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열심
고린도후서 11:1-15
1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2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3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5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 6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7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8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라 9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 10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11어떠한 연고뇨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12내가 하는 것을 또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끊어 저희로 하여금 그 자랑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와 같이 되게 하려 함이로라 13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11:1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해 주기 바란다. 참으로 나를 용납해 주기 바란다.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고 있으니, 나는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정혼시켰다.
11:3 뱀이 그의 간계로 하와를 속인 것같이 혹시 너희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렵다.
11:4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않은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또 너희가 받지 않은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또 너희가 받지 않은 다른 복음을 받게 하면, 너희는 잘도 받아들이는구나.
11:5 나는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11:6 비록 내가 말에는 능숙하지 못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를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다.
11:7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한 것이 죄지은 것이냐?
11:8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교회들에서 받은 비용은 그 교회들에서 빼앗은 것이다.
11:9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 가난하였으나,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았다. 마케도니아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었다. 나는 모든 일에 너희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스스로조심하였고, 또 조심할 것이다.
11:10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안에 있으므로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않을 것이다.
11:11 왜 그리하였겠느냐?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냐? 하나님께서는 아신다.
11:12 내가 지금 행하는 것을 내가 앞으로도 행할 것이니, 이는 우리와 같은 일을 한다고 자랑하고자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끊어버리려는 것이다.
11:13 그러한 이들은 거짓 사도들이고 속이는 일꾼들인데,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다.
11:14 그러나 놀랄 것 없으니, 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한다.
11:15 사탄의 일꾼들이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들의 마지막은 그들의 행위대로 될 것이다.
1. 바울의 호소
나의 어리석음을 용납하라
본문 1절에,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 했습니다.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말 하려고 하니 좀 용납해달라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말이라는 것은 자기 말, 자기 얘기에 대한 변명, 또 자기가 모든 사도보다 부족한 것이 없다는 것, 또 자기가 잘하는 것을 앞으로 이제 말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잘한 것을 말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 하였습니다. 그래도 부득불 고린도 교인들이 미혹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부득불 말을 하려고 하는데 그건 어리석은 말이지만 용납하고 들으라는 것입니다. 미혹 받지 않기 위해서 들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고, 열심히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고 교회를 잘 인도하려고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이 주신 열심, 하나님의 복음운동을 위해서 내는 열심, 하나님의 복음전파를 위해서 내는 열심을 가지고 이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바른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열심을 내고 바른 복음을 전하도록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본문 2절에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은 그리스도입니다. 정결한 처녀라는 것은 정절을 지키는 처녀로서 저를,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로 중매하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2. 미혹 받지 말 것
다른 말로 미혹하는 것을 용납하지 말라
본문 3절에,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에게 미혹을 받아서 그만 타락이 되었는데 너희도 간교한 마귀의 궤계에 미혹을 받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마귀는 간사한 계교로 우리를 꼬여 미혹시키려고 역사를 합니다.
본문 4절에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면 너희가 잘 받는다는 것입니다. 또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할 때도 너희가 잘 받는다는 것입니다.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전파해도 너희가 잘 용납한다는 것은 새 것이므로 다 용납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받아가지고 있던 것 보다 새 복음 하나 나오면, 좋아서 더 잘 받는다는 것입니다. 또 이미 받아가지고 있는 성령의 역사보다 다른 역사가 하나 나오면 잘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미 예전에 성령을 받았는데 다른 영을 받는다는 말은, 다른 방언을 한다, 뜨끈뜨끈해진다, 또 다른 신기한 역사가 나타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미 예수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는데 다른 무엇이 또 하나 나타나면 잘 받는다는 것입니다. 새 것이므로 또 무슨 거기에 재미있는 것이 있는 줄 알고 잘 받습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잘 받는다. 다른 복음도 너희가 잘 용납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이라는 것은 복음에서 조금만 다른 것입니다. 전체로 보면 같습니다. 그러나 세밀
하게 보면 조금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 다른 복음을 너희가 잘 용납 한다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절대 다른 것 용납하면 안 됩니다. 성경만 가르쳐야 되고, 성경에 있는 것만 받아야 합니다. 다른 학설, 인간의 방법, 인간의 수단 이런 것 용납하면 안 됩니다.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성가를 통한 다른복음을 막아야한다
복음성가를 통해서 다른 복음이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각종 다른복음이 복음성가를 통해서 물밀 듯 교회 안에 들어오고, 또 성경도 다른 복음이 잘못된 번역을 통하여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성경도 여러 종류의 성경이 있습니다. 다른 복음, 신신학자들이 번역한 성경이 많습니다. 이들이 새로이 성경을 번역해서 다른 복음을 성경번역에 반영하여 성경을 통하여 들어왔습니다.
복음성가를 통해서 다른 복음이 계속 들어오고 있는 것을 막아야 됩니다. 그것을 막지 못하면 마귀가 다른 복음을 가지고 들어와서, 이상하게 퍼지게 만들어서 교회를 다 멸망시키려합니다. 요즘 복음성가를 통해서 다른복음이 들어오는데, 이것을 잘 분별하지 못하면 그만 마귀가 들어와서 교회를 다 점령하고 맙니다.
복음성가에 재미를 붙이면 찬송가를 잘 안 부르게 됩니다. 밤새도록 복음성가만 부르는 겁니다. 그것을 막으려고 우리는 아예 복음성가는 부르지 않기로 총회에서 결의하였습니다. 그런데 복음성가 가운데도 좋은 것이 더러 있습니다. 또 아이들 찬송가 중에도 괜찮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서 어디까지 허락해야 되겠는가가 문제이고, 한계가 있어야 하는데, 그럼 누가 한계를 정해야 되겠는가? 혼자 정해서 몇 곡은 부르고 몇 곡은 부르지 말라고 한계를 정해준다고 해도 아이들이 그 말 잘 안 듣습니다. 10곡 부르라고 정하면 20곡을 부르고, 20곡만 허락하면 40곡, 50곡 갖다 부릅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복음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밤낮 지켜 앉아서, “뭘 불렀냐? 오늘 뭘 불렀냐?” 라고 묻고 다닐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찬송가만 불러야 한다.’고 한계를 그어놔야 복음성가라든지 다른 복음이 못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찬송가 뒤에 부록에 있는 복음성가는 불러도 괜찮다고 인정하고, 현재 복음성가가 100장 더 첨가 된 찬송가가 나왔다는데 보지 않아서 잘못된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여러 교단이 모여 선정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는 다른복음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봐도 괜찮겠습니다.
그러나 한계가 없는 다른 복음, 그 복음 성가, 한계가 없는데 어디서 어디까지 허락해야 되는지가 문제입니다. 좋은 곡이 몇 장 있다고 해서 허락해 놓으면 그러면, 다른 곡 또 듣고 다른 곡 또 들으면 그것을 누가 막습니까? 아이들 부르는 곡을 하나씩 다 확인할 수 없는데다가 또한 몰래 부르기도 합니다. 몰래 부르면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아예 이걸 못하게 하려면 한계를 그어놔야 합니다. 선을 그어놔야 다른 복음성가가 못 들어오지 선을 안 그어놓으면 다른 복음성가가 계속 들어오게 됩니다. 앞으로도 또 다른 찬송가가 나오게 되면 복음성가 중에 몇몇 곡이 추가로 들어가겠지만 찬송가책에 추가된 것만 인정해 줘야 합니다.
앞으로 나올 찬송가에 많은 복음성가가 추가로 나오게 되면 새로나온 찬송가를 총회에서 검토해서 그 가운데 잘못된 복음성가만 부르지 않도록 하고, 나머지 찬송가책에 수록된 곡을 다 불러도 좋다고 할 때에, 깨끗하게 한계가 딱 그어지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이 다른복음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정해진 한계가 없으면, 물밀 듯이 다른 복음이 잘못된 복음성가를 통하여 다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고수하기 위하여 찬송가에 수록되어 총회적으로 허락된 곡을 제외하고는 복음성가를 부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다른 복음은 안되는 것입니다.
복음성가를 개방해 놓으면 얼마 못가서 진리고수는 다 틀어집니다. 한편에서는 진리 전파하지만 복음 성가를 통해서 찬송은 전부다 신복음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교인들의 신앙을 다 망치는 것입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됩니다. 복음성가 몇 가지 좋다고 해서 부르고 다니다가 그 선을 타서 각종 다른 복음이 들어오면 그 다음에는 망하고 맙니다. 곧 망하게 됩니다. 찬송가에 있는 것만 한계로 정해야 합니다. 앞으로 찬송가 곡이 현재의 배나 된다고 해도 찬송가에 수록된 것까지만 한계를 그어야 합니다. 한계가 있으니까 그 안에서 몇 개가 잘못된 게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검토해서 그 곡만 부르지 못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정절을 지켜야 한다
언제나 교회가 깨끗하고, 정절을 지키게 하고, 다른 복음이 못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신복음주의와 기독교 사회주의 등이 많이 들어옵니다. 다 보지는 않았지만, 어린이 찬송가 중에 복음성가 좋은 것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것도 복음성가로 봐야 합니다.
어린이 찬송가에 있는 복음성가를 부르면 아이들이 재미있어서 더 잘할 것 같지만 믿음이 있어야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 어렸을 때는 시편찬송가 400장짜리 불렀어도, 아이들이 예배당 가득 차게 오고 교회도 가득 찼습니다. 어린이 찬송가 불러서 온 것이 아닙니다. 또 오늘날까지 우리가 유년주일학교 하면서 어린이 찬송가를 불러서 아이들이 온 것이 아닙니다. 어른들 부르는 찬송가 불렀어도 다 왔습니다.
성경중심으로 가르쳐도 다 왔습니다. 어린이 찬송가가 어른들 찬송이랑 다를 게 없습니다. 쉬운 말로 고쳤다고 하지만 어른들 찬송을 늘 부르다보면 믿음이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찬송가 쉽게 하나 불렀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믿음이 더 쉽게 들어갑니까?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지식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하면서 부르는데, 어른들 부르는,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 못하네, 참아도 못하네”하는 이 찬송이 얼마나 좋은 찬송입니까? 어린아이들이 우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 하나 모르겠습니까? ‘돈’이라는 말 갖다 붙이지 않아도 참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까? 힘쓰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이 들어가게 할 목적으로 일시적으로 쉽고 달콤하게 부른다고 해서 그것으로 믿음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 들어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여러 각종 방법이 지금 교회마다 들어오고 있는데, 마귀의 역사입니다. 신복음주의자들이 그러한 것들을 다 만든 것이고, 이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이 만든 것이고, 그 안에 물론 좋은 것 몇 개 있는 건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좋은 것 몇 개 때문에 나쁜 것 다 용납하여 변질이 되면 누가 다 책임을 집니까? 그러니까 다른 복음, 다른 찬송, 다른 성경 이것 막아야 합니다.
3. 바울이 자기를 변호함
지식에 부족함이 없는 바울
본문 5-6절에,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을 안다고 했습니다. ‘말에는 졸하나’라는 것은, 말은 잘하지 못하지만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다고 합니다. 바울이 진리의 지식에는 많이 깨달았습니다. 바울만큼 진리의 지식을 깨달은 사람이 그 당시에 없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값없이 전하다 핍박받음
본문 7-8절에,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비방을 했는데, “바울이 요를 받지않고, 돈 안 받고 가서 전도한 것은 수단이다. 지금은 값없이 전도하지만 좀 있다가 더 많이 받으려고 수단 쓰는 것”이라고 이렇게 비방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이렇게 변호하는 것입니다. 이 비방에 대해 바울은 “우리가 낮추어서 돈을 안 받고 희생적으로 너희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이것이 죄를 지은 것이냐?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해서 다른 교회에서 요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냐?” 라고 말합니다. 탈취한 게 아니란 것입니다.
교역자는 교인들에게 폐 끼치지 말아야 함
본문 9절에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고 했습니다.
용도가 부족하다는 것은 생활이 곤란하다는 뜻으로, 그러나 아무에게도 폐와 누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뭐 좀 도와달라고 손 벌리지 아니하고, 곤란하다고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라고 한 것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연보를 해서 바울에게 보내주었기 때문에 그것 가지고 내가 쓰면서 전도한 것이지 너희에게는 하나도 누를 끼치지 않고, 요를 받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한 것은 내가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을 했고, 또 앞으로도 조심하겠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에게 폐 끼치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교역자들이 교인들에게 폐 끼치기 쉽고, 또 전도부인들이 교인들에게 폐 끼치기 쉽고, 또 심방하는 사람들, 권찰들, 집사들이 교인들에게 폐를 끼치기 쉽고, 또 심방 가서 교인들에게 폐 끼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폐 끼치지 말아야 합니다. 교인들에게 한번 폐를 끼친 것은 교인들에게 이다음에 짐이 되고, 그 교인들을 바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폐 끼치지 말아야 합니다. 자꾸 와서 폐를 끼치면 그 교인이 다른데로 가버립니다. 그 집에 가서 폐를 몇 번 끼쳐보세요. 교회 잘 나오는 성도나 가정은 어느 정도 이해할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가정이나 믿지 않는 식구가 있는 가정에서는 분쟁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런 가정에서, 믿지 않는 식구가, “그 교회는 왜 남에 집에 와서 맨 날 먹기만 하느냐? 그놈의 교회 나가지 말라”고 핍박을 계속 하게 되면 마지막에 다른 데로 가고 맙니다. 교인 집에 절대 폐 끼치면 안 됩니다.
폐 끼치지 않는 정신을 가져야 됩니다. ‘폐가 되지 않을까?’하면서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 한다 고 하였습니다. “내가 조심하고 또 조심하리라”고 합니다.
바울의 진리고수와 교인 사랑
본문 10절에,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함은 아가야 지방은 고린도 교회가 있는 지방인데 그곳에서 진리를 자랑할 때에, 바울 속에 진리가 있으니까 막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진리가 막히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본문 11절에, “어떠한 연고뇨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내가 하는 것을 또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끊어 저희로 하여금 그 자랑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와 같이 되게 하려 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어떠한 연고뇨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라’는 말은 “아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바울이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왜 교인들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진정으로 사랑하는 줄을 알아야 됩니다. “아무개만 사랑한다. 자기는 사랑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다 같이 사랑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만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다 사랑하는 걸 언제나 알아야 하겠습니다.
4. 사단의 일꾼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
본문 13-14절에,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실제로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들이,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고 교회에 나와 있었다는 말입니다. 거짓 선지자들, 속이는 일꾼들, 이런 사람들도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고 나오는 것이 이상한일이 아니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본문 14절에,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사단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거짓 선지자도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고 나온다는 말입니다. 처음에 보면 잘 모릅니다. 첫 번에 보면, 일견에 보면 잘 모릅니다.
“이들이 참 그리스도의 사도냐? 아니냐?” 잘 모릅니다. 왜냐 하면 외부적으로는 더 번쩍 번쩍하고, 더 잘 하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물건도 가짜가 더 번쩍번쩍하지 않습니까? 이 거짓선지자들은 사랑이 많은 것처럼 하고 나오고, 의로운 것처럼 행동하고, 자기가 잘하는 것처럼 자꾸 자랑하니까 거기에 홀딱 반하는 것입니다. “아, 이들이 진짜 하나님의 사도다. 아, 이렇게 사랑이 쩔쩔 넘치는 데가 어디 있겠나?” 하며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쩔쩔 넘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왜 사랑이 쩔쩔 넘칩니까? 친절하고 사랑이 넘치고 교인들을 위해주고 하는데, 왜 이렇게 하겠습니까? 넘겨먹느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사랑이 많은 줄로 알면 안 됩니다.
여러 십년 전 서울역 건너편에 양동이라는 곳을 지나는데, 어떤 여자가 나와서 아주 친절하게 나보고 말하기를, “아, 이제 오셨습니까?” 하며 바쁜 사람을 좀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아, 이렇게 친절한 여자는 생전 보다 처음 봤다’ 생각했는데 보니까 틀렸습니다. 들어 갔느냐구요? 들어가지 않고 달아났습니다. 그 다음에 알고 보니 그들이 술집여자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친절하게 유혹하여 끌어들여서 죄짓는 여자들이라는 겁니다. 하마타면 끌려들어갈 뻔했습니다.
그러니까 친절하다고 다 좋은 게 아닙니다. 외부적으로 사랑이 쩔쩔 넘치고, 얼굴을 곱게 하고 와서 반갑게 맞이해도 그것은 가짜입니다. 그저 집에 들어갔을 때, 부인이 인사도 안하고 있다고 해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해도 그게 진짜입니다. 어떻게 늘 매일 친절하게 하겠냐는 말입니다. 늘 친절하게 하는 부인도 물론 있겠지만 보통은 늘 친절하게는 못합니다. 자기남편이 들어오면 들어 오는가보다 하고 아내가 쳐다보지도 않는 집도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아내가 진짜입니다.
천사를 가장한 사단 분별 법
그러니까 거짓선지자도 친절하게 하고, 사랑이 쩔쩔 넘치고, 또 달콤하게 해주고, 귀를 즐겁게 해주고, 또한 복이란 복은 만복을 모두 갖다 빌어주는 것은 그 사람 녹여먹느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나서 자기에게로 갖다 붙이고, 그 다음에는 자기의 이용물로 삼으려는 것입니다. 사단이 또한 광명한 천사로 나타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사탄이 나타나는 때가 있다고 합니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그런 것에 ‘주여’ 하고 엎드리면 마귀에게 잡히는 것입니다.
사단이 광명한 천사로 나타날 때에 뭘 보고 분별합니까? ‘진짜 천사냐? 광명한 천사냐?’할 때에, 사탄이 그렇게 천사를 가장하고 나왔는지를 어떻게 압니까? 아무리 광명한 천사로 나타났어도 뭐가 조금 달라도 다릅니다. 아무리 진짜인 것처럼 갖다 꾸며놔도 어떤 한 구석이 조금 다른 것이 있습니다. 성경과 다른 것이 있습니다. 사탄이 가장한 광명한 천사를 보고 “광명하다, 아 이거 진짜 천사다” 이렇게 판단하지 말고, “뭐 조금 다른 게 있지 않은가?” 하며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사탄을 분별해야 합니다.
사탄은 성경과 뭐라도 또한 조금이라도 다른 게 있습니다. 다 같은게 아닙니다. 또한 사탄이 광명한 천사로 나타날 때에, 자신의 심령과 신앙생활에 안 맞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해온 심령의 생활에 안 맞는 것이 반드시 있어서 마음이 편치를 않습니다. 심령이 편안치 않습니다.
외부적으로는 광명한 천사인데, 또 외부적으로 좋은 말만 해주는데, 심령이 편치 않습니다. 마귀가 하는 것이 어떻게 심령의 평안이 있겠냐는 말입니다. 또 어디인가 성경과 다른 것이 하나 이상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아무개가 훌륭하다, 훌륭하다” 해도, 가서 자세히 보면 성경과 모양이 다른 것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가짜인줄 알아야 합니다. 또 아무리 날고, 뛰어도 심령 속 깊은 가운데는 안정이 안 됩니다. 마귀역사가 어떻게 심령의 안정을 시킬 수 있냐는 말입
니다. 일시적으로는 속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심령의 안정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광명한 천사에, 사탄의 역사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또 목사들이라고 해도, 어떤 교역자 훌륭하다 굉장하다 해도 가보면 어딘가 성경과 다른 것이 하나라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귀역사인 줄로 알아야 합니다. 마귀역사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할렐루야 교회에서 손톱으로 긁어서 병 고친다고 손톱으로 피부를 긁어서 피를 내고, 그 다음에 그것이 곪아가지고 고름이 질질 나게 되면, 점점 나아가는 중이라고 속입니다. 성경에 그런 것이 어디 있습니
까? 성경 어디에 기도할 때 손톱으로 피부를 긁어서 피를 나게 해서 고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병 낫는다고 떠들썩하고 광명한 천사로 나타났어도 그것이 성경과 다르기 때문에 잘못된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사탄의 역사이고,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밥 거저 먹여준다. 몇 백 명, 몇 천명이 와도 거저 먹여준다”고 해 놓고 돈 좀 있는 사람한테는 돈 좀 자꾸 가져오라고 한답니다. 일반적으로 거저 먹여준다고 해놓고 뒤에서는 돈을 다 받으므로 사람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자기가 무슨 돈을 가지고 늘 거저 먹여주겠습니까? 할렐루야 교회에 돈이 굉장히 많답니다. 병 고친다 고친다 하며 자꾸 가져오라니까 다 바치는 것입니다. 사단의 일군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의 행위와 그 미혹된 결과
본문 15절에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행한대로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가만 둬 두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20절에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고 한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잘 용납한다는 말입니다. 그거 이상합니다. 잡아먹어도 용납하고, 종으로 삼아도 그저 용납해서 종살이하고, 사로잡아도 그저 사로잡혀서 종살이하고, 뺨을 쳐도 그저 맞고 종살이합니다.
한번 미혹되면 이렇게 됩니다. 미혹되어 종으로 삼으면 그저 종살이 하는 것입니다. 뺨을 치면 맞으면서 따라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잡아먹으면 그저 사로잡혀가지고 종살이 하는 것입니다. 미혹되면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미혹이 안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일단 미혹되면 결국은 하라는 대로 다 하게 됩니다. 돈 가져오라 하면 돈 가져가고, 집 팔아 가져오라면 다 팔아가지고 가고, 땅 팔아오라면 다 팔아가지고 가고, 그렇게 종살이 하는 것입니다. 미혹하는 세력들이 다 그런 것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처음에는 광명한 천사와 같이 잘 해주고, 달콤하게 해주고, 영광스럽게 해주는 것 같지만 결국 마지막에 다 잡아먹히고 마는 것입니다. 다 빼앗기고, 포로생활하고, 신앙자유가 없어지고, 그 사람들
하라는 대로 다 하게 되어 있고, 이제 종이 되고, 겨우 벗어난 자를 미혹해서 육체의 정욕에 빠지게 합니다. 빠뜨려서 종으로 삼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종살이 하는 것입니다. 불쌍합니다. 빼앗기고, 다 희생
당하고 그 다음에 종살이 당하고, 잡아먹히고, 이렇게 미혹 받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미혹 받지 않도록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고, 바른 교훈을 언제나 받고, 바른 진리에 서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