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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5일 일요일

열왕기하 11:1-21 아달랴와 요아스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아달랴와 요아스
열왕기하 11:1-21

1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그 아들의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씨를 진멸하였으나 2
요람 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의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도적하여 내고 저와 그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치 않게 한지라 3요아스가 저와 함께 여호와의 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4제칠년에 여호야다가 보내어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을 불러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고 저희로 여호와의 전에서 맹세케 한 후에 왕자를 보이고 5명하여 가로되 너희의 행할 것이 이러하니 안식일에 입번한 너희 중 삼분 일은 왕궁을 주의하여 지키고 6삼분 일은 수르 문에 있고 삼분 일은 호위대 뒤에 있는 문에 있어서 이와 같이 왕궁을 주의하여 지켜 방어하고 7안식일에 출번하는 너희 중 두 대는 여호와의 전을 주의하여 지켜 왕을 호위하되 8너희는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며 무릇 너희 반열을 침범하는 자는 죽이고 왕의 출입할 때에 시위할찌니라 9백부장들이 이에 제사장 여호야다의 모든 명대로 행하여 각기 관할하는 바 안식일에 입번할 자와 출번할 자를 거느리고 제사장 여호야다에게 나아오매 10제사장이 여호와의 전에 있는 다윗 왕의 창과 방패를 백부장들에게 주니 11호위병이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되 전 우편에서부터 전 좌편까지 단과 전 곁에 서고 12여호야다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면류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매 무리가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 13아달랴가 호위병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백성에게 이르러 14보매
왕이 규례대로 대 위에 섰고 장관들과 나팔수가 왕의 곁에 모셨으며 온 국민이 즐거워하여 나팔을 부는지라 아달랴가 옷을 찢으며 외치되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하매 15제사장 여호야다가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반열 밖으로 몰아내라 무릇 저를 따르는 자는 칼로 죽이라 하니 제사장의 말은 여호와의 전에서는 죽이지 말라 함이라 16이에 저의 길을 열어 주매 저가 왕궁 말 다니는 길로 통과하다가 거기서 죽임을 당하였더라 17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으로 여호와와 언약을 세워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고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하매 18온 국민이 바알의 당으로 가서 그 당을 훼파하고 그 단들과 우상들을 깨뜨리고 그 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니라 제사장이 관리들을 세워 여호와의 전을 수직하게 하고 19또 백부장들과 가리 사람과 호위병과 온 국민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내려와서 호위병의 문 길로 말미암아 왕궁에 이르매 저가 왕의 보좌에 앉으니 20온 국민이 즐거워하고 성중이 평온하더라 아달랴를 무리가 왕궁에서 칼로 죽였었더라 21요아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칠 세였더라

1. 아달랴가 정권을 빼앗음

자기를 위하여 왕위를 빼앗음

본문 1-3절에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그 아들의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씨를 진멸하였으나 요람 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의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도적하여 내고 저와 그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치 않게 한지라 요아스가 저와 함께 여호와의 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달랴는 아하시야 왕의 모친이자 여호사밧 왕의 며느리이며 요람 왕의 아내인데, 북쪽 이스라엘 나라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의 딸입니다. 아하시야가 북쪽 나라에 갔다가 죽임을 당하자 아하시야의 어머니인 아달랴가 자기가 왕이 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손자들인 아하시야의 아들들을 다 잡아 죽였습니다. 보통은 할머니가 손자를 사랑하는데, 할머니가 자기 손자를 다 잡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여호사밧 왕은 선한 왕입니다. 그러나 북쪽 이스라엘 나라에서 아합 왕의 딸을 며느리로 맞아들임으로써 화를 자초한 것입니다. 북쪽 나라는 타락한 교회입니다. 북쪽 나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이고,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전에는 한 나라였다 갈라진 나라이지만, 성경 말씀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입니다. 또 북쪽 나라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은 하나님의 선지자를 다 잡아 죽이고 바알 신을 섬기게 만드는 등 큰 악을 행했는데, 그 여자의 딸을 며느리로 데려왔다는 것은 여호사밧 왕의 큰 실수였습니다. 큰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들도 북쪽 나라와 연락을 하고 더불어 교제하다가 죽었고, 집이 다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아달랴는 자기 어머니 이세벨의 악을 본받아서 악독이 가득한 여자입니다. 그 여자의 남편인 요람이 처음에 왕이 되었다가 죽은 다음에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자기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다가 죽었으니 그다음에는 손자가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틈을 타서 자기가 왕이 될 생각으로 손자들을 잡아 죽이고 정권을 빼앗은 것입니다. 이 여자가 얼마나 악한지는 이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뜻이나 이스라엘 나라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기 하나 잘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왕위를 빼앗았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나라를 생각했다면 자기가 왕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다윗의 등불이 꺼지지 아니하고 내내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왕이 된다고 했는데, 아달랴는 북쪽 아합 왕의 딸이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다윗의 씨가 그 등불이 꺼지지 아니하고 왕통이 계승되어 내려간다고 했는데, 아달랴가 다윗의 자손인 아하시야의 아들들을 다 죽인 것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생각하지 아니하고 순전히 자기만 생각한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 위하는 정신이 있을 때 이렇게 무서운 악을 행합니다. 이스라엘도 망하고 자기도 망하고 다 멸망하는 구렁텅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도 자기를 위하다가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하나님만 위해야겠는데, 자기가 커지려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이 죄 중에 제일 큰 죄입니다. 거기서 모든 죄가 다 나오는 것입니다. 악한 일이 전부 다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위하는 것을 다 없애고, 거기서부터 믿음에 서 나가야 합니다.
자기 위하는 것을 없애지 않으면 아무리 다른 것을 잘했어도 마지막에는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게 됩니다. 잘한 것을 전부 다 자기가 이용해서 나아가다가 마지막에는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자기를 위하는 일을 안 하도록 힘을 써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세바를 통하여 요아스를 살려내심

본문 2절에 “요람 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의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도적하여 내고 저와 그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치 않게 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아달랴가 왕자들을 다 죽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내세우셨습니다. 요람 왕의 딸이자 아하시야의 누이인 여호세바가 나타나 왕자들을 죽이는 가운데서 하나를 도둑질해 놓았습니다. 여호세바는 아달랴의 남편인 요람 왕의 딸이긴한데, 아달랴가 낳은 딸인지 다른 여자에게서 낳은 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요람 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의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도적질하여 내어왔습니다. 요아스는 지금 한 살인데, 여호세바가 그 아기를 도적질 해온 것입니다.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서 유모를 침실에 숨기고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치 않게 했습니다.

본문 3절에 “요아스가 저와 함께 여호와의 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고 하였습니다. 육 년 동안 그 아이를 길렀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는 참 신기한 역사입니다. 이 요아스까지 죽었다면 다윗의 계통이 끊어집니다. 다윗
의 자손이 아주 끊어져서 망하고 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다윗에게 언제나 한 등불을 주어서 내내 꺼지지 않게 해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손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실패하지 않습니다. 

아달랴가 아하시야의 아들들을 전부 다 죽여서 다윗의 계통을 끊어 버리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왕의 딸을 이용해서 요아스를 구해내셨습니다. 그리고 기르셨습니다. 또 여호세바는 제사장에게 시집을 갔기 때문에 늘 성전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아이는 성전에서 기를 수 있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왕의 딸이 제사장에게 시집 간다고 하면 보통은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요새로 말하면 왕의 딸이 목사에게 시집간 것과 같은데, 떵떵거리는데 시집을 가지 않고 일개 목사한테 시집가면 고생만 하고 뭐가 좋겠습니까? 그러나 왕의 딸 여호세바는 제사장에게 시집을 갔기 때문에 요아스 왕을 건져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멸망 가운데서 건져낸 것입니다. 믿음으로 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한 것은 잘못한 것 같아도 그것이 도리어 자기를 구원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일이 됩니다. 아무리 시집을 잘 간 것 같아도 또 좋은 며느리를 데려온 것 같아도 믿음으로 하지 않은 것은 결국에는 다 망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하느냐, 세상적으로 잘되는 편으로 하느냐? 여호사밧 왕은 믿음이 좋았지만, 며느리를 왕의 딸로 데리고 와야 한다고 해서, 믿음은 보지 아니하고 북쪽 나라 왕의 딸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집안이 다 망했습니다. 요람 왕의 딸 여호세바는 제사장에게 시집을 갔는데, 잘못 간 것 같아도 도리어 그 딸이 집안을 건져내었습니다. 그 딸로 말미암아 다윗의 왕통이 계승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가 참 신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편으로만 보고 며느리를 데려오고 세상 편으로만 보고 남편을 얻으러 가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첫째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중심으로 하면 다른 사람 보기에 잘못한 것 같아도 그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도리어 자기도 삽니다. 또 국가도 건져내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를 육 년 동안 숨어서 기르려고 하니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아달랴 왕이 옆에 있는데, 육 년을 숨기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아기 모세를 석 달 동안 숨기는 것도 여간 힘들지 않았는데, 이 아이는 여섯 살이나 되었습니다. 여섯 살 나
서 걸어 다니면서 말을 쟁쟁하고 돌아다닐 것인데, 일단 발각만 되면 아이도 죽고 제사장과 그 집안도 다 죽는 것입니다. 물론 성전에서 길렀으니까 아마 성전 한 켠에 제사장의 집이 있고 거기는 거룩한 구역이므로 다른 사람은 못 들어오게 하고 길렀던 모양인데, 그래도 육 년 동안 많은 수고를 했을 것입니다. 육 년 동안 아달랴가 그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여자가 왕권을 빼앗아 육 년을 왕 노릇했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2.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왕으로 세움

여호야다가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함

본문 4절에 “제칠년에 여호야다가 보내어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을 불러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고 저희로 여호와의 전에서 맹세케 한 후에 왕자를 보이고”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야다는 여호세바의 남편입니다. 요람 왕의 사위이고 제사장인데, 그 제사장이 제칠년에 숨겨둔 아이 요아스를 이제 왕으로 세워야겠다고 생각하고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을 하나님의 전으로 다 불러 모았습니다. 제사장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니까 주위에서는 하나님 섬기는 무슨 일을 하려는가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달랴가 통치하는 동안 악정(惡政)을 행하므로 백성들이 고통을 많이 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호야다가 이제는 왕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기로 언약을 세우고 왕자를 내보였습니다. 일곱 살 난 왕자를 데리고 나와서 “이 분이 왕자이다. 아달랴가 왕자들을 죽이는 가운데서 아내가 도적질을 해다가 지금까지 길렀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아이를 왕으로 세워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니 모든 사람들이 너무 기뻐서 다 찬동을 했습니다.

본문 5-6절에 “명하여 가로되 너희의 행할 것이 이러하니 안식일에 입번한 너희 중 삼분 일은 왕궁을 주의하여 지키고 삼분 일은 수르 문에 있고 삼분 일은 호위대 뒤에 있는 문에 있어서 이와 같이 왕궁을 주의하여 지켜 방어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에 입번하는 부대와 출번하는 부대 두 대가 있는데, 입번하는 대는 안식일 아침에 들어가고 나오는 대는 저녁에 나옵니다. 안식일 아침에 들어가는 부대는 한주간 동안 왕궁을 지키다가 그다음 안식일 저녁에 나오고, 그 안식일 아침에 새로 교대하는 부대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안식일 아침에 들어가는 부대를 세 대로 나눠서 한 대는 왕궁을 지키고, 한 대는 수르 문에 있고, 한 대는 호위대 뒤에 있어서 왕궁을 주의하여 지켜 방어하게 하였습니다. 아달랴가 반격하면 이것이 다 틀어지겠으니까 왕궁과 문, 길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본문 7-8절에 “안식일에 출번하는 너희 중 두 대는 여호와의 전을 주의하여 지켜 왕을 호위하되 너희는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며 무릇 너희 반열을 침범하는 자는 죽이고 왕의 출입할 때에 시위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에 출번하는 부대는 두 떼로 나누어
서 성전과 새로 세우려는 요아스 왕을 지키도록 한 것입니다. 여호야다가 지혜롭게 모든 것을 잘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가지고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틀림없이 일을 해나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고 그 지혜를 가지고 이렇게 해나가는 것입니다.

본문 9-12절에 “백부장들이 이에 제사장 여호야다의 모든 명대로 행하여 각기 관할하는 바 안식일에 입번할 자와 출번할 자를 거느리고 제사장 여호야다에게 나아오매 제사장이 여호와의 전에 있는 다윗 왕의 창과 방패를 백부장들에게 주니 호위병이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되 전 우편에서부터 전 좌편까지 단과 전 곁에 서고 여호야다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면류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매 무리가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여호와의 전에 있는 다윗 왕의 창과 방패를 백부장들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은 다윗 왕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서 우리가 왕을 세워야한다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 이렇게 한 것 같습니다. 전 우편에서부터 전 좌편까지 단과 전 곁에 서고 여호야다가 왕자를 인도하여 일곱 살 날 요아스에게 면류관을 씌워주었습니다. 이것도 다윗의 왕통으로 내려오는 왕을 세운다는 의미에서 면류관을 씌워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볼 때 확신이 생기고 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여호야다가 지혜롭게 행함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윗의 혈통에서 왕이 계승해 내려가는 것을 알게 해준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그 말씀을 위하며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함

한편 악한 여인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리는 육 년 동안 아달랴의 아들들이 여호와의 전을 깨뜨리는 등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지금 요아스를 왕으로 세운다는 소식에 무리가 크게 기뻐했습니다. 역대하 24장 7절에 “이는 그 악한 여인 아달랴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전을 깨뜨리고 또 여호와의 전의 모든 성물을 바알들에게 드렸음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달랴의 아들들이 여호와의 전을 다 깨뜨려서 비참하게 만들고 또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게 한 것 같습니다. 백성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의 계통에서 나오는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니 백성들이 너무 기뻐서 이제야 나라가 바로 되고 이제야 악한 일이 고쳐지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아달랴가 먼저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그다음에 이스라엘 나라를 생각한 것이 아니고, 자기를 위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해나가려고 하다가 마지막에는 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위하고, 언제나 말씀을 순종하며,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 교회, 구원운동을 중심으로 해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자기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말씀만 순종해 나가면 자기가 낮아지는 것 같아도 그것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 살게 되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반대로 아달랴와 같이 자기 유익만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나가면 반드시 가다가 죽을 곳에 빠지게 됩니다. 죽을 곳에 제가 들어가서 마지막에는 망하게 됩니다.

3. 아달랴가 죽임을 당함

아달랴의 죽음

본문 13절에 “아달랴가 호위병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백성에게 이르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성전에서는 요아스가 왕이 된 것을 두고 모든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기뻐하고 있습니다. 왕의 계보가 다 끊어진 줄 알았는데, 왕자가 이렇게 있는 것을 볼 때에 온 백성들이 다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주신 줄을 믿고 감사해서 이 일에 대해 찬송을 했습니다. 호위병이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되 전 우편에서부터 전 좌편까지 단과 전 곁에 서고 여호야다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면류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매 무리가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아달랴가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성전에서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니까, 왕궁에 있다가 무슨 소리인가 하여 허겁지겁 왔습니다. 

본문 14절에 “보매 왕이 규례대로 대 위에 섰고 장관들과 나팔수가 왕의 곁에 모셨으며 온 국민이 즐거워하여 나팔을 부는지라 아달랴가 옷을 찢으며 외치되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아달랴가 혼자 들어왔서 보니까, 왕이 규례대로 대 위에 섰고, 장관들과 나팔수가 왕의 곁에 모셨으며, 온 국민이 즐거워하여 나팔을 불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에 아달랴가 옷을 찢으며 외치기를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본문 15절에 “제사장 여호야다가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반열 밖으로 몰아내라 무릇 저를 따르는 자는 칼로 죽이라 하니 제사장의 말은 여호와의 전에서는 죽이지 말라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아달랴를 죽이려고 하시니까 아달랴 혼자서 성전으로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왕궁에는 아달랴의 호위병도 많고, 아달랴가 명령하면 많은 군대를 움직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달랴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윗의 자손의 대를 다 끊으려 하며, 자신이 왕 노릇하려고 한, 모든 악행에 진노하셔서 그녀로 어리석게 만드셨습니다. 함정에 빠지게 하셨습니다. 성전에 자기 혼자 온 것 자체가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왕궁에서 사람을 시켜서 알아보았다면, 아달랴가 명령하여 많은 군대를 동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달랴의 정신을 혼미하고 어둡게 만드셔서 그녀 혼자 오게 하셨습니다. 혼자 와서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하니까 거기에 가담할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자기 편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자기 편은 왕궁에 다 있고, 여기는 전부 제사장의 편입니다. 그리하여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녀를 죽이도록 명령했습니다.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무릇 저를 따르는 자는 칼로 죽이라
하니 제사장의 이 말은 여호와의 전에서는 저를 죽이지 말라 함이라’고 했습니다. ‘반열 밖으로 몰아내라, 저를 따르는 자는 칼로 죽이라’고 아주 엄격하게 다스려놓았습니다. 여호와의 전에서는 죽이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성전 밖으로 몰아냈습니다.

본문 16절에 “이에 저의 길을 열어 주매 저가 왕궁 말 다니는 길로 통과하다가 거기서 죽임을 당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달랴가 마침내 죽임을 당했습니다. 7년 동안 왕 노릇하다가 아달랴가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악한 자를 심판하십니다. 하나님 뜻에 어긋나게 나가면, 반드시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고 올무에 빠지게 되어 마지막에는 멸망하고 맙니다. 멸망시키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을 언제나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잘못된 길을 걷지 않으려고 언제나 힘을 써야겠습니다.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 - 다윗의 왕통이 끊어지지 않게 하심

또 하나님의 뜻은 다윗에게 한 등불을 주셔서, 영원히 다윗의 등불이 꺼지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다윗의 자손이 다 죽을 것 같아도, 그 죽을 것 같은 가운데서 한 살짜리 아이를 도적질하여 기르게 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또 그 아이로 왕을 삼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이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한 등불을 주셔서 왕통이 끊어지지 않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셨고, 다윗의 자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을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가 여기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4. 요아스 왕과 백성들이 언약을 세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함

1) 왕과 백성으로 여호와와 언약을 세움

본문 17절에 “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으로 여호와와 언약을 세워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고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언약을 세웠습니다. 첫째는 왕과 백성으로 여호와와 언약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왕과 백성이 다 합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서,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왕이나 백성이나 다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왕이라고 해서 더 알아주시는 것이 아니고, 백성이라고 해서 낮추어 보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다 하나님의 종이고, 다 같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지금 백성과 왕이 합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십니다’라고 하나님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자기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살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로 작정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려 하며, 하나님과 더불어 언약을 세운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이렇게 하
여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16-18절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의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고린도후서 6장 14-15절에는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의 큰 행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인도와 통치를 받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생활,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가장 행복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다스림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한 생활을 해야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따라하면 안 됩니다. 우상을 멀리 하고, 불의한 일을 떠나고,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고, 항상 빛 가운데서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같이 해주시고, 우리를 다스려주십니다. 하나님을 멀리 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멀리 하시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가까이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고 힘을 쓰면,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십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려고 힘을 쓰면, 하나님께서 다스려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멀리 하고 다스림을 받지 않으려고 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도 멀리 하고 내버려두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 안에 있는 사람은 다른 근심이 없다고 했는데, 항상 다른 근심이 없고 언제나 모든 것에 만족하며 충만하도록 인도해주시고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께서 허락하시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주께서 허락하시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사람이 허탄한 것을 자랑하면 악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허탄한 자랑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취한 모든 것은 허탄한 자랑인데, 이것은 다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백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왕과 백성으로 더불어 언약을 하시고, 왕과 백성이 하나님과 더불어 언약을 했습니다.

2) 왕과 백성 사이에 언약을 행함

다음으로 둘째 언약은 왕과 백성 사이에 행한 언약입니다. 왕과 백성이 합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첫째 언약을 하고, 둘째는 왕과 백성 사이에 언약을 행했습니다. 둘째 언약은 사람 사이에 한 언약입니다. 백성들은 요아스 왕을 유대 나라 왕으로 모시는 언약을 했습니다. 요아스 왕은 유대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서 언약을 했습니다. 왕과 백성 사이에 언약을 세운 것입니다. 왕은 왕으로서의 지위와 할 임무를 맡고, 백성은 백성으로서의 위치와 백성으로서의 할 임무를 맡아서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제부터 왕은 왕의 위치에서 왕의 직무를 맡아서 감당하고, 백성들은 백성의 위치에서 백성의 직무를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천륜(天倫)과 인륜(人倫), 둘 다가 바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백성과의 관계는 천륜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윤리입니다. 그리고 왕과 백성 사이의 언약은 인륜입니다. 사람 사이의 윤리입니다. 

사람 사이의 윤리도 바로 되어야만 하나님 앞에 바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바로 했다고 하고, 사람에게 대한 윤리를 무시하면, 그것은 고르반 사상이고 바리새교인과 같은 것입니다.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긴 것입니다. 십계명은 구약 율법의 대지인데, 십계명 중에 1-4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윤리이고, 5-10계명까지는 사람에게 대한 윤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도 바로 해야 하고, 사람에게도 바로 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 전체 사상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제 왕과 백성이 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는 이스라엘을 건설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견고케 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는 일을 하게된 것입니다. 모든 백성이 왕 세운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죄는 멸하고 영적 성전은 지켜라

본문 18절에 “온 국민이 바알의 당으로 가서 그 당을 훼파하고 그 단들과 우상들을 깨뜨리고 그 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니라 제사장이 관리들을 세워 여호와의 전을 수직하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언약을 세운 후에 온 국민이 바알의 당으로 가서 그 당을 훼파하고 바알의 제사장을 죽였습니다. 우상의 모든 가증한 것을 제거하여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섬기는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또 제사장이 관리들을 세워 여호와의 전을 수직하게 했습니다. 여호와의 전을 지키게 한 것입니다. 바알의 당은 헐고, 성전은 지켰습니다. 죄는 멸하고, 하나님의 성전은 지킨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점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죄 짓는 일은 아예 제거하고, 영적 성전을 지켜야 합니다. 자신의 영적 성전 안으로 악한 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없이하고 영적 성전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영적 성전으로 마귀, 원수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겠습니다. 파괴시키지 못하도록 지켜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을 즐거워해야 함

본문 19-20절에 “또 백부장들과 가리 사람과 호위병과 온 국민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내려와서 호위병의 문 길로 말미암아 왕궁에 이르매 저가 왕의 보좌에 앉으니 온 국민이 즐거워하고 성중이 평온하더라 아달랴를 무리가 왕궁에서 칼로 죽였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일곱 살짜리 왕을 세워놓고 무엇이 즐거웠습니까? 왕이 잘해서 즐거웠습니까? 왕이 잘해서 즐거워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곱 살짜리가 잘해야 무엇을 잘하겠습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초등학교 1학년도 못 되었고, 유치원생입니다. 말 한 마디도 제대로 못 할 것입니다. 힘든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또 면담도 받지 못합니다. 가만히 숨겨서 밥만 먹다가 이제 나온 것입니다. 나와서 다녀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일곱 살짜리 아이를 왕으로 세워놓고 뭐때문에 즐거워했겠습니까? 앞서 말한 대로, 왕이 잘해서 즐거워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잘한 것이 없습니다. 무엇을 잘했습니까? 그러면 무엇을 즐거워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왕이 된다고 했습니다. 대대손손이 다윗의 자손 가운데 한 등불을 주어서 왕통이 계승되어 내려가다가 거기서 그리스도가 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해주셨습니다. 아달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닙니다. 또 여자입니다. 아달랴는 아합의 딸이기 때문에, 다윗과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갑자기 뛰어 들어온 것입니다. 시집 와서 왕의 아내가 되었다가, 아들이 왕이 되어 왕의 어머니가 되었다가, 이제 아들이 죽으니까 손자들을 다 잡아 죽이고 자신이 왕 노릇을 한 것입니다. 아달랴는 다윗의 계통에 끼워줄 자격이 안 됩니다. 바른 혈통이 아닙니다. 칠 년 동안 백성들이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면서 참고 있다가 이제는 말씀대로 왕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대로 된 왕이 나온 것입니다. 일곱 살짜리라고 해도, 그가 왕으로서 세움을 입어서 말씀대로 된 것이 좋은 것입니다. 왕이 어리던지, 일 처리를 하나도 못하던지, 철이 없던지,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왕을 세움이 말씀대로 된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대로 된 것은 아무 보잘 것이 없고, 보기에 유치하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도 성경대로 된 것만으로 참 잘된 것입니다. 성경대로 이루어진 것은 참 잘된 것이고 위대한 것입니다. 지금도 그것으로 온 국민이 즐거워하고 제사장이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고 일이 다 잘된 것입니다. 심히 미약 하더라도 성경대로 되었으면, 그것은 아주 잘된 것입니다. 대성공입니다. 성경대로 된, 그 자체가 ‘대성공’입니다. 성경대로 안 된 것은 아무
리 크고 아무리 잘된 것 같아도, 반드시 가다가 망하고 맙니다. 망할 것이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성경에 맞고 성경대로 된 것을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성경대로 이루어나가기를 배워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할 때 ‘이렇게 하면 크게 성공을 하겠지만 성경대로 된 것이 아니다’또 ‘이렇게 하면 심히 보잘 것 없지만 성경대로 된 것이다’, 이 두 가지 상황을 만나게 되면, 성경대로 된 것을 따라가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성공할 것 같고, 굉장히 크게 될 것 같아도, 성경대로 안 되었으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미약하고 보잘 것 없어도, 그것이 성경대로 되었으면 그것을 취해야 합니다. 그것이 잘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에게는 나타내 보이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통달한 자라고 해서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라도 성경대로 되었으면, 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대로, 말씀대로 된 것을 기뻐하십니다. 사울 왕이 성경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리 훌륭한 왕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내버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 왕은 성경대로 했기 때문에 아무리 나이가 어렸어도 골리앗과 맞서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대로 된 것은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어도,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베드로가 배운 것이 없이 무식해도, 하나님께서는 무식한 제자를 통하여 일하셨습니다. 성경대로 되고 말씀대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지혜가 통달한 자가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들을 데리고 일하시지 않았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갈치 한 마리에 이백원, 명태 한 마리에 얼마”하며 고기값 밖에 모르는 무식한 어부들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무슨 일이나 성경대로 할 것

우리는 무엇이나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말씀에 바로 되어야 합니다. 자격이 있으냐 없느냐, 크기가 맞느냐 안 맞느냐를 보지 말고 말씀대로 되었는가를 봐야 합니다. 말씀대로 되었으면 된 것입니다. 말씀대로 안 된 것은 아무리 훌륭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보도록해야 합니다.
오늘 아침에 한 조사가 나왔는데, 합동측 사당동 신학교에서 학생들이 데모를 해서 학장을 내쫓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공부를 여러 달 못했습니다. 지난 학기에도 공부를 많이 못하고 이번 학기에도 개학을 어제 한 것 같습니다. 여지껏 개학을 안 하고 데모만 한 것
입니다. 그래서 무슨 조건으로 학장을 내쫓았는지 학생에게 물어봤습니다. 첫째는 기숙사 비를 다 냈는데, 기숙사 학생들 중 60여명이 장질부사를 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치료해주지 않고 개별적으로 치료하라고 했기 때문에, 그것이 이유가 되어 학장이 틀렸다며 데모를 했다고 합니다. 둘째는 신학교의 주류파들이 싸움을 하다가 갈라섰습니다. 사당동 신학교 중 얼마가 방배동 신학교로 갈라져 나와서 두 개의 모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갈라지는 바람에 학생들이 많이 빠져나가 그것을 보충하려고 아무 학생들이나 막 받아줬다는 것입니다. 자격이 있건 없건 받아줬다는 것입니다. 시험을 못 보았어도 막 받아줘서 학생을 보충시키고 또 공부도 제대로 안 한 사람에게 졸업장을 줬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들입니다. 그래서 제가 “장질부사에 걸려서 기숙사 학생 60여명이 앓은 일에 대해서 학교에서 치료를 안 해주고, 개인적으로 치료하라고 한 것은 잘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학생의 말은 기숙사 비를 받았으면 영양사를 한 명 둬서, 영양 있는 식단을 제공했어야 하는데, 영양사를 안 뒀기 때문에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은 잘못의 조건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평양, 부산 등을 다니며 여러 신학교에 관계했지만, 신학교 기숙사에 영양사를 두었다는 것은 처음 듣는다고 했습니다. 신학교 기숙사에 영양사가 뭐가 필요합니까? 신학교에서는 영양사 둘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기숙사는 제가 영양사입니다. 그리고 장질부사에 걸렸으면 개별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맞습니다. 학교에 기숙사비를 낼 때, 의료보험비까지 받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의료보험사에서 하는 것이지, 기숙사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생활비를 받아서 어떻게 다 치료해줄지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치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학생 자격이 안 되는데 미달자를 입학시키고, 졸업 자격이 안 되는데 공부를 제대로 안한 자격 미달자를 졸업시킨 것은 잘못되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만 하는 것입니다. 불의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옳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옳게 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아무리 학생들이 잘한다고 자랑하고, 학교를 자랑해도, 불의한 일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이나, 아무 일이나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었느냐, 안 되었느냐? 성경대로 되었느냐, 안 되었느냐?’를 따져봐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대로 되었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사람도 그것을 기뻐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권자의 지도를 잘 받아야 함

또 보통 왕의 지도를 안 받는 것이 나은 것 같고, 지도 받는 것은 싫은 것 같습니다. 지도하는 것은 좋은데, 지도 받는 것은 싫어합니다. 보통은 피지배인이 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왕을 세워놓았으면 반드시 왕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왕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보통은 자기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자기 아버지와 같이 살기를 싫어하고 딴 사람과 살기를 좋아합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에서 나간 것도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집에 있기 싫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와 교회, 가정 등에서 바른 지도를 하는 사람의 지도를 잘 받는 것이 맞습니다. 신앙 문제도, 내가 바로 지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지도를 받는 것이 원리원칙입니다. 지도 받을 사람이 없으면 불쌍한 사람입니다. 배울 곳이 없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가 어디 가서 배우며 지도를 받고, 자기를 지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자기 마음대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면 자기 생각이 얼마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깊은 신앙의 세계에서, 기도를 많이 하는 가운데, 성경의 원리원칙에 따라 믿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에게 지도를 받으면 아주 잘됩니다. 목사님들 중에서도 지도 안 받겠다는 목사님들은 가만히 내버려둡니다. 일 년이 지나도 한 번 안 가봅니다.
가봐야 무엇을 합니까? 지도 안 받겠다고 하니까 괜히 가봐야 그 사람도 은혜가 안 되고, 나도 은혜가 안 됩니다. 가만히 두면 되는 것이지 무엇을 하러 가봅니까? 그러나 지도 받겠다는 교회는 제가 때때로 가서 지도해줍니다. 어제 저녁에도 다녀왔습니다. 와서 제직회를 좀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이러하게 일 처리할 것이 있는데, 자기는 잘못하겠으니 목사님께서 당회장으로 오셔서 일을 해주면 잘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분주하고 피곤해도, 사경회 하는데 가서 예배시간에 참여하고 끝난 후에 제직회를 모아놓고, 이런 문제는 이렇게 하면 잘된다고 알려줬습니다. 분명히 해준 것이 꼭 그대로 될 줄로 믿습니다. 그대로 되면 그 교회는 반드시 큰 계단을 하나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한 계단 올라가고 다음 계단을 올라가게 되면 그 교회는 쑥 올라가는 것입니다. 지도해준 것이 그만큼 유익이 되는데, 교회 일들을 숨기고 자기들끼리 하려고 하면, 자기들만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지도를 받으면 쑥 올라갈 텐데, 못 받으므로 많은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거기서 올라가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그러다가 함정에 빠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왕을 세우고 두려워하며 지도를 받으려고 하는 정신이 중요하고, 이 백성들이 복 받는 백성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대로 된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아무리 왕의 나이가 어리고 유치하고 미약해도, 말씀대로 된 것을 즐거워한 것입니다. 또 ‘그 분이 아무리 어려도 이제는 주권자의 위치에 두자. 우리를 지도해 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지도를 받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나가는 유대나라는 앞으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요아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칠 세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칠 세가 된 왕이라고 해도 백성들이 왕으로 모시며 즐거워했습니다. 어린 왕의 인도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도 바로 함으로 왕과 백성이 합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고자했습니다. 하나님을 언제나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고 언약을 맺고 나가는 것입니다. 또 왕과 백성이 백성의 위치에서 왕을 섬기며, 왕의 위치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 백성들은 앞으로 하나님 앞에 많은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