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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3일 월요일

고린도후서 13:6-13 온전케 되기를 원함.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온전케 되기를 원함
고린도후서 13:6-13

6우리가 버리운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7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리운 자 같을지라도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8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9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10이를 인하여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파하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세를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11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12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13:6 우리가 버려진 자가 되지 않은 것을 너희가 알기를 바란다. 

13:7 우리는 너희가 아무런 악도 행하지 않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이는 우리가 인정받는 자임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비록 우리가 버려진 자같이 보이더라도 너희가 선을 행하게 하려는 것이다. 

13:8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할 수 있다. 

13:9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우리는 또 너희의 온전함을 구한다. 

13:10 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는 동안 이것들을 쓰는 것은, 내가 갔을 때 주께서 내게 주신 그 권세를 따라 엄하게 행동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 권세는 너희를 세우려는 것이지 무너뜨리려고 주신 것이 아니다. 

13:11 마지막으로 형제들아, 기뻐하여라.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며, 서로 격려하고, 같은 마음을 품으며, 평안하게 지내라. 그러면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실 것이다. 

13:12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여라.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한다.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1. 고린도 교인이 죄짓지 않기를 구함

본문 6-7절에 “우리가 버리운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리운 자 같을지라도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죄를 짓지 않기를 바울이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한다”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하는 악을 행치 않기를 구한다는 말입니다. 또 “우리는 버리운 자 같을지라도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는 죄를 짓지 않고 선을 행하는 좋은 신자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구원운동이 잘되고, 교인들의 신앙만 바로 된다고 하면 자기는 버리운
자 같이 된다고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버리운 자 같이 된다는 것은 사도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 8절에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거스려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성경에 맞추어 나간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위반되는 것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대로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싸우고 다투는 것, 음란, 호색 등은 성경위반입니다. 진리를 거스르며, 성경위반 하는 것들은 하지 말아야 하며 오로지 진리대로만 하여야 하겠습니다.

2. 고린도 교인들이 온전케 되기를 구함

본문 9절에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란 바울이 많은 핍박과 비천한데 처하면서 복음을 전하므로 고린도 교인들이 은혜를 받아서 강해졌다는 말입니다. 많은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 고난을 받으면서, 버림을 당하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바람에 누가 강해졌습니까?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이 강해졌습니다. 바울이 그것을 기뻐했습니
다.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이 강한 신앙을 가지고 점점 온전하게 되어 나가기를 기도했습니다. 성도의 온전해짐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온전해지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의와 진리와 거룩과 사랑, 죄를 멀리 떠나는 것, 경건, 하나님을 경외 하는 것 등, 온전해가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니, 육신 중심으로 강하게 자기 생각, 제 뜻대로 나가고, 세상으로 나가고, 썩을 것을 위해서 일하고,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10절에 “이를 인하여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파하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세를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인하여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이라고 하였는데, 바울이 미리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가서 너희를 파하려 함이 아니라 회개하고 바로 서게 한 후에, 너희를 세워 주려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이 세워주십니다. 그러나 회개 하지 않으면 파합니다. 파한다는 것은 깨뜨려 내버린다는 것입니다. 회개 안 하면 징벌하고 깨뜨려 내버리시지만, 회개하면 세워주십니다. 어떻게 하면 세워줍니까? 회개하면 세워주고 회개 안 하면 깨뜨려 버리십니다.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고 나가면 때가 되면 반드시 엄격한 매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엄한 매를 맞지 않도록 회개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회개해서 겸손한 자리로 내려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다시 세워주심을 믿고 회개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3. 문안

본문 11-12절에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마지막으로 문안하는데, 친절한 인사를 하라, 기뻐하라, 위로를 받으라, 온전케 되라, 마음을 같이하여 평안하라고 합니다.

기뻐하려면 위의 것을 찾아야 기뻐할 수 있습니다. 땅의 것으로는 기뻐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고, 그 나라를 우리의 것으로 주려고 하시는 위의 것을 찾으면 항상 기뻐하게 됩니다. 땅의 것을 찾으면 기쁨이 없습니다. 언제나 위의 것을 찾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하고,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려면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자기의 존귀와 영광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자리에 내려가야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마음이 하나가 될 때에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진정한 위로와 평강을 주십니다.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고 하였는데, 성도는 이렇게 친절한 인사로 문안하고 교통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4. 축도

본문 13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축도입니다. 예배 끝난 다음에 목사들이 축도 할 때에 이 성구를 가지고 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너희 무리에게 삼위의 은혜가 있을찌어다”라고 선언합니다. “있을찌어다”란 하나님을 대신하여 “있으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 
‘계실찌어다’가 아닙니다. 있을찌어다 입니다. ‘사랑, 은혜, 성령의 교통이 있을찌어다’입니다. 한국성서공회에서 출간한 바른 성경에도 역시 ‘있을찌어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원어에는 ‘있을찌어다’가 없습니다.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까지 있는데, ‘있을찌어다’는 원문에 없는 말을 해석한 것입니다. 영원토록 있을찌어다하는 사람도 있지만 ‘영원토록’ 이란 단어 또한 원문에는 없습니다. 축도할 때 성경대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라고 말입니다. 축도가 좋은 것입니다. 이것은 목사만 하는 것인데 삼위일체 이름으로 삼위의 이름으로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도 함께 있고 사랑도 성령의 교통하심도 함께 있기를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즉 “주 예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으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 거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항상 함께 하는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3:1-5 약한 자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약한 자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
고린도후서 13:1-5

1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갈터이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2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3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4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13:1 내가 이제 세 번째로 너희에게 갈 것이다. "모든 일은 두세 증인의 증언으로 확정지어야 한다." 

13:2 내가 지금은 떠나 있으나 미리 말한다. 두 번째 너희를 방문하였을 때 이미 말한 것같이, 내가 다시 가면 전에 죄지은 자들과 그 밖의 모든 이들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13:3 이는 너희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신다는 증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은 너희를 대하실 때 약하지 않고, 오히려 너희 가운데서 강하시다. 

13:4 그리스도께서는 약한 가운데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신다. 우리도 그분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분과 함께 살 것이다. 

13:5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피고 시험해 보아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알지 못한다면, 너희는 버려진 자이다. 


1. 권징은 교회를 성결케 함

본문 13장 1-2절에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갈 터이니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 너희에게 가려고 준비하는데, 이번에 고린도에 도착해서, 전에 말한 죄 지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고 있으면 용서치 않고 벌하겠다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남은 자들에게 내가 말하는데 내가 다시 가면 용서치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전에 죄 지은 자들이 아직도 그냥 죄 짓고, 또 교인들이 그걸 아직도 용납하고 나가면, 내가 다시 갈 때에는 용서하지 않는다, 책벌한다, 가서 아예 벌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죄가 들어와서 어지럽게 하면 반드시 책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권징은 교회를 성결케 하는 것입니다. 죄가 들어와도 그대로 두면 교회가 어지러워집니다. 그래서 권징으로 교회의 성결을 보장하고, 책벌을 함으로서 그 사람을 회개시키고, 죄를 지으면 벌 받는다는 것을 알려 주어서 다른 사람에게 경계로 삼게 하여, 교회의 성결을 보장함을 알게 하는 목적인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역사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분별함

본문 3절에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사도 바울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구하였습니다. 바울이 참 사도라면 그리스도께서 바울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바울 안에서 말씀하시나 안 하시나, 하나님이 쓰시는 종이냐 아니냐의 증거를 구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바울이 말하기를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서 약하지 않고 도리어 강하시니라’는 말은 ‘너희 속에 그리스도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 속에 그리스도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는데 그 역사가 너희 안에 있다면 바울이 말한 것이 그리스도의 말씀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속에 그리스도의 역사가 있으면 참 진리를 분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역사가 없는 사람은 참 진리를 모릅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속에 그리스도의 역사가 있는 사람, 생명의 역사가 있는 사람은 참 진리를 들으면 압니다. ‘아, 이게 참이다’, ‘이것이 참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깨닫게 됩니다. 증거를 구할 것도 없습니다. 들어보면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고린도 교인들 안에서 강하게 역사하시는데 그만 고린도 교인들이 막았다는 말입니다. 막아서 그리스도께서 약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것이 참 진리인지 아닌지, 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참 진리인지 아닌지 분별을 잘 못합니다. 여기 오면 이것이 옳다고 하고, 저기 가면 저것이 옳다고 하니까, 어느 것이 참 진리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비주의 하는데 가면 신비주의가 옳다고 하고, 순복음주의에 가면 순복음주의가 옳다고 하고, 보수파에 가면 보수파가 옳다고 합니다. 서로 옳다고 주장합니다.
자기 것이 옳다고 하지 않으면 누가 그것을 따라가겠습니까? 그러니까 서로 자기 것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또 혼합된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도 자기 것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허다한 사람이 진리를 혼잡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혼잡하게 되는 것은 모두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옳은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혼합된 진리를 전하는 사람은 전부다 혼합시켜서 전하는 그것이 옳다는 것이고, 신비주의는 자기가 옳다는 것이고, 성경만 전하는 사람도 자기가 옳다는 것입니다.
헬라파는 지혜를 숭상해서 지혜로 성경을 전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고, 유다파는 표적을 행해야 옳다는 것입니다. 또 희한한 능력이 나타나야 된다며 그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옳으냐가 문제입니다 어느 것이 옳은지 어떻게 압니까? 주장하는 각자에게 물어보면 서로 옳다고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물어보아서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수 없습니다.

어떤 목사를 신신학자라고 교회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그 목사가 신신학자 같지는 않다고 하면서 이마가 번번한 목사라서 신신학자 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마가 좁은 사람만 신신학 하는 자입니까? 그래서 그 다음에 그 목사한테 직접 가서 물어봤답니다. “목사님은 신신학입니까, 아닙니까?”하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내가 왜 신신학이냐!”라고 소리를 치면서 자기는 옳다고 그러더랍니다. 그러니 어떻게 진짜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인지, 참으로 바른 진리인지 어떻게 안다고 했습니까? 본문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서 강하게 역사할 때에 그 때는 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으므로, 영이 사니까 그 바른 진리를 받으면 딱딱 들어맞습니다.

자기 심령이 살고 그리스도의 역사가 있고 생명 길을 걸으면, 이제 바른 진리, 신령한 도리를 전하는 것을 들으면 딱딱 들어맞습니다. 물건의 부속품이 들어맞도록 딱딱 들어맞습니다. 하나도 모자라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것 갖다 대면 안 맞습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고, 찌그러집니다. 다른 말을 갖다 들이대면 속에 딱 들어맞지 않는데, 참된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면 딱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3. 약한 자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

본문 4절에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이는 자기 뜻대로 하는데 약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하실 때 내 원대로 마옵시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말하고 나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약한 것입니다.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하는 것만 따라 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원대로 하는 것에 약하시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사셨습니다. 자기의 원하는 것은 이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결국 자기의 원대로 함에는 약해져서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약하셔서 자기의 주장대로 자기를 위해서는 하나도 하지 못하시고, 그저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만 그저 순종하셨다는 말입니다. 약하시기 때문에 이용만 당했다는 말씀입니다. 약하시기 때문에 십자가로 인도하니까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만일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강하셔서 기도 한 번만 했더라면, 하나님이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해서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을 다 멸하셨을 것입니다. 영은 군대의 사단입니다. 천군 천사 열두 사단을 보내서 방해하는 자들을 다 말살시키셨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까짓 잡으러 온 무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 번만 기도하면 되는데 그런 기도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약하시기 때문에 자기주장대로 기도하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약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만 따라 가시려하니까 기도하시면 될 것도 안 하신 것입니다. 기도하시면 사실 수 있는 것도 죽으러 가시고,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약하시기 때문에 그러셨습니다. 우리도 안 하면 살 길이 많지만 그래도 약해서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대로만 해야지, 자기가 강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안 해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를 다 이루지 못합니다. 자기가 강한 사람, 제 생각 제 뜻이 강한 사람, 자기를 위한 것이
강한 사람, 돈 사랑하는 것이 강한 사람, 또 가족 사랑하는 것이 너무 강한 사람, 이런 사람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강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심히 약하셔서 아무것도 일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역사가 아주 미미해집니다.

제 맘대로만 하고, 자기 이기주의로만 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자기 유리한 것이나 하고, 편안할 것이나 하고, 잘 먹을 곳만 가면 그리스도께서 그 속에 강하게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뜻 앞에 약하셨던 그리스도와 같이하고, 내 생각대로 하면 좋은 데로 갈 수 있지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데로 순종해야 합니다.

자기 입장을 봐서는 안 가야 살겠지만, 하나님이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 할지라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약하기 때문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강했다면 왜 올라가겠습니까? 예수님도 올라가면 환난 받을 것이 뻔한데, 자기가 약하니까 하나님의 뜻만 순종하려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자기는 안 하고 싶어도 약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자기는 안 가고 싶어도 약하기 때문에 가는 것이고, 또 자기는 대접 안 하고 싶어도 약하기 때문에 대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약해야 됩니다.

찬송가에도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시고 내가 강할수록 더욱 천해진다는 말입니다. 내가 강하면 천해지고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해지고, 또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그리스도께서 강하게 역사하시고 내가 강할수록 더욱 더 그리스도의 역사는 강하지 못합니다. 미미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역사가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맹맹해집니다. 또 힘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또 무엇을 왜 하라고 그러나?”, “무슨 연보를 왜 내라고 그러나?”, “전도하러 왜 나오라고 그러나?”, “심방은 또 왜 하라고 그러나?”, “중국엔 왜 가서 전도하라고 그러나?”, “러시아 알마타에 가서 예배당을 왜 지으라고 그러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강한 사람은 안 갑니다. 알마타에 못 갑니다. 약한 사람만 갑니다.

‘우리도 저희 안에서 약하나’는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하고 자기 원대로 하지 못하니까 약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며, 늘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고 삼가 조심하며 벌벌 떠는데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다시 삽니다. 자신은 약해져서 살게 됩니다. 자신이 강하면 죽습니다. 자신이 약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고 또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
니다. 강한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역사가 끊어집니다. 자기도 강하고 그리스도도 강하니 둘 다 강하니까 그리스도께서 그 속에서 역사를 못합니다. 자기가 약해져야 그리스도께서 역사합니다.

완고하고 교만하고 강하면 안 됩니다. 겸손하고, 상한 심령, 온유한 심령, 약한 것을 가지고 나오면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고 살려 주십니다. 자기가 강한 것을 가지고 나와서 이렇게 해 주세요 저렇게 해 주세요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너무 강하면 못씁니다.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머뭅니다. 기도 하는 것도 너무 강하게 하지 말고, 교회일 하는 것도 너무 강하게 “이렇게 해주십시오, 저렇게 해 주십시오”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리이다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는 연약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해주십니다. 자기가 너무 강하면 해주지 않으십니다. 강한 자에겐 마귀가 옵니다. 마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자기가 약한 줄 알고 하나님이 해 주셔야만 되는 줄 알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가 깨져나가고, 온유하고 겸손해져야 하나님이 함께 일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했습니다. 약해지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4.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

본문 5절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늘 자신을 시험해보고 자신을 확증하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계셔서 인도하시는 줄 스스로 알지 못하면 버리운 자라는 것입니다.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버립니다. 붙들고 역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언제나 시험해 보고 확증해 보아야 합니다. 믿음에 있는지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는지 여부를 통하여 확증할 수 있습니다. 속에서 감동을 주고 감화를 주고 역사하여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것이 믿음에 있는 확증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성도 속에 계셔서 역사 하십니다. 또 감동을 주십니다. 또 인도하십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뜻대로 인도하십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속에서 역사하심을 깨달아야 됩니다. 깨닫지 못하면 버리운 자요, 믿음에서 떠난 것입니다. 온유해야 합니다. 온유하고 순종해야 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하고 전적으로 그로 말미암아 살아야하고 그를 의지하고 그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그 사람이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속에 그리스도의 역사가 끊어진 사람, 감동이 없는 사람, 인도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리운 자입니다. 인도하시는 것을 알려면 자기가 약해져야 합니다. 약함으로 예수님이 못 박혀 죽으신 것이니 하나님의 뜻은 강한 자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에게서 이루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은혜가 능력이 약한 자에게 머문다’고 했습니다. 약할 때가 강한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께서 인도함을 모릅니까. 내가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약해져야, 약한데 내려가야 그리스도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인도를 늘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늘, 우리가 믿음에 있는가? 스스로 시험하고 확증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가 내 속에서 강한가? 안 강한가? 시험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속에 강하게 역사하면 믿음에 있는 때이고, 그리스도의 역사가 없는 때는 믿음에 있지 않는 때입니다. 믿긴 믿지만, 믿음을 쓰지 않는 때인 줄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잠자는 때이고, 졸고 있는 때입니다. 예수를 믿긴 믿지만 졸고 있는 사람이 많고, 잠자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예수를 믿는 사람 가운데 믿음에서 있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역사가 속에서 강하게 나타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강한 역사가 속에 없는 사람은 회개하여야 하겠습니다. 왜 그리스도의 역사가 속에서 강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자기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의 고집이 세고, 육신이 강하고, 물욕과 정욕과 사욕이 너무 강하고, 명예, 영광심이 강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자기는 다 죽어지고 약해져야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오고, 하나님의 만능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야도 호렙산에 가서 자기가 다 죽어지고, 자기가 깨어져서 할수 없게 될 때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고, 엘리야가 그 음성을 붙들고 나갈 때에 끝까지 강하게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약할 때가 곧 강할 때입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그리스도가 너희에게서 강하게 역사하시나? 약하게 역사하시나? 시험해 보고, 하나님의 역사가 없으면 그것은 믿음을 안 쓴 것입니다. 믿음을 썼는데 왜 하나님의 역사가 없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를 믿어도 제 마음대로, 제 육신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내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나? 없나? 시험해 보아야겠습니다.

내 속에 그리스도가 강하게 역사하시되 언제나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시고, 말씀대로만 순종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의 큰 역사가 나타납니다. 기적적인 역사, 생명이 사는 역사, 황무지가 소생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속에서 역사하지 못하면 믿음에서 떠난 것입니다. 믿긴 믿지만 껍데기만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의 역사에 순종하고, 나를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때에 끝까지 복종을 하며, 어디든지 가라고 하면 가는 것입니다. 무엇이나 하라고 하면 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내놓고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에 있는 것이고, 그것이 확증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11-21 구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요,너희이다.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구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요, 너희이다
고린도후서 12:11-21

11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에게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내가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12사도의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13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 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치 못한 것을 용서하라 14보라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예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이에 부모가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15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 16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공교한 자가 되어 궤계로 너희를 취하였다 하니 17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18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19이 때까지 우리가 우리를 너희에게 변명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20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21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함을 인하여 근심할까 두려워 하노라

12: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나에게 강요한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다. 비록 내가 아무것도 아니지만,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12:12 사도의 표들이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들과 놀라운 일들과 기적들로 나타났다. 

12:13 나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은 것 외에 너희가 다른 교회들보다 부족하게 된 것이 무엇이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여라. 

12:14 보아라, 이제 내가 세 번째 너희에게 갈 준비를 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겠다.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고, 오직 너희이다. 자녀들이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들을 위하여 재물을 모으는 것이 마땅하다. 

12:15 너희의 영혼을 위해서라면, 내가 가진 것을 기쁘게 쓰고 나 자신도 희생하겠다. 내가 너희를 더 많이 사랑하는데, 내가 더 적게 사랑을 받아야 하겠느냐? 

12:16 어쨌든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내가 교활하여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았다고 말한다. 

12:17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들 가운데 누구를 시켜 너희를 착취한 일이 있느냐? 

12:18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한 형제를 보냈는데, 디도가 너희를 착취한 일이 있느냐? 우리가 동일한 영으로 행하지 않았느냐? 동일한 보조로 행하지않았느냐? 

12:19 너희는 우리가 여전히 변명하고 있는 줄로 생각하느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와 하나님 앞에서 말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를 세우려는 것이다. 

12:20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갈 때에 너희가 혹시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또는 내가 너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하는 것이고, 또 너희 가운데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거림과 교만과 무질서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12:21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나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시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또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들이 그들이 행한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않아 내가 슬퍼하게 될까 두려워한다.


1. 바울의 사도된 증거

본문 11절에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내가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에게 칭찬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왜 칭찬 받아야 마땅합니까. 바울이 바른 복음을 가지고 있고, 그 복음을 가지고 교인들을 살려 놓았으므로 칭찬 받아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사도가 아니다”라는 등의 거짓 선지자들의 말만 듣고 바울을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어리석은 일이지만, 바울이 자기 자랑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나 ‘너희가 억지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자신에 대하여 ‘칭찬 받아야 마땅한 이유’를 얘기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억지로 시켰다’는 뜻은 고린도 교인들이 거짓선지자들에게 미혹을 받을 뿐만 아니라, 악선전하는 자들에게 자꾸 넘어가서 바울에 대해 비방하고 사도가 아니라고 하기 때문에 ‘부득불’, ‘어쩔 수 없이’ 바울이 자랑을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너희가 억지로 자랑하게 시킨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 12절에는 바울이 사도가 된 표가 나옵니다. 참교역자 된 표도 이와 같습니다. 참교역자된 표가 무엇입니까?

모든 참음

첫째, 모든 참음, 잘 참음이 참 교역자의 표입니다. 참지 못한 것은 참교역자 표가 아닙니다. 참아야 참 교역자 된 표입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표는 모든 것을 참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심으로 참았고, 믿음을 써서 참았다는 말입니다. 또 모든 성도들을 위해서 죽음에 넘겨져도 참았습니다. 이것이 사도된 표입니다. 의의 명령을 순종하고, 모든 성도를 위해서 죽음에 넘겨져도 참고, 예수의 죽은 것을 몸에 짊어지고 가면서 참고 끝까지 참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사도된 표입니다.

표적과 기사

둘째는 표적과 기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가 바울을 통해서 나타난 것을 가리킵니다. 이적 가운데 제일 큰 이적은 그리스도의 도성인신입니다. 그 다음 둘째 이적은 죽었던 우리의 영혼이 살아난 것입니다. 그것이 표적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서 죽었던 영혼을 살려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사도된 표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또 하나님이 당신의 쓰시는 종들을 통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지 없는지, 참 종인지 아닌지는 살려내는 것을 보면 압니다. 생명을 살려내는 것이 있으면 참 종이고, 생명을 살려내는 역사가 없으면 그것은 하나님이 참으로 쓰시는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생명을 살려내는 것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생명을 살려내느냐, 생명이 살아있는 교회냐, 살아나가는 교회냐, 계속 하나님의 종이 생명을 살려나가는 역사를 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현상유지나 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생명을 살려내는 역사가 있으면,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신 것입니다. 그 곳에는 하나님이 일해주십니다. 또 생명을 살려내는 역사가 있으면 대개는 다 굴복을 하게 됩니다.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 조금 남는데, 조금 남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진리를 말해도 말 안 듣는 것 같지만, 그래도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있으면 다 깨져 나갑니다. 강한 것이 다 깨져 나가게 됩니다. 견고한 성도 다 깨져 나갑니다.

고린도후서 10장 4절에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 하였습니다.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강력의 역사가 하나님의 참 종을 통해서 역사하는데 그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아무리 강해도, 아무리 오랫동안 몇 십 년 고질적인 악습관이 있어도 깨져나갑니다. 하나님께서 만능이신데 그것 하나 못 깨치시겠습니까? 반드시 하나님이 깨쳐 내버리실 것이므로 하나님의 참된 종은 어디를
갖다놔도 하나님의 강력이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 표적적인 역사, 살려내는 역사, 앞길을 열어주는 역사, 원수를 막아주는 역사, 홍해바다를 갈라주는 역사 등이 다 나타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참된 종인 증거라는 것입니다. 황무지에다 갖다놔도 거기에서 소생해서 올라옵니다. 어디를 갖다놔도 소생해 올라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참된 종의 표적이란 말입니다.

능력의 역사

셋째는 ‘능력을 행한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능력의 역사가 또 사도바울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참 종을 통해서는 어느 시대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사람으로서는 안 될 것 같지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생명운동과 구원운동이 이루어져 나가게끔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사도의 표요, 또 하나님의 참 종의 표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또한, 교역자가 기도 많이 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늘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하고 약한 것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교인들을 위해서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할 때, 잘 참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사랑하지 못할 사람을 잘 사랑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종 된 표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겸손하게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만 붙들고 나가면 여러 가지 이적, 기사가 나타납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쫒겨나기도 하는데, 개척을 해서 더러 귀신들린 사람이 오면, 기도 해주어서 귀신이 나가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 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치 못한 것을 용서하라”고 하였습니다. 폐 끼치지 않았다는 것은 고린도교회에서 돈을 안 받았다는 것입니다. 생활비를 안 받았는데 그것이 오히려 비방 거리가 됐습니다. 다른 교회에서는 돈을 받았는데 고린도교회에 가서는 안 받고 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공평치 않다면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2. 구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성도임

폐 끼치지 않는 선교를 해야 함

본문 14절에 “보라,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예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이에 부모가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세번째 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제 1차 전도여행, 2차 전도여행도 갔고, 3차 전도여행 가려고 합니다. 세 번째 고린도 교회에 가기로 예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서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작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폐를 끼치지 아니함은 세 번째 가도 돈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례금 안 받고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에서 보내준 것으로 생활하고 너희에게서는 받지 않을 작정인 것입니다. 전에도 안 받았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게 아니요, 부모가 어린아이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나의 구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고 한 것은 바울이 구하는 것은 고린도 교회에서 구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고, 연보해주고 생활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가
잘 되기를 구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나를 위해 대접받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가 바로 되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역자들의 사표입니다. 표준입니다. 재물을 구하는 것이 아니며 성도들이 바로 되는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재물은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사는 것입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하고 있으면 있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어떤 방식을 통하여 주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사는 겁니다. 조금 주면 조금 가지고 살고 많이 주면 많이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어떤 사모님이 남편이 생활비를 적게 주어 돈벌이 하러 나가야 하겠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고 물어보니까 동사무소에서 일 시키는 공공 근로 나가려고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공 근로 나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사모님이 공공 근로 나가면 교회가 어찌되겠냐고 했지요. 들어보니 교회에서 생활비를 안 줄 때도 있고 조금 줄 때도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주면 조금 가지고 살고, 안 주면 굶으라고 했습니다. 또 굶어 죽게야 하겠냐고, 조금 주면 조금 가지고 살라고 했습니다. 최소한 돈이 얼마 있으면 되겠습니까? 집은 사택이고 쌀은 한 말 있으면 되고 소금 한 되 있으면 됩니다. 쌀 한 말에 2만원, 두 말이면 4만원이요, 소금 한 되 몇 천 원 합니다. 그것도 교회에서 안 주면 굶고, 2만원 4만원도 안 주면 굶고, 굶어서 쓰러지게 되면 그때는 하나님의 권고가 올 것입니다.

죽으면 장례하는데 돈 얼마 들겠습니까. 절대 공공 근로 나가지 말고 조금 주면 조금 준대로 살고, 안 주면 굶고, 그렇게 하다보면, 다 일이 해결된다고 했습니다. 여기 사모님들 많이 왔는데 그렇게 하십시오. 교회에서 조금 주면 조금 준대로 살고 안 주어서 굶게 되면 하나님의 권고가 옵니다. 하루 3만원 받고 공공근로가 말이 됩니까. 공공근로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을, 밥벌이 못하는 노인들을 동회에서 공짜로 주려고 하는 것인데 왜 공짜 주는데 나가려는 것입니까. 교회에서 생활비 조금 주면 어떻게 사느냐구요? 조금 가지고 살고 안 주면 굶으면 됩니다. 그래도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죽지 않게 해 줍니다.

목사님들도 그렇게 하십시오. 교회에서 조금 주면 조금 가지고 살고, 안 주면 굶는 한이 있어도 강단에는 서야 됩니다. 또 굶으면 힘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굶었다는 소리는 하면 안 됩니다. 교인들이 볼 때 목사가 죽어 가는데 왜 그럴까 알아보자 해서 더 주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먼저 더 달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인들도 교역자를 굶기면 안 됩니다. 자기는 잘 먹으면서 교역자 굶기면 말이 되겠습니까. 자기는 한달에 몇 백 만원이나 쓰면서 교역자에게는 조금 주면서 “요것 가지고 살아라” 하는 것은 양심을 안 쓰는 것입니다. 교역자를 자기 식구와 같이 생각해야 하고 자기 아버지 같이 생각해야 하고 자기가 사는 형편처럼 교역자도 살 만하게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찌하든지 폐 끼치지 않는 정신을 갖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엊저녁에 우리도 교역자 연수회 모였을 때, 중국선교를 위해 우리 교회 교단 교역자들이 일 년에 두 번 이상 가기로 했다고 하였습니다. 두 번 이상 가야 됩니다. 전에는 네 사람씩 갔는데 이제부터는 매번 아홉 사람이 갑니다. 아홉 사람이면 배나 더 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년에 각 교역자들이 두 번씩 중국선교를 다녀와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너무 교회를 많이 비우는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그
래서 두 주간 만 교회를 비우라고 했습니다. 화요일에 떠나서 그다음 주일날에 한주일 비고, 그 다음엔 주일 지나서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국 가서 가르치려고 하는 교역자는 자기 시무하는 교회 두 주간 만, 주일 날 두 번 만 비우면 되는 것입니다. 또 두 번 비울 때는 그 본 교회 집사가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좋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목사를 초청하여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용은 하나도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중국 선교 가게 되면 비용이 들고, 데려오면 또 비용이 듭니다. 본 교회 교역자가 중국에 가는 비용도 내고, 주일 지키러 오는 사람도 주려면 이중으로 나가니까 교회에 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푼도 주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차비는 선교부에서 조금 주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고 점심만 가지고 가면 됩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지 않도록 하고 교회에도 폐를 끼치지 않게 하려고 이렇게 비용을 선교부에서 조금씩 주고 교회에서는 주지 않도록 합니다. 폐 끼치지 않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 가도 바울이 폐를 끼치지 않기로 작정하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국에 선교하러 갈 때에 폐 안 끼치려고 작정하고 갑니다. 선교지에 가면 성도들이 돈을 모아서 선물을 사준다고 합니다. 그런 것을 아예 가지고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중국에 있는 성도들이 한 달에 한국 돈으로 월급이 5만원인데 얼마 모아서 사준다고 해도 얼마나 사주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런 것은 폐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꾸 사다가 싸주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싸줘도 안 가지고 오면 됩니다. 안 가지고 그냥 와야 이 다음에 안 주지, 가지고 오면 이 다음에 또 준다는 말입니다. 또 그런 것을 받게 되면 교회와 그들에게 얼마나 폐가 되냐는 말입니다.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14절에 “보라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예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이에 부모가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구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고 ‘너희’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바로 되기를 구하는 것이지 재물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희생이 있어야 교회가 됨

본문 15절에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희생을 뜻합니다. 희생이 아니면 교회가 안 됩니다. 내 자신까지 너희를 위해서 희생한다는 말입니다. 재물도 희생하고 자신까지 희생을 해야만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되는 방법은 희생입니다. 교역자부터 희생을 하는 정신을 가지고 교회를 해야 합니다.
바울은 ‘내 재물을 너희를 위해서 다 허비하고 또 자신까지 다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더욱 사랑을 하는데 고린도교인들은 바울을 덜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비방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오해하여 바울을 의심하고 미워하고 멀어져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16절에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공교한 자가 되어 궤계로 너희를 취하였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 아니하였어도 공교한 자가 되어, 즉, 수단꾼이 되서 궤계로 속여서 너희를 취하였다”라고 비방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아주 공교한 자다. 수단꾼이다. 사기꾼이다. 속여서 너희를 지금 취하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이렇게 바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바울을 비방하였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 바울이 변명합니다. 본문 17-18절에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라고 하였습니다. ‘공교한 자가 되어 즉, 속여 사기꾼이 되어 너희를 취한다’ 같은 비방이 돌아가기 때문에 바울이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가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들을 보내었는데 디도가 너희에게서 뉘의 이를 취하더냐?” ‘가서 돈 받았느냐’라는 말입니다. 이를 취하지 않았단 말입니다.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하지 아니하였느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였느냐?”라는 말씀은 바울과 디도는 동일하게 한 것이지, 무슨 이를 취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3. 두려워하라
원치 않는 모습으로 보일 것을 두려워할 것

본문 19절에 “이 때까지 우리가 우리를 너희에게 변명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변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에게 덕을 세워서 유익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덕은 유익입니다. “너희에게 유익하게 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지 우리가 변명해서 칭찬이나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마귀에게 전부 다 속아 넘어가고, 마귀 시험에 다 넘어가기 때문에 부득불 이렇게 변명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라고 했습니다. 두려워 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까? 바울이 이제 가려고 하는데 바울이 갈 때에 그가 보기에 그들을 원치 않는 자 같이 보이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그들이 바울을 볼 때 원치 않는 자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원치 않는 자 같이 보이면 좋겠습니까? 바울이 원치 않는 것처럼 교인이 보이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교인들이 보기에 바울이 자기의 원치 않는 바울과 같이 보이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갈 때에 죄 지은 사람이 그냥 있으면 내가 그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것을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가서 너희를 책벌할 것인데, 또 너희는 내가 와서 벌주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내 원치 않는 자 같이 보이지 않도록 하고, 내가 너희에게 원치 않는 자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다툼이 일어남을 두려워 할 것

그런데 어떤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까? 먼저는 ‘다툼’입니다. 다투는 사람을 바울은 원치 않는 자로 본다는 것입니다. 또 시기와 분내는 것과 당 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또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이런 일이 있을 가능성이 많고, 실제로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당 짓는 것도 있고, 시기 분내는 것도 있었습니다. 또 수군수군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수군수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남이 들을까봐 외딴데 가서, 저희끼리 끼리끼리 모여서 수군수군하는 것입니다. 남이 들으면 안 될 말 하는 것입니다. 당파를 맺는 것입니다. 외딴 데 모여서 자기네끼리 수군수군하면서 남이 들으면 안 될 말을 하며 당파를 맺고, 자기네끼리 짜고, 자기네끼리 공작하고, 선전하고, 자기네끼리 통일하고, 수군수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군수군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다투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다. 다투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시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당 짓는 사람 있습니다. 베드로당, 바울당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중상 모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만한 사람도 있다는 말입니다. 어지러운 사람도 있습니다.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어지럽게 만드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으로 회개할 것

이렇게 되면 바울이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그러면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이 속상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오길 원합니까? 좋은 얼굴로 오길 원하지, 어떻게 속상한 얼굴로 오길 원하겠냐는 말입니다. 또 바울이 가서 매를 때려야갔는데, 매 때리는 바울이 오길 원하겠습니까? 좋은 얼굴로 오는 바울을 원합니다. 또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고 회개하고 바로 서서, 다 믿음에 서 있는 걸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이런 일을 해 나가면
이것이 바울에게 얼마나 짐이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본문 21절에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함을 인하여 근심할까 두려워하노라.”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이 다시 갈 때 하나님이 바울을 낮추실까 바울이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낮춘다고 하였는데 왜 낮춥니까? 고린도 교회가 죄만 짓고 나가고 어지러워지면 바울이 낮아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교회가 잘 되고 은혜 가운데서 자라나야지, 죄만 짓고 서로 싸우기나 하고 시기분쟁이나 하고 교회가 어지러워지면 바울이 낮아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바로 못서면 교역자가 낮아집니다. 교회가 바로 서야 낮아지지 않지, 바로 못 서면 낮아지게 됩니다.

“또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을 회개치 않음을 근심할까 두려워한다”고 했는데 이런 것이 있으면 낮아집니다. 전에 고린도 교회에 고린도전서를 통해 경고하였듯이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음란, 호색, 간음, 음탕, 이런 성적 더러움들이 고린도 교회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적 더러움들과, 다툼,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수군수군 하는 것, 중상함, 거만함, 어지러움 같은 죄들이 고린도 교회에 있으면 바울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치리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도 낮아지고 바울도 낮아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리 말함은 이런 것들로 인하여 바울이 근심하게 될까 두려워하고 다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기 전에 다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고린도후서 12:7-10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고린도후서 12:7-10

7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8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12:7 또한 여러 가지 엄청난 계시들 때문에 너무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다. 

12:8 이것이 내게서 떠나도록 내가 주께 세번 간구하였으나, 

12:9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해지기 때문이다." 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오히려 나의 여러 약한 것에 대하여 크게 기뻐하며 자랑할 것이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위에 머물게 하려는 것이다. 

12:10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경을 기뻐하니,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하기 때문이다. 

1. 바울에게 가시를 주심
바울을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주심

본문 7절에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다는 것은 큰 계시 묵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너무 자고할까봐, 교만할까봐 하나님이 바울을 쳐서 육체의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대로 두면 교만해질까봐 하나님이 사단의 사자, 육체의 가시를 주어서 교만하지 않게 했습니다. 바울의 육체의 가시는 눈병이라 합니다. 하나님이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의 눈을 어둡게 했다가 다시 밝아지게 하셨지만. 조금 남겨 두어서 그것이 늘 바울에게 시험거리가 되었습니다. 눈이 칩칩하고 시원치 않고 떳떳지 못합니다. 그 사탄의 가시, 사탄의 사자, 그 눈병이 바울을 쳐서 아프게 하고 쿡쿡 쏘게 하여 자고하지 않게 한 것입니다.
잘 되면 자기 자랑할까봐 하나님이 잘 되지 못하게 하여 가시를 주어서 그 가시로 낮추고 겸손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바울을 떠나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가시라는 것은 육신의 병도 되고, 다른사람 보기에 시원치 않게 보이는 그런 상황과 그런 사건들을 말합니다. 가시와 같이 쿡쿡 쏘고 쿡쿡 찔러서 고통당하는 일, 그런 가시를 사람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잘 되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다 잘 되면 교만해집니다. 바울에게 귀한 계시를 주었지만 그것으로 교만해질까봐, 다른 사람에게 떳떳하게 보이지 못하고, 자기도 고통당하고 다른사람에게 내놓을 것이 없는 그런 가시를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가시는 하나님이 보통 다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병으로 가시를 주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녀들이 가시노릇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경제적 가시, 가정적 가시가 있는데, 남편이 가시 노릇하는 집도 있고, 아내가 가시노릇하고, 아들이나 부모가 가시노릇하고, 또 같이 사업하는 사람이 가시 노릇하는 사람도 있어서, 그것 때문에 활발하게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시를 잘 극복하고 나가야만 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어 고통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바울을 사랑하셔서 바울이 자고하지 않게 하려고 주신 것입니다. 그 가시는 사단의 사자라고 하였습니다. 즉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에 지장이 많았습니다. 육체의 가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눈병이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9:8-9절에 다메섹에 성도를 잡으러 가다가 하늘로부터 해보다 밝은 빛이 내리 비치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하는 예수님의 음성과 밝은 빛으로 인해서 꺼꾸러졌는데 그 때에 그 빛에 의해서 소경이 되었습니다. 그 후 아나니아에게 가서 안수를 받고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는데, 그 때에 어느 정도 눈병이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4:15에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눈이 나쁘기 때문에 교인들이 볼 때에 너무 안타까워서 자기들의 눈이라도 빼서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이 눈이 좋지 않으므로 편지를 쓸 때, 바울이 불러주면 다른 사람이 대신 쓰게 하고 자신은 큰 글자로 편지의 마지막에 싸인을 하였습니다. 눈이 좋지 않으니까 이렇게 마지막에 싸인으로 바울의 편지인 것을 증명하였는데, 이것으로 보아 육체의 가시는 눈병으로 봅니다. 그런데 그 눈병은 쿡쿡 찌르며 쏜다고 합니다. 쿡쿡 찌르는 것은 아주 고통스럽습니다.

지난 9월에 알마타에 갈 때에 교회 달력을 약 700~800개를 가지고 갔는데, 달력이 무거워서 여러 사람이 나누어서 들었습니다. 나도 한 뭉치 들었는데 얼마나 무거운지 쌀 몇 말 만큼 무거웠습니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고, 들고 가느라고 팔에 힘을 좀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괜찮았는데, 얼마 있다가 왼쪽 팔이 쿡쿡 찌르더니 그 다음에는 오른쪽 팔이 쿡쿡 찌르며, 통증이 오른쪽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갔다가 하면서, 몇 달 동안 쿡쿡 찔러대는데 밤에 잘 때에도 한 번씩 쿡쿡 찌르는 겁니다. 쿡쿡 찌르는 데는 쑥 찜질이 좋다고 해서 쑥 찜질을 해도 낫지 않고, 후끈하는 파스를 붙이라고 해서 붙였더니 또 파스 붙은 자리가 염증이 나서 고생을 좀 하다가, 하나님께 기도도 했는데 기도해도 잘 안 고쳐 주십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하나님이 다 낫게 해주셨습니다. 다 낫게 해준지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쿡쿡 안 찌르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계속 쿡쿡 찌르면 그것도 큰 걱정입니다. 밤에 잘 때에 한 번 찔러대고, 조금 있다가 몇 번씩 또 찌르면 그 얼마나 고통입니까? 바울의 눈병이 이처럼 쿡쿡 찌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눈꼽이 나오고 눈꼽이 첩첩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도 아주 민망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을 보면 “시원치 않다”고 그랬습니다. 바울이 편지는 강하지만 만나보면 키는 조그만 하고, 눈꼽이 첩첩이고, 시원치 않습니다. 그런 가시가 있었으므로 전도하는데도 얼마나 손해입니까? 우선 전도하고 말씀을 전하려면, 첫째는 어느 정도 외모가 볼만해야 사람들이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겠는데, 바울의 외모가 시원치 않으니까 사람들이 “눈은 첩첩해가지고 저 사람이 뭐라고 말하는거
냐”하며 우습게 보니까 복음 전하는데 상당히 지장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눈병을 없애 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 특별기도를 했습니다.

바울이 세 번 특별기도를 했음

본문 8절에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하나님 앞에 눈병을 없애 달라고 세 번 특별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눈병하나 못 고쳐 주시겠습니까?
쿡쿡 찌르는 것 하나 못 없애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없애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뭐라고 응답을 하셨습니까?

2. 약한 것을 자랑할 것

본문 9절에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약한데서 온전해 짐

바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가시를 없애주시지 않고 뭐라고 응답하셨습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 하셨습니다. 눈병도 은혜로 주신 것이라는 겁니다. 즉 육체의 가시도 은혜로 주신 겁니다.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내 능력은 어디에서 온전하여 진다고 하였습니까?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진다고 하였습니다.
약한 것이 없어지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는 좋겠지만 너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병을 없애달라고 아무리 기도해도 안 없어집니다. 눈병을 주신 목적은 즉 육체의 가시를 주신 목적은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낮추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되는 것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 8:16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고난을 주시는 것은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은혜입니다.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가시를 주십니다. 그런데 그 가시는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가시가 없는 사람이 좋겠습니까? 가시가 있는 사람이 좋겠습니까? 가시가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는 징계를 주십니다. 또 하나님이 귀히 쓰시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가시를 주십니다. 그 가시로 말미암아 자기가 낮아집니다. 하나님은 낮아진 자를 귀히 쓰십니다. 가시를 안주시면 낮추지 못합니다. 낮추지 않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 없습니다. 일이 안되어 나가는 것도 하나님이 가시로 주시는 것입니다. 일이 안 되어야 낮아지겠으므로, 일이 안 되어야 하나님만 의뢰하겠으므로 일이 안 되게 하십니다. 그 때에 낮아져서 하나님만 의뢰하고 나가면 마침내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 머물게 됩니다.

그러므로 일이 잘 안 되는 것도 감사해야 됩니다. 가시로 주신 줄 알고 감사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가시를 하나님이 주시는데 거기서 연단을 잘 받아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만 의뢰해야 됩니다. 자기를 낮추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시가 오는 것을 손해로 보지 말로 유익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낮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시를 주실 때에 나를 낮추라고 주시는 줄 알고 낮추어야 합니다.

낮아져서 자기가 없어져야 됩니다. 즉 “나”라는 것이 다 없어져야 됩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좋겠다, 저렇게 하면 좋겠다, 뭘 주면 좋겠다”고 하지 말고 가시를 줄 때에 자기가 낮아져서 하나님만 의뢰하면 마침내 복을 주십니다. 거기서 연단이 되어 좋은 열매가 맺혀집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가시를 주시는데, 바울과 같이 육신의 병도 가시이고, 성격상 결함, 대인관계를 잘 못하는 것 등이 다 가시입니다. 또 사업에 하나님이 가시를 주십니다. 사업하는데 대적이 생깁니다. 혼자할 때에는 잘 되었는데 옆에 또 하나 기업체가 생겨서 가시 노릇을 합니다. 여러 가지 사고도 하나님이 가시로 주신 것입니다. 또 안한 것을 했다고 하는 것도 가시입니다. 누가 나더러 파리 백 마리 잡아먹었다고 할 때에 자기가 파리 백 마리 안 잡아먹었으면, 파리 백 마리 안 잡아먹었다고 말하고는,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러는데 왜 나한테는 파리 백 마리 잡아먹었다고 할까?”하며 뭘 잘못했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잡아먹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잡아먹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능성이 없는데, 왜 잡아먹었다고 하겠습니까? 파리하고 친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니까 잡아먹었을 것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파리를 잡아먹을 만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잡아먹었다고 하는 것 같다, 내가 다시는 파리를 내 부근에도 못 오게 해야 되겠다, 하나님이 싹 다 집어 치우라고 파리 백 마리를 잡아먹었다는 말을 듣게 만드신 것이다”하며 냄새나는 것을 다 집어 치우는 것입니다.

가시로 주신 것을 이겨라

요한 웨슬레의 부인은 요한 웨슬레를 깔고 앉아 때려 주곤 했다고 합니다. 요한 웨슬레 부인의 성격이 과격하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 레슬링 선수 같았던 모양입니다. 하여간 요한 웨슬레에게는 부인이 가시입니다. 또 남편이 가시노릇 하는 집도 있습니다. 술 마시고 와서 늘 괴롭게 합니다. 또 교회에 하나님이 가시를 주시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교회에도 가시가 하나씩 있는 것이 좋습니다. 없는 것이 좋기야 좋지만 교역자들이 그것 때문에 기도도 많이 하고 낮아지니, 가시가
있는 게 도리어 유익이 됩니다. ‘그 가라지를 빼버릴까요’ 하니까 예수님께서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 뿌리까지 뽑을까하니 가만 두어서 추수 때 가서 가라지를 뽑아 버리고 곡식은 추수하라’고 했습니다. 가라지 때문에 기도를 많이 하게 됩니다. 가라지 때문에 일이 순순히 잘 되어 나가지만은 않습니다. 교회에 염소새끼도 나오고, 이리도 들어오고, 여우도 들어와서 포도원을 헙니다. 그래도 그것은 가시로 주신 것이므로, 그것을 잘 이겨야 됩니다. 가시가 오면 무조건 낮아져야 합니다. 무조건 낮아져서 하나님만 의뢰해야 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머물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머물면 모든 것이 잘 되어 나갑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됩니다. 교역자도 능력 있는 교역자가 되고, 교인도 능력 있는 교인이 됩니다.

그 가시로 인해서 낮추고 시험해서 마침내 복을 주시고, 능력 있는 종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즉 능력 있는 목사가 되게 하시려고 가시를 주시고, 능력 있는 장로가 되게 하시려고 가시를 주시고, 능력있는 집사, 능력 있는 전도부인, 능력 있는 반장, 능력 있는 교인이 되게 하려고 가시를 주시는 것입니다. 목사가 보기 싫은 사람은 그 목사가 자기에게 가시입니다. 그러면 그 목사를 내쫓고 다른 목사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만드시려고 저런 목사를 보내 주셨다”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좋은 목사가 와서 잘하면 편안하고 쑥쑥 자라날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가시를 통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서 자기를 잘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책망을 받을 때도 가시로 받지 말고, 거기서 잘 참고 자기를 잘 만들어 나가면 유익이 많습니다. 자기를 멸시하고, 천대하고, 발로 누르며 인격을 무시하고 모독 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그것을 가시로 주신 줄 믿고, 거기서 잘 참고 하나님만 의뢰하고 나가면,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쑥쑥 자라나게 만들어 주십니다. 금강석이 됐는데, 누가 금강석을 무시하겠습니까? 금강석을 숫 덩이로 알면 숫 덩이로 안 사람만 바보이지 금강석이 숫 덩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 능력이 약한데서 이루어지므로 바울은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였습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

본문 10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위해서 약한 것, 능욕 받는 것, 궁핍, 핍박, 곤란 등 예수를 위해서 이것들을 받을 때가 약해지는 때입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핍박 오는 것, 궁핍 오는 것, 곤란 오는 것, 능욕 오는 것, 약한 그것을 기뻐하게 됩니다. 내가 약할 그 때가 곧 강함은 이러한 약한 것 때문에 하나님만 의뢰하므로 강해지는 것이고 그래서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약한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머문다는 것을 바울이 깨닫고 자기의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곤란을 기뻐하였습니다. 모세가 육신적으로 강할 때에는 사람을 죽이고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했으나 미디안 광야 사십 년 동안에 자기가 깨어지고 약해졌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여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도가 연약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할수록 하나님이 더욱 귀히 여기며, 능력을 입혀 주십니다.

고린도후서 12:1-10 주의 능력은 약한데서 온전케 됨.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주의 능력은 약한데서 온전케 됨
고린도후서 12:1-10

1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3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4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6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7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
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8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 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12:1 자랑하는 것이 유익하지 않으나, 주님의 환상들과 계시들에 대해서는 내가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 

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는데,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까지 이끌려 올라갔다.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신다. 

12:3 내가 이런 이를 아는데,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을 떠나 있었는지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신다. 

12: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들을 들었는데, 곧 사람이 감히 말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12:5 내가 이런 이를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 자신을 위하여서는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 

12:6 내가 만일 자랑한다고 해도 참말을 할 것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랑하지 않겠으니, 이는 누가 나를 보는 것이나 내게서 듣는 것 이상으로 나를 평가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12:7 또한 여러 가지 엄청난 계시들 때문에 너무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다. 

12:8 이것이 내게서 떠나도록 내가 주께 세번 간구하였으나, 

12:9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해지기 때문이다." 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오히려 나의 여러 약한 것에 대하여 크게 기뻐하며 자랑할 것이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위에 머물게 하려는 것이다. 

12:10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경을 기뻐하니,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하기 때문이다. 

1. 바울이 삼층천에 다녀옴

삼층천은 너무 좋은 낙원 

사도바울이 본문 9절에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바울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14년 전에 삼층천에 끌려 올라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는데 이는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라고 했습니다. 삼층천은 낙원인데, 본문 4절에“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일층천은 공간적인 하늘을 말하고, 이층천은 정신적인 사상계를 가르치고, 삼층천은 신령한 영계인 낙원을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사상, 철학 다 낙원에 해당이 되지 못합니다. 그것을 다 넘어서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야만 낙원이 있습니다. 바울은 낙원에 끌려갔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그 세계가 신비롭고 너무나 좋고, 너무 훌륭하고 아름답고 너무 즐거운 세계이기 때문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낙원이라고 했습니다. 자랑을 하려해도 말로 다 자랑할 수 없고, 무엇으로 표현하여야 낙원이 표현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입신과 바울의 삼층천은 다름

요즘에 입신하는 사람 중에 낙원에 갔다 왔다거나 천당에 갔다 왔다하는 이가 더러 있는데, 그것은 바울이 다녀온 삼층천과는 다릅니다. 입신한다는 것은 주관적인 환상이 나오는 몽환 가운데 빠지는 것인데, 꿈꾸는 것과 같습니다. 주관에서 나오는 것이고, 제가 하려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바울의 삼층천은 객관적입니다. 입신은 주관적이고 제가 하는 것이고, 바울은 하나님께서 끌고 가신 것입니다. 입신은 인본주의고 바울의 삼층천은 신본주의입니다. 바울의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입신은 자기가 하는 것이고, 자기가 원하면 할 수 있다고 하며, 자기 환상에 빠지는 것이며, 꿈꾸는 것과 같이 사상적인 주체가 없습니다. 그저 몽롱하게 나갑니다. 그러나 바울의 삼층천은 주체적인 사상이 있습니다. 또한 바울이 삼층천에 끌려간 것은 바울 스스로 원해서 간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입신을 했다고 하는데, 천당에 가보니까 아파트들이 많더랍니다. 믿음 생활 잘한 사람은 좋은 아파트에 살고, 아닌 사람은 그저 그런 아파트에 살더랍니다. 천당에 무슨 아파트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이 입신을 했다고 하는데, 지옥에 가보니까 어떤 사람이 계속 목만 집어넣고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살면서 늘 교만했었기 때문에 죽어서 목이 자꾸 길어져서 만날 그 길어지는 목만 집어넣고 있는 거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이 입신을 해서 지옥에 가보니까 조영걸 목사가 후덕덕 뛰고 있더랍니다. 조영걸 목사라고 부산에 있는 목사인데, 아마 그 사람이 평소에 조목사를 상당히 미워했던 모양입니다. 조목사가 예수 믿어서 천당에 갈 사람인데, 왜 지옥에서 후덕덕 뛰고 있겠습니까?

그처럼 입신했다는 자들이 말하는 지옥이 무슨 지옥이고 아파트는 무슨 아파트겠습니까? 그렇게 천당에 갔었다, 어디에 갔었다 하는 말들은 전부 성경에 맞지 않는 말로서, 성경에 위반된 꿈 하나 꾸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 것은 우리가 인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자기 꿈 한번 꾸고 왔나보다 하고 말아야 합니다. 바울의 삼층천은 위와 같은 입신이 아닌 하나님이 직접 끌어 데려갔다가 온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바울에게 가시를 주심

자기 자신을 자랑치 않은 바울

본문 5-6절에,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자랑하고 싶지만 누가 자신의 보는 바와 듣는 바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 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자랑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자기자랑 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해도 자기 자랑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바울이 자기 자랑은 하지 않고,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삼층천 다녀온 것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러 자랑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랑을 하고자 한다면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했지, 자기가 잘한 것은 자랑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기 자랑하는 자는 교만한 자입니다. 자랑은 자기가 할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 자랑하여야 하며 제가 한 것이 아닌 줄 알아야 합니다. 무얼 하나했다고 하면 자기가 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한 것은 ‘못한 것’뿐 입니다. 잘한 것은 하나님이 하심이고,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고 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죄인 가운데 괴수’라고 했고, ‘만삭되어 나지 못한 자’와 같다고 했고, ‘사도로 칭함을 감당치 못할 자’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자신의 되지 못한 것을 늘 말했고, 자신의 잘한 것은 자랑치 않았습니다.

낮추시기 위해 가시를 주시는 하나님

그래도 바울이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또다시 교만이 나옵니다. 교만은 실력을 배경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에게 가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본문 7절에,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크니까 하나님은 바울에게 가시를 하나 주십니다. 교만하면 망할까봐 바울을 낮추시고, 바울을 망하지 않게 하시려고 가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시를 주신 목적은 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입니다.

낮아져야 삽니다. 하나님이 가시를 주심은 낮추심이 그 목적입니다. 낮춰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신명기 8장 2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고 했고, 신명기 8장 16절에는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광야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낮추시며 성도를 시험하사 마침내 성도에게 복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가시를 주십니다. 성도를 낮추어서 마침내 복 주시려고 가시를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의 눈병

가시는 찌르는 것입니다. 가시는 사탄의 사자입니다. 이 가시는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육체의 가시는 눈병입니다. 그것을 왜 사탄의 사자라고 했는가 하면, 바울이 이전에 사탄의 종노릇하며 성도를 핍박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갈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주께서 나타나실 때에 바울이 거꾸러졌는데, 그 때에 바울의 눈에 비늘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그 뒤에 성 안에 들어가서 아나니아에게 안수를 받았을 때, 그 비늘이 벗겨져서 보긴 봐도 아주 다 낫지를 아니하고 그때 생긴 눈병이 내내 있었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 15절에,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고 했는데, 갈라디아 사람들이 바울에게 눈이라도 빼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바울은 눈병 때문에 잘 보지 못하고 보기에도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1절,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한 것을 보아도 바울이 편지를 쓸 때에 다른 사람에게 대서를 시키고, 마지막에 가서 큰 글자로 싸인하는 식으로 문안 축복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눈병을 ‘찌르는 가시’라 한 것을 보면, 쿡쿡 찌르는 고통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이 그 눈병 때문에 전도하는 일에 지장이 많았습니다. 보기도 좋지 않고, 다른 사람의 병은 고치면서 자기의 병은 못 고친다는 비방을 받게 되고, 바울 스스로 앞을 보는 것에도 시원치 않았습니다. 그 눈병인 가시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 가시만 없어진다고 하면 호랑이에게 날개 돋친 것처럼 하나님의 일을 참 잘하겠는데, 이 눈병 때문에 남의 멸시가 있었고 자기 스스로에게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눈병을 없애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이나 특별 기도를 했습니다. 본문 8절에,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눈병이 낫게만 된다면 하나님 일도 잘할 수 있고 남에게도 체면이 설 것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3. 약한 것을 자랑할 것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가시

그러나 하나님의 답변은 본문 9절에,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것이 나의 은혜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가시를 준 것은 바울에게 은혜로 준 것이라 하십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고난도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할 때에 은혜라 함은 고통은 하나도 없고, 병도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형통한 것만 은혜인 줄로 아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고난도 은혜로 주셨고, 가시도 은혜로 주셨고, 병도 은혜로 주셨습니다.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오는 모든 것
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으로 믿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아니시면 주는 법이 없음을 믿어야 합니다.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주십니다. 복이 아니면 주시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가시를 주시는데 이것이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약한 것, 질병, 자기를 찌르는 것 등이 있습니다.

본문 10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은혜입니다.
이것을 가시로 주셨습니다. 능욕 받는 것, 멸시와 천대 받는 것이 하나님이 가시로 주신 것입니다. 또한 궁핍한 생활도 가시인데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또한 핍박도 가시로 주신 것인데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또한 곤란도 가시로 주신 것인데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낮아지는 것과 무시 받는 것과 궁핍당하는 것과 고난당하는 것 전부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가시입니다.

자기를 찌르는 사람이 하나있으면, “이것은 은혜로 주신 가시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교만해서 망할까봐 우리를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하신 것입니다. 일이 잘 되는 것만 은혜가 아니고 일이 잘 못되는 것도 은혜입니다. 고구마넝쿨이 뻗쳐 나가는 것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끝머리를 잘라주는 것도 잘되는 것입니다. 또한 잡아 뒤집는 것도 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마찬가지로, 그냥 뻗쳐나가면 잘될 것 같
아도 잘라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냥 뻗쳐나가지 못하도록 잡아 뒤집어 가지고 아래에다가 놓아서 햇빛에 말라지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야 근본 뿌리에 열매가 맺혀지게 됩니다.

세상에 붙은 뿌리를 뽑아 하나님 앞으로 돌리심

우리의 근본 뿌리는 하나님 앞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열매 맺는 것이 근본 뿌리이지, 세상 뿌리는 뽑아주어야 합니다. 뽑아서 말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 어디에다가 재미 붙이면 안 됩니다. 어디에다가 마음을 좀 붙이면 안 됩니다. 어디에다가 소망을 붙이면 안됩니다. 붙으려 하면 뽑아주어야 합니다. 돼지밥통 뒤집듯이 잡아 뒤집어 말려놓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근본 뿌리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이제 거기서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순이 나는 것을 잘라 주어야 합니다.

가시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식구가 가시인 사람도 있고, 혼자 사는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가시입니다. 밥해먹는 가시, 세탁하는 가시, 다림질하는 가시, 그런 것들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재미를 붙이고 뿌리를 붙이고 세상으로 나가려는 것을 잘라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징계해서 못나가게 만들고 아예 실패하게 만들어 놓아야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될라 하면 뿌리를 뽑아놔야 합니다.

일이 틀어지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시로 주신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것이 하나 있어야 합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시려고 주시는 가시이기에, 그런 가시가 하나씩 다 있어야 합니다. 다 잘되면 안 됩니다. 다 잘되어나가면 하나님이 가만히 안 두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가만히 둬 두시지 않습니다. 가시를 주십니다. 우리는 그 가시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용한 사람을 더 귀히 만드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쓰실 때에, 그 종들을 만드시고 길러 가시면서 쓰십니다. 이용물로 만들어서 이용해먹고 내버리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이용하는 사람들은 만들어 가고 길러가고 온전케 만들어 가시면서 사용하고, 다 사용한 뒤에는 더 귀한 그릇으로 만들어서 하나님 앞으로 데려가십니다.

세상 기구나 이용물은 쓰면 쓸수록 닳아져서 없어집니다. 세상은 헐면 내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쓰시는 종들은 그게 아닙니다. 쓰면 쓸수록 만드시고 더 좋은 것으로 연단시키시고, 또한 기르시고 자라나게 만드시고, 많이 쓸수록 많이 만들어서 더 좋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혹자는 더러 “사람을 이용해먹으려 합니까?”하는데, 맞습니다. 이용해 먹으려 합니다. 하나님이 이용해먹으면 그건 큰 복입니다. 하나님께이용만 당하면 세상에게 이용당하는 것은 다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것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자라나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으로 연단이 됩니다. 이용당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이용 안 당하는 것은 무용지물입니다. 만들어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을 하나님이 이용하시려고, 만드시고, 기르시고, 연단시키시고자 했습니다. 금, 은, 보석으로 점점 만들어야 되겠는데, 이용만 해먹고 버릴 것 같으면 이용만 하면 그만이겠지만, 이용한 것을 하나님이 내버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더 좋게 쓰고 더 크게 만드시고, 더 아름답게 만드시고, 더 보배롭게 만드시고, 더 영광스럽게 만드십니다. 그러기에 가시를 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만큼 가시를 주십니다. 만들어서 귀히 쓰시려는 만큼 더 가시를 주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크게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를 바울이 듣고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세상 것은 쓰면 점점 닳아져서 없어집니다. 삽이나 곡괭이는 쓰면 점점 닳아져서 없어집니다. 자동차도 오래 쓰면 점점 닳아져서 없어집니다. 무슨 그릇도 쓰면 점점 닳아져서 없어집니다. 가스레인지나 무슨 기구나 수저들 다 쓰면 점점 닳아져서 없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은 쓰면 쓸수록 점점 실력이 늘고, 키가 크고 몸도 굵어지고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갖다가 귀하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됨

그러므로 가시가 필요하고 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가시를 크게 기뻐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자기가 핍박당하고 무능하여 할수 없는 것들이 많아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무서운 것도 있고 못가는 곳도 있어야 되는데, 갈 곳 다가고 못하는 것 없이 다 해치우고, 못할 말 없이 말을 다하면 못씁니다. 가다가 못하는 것도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제제를 받는 것이 있어야 하고, 할 수 없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됩니다.

바울이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 하여집니다. 약하니까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만 의지하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서 머물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강할 때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약할 때에는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인간이 할 수 없을 때에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자기가 하려하면 안 도와주십니다. 자기가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질 때에 하나님이 능력으로 같이 해주십니다.

어린아이의 손에다가 싸인펜이나 붓을 쥐라고 하고 천하명필인 아버지가 아이 손을 붙잡고 글을 쓰려고 합니다. 그럴 때에 이 아이가 자기가 뭘 좀 하려는 게 없어야 합니다. 그저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올려 그으면 올려 그어야하고 내려 그으면 내려 그어야 할텐데, 이 아이가 자기가 좀 해보겠다고 하면 되지를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동하는 대로 동하고 정하는 대로 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하시는 일인데 자기가 좀 해보겠다고 하나 이렇게 해보고 저거 저렇게 해보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주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도와주시옵소서!”해야 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합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자를 사용하시고,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할수 없겠다는 자를 도와주시고 자기가 하겠다는 자를 내버리십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질 때에 제가 헤엄쳐 나오려다가 점점 더 빠지지 않았습니까? 그 때에 할 수 없으니까 “주여! 나를 건지소서”하고 붙드니까 예수님께서 건져주셨습니다.

약할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고, 약할 때에 자기를 부인하게 되고, 약할 때에 자신이 무능한 것을 깨닫게 되고, 약할 때에 자신이 할수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때에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하고 주님께로 돌아옵니다. 주님께 그저 이용되기를 원하고 어디든지 가라하시는 데로 가려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서 머물게 되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전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지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재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은 이루어집니다.

출애굽기에 바로와 싸워서 이긴 것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한 것입니다. 모세는 그저 순종만 한 것입니다. 홍해바다 건넌 것도 모세가 하나님께 순종해서 건너게 되었습니다. 아말렉을 이긴 것도 하나님께 순종해서 이겼습니다. 모세는 손만 들었습니다. 광야 통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통과한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넌 것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넌 것입니다. 여리고성 점령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점령한 것입니다. 가나안 7족속 멸한 것도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멸했습니다. 가나안 땅 정복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정복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믿는 일 전부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입니다. 지혜 있고 통달하였다고 되는 게 아니고, 세상의 지식 많은 자가 그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돈 많은 자가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유능한 자가 그 유능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권세 많은 자가 그 권세로 되는 게 아닙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약한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강한 자에게는 그 능력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하려하면 제가 하는데 어떻게 나타납니까? 아이 손을 붙들고 아버지가 글자를 쓰려는데 아이가 제가 하려하면 되겠습니까? 자신은 약해서 아버지만 의지해서 하면 명필이 나올 수 있습니다. 아버지 손 붙잡고 아버지 하는 대로만 따라가면 천하명필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따라만 가면 명필이 됩니다. 

창세기 21장 1-2절에,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라고 했는데, 말씀대로 사라에게 권고하셨고 말씀대로 여호와께서 사라에게 행하시고, 그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서 아들 이삭을 낳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말씀이 아닌 것은 하지 마십시오. 말씀 아닌 것은 전부 마귀의 역사입니다. 말씀에 안 맞는 것은 전부 마귀역사이니까 하면 안 됩니다. 말씀은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입니다. 안 될 것 같아도 하나님의 만능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능력으로 이루어나가십니다.

고린도후서 11:16-33 바울의 수고와 봉사에 대한 자랑.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바울의 수고와 봉사에 대한 자랑
고린도후서 11:16-33

16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나로 조금 자랑하게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17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없이 자랑하노라 18여러 사람이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19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20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 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 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21우리가 약한 것같이 내가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22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23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30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1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32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 33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11:16 내가 다시 말하니, 아무도 나를 어리석은 자로 생각하지 마라. 그렇게 못하겠거든, 나를 어리석은 자로 받아들여 나로 조금 자랑하게 하여라. 

11:17 내가 말하는 것은 주님을 따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어리석은 자같이 확신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이다. 

11:18 많은 이들이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나도 또한 자랑하겠다. 

11: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꺼이 용납하고 있다. 

11:20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누가 너희를 집어삼키거나, 누가 너희를 사로 잡거나, 누가 얕보거나, 누가 너희의 얼굴을 때리더라도, 너희는 용납하고 있다. 

11:21 부끄럽긴 하지만, 우리는 너무 약해서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누가 감히 무엇을 자랑한다면, 어리석지만 나도 감히 자랑하겠다. 

11: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다.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냐? 나도 그러하다. 

11: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 같지만, 나는 더욱 그러하다. 나는 더 많이 수고하고, 감옥에도 더 많이 갇히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다. 

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11:25 세 번 채찍으로 맞았고, 한 번 돌로 맞았으며, 세 번 파선을 당하였고, 하루 밤낮을 바다에서 헤매었다. 

11:26 여러 번에 걸친 여행에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성읍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의 위험을 겪었다. 

11:27 또 수고하고 애쓰며, 여러 번 자지 못하고 굶주리고 목마르며,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기도 하였다. 

11:28 그 밖에도 날마다 나를 누르는 것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한 염려이다. 

11: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해지지 않겠느냐? 누가 걸려 넘어지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않겠느냐? 

11:30 내가 꼭 자랑해야 한다면, 나는 나의 약함을 자랑하겠다. 

11:31 영원히 찬송받으실 주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짓말하지 않는 줄 아신다. 

11:32 다마스쿠스에서 아레다 왕의 총독이 나를 잡으려고 다마스쿠스 성을 지키고 있었으나, 

11:33 내가 창문으로 광주리를 타고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다.


1. 거짓선지자의 비방에 맞서 자랑함

할 수 없이 자랑한 바울

본문 16-18절에,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나로 조금 자랑하게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없이 자랑하노라 여러 사람이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일인 줄 알지만 부득불 자랑하겠다고 바울이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어리석은 자가 된 것은, 거짓선지자들이 바울을 비방하고, 사도가 아니라고 하고, 또 하나님의 참된 일꾼이 아니라고 한 것에 대함이었습니다. 바울이 어쩔 수 없이 맞서서 자랑하는 이유는 바울에 대해서 사도가 아니다, 히브리사람이 아니다, 너희를 위해서 돈이나 빼앗으려고 간계와 간교한 수단을 써서 너희를 꾀이는 자이다, 하며 여러 가지로 모략중상하고, 비방을 많이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부득불 자랑할 수밖에 없어서 자랑하게 됐는데 사실 어리석은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자기 자랑은 어리석은 일임

자기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바울은 할 수 없이 한 것입니다. 교인들을 위해서, 교인들이 미혹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자랑하는 것이지, 자기입장에서는 유익이 없습니다. 오늘날도 자기 자랑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입니다.

자기 자랑하는 자는 반드시 손해를 봅니다. 자기 자랑 잘하는 자는 다른 사람이 멸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역자가 강단에서 자기 자랑 많이 하면 그 교회에서 저 목사는 척 나서면 또 자기 자랑한다는 말이 돌게 됩니다. 또 어떤 목사는 자기 부인자랑을 좀 많이 했다는데, 게다가 자기 자랑도 하곤 해서, “그 목사는 척 나서면 자기 자랑 아니면 여편네 자랑이다”라는 말이 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랑 하면, 교인들이 은혜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교회를 그만두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자기자랑하고 자기 여편네 자랑하다가 거기서 쫓겨나느냐는 말입니까? 아주 우스운 자입니다.

절대로 자기 자랑, 자기 여편네 자랑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 부인 자랑, 아들 자랑하는 사람에 대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자기 부인자랑은 100% 바보, 자기 아들 자랑은 절반이 바보, 50% 바보라고 합니다. 부인 자랑하는 것은 100% 바보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랑하지 말고, 부인 자랑하지 말고, 자기 아들 자랑하지 말고, 자녀들 자랑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남편자랑은 무슨 바보 같습니까? 부부간에 같으니깐 그것도 100% 바보입니다.
어떤 교역자 부인은 자기 남편만 계속 자랑합니다. 심방 가서도 자기 남편만 자랑하고, 누구 만나면 남편 자랑하고, 그렇게 하면 잘 될 것 같아도 안 됩니다. 그렇게 자랑하는 목적은 ‘그렇게 훌륭한 자기 남편이니까 너희들 우리교회 잘 나오라’는 의미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남편이 이만큼 훌륭하니까 이런 목사는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없다, 세계 제일이다, 그러니까 여기 나와서 교인 노릇 잘 하라는 목적으로 말하는데, 교인들이 바보가 아닙니다. 자기 남편만 제일이라고 말하고, 또 세계 제일이라고 하는데, 실제 자기가 세계 다 다녀봤습니까? 어떻게 자기남편만 혼자서 세계 제일입니까?

77세 난 노인이 세계 노인 마라톤에 나가서 1등 했답니다. 그래서 몇 사람 중에서 일등 했느냐고 물어봤습니다. 혼자서 출전해서 1등 했답니다. 아마 그 마라톤 대회 광고하기를 “세계적인 노인 마라톤 대회”라고 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대회에서, 50대는 50대끼리 뛰고, 또 60대는 60대끼리 뛰고, 70대는 70대끼리 뛴 모양입니다. 그런데 70대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질 않았으니까 뭐 천천히 걸어가도 일등 했다는 말입니다. 그 뭐 아무나 일등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자기 집안에서 자기 목사가 제일이라고 누가 못하겠습니까? 그와 같은 것입니다.

절대로 남편 자랑하지 말 것, 또 목사 부인들과 교역자 부인들은 더욱이 자기 남편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줄 알고 감사하고, 또 누가 물어봐도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자기남편이 뭘 잘한다, 뭘 잘한다, 기도 많이 한다, 성경 많이 본다, 무슨 학교 나왔다, 어느 학과 나왔다, 자랑하는 것은 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이 그렇다고 해서 귀히 쓰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먼저 심령이 살고, 영권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랑 안 해도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랑해도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은혜를 안주시고, 교만한 자는 물리칩니다.

본문 20절에,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거짓선지자에게 넘어간 사람은 이렇게 됩니다. 거기서 종살이하고, 잡아먹히고, 사로잡히고, 뺨을 치고 그래도 거기를 따라가는 겁니다. 그거 이상하지 않습니까? 거기 가서 갖은 모욕과 수욕을 다 당해도 미혹을 받으면 그게 옳은 줄 알고 따라갑니다. 그게 어리석은 자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배경을 자랑함

본문 21-23절에, “우리가 약한 것 같이 내가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라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히브리인이라고 자랑하고 다닌다는 말에 바울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의 조상이 아브라함이라고 자랑하고 다닌다는 말에는 바울도 그러하다고 한 것입니다. 바울도 이스라엘 사람이고, 히브리사람이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입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라는 말은, 거짓 선지자들이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일군이라고 자처하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군이라면 바울은 더욱 그리스도의 일군이라고 했습니다.

2. 주와 복음을 위해 고난당한 바울
주를 위해 갇힘

본문 23절 하반절에,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주와 복음을 위하여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도 하였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주를 위해서 수고를 많이 했습니까? 고난 많이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늘나라 가면 면류관입니다. 면류관 감입니다.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감옥에 얼마나 갇혔습니까? 갇히기도 많이 갇혔다고 하였습니다. 주를 위해서 감옥에 갇히는 일은 복된 일입니다. 면류관 감입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서 감옥에 몇 번 갇혔는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바울은 또한 매도 수없이 맞았습니다. 매를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복음과 주를 위해서 매를 얼마나 맞았습니까? 매 맞은 게 복입니다. 하늘나라가면 다 상급입니다. 주를 위해서 매 맞고 감옥에 갇히고 매 맞아봤습니까? 전도하다가 매 맞은 사람도 있습니다. 몇 번 맞았습니까? 전도하다가 매 맞은 것, 복음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는 것, 그 모든 것이 다 복된 일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면류관 상급으로 다 갚아주십니다.

우리 교단 사람이 아닌 어떤 조사가 있는데, 중국에 복음 전하려고 갔다가 잡혔답니다. 경찰한테 잡혀서 얼마 동안 감옥에 갇혀 있는데 그 안에서 금식을 했답니다. 돈은 몇 만 위안 갖고 갔는데, 돈 내놓으라고 할 때, 안 내놨다고 합니다. 돈 안 내놓고 감옥에 갇혀서 굶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이 “한국에서 온 조사인데 여기서 죽으면 자기 책임이라”고 걱정하더니 나가라고 하였답니다. 경찰은 돈도 빼앗지 못하고, 그 조사는 얼마 동안 복음을 위해서 감옥에 갇혔다가
나온 것이니 이다음에 하늘나라에 가면 상급감입니다. 우리 교역자들도 이렇게 가서 전도하다가 감옥에 갇혔다 나오면 상급감입니다. 바울이 매도 많이 맞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매 많이 맞았습니다.
우리가 매 한 번도 맞지 못한 거 참 부끄럽습니다. 이 성경 볼 때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전도하다가 매 한 번도 못 맞고, 감옥에 한 번도 못가고, 이거 뭐 이래가지고 어떻게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나서겠습니까?

신의주 북쪽에 심을철 목사가 있었는데 여러 해 동안 한 감옥에 갇혀서 매 많이 맞았습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한 5~6년 동안 감옥에갇혔다가, 8.15 해방 이후에 나왔습니다. 심 목사가 이북에서 교인들 가르칠 때 큰 은혜가 있었습니다. 감옥에 가서 매 많이 맞고, 구둣발로 차이고, 여러 가지 곤욕을 당하고, 또 여러 해 동안 추위와, 감옥에서 고생한 데 대해서 하나님이 영권으로 갚아 주었고, 또한 하늘나라의 상급으로 예비한 것이 분명합니다. 나와서 설교하니까 교인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심을철 목사와 연령이 비슷한 홍 목사라고 있었습니다. 홍 목사는 감옥에 안 갔습니다. 강단에 서도 영권이 없어 교인들이 은혜를 못 받았습니다. 그래서 홍 목사가 “하나님이여 나를 감옥에 갔다 오게 해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우면 그렇게 기도 했겠는가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나 그때는 감옥에 갈 기회는 다 지나갔습니다. 8.15해방 후인데 누가 감옥에 데려가겠습니까? 감옥에 가는 것도 시기가 될 때 제때 가야지 때가 지나면 못 갑니다. 다 제 때가 있습니다. 매도 제때 맞아야지 지나가면 못 맞습니다. 그러므로 매 맞을 때에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맞아놓으면 상급을 받을텐데, 그때 매를 안 맞으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바울이 매도 수없이 맞았습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

본문 24절에,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라고 했는데,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단 말입니다. 40에서 하나 감했다는 건 39대 씩 다섯 번 맞았다는 말입니다.

왜 39대씩 맞았느냐 하면 신명기 25장 1-3절로 보면, 사람은 때릴 때 40을 넘지 않게, 매 40대 이상을 때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40대 이상 때리면 그건 성경위반입니다. 40대 때리다가 조금 잘못해서 41대 때리면 죄 짓는 것이므로 하나 줄여서 39대씩만 때린 것입니다. 40대 때려도 괜찮은데, 40대 때리다가 잘못하여 한 대 더 때리면 죄를 짓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39대씩 때리는 게 제일 큰 매입니다. 매 가운데 제일 큰 매가 39대 맞는 겁니다. 그걸 바울이 몇 번 맞았습니까? 제일 큰 매를 다섯 번 맞았습니다.

한번 매 맞은 것도 큰 복인데 바울이 다섯 번씩이나 맞았으니 얼마나 큰 복입니까? 이거 하나 맞을 때마다 별 하나씩 올라가는 겁니다. 제일 큰 매인 39대씩 다섯 번씩 맞았으니까 39대 맞을 때마다 별 하나 올라가면 별 몇 개 올라갔겠죠? 다섯 개 올라갔습니다. 한번이라도 맞았으면 정말 크고, 굉장한 것인데 제일 큰 매를 한번이라도 맞았으면 참 괜찮은 것입니다. 별 하나라도 따면 그래도 괜찮은데, 별 하나도 못 따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태장과 뺨 맞기, 파선

본문 25절에,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21절에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라고 하였습니다. 매를 많이 때렸습니다. 태장이라는 것은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리는 것입니다. 엎드려뻗쳐 해 놓고 엉덩이 때리는 게 제일 무난한 것 같습니다. 다른 데 때리면 부상당하고 붉어지고 터지고 하지만, 엉덩이는 살이 두툼하니까 그나마 부상이 적은 것 같습니다. 바울은 태장으로 세 번 맞고, 한 번 또 돌로 맞았습니다. 사도행전 14장 19절에 보면, 돌에 맞아서 죽은 줄 알고 끌어냈었습니다. 돌로 바울을 때려서 거의 다 죽었는데, 죽은 줄 알고는 성 밖에 끌어내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으로살아났습니다.

우리가 복음 전하다가 돌에 맞아 봤습니까? 태장 맞아봤습니까? 또 사십에 하나 감한 매, 제일 큰매, 복음 전하다가 제일 큰 매 맞아봤습니까? 귀 뺨을 몇 대 맞아봤습니까? 복음전하다가 뺨 맞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 전하지 않으며 뺨 안 맞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이북에서 공산당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왼뺨 치면 너희들 오른뺨도 돌려댄다고 했지? 어디 진짠가 가짠가 보자”하면서 왼뺨 치고, 오른 뺨 안 돌리면, “이거 가짜구나”하고 또 오른뺨치고, 그렇게 6.25사변 전, 1949년도 크리스마스 날 즘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공산당들이 여러 교회 다니면서 큰 핍박을 했습니다. 많이 때리고 잡아가기도 했는데, 그것도 안 겪은 것보다 겪은 것이 낫습니다.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한 자는 의에 평강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1절에,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고 했는데, 당시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 파선했다는 것은 배타고 전도하러 가다가 배가 깨지는 사고를 당한 것으로, 요새로 말하면 자동차 타고 전도하러 가다가 세 번 사고 났다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가지 위험을 당하여 죽을 뻔함

본문 26절에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여러 번 전도여행을 했는데,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 등을 만나서 죽을 뻔 한 때가 여러 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하러 다니다가 강도 만나서 죽을 뻔 한 것도 복입니다.

본문 27절에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하였습니다. 복음 전하다가 주리고,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음 등을 당한 사람이 복 받은 사람입니다. 바울은 복음 전하다가 여러 번 굶고, 목마르고, 자지 못하고, 애쓰고, 춥고, 헐벗었는데, 이것이 하나님 앞에 가면 다 상급입니다.
“너 복음을 전하다가 몇 번 굶었느냐? 몇 번 목마르고,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헐벗었느냐?”고 예수님이 물어 보실 때에 복음 전하는 것을 변변히 하지 못한 사람은 답변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다가, 주를 위하다가, 믿음 지키다가 핍박받고 쫓겨난 사람들이 복이 있습니다.

3. 바울이 약한 것을 자랑함

본문 28절에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일로 당하는 여러 가지 육신의 고난 외에도, 교회가 잘 되기 위해서 염려하는 심적 고통이 말로 다 할 수 없이 크다는 것입니다.

본문 29절에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누가 약하면 자신이 약해진 것처럼 약하고, 누가 실족하여 신앙에서 뒤로 물러갔으면, 자기가 실족한 것처럼 애타하는 마음을 가지고 시험에서 실족한 자를 건져 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본문 30절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부득불 자랑한 것은 바울을 비방하는 자들 때문에 교인들이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되어서 자랑한 것뿐이고, 바울이 참으로 자랑하는 것은 자신의 약한 것들만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부득불 자랑한 것은 거짓 선지자들이 바울을 비방하여 교인들을 미혹시키니까 교인들을 미혹 안받게 하려고 부득불 바울이 자랑한 것입니다.

바울을 비방하는 자들이 “바울은 거짓 선지자다, 사기꾼이다, 남의 돈이나 빼앗아 먹는 자이다, 거짓말쟁이다”라는 등 비방을 많이 하는데, 그것을 가만히 두면, 그 말이 진짜인 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진짜 사기꾼인가 보다”라고 교인들이 믿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자손도 아니고,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고, 자기 명예 영광만을 위해서 다니는 자이다”라고 이렇게 교인들이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귀가 교회를 삼켜 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바울의 인
도를 받겠습니까?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나는 복음을 위해서 이렇게 걸어 왔다” 하는 것을 교인들에게 말해 준 것입니다. 사실은 이것이 자기에게는 유익이 없습니다. 바울은 나의 자랑할 것은 약한 것만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할 때가 큰 유익이 있습니다. 잘한 것을 자랑할 때에는 자기에게 유익이 없습니다.

본문 31-33절에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다메섹에서 아레다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쌔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성에 있을 때에 아레다왕이 보낸 방백들이 바울을 잡으려고 할 때에 바울이 성문으로 나갈 수 없어서, 들창문에 광주리를 매어 달아 바울을 담아 내리어 도망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의 약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즉 “나는 광주리 도망꾼이다”라고 하며 이렇게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바울이 광주리 도망꾼으로 떳떳하지 못합니다. 정정당당하게 대문으로 나가지 못하고 붙잡힐까봐 무서워서 뒤에서 광주리를 타고 도망했는데, 그 광주리를 타고 앉았을 때에 얼마나 한심했겠습니까? 광주리에 쭈그리고 앉아 줄로 달아 내리울 때에 광주리가 삐뚤어지면 떨어져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런 광주리를 타고 몰래 도망쳤으니 얼마나 비겁하고, 약한 자입니까? 그런 자신을 바울은 자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주를 위해 많은 고난을 당하고 수고를 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뿐이고, 자신은 언제나 약한 자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자기를 부인하였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약한 것을 부끄러워 하거나 그것으로 자기의 위신이 떨어질까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님만 자랑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12:1-6 바울이 삼층천(三層天)에 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바울이 삼층천(三層天)에 감
고린도후서 12:1-6

1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4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6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12:1 자랑하는 것이 유익하지 않으나, 주님의 환상들과 계시들에 대해서는 내가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 

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는데,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까지 이끌려 올라갔다.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신다. 

12:3 내가 이런 이를 아는데,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을 떠나 있었는지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신다. 

12: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들을 들었는데, 곧 사람이 감히 말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12:5 내가 이런 이를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 자신을 위하여서는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 

12:6 내가 만일 자랑한다고 해도 참말을 할 것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랑하지 않겠으니, 이는 누가 나를 보는 것이나 내게서 듣는 것 이상으로 나를 평가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1. 바울이 삼층천(三層天)에 감

본문 1절에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은혜 받은 것을 자랑하는것은 자기에게는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도가 아니다, 은혜 받지 못한 사람이다”라고 바울을 비방하는 사람들 때문에 교인들이 미혹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바울이 부득불 교인들에게 자랑하는데,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14년 전에 사도바울이 셋째 하늘에 끌려 올려 간 것입니다.

본문 2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14년 전에 어디에 끌려갔습니까?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라고 하였는데, 바울이 자신을 가리켜 14년 전에 끌려갔다 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는데, ‘그가 14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하늘은 제일 높은 곳을 가르칩니다. 즉 신령한 하늘나라로 영계를 가리킵니다. 첫째 하늘은 ‘공간적인 하늘’을 가리키며 물질계 입니다. 둘째 하늘은 ‘사상적 하늘’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사람의 사상을 말합니다. 따라서 둘째 하늘은 사상계, 즉 정신계를 가리킵니다. 셋째 하늘은 ‘영적 하늘’을 말하며, 바울이 신령한 하늘나라로, 즉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어딘가에 있는 천당으로 끌려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늘나라를 어디에 예비 하셨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높은 곳에 하늘나라를 예비하셨는지 그것도 모릅니다. 하여간 하늘나라를 예비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의 영이 그곳으로 갈 때에 얼마나 빨리 가는지 모릅니다. 빛이 가는 것보다 우리 마음이 가는 것이 더 빠릅니다. 빛이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 돈다고 합니다. 빛의 속도가 얼마나 빠릅니까? 그렇게 빠른데도 태양 빛이 지구에 내려 오려면 8분 걸린다고 합니다. 또 빛의 속도로 몇 백 년 내려와도, 몇 천 년 내려 와도 아직도 지구에 내려오지 못한 별빛이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멉니까? 그러나 우리 마음은 태양에 가는데 8분 걸립니까? 즉시로 마음이 태양에 갑니다. 몇 억 만 배 더 먼 별이라 해도 즉시로 가는 것입니다. 마음이 이처럼 빠릅니다. 마음이 빠르다는 것은 우리의 영도 이처럼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삼층천에 즉시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즉 하늘나라가 아무리 멀어도 우리의 영이 즉시로 올라갑니다.

본문 3절에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본문 4절에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갔다는 것은 하늘나라로 갔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란 신기한 것과, 신령하고 귀한 것을 다 보았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낙원(삼층천)에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며, 사람이 다 이르지 못할 것을 보았습니다.

본문 5절에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이란 그리스도 안에 있던 한 사람으로, 14년 전에 삼층천에 끌리어 갔던 사람으로 바울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순전히 하신 것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고 하며, “이런 사람”과 “나”를 갈라 놓았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께 이용된 때의 사람을 위해서는 자랑하겠으나 그것은 자기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 것이므로, 하나님을 자랑하기 위해서 자랑하는 것이고, 바울이 자신을 위해서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교만하지 않기 위해 이렇게 한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삼층천에 가서 본 것을 다 말하면 바울을 지나치게 생각할 염려가 있으므로 다 말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을 있는 모습보다 지나치게 생각하게 하면 안 됩니다. 실제 이상으로 남이 자기를 생각하게 만들면 그것은 벌써 잘못 된 것입니다. 말을 안하면 될 것을 괜히 말해서 다른 사람을 죄 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2. 바울이 삼층천에 간 것과 입신이 다른 점

그러면 삼층천에 갔던 사도 바울과 요새 입신하는 것과는 무엇이 다릅니까? 입신하는 사람들도 하늘나라에 갔다 왔다고 합니다. 입신해 보니까 예수님이 계시고, 입신해서 천당에 가보니까 사람들이 많이 있고, 뭐가 어떻고, 어떻다라고 말을 합니다.

바울은 피동적이고 입신은 능동적임

바울이 삼층천에 갔다 온 것과 요새 입신하는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 하면 입신하는 사람은 자기가 입신하려고 노력해서 하는 것입니다. 즉 입신해야 되겠다고 노력을 하고, 기도를 하고, 힘을 써서 입신을 하는 것으로 결국 자기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도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이 데려가신 것입니다. 바울은 순전히 피동적으로 삼층천에 간 것입니다. 그러나 요새 입신하는 것은 자기가 하는 것으로 능동적입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자기가 한 것이냐? 하나님이 한 것이냐?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바울은 주체성이 있고 입신은 주체성이 없음

또 입신하는 것은 꿈꾸는 것처럼 몽롱한 가운데서 모릅니다. 꿈꾸고 나온 것과 같이 입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정신이 똑똑하여 내가 몸 밖에 있었나? 몸 안에 있었나? 이것을 분별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것을 보면 주체성이 있습니다. 즉 바울은 주체가 있어 자기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려고 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입신하는 사람들은 주체가 없습니다. 꿈꾸는 것처럼 그저 끌리워서 몽롱한 가운데 빠져서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릅니다.

바울은 십사년 전에 한번만 갔으나 입신은 자주함

또 바울은 14년 전에 한 번 입신하고 더 이상 안 했습니다. 그러나 입신하는 사람들은 자주 합니다. 한 달에 몇 번씩, 일 년에 몇 번씩 하는데, 잘못 된 것입니다. 하여간 입신은 자기가 한 것, 꿈 꾸는 것처럼 몽롱한 가운데 빠지는 것, 또 자기가 가서 무엇을 보았다는 것으로 바울이 삼층천에 간 것과는 다릅니다. 바울은 삼층천에 간 다음에도 자신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아보려는 주체성이 있었고, 스스로 원해서 된 것이 아니고 우연히 된 것 등이 입신과 다른 점입니다.

입신하는 자들은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을 봄

이것은 입신(入神)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요새 신비주의자들이 입신했다고 하면서, 뒤로 넘어져서 꿈꾸는 것처럼 무엇을 보고 왔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입신한다, 꿈을 꾼다, 하늘나라에 다녀왔다 하는 것들은 바울이 삼층천에 다녀 온 것과는 다릅니다. 입신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허무맹랑한 말을 많이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입신했다는 사람을 보니까 욕설, 발광을 자꾸 하길래 사람들이 계속 잡아 입을 틀어막고 있더랍니다. 죽은 사람이 세상에 있었을 때 욕설과 발광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 죽은 사람의 귀신이 들어가서 그렇게 하게 된답니다. 어떤 입신한 사람은 자기가 천당에 가 보니까 ,한 사람이 배가 터져서 창자를 주어 담고 있길래 왜 그런가 물어보았더니, 세상에서 혈기를 많이 부려서 창자가 자꾸 나온다고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은 목이 길어서 목을 틀어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세상에서 교만하다가 그렇게 됐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입신해서 보니 어느 아는 목사가 지옥에서 뜨거워서 마구 뛰고 있더랍니다. 그 사람은 아마 속으로 그 목사를 미워했나봅니다. 그러니까 지옥에서 불 가운데서 뛰고 있었다고 하겠지요. 그런데 목사가 왜 지옥에 가 있겠습니까? 또 어떤 사람은 입신해서 천당에 가 보니까 하늘나라에 고층 아파트를 많이 지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잘 믿고 죽는 사람은 좋은 아파트에 가고, 잘 못 믿는 사람은 조그마한 아파트에 간다는 것입니다. 천당에 무슨 아파트가 있습니까? 이것을 보면 입신은 잘못된 것입니다. 천당은 신령한 나라인데 무슨 창자가 나오며, 무슨 목이 길어집니까?

입신했다가 나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허무맹랑한 허튼 소리를 많이 합니다. 그것은 실제가 아니고 꿈 꾸는 것처럼 자기 잠재의식에 있었던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꿈도 낮에 생각했던 것이 밤에 꿈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주사야몽(晝思夜夢)이라고 합니다. 이전에 생각했던 것이 입신해보니까 꿈꾸는 것처럼 나온 것입니다. 사실은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파트를 많이 보고 살았으므로 아파트가 나온 것이고 혈기부리는 것을 많이 봤으므로 창자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신한 사람은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을 본 것이지, 하늘나라의 것을 본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이 입신하여 하나님을 만나보고 왔다고 해서 어떻게 생겼냐고 하니까 수염이 난 영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수염이 난 영감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수염 난 영감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이 나온 것입니다. 입신해서 보는 것은 제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실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믿으면 안 됩니다. 입신하였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믿고 나가면, 그 다음에는 순전히 마귀노릇만 합니다. 성경을 믿어야지 입신했다는 사람의 말을 믿으면 마귀에게 끌리워 가서 마지막에는 망하고 맙니다.

다 잘못된 것입니다. 여기 바울이 삼층천에 갔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14년 전에 한번 갔던 것을, 말하지 않고 두었다가 14년 후에야 부득이 말한다는 것입니다. 입신한 것과 바울의 삼층천 간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우선 그 주체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입신은 자기가 하려고 애써서 하는 것이고 바울은 자기가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이끌려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몸 밖에 있었는지 몸 안에 있었는지 바울은 알아보려 애썼는데 입신한 것은 꿈꾸는 것 같아서 이 세상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입신은 자주 할수도 있지만, 바울은 14년 전에 이렇게 단 한번 외에는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입신은 원해서 되는 것이고 바울은 원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입신하는 것과 바울의 삼층천에 간 것은 아주 다릅니다. 하나님의 계시로 인해서 하나님이 데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듣게 한 것입니다. 몸 밖에 있었는지 몸 안에 있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다 아시느니라고 말합니다.

입신한 자들은 그것을 자랑하며 그것으로 한몫 보려고 함

바울은 14년 전에 한 번 갔다가 지금까지 말하지 않고 있다가 14년 후에 할 수 없이, 부득불 교인들을 위해서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입신한 자들은 그것을 늘 자랑하고 그것으로 한몫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고 하였는데, 바울은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하지 않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자기 잘하는 것을 자랑하지 말고, 못하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나의 잘한 것을 말해주는 것은 적이고, 나의 잘못된 것을 말해주는 것이 선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도오선자(道吾善者)는 시오적(是吾賊)이요, 도오악자(道吾惡者)는 시오사(是吾師)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잘못한 것을 말해 주어야 고칠 것 아닙니까? 또 고치므로 좋은 사람 될 것이 아닙니까? 잘한 것만 자꾸 말해주면 고치지 못합니다. 도리어 교만해지고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하는 사람은 희망이 있는 사람이고, 또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 와서 머물게 됩니다. 자기 자랑 안합니까? 자기 자랑하면 가다가 함정에 빠집니다. 잘한 것만 자꾸 높여 놓으면 실제로는 큰 사람이 아닌데, 진짜 큰 사람인 줄 알다가 그만 넘어가는 것입니다. 실제가 문제지 다른 사람이 높여주면 뭘 합니까? 높여 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높아집니다. 그러면 실제로 실력은 약한데, 자기가 큰 사람인 줄 알고 나가다가 자기 실력과 싸우는 날이
오는데, 그 때 가서는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약한 자인 줄 알아야 됩니다. 자기가 약한 자인 줄 알아야 하나님께 계속 부르짖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므로 약한 자로 있지 않고, 강한 자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자기의 약한 것을 모르면 어떻게 강한 것으로 만들어 나겠습니까?

2017년 11월 12일 일요일

고린도후서 11:1-15 바울의 열심.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바울의 열심
고린도후서 11:1-15

1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2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3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5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 6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7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8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라 9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 10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11어떠한 연고뇨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12내가 하는 것을 또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끊어 저희로 하여금 그 자랑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와 같이 되게 하려 함이로라 13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11:1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해 주기 바란다. 참으로 나를 용납해 주기 바란다.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고 있으니, 나는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정혼시켰다. 

11:3 뱀이 그의 간계로 하와를 속인 것같이 혹시 너희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렵다. 

11:4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않은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또 너희가 받지 않은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또 너희가 받지 않은 다른 복음을 받게 하면, 너희는 잘도 받아들이는구나. 

11:5 나는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11:6 비록 내가 말에는 능숙하지 못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를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다. 

11:7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한 것이 죄지은 것이냐? 

11:8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교회들에서 받은 비용은 그 교회들에서 빼앗은 것이다. 

11:9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 가난하였으나,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았다. 마케도니아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었다. 나는 모든 일에 너희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스스로조심하였고, 또 조심할 것이다. 

11:10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안에 있으므로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않을 것이다. 

11:11 왜 그리하였겠느냐?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냐? 하나님께서는 아신다. 

11:12 내가 지금 행하는 것을 내가 앞으로도 행할 것이니, 이는 우리와 같은 일을 한다고 자랑하고자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끊어버리려는 것이다. 

11:13 그러한 이들은 거짓 사도들이고 속이는 일꾼들인데,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다. 

11:14 그러나 놀랄 것 없으니, 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한다. 

11:15 사탄의 일꾼들이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들의 마지막은 그들의 행위대로 될 것이다. 


1. 바울의 호소
나의 어리석음을 용납하라

본문 1절에,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 했습니다.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말 하려고 하니 좀 용납해달라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말이라는 것은 자기 말, 자기 얘기에 대한 변명, 또 자기가 모든 사도보다 부족한 것이 없다는 것, 또 자기가 잘하는 것을 앞으로 이제 말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잘한 것을 말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 하였습니다. 그래도 부득불 고린도 교인들이 미혹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부득불 말을 하려고 하는데 그건 어리석은 말이지만 용납하고 들으라는 것입니다. 미혹 받지 않기 위해서 들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고, 열심히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고 교회를 잘 인도하려고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이 주신 열심, 하나님의 복음운동을 위해서 내는 열심, 하나님의 복음전파를 위해서 내는 열심을 가지고 이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바른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열심을 내고 바른 복음을 전하도록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본문 2절에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은 그리스도입니다. 정결한 처녀라는 것은 정절을 지키는 처녀로서 저를,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로 중매하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2. 미혹 받지 말 것
다른 말로 미혹하는 것을 용납하지 말라

본문 3절에,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에게 미혹을 받아서 그만 타락이 되었는데 너희도 간교한 마귀의 궤계에 미혹을 받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마귀는 간사한 계교로 우리를 꼬여 미혹시키려고 역사를 합니다.

본문 4절에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면 너희가 잘 받는다는 것입니다. 또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할 때도 너희가 잘 받는다는 것입니다.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전파해도 너희가 잘 용납한다는 것은 새 것이므로 다 용납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받아가지고 있던 것 보다 새 복음 하나 나오면, 좋아서 더 잘 받는다는 것입니다. 또 이미 받아가지고 있는 성령의 역사보다 다른 역사가 하나 나오면 잘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미 예전에 성령을 받았는데 다른 영을 받는다는 말은, 다른 방언을 한다, 뜨끈뜨끈해진다, 또 다른 신기한 역사가 나타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미 예수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는데 다른 무엇이 또 하나 나타나면 잘 받는다는 것입니다. 새 것이므로 또 무슨 거기에 재미있는 것이 있는 줄 알고 잘 받습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잘 받는다. 다른 복음도 너희가 잘 용납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이라는 것은 복음에서 조금만 다른 것입니다. 전체로 보면 같습니다. 그러나 세밀
하게 보면 조금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 다른 복음을 너희가 잘 용납 한다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절대 다른 것 용납하면 안 됩니다. 성경만 가르쳐야 되고, 성경에 있는 것만 받아야 합니다. 다른 학설, 인간의 방법, 인간의 수단 이런 것 용납하면 안 됩니다.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성가를 통한 다른복음을 막아야한다

복음성가를 통해서 다른 복음이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각종 다른복음이 복음성가를 통해서 물밀 듯 교회 안에 들어오고, 또 성경도 다른 복음이 잘못된 번역을 통하여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성경도 여러 종류의 성경이 있습니다. 다른 복음, 신신학자들이 번역한 성경이 많습니다. 이들이 새로이 성경을 번역해서 다른 복음을 성경번역에 반영하여 성경을 통하여 들어왔습니다.

복음성가를 통해서 다른 복음이 계속 들어오고 있는 것을 막아야 됩니다. 그것을 막지 못하면 마귀가 다른 복음을 가지고 들어와서, 이상하게 퍼지게 만들어서 교회를 다 멸망시키려합니다. 요즘 복음성가를 통해서 다른복음이 들어오는데, 이것을 잘 분별하지 못하면 그만 마귀가 들어와서 교회를 다 점령하고 맙니다.

복음성가에 재미를 붙이면 찬송가를 잘 안 부르게 됩니다. 밤새도록 복음성가만 부르는 겁니다. 그것을 막으려고 우리는 아예 복음성가는 부르지 않기로 총회에서 결의하였습니다. 그런데 복음성가 가운데도 좋은 것이 더러 있습니다. 또 아이들 찬송가 중에도 괜찮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서 어디까지 허락해야 되겠는가가 문제이고, 한계가 있어야 하는데, 그럼 누가 한계를 정해야 되겠는가? 혼자 정해서 몇 곡은 부르고 몇 곡은 부르지 말라고 한계를 정해준다고 해도 아이들이 그 말 잘 안 듣습니다. 10곡 부르라고 정하면 20곡을 부르고, 20곡만 허락하면 40곡, 50곡 갖다 부릅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복음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밤낮 지켜 앉아서, “뭘 불렀냐? 오늘 뭘 불렀냐?” 라고 묻고 다닐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찬송가만 불러야 한다.’고 한계를 그어놔야 복음성가라든지 다른 복음이 못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찬송가 뒤에 부록에 있는 복음성가는 불러도 괜찮다고 인정하고, 현재 복음성가가 100장 더 첨가 된 찬송가가 나왔다는데 보지 않아서 잘못된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여러 교단이 모여 선정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는 다른복음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봐도 괜찮겠습니다.

그러나 한계가 없는 다른 복음, 그 복음 성가, 한계가 없는데 어디서 어디까지 허락해야 되는지가 문제입니다. 좋은 곡이 몇 장 있다고 해서 허락해 놓으면 그러면, 다른 곡 또 듣고 다른 곡 또 들으면 그것을 누가 막습니까? 아이들 부르는 곡을 하나씩 다 확인할 수 없는데다가 또한 몰래 부르기도 합니다. 몰래 부르면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아예 이걸 못하게 하려면 한계를 그어놔야 합니다. 선을 그어놔야 다른 복음성가가 못 들어오지 선을 안 그어놓으면 다른 복음성가가 계속 들어오게 됩니다. 앞으로도 또 다른 찬송가가 나오게 되면 복음성가 중에 몇몇 곡이 추가로 들어가겠지만 찬송가책에 추가된 것만 인정해 줘야 합니다.

앞으로 나올 찬송가에 많은 복음성가가 추가로 나오게 되면 새로나온 찬송가를 총회에서 검토해서 그 가운데 잘못된 복음성가만 부르지 않도록 하고, 나머지 찬송가책에 수록된 곡을 다 불러도 좋다고 할 때에, 깨끗하게 한계가 딱 그어지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이 다른복음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정해진 한계가 없으면, 물밀 듯이 다른 복음이 잘못된 복음성가를 통하여 다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고수하기 위하여 찬송가에 수록되어 총회적으로 허락된 곡을 제외하고는 복음성가를 부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다른 복음은 안되는 것입니다.

복음성가를 개방해 놓으면 얼마 못가서 진리고수는 다 틀어집니다. 한편에서는 진리 전파하지만 복음 성가를 통해서 찬송은 전부다 신복음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교인들의 신앙을 다 망치는 것입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됩니다. 복음성가 몇 가지 좋다고 해서 부르고 다니다가 그 선을 타서 각종 다른 복음이 들어오면 그 다음에는 망하고 맙니다. 곧 망하게 됩니다. 찬송가에 있는 것만 한계로 정해야 합니다. 앞으로 찬송가 곡이 현재의 배나 된다고 해도 찬송가에 수록된 것까지만 한계를 그어야 합니다. 한계가 있으니까 그 안에서 몇 개가 잘못된 게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검토해서 그 곡만 부르지 못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정절을 지켜야 한다

언제나 교회가 깨끗하고, 정절을 지키게 하고, 다른 복음이 못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신복음주의와 기독교 사회주의 등이 많이 들어옵니다. 다 보지는 않았지만, 어린이 찬송가 중에 복음성가 좋은 것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것도 복음성가로 봐야 합니다.

어린이 찬송가에 있는 복음성가를 부르면 아이들이 재미있어서 더 잘할 것 같지만 믿음이 있어야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 어렸을 때는 시편찬송가 400장짜리 불렀어도, 아이들이 예배당 가득 차게 오고 교회도 가득 찼습니다. 어린이 찬송가 불러서 온 것이 아닙니다. 또 오늘날까지 우리가 유년주일학교 하면서 어린이 찬송가를 불러서 아이들이 온 것이 아닙니다. 어른들 부르는 찬송가 불렀어도 다 왔습니다.

성경중심으로 가르쳐도 다 왔습니다. 어린이 찬송가가 어른들 찬송이랑 다를 게 없습니다. 쉬운 말로 고쳤다고 하지만 어른들 찬송을 늘 부르다보면 믿음이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찬송가 쉽게 하나 불렀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믿음이 더 쉽게 들어갑니까?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지식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하면서 부르는데, 어른들 부르는,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 못하네, 참아도 못하네”하는 이 찬송이 얼마나 좋은 찬송입니까? 어린아이들이 우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 하나 모르겠습니까? ‘돈’이라는 말 갖다 붙이지 않아도 참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까? 힘쓰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이 들어가게 할 목적으로 일시적으로 쉽고 달콤하게 부른다고 해서 그것으로 믿음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 들어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여러 각종 방법이 지금 교회마다 들어오고 있는데, 마귀의 역사입니다. 신복음주의자들이 그러한 것들을 다 만든 것이고, 이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이 만든 것이고, 그 안에 물론 좋은 것 몇 개 있는 건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좋은 것 몇 개 때문에 나쁜 것 다 용납하여 변질이 되면 누가 다 책임을 집니까? 그러니까 다른 복음, 다른 찬송, 다른 성경 이것 막아야 합니다.

3. 바울이 자기를 변호함

지식에 부족함이 없는 바울

본문 5-6절에,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을 안다고 했습니다. ‘말에는 졸하나’라는 것은, 말은 잘하지 못하지만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다고 합니다. 바울이 진리의 지식에는 많이 깨달았습니다. 바울만큼 진리의 지식을 깨달은 사람이 그 당시에 없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값없이 전하다 핍박받음

본문 7-8절에,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비방을 했는데, “바울이 요를 받지않고, 돈 안 받고 가서 전도한 것은 수단이다. 지금은 값없이 전도하지만 좀 있다가 더 많이 받으려고 수단 쓰는 것”이라고 이렇게 비방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이렇게 변호하는 것입니다. 이 비방에 대해 바울은 “우리가 낮추어서 돈을 안 받고 희생적으로 너희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이것이 죄를 지은 것이냐?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해서 다른 교회에서 요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냐?” 라고 말합니다. 탈취한 게 아니란 것입니다.

교역자는 교인들에게 폐 끼치지 말아야 함

본문 9절에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고 했습니다.
용도가 부족하다는 것은 생활이 곤란하다는 뜻으로, 그러나 아무에게도 폐와 누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뭐 좀 도와달라고 손 벌리지 아니하고, 곤란하다고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라고 한 것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연보를 해서 바울에게 보내주었기 때문에 그것 가지고 내가 쓰면서 전도한 것이지 너희에게는 하나도 누를 끼치지 않고, 요를 받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한 것은 내가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을 했고, 또 앞으로도 조심하겠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에게 폐 끼치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교역자들이 교인들에게 폐 끼치기 쉽고, 또 전도부인들이 교인들에게 폐 끼치기 쉽고, 또 심방하는 사람들, 권찰들, 집사들이 교인들에게 폐를 끼치기 쉽고, 또 심방 가서 교인들에게 폐 끼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폐 끼치지 말아야 합니다. 교인들에게 한번 폐를 끼친 것은 교인들에게 이다음에 짐이 되고, 그 교인들을 바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폐 끼치지 말아야 합니다. 자꾸 와서 폐를 끼치면 그 교인이 다른데로 가버립니다. 그 집에 가서 폐를 몇 번 끼쳐보세요. 교회 잘 나오는 성도나 가정은 어느 정도 이해할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가정이나 믿지 않는 식구가 있는 가정에서는 분쟁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런 가정에서, 믿지 않는 식구가, “그 교회는 왜 남에 집에 와서 맨 날 먹기만 하느냐? 그놈의 교회 나가지 말라”고 핍박을 계속 하게 되면 마지막에 다른 데로 가고 맙니다. 교인 집에 절대 폐 끼치면 안 됩니다.
폐 끼치지 않는 정신을 가져야 됩니다. ‘폐가 되지 않을까?’하면서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 한다 고 하였습니다. “내가 조심하고 또 조심하리라”고 합니다.

바울의 진리고수와 교인 사랑

본문 10절에,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함은 아가야 지방은 고린도 교회가 있는 지방인데 그곳에서 진리를 자랑할 때에, 바울 속에 진리가 있으니까 막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진리가 막히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본문 11절에, “어떠한 연고뇨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내가 하는 것을 또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끊어 저희로 하여금 그 자랑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와 같이 되게 하려 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어떠한 연고뇨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라’는 말은 “아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바울이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왜 교인들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진정으로 사랑하는 줄을 알아야 됩니다. “아무개만 사랑한다. 자기는 사랑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다 같이 사랑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만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다 사랑하는 걸 언제나 알아야 하겠습니다.

4. 사단의 일꾼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

본문 13-14절에,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실제로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들이,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고 교회에 나와 있었다는 말입니다. 거짓 선지자들, 속이는 일꾼들, 이런 사람들도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고 나오는 것이 이상한일이 아니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본문 14절에,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사단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거짓 선지자도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고 나온다는 말입니다. 처음에 보면 잘 모릅니다. 첫 번에 보면, 일견에 보면 잘 모릅니다.

“이들이 참 그리스도의 사도냐? 아니냐?” 잘 모릅니다. 왜냐 하면 외부적으로는 더 번쩍 번쩍하고, 더 잘 하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물건도 가짜가 더 번쩍번쩍하지 않습니까? 이 거짓선지자들은 사랑이 많은 것처럼 하고 나오고, 의로운 것처럼 행동하고, 자기가 잘하는 것처럼 자꾸 자랑하니까 거기에 홀딱 반하는 것입니다. “아, 이들이 진짜 하나님의 사도다. 아, 이렇게 사랑이 쩔쩔 넘치는 데가 어디 있겠나?” 하며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쩔쩔 넘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왜 사랑이 쩔쩔 넘칩니까? 친절하고 사랑이 넘치고 교인들을 위해주고 하는데, 왜 이렇게 하겠습니까? 넘겨먹느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사랑이 많은 줄로 알면 안 됩니다.

여러 십년 전 서울역 건너편에 양동이라는 곳을 지나는데, 어떤 여자가 나와서 아주 친절하게 나보고 말하기를, “아, 이제 오셨습니까?” 하며 바쁜 사람을 좀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아, 이렇게 친절한 여자는 생전 보다 처음 봤다’ 생각했는데 보니까 틀렸습니다. 들어 갔느냐구요? 들어가지 않고 달아났습니다. 그 다음에 알고 보니 그들이 술집여자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친절하게 유혹하여 끌어들여서 죄짓는 여자들이라는 겁니다. 하마타면 끌려들어갈 뻔했습니다.
그러니까 친절하다고 다 좋은 게 아닙니다. 외부적으로 사랑이 쩔쩔 넘치고, 얼굴을 곱게 하고 와서 반갑게 맞이해도 그것은 가짜입니다. 그저 집에 들어갔을 때, 부인이 인사도 안하고 있다고 해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해도 그게 진짜입니다. 어떻게 늘 매일 친절하게 하겠냐는 말입니다. 늘 친절하게 하는 부인도 물론 있겠지만 보통은 늘 친절하게는 못합니다. 자기남편이 들어오면 들어 오는가보다 하고 아내가 쳐다보지도 않는 집도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아내가 진짜입니다.

천사를 가장한 사단 분별 법

그러니까 거짓선지자도 친절하게 하고, 사랑이 쩔쩔 넘치고, 또 달콤하게 해주고, 귀를 즐겁게 해주고, 또한 복이란 복은 만복을 모두 갖다 빌어주는 것은 그 사람 녹여먹느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나서 자기에게로 갖다 붙이고, 그 다음에는 자기의 이용물로 삼으려는 것입니다. 사단이 또한 광명한 천사로 나타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사탄이 나타나는 때가 있다고 합니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그런 것에 ‘주여’ 하고 엎드리면 마귀에게 잡히는 것입니다.

사단이 광명한 천사로 나타날 때에 뭘 보고 분별합니까? ‘진짜 천사냐? 광명한 천사냐?’할 때에, 사탄이 그렇게 천사를 가장하고 나왔는지를 어떻게 압니까? 아무리 광명한 천사로 나타났어도 뭐가 조금 달라도 다릅니다. 아무리 진짜인 것처럼 갖다 꾸며놔도 어떤 한 구석이 조금 다른 것이 있습니다. 성경과 다른 것이 있습니다. 사탄이 가장한 광명한 천사를 보고 “광명하다, 아 이거 진짜 천사다” 이렇게 판단하지 말고, “뭐 조금 다른 게 있지 않은가?” 하며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사탄을 분별해야 합니다.

사탄은 성경과 뭐라도 또한 조금이라도 다른 게 있습니다. 다 같은게 아닙니다. 또한 사탄이 광명한 천사로 나타날 때에, 자신의 심령과 신앙생활에 안 맞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해온 심령의 생활에 안 맞는 것이 반드시 있어서 마음이 편치를 않습니다. 심령이 편안치 않습니다.

외부적으로는 광명한 천사인데, 또 외부적으로 좋은 말만 해주는데, 심령이 편치 않습니다. 마귀가 하는 것이 어떻게 심령의 평안이 있겠냐는 말입니다. 또 어디인가 성경과 다른 것이 하나 이상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아무개가 훌륭하다, 훌륭하다” 해도, 가서 자세히 보면 성경과 모양이 다른 것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가짜인줄 알아야 합니다. 또 아무리 날고, 뛰어도 심령 속 깊은 가운데는 안정이 안 됩니다. 마귀역사가 어떻게 심령의 안정을 시킬 수 있냐는 말입
니다. 일시적으로는 속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심령의 안정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광명한 천사에, 사탄의 역사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또 목사들이라고 해도, 어떤 교역자 훌륭하다 굉장하다 해도 가보면 어딘가 성경과 다른 것이 하나라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귀역사인 줄로 알아야 합니다. 마귀역사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할렐루야 교회에서 손톱으로 긁어서 병 고친다고 손톱으로 피부를 긁어서 피를 내고, 그 다음에 그것이 곪아가지고 고름이 질질 나게 되면, 점점 나아가는 중이라고 속입니다. 성경에 그런 것이 어디 있습니
까? 성경 어디에 기도할 때 손톱으로 피부를 긁어서 피를 나게 해서 고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병 낫는다고 떠들썩하고 광명한 천사로 나타났어도 그것이 성경과 다르기 때문에 잘못된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사탄의 역사이고,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밥 거저 먹여준다. 몇 백 명, 몇 천명이 와도 거저 먹여준다”고 해 놓고 돈 좀 있는 사람한테는 돈 좀 자꾸 가져오라고 한답니다. 일반적으로 거저 먹여준다고 해놓고 뒤에서는 돈을 다 받으므로 사람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자기가 무슨 돈을 가지고 늘 거저 먹여주겠습니까? 할렐루야 교회에 돈이 굉장히 많답니다. 병 고친다 고친다 하며 자꾸 가져오라니까 다 바치는 것입니다. 사단의 일군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의 행위와 그 미혹된 결과

본문 15절에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행한대로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가만 둬 두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20절에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고 한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잘 용납한다는 말입니다. 그거 이상합니다. 잡아먹어도 용납하고, 종으로 삼아도 그저 용납해서 종살이하고, 사로잡아도 그저 사로잡혀서 종살이하고, 뺨을 쳐도 그저 맞고 종살이합니다.

한번 미혹되면 이렇게 됩니다. 미혹되어 종으로 삼으면 그저 종살이 하는 것입니다. 뺨을 치면 맞으면서 따라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잡아먹으면 그저 사로잡혀가지고 종살이 하는 것입니다. 미혹되면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미혹이 안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일단 미혹되면 결국은 하라는 대로 다 하게 됩니다. 돈 가져오라 하면 돈 가져가고, 집 팔아 가져오라면 다 팔아가지고 가고, 땅 팔아오라면 다 팔아가지고 가고, 그렇게 종살이 하는 것입니다. 미혹하는 세력들이 다 그런 것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처음에는 광명한 천사와 같이 잘 해주고, 달콤하게 해주고, 영광스럽게 해주는 것 같지만 결국 마지막에 다 잡아먹히고 마는 것입니다. 다 빼앗기고, 포로생활하고, 신앙자유가 없어지고, 그 사람들 하라는 대로 다 하게 되어 있고, 이제 종이 되고, 겨우 벗어난 자를 미혹해서 육체의 정욕에 빠지게 합니다. 빠뜨려서 종으로 삼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종살이 하는 것입니다. 불쌍합니다. 빼앗기고, 다 희생 당하고 그 다음에 종살이 당하고, 잡아먹히고, 이렇게 미혹 받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미혹 받지 않도록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고, 바른 교훈을 언제나 받고, 바른 진리에 서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