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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1일 목요일

누가복음 15:1-23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잃은 탕자의 비유,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잃은 탕자의 비유
누가복음 15:1-23

1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5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7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8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1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11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12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14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훙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을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예수님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본문 1-2절에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옴을 보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하며 비방을 했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서 가르쳐주셨습니다.

1. 잃어버린 양

본문 3-4절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8:12에도 양 비유가 있습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양 때를 산에 두었다고 했고, 본문에는 들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산에 있는 우리, 들에 있는 우리에 두고 산지사방으로 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러 다닌다고 했습니다.

본문 5-6절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8:13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소자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잃어버리지 않은 아흔 아홉 마리 양보다도 한 마리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으면 더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떠났던 양이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아주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에, 하나님은 회개할 것이 없는 아흔아홉 사람보다 더 기뻐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나가서 전도해서 교회에 안 나오던 잃어버린 양을 한 사람이라도 구원해 내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교회 나오는 아흔 아홉 사람보다 더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 하나를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시고 또 찾으려고 애를 쓰시고 찾으면 아주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전도하러 다니다 보면 잃어버린 양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예수 믿다가 그만 둔 사람, 타락된 사람, 믿으려고 하는 사람, 교회 나가려고 생각하고 있는 이런 사람을 만납니다. 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면 하나님은 이미 있는 여러 사람보다 그 한사람 하나님 앞으로 새로 인도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을 써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회개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알아야 하고, 다른 사람을 전도해서 잃어버린 양 하나라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줄 알아야 합니다. 전도하는 이일을 위해서 우리가 전심전력을 다해서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2.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

본문 8-10절에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드라크마는 은전의 명칭입니다. 어느 여자가 은전 열 개가 있었는데 열 개 가운데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방안에서 잃어버린 모양입니다. 방안에서 잃어버렸으니까 등불을 켜고 집을 쓸고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않았겠나 생각해봅니다. 돈 은전 하나를 잃어버렸는데, 그것을 찾으려고 등불을 켜고 집을 쓸고 찾도록 부지런히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 돈을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었던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것은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고, 죄인 하나를 잃어버렸는데 부지런히 찾으려고 노력을 하고, 전도하고, 심방하고, 돌봐서 하나를 찾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것으로 이웃과 더불어 아주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뜻으로 드라크마는 ‘중생한 영’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영적 생활을 못하는 사람, 즉 영의 세계를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등불을 켜고 집안을 쓸고 하는 이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집안을 쓴 것은 성령의 감동을 받으려고 애를 쓰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모든 더러운 것을 쓸어버리고 복잡한 것을 다 제거하고, 빈 마음을 가지고 중생한 영을 다시 찾으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찾는단 말입니다. 그리곤 중생한 영을 다시 찾으면 아주 기뻐합니다. 영적 빛을 잃어버렸던 것인데 영의 세계를 회개하면서 찾고, 모든 복잡한 것을 다 제거하면서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면서 영적 세계를 다시 찾으려고 애를 쓰면 다시 찾는다는 말입니다. 찾으면 더욱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고 하시며,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3. 잃어버린 탕자

탕자가 자기 분깃을 가지고 허랑방탕함

본문 11-12절에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라고 했습니다. 이 본문은 탕자비유인데, 둘째아들이 재산 중에서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을 달라고 와서 아버지께 간청을 했습니다. 좀 있다가 나누어 준다고 해도 자꾸 나눠달라고 해서 결국 재산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맏아들 몫을 맏아들에게 주고 작은 아들 몫은 작은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옛날에는 맏아들이 두 몫을 가지고, 3분의 1은 작은 아들에게 상속을 해주었습니다. 구약성경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작은아들에게 한몫을 줬습니다. 아들이 나눠가지고 갔습니다. 그 아버지가 부자이니까 아마 3분의 1이라도 상당히 많을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작은 아들이 먼 나라로 갔습니다.

본문 13절에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라고 했습니다. 1억이나 2억 가지고 갔어도 허랑방탕하기 시작하면 얼마 못갑니다. ‘주식형제(酒食兄弟)는 천개유(千個有)로되 급란지붕(急難之朋)은 일개무(一個無)니라’ 라고 했는데, 술 먹고 방탕할 때 친구는 천 사람도 넘지만 급하고 어려울 때 친구는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결국 그런 친구는 다 달아납니다. 잠언에 형제는 어려울 때를 위해서 있다고 했는데, 어려울 때 그런 방탕할 때 친구는 다 달아납니다. 잠언 17:17에,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 위급할 때는 형제가 와서 돌봐주게 돼 있습니다.
둘째가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다 허비했습니다. 본문 14-15절에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라고 했습니다.

그 탕자가 재산을 다 없이한 후에,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서 먹을게 없어지고 궁핍해졌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집에 가서 일을 좀 하자고 하니까 들에 가서 돼지를 치라고 했습니다.
그때 돼지 몇 천 마리씩 먹이는 집이 있었습니다. 2천 마리 먹이다가 예수님 당시에도 다 바다에 빠진 때가 있었습니다. 몇 천 마리씩 먹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돼지를 들에서 풀을 먹여서 키운 모양입니다. 돼지 먹이려면 들에 나가서 끌고 다녀야 하므로 사람이 필요해서 돼지를 먹이라고 했습니다. 이건 아마 들의 풀만 먹인 것이 아니고, 쥐엄 열매도 먹인 것을 보니까 밤에는 우리에 가두어 놓고 사료도 먹인 모양입니다. 사료가 쥐엄 열매입니다. 구역에는 파 껍질이라고 했고, 여기는 쥐엄 열매라고 했습니다. 돼지 먹는 사료입니다.

본문 16절에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끊어졌습니다. 사료나 늘 주면 돼지의 사료라도 얻어먹고 살겠는데 흉년이 심히 들었기 때문에 그것도 끊어졌습니다.

회개하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탕자

본문 17절에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라고 했습니다. 이제서 아버지 집을 한번 생각해봅니다. 여기서 죽게 되었는데,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많은데 나는 왜 여기서 주려서 죽게 되었는가 생각해 봅니다.

탕자가 전에는 아버지 생각을 안했습니다. 죽게 되니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게 되어야 자기 부모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아버지의 집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버지를 찾아갈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게 되어야 하나님을 찾을 생각이 납니다. 임사(臨死)요 호천(呼天)이라는 말이 있는데, 죽게 되면 하나님을 찾는다는 말입니다. 죽게 된 때에는 하나님도 찾고 전에 있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전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가? 전에 어떻게 받았는가? 전에 어떻게 믿었는
가? 전에 내가 어떠한 처지에 있었는가? 그것을 한번 생각해 본다는 말입니다.

본문 18-19절에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아버지에게 돌아갈 생각이 났습니다. 돌아가야겠다고 작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돌아가도 이제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아버지를 배반하고 나왔었는데,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했는데 내가 어떻게 아버지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며, 품꾼의 하나로 아버지가 사용해 주지 않겠는가 하면서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하고 결심을 하고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상상 밖의 큰 사랑, 아버지의 사랑

본문 20-23절에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 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돼지우리에서 일하다가 그대로 돌아오는데 아버지는 멀리서도 자기 아들인줄 알았습니다. 자기 아들이 돌아오는가 하고 매일 아버지는 나가서 기다리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거지같이 하고 돌아오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보니까 자기아들이므로 빨리 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상거가 아직 먼데 측은히 여겨 달려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더니 아들이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라고 하십니다. 

아들은 상상도 못한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거역하고 나갔고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했기 때문에 돌아가서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수가 없었고, ‘그저 품꾼의 하나로만 붙여줘도 감사하다. 배나 안고프고 잘 먹기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멀리서부터 벌써 아들이 돌아온 것을 알고 나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곤 데리고 들어가서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다 입히게 하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으라하고 즐기자 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사랑은 상상 밖의 큰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같이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이렇게 상상 밖의 큰 사랑으로 우리를 영접해주시고,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