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교회를 훼방치 말고 사랑으로 용납하라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교회를 훼방치 말고 사랑으로 용납하라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년 11월 15일 수요일

갈라디아서 5:7-15 교회를 훼방치 말고 사랑으로 용납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교회를 훼방치 말고 사랑으로 용납하라
갈라디아서 5:7-15

7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8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9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 12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버리기를 원하노라 13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14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15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5: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고 있었는데,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였느냐? 

5:8 그 설득은 너희를 부르신 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다. 

5:9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부풀게 한다. 

5: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님 안에서 확신한다.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을 것이다. 

5: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고 있다면 어찌하여 아직도 박해를 받고 있겠느냐? 그렇게 했더라면, 십자가의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없어 졌을 것이다.

5:12 너희를 혼란스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잘라 버렸으면 좋겠다.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으나, 다만 그 자유를 육체를 위한 기회로 삼지 말고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여라. 

5:14 이는 온 율법이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하나의 말씀안에서 성취되기 때문이다. 

5:15 그러나 너희가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으면, 피차 멸망할지 모르니 조심하여라. 


1. 누룩을 제거하라
꾀어 훼방케 하여 성도의 달음박질을 막는 자

본문 7-9절에,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고 했습니다.
달음박질을 잘해야 되겠는데 요새는 그만 달음박질을 잘 못합니다. 달음박질을 잘 안 합니다. 다들 시험에 들었습니다. ‘그 구원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다’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비방하고 훼방하고 악평하니까 달음박질하다가 그만 중단을 했습니다. “내가 괜히 그러면 안 되겠다. 내가 정신을 좀 차려야 되겠다. 내 볼 장도 좀 봐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달음박질을 잘하던 사람을 자꾸 충동시키고 훼방하고, “너 그렇게 믿는 게 아니다. 달음박질 할 필요가 뭐 있냐? 전적으로 그렇게 다 바칠 필요가 뭐 있냐? 목사만 따라 갈 게 뭐 있냐? 예수 믿어도 자기 볼 장을 좀 봐야지 그렇게 하면 너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 목사도 사람이다. 요새 목사들 봐라. 얼마나 사기꾼 많나? 너희 목사도 사기꾼인지 너 어떻게 아느냐?”고 유혹하여 괜히 달음박질 잘하던 걸 훼방합니다.

“이병규 목사 두고 봐라. 이제 어떻게 해 먹을지 모른다”고 어떤 사람이 와서 나보고 그럽니다. 목사님 이름으로 다 해놨다고 이제 앞으로 목사님 죽으면 자손들에게 다 돌아간다고 그러는데, 제가 다 해놨습니까? “뭘 해 놓았습니까?”물으니까 의정부 땅, 천안 기도원 땅, 광주 기도원 땅, 창광교회 예배당 다 목사님 이름으로 해놨다는 겁니다. 그렇게 자꾸 들어와서 훼방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 목사도 제 이름으로 다 해놓고 욕심 채운다고 그러기에 제가 그랬습니다. 내 이름으로 해 놓은 거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창광교회도 제 이름으로 한 것 하나도 없고, 또 광주 기도원 땅을 제 이름으로 하겠다고 하면 하는 것인데 장로들이 하자는 걸 제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안 했습니다. 제 이름 안 들어갔습니다. 의정부도 제 이름 하나도 안 들어갔습니다. 또한 천안 땅도 제 이름 들어간 것 없습니다. 천안은 창광교회 이름으로 되어있습니다. 대표자는 제 이름으로 되었는지 그건 모릅니다. 그랬더니 저는 대표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표가 제 이름으로 되었어도 그건 나하고 상관없습니다. 교회로 등기가 되어있으면 대표는 그건 뭐 제직회 한번만 하면 바뀝니다. 그건 아무 실권이 없습니다. 내 이름으로 대표가 되었는지, 안 되어있는지 모릅니다. 하여간 창광교회 이름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도 제 이름으로 해 놓은 것이 없는데 뭘 해먹는다고 합니까? 그런 소리를 누가 했는지 몰라도 그렇지 않다고 가서 전해주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것을 훼방하여 사실과 달리 뒤에서 자꾸 속여 댑니다. 속여서 이 목사님이 다 해먹는다며 훼방하며 나갑니다. 해 먹은 거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해 먹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줄만 아십시오. 제가 뭐 해먹어서 뭐하겠습니까? 이제 좀 있으면 천당 갈 텐데, 해먹고 가면 하나님 앞에 가서 책임져야 하고 책망 받을 일인데 그런 일을 왜 하겠습니까?

사실 해먹으려면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십일조 갖다가 십일조 좀 내달라고 하면서 제 호주머니에 넣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제가 먹어도 뭐 교회에 알리지 않으면 알게 무엇입니까? 그래도 하나도 떼어 먹지 않고 다 교회 갖다가 내는 것입니다. 이다음에 심판대 앞에 갈 생각을 해야지 그거 조금 먹어가지고 뭐하겠습니까? 천지만물이 다 우리 아버지 것인데, 깨끗한 것들, 좋은 것들을 먹어야지, 뭐가 없어서 그 시시한 것들 그 시커먼 것들을 먹겠습니까?

그러니까 여기서도 “달음박질 잘 하더니 왜 누가 너희를 꾀어가지고, 훼방을 하고 속여가지고, 참소를 해가지고 너희를 달음박질 못하게 했느냐? 왜 너희가 정신없이 거기 넘어가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에 넘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그것은 누룩적인 요소인데, 다른 사람을 속이고 훼방하고 달음박질 못하게 하는 것은 다 누룩입니다. 율법주의도 누룩이고, 이런 것은 다 누룩입니다. 그 누룩은 바리새인의 의식주의, 인본주의가 다 누룩입니다.

교회를 요동시키고 손해 주는 자는 심판받음

그것이 너희 온 덩이에 퍼지는데, “그것을 왜 용납을 하느냐?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고 하였는데, 요동케 하는 것은 심판받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는데, 교회를 요동케 하는 자는 심판 받고, 교회에 손해 주는 자는 심판 받습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심판 받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기업체이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주셔서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인데, 여기에 손해를 주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겠나 생각해 보십시오. 손해를 주는 사람은 아주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으로 심판받습니다. 그러므로 절대 교회에 손해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손해 주는 자는 저주받습니다. 노아의 작은 아들 ‘함’이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고 누워있는 것을 폭로시켰다가 저주받지 않았습니까? 그럼 왜 저주받았는가? 그 당시에는 노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구원운동을 했습니다. 함이 구원운동에 손해 줬기 때문에 저주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구원운동, 하나님의 교회에 손해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요동케 하는 자는 심판을 받으리라’고 그랬습니다. 심판 안 받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로 인해서 교회에 손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저 말하고 싶다고 돌아다니면서 다 말하지말고 또 무슨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해서 말 돌리지 말고, “교회에 덕이 되겠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이 말을 해서 교회에 손해 안 가겠는가?” 그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가서 다 말해놓으면 교회에 손해가 납니다. 어떤 말을 해서 목사가 잘했다고 하겠는지, 못했다고 하겠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 말하고 돌아가다가 목사님께서 알면 잘못했다고 할 것이다’ 싶으면 그만 두는 것입니다. 목사가 알면 잘못했다고 할 것을 왜 돌아다니면서 말해서 손해 주냐는 말입니다.

그리고 목사에게 손해 주는 것은 교회에 손해 주는 것입니다. 손을 들어서 도와주려고 해야 하는데, 돌아다니면서 요동케 하고 손해 주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손해를 주면 하나님께 심판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만 두지 않습니다.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습니다.

진리 양보 말고 교회를 어지럽히지 말 것

본문 11절에,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고 했습니다. 할례를 받으면 핍박을 안 받을 것인데, 할례를 안 받기 때문에 바울이 핍박을 받았습니다.

즉 말하자면, 진리를 양보 안하기 때문에 핍박받는 것입니다. 진리를 양보했으면 핍박을 안 받을 것인데, 양보하지 않고 일시라도 복종치 않기 때문에 바울은 핍박을 받고 나갑니다. 양보 안 하고 핍박 받으며 나가는 것이 생명이 사는 길입니다. 양보하고 핍박 안 받으면 이건 죽습니다.

본문 12절에,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교인들을 어지럽게 하는 자는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한다는 말은 너희가 믿음에 서고, 그들이 자퇴하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베어 버린다는 것은 자퇴를 말합니다. 스스로 자퇴하는 것, “뭐 잘랐다. 뭘 했다”하지 말고 너희를 어지럽게 하고 교회를 어지럽게 할 바에는 차라리 자퇴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괜히 싸우고 다투고 물고 찢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한다고 하십니다.

2. 사랑으로 종노릇하라

가정에서 사랑의 법으로 서로 종살이 함

본문 13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고 했습니다. 자유를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는데, 자유라고 해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시는데, 가정과 같다는 것입니다. 가정은 무슨 법을 세워놓고 몇 조에 의해서 뭘 한다고 하는 곳이 아닙니다. 남편은 몇 조에 의해서 이렇게 하고, 아내는 몇 조에 의해서 밥을 해줘야하고, 시아버지는 몇 조에 의해서 돈을 내야하는 그게 아닙니다. 가정에는 법이 없습니다. 법이 없이 사랑의 법만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서로 종살이 하는 것입니다. 서로 종살이하기를 남편은 아내의 종, 가정에 종살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가서 돈 벌어 오라 하면 그저 죽을지 살지 모르고 나가서 돈 벌어 오는 것입니다. “일찍 나가라” 그러면 나가는 것입니다. “돈 가져와” 그러면 종이니까 갖다 주는 것입니다. 또한, 아내는 “밥해라. 넌 하루 세끼 딱딱 해라. 또 뭐해라” 그러면 그 집의 종살이니까 그저 종노릇 잘 하는 것입니다. 종살이기에 소 먹여라, 돼지 먹여라, 닭 먹여라, 청소해라 그러면 다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시아버지는 시어머니를 잘 돌봐주는 종이고, 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가정에 대해서 종살이 하는 게 있습니다. 가정은 서로 종살이 하는 곳입니다. 서로 종살이하는데 법 없어도 잘 됩니까? 법 없어도 잘 됩니다. 사랑의 법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슨 법을 따져서 법 몇 조에 의해서 뭘 한다고 한다면, 이것은 벌써 사랑의 법에서 떠난 것입니다. 그저 사랑으로 서로 자원해서 종살이해야 합니다.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서로 종살이, 사랑으로 종노릇하라고 하십니다.

다투다가 피차 멸망하지 말고 양보할 것

본문 14절에,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하신 말씀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15절에,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어떻게 됩니까? 피차 멸망합니다.

서로 물고, 먹고, 싸우고, 다투고, 남을 헐뜯고 그렇게 하면 피차 멸망 합니다. 자기는 괜찮을 거 같죠? 남을 물고, 남을 비방하고, 남을 모략 중상해서 남에게 손해주면 자기는 괜찮을 거 같지만, 자기도 그 길을 당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당한 사람은 가만히 있겠습니까? 저 사람은 또 이 사람을 물고, 이 개가 저 개 물면 저 개가 또 이 개 물지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 개는 저 개 물고, 저 개는 이 개 물고, 서로 물고 서로 귀때기 물고, 서로 죽인다고 다리 물고 다 물어 치웁니다. 그럼
둘 다 피투성이가 되어버립니다. 닭싸움 하는 것을 보면 서로 죽도록까지 싸웁니다. 결사각오하고 하던데, 그게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렇게 싸우다가 죽으면 뭐하겠습니까?

싸우고 다투고 서로 물고 먹으면 둘 다 망할 것이니까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싸우지 말고 양보해야 합니다. 양보하고, 그저 억지로 오리 가고자 하는 자에게는 십리를 가주면서라도 싸우지 않으며 믿음 잘 지키면, 그게 제일 큰 복을 받는 것입니다. 오른 뺨 치는 자에게 왼 뺨까지 맞고라도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성전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믿음을 잘 지켜나가면 그것이 잘 되는 것입니다. 서로 네가 나 한 대 때렸으면 나는 너 두 대 때린다 하고, 서로
마주 때리고 서로 멱살 붙들고 돌아가면 피차 물고 먹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믿음 못 지킵니다. 믿음 못 지키면 둘 다 망하는 것 아닙니까? 둘 다 망합니다. 그러니까 서로 싸우지 말고 사랑으로 용납하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안 맞을 땐 의좋게 갈라질 것

그러다가 정 안 맞으면 갈라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던지 같이 있으려고 많이 노력해 보다가, 사랑으로 서로 다 용납하고 해 보다가, 정 불가능하다 할 땐 갈라지는 것이 좋습니다.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하고 조카 롯하고 내내 같이 있다가 이제는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서로의 목자들끼리 싸우니까 같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겠다”라고 아브라함이 그랬는데, 이것이 선한 방법입니다. 끝까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하고 롯하고 싸울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조카가 자기 따라온 건데, “넌 나 따라 와가지고 번창했으니까 다른 데 가라”고 보낼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너 나 따라와서 이 만큼 되었으니까 다른 데로 가라고 이렇게 할 수 있지만 롯은 롯대로 할 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 롯은 뭐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삼촌이 나 도와준거 무엇입니까? 이거 다 내가 한 것이지 삼촌이 언제 해 줬습니까? 난 양 한 마리 받아먹은 것 없는데, 왜 나보고 가라고 합니까? 내가 여기 내 발로 왔지 뭐 삼촌이 업어다 놨습니까? 가려면 삼촌이나 가십시오”라고 롯도 할 말이 다 있을 것입니다. 삼촌은 ‘너 나 따라다니다가 이만큼 되었으니까 딴 데 가라’ 할 수 있고, 그것도 정당한 이유가 됩니다. 또 조카는 ‘삼촌이 나 도와준 것 뭐 있습니까? 도와준 것이 없이 따라다니면서 내가 다 양 쳐서 한 것이고, 삼촌의 양 한 마리도 먹은 것이 없다’면서, 갈려면 삼촌이 가지 왜 나보고 가라고 하냐며 서로 물고 싸울 수도 있었습니다. 

만일 그랬으면 둘 다 망할 뻔 했는데 “네가 좌하면 난 우하고 네가 우하면 좌하겠다. 동으로 가면 난 서로 간다. 네가 먼저 해라”고 해서 서로 의좋게 갈라졌습니다. 의좋게 갈라지니까, 소돔 고모라 망할 때 아브라함이 기도해주었고, 롯이 잡혀갔을 때는 어떻게 했습니까? 아브라함이 318명 데리고 가서 건져주지 않았습니까? 서로 의좋게 나가면 갈라져도 서로 건져주고 도와줄 수 있습니다. 피차간 물고 먹으면 둘 다 망합니다. 물고 먹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