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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8일 토요일

욥기 18:1-21 빌닷이 욥을 공격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빌닷이 욥을 공격함
욥기 18:1-21

1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가로되 2너희가 어느 때까지 말을 찾겠느냐 깨달으라 그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 3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보느냐 4너 분하여 스스로 찢는 자야 너를 위하여 땅이 버림을 당하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기겠느냐 5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6그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 7그 강한 걸음이 곤하여지고 그 베푼 꾀에 스스로 빠질 것이니 8이는 그 발이 스스로 그물에 들어가고 얽는 줄을 밟음이며 9그 발뒤꿈치는 창애에 치이고 그 몸은 올무에 얽힐 것이며 10그를 동일 줄이 땅에 숨겼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에 베풀렸으며 11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래고 그 뒤를 쫓아올 것이며 12그 힘은 기근을 인하여 쇠하고 그 곁에는 재앙이 기다릴 것이며 13그의 백체가 먹히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 지체를 먹을 것이며 14그가 그 의뢰하던 장막에서 뽑혀서 무서움의 왕에게로 잡혀가고 15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그 장막에 거하리니 유황이 그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 16아래서는 그 뿌리가 마르고 위에서는 그 가지가 찍힐 것이며 17그의 기념이 땅에서 없어지고 그의 이름이 거리에서 전함이 없을 것이며 18그는 광명 중에서 흑암으로 몰려 들어가며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며 19그는 그 백성 가운데서 아들도 없고 손자도 없을 것이며 그의 거하던 곳에는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을 것이라 20그의 날을 인하여 뒤에 오는 자가 앞선 자의 두려워하던 것같이 놀라리라 21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그러하니라 

1. 빌닷이 욥을 공격함

성도가 악평(惡評)을 듣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님

본문 1-2절에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말을 찾겠느냐 깨달으라 그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친구 발닷이 욥을 핍박했습니다. 그가 욥을 향해서 “너희가 어느 때까지 말을 찾겠느냐”라고 하였는데, 너희라고 한 것은 욥의 편에 서서 욥을 옳다고 한 여러 사람들을 다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을 찾겠느냐’라고 한 것은 변명하는 말을 찾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깨달으라 그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고 하였는데, 변명하는 말을 찾지 말고 자신의 죄와 잘못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야 우리가 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3절에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보느냐”고 하였는데, 빌닷은 욥이 자기들을 짐승처럼 여기며 부정하게 본다고 하였습니다. 욥기 17장 4절에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워 깨닫지 못하게 하셨사오니 그들을 높이지 아니하시리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이 사람이 오해를 해서 욥이 자기들을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취급했다고 보태서 말하는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이 마음이 가리어져서 깨닫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높이지 않으시는 것이 사실입니다. 욥은 그들이 지금 눈이 가리어져 깨닫지 못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욥이 자기들을 짐승으로 취급하며 부정하게 여겼다고 욥을 공격하고 핍박하는 것입니다. 바른 말을 해주어도 듣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욥의 바른 말이 자기들에게 손해를 주는 것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또 욥이 자신들을 무시해서 짐승과 같이 취급하고 부정하게 여긴다고 생각하여 욥을 공격하고 핍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실은 거짓말을 보태서 욥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어느 때에나 거짓말을 보태서 성도를 비방하고 핍박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예언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5장에서 너희를 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비방하는 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11절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바로 믿으려고 하면, 주위에서 그 사람을 욕하고 핍박하며 거짓으로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믿으려고 하면 우리를 욕하는 사람과 핍박하는 사람과 거짓말로 악한 말을 하는 사람과 악평하고 훼방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욥이 바른 신앙을 가지고 나가니까 욥의 친구들이 욥을 향해서 악평을 하고 비방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성경대로 된 것입니다. 반드시 바로 믿으려고 하면, 핍박이 오고 거짓말로 비방이 옵니다. 악한 말로 멸시 당할 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대로 된 것이므로, 이상히 여기지 말고 잘 참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13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험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시키시려고 불같은 시험, 거짓말로 악평하는 말, 거스려 욕하는 말로 오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성경대로 되는 것인 줄 알아야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잘 참아야 합니다. 

애매히 고난을 당해도 주를 생각하고 참으면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9-20절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고 하였습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을 때에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잘 참으면 복이 있고 또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을 때에 잘 참으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 죄가 있어 고난당하는 사람도 있고, 또 애매히 고난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선을 행하다가 핍박을 받아 고난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때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잘 참으면, 그 고난이 유익이 되어 반드시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욥은 죄를 짓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와서 악평을 하고 비방을 하며 핍박을 합니다. 성도가 바로 믿으려고 하면 이런 것들이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핍박이 올 때에 ‘감사합니다. 나 같은 자도 성경대로 핍박을 받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하고 감사함으로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너 분하여 스스로 찢는 자야 너를 위하여 땅이 버림을 당하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기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빌닷이 욥을 향하여 “너 분하여 네 살을 스스로 찢는 자야”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벌하시는데, 욥이 회개하지 않고 변명만 하는 것은 욥 스스로 자신의 살을 찟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를 위하여 땅이 버림을 당하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기겠느냐’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다 하나님의 견고한 정의, 공의와 관련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견고한 진리와 공의가 너 때문에 그 자리에서 옮겨갈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버림 받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견고한 진리와 공의가 그대로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것은 옳은 말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공의는 땅과 바위와 같이 그 자리에 변동 없이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진리이지만, 욥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입니다. 욥은 특수한 경우입니다. 특수한 예로 고난을 당하는 것인데, 보편적인 진리를 들어 욥을 공격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욥을 공격하는 데에 이용하면,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진리의 말씀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데에 사용해야 하겠는데, 그것을 바로 믿는 사람을 공격하는 데에 이용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요즘도 성경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핍박하며 남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성경말씀을 가지고, 바로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공격하는 데에 사용하는 사람들이 요새도 있고 옛날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은 성경대로 되는 것입니다. 

2. 빌닷이 악인이 받을 벌을 진술함

악인이 받을 보편적인 징벌

본문 5절에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진리의 말씀이고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그 말이 욥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라고 한 것은 악한 사람은 결국 불행하게 된다는 것입
니다. ‘빛이 꺼진다’는 것과 ‘불꽃이 빛나지 않는다’는 것은 행복이 없어져서 불행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악한 사람은 결과가 비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6절에 “그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장막은 가정을 가리킵니다. 즉, 악인의 가정은 불행하게 되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진다는 것입니다. 빌닷은 악인의 가정이 불행하게 된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말한 것입니다.

시편 27편 1절에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공경하며 말씀대로 바로 나가는 사람에게는 여호와께서 항상 빛이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잠언 14장 22절에 “악을 도모하는 자는 그릇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빛 가운데에 사는 사람은 여호와께서 항상 그 앞에 빛을 비추어주십니다.
그러나 악인은 하나님께서 그 앞에서 떠나시기 때문에 빛이 없어지며, 그 등불은 반드시 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자신도 망하고 가정도 망하고 자손도 망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현재에 있는 빛이 꺼지며 불꽃이 빛나지 않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악인이 사는 가정(장막)도 빛이 어두워지고 그 위에 등불이 꺼지므로 흑암을 만나 비참하게 됩니다. 

본문 7절에 “강한 걸음이 곤하여지고 그 베푼 꾀에 스스로 빠질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은 강하게 다니지만 조금 있으면 피곤 해져서 악해진다는 것입니다. 또 악한 사람은 그 베푼 꾀에 스스로 빠집니다. 시편 7편 15절에 “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판 웅덩이에 제가 빠졌습니다. 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빠뜨려 죽이려고 웅덩이를 팝니다. 그러나 결국은 자기가 그 웅덩이에 빠집니다. 하만이 그랬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오십 규빗이나 되는 높은 나무를 세워놓았는데, 거기에 자기가 달렸습니다. 그와 같이 악한 사람들은 남을 죽이려고 웅덩이를 파지만 자기가 판 웅덩이에 자기가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으로 하여금 함정에 빠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귀의 덫에 걸리지 않는 법

본문 8-9절에 “이는 그 발이 스스로 그물에 들어가고 얽는 줄을 밟음이며 그 발뒤꿈치는 창애에 치이고 그 몸은 올무에 얽힐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물고기나 새가 그물에 들어가서 덮이는 것처럼, 악한 자는 자기 발로 그물에 들어가 그물에 덮여 나오지 못합니다. 그리고
얽는 줄인 올무를 밟아서 얽히게 됩니다. 

본문 9절에서 “그 발뒤꿈치는 창애에 치이고 그 몸은 올무에 얽힐 것이며”라고 하였는데, 발꿈치가 창애에 치이면 걸어갈 수 없습니다.
또 몸이 올무에 걸리면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와 같이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되는 것입니다. 그만 자기 몸으로 얽매이는 데에 빠지게 되어 거기에서 스스로를 얽어매는 것입니다. 시편 9편 16절에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그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은 자기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혀 매여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망합니다. 

그리고 발이 창애에 치였다고 하였는데, 창애는 새나 짐승을 잡는 틀을 말합니다. 창애를 밟아 발이 창애에 치이면 못 나갑니다. 그래서 노루 잡는 창애, 토끼 잡는 창애 등을 산에다 놓고 짐승들을 잡는 것입니다. 그렇게 족제비도 잡고 오리도 잡는데, 창애에 한 번 치이면 못
나옵니다. 또 몸은 올무에 한 번 걸리면 못 나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악한 사람은 가다가 한 번 올무에 걸릴 날이 옵니다. 지금은 강한 걸음으로 잘 뛰어 돌아가지만, 하나님 앞에 바로 하지 않고 믿음을 안 지키고 양심을 안 쓰면,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지 않으셔서 반드시 가다가 어느 코에 걸려도 한 번 걸리는 것입니다. 반드시 함정에 빠지고 올무에 걸려서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나오지 못할 때가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셔야 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양심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하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실 때에는 아무리 올무와 덫이 많아도 거기에 안 빠집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고 믿음을 쓰지 않고 기도하지 아니하며 양심을 안 쓰고 나가면 하나님의 보호가 떠납니다.
그렇게 성경대로 나가지 아니하면, 지금은 잘되는 것 같고 강한 발걸음으로 씩씩하고 용감하게 잘 나가는 것 같지만, 반드시 가다가 함정이 오고 창애가 옵니다. 그물에 씌워서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망할 날이 오는 것입니다. 새가 아무리 빨리 힘 있게 날아가도 그물에 씌운
다음에는 별 수 없습니다. 그물에 씌운 다음에는 새가 아무리 힘 있게 날려고 해도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능수능란한 새도 꼼짝을 못합니다. 

산에서 노루가 빠르게 잘 뛰어 다닙니다. 그런데 노루를 잡는 방법은 노루 올가미를 놓거나 함정을 파는 것입니다. 노루가 잘 다니는 길에다 편평하게 함정을 사람 한 길쯤 되게 내려 팝니다. 그런데 위는 넓고 밑으로 갈수록 차차 좁아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위에다가 가는 막
대기를 걸어놓고 거기에다 풀이나 나뭇잎사귀를 놓아둡니다. 그러면 노루가 늘 다니던 길이므로 함정을 판 것을 모르고 가는 막대기를 걸어놓은 곳으로 가다가 와장창하고 빠지는 것입니다. 빠지면 사람 한 길쯤 되는 깊이인데다 밑으로 갈수로 좁아지게 해놓아서, 아무리 애를 써도 다리가 땅에 닿지 않고 배는 옆에 닿아서 밤새도록 있게 됩니다. 그리고 아침에 사람이 그것을 보고는 메고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루가 잘 뛰어도 별 수가 없습니다. 또 함정이 있는 것을 모릅니다. 보통과 같이 만들어놓았기 때문입니다. 또 새도 갑자기 날아가다가 그물에 씌우는데, 그물이 안 보이는 것입니다. 가는 명주와 같은 것으로 그물을 했기 때문에 가까이 가야 보입니다. 그래서 그물을 보고 멈추려고 해도 오던 길로 나갈 수밖에 없어서 그물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 고기를 투망치는 것은 어떻게 하는지 압니까? 예전에 박 목사가 투망을 치자고 해서 숭어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습니다. 박 목사가 투망을 아주 잘 칩니다. 그래서 그물을 해가지고 내던지는데, 사방 넓게 그물이 바다로 쫙 내려갑니다. 삥 둘러 내려가는데 그 안에 있는 고기는 다른 데로 못 가는 것입니다. 그 안의 물고기들이 그물이 내려올 것을 알았겠습니까? 물고기가 사람만큼 재간이 있어도 별 수가 없습니다. 박 목사가 오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꽤 큰 것들로 상당히 많이 잡아왔습니다. 고기는 투망이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없고 새는 그물 쳐놓은 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가다가 거기에 씌웁니다. 대부분의 짐승들은 함정, 올가미 파놓은 것을 모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우리 사람도 어디에 함정이 있는지 모릅니다. 또 어디에 그물이 있는지 모릅니다. 또 어디에서 투망이 내려올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도 가다가 씌워서 잡혀 죽고 감옥에 가고 패가망신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쫄딱 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을 잘 벌고 힘도 있고 강하게 나가다가 갑자기 꺼꾸러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아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고기나 새는 못 가르치지만 사람은 가르칠 수 있습니다. 성경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물에도 안 씌우고, 투망에도 안 걸리고, 함정에도 안 빠지고, 올가미에도 안 걸립니다. 마귀는 사방에 그물을 쳐놓고 함정을 파놓고 올가미를 놓습니다. 올가미에 모가지가 걸리면 못 나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전혀 모릅니다. 사람은 알 수가 없습니다. 알게 만들어놓으면 누가 걸리겠습니까? 모르고 가다가 걸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아는 방법은 성경을 통한 것입니다. 아무리 함정이 있어도 올가미가 있어도, 걱정이 없습니다. 투망과 창애가 와도 걱정이 없습니다. 성경대로 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니까 마귀의 올가미, 마귀의 함정, 마귀의 그물을 다 아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에 안 걸리게 성경에다 잘 기록을 해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대로만 나가면 아무리 마귀의 함정이 몇 백 개, 몇 천 개, 몇 만 개가 있어도 안 걸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성경대로 나가는 사람은 손도 못 댑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원리 원칙, 진리,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나가면 형통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입니다. 아무리 함정이 많고 올가미가 많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많아도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나가면 거기에 안 빠지고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조금만 떠나면 즉살(卽殺)입니다. 말씀에서 조금만 떠나면 빠지고 걸리고 마귀에게 끌려갑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말씀 안에 굳게 서야지, 말씀 밖으로 나가면 못 당하는 줄 알아야 합니다. 항상 믿음에 서고 말씀에 서서 그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말씀대로 살까?’하면서 성경을 잘 배우고, 성경말씀대로 바로 하려고 해야 합니다. 바른 길을 걸어 나가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말씀이 아닌 곳으로는 가지 말고, 말씀이 아닌 것은 듣지 말고, 말씀이 아닌 것은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잘될 것 같아도 그 잘되는 것이 틀린 것입니다. 잘되는 것이 낚시의 미끼입니다. 먹을 것, 좋은 것을 따라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다 낚시의 미끼이며, 잡히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오징어 잡는 사람에게 내가 한 번 들어보았는데, 오징어를 잡으려고 해도 그것들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배에다 전구를 몇 백개를 달아놓고 상당히 밝은 빛을 멀리까지 비추게 한답니다. 그렇게 하면 고기들이 빛이 비추는 환한 곳을 향해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마치 나비가 전깃불을 찾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배 부근에 고기가 많이 모여온답니다. 그리고 모여오면 거기에다 낚시를 던져서 오징어를 많이 잡는다는 것입니다. 오징어를 이렇게 잡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밝은 데로 찾아가다가 걸리고 또 먹을 것, 미끼를 많이 주면 미끼를 찾아가서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도 사람들에게 미끼를 많이 주고, 그것을 보고 온 사람을 다 잡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대로만 나가면 그것이 아무리 있어도 괜찮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창애에 치이지 않아야 하고, 올무에 걸리지 않아야 하며,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러려면 항상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영적 신앙의 빛 가운데로만 걸어가야 합니다. 또 돈을 따라가고 세상을 따라가고 향락주의를 따라가다가 함정에 빠지게 되므로, 절대 돈을 따라가지 말고 예수를 따라가고 말씀만 따라가야 합니다. 

악인의 결국은 멸망임

본문 11-12절에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래고 그 뒤를 쫓아올 것이며 그 힘은 기근을 인하여 쇠하고 그 곁에는 재앙이 기다릴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떠난 사람은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라게 하고 그 뒤를 쫓아오며 그 힘은 기근을 인하여 쇠하여지고 그 곁에는 재앙이 기다립니다. 기근이 오고 재앙이 오고 무서운 것이 와서 쇠하게 만들고 놀라게 만듭니다. 

본문 13절에 “그의 백체가 먹히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 지체를 먹을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백체(百體)가 먹힌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피부의 지체를 가리킵니다. 즉, 피부입니다. 그 피부가 먹힌다는 것입니다. 또 ‘사망의 장자가 그 지체를 먹을 것이며’라고 하였는데, 사망의 장자는 질병을 말합니다. 질병이 와서 피부를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욥이 독창이 나서 기왓장으로 긁고 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욥이 지금 온 몸에 독창이 났는데, 그것이 백체가 먹힌 것이며, 사망의 장자, 즉 질병이 와서 그 지체를 먹게 되었는데, 그것은 욥의 죄 값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그가 그 의뢰하던 장막에서 뽑혀서 무서움의 왕에게로 잡혀가고”라고 하였습니다. 무서움의 왕은 사망을 가리킵니다. 마지막에는 사망에게 잡혀간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은 죄를 짓다가 몸에 병이 나고 마지막에는 사망으로 끌리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악한 사람은 보통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욥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죄 값으로 당하는 고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욥의 친구는 욥을 아주 악한 사람으로 취급하여, 조금 있으면 망하고 마지막에는 사망이 와서 잡아먹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그 장막에 거하리니 유황이 그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유황이 처소에 뿌려진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소돔 고모라에 유황불이 내려온 것처럼, 유황불이 내려와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집은 다른 사람이 와서 거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6절에 “아래서는 그 뿌리가 마르고 위에서는 그 가지가 찍힐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를 뿌리라고 하면 뿌리는 말라지고, 가지를 자녀라고 하면 자녀는 다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그의 기념이 땅에서 없어지고 그의 이름이 거리에서 전함이 없을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죄 값으로 비참하게 되었다가 망하여 그 이름도 없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보통은 죄 값으로 다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다가 망합니다. 자녀도 망하고 자기도 망합니다. 자녀는 찍혀지고 자기는 시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후대에 전함이 없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0장 20절에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하였는데, 예수 믿는 사람의 이름은 하늘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3절에도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습니다. 언제 기록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시편 139편 16절과 에베소서 1장 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139편 16절에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형질이 생기기 전, 또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정하기 전에 주의 책에 모든 것이 다 기록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또 에베소서 1장 4절 상반절에는 “또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하였습니다.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셔서 하나님의 생명책에다 기록하여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명책에 누구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보면 있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시고 기록이 안 된 사람에게는 선물을 안 주시는데, 그 선물은 믿음입니다. (엡 2:8). 믿음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 주십니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에게만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벌써 창세 전에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지워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한 번 기록이 되었으면 영원히 그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가도 그 이름이 영원히 있습니다. 그러므로 귀신이 항복 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하였습니다. 귀신이 항복되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지만,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은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호적에 올라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의 나라로 가서 영생 복락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므로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여자도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행동을 해야 하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바로 살아야 합니다. 마귀의 아들 노릇을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늘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므로 이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합당한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본문 18-19절에 “그는 광명 중에서 흑암으로 몰려 들어가며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며 그는 그 백성 가운데서 아들도 없고 손자도 없을 것이며 그의 거하던 곳에는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악한 사람의 결과를 말하는 것으로, 악한 자는 쫄딱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보편적인 진리로, 욥에게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욥의 친구는 그 진리를 욥에게 적용시키는 것입니다.
욥이 아들도 다 죽고 쫓겨나서 살고 있으므로 욥에게 적용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욥에게 적용시킬 성경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는데 보통 악한 사람은 다 이렇게 쫄딱 망한다는 것으로, 옳은 말이나 욥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악한 사람은 다 이렇게 망합니다. 

본문 20-21절에 “그의 날을 인하여 뒤에 오는 자가 앞선 자의 두려워하던 것같이 놀라리라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그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불의한 자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는 다 이렇게 비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놀랄 만한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는 다 이와 같이 그 처소며 관계된 한 사람도 남지 않고 후대가 다 끊어지며 비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복된 사람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고,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창성해집니다. 그리고 자손들이 복을 받아서 빌어먹는 법이없고 또 그 자손들도 창성해나간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의 자손이 창성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