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종류의 안식
히브리서 4:1-11
히브리서 4:1-11
1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3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4제 칠 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 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5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6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7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8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9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10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11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4:1 그러므로 그분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는 동안에 너희 가운데 혹 누군가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자.
4: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들은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한 것은 들은 자들이 말씀을 믿음과 결합시키지 않았기때문이다.
4:3 그러나 믿는 우리들은 그 안식에 들어간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내가 진노하여 맹세한 것처럼 '그들은 나의 안식에 결단코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 라고 하셨으나, 사실은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그분의 일들이 이루어졌다.
4:4 어디에선가 제칠일에 관하여 이와 같이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자신의 모든 일을 쉬셨다."
4:5 그런데 여기에서는 다시 "그들은 나의 안식에 결단코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4:6 이처럼 지금 어떤 이들에게는 그 안식에 들어갈 기회가 남아 있지만, 먼저 복음을 전해 받은 자들은 불순종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4:7 그래서 이미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다시 어느 한 날을 오늘이라 정하시고, 오랜 시간 후에 다윗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4:8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다면, 하나님께서 그 뒤에 다른 날에 관하여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4:9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안식이 남아 있다.
4:10 이미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들을 쉬셨던 것처럼 그 들도 자기 일들을 쉬고 있다.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할 것이니, 이는 누구든지 동일한 불순종의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4: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들은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한 것은 들은 자들이 말씀을 믿음과 결합시키지 않았기때문이다.
4:3 그러나 믿는 우리들은 그 안식에 들어간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내가 진노하여 맹세한 것처럼 '그들은 나의 안식에 결단코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 라고 하셨으나, 사실은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그분의 일들이 이루어졌다.
4:4 어디에선가 제칠일에 관하여 이와 같이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자신의 모든 일을 쉬셨다."
4:5 그런데 여기에서는 다시 "그들은 나의 안식에 결단코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4:6 이처럼 지금 어떤 이들에게는 그 안식에 들어갈 기회가 남아 있지만, 먼저 복음을 전해 받은 자들은 불순종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4:7 그래서 이미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다시 어느 한 날을 오늘이라 정하시고, 오랜 시간 후에 다윗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4:8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다면, 하나님께서 그 뒤에 다른 날에 관하여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4:9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안식이 남아 있다.
4:10 이미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들을 쉬셨던 것처럼 그 들도 자기 일들을 쉬고 있다.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할 것이니, 이는 누구든지 동일한 불순종의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1. 안식의 종류
제 칠일 안식
제 칠일 안식
본문 1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제 칠일 안식일이 있습니다. “제 칠일에 관하여는”라고 하였는데(4절),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칠 일째 되는 날 안식하셨습니다. 즉 제 칠일 안식일입니다.
주일 안식
그 다음에는 주일 안식이 있습니다. 특별히 7절에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어느 날을 정하였다는 것은 제 칠일 안식일을 다른 날로 정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주일로 정한다는 것입니다. 즉 주일을 안식일로 정한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안식
그 다음에는 가나안 안식이 있습니다. 본문 8절에,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다는 것은 가나안 안식을 말합니다. 즉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를 통과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은 가나안 안식에 들어간 것입니다. 가나안 안식에 들어간 사람도 있고 못 들어간 사람도 있습니다.
영적 안식
그 다음에 영적 안식이 있습니다. 본문 9절에,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영적 안식과 천년안식과 영원한 안식을 말합니다. 영적 안식은 안식세계에서 영적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가 주일을 지키면서 영적 안식을 찾아야 됩니다. 주일은 영적 안식을 받는 날이며, 신령한 양식을 받는 날입니다. 한 주일 동안 세상에 나가 살면서 피곤하고 지친 영혼이 주일날에 주께서 주시는 안식에 참여하여 힘을 얻고 신령한 양식을 받아야 믿음을 지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일에 영적 안식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천년 안식
그 다음에 천년안식은 천년동안 안식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영원한 안식
또 영원한 안식이 있습니다. 그러면 전부 안식세계가 여섯 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쉬신 제 칠일 안식, 둘째는 다시 다른 날을 정해서 주일로 지키는 안식입니다. 이것은 전엣 계명이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했다고 하였습니다(히 7:18).즉 구약시대의 안식일은 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안식일은 이레 중 첫날입니다. 즉 주일을 가리키는데, 이 날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성령이 강림하시고, 성부께서 계시를 주신 날입니다(계 1:10). 셋째는 가나안 안식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는 것은 가나안 안식처로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영적안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안식 세계에서 안식을 누리면서 사는 생활입니다. 즉 안식세계에서 영적안식을 누리면서 사는 생활입니다. 다섯째는 천년안식입니다. 이제 천년왕국이 오면 천년동안 안식을 누립니다. 여섯째는 영원한 안식입니다. 이것은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무궁토록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복지를 향해 가던 중 대부분이 광야에서 쓰러졌습니다. 모세와 아론까지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쓰러졌습니다. 그러면 광야에서 쓰러진 사람들은 다 지옥에 갔겠습니까? 광야에서 쓰러진 사람들이 다 지옥에 간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모세와 아론 같은 사람이 지옥에 갔을리가 있겠습니까? 광야에 쓰러진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적으로 구원받아 많은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그러나 육신적으로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서 광야에서 쓰러졌습니다. 육신이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 것입니다. 육신이 징벌을 받아 쓰러졌다고, 그 사람들이 지옥에 간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다 구원을 받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 안식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본문 1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혹 미치지 못할까봐 두렵고 떨림으로 나가라는 말입니다. “우리”란 믿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다 갑니다.
한 사람도 못갈 사람이 없습니다. 믿으면 다 갑니다. 영원한 안식세계에 다 갑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은 지옥에 갑니다. 그런데 가나안 안식, 즉 육신적으로 들어가는 안식 세계 또 영적 안식 세계에 들어가지 못할까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2:12-13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을 이루지 못해도 예수를 믿었으면 하늘나라에 갑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쓰러진 것처럼 우리도 두렵고 떨림으로 믿는 일을 잘 하지 않으면, 쓰러질 염려가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라고 하였는데, 믿는 자가 믿음을 잘 지키지 못하면 영적 안식에 미치지 못하게 되고, 천국에 가서도 칭찬과 존귀와 영광받는 자리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렇게 되지 않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믿음을 잘 지키고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2.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으로 화합하라
본문 2절에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 말씀이 유익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 유익이 못되었다고 하였습니까? 그 말씀을 듣는 자가 믿음으로 화합치 아니했으므로 그 말씀이 유익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듣는 사람이 믿음으로 화합해야 됩니다. 말씀은 말씀대로 있고, 자기는 자기대로 나가면 안 됩니다. 믿음으로 화합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화합한다는 것은 그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그 말씀을 자기 생명으로 삼고, 그 말씀대로 자기가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세계에서 즐거워하고, 그 말씀대로 자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믿음으로 화합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말씀대로 있고, 자기는 자기대로 있어서 믿음으로 화합지 못하면 안 됩니다. 믿음으로 화합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말씀을 들을 때에 그대로 믿고, 그 말씀으로 즐거워하고, 그 말씀으로 생명을 삼고, 그 말씀대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말씀들을 때에 틀림없이 되는 줄 믿어야 됩니다.
며칠 전에 양병기 목사님의 어머니가 미국에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창광교회에 오래 나오셨는데, 금년에 연세가 80세가 넘었습니다. 지나간 금요일에 양병기 목사님한테 세상 떠나셨다고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양병기 목사님은 그 말을 듣고 “가 보아야 되겠다”하고 비행기 표를 알아보니까 그날 저녁에 가는 비행기표가 있더랍니다. 그래서 그 비행기표를 사서 그날 저녁에 떠나셨습니다. 양병기 목사님이 어떻게 어머니가 세상 떠났다는 전화 한통 받고 미국에 갑니까? 믿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교인들도 예수를 이만큼 잘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좋은 믿음이 됩니다.
우리도 성경 말씀을 이만큼 믿어야겠습니다. 성경 말씀에 죽었다고 하면 죽은 것이고, 살았다고 하면 산 것입니다. 말씀에 있는 것을 그대로 믿어야겠습니다. 말씀을 “옳습니다”하며 듣기는 듣지만 실제로는 그대로 행동하는 게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믿음으로 화합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을 때에 아브라함이 떠났고, 또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였을 때에 바쳤습니다. 성경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화합치 못하면 유익이 없습니다. “유익이 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치 아니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듣긴 들었어도 그 말씀이 자기에게 힘이 안 되고, 자기에게 양식이 안 되고, 그대로 행하지 못하고, 그대로 걸어가지 못하면 그것은 믿음으로 화합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듣는 사람이 말씀을 들었지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3. 예수 믿는 성도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감
본문 3절에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무슨 안식입니까? 영원한 안식을 말합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4. 순종하지 않는 자는 가나안 안식에 못 들어 감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가나안 안식을 말합니다.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나안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쓰러졌다는 말입니다. 광야에 쓰러진 사람들 가운데에도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으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육신적으로 들어가는 가나안 안식에는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즉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육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안식을 누리셨다는 것입니다.
5. 칠일 안식과 가나안 안식은 영적 안식과 영원한 안식의 상징임
본문 4절에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2:2의 인용으로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칠일째 되는 날에는 안식하셨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2:2에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이것은 칠일 안식입니다. 즉 엿새 동안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는 쉬셨습니다. 칠일 안식을 영적안식과 영원한 안식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본문 5절에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시편 95:11의 인용입니다. 시편 95:11에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은 가나안 안식을 말합니다. 순종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가나안 안식도 영적 안식과 영원한 안식의 예표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화합하지 않고 나가면 영적 안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화합하며, 순종하면서 나가면 하나님이 육신적인 모든 것을 쉬게 해 주시고, 또 영적 안식을 주십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면 영적 안식을 못 얻습니다. 또 육신적으로는 가나안 땅을 얻지 못합니다.
본문 6절에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라고 하였습니다.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는 순종치 아니함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가나안 안식과 영적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도 복음을 받아 믿었으므로 영원한 안식에는 들어갑니다.
6. 신약 시대의 안식일은 주일임
본문 7절에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란 시편 95:7의 인용한 말씀입니다. 다윗 왕은 주전 1000년 전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주전 2000년 전 사람입니다. 모세는 주전 1500년 전 사람입니다.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한 것은 다시 어느 날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시편 118:22-24에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란 유대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은 다른 날을 안식일로 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다른 날이란 신약시대를 가리키기도 하고, 또 신약시대의 안식일이 되는 주일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요새는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일을 안 지키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주일에 예배 끝난 후에 무엇을 사먹고, 음식점에 가서 제직회 하는 것 등은 영적안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또 시편 95:7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의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온유한 마음으로 잘 받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들어도 온유한 마음으로 받지 않고, 회개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적안식세계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한 마음으로 받아서 회개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영적 안식에 들어가고, 또 가나안 안식에도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마음이 중요하고, 순종하는 게 중요합니다. 마음이 뻣뻣하고, 완악하고, 강퍅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합니다.
7. 가나안 안식 외에 다른 안식을 주심
본문 8절에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준 안식은 가나안 안식을 말합니다. 그 가나안 안식 외에 또 다른 안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다른 날”이라고 하였는데, 그후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안식을 준 후를 가리키고, 다른 날은 가나안 안식 외에 다른 안식을 가리킵니다. 즉 주일 안식과 영적 안식과 영원한 안식을 가리킵니다.
본문 9절에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영적 안식과 영원한 안식과 천년 왕국의 안식인 천년 안식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 자는 영원한 안식과 천년 안식에 들어감
영원한 안식과 천년 안식은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다 들어갑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서 영원한 안식과 천년 안식에는 들어가지만, 말씀을 온유한 마음으로 받아서 순종하지 않으면 영적 안식에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본문 10절에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란 영적 안식에 들어간 자를 말합니다. 또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자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이 세상에 살면서도 영적 안식을 누릴 수 있고 세상을 떠날 때 영원한 안식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육일 동안 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쉬셨습니다. 이와 같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시는 것처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서 쉰다는 말입니다. 요한계시록14:13에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성도들이 수고를 많이 하고, 하늘나라에 간 다음에는 세상 수고를 다 그치고 쉽니다. 즉 안식을 누립니다.
영원한 안식과 천년 안식 세계에서는 신령한 일을 함
그리고 하늘나라에 가서는 다른 신령한 일을 합니다. 즉 하나님을 닮아가는 일입니다. 또 열 고을 권세, 다섯 고을 권세, 한 고을 권세를 주신다고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믿는 일을 잘 하고 간 사람, 즉, 구원을 잘 이루어 간 사람은 하늘나라 가서 큰 자가 되고 할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많은 것을 맡겨 주십니다. 또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면 왕이 됩니다. 왕이 되는데 분봉왕은 아닙니다. 로마 황제가 어떤 지방을 하나 떼어 주면서, 어떤 다른 사람에게 그 지방을 맡기는 것이 분봉왕입니다. 헤롯이 분봉왕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면 분봉왕이 아니고, 전체에 대한 왕입니다. 즉 하나님이 모든 전체를 맡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라난 것만큼 하늘나라에 가서 이용당합니다. 우리가 자라난 것만큼 상도 받고, 자라난 것만큼 쓰임을 받습니다. 자라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자라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한 마음으로 듣고, 순종할 때에 자라납니다.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말씀을 순종할 때에 자라납니다. 일반적으로 순종할 말씀이 있고, 개별적으로 자기가 순종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순종할 말씀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그것을 순종해야 합니다.
도적질하는 사람은 도적질하지 않는 게 자기가 순종할 것을 찾아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싸우기 잘하는 사람은 싸우지 않는 게 자기가 순종할 것을 찾아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는 사람은 남을 미워하지 않는 게 자기가 순종할 것을 찾아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시기하는 사람은 시기하지 않는 게 자기가 순종할 말씀이고, 화목하지 못하는 사람은 화목하는 게 자기가 순종할 말씀입니다. 죄짓는 사람은 그 죄를 끊어버리는 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무슨 죄를 짓는지, 자기
양심이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압니다. 그것을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끊어 버리면 그것이 자기가 순종할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들어집니다. 또 해야 될 것은 하는 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여간 자기가 마땅히 지켜야 될 말씀을 그대로 하면 자기가 만들어집니다. 선교사로 가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송완규 목사님이 다 집어 치우고 중국에 가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자기가 마땅히 해야 될 것을 한 것입니다. 몸 바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기 사명임을 깨닫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마땅히 자기가 순종할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너, 선교하러 가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왜 안 가겠느냐고 하니까 힘들어서 안가겠다는 것입니다. 또 아이들 때문에 못가겠다는 것입니다. 몸이 약해서 못가겠다는 것입니다. 몸이 약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서 가면 건강해집니다. 그러나 안가면 더 약해집니다. “무엇 때문에 못하겠습니다”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십일조 못하는 사람은 십일조 하는 것이 자기가 마땅히 행하여야 할 말씀을 행하는 것입니다. 주일에 늦어지는 사람은 무슨 제물이라고 하였습니까? 흠이 있는 제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일 예배에 늦어지는 사람은 그것을 고쳐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가 마땅히 행하여야 할 것을 행하는 것이며 자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마땅히 행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양심적으로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또 성경 말씀을 보고 찾고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자기가 마땅히 행하여야 할 것을 그대로 행하면 자기가 만들어지고, 또 영적안식에 들어갑니다. 그 다음에는 가나안 안식에 들어갑니다. 물론 예수를 믿었으므로 영원한 안식에는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8.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 것
본문 11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것은 영적 안식과 가나안 안식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복 받는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는데, 순종치 아니하고 믿음으로 화합치 않으면 영적 안식과 가나안 안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안식에
들어가기를 항상 힘써야 되겠습니다. 힘쓰는 자가 신령한 안식의 복을 많이 누릴 수 있고, 또 왕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4에 주를 위해서 말씀을 지키다가 목 베임을 받은 자, 우상과 짐승에게 절하지 않는 자,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 노릇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안식론이 상당히 어려운 부분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4장의 말씀을 잘 기억해서,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생활을 항상 하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