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한복음 5:1-18
요한복음 5:1-18
1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4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6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 대 12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15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17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1. 삼십 팔년 된 병자를 찾아오신 예수님
본문 1절에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명절은 유월절이나 나팔절인 것 같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은 대게 다 신약시대에 예수님이 오셔서 구속해 줄 것을 상징하는 명절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명절에 일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이 유월절 양을 상징하는 것이고, 나팔절도 과거의 것은 다 지내 보내고 새로운 시대가 온다 하는 것으로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데스다라는 못이 예루살렘 양문 곁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여러 문이 있는데 거기 양문이라 하는 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여기로 말하면 서대문, 남대문, 동대문 등이 있는 것처럼 양문이 있었는데 그 곁에 베데스다라는 못이 있었습니다. 그 못은 천사가 가끔 내려와서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이 걸렸든지 낫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못은 이따금 물이 동하는 못으로 간혈천이라고 하는데 한번 샘이 솟아 나오다가 또 뚝 그쳤다가 몇시간 있다가 또 다시 솟아 나오고, 또 그쳤다가 다시 솟아 나오는 그런 못입니다.
미국 몬타나주에 “올드훼이스풀”이 있는데 이 샘을 연상케 합니다. 그것은 물이 갑자기 땅에서 솟아 올라오는데 한 십분쯤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설설 끓는 물이 올라 오다가 뚝 그칩니다. 그리고 한 두 시간 있다가 또 다시 올라옵니다. 전에는 두 시간 있다가 물이 나왔다고 하는데 요새는 그 옆에 온천을 많이 뚫었기 때문에 두 시간 지키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대게 두어시간에 한번씩 나온다고 하는데 베데스다 못이 그런 샘인것 같습니다. 그런데 베데스다 못에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갑자기 동하게 한다는 전설이 내려 왔습니다. 또 그 물이 동할 때에 어떤 병에 걸린 사람이든지, 먼저 들어가는 자는 다 낳는다는 전설이 내려 왔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치려고 그 못가에 와서 기다립니다. 몇시간에 한번 올라 오는지 모르는데 아마 몇 일에 한번 올라오는지도 모릅니다.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기다립니다. 물이 동할까 하고 기다리다가 물이 동할 때면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병이 나으므로 후다닥 뛰어 들어갑니다. 이것은 아마 찬물 같습니다. 미국에 있는 것은 설설 끓는 더운 물로 거기에 들어갔다간 다 데워 죽고 말 것인데 여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에도 그와 같은 못이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갈 것 같습니다.
베데스다 못에 먼저 들어가면 수가 나므로 소경, 절뚝발이, 앉은뱅이, 혈기마른사람 등 많은 사람이 가서 물이 동함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환자가 와서 기다리는데 비가 오면 안되겠으므로 그 위에 지붕과 같은 행각 다섯 개를 지어 놓고 그 안에서 물이 동할 때 먼저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베데스다 못가에 찾아 가셨습니다. “베데스다”라는 뜻은 자비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먼저 들어가면 병이 나으므로 자비의 집이라는 이름을 갔다 붙여 놓은 것입니다.
2. 내 병든 상태를 더 잘 아시고 찾아오시는 예수님
본문 5-6절에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었는데 예수님이 그 사람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을 알았습니다. 또 얼마나 심한 병인지, 어디에 병이 낫는지, 몇 년이 되었는지 환자가 자기 병을 아는 것보다 예수님은 더 잘 아십니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아십니다. 즉 내가 내 병을 아는 것보다 예수님은 내 병을 더 잘 아십니다. 어디에 병이 났는
지, 언제 병이 났는지, 어떻게 병이 난 것인지, 어떤 상태인지를 예수님은 다 아시고 찾아 오셨습니다. 이것은 모든 성도들의 심령의 병을 고쳐주시려고 찾아오신 것과 같습니다.
네 병든 상태를 아느냐?
오늘날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심령의 병든 것, 즉 여러 가지 병든 상태에 있는 것을 다 아십니다. 또 우리 자신들이 자신의 병을 아는 것 보다 예수님은 더 잘 아십니다. 어디에 병이 났는지, 어떤 상태인지, 1기인가, 2기인가, 3기인가 또는 몇 년 되었나? 또 다리가 다 말라서 비틀어진 것, 혈기 마른 것, 연약한 것, 약한 것, 혈루증 다 아십니다. 우리의 모든 상태를 예수님이 다 아시고 고쳐 주시려고, 예수님은 찾아 오셨습니다. 찾아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는
말씀을 먼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네 병든 상태를 아느냐?라는 뜻입니다.
자기 병을 먼저 알아야 됩니다. 자기 병든 것을 모르면 나을 수 없습니다. 신앙의 병, 영적 병, 마음의 병, 육신의 병 등 병든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어디에 병이 들었는지 알아야 됩니다. 사람들이 육신의 병도 병든 것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잘 모르고 나가다가 갑자기 크게 발병이 되어야만 병원에 가면 벌써 늦었단 말입니다. “벌써 3기이다”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제1기에 찾아 왔다면 고칠 수 있는 것인데, 병든 것을 모르고 있다가 병든 상태가 나타날 그 때에 병원에 가면 벌써 늦었단 말입니다. 조금 아플 때에 가면 되겠는데 “괜찮겠다, 요만한 것 뭘하겠느냐”하다가 병을 다 길러서 병원에 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병보다도 영적 병을 잘 알아야 됩니다. 무엇이 병들었는가? 죽은 믿음인가? 잠자는 신앙인가? 조는 신앙인가? 또 연약해서 아무 힘을 못 쓰는 신앙인가? 연약한 가운데 빠져서 아무 힘을 못 쓰는 신자가 많이 있습니다. 또 삼십 팔년 된 병자와 같이 교회에 다니긴 다녔는데 몇 십년 병신노릇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제 힘으로 다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서 메이어 갔다가 또 다시 메이어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인고 하면 자발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저 누가 가자고 해서 가고, 안가면 또 안간다고 하기 때문에 억지로 메워가지고 다니는 것입니다. 교회에 안가면 “가족이 왜 안 갔냐고 하지 않겠나?, 또 심방 와서 왜 교회에 안 나왔냐고 하지 않겠나? 등으로 억지로 교회에 오는 사람이 자리에 누워서 메워가지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고등 학생도 그런 학생이 많습니다.
지난 주간에 중.고등 청년부 수련회를 기도원에서 했는데 학생들, 반장들, 교역자들 다 해서 한 천여 명 모였습니다. 청년부는 신학교 강당에서 따로 하였고 이쪽의 대강당에서는 중, 고등부만 했는데, 가르치는 곳에 내가 몇 번 들어가 보니 약 삼분의 일은 안 듣습니다. 중.고등부 학생 삼분의 일은 강단에서 가르쳐도 “우리는 우리대로 한다” 하며 “나 몰라라” 하며 나갑니다. 그래서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만 바로 가르칠까? 지금 내가 연구하는 중에 있습니다. 삼분의 일인 “나몰라라” 하고 제 마음대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긴 나왔으나 부모나 친구가 가자고 해서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자리에 누워서 메워가지고 다니는 사람과 같습니다. 즉 신앙에 병이 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맛이 없습니다. 소화불량이 생겼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 보다 답니다. 그런데 병이 났으면 먹기가 싫습니다. 신자가운데 소화불량이 생긴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병자가 많겠는가? 생각해 보니 게으른 병자가 많을 것 같습니다. 게으르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잠언 24:30-34에 “내가 증왕에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에 덮였고 돌담이 무너졌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었노라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고 하였습니다. 게으르면 일이 안됩니다. 포도원이 가시 덤불이 되고, 집은 서까래가 다 나타나고, 돌담이 다 무너집니다. 그런데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빈궁이 강도 같이 오고, 곤핍이 군사같이 이른단 말입니다. 게으른 병은 중한 병인 줄 알아야 됩니다. 게을러서 예배시간에 늘 늦고, 또 빠지고, 게을러서 기도 못하고 성경 못보고, 게을러서 자기 살림살이 잘 돌보지 않고, 농사하지 않고, 자기 토지를 경작하지 않습니다. 자기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잘 된다고 하였는데 경작하지 않으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잠언 20:4에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을 갈지 않습니다. 보리를 심는 것은 가을에 심어야 됩니다. 그런데 가을에 밭을 갈고 보리를 심지 않으면 거둘 때에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농사를 잘 못합니다. 제 때에 심지 못하고, 또 심어 놓고도 김 메지 아니해서 풀밭이 되어 버립니다. 어떤 논을 보면 벼가 누렇게 익긴 익었는데 돌피가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돌피가 새까맣게 보입니다. 돌피를 뽑아내지 않았단 말입니다. 그것이 게으른 사람의 논입니다. 그러면 벼가 제대로 안됩니다. 양분은 다 돌피로 가고, 벼는 가늘어지고 작아집니다. 게으른 사람은 농사를 잘 못합니다. 게으른 사람이 살림살이는 잘 할 것 같습니까?
명륜동에 집사 부인이 있었는데 심방을 가면 언제든지 방안에다 밥상을 두고, 요강도 두고, 빨래감은 언제나 쌓아 놓고, 언제나 그것입니다. 게을러서 언제 밥 먹고 치울 시간이 없습니다. 게을러서 요강도 쏟을 시간이 없습니다. 또 세탁물을 쌓아놓고 세탁할 시간도 없습니다. 교회에 나올 때는 예배시간 거의 끝나려고 하면 그때 나옵니다. 좀 있으면 좀 나아질까 해도 내내 그것입니다. 일년가도 그것이고 매년가도 그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부인이 죽고, 다른 부인을 데려 왔는
데 집을 아주 말끔하게 해 놓았습니다. 빨래감을 볼 수가 없습니다. 요강도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고, 밥상도 안보입니다. 또 예배시간 전에 나옵니다.
게으른 것이 큰 병입니다. 게으르면 신앙도 안 되고, 농사도 안 되고, 가정도 안 됩니다. 게으르면 만사가 다 안 됩니다. 그래서 육체로 말하면 게으른 병이 무슨 병이겠는가? 생각해 보니까 혈루증 같은 병이 아니겠는가? 합니다. 하여간 고질병이란 말입니다. 게을러서 모든 것이 다 틀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잠언 19:24에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게으른 자는 음식을 먹으려고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에 넣기를 게을러서 배가 고파도 굶고 있습니다. 어떤 게으른 여자가 하나 있는데 남편이 늘 밥해서 대접해야만 먹습니다. 남편이 어디 갔다 와야겠는데 내가 어디 갔다 온 사이에 굶어 죽으면 어떻게 할까? 하여 많이 연구 하다가 인절미를 솥뚜껑만큼 크게 만들이 가지고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뜯어 먹고 살라고 목에 걸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얼마 있다가 와보니 목에 떡은 걸어 놓고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참 이상하다 왜 굶어 죽었을까? 하고 가만히 살펴 보니 입 닿는데는 다 뜯어 먹고, 돌리기가 싫어서 안 돌려서 굶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게으른 자도 있는 줄 알아야 됩니다.
게으른 병부터 고쳐야 됩니다. 예배시간에 매일 늦어지는 것이 게으른 증거입니다. 이것을 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병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또 고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병을 고쳐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3. 낫고자 하는 소망을 가져라
그러므로 예수님을 모시어 들이라는 말입니다. “주님 찾아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라는 찬송도 있지 않습니까? 모셔 들이고, 그 다음에는 예수님이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할 때에 낫고자 하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낫고자 하는 결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냥 그렇게 병신 노릇 내내 하려고 하지 말고 “낫고자 합니다”하며 결심부터 해야 됩니다. 무슨 병인지 알고, 그 다음에는 예수님이 나를 고쳐 주시려고 찾아 왔으므로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낫고자 하는 결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고쳐 주시려고 하니 나을 수 있다”라는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못 낫는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병이 있고도 병이 없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병이 없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병이 다 있는 줄 알아야 됩니다. 대게 다 병이 있습니다. 게으름의 병든 사람도 있고, 자리에 누워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는 소경도 있고, 또 절름발이도 있고, 혈기 마른 사람도 있습니다. 먼저 자기가 병든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진단을 바로 해야 됩니다. 병이 있는데 병이 있는지 모르고 나가면 마지막에는 죽습니다. 자기가 병이 없는 줄 알고 다녔는데 병원에 가보니 암이 3기라고 합니다. 처음에 속이 좋지 않았는데 약 먹고 몇 달 있으면 괜찮겠지 하고 소화제 이것, 저것 사먹고 나가다가 병만 키웠습니다. 자기의 병을 먼저 알아야 나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나을 수 있다는 결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찾아와 주셨으니 “나을 수 있다, 낫고자 합니다”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고쳐 주시려고 오셨으므로 “주여 나를 고쳐 주시옵소서, 고쳐주실 줄 믿습니다”하며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예수님의 손을 붙들어야 합니다.
4. 일어나라
그 다음에 예수님이 “일어나라” 할 때에는 “예”하고 일어나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일어나라 할 때에 말씀을 붙들고 “예”하고 일어나라는 말입니다. 말씀이 만능입니다. 말씀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생명이고, 말씀이 치료제이고, 말씀이 만능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일어서면 다 일어 설수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라도 다 일어섭니다. 38년 병자가 걸어 다니지 못했으므로 다리가 빼빼 말랐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일어나라” 할 때에 “발이 말랐습니다, 살이 없습니다, 발목에 힘이 없습니다”하면 못 일어 섭니다.
어떤 상태에 있든지 “일어나라” 할 때 “예” 하고 일어나면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 또 삐뚤이진 것이 바로 서고, 기운이 없던 것이 기운이 납니다. 그러므로 “일어나라” 할 때에 “일어나고자 합니다”, “예” 하고 일어나란 말입니다. 그러면 다 된 것입니다. 38년된 병자도 다 낫습니다. 발과 발목에 힘이 없던 것이 힘이 납니다. 일어나 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만능입니다. “일어나라”고 하는 것이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병신노릇 그냥 하라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일어나라 널 고쳐주러 왔다, 성한 사람이 되라, 밤낮 병신노릇 하지 말고 일어나라”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일어나라”할 때에 일어나면 되는 것입니다. 심령의 병이 다 나을 수 있고, 또 육신의 병도 일어나라 할 때에 낫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예”하고 일어날 때에 다 낫습니다. 그러나 낫는 것이 하나님 뜻이 아니면 낫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일어나면 다 일어 날 수 있습니다. 여러 해 전에 기도원에서 요
한복음을 가르칠 때에 ‘일어나라’ 이것을 했습니다. 그 때에 여러 사람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일어났다고 합니다. 여러 사람의 병이 많이 나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낫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낫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하나님이 “일어나라” 하는 것입니다. 일어나라 할 때에 “예” 하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 게으른 사람도 게으른 것이 병인 줄 알고, 낫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그 다음에 “일어나라”고 할 때에 자기의 적은 능력을 다 기울여서 “예” 하고 일어서면 다 일어날 수 있습니다. 힘이 나옵니다. 또 모든것을 다 할 수 있고, 피곤하지 않고, 쓰러지지 않습니다. “일어나라” 할 때에 일어나면 몸의 약한 것이 다 없어집니다. 힘이 나옵니다. 건강해 집니다. 말씀이 만능이므로 능력이 옵니다.
38년 된 병자가 “일어나라” 할 때에 “예”하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병이 다 나았습니다. 모든 병은 예수님이 “일어나라”고 할 때에 일어나기만 하면 다 낫습니다. 소경, 절름발이, 혈기 마른 사람, 앉은뱅이, 게으름뱅이 다 나을 수 있습니다. 여러 해 되었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예수님이 병든 것을 다 알고 계시므로 “나는 병든지가 5년이 되었습니다, 10년이 되었습니다”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갔습니다”라는 소리도 할 필요 없습니다.
낫고자 하는 마음만 가지고 일어나라 할 때에 일어서기만 하면 다 낫습니다. 다른 이유가 필요 없습니다. 문제는 네가 낫고자 하는 마음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낫고자 하는 결심만 가지라는 말입니다. 낫고자 하는 결심이 먼저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 예수님이 “일어나라” 할 때에 일어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다 낫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됩니다. 강건해서 예수님을 향해서 걸어 갈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였는데 자리는 왜 들고 걸어가라고
하였는가 하면 자리를 그냥 두면 또 다시 와서 누울 염려가 있습니다.
하였는가 하면 자리를 그냥 두면 또 다시 와서 누울 염려가 있습니다.
5.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고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얼마 걸어가다가 보면 옛날 것이 생각이 난단 말입니다. 누워서 먹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거지노릇 잘만 하면 세상에서 그 이상 좋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거지를 직장에 취직해주면 또 나간다고 합니다. 거지는 쌀값이 올라갈 걱정이 있나?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병신노릇 하는 것도 재미가 있으므로 다시 또 옛날 그 자리로 돌아가자 하는 생각이 납니다. 그러므로 자리를 집어 치우라는 것입니다. 네가 누워 병신노릇 하던 잠자리, 환경, 분위기 그것을 완전히 다 집어 치우라는 것입니다. 병자생활 할 때에 함께 다니던 친구들, 방탕하던 자리, 술 먹던 자리 등 다 집어 치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새사람이 되었으므로 이제는 나 보고 말하지 말라, 옛 사람은 죽었다” “전에 아무게는 죽었고 이제는 새사람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리를 집어 치우지 않으면 옛날친구 또 만나고, 그 자리에 또 갑니다. 방탕하는 자리에 또 가고 그러면 일어 났어도 또 주저 앉습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이제는 눕지 못하도록 자리를 다 집어 치우라는 말입니다. 놀던 자리, 친구들 사귀던 자리, 세상에 빠졌던 자리, 죄 짓던 자리,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대로 살던 자리를 다 집어 치우라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죄를 범하면 더 심한 것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의 병이 죄 때문에 났기 때문에 병이 한번 나은 다음에는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죄를 범하면 더 심한 것이 생깁니다. 일곱 마귀가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죄를 범치 말고 나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38년 된 병자가 병 고침을 받고 나가서 나를 낫게 한 분은 예수라고 전했습니다. 즉 전도 했습니다. 자기를 낫게 하신 분은 “예수”라고 하며, 나가서 전할 수 있는 담대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또 안식일에 자리를 가지고 간다고 핍박이 많이 들어왔지만 그 핍박을 다 이기고, 나를 낫게 하신 분은 예수라고 하며 담대히 예수님을 전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생활을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