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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0일 수요일

누가복음 14:1~14 낮은 자리에 앉고 갚을 것이 없는 자를 대접하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낮은 자리에 앉고 갚을 것이 없는 자를 대접하라
누가복음 14:1~14

1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한 두령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저희가 엿보고 있더라 2주의 앞에 고창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3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4저희가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5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6저희가 이에 대하여 대답지 못하니라 7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상좌 택함을 보시고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가라사대 8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너와 저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말석으로 가게 되리라 10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있으리라 11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2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13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14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

1.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신 예수님
 
안식일에 선을 행하라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한 두령의 집에 떡 잡수시기 위해서 들어가셨습니다. 본문 1-4절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한 두령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저희가 엿보고 있더라 주의 앞에 고창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저희가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청함을 받아서 바리새인 한 두령의 집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 앞에 고창병 든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고창병은 배가 붓는 병입니다. 고창병은 배가 뚱뚱 부어서 죽는 병인데 그것은 잘 낫기 힘든 난치병입니다. 고창병으로 몸이 붓는 병이 걸린 한 사람이 와 앉아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에 병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하고 물어보시니까 저희가 아무 대답도 없이 잠잠했습니다. 그렇게 물으신 뒤에 예수님께서 고창병 든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본문 5절에,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라시며, 소나 아들이나 안식일에 우물에 빠졌으면 그 사람들이 곧 끌어낸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고창병 든 사람이 병마에 빠져서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 있었겠습니까? 이 사람을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병 고침을 받은 그 사람이 얼마나기쁘고 감사했겠습니까? 몸이 뚱뚱 붓고 배가 부어서 얼마 안 있으면 죽게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거기서 건져주어서 다 낫게 해 주셨으니 그 기쁨은 한량없는 기쁨이고, 감사가 나오고 찬송을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 마귀나 병마에 사로잡혔던 사람을 살려내고 건져내는 일을 예수님께서 아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이런 일을 행하셨습니다. 우리도 안식일에 심령의 병 든 사람을 고치는 일, 마귀에게 눌린 사람을 건져내는 일, 생명에 관계되는 일에 있는 사람을 살려내는 일, 생명이 위험한 사람을 살려내야 합니다. 그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

그러나 안식일인 주일날 일하는 것은 죄입니다. 제4계명에 주일날 어떻게 일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너나 아들이나 딸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문 안에 유하는 객이나 육축이나 아무라도 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일날 일 하는 것은 죄입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까 주일날 선거하자는 여론이 있는 모양입니다. 주일날 선거하면 우린 그렇게 못합니다. 선거를 할 수 없습니다. 주일날 어떻게 선거 할 수 있겠습니까? 1948년도 이북에서, 주일날인데 그 날 대의원 선거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그날은 선거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간 위협을 하고, 공갈을 하고, 검사하러 나오고, 죽인다고 권총을 갖다 대고, 그렇게 협박했지만 그래도 선거 안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왜 안했겠습니까? 주일날이라서 안 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주일날 일 하지 말라고 그랬기 때문에 못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게 무슨 일이냐? 종잇조각 하나 넣는 게 무슨 일이냐?”하고 반문합니다. 이북 선거는 종잇조각 하나 갖다가 넣는 것입니다. 도장도 안찍습니다. 이북에서는 종이 하나를 찬성이면 흰 통에 넣고 반대면 검정 통에 넣는 선거입니다. 선거 날 그저 하는 일은 종잇조각 하나 가져다가 자기 마음대로 흰 통에 넣고 싶으면 넣고 검정 통에 넣고 싶으면 넣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무데나 하나 종이 넣고 나오면 되는데 그게 무슨 일이냐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국가사업입니까? 아닙니까? 국가사업이라는 것입니다. 주일에 개인사업도 안 하는데 국가사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선거 안하고 많은 핍박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숙청당한 사람, 감옥에 끌려간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주일날 우리가 국가사업도 할 수 없습니다. 주일날 일하는 그것은 전부 다 죄입니다. 선거 유세하는 사람들이 주일날 하는 그것 다 죄 짓는 줄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주일날 유세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다 가짜 성도입니다. 주일날이라서 못한다고 하는 사람이 그게 진짜입니다. 그 사람을 찍어줘야 됩니다. “주일날이라서 나는 선거 운동 못합니다”하는 그 사람이 진짜입니다.

주일날을 우리가 생명을 내어놓고 지켜야 되는데, 본문에 나온 이런 병 고치는 문제는 할 수 있습니다. 병 고치는 문제, 귀신 내쫓는 문제, 이런 것은 할 수 있지만 다른 것은 하면 안 됩니다. 주일날 결혼식에 가는 그것은 어떠합니까? 결혼식 가는 그것 괜찮습니까? 그건 안 됩니다. 그러면 예배 끝난 다음에 가는 건 괜찮습니까? 주일날은 24시간 동안 다 지키라고 했지, 어디 예배시간만 하라고 했습니까? 그러니까 주일날 결혼식장 가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에 하는 데는 안 가야 됩니다.

그러면 손님이 왔을 때 뭐 사다 대접해주면 괜찮겠습니까? 주일날 온 손님은 간장만 대접해 보내야 합니다. 예배시간 즈음에 손님이 왔으면, 예배당에 같이 가자고 첫째는 그래야하고, 예배에 같이 안 가겠다고 하면 좀 기다리라고 하십시오. 예배 다 드리고 온다고 해야 합니다. 주일날 오는 손님에게는 사실 간장도 많이 대접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갔다 와서 말동무 해주는 것도 많이 대접하는 것입니다. 아예 주일날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날인 줄 알고, 이 날은 제대로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부득이 한 경우에 병 고치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또, 귀신 내쫓는 그것도 할 수 있고, 소나 아들이나 우물에 빠지면 건져내는 일도 성경에 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하는 것은 할 수 없습니다. 뭐든 사오는 것은 할 수 없습니다.

2. 낮은 자리에 앉으라

본문 7-9절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상좌 택함을 보시고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가라사대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저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말석으로 가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상좌에 앉지 말고 말석에 내려가 앉으라는 것입니다. 낮은 자리에 가 앉으라는 것입니다. 상좌에 앉으면 그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았을 경우에, 그 청한 사람이 와서 뭐라고 한다고 했습니까?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그때에 그 사람이 부끄러워서 말석으로 가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청함을 받을 때 처음부터 차라리 말석에 가서 앉으라고 하십니다.

본문 10절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어디 가서 높은 자리에 앉지 말고 낮은 자리에 가 앉으라는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 가 앉으면 자기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아서 왔을 때에, 그 모임에 청한 사람이 와서 더 높은 사람이 앉아야 되겠으니까 ‘미안하지만 자리 좀 내어 달라’고 할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상석
에 앉았다가 일어서서 그 다음 자리에 앉으려 할 때에, 이미 자리에 사람들이 다 앉았으니까 다른 자리는 앉을 수가 없어서 맨 말석으로 가게 됩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가서 말석에 앉았으면 청한 사람이 오히려 와서 저리로 올라가자며, 말석에 앉은 그 사람을 모시고 상좌로 올라가게 되는데, 그 때는 영광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말석에 가 앉으라는 것입니다. 자기 잘난 맛에 살지 말고, 자기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줄 알아야 됩니다. 자기는 늘 부족한 줄 알아야 되고 언제나 겸손해야 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낮은데 처해야만 믿는 생활을 잘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경우에’라고 했는데, 왜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을 경우를 말씀했을까? 이게 문제입니다. 처음 초청받으신 그 자리가 혼인잔치입니까? 여기서는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청했습니다.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좀 대접하려고 청했는데 왜 혼인잔치라는 말을 예수님이 갔다 썼었겠는지 알아봐야 합니다.

본문 7절에 보면,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상좌에 앉은 것을 보고’라고 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초대받으신 그 자리에 상좌가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 많이 앉은 모양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은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마 그 사람들이 다 앉아서 예수님이 앉으실 자리가 없었던 모양 같습니다. 예수님이 앉을 자리가 없으니까 이런 비유로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그리고 ‘혼인잔치’라는 말을 왜 썼는가 하면, 예수님은 신랑이시라고 성경에 나와 있는데, 그 자리에 신랑이 온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예수님을 신랑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3:29-30에,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신랑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면 신부는 누구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신부는 세례요한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지금 왔는데, 바리새인들이 상좌에 지금 다 앉아서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청한 사람이 그들에게 가서 자리 내어주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자리에 앉지 말라

여기에서는 두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자리에 앉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앉으실 자리를 언제나 내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자기밖에 없는 줄 알고는 자기가 높은 자리에 앉고, 제 주장, 제 뜻대로만 하려고 하면서 자신이 예수님의 자리에 앉지 아니해야 됩니다. 언제나 늘 예수님을 첫째 자리에 앉히라는 말씀입니다.
가정에는 호주가 있고, 공장에는 사장이 있고, 교회에는 예수님이 주장하십니다. 예수님의 자리를 언제나 먼저 내놓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인도를 받아서 자신은 종의 위치에서 모든 것을 순종해야 됩니다. 자기가 제일인 줄 알면 안 됩니다. 언제나 예수님이 주인이십니다.

어떤 회사의 사장도 자기는 부사장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어떤 회사가 있었는데, 자기는 부사장이라고 하며 늘 일을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큰 바이어가 외국에서 와서는 그 회사에서 물건을 많이 사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부사장이 나왔다는 말입니다. 바이어가 사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자꾸 그러니까 그 부사장이 괜찮다고 나하고 하면 된다고 그랬다고 합니다. 그래도 바이어는 사장을 자꾸 만나겠다고 하고, 부사장은 사장은 만날 수 없다고 하고, 그래서 부사장하고 늘 거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에 알고 보니까, 사장은 예수님이라고 하면서 그 회사 사장이 예수님이랬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래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안 다음부터는 더욱 전적으로 그 회사를 믿었고, ‘부사장이라고 하는 이 사람은 틀림없다’고 했답니다. 예수님이 그 회사의 사장이니까 뭐 큰 일이 있겠는가 하며, 속을 염려가 전혀 없고, 예수님이 사장이니까 모든 것을 진실하고 참되게 잘 할 것이라고 믿었답니다. 그래서 그 회사가 더 잘되었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호주는 누구입니까? 호주들 한 번 답변해 보십시오. 호주가 누구입니까? 각기 가정의 호주는 예수님이십니다. 남자들, 자기가 호주라고 하면서 세도 쓰지 마십시오. 집에 가면 “내가 호주다”고 하며 세도 쓰는데, 자기가 무슨 호주입니까? 자기가 호주 아닙니다. 언제나 예수님이 호주이신 줄 알고, 예수님 앞에 모든 것에서 결재를 받고 모든 걸 하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사장님 어떻게 하렵니까?”, “호주님 어떻게 하렵니까?” 하고 물어보십시오. 그렇게 예수님의 인도를 받아서 그의 명령을 따라서 모든 것을 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됩니다. 호주에게 복종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교회도 예수님이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시고, 다 그 밑에 종입니다. 종이기 때문에 아랫자리에 앉아야 됩니다. 목사도 종, 장로도 종, 집사도 종, 다 종입니다. 높은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교회 가보면 장로들이 강대상 뒤에다가 쭉 의자를 놓고, 주석단을 만들어 놓고 거기 올라가 앉았는데, 그렇게 앉아서 또 조는 사람이 있습니다. 장로가 올라가서 앉았는데, 아랫자리에나 앉았으면 조는 거나 안보이겠는데, 교인들과 마주 앉아가지고 꺼떡꺼떡 졸고 있는 장로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이 성경보고 다 내려앉아야 됩니다. 이 성경보고 다 내려앉아서 종의 위치에 내려가야 됩니다. 다 종이고,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언제나 겸손하라

그 다음 또 한 가지 교훈은, 누구나 어디를 가나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겸손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낮은데 처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데를 가도 낮은 자리에 가 앉아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앉으면 안 됩니다. 자기보다 더 높은 사람을 청한 경우에, 자기가 앉았던 그 자리를 내어달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말석으로 가면 얼마나 부끄러워집니까. 아예 낮은 자리에 있으면 그런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언제나 자기가 부족한 줄 알고 겸손한 자리에 앉아야 됩니다.

자기의 부족을 깨달아야 됩니다. “나는 죄인 가운데 괴수다”라고 사도바울이 늘 그랬는데, 자기가 죄인 가운데 괴수인 줄 알고 언제나 낮은 자리에 처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겠다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낮은 자리, 낮은 위치에 처해야 됩니다.

본문 11절에,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반드시 낮아지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라야만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언제나 겸손한 데 처하여야겠습니다.

3. 갚을 것이 없는 가난한 자에게 베풀라

본문 12절에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고 했습니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누군가에게 베풀고자 하거든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두렵건대 그 사람이 너를 도로 청하여’라고 하며 자신이 베푼 것이 도로 갚음이 되면, 이 다음에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받을 것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내가 대접을 할 때, 그 사람이 또 나를 대접 한다고 하면, 그럼 신세를 다 갚는 것입니다. 무엇을 줬다가 도로 받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본전입니다. 이 다음에 예수님 앞에 갈 때에 받을 것이 없습니다. 상 받을 게 없습니다.

그래서 아예 어떤 사람을 청하라고 하십니까? 본문 13-14절에,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잔치를 배설할 때에 가난한 자들, 병신, 저는 자, 소경을 청하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베푼 것은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갚음
을 받겠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잔치를 배설할 때 누구를 청하라고 하십니까? 가난한 자, 병신, 저는 자, 소경 그런 사람을 청해서 잘 대접을 하면 그 사람들이 갚을 것이 없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이다음에 부활 때에 갚아 주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갚아 주실 때에는 점심 한 그릇으로 갚아 주십니까? 예수님은 신령한 것으로 갚아주십니다. 영원한 것으로 갚아주십니다. 우리가 음식 조금 대접하고, 이 다음에 예수님 앞에 가서 영원하고 신령한 것으로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몇 백만 배 더 이득이 난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나 친척에게만 대접해 놓으면, 그 사람들이 도로 자신을 청해서 갚는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베푼 것을 다 갚음받고 나면 이 다음에 예수님 앞에 갈 때에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다음에 갚을 것이 없는 사람을 잘 돌봐주라는 것입니다. 갚을 것이 없는 사람을 가서 도와주고, 잔치에 청하고, 갚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좀 도와주고 그러면, 이 다음에 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결혼식 할 때도 ‘저 사람이 이다음에 내게 축의금 가져올 수 있겠나? 가져올 수 없겠나?’ 계산하면서, 도로 받을 수 있겠다 싶으면 자신도 좀 부조해 주고, ‘저 사람은 이다음에 내게 부조 가져올 수 없는 사람이다. 가난하니까’라고 판단되어 ‘뭐 나도 할 필요 없다’고 하면,
이 다음에 하늘나라 가서 그 사람에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결혼식에 갈 때에 어떤 사람에게 가서 부조해줘야겠습니까? 아예 가난한 사람, 형편없는 사람, 이다음에 갚을 가망이 전혀 없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가서 부조해 주라는 말입니다.

또한, 그런 사람을 청해서 좀 먹이십시오. 그런 사람에게 쌀 한말이라도 도와주십시오. 병신, 소경, 그런 사람을 도와줘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갚을게 없지 않습니까? 대접해주고 받지 않으면 이 다음에 하늘나라 가서 예수님이 다 갚아주십니다. 자기는 쌀 한 말로 그런 사람을 도와주고, 이 다음에 하늘나라 가서 신령한 쌀로 한 말 받는 것입니다. 신령한 쌀, 영원한 것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가난한 사람이 무슨 일이 생겼을 때에 가서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부자는 가만히 내버려둬도 자신의 돈으로 다 할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이 어디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가난한 사람이 병원에 입원을 했다면 정말로 돌봐주라는 말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갈곳 없이 됐다면 그것도 좀 도와주십시오. 가난한 사람이 길바닥에 쫓겨났다고 해도 그것을 좀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어려운 사람, 갚을 것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보통으로 행동하는 게 좋습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 결혼식에 왔으니까 자기들도 그 사람 결혼식에 가는 것, 다른 사람이 부조했으니까 자신도 부조하는 것은 보통 다들 하는 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이 받은 것을 잘라 먹으면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우리 결혼식에 부조했는데, 자기는 잘라 먹으면 안 됩니다. 누군가에게 받은 그것도 도로 되갚는 것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우리는 안 한 사람에게 하라는 말입니다. 자기네 결혼식에는 부조 안한 사람에게 가서 부조하고, 대접 안한 사람을 돌봐주고, 그런 것들을 할 수 없는 사람을 돌봐줘야 이게 진짜입니다. 그건 하늘나라에 전부 다 상달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에게만 가고, 할 만한 사람에게만 하는 것은 믿는 일 하는 게 아닙니다. 되갚을 수 없는 사람에게 더 잘해 주는 것, 이게 믿는 일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할 수 없는 사람에게 부조하고 도와줘야 합니다.

그러면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갔을 때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갚아주십니다. 우리가 여기서 이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자신이 선한 일을 행하고 갚음을 받지 않아야 됩니다. 갚음을 받으면 하늘나라에 가서 상이 없습니다. 안 받아야 이 다음에 하늘나라 가면 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2-4에,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 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갚아 주신다고 하십니다. 갚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 구제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갚아주십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준 것을 도로 받는 것은 하늘나라에 가면 상급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