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
로마서 8:35
로마서 8:35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1. 폭포수와 같은 예수님의 사랑
본문 35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사랑은 폭포수와 같이 계속 쏟아 내려 부어주시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같은 큰 폭포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한강만한 물이 내려와 갑자기 한 50m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폭포수가 내려 쏟아지는데 그 아래 가서 폭포수를 끊을 수 있겠습니까? 계속 쏟아져 내려오는데 그걸 어떻게 끊겠습니까? 손으로 끊을 수 있겠습니까? 끊으면 또 내려오고, 계속 펑펑 내려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만큼 큰 폭포수와 같이 쏟아져 내려오기 때문에 사람이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습니다. 찬송가 241장에 ‘구속의 은혜를 다 버리고 어그러진 길로 갈지라도 예수의 사랑만 생각하면’ 어떻게 된다고 그랬습니까? ‘곧 다시 예수께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쏟아진 구속의 은혜를 다 버리고 어그러진 길로 갔다고 해도, 예수의 사랑이 쏟아 부어 내려오기 때문에 곧 다시 예수께 돌아오게 됩니다. 그게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폭포수와 같이 계속 쏟아 부어 내어 부어주는 사랑, 하늘보다 큰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 누가 끊겠느냐 말입니까? 다른 사람이 끊으려고 해도 못 끊고, 자기가 끊으려고 해도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자나 깨나 무엇을 하든지 계속 그리스도의 사랑은 쏟아 내려 부어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큰 폭포수와 같이 계속 쏟아져 내려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안 받으려고 해도, 아무리 물리쳐도 계속 내려오므로 끊을 수 없습니다. 환난, 권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등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지 못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게 되었어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지 못합니다. 굶어 죽어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죽는 것입니다. 또 전쟁이 일어나서 칼로 죽인다고 해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죽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6에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머리털 하나라도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18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는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합니다.
예전에 명륜교회에 권찰이 하나 있었는데 새벽기도에 늘 잘나왔습니다. 그런데 새벽기도에 나오는데 어떤 남자가 따라 오더라는 것입니다. 빨리 가면 빨리 따라 오더라는 것입니다. 거의 붙잡히게 되었는데 돌아서서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달아나더라는 것입니다. 성도를 하나님께서 지켜주심으로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합니다.
시편 56:11에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사람이 어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다는 것입니다. 또 시편 27:14에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이 지켜주시므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같이 하시고, 사랑하여 주시는데, 두려워하는 것은 믿지 않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겠습니다.
시편 56:11에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사람이 어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다는 것입니다. 또 시편 27:14에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이 지켜주시므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같이 하시고, 사랑하여 주시는데, 두려워하는 것은 믿지 않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겠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계속 뭘 해주십니까?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십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탄식으로 기도해주십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뭘 위해서 기도해 주신다고 하였습니까?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서 우리가 빌 바를 알지 못할 때에,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도와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김
성도가 모든 것을 이기도록 도우시는 하나님
하나님 우편의 자리는 승리한 자리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도록, 믿음 지켜 이기도록 기도해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은 폭포수와 같이 쏟아 내려 부어주는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으시고, 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도와주셔서 다 이길 수 있습니다. 뭘 이길 수 있습니까? 환난,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입니다. 본문 35절에 있는 것을 다 이기고, 믿음을 지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떠한 환경이 와도 승리 할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 이깁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으로, 주님께서 기도해 주시는 능력으로 우리가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끌려 순교당한 폴리갑
2세기경에 ‘폴리갑’이란 감독이 있었습니다. 로마 정부에서 그를 죽이려고 잡았습니다. 관리들이 장작을 쌓아놓고 그 위에다가 폴리갑을 올려다 앉혔습니다. 로마 관리들이 불을 놓아서 그를 태워 죽이려다가, 폴리갑이 너무 거룩해서 “당신이 이제라도 한번만 예수를 모른다고 하면 석방해준다”고 하면서 달랬습니다. 로마법에 안 걸리니까 한 번만 예수를 모른다고 하면 놓아 준다고 한 것입니다.
그 회유에 폴리갑 감독은 “예수님은 86년 동안 나를 사랑하되, 한 번도 모른다고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한 번이라도 모른다고 하리요?”고 말하고는 화형 받아 불에 타 순교 당했다고 합니다. 86년간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한 번도 예수님께서는 나를 모른다고 한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신데 어떻게 자신이 예수님을 모른다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사랑에 감격해서 사랑에 끌리어서 폴리갑은 목숨까지도 내어 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이김
고린도후서 5장 14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강권한다’는 것은 ‘끈다’는 뜻입니다.
성경 아래 각주에 보면 ‘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리어서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곳에 순종하여 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사랑에 끌리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끄는 데로 안 가고 자기 생각대로 가다가 고기 뱃속에 들어갔고,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끄시는 곳인 니느웨로 갔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해서 로마에 가서 핍박을 받으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자기가 어떻게 예수님과 같이 못 박혀 죽겠느냐며 자기는 거꾸로 못 박히게 해달라고 해서 거꾸로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리어서 어디든지 가고, 무엇이나 하고, 모든 것을 당하지만 마침내는 이깁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이기기를 원하십니다. 뭘 이기길 원하십니까?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곤고, 핍박, 기근, 적신, 먹을 게 없는 것, 입을 게 없는 것, 위험, 칼로 죽이는 것, 이 모든 것을 이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린 넉넉히 이깁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모든 것을 이기라고 주신 것이지 지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기는 것이 신앙이지, 지는 것은 신앙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믿음 지키려고 하면 오는 것입니다. 믿음 지키다가 환난 받아야 되고, 핍박 받아야 됩니다. 믿음 지키다가 먹을 것 없어 기근에 빠져야 되고, 믿음 지키다가 입을 것 없는 자리에 가야 되고, 믿음 지키다가 위험한 자리에 가야 되고, 믿음 지키다가 칼로 죽임을 당하는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믿음 지키다가 이런 것들이 올 때에는 예수님의 기도해 주시는 능력과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만능이 임합니다. 또한 우리가 연약할 때에 성령께서 탄식으로 기도해주시는 기도와 하나님의 폭포수와 같이 쏟아 부어 주시는 사랑이 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 모든 것들을 이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겨야만 됩니다. 겨우 이깁니까? 아닙니다. 넉넉히 이깁니다. 본문에 넉넉히 이긴다고 했습니다. 본문 37절에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했는데, 그렇게 넉넉히 이깁니다. 쏟아 부어주는 그 한량없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또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넉넉히 이깁니다. 예수님께서 다 정복해 주신 것이니까 넉넉히 이깁니다. 성도는 믿음 지키다가 많은 환난을 당해 봐야 됩니다. 성도로서 환난 당해 보지 못한 사람은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