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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일 월요일

누가복음 24:13-35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누가복음 24:13-35

13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14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16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19가라사대 무슨 일이뇨 가로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20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요 22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또 우리와 함께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31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35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1.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와 동행하신 예수님

오늘 본문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일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 13-16절에 “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이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글로바’라 했고 나머지 한 사람은 누구인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름이 안 밝혀져 있습니다. 

글로바에 대하여는 요한복음의 말씀이 참고가 됩니다. 19:25에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고 했는데, 여기서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라고 했습니다. 글로바는 부부 간에 모두 믿음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글로바의 아내가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있었고 글로바도 예수님을 잘 따라 다녔으며,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다닌 것으로 보입니다. 

나머지 한 사람은 누가라고도 하고 나다나엘이라고도 하는데,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여간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들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두 제자가 서로 얘기를 나누며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이때 두 사람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들은 후인데, 그 상황에서 이 둘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믿음을 쓰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이 고기 잡으러 간 것과 같습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간 것과 같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좀 더 힘을 써가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확인해야 하겠는데, 이 두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갔습니다. 이것은 이들이 믿음을 쓰지 못하고 세상으로 내려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것, 믿는 일보다 세상 일에 기울어져서 내려가는 제자들이었던 것입니다. 

2. 세상에 눈이 가리어져 예수님을 못 알아보는 두 제자

그렇게 두 제자가 내려갈 때에 예수님께서 동행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16절에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 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두 제자는 세상에 눈이 가리어졌습니다. 눈에 세상이 가리어져서 예수님을 보아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이 가리어지면 이렇게 됩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도 예수님인 줄을 알지 못합니다. 눈은 가리어지고 귀도 가리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같이 하시지만 예수님인 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만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합니다. 믿는 일이 첫째가 아니고 세상이 첫째가 되면 이렇게 됩니다. 세상 따라가면 이렇게 됩니다. 돈이나 직장을 따라가며, 예수 따라 가는 것이 첫째가 아닌 사람들은 눈이 어두워지고 귀도 어두워져서 예수님을 보고 음성을 들으면서도 알지 못하고 내려갑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 네 번째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첫째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둘째는 여인들에게, 세 번째는 베드로에게, 네 번째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다섯 번째는 열 사도에게, 여섯 번째는 열한 사도에게, 일곱 번째는 일곱 사도에게, 여덟 번째는 열한 사도에게, 아홉 번째는 오백여 형제에게, 열 번째는 야고보에게, 열한 번째는 승천 하실 때에 사도들에게, 마지막 열두 번째는 사도 바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이와 같이 열두 번 나타나셨습니다. 

즉, 이번이 네 번째인데 두 제자는 예수님이 같이 하시고 음성을 들려주셔도 예수님인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눈이 어두워지고 귀도 어두워져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을 첫째로 하고 나아가는 것은 예수를 믿긴 믿어도 세상을 앞에 놓고 예루살렘을 뒤에 두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것은 뒤에 두고 세상을 따라가면 결국 이렇게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어두워져서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하게 됩니다. 

본문 1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으므로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잃어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믿는 일을 뒤에다 놓고 세상을 따라가면 이렇게 심령이 슬픈 빛을 띠게 됩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심령이 슬프고 쓸쓸하고 외롭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심령은 그렇습니다. 눈과 귀는 어두워져 있습니다. 또, 마음은 둔해져 있습니다.

3. 전에 예수님을 따라다녔었으나 세상이 첫째가 됨으로 미련해짐

본문 22-24절에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베드로와 요한인 것 같습니다. 

본문 25-26절에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전에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성경을 더디 믿는 미련한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으로 추정되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켜 ‘우리와 함께 다닌 자들’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 두 사람도 예전에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마음이 둔해지고 눈과 귀가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마음이 둔해지고 미련해졌습니까? 세상이 첫째가 됨으로 미련해지는 것입니다. 세상을 따라가고 돈을 따라가고 믿는 일은 둘째입니다. 믿는 일이 둘째고 세상 일이 첫째가 되면,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마음은 완악하고 둔해지며 미련해집니다.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게 된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100% 다 믿어야 하겠는데, 세상을 따라가면 미련해져서 그러지 못합니다. 그래서 26절에 보면,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고 예수님께서 책망하셨습니다. 

본문 27-28절에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같이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 부활해야 할 것을 구약 성경을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영적 감각이 둔해져서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상당히 오랜 시간을 얘기하면서 엠마오로 내려간 것 같습니다. 

4. 간청함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두 제자

두 사람이 가려는 촌에 가까이 왔는데, 예수님은 더 가시려고 합니다. 제자들은 목적지에 다 왔는데 예수님은 더 가려고 하시므로 본문 29절에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더 가시려고 했는데, 그들이 같이 들어가시자고 강권했습니다. 강권할 때에 예수님께서 함께 들어가셨습니다. 지나가시려고 했는데, 두 제자가 강권하여 모시고 들어간 것입니다. 소돔 고모라 성에서 하나님이 지나가시려고 하는데, 롯이 강권하여 모시고 들어갔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모시려 하고 강권하여 붙들려 하고 영접하려고 하며 그냥 보내려 하지 않을 때에 예수님을 맞이하여 모실 수 있습니다. 

강권하는 신앙, 간청하는 신앙, 간구하는 신앙, 사모하는 신앙,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하려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에 주님께서 같이 가셨습니다. 사모하지 않으면 주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그저 배부른 흥정하듯이 하면 안 됩니다. 사모해야 하고 갈급증이 나야 하고 찾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전도하는 것도 힘을 써야 합니다. 우리가 벚꽃 필 때에 전도하는데, 벚꽃을 구경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여러 곳에서 옵니다. 몇 십만 명이 모이는데, 저 시골 먼데에서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김포에서 온 사람, 충청도에서 온 사람, 벚꽃 피었다고 다 몰려왔습니다. 일생 동안 다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 중에 예수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죽으면 저승에 간다”고 하면, “저승이 뭐에요?”라고 합니다. 예수 모르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명륜교회에 있을 때, 창경원에 가서 전도하고는 했는데 한 번은 부활절에 창경원에 벚꽃이 많이 피었었습니다. 한 60년도 더 된 일이겠는데, 이 즈음에 창경원에 가서 전도했었습니다. 그때 교회에서 쓰던 앰프를 들고 나가서 전도하다가 그곳 지키는 사람들에게 쫓겨서 돌아다니며 전도했었습니다. 그때는 여의도도 없었을 때였습니다. 그렇게 일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간청하고 사모하고 전도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간청하니까 예수님께서 따라오셨습니다. 간청해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신앙을 우리가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귀가 다 어두워지고 눈이 다 어두워지고 마음이 둔해졌지만 그래도 간청하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두 제자가 간청함으로 예수님께서 저희와 함께 들어가셨습니다.

5. 성경을 배울 때에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이 밝아짐

본문 30-31절에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음식 잡수실 때에 축사해 주셨는데, 그때 제자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본문 16절에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의 눈이 가리어졌는데, 그것은 세상으로 가리어진 것입니다. 세상으로 가리어지면 심령의 눈이 어두워집니다.

그런데 이제는 밝아졌습니다. 성경 말씀을 길에서 내내 많이 배웠고 그렇게 배울 때에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을 간청해서 모시고 들어갔고 그때 예수님이 축사하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눈이 밝아집니다. “저희가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더라”고 했습니다.

본문 32절에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했습니다. 눈이 밝아져서 이제 서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 들었을 때에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성경을 풀어 이야기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33-35절에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고 했습니다. 두 제자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