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
히브리서 4:10-16
히브리서 4:10-16
10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11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13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14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4:10 이미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들을 쉬셨던 것처럼 그 들도 자기 일들을 쉬고 있다.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할 것이니, 이는 누구든지 동일한 불순종의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4:12 과연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동력이 있으며 어떤 양날 선 검보다도 더 날카로워서,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해 낸다.
4:13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피조물도 숨겨지지 않고, 모든 것이 벌거벗은 채로 드러나 있으니, 우리가 그분의 눈앞에서 청산해야 한다.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계시니, 신앙고백을 굳게 붙잡자.
4:15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못하는 분이 아니시니, 모든 면에서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4:16 그러므로 인애하심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가자.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할 것이니, 이는 누구든지 동일한 불순종의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4:12 과연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동력이 있으며 어떤 양날 선 검보다도 더 날카로워서,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해 낸다.
4:13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피조물도 숨겨지지 않고, 모든 것이 벌거벗은 채로 드러나 있으니, 우리가 그분의 눈앞에서 청산해야 한다.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계시니, 신앙고백을 굳게 붙잡자.
4:15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못하는 분이 아니시니, 모든 면에서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4:16 그러므로 인애하심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가자.
1. 안식에 들어간 자의 행복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본문 11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라고 했는데, 힘을 써야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힘을 안 쓰면 안식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본문 10절에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라고 했습니다. 10절 내용은 하늘나라에 간 사람을 가르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늘나라에 간 사람들은 이미 안식에 들어 간 사람들입니다. 자기 일을 다 끝마쳐 놓고 쉬는 그 나라라는 말입니다.
2.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 것
11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순종치 아니 한 자들의 본에 빠지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7절에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라고 했습니다.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언제나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받아서 그대로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영적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하늘나라는 힘쓰지 않아도 들어갑니다. 하늘나라는 힘쓰지 않아도 믿기만 하면 들어갑니다. 영원한 안식은 다 들어갑니다. 또 천년안식도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다 들어갑니다. 그것은 힘쓰지 않아도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또 순종해라’, 이 말씀은 첫째 영적 안식을 가르친다고 봐야 합니다. 하늘나라나 천년왕국은 믿기만 하면 거저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힘을 써야 들어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순종해야 들어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적 안식입니다. 우리가 힘써 기도하고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서 순종하고, 그럴 때에 영적 안식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입니다. 영적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예수 믿는 사람은 이 세상 사는 동안에 하나님 나라 밖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물론 택한 백성이면 구원은 얻습니다. 그러나 안식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적인 안식을 찾아서 안식 세계에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안을 받고 기쁘고 즐거우며 영적 평안을 얻어야 합니다. 안식을 찾아서 믿어야 합니다. 이 안식을 찾지 못하면 세상이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쓸쓸한 세상이며 서로 부
딪히는 세상이고 평안이 없는 세상입니다. 아무리 세상 것을 많이 가져다준다 해도 거기에 만족이 없습니다. 부귀영화 모든 것을 다 가져다줘도 거기에 안식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안식을 찾아서 믿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딪히는 세상이고 평안이 없는 세상입니다. 아무리 세상 것을 많이 가져다준다 해도 거기에 만족이 없습니다. 부귀영화 모든 것을 다 가져다줘도 거기에 안식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안식을 찾아서 믿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김현봉 목사님이 혼자 사는 어떤 여자 교인에게 “요새는 마음에 위안을 받느냐”고 물어 봤습니다. 그때 그 분이 어떻게 대답을 했는지 지금 생각이 잘 안 납니다. 그러나 이때 김 목사님 질문은 “마음에 위안을 받으면서 예수를 믿느냐”는 것입니다. ‘영적 안식을 찾아서 믿느냐’ 하는 뜻입니다. 마음에 영적 위안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영적 안식 세계 밖에서 사는 사람이니까 거기에는 참된 복이 없습니다. 아무리 혼자 살고, 집도 한 채 없고 (그 분은 집도 한 채 없는 사람입니다), 옷장도 하나 없고 옷도 변변히 없는 사람이라도 영적 위안을 받고 살면 거기가 낙원입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했는데, 우리가 그 안식을 찾기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온유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순종하기를 사모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영적 안식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사모해야 하고 힘써야 합니다.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라고 했습니다.
기도하기를 힘쓰고 영적 안식 세계를 찾아 가야 합니다. 거기 낙원에서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초막에 있어도 하늘나라고 산중에 있어도 하늘나라입니다. 요셉이 옥중에 있어도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그 영적 안식 세계를 찾아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남의 집 종살이해도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니까 영적 안식 세계를 찾으려면 힘써야 합니다.
새벽 기도 다 나오십시오. 새벽 기도 안 나오면 안 됩니다. 또 기도원에 기도하는 당번 되면 다 나가십시오.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하는데 기도부터 힘써야 합니다. 기도하는데 힘쓰지 않아서는 안식을 찾을 수 없습니다. 힘써서 기도하고 그 다음에는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서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안식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순종치 않는 자의 본에 빠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순종치 않는 자의 본에 빠지면 마음이 강퍅해져서 안식에서 멀리 떠나게됩니다. 순종하는 마음을 항상 가져야 합니다.
가나안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영적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동시에 그 다음으로 가나안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하겠는데, 가나안 안식은 무엇입니까? 가나안은 육신이 들어가서 그 땅을 얻는 것 아닙니까? 가나안 안식은 영적 안식보다 범위가 넓습니다. 영적 안식은 중생한 영과 마음이 하나 되어 심령이 하나님과 교통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좀 더 범위를 넓게 나가서 거기에 우리 몸이 이용당해야 합니다. 그 영적 안식 세계에서 사는 것에 우리 몸이 이용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만물이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영적 하나님과 교통하는데 몸이 이용당합니다. 그러면 의의 병기(兵器)가 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또 만물이 하나님 앞에 이용당합니다. 즉, 심령이 안식을 누림과 동시에 그 마음이 몸을 이용하고 몸이 불의의 병기가 되지 아니하고 의의 병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 그 몸에 만물이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만물이 하나님의 뜻대로 영의 인도를 따라서 이용당해야 합니다. 힘써야 합니다. 그러한 것이 우리에게 가나안 안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 몸이 이용당합니다. 또 하나님께 우리 만물이 이용당합니다. 먼저 영이 이용당하고 거기에 몸이 이용당하고 거기에 내가 가능한 하나님의 만물을 이용당하게 하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고 하나님께 바로 하고 하나님의 뜻의 따라서 그 만물이 이용당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가나안 안식입니다. 이것은 힘을 많이 써야 하는 것입니다. 힘쓰지 않은 사람은 되지않습니다.
먼저 영적 안식을 찾은 다음에 그 다음에 몸이 이용당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몸이 의의 병기가 됩니다. 하나님의 전이 됩니다. 거룩한 몸이 됩니다. 거기에 이제 만물을 하나님께 바로 이용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가나안 안식입니다. 그것도 힘을 써야 됩니다. 힘을 안 쓰면 될 수 없습니다. 영적 안식도 힘을 써야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 안식이라는 것은 가나안 땅이 아닙니다. 거기에 이용당하는 몸과 만물을 통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 되어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 되었어도 가난해도 거기에 이용당하면 그것이 가나안 안식입니다. ‘거기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순종치 아니한 자들의 본에 빠져서 순종치 아니한 자들과 같이 되지 말고 마음이 온유한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순종해서 그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3. 말씀의 심판을 받기 전에 회개할 것
본문 12, 13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오늘날 살아서 역사하는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죽은 말씀을 믿으면 이 다음에 큰 일이 납니다. 살아서 역사하시는 말씀을 믿어야 이 다음에 심판을 안 받습니다. 운동력이 있는 말씀으로 믿어야 합니다. 힘없는 말씀으로 믿으면 안 됩니다.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이 예리해서 진리와 비진리를 갈라놓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마귀의 뜻을 예리하게 갈라서 바로 서라는 것입니다.
또 혼은 마음이고 영은 중생한 영입니다. 관절과 골수는 깊은데 있는 것까지 쪼개는 것을 말합니다.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이 하나님의 말씀에 다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혼과 영과 골수까지 말씀대로 안 된 것은 심판 받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안된 것은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이 다음에 말씀이 나타나서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됩니다. 현재 우리가 말씀에 따라서 심판을 안
받고 나가면 이 다음에 말씀이 나타나서 심판하실 때에는 하나님의 큰 징벌이 옵니다.
받고 나가면 이 다음에 말씀이 나타나서 심판하실 때에는 하나님의 큰 징벌이 옵니다.
요한계시록 16장 8, 9절에 보면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 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접을 해에다 쏟으니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을 태웠다고 했습니다. 태양은 진리를 상징하는데, 진리의 말씀이 지금은 힘이 없는 것 같지만 마지막 때에는 이 말씀이 해와 같이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권세가 있어서 그 불로 사람을 태우는 것처럼 말씀이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다음에 말씀의 심판을 받으면 그때는 회개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다음 말씀의 심판을 받기 전에 지금 좌우에 날선 검같이 살았고 운동력 있는 말씀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또 마음과 영과 관절과 골수 깊은데까지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또 생각과 뜻, 그것까지도 말씀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서면 이 다음에 말씀대로 심판을 안 받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바로 서지 못하면 이 다음에 말씀이 나올 그때에는 불로서 태움을 당하는데 감당하지 못합니다. 항상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에 따라 심판을 받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다 드러납니다. 지금 회개해야지, 회개하지 않고 나가면 이 다음에 적나라하게 만물이 다 드러날 그때에는 벌써 시기가 다 지나간 것입니다.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심판 받을 줄 알고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 회개하지 않고 어물어물하고 나가면 이 다음에 심판 받을 때 감당 못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죄를 지으면 사 심판이 옵니다. 고린도전서 5장 5절에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런 자라는 것은 간음하는 자입니다. 간음하는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이니까 지옥은 안 갑니다. ‘사단에게 내 주었으니 육신은 멸하고’라고 했습니다. 즉, 육신은 쫄딱 망하는 것입니다. 영혼은 믿었으니까 주 예수의 날에 구원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오기 전에 말씀의 심판을 먼저 받아서, 우리가 날마다 여러 가지 죄, 은밀하게 지은 죄들까지 회개하고 잘못된 마음과 뜻을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바로 서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이 다음에 심판대 앞에 가서 책망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 심판대를 앞두고 우리가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4.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것
14절에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대제사장이 있는데, 누구입니까?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고 하였는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구속을 완성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계시며 지금도 우리 구원을 이루어 나가고 계십니다. 이런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도를 굳게 잡을 지어다’라고 하였는데, 믿는 도리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구원의 도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 굳게 못 잡으면 가다가 마귀에게 미혹됩니다.
‘믿는 도리를 굳게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으라는 말입니다. 말씀을 굳게 붙잡으라는 말입니다. 죽어도 말씀 붙잡고 죽으면 됩니다. 말씀 붙들고 죽으면 사는 것입니다. 쓰러져도 예수님 붙들고 말씀 붙들고 쓰러지면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놓고 말씀 놓고 사는 것은 가다 망하는 것입니다. 죽어도 말씀 붙들고 죽고, 쓰러져도 말씀 붙들고 쓰러져야 합니다. 구속의 도리, 바른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죽을 때까지 가면 큰 복입니다.
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다 체휼(體恤)했다는 말입니다. 체휼했다는 말은 고난을 같이 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고난은 예수님께서 다 받으셨고 다 지내 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연약해서 가다가 쓰러지고 연약해서 가다가 시험에 빠지고 하지만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이기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연약한 것을 강하게 만들어 주시고 이기게 만들어 주시고 쓰러진 것을 일으켜 세워주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긍휼이 풍성하셔서 우리 연약한 모든 것을 다 지내보시고 도와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다 건져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죄는 없으십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는데, 물질시험, 영광 시험, 명예 시험입니다. 또 다른 시험도 우리가 받는 시험을 예수님께서 다 받으셨습니다. 다 받으셔서 이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이긴 능력으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힘입으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긴 능력으로 우리를 다 이기게 해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5.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
오늘 본문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어디에 담대히 나가라고요? ‘은혜의 보좌 앞’에 입니다. 언제 나가라고요? ‘때를 따라’입니다.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마귀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이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여러 가지 시험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언제 나가라고요? ‘때를 따라’입니다. 둘째, 어디에 나가라고요? ‘은혜의 보좌 앞’에 입니다. 무엇을 하기 위하여 입니까?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어떻게 나가라고요?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입니다.
여기서 ‘때를 따라’는 무슨 때를 따라 일까요? 은혜 받을 만한 때에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때가 어느 때입니까? ‘긍휼하심을 받을 때’입니다. 언제 받습니까? ‘시험이 왔을 때’입니다.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라는 시험이 왔을 때입니다. 또 연약할 때에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라는 것입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서 하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하루에 몇 번 기도했습니까? 세 번 했습니다. 때를 따라 한 것입니다. 우리도 때를 따라 나가야 합니다. 사도들은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때를 따라 기도하러 갔습니다. 몇 시입니까? 두 시, 요새로 말하면 오후 3시입니다. 사도들도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 놓고 때를 따라 기도하러 나갔습니다. 우리도 기도하는 때를 따라서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가 언제입니까? 새벽 기도, 그 시간이 제일 좋습니다. 다니엘은 오후 3시에 기도했고 사도들도 그랬습니다. 우리도 오후 3시에 기도하는 것도 좋겠지만 바쁠 때는 3시에 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니까 새벽에 기도하십시오. 무조건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또 얼마나 기도해야 할까요? 10분? 한 시간? 성경에 한 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최소한 한 시간은 기도해야 합니다. 두 시간 기도 하는 것도 좋습니다. 루터는 두 시간 기도하지 않은 날은 마귀에게 졌다고 했습니다. 새벽 기도 안 하고 잠만 자는 사람 누가 기뻐하겠습니까? 마귀가 기뻐합니다. ‘참 잘 잔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내 딸이다, 잘도 잔다, 좀 더 자라 좀 더 자라,’ 합니다. 마귀가 기도 안 하고 잠만 자는 사람을 아주 좋아합 니다. 자기 편이라는 말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마귀가 벌벌 떱니다.
기도 하는 사람에게는 마귀가 혼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오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어떻게 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새벽 기도 교회 나와서 하시기 바랍니다. 때를 따라서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이 왔을 때 겟세마네에 가서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또 광야에서 세 가지 시험할 때 며칠 기도하셨습니까? 사십 일 금식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시험이 올 때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를 따라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신다고 했으니까 약할 때 기도하십시오. 약해서 기도 못 하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기도하면 강해집니다. 육신은 약하지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힘 주시면 또 힘이 납니다.
윤 할머니가 기도 많이 했는데 빼빼 말라서 힘이 하나도 없게 생겨서 어디 잘 다니지 못 할 것 같은데 전도지 한 보따리 들고 공원에 가서 나눠주고 남산에 가서 나눠주고 그렇게 늘 했습니다. 구십 세가 넘도록 했습니다. 구십 삼세에인가 세상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약해도 하나님께 나가서 담대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돕는 은혜를 주셔서 기도 많이 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우리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담대히 나가는 그런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