 생명 없는 믿음입니다. 왜 양심을 버리면 믿음이 파선되는가? 믿음은 선한 것이고,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말씀은 “의”인데, 즉 “옳은 것”인데, 옳은 것을 버렸으므로 말씀을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껍데기만 남은 것입니다. 믿음이 파선된 것입니다. 깨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양심을 써야 합니다. 양심을 안 쓰는 사람은 믿음이 파선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있으면 물이 들어와 죽게 됩니다. 즉 세상이 들어와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쓰라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착한 양심이 다 있는데, 착한 양심을 쓰라는 것입니다. 양심을 똑바로 쓰지 않으면 그것은 껍데기만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즉 껍데기 믿음입니다. 옳은 것을 버렸으니까 껍데기뿐이고 남은 것이 없습니다. 양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요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양심을 버리고 “주여, 믿습니다”라고 하지만 그것은 다 껍데기 믿음입니다.
양심을 써서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하여야 합니다. 옳은 것은 아무리 핍박이 많아도 따라가야 합니다. 아닌 것은 아무리 손해가 나도 따라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신앙양심을 쓰고 그 다음에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시험이 들어올 때에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평안할 때에도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말씀을 따라갈까? 어디로 가야 말씀을 따라갈까? 어디에 가서 배워야 말씀을 바로 배울까?” 그것을 잘 판단하여야 합니다. 또 아무데나 가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신학교에 가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 가서 배워야 바른 진리를 배울까? 하며 찾아 가는 것입니다. 가나안 농군학교 설립자이신 김용기 장로는 왜정시대에 덕소에 살았는데, 어디에 가야 말씀을 바로 배울까? 하여 70리를 걸어서 아현교회의 김현봉 목사님께 와서 말씀을 배우고, 또 70리를 걸어서 집에 가시곤 하였답니다. 그것이 예언의 말씀을 따라간 것입니다. 아무데나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에 탈선한 자들은 하나님이 징계하심
본문 20절에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2:17에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후메내오는 진리에 탈선된 사람입니다. 디모데후서 4:14에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알렉산더도 진리에 탈선했는데, 진리에 탈
선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징계하셨다는 말입니다.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는데, 진리에 탈선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단에게 내어 주어서 징계를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