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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8일 토요일

욥기 17:1-16 쇠약해져서 육신의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욥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쇠약해져서 육신의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욥
욥기 17:1-16

1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 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예비되었구나 2나를 조롱하는 자들이 오히려 나와 함께 있으므로 내 눈이 그들의 격동함을 항상 보는구나 3청컨대 보증물을 주시고 친히 나의 보주가 되옵소서 주 외에 나로 더불어 손을 칠 자가 누구리이까 4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워 깨닫지 못하게 하셨사오니 그들을 높이지 아니하시리이다 5친구를 지적하여 해를 받게 한 자의 자식들은 눈이 멀찌니라 6하나님이 나로 백성의 이야기거리가 되게 하시니 그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구나 7내 눈은 근심으로 하여 어두워지고 나의 온 지체는 그림자 같구나 8정직자는 이를 인하여 놀라고 무죄자는 사곡한 자를 인하여 분을 내나니 9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독실히 행하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 10너희는 다 다시 올찌니라 내가 너희 중에서 지혜자를 찾을 수 없느니라 11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경영, 내 마음의 사모하는 바가 다 끊어졌구나 12그들은 밤으로 낮을 삼고 빛
이 어두운데 가깝다 하는구나 13내 소망이 음부로 내 집을 삼음에 있어서 침상을 흑암에 베풀고 14무덤더러 너는 내 아비라, 구더기더러 너는 내 어미, 내 자매라 할찐대 15나의 소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소망을 누가 보겠느냐 16흙 속에서 쉴 때에는 소망이 음부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

1. 욥이 극도로 쇠해졌으며, 그를 조롱하는 자들은 그에게서 떠나지 않음

욥이 지금은 환난을 당하나, 후에는 복을 누리며 오래 살음

본문 1절에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 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예비되었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욥기 16장 22절에는 “수 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수 년이 지나면 하늘나라로 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욥은 기
운이 쇠하여져서 자기의 날이 다하고 무덤이 예비된 줄로 알고 있습니다. 병으로 말미암아 쇠약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웠고 무덤이 준비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후에 욥의 병이 낫게 됩니다. 그리고 병이 난 뒤로 오래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갑절의 복을 주셨습니다. 

욥기 42장 10-17절에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을 주신지라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및 전에 알던 자들이 다 와서 그 집에서 그와 함께 식물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금 한 조각과 금고리 하나씩 주었더라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며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그후에 욥이 일백 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지금은 병이 들어서 다 죽게 되어 살 소망이 없는 것 같은데, 성경은 그가 일백 사십 년을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병이 들어서 죽을 것 같고 소망이 없는 것 같고 무덤이 기다리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시면 더 살 수 있음을 알아야겠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기한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때가 되기 전에는 아무리 죽을 것 같아도 안 죽습니다. 그리고 예정한 때가 되면 건강한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데리고 가십니다. 건강하다고 데려가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해도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데려고 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을 것 같아도 때가 안 된 사람은 좀 더 살도록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2절에 “나를 조롱하는 자들이 오히려 나와 함께 있으므로 내 눈이 그들의 격동함을 항상 보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찾아와 욥과 함께 있으면서 그를 조롱하며 격동시킵니다. 그래서 욥이 “내 눈이 그들의 격동함을 항상 보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몸은 약해져서 이제는 거의 세상을 떠날 것 같이 되었는데, 조롱하는 자들은 계속 욥을 조롱하면서 격동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보주(保主)가 되어주심

본문 3절에 “청컨대 보증물을 주시고 친히 나의 보주가 되옵소서 주 외에 나로 더불어 손을 칠 자가 누구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자신이 무죄하다는 보증물을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또 욥을 조롱하는 사람들은 그가 고난 받는 것이 욥 스스로의 죄 때문이라고 하며 욥을 조롱하고 격동시키지만, 욥은 하나님 앞에 양심이 깨끗합니다. 그러나 청컨대 무죄하다는 보증물을 하나님께서 주셔야지, 사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욥이 ‘나의 보주가 되옵소서’라고 하였는데, 그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증하는 보주가 되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손을 친다’고 하는 것은 보증해주는 행동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당시에 보증해줄 때에는 손을 치면서 보증을 한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 나를 정죄하며 조롱하고 있는데, 나의 무죄함을 증거해줄 자는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손을 칠 자도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즉, 보증해주는 행동을 해주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 바로 알지 못합니다. 잘못 아는 사람도 많고 정죄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만은 바로 알아주십니다. 믿음을 지키다가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에게도 하나님께서 보증이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증하는 행동으로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욥은 지금 다른 사람들이 비방하고 조롱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기를 바라며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믿음 지키는 자를 해하는 자는 눈이 어두워짐

하나님의 종을 바로 알고 존경하며 사모하라

본문 4절에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워 깨닫지 못하게 하셨사오니 그들을 높이지 아니하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조롱하는 사람들은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셔서 깨닫지 못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참된 종을 조롱하는 자의 심령을 어둡게 하셔서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십니다. 욥이 바로 나가고 있는데, 바로 나가는 사람을 조롱하는 것을 보면 벌써 그 사람의 심령이 어두워진 것이 아닙니까? 진리에 대해서 바로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높여주실 수가 없습니다. 낮추십니다. 그러므로 진리로 나가는 하나님의 종을 바로 알고 존경하며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야 심령이 밝아지고 또 진리의 말씀을 바로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바로 깨달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주십니다. 구원이 잘 이루어져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조롱하면 심령이 어두워지고 진리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며 하나님께서 높이지 않으십니다. 

자녀 앞에서 교역자를 비방하지 말아야 함

본문 5절에 “친구를 지적하여 해를 받게 한 자의 자식들은 눈이 멀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욥을 지적하여 해를 받게 한 자는 그 자식의 눈이 멀어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종을 지적해서 조롱하고 해를 받게 하면, 자기의 눈(심령)이 어두워져서 진리에 대하여 깨닫지 못
하게 됩니다. 나아가 그 자식들의 눈도 어두워집니다. 자식들은 부모의 말을 듣고 부모가 하는 것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참된 종을 지적해서 조롱하고 해를 받게 하면 자식들이 신앙에서 떠나고 눈이 어두워져서 바른 길을 찾지 못합니다. 따라서 교역자를 비방하는 집은 그 자식들이 믿음을 잘 안 지킵니다. 자식들은 부모가 교역자 비방하는 말하는 것을 자주 듣다 보면, 교역자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한테 배워야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 안 나오고 세상으로 나가서 죄악의 길로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교역자를 잘 받들고 순종하며 나가는 집의 아이들은 교회에서 교역자를 순종해야 되는 것으로 알고, 교역자가 가르쳐주는 말씀을 잘 배워서 믿음을 잘 지킬 수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집에서 부모에게 배우고, 교회에서는 교역자에게 배워야 믿음을 잘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집은 부모들이 교역자를 비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대로 그렇게 하다 보면 아이들이 그런 소리를 들고 교역자가 아무것도 아닌 줄로 알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교회를 안 나오고 교역자 말
도 안 들으며 교회를 우습게 생각하면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는 세상으로 나가고 죄악의 길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식이 눈이 어두워지고 자신도 어두워진다’는 말은 마음이 가려져서 깨닫지 못하고 심령이 어두워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열왕기하 6장 16-19절에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니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 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엘리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도 아니니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의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저희를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람 군대가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잡으러 왔습니다. 그때에 아람 군대의 눈이 다 어두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보고도 알지 못하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잡으러 온 사람들의 눈이 어두워져서 엘리사를 보고도 모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따라가서 사마리아 성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즉, 엘리사를 잡으러 간 아람 군대가 눈이 어두워졌고, 결국에 사마리아 성에 잡힌 것입니다.
또 사도행전에 보면 바예수라는 사람이 사도 바울이 전도할 때에 사람들로 하여금 그 말을 믿지 못하게 하다가 눈이 어두워졌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잡으러 간 아람 군대가 눈이 어두워지고,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그것을 방해하다가 바예수의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욥을 조롱하면 그 아들의 눈이 어두워진다는 것입니다. 또 욥을 조롱하던 사람들은 그 마음이 가려져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결국은 낮아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것을 보고 언제나 교역자의 인도를 잘 받아서 심령의 눈이 밝아지고 진리를 깨달아 바른 신앙의 길로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3. 정직자는 수난 중에 새 힘을 얻음

성도가 고난 중에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함

본문 6절에 “하나님이 나로 백성의 이야기거리가 되게 하시니 그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지금 환난을 당하고 있는데, 그러한 사실이 백성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되었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잘 공경했는데 결과가 무엇이냐? 왜 하나님을 공경하던 사람이 저렇게 되었느냐? 아마도 욥이 잘못한 것이 많기 때문에 저렇게 되지 않았겠느냐?”라고 하면서 욥이 환난 당한 일로 인하여 백성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욥에게 와서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멸시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성도가 고난을 당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되고 멸시를 당하게 됩니다. 그래도 욥은 그러한 조롱과 멸시를 달게 받았습니다. 낙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나의 보증이시니 보증물을 주시옵소서. 주 외에 나로 더불어 손을 칠 자가 누구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보증해주실 분은 주님 외에 아무도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만 의뢰하고 담대히 나갔습니다. 

본문 7절에 “내 눈은 근심으로 하여 어두워지고 나의 온 지체는 그림자 같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눈이 너무 심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습니다. 그리고 온 지체는 그림자와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림자는 신체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즉, 욥의 몸이 신체가 다 없어진 것처럼 형편없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직자, 즉 믿음을 잘 지키는 자는 의인인 성도의 고난을 이해함

본문 8-9절에 “정직자는 이를 인하여 놀라고 무죄자는 사곡한 자를 인하여 분을 내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정직자는 이를 인하여 놀란다’는말은 본문 6절에 나온 바 욥이 이야깃거리가 된 것에 대해 놀란다는 뜻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욥을 향해서 이야깃거리를 삼고 침을 뱉는데, 그래도 정직자는 양심을 바로 쓰고 욥이 어찌하여 이렇게 이야깃거리가 되었는가 하고 놀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죄자는 사곡한 자를 인하여 분을 낸다’고 하였는데, 무죄자는 욥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그를 비방하는 사람들에게 “어찌해서 욥에게 그럴 수가 있느냐?”하고 분을 낸다는 것입니다. 

욥이 지금 병이 들고 그밖에도 형편없이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정직자는 그에 대해 놀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 가운데서 악하고 옳지 않은 사람들은 욥을 비방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무죄자는 분을 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욥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자꾸 죽을 죄인을 몰아치는 것처럼 하느냐?”고 합니다. 

이렇게 성도가 고난을 당할 때에 믿음을 잘 지키는 사람은 그 성도가 고난당하는 것을 이해합니다. 또 “믿음을 지키는 사람도 고난을 당할 수 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되면 안 된다. 성도가 고난당하는 것은 성경에도 나와 있는데, 왜 그것을 이야깃거리로 삼고
왜 그 얼굴에 침을 뱉느냐? 성도의 얼굴에 침을 뱉는 사람들은 옳지 않다”라고 하면서 분을 내는 것입니다. 정직한 자는 성도를 바로 알고, 성도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잘못한 줄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 대해서 의분(義憤)을 느끼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독실히 행하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백성들이 비방을 하고 침을 뱉어도 의인은 점점 그 신앙의 길을 독실하게 행하며 나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핍박하고 비방하며 이야깃거리를 삼는다고 해서 고통과 근심 가운데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아무리 핍박을 하고 비방을 해도 나는 신앙 양심을 써서 점점 독실히 나간다’고 하며 의인은 점점 더 독실하게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공경한다고 하면서 왜 그렇게 되었느냐? 잘 믿는다는 사람이 세상에서 잘되어야지, 왜 아들, 딸들이 다 죽고 몸에는 병이 나고 하였느냐?”라고 이야깃거리가 되고 비방거리가 되어도, 그래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정직자와 무죄자입니다. 그들은 욥을 알아주고 도리어 욥을 비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분을 냅니다. 또 하나님께서 알아주십니다. 성도가 애매히 고난을 당해도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양심이 알고 정직자가 알아줍니다. 그래서 본문9절에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독실히 행하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의로운 길, 진리의 길로 바로 걸어가는 사람은 아무리 핍박과 비방이 많고 또 멸시를 당해도 점점 독실한 길을 걸어가고 손이 깨끗하게 나아가므로 점점 힘을 얻는 것입니다. 의인은 환난과 핍박이 있어도 점점 독실하게 나가며 힘을 얻습니다. 비방하는 사람, 조롱하는 사람, 멸시하는 사람이 많아도 점점 힘을 얻고 독실히 나가는 것입니다. 또 그를 알아주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께서 보증이 되어주십니다. 그러니까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욥이 바른 신앙, 정직한 신앙을 가지고 의로운 길을 걸어가는데, 다른 사람들이 많이 조롱을 합니다. 또 조롱할 수 있습니다. 외부적으로 잘되면 괜찮겠는데, 지금 외부적으로 낭패를 당해 집안이 쫄딱 망한 것과 같고 몸에도 병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여러 사람들의 이야깃거리
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욥을 조롱하고 멸시하여 침을 뱉고 있습니다. 그래도 욥은 나의 보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하나님께서 보증물 주시기를 원한다고 하였고, 점점 더 독실히 행한다고 하였습니다. 핍박하는 사람들 때문에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하나님만 잘 섬기다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만 둘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독실하게 행하고 점점 더 힘을 얻어나가는 것입니다. 

또 정직자와 같이 믿음이 있는 사람은 욥을 알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욥을 비방하는 사곡한 사람들을 인해서 정직자들은 분을 내었다고 했습니다. 비방하는 사람도 있고 욥을 알아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자기 양심이 알고 하나님께서도 아시기 때문에, 점점 더 독실히 나가며
걱정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점점 더 힘을 얻어나가는 것입니다. 환난 가운데 점점 더 힘을 얻어나가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환난이 있다고 해서 힘이 다 빠지는 사람은 마귀에게 넘어갑니다. 환난이 와도 점점 힘을 얻어나가야 그 신앙이 바른 신앙입니다. 욥은 그런 신앙을 가졌습니다. 

본문 10절에 “너희는 다 다시 올찌니라 내가 너희 중에서 지혜자를 찾을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너희 중에서 지혜자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다 갔다가 다시 오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는 말은 나에게 합당치 않은 말이므로, 가서 기도를 많이 하고 연구를 해서 바른 진리를 많이 깨달은 다음에 다시 와서 내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게 유익을 줄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쓸데가 없으므로 가라는 것입니다. 

4. 육신의 소망이 다 끊어진 욥

빛을 빛으로 알아야 바로 된 것임

본문 11절에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경영, 내 마음의 사모하는 바가 다 끊어졌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지금 세상 소망이 다 끊어지고, 세상의 날이 다 지나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에 “그들은 밤으로 낮을 삼고 빛이 어두운데 가깝다 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욥을 조롱하는 사람들은 밤으로 낮을 삼아 말하고, 또 빛이 어두운데 가깝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말을 바로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낮은 밤이라 하고 밤은 낮이라 하며, 광명은 흑암이라 하고 흑암은 광명이라 한다는 것입니다(사 5:20-21).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흑암으로 광명을 삼고 나가고 광명으로 흑암을 삼고 나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또 쓴 것은 달다고 하며 나가고 단 것은 쓰다고 하며 나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술 먹는 사람은 술이 쓰지만 단 줄 알고 먹습니다. 술 한 잔을 먹고는 “캬”하는데 써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쓴 것을 단 줄로 알고 마십니다. 또 하나님의 성경말씀은 단데 성경말씀은 쓰다고 합니다. 성경말씀을 들으면 재미가 하나도 없고 성경말씀을 보면 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소설책을 봐야 재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보아야 재미가 있고 성경을 보면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단 것인데 쓰다고 하고, 세상 것은 쓴 것인데 달다고 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쓴 것으로 단 것을 삼고 단 것으로 쓴 것을 삼으며 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요새 바른 진리를 옳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바르지 못하게 나가는 사람들이 자기 나가는 것이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 탈선이 되었는데, 그것이 옳다고 하며 성경대로 바로 나가는 사람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무슨 예수를 그렇게 믿느냐? 성경대로 다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성경만 말한다. 성경 말만 하지 말고 다른 것을 섞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성경이 사실은 단 것인데, 그것을 쓰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는 교회에서 성경 말만 하지 말고 다른 것을 섞어 하라고 합니다. 성경 말만 밤낮 하므로 듣기가 싫으니까 세상 말도 좀 하고 과학 얘기, 철학 얘기, 정치 얘기를 다 해야 이야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밤낮 성경 얘기만 하는데 무슨 재미가 있느냐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단 것을 쓴 것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세상 얘기를 하면 귀에 쏙 들어간다고 하는 사람은 쓴 것을 단 것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빛이 어두운데 가깝다고 하며 밤을 낮으로 삼고 나갑니다. 그런데 도적질하고 방탕하는 사람들이 밤을 낮으로 삼고 다니는 자들입니다. 새벽 기도를 하려고 교회에 오다 보면, 밤새 자지 않고 돌아다니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설렁탕 집에서 밥을 사먹고 밤새도록 자지 않고 돌아가는데, 새벽 시간까지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때 집에 가서는 낮 12시까지 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일은 언제 합니까? 그러니까 일을 할 새가 없어서 도둑질이나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일을 안 해도 먹고 살 사람도 있겠지만, 일하지 않고 살 수가 있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먹고 살겠습니까? 하여간 밤은 낮으로 삼고 빛은 어둠에 가깝다고 하며 나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도 그와 비슷한 종류들입니다. 

그러나 바른 진리를 깨달아서 빛을 빛으로 알고 어둠을 어둠으로 알아야 합니다. 죄는 죄로 알고, 의는 의로 알고, 생명 길은 생명 길로 알고, 사망 길은 사망 길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진리로 알고, 비 진리는 비 진리로 아는 사람이라야 바로 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육신은 죽어 없어지나 성도의 소망은 하늘나라에 있음

본문 13-15절에 “내 소망이 음부로 내 집을 삼음에 있어서 침상을 흑암에 베풀고 무덤더러 너는 내 아비라, 구더기더러 너는 내 어미, 내 자매라 할찐대 나의 소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소망을 누가 보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내 소망이 음부로’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내 소망이 무덤으로’와 같은 것입니다. 즉, 이제는 육신적으로 볼 때에 무덤에 갈 것밖에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집을 삼음에 있어서 침상을 흑암에 베풀고’라고 하였는데, 조금 있으면 죽을 사람이므로 침상을 흑암에 베푼 것과 같이 빛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무덤더러 너는 내 아비라, 구더기더러 너는 내 어미,내 자매라 할찐대”라고 하였는데, 무덤으로 조금 있으면 들어갈 것이므로 무덤더러 “너는 내 어미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뱃속같이 무덤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더기더러 너는 내 어미, 내 자매라 할찐대’라는 말은 조금 있으면 구더기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즉, 구더기가 와서 죽은 몸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볼 때에는 우리가 다 이렇게 됩니다. 또 ‘나의 소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소망을 누가 보겠느냐”라고 하였는데, 이제는 육신적으로 볼 때에 살 가망이 없고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죽어서 무덤에 갈 것이므로 무덤이 어머니 뱃속이 될 것입니다. 또 거기는 구더기들이 와서 자신을 먹을 것이니 나의 소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소망을 누가 보겠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흙 속에서 쉴 때에는 소망이 음부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무덤에 들어가 흙 속에 들어가서 쉴 때에는 소망이 음부 문으로 내려갈 뿐이라는 것입니다. 음부는 무덤을 가리키는데, 무덤 문으로 소망이 내려가 소망이 다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죽어 장사할 때에는 육신의 소망이 다 끊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욥기 19장 25-26절에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하였습니다. 육체는 음부에 내려가서 썩어집니다. 그렇지만 ‘나의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을 뵈옵고 구속자가 살아 계셔서 구속해주실 것을 믿는 것이 소망입니다. 육신으로 볼 때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썩을 장막 집을 벗어놓고 하늘나라에 갈 것인데, 장막 집은 장사지내면 구더기가 나서 다 썪어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은 하늘나라에 가서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뵈옵고 하나님과 같이 영생복락의 세계에 들어가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영원히 세세 무궁토록 하나님과 같이 살게 되는 것이 성도의 소망입니다. 육체로는 아무 소망이 없지만 영으로는 영원히 사는 하늘나라의 소망, 영생복락의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