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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6일 토요일

누가복음 12:13~34 세상염려 하지 말고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세상염려 하지 말고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누가복음 12:13~34

13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18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22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3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24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25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6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27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28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29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31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33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너희 보
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사람이 와서 자기 형을 명하여 재물을 나눠달라고 했습니다. 아마 형제간의 유업이 공평하게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형이 더 많이 가지고 동생에겐 적게 줬는지, 안줬는지 하여간 유업을 좀 나눠야 되겠는데 형이 안 나눠준다고 자기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눠주게 해달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본문 14-15절에 “누가 나를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비유를 들어 “어떤1.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한 사람이 밭이 많이 있었는데 소출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심중에 생각하기를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 할꼬’ 하다가, 곡간을 헐어 더 크게 짓고 거기다가 많은 곡식을 쌓아두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는 많은 곡식을 쌓아뒀습니다. 그리고선 그 사람이 자기 심중의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며 생각하니까,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라고 하십니다.

영혼을 도로 찾는다는 것은, 우리 영혼이 하늘나라에서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영혼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를 세상에 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육신도 영혼도 출생할 때에 나왔는데, 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영혼이 하늘나라에서 있다가 온 것이 아니고 출생할 때 새로 생겼습니다. 새로 난 것입니다. 그런데, 도로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혼을 주셨다가 도로 가져가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밤에 영혼을 도로 찾으면 죽는데, “오늘밤에 네가 죽는다고 하면 네가 창고를 크게 짓고 여러 해 쓸 것을 쌓아 놓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불러 가시면 하나도 가져가지 못할 것인데, 하나님은 이르시되 이 사람에게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하나님께서 영혼을 불러 가시면 예비한 것이 다 뉘 것이 될런지 알수 없는데 이렇게 하는 것을 보시고 어리석은 자라고 했습니다.

유업은 자손들이 물려받는 것인데, 본문 13절에 그 사람이 와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누게 하소서”라고 그랬습니다. 이 사람도 죽으면 이렇게 됩니다.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눠 주게 하소서.” 유업을 잘 나눠주는 사람도 있고, 유업을 잘 나눠주지 못하고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큰 재벌 같은 사람들은 유업을 똑같이 나눠 줄 수가 없습니다. 나누려면 팔아서 나눠주어야겠는데, 회사를 팔면 회사가 망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병철씨 같은 사람도 맏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아니하고 그것을 셋째 아들에게 줬습니다. 맏아들에게 주면 감당하지 못할 것 같기 때문에 감당할 것 같은 셋째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평안하겠습니까? 다른 집들도 아버지가 세상 떠나면 아들들이 서로 재판하는 가정이 많습니다.

‘세상에 재물을 쌓아두고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생각하지만 언제 하나님께서 불러 가실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오늘밤에 불러 가실지 모르고, 내일 그 영혼을 불러 가실지 모르고, 또 몇 살 됐을 때 불러 가실지 모르고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요새도 젊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많이 불러 가시지 않습니까.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이 어리석은 자야”하십니다. 세상에 쌓아놓는 게 어리석은 자라는 겁니다.

본문 21절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하십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어리석은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할 줄 모르고 자기를 위해서 재물을 쌓아 두는 것은 어리석은 자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 영혼을 그 날 밤에 불러 가시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는데, 그가 죽고 나면 자손들에게똑같이 재산을 나눠주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큰 재물 같은 것은 회사를 팔아서 나눠 줄 수도 없는 것이고, 죽은 다음에라도 회사를 운영할 아들에게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재산이 집 한 채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 집이 한 채 밖에 없는데 죽기 전에 집 다 팔아서 나눠주고 죽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건데 어떻게 팔아서 나눠 주겠냐는 말입니다. 또 팔아서 나눠주면 어디로 가겠냔 말입니다. 죽기 전에 집 팔아서 다 나눠 주고 새 집으로 가는 사람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와 같이 똑같이 나눠주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재물을 쌓아두면 어리석은 자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니까 어리석은 자입니다.

2. 먹을 것 입을 것 염려하지 말라

본문 22-23절에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새는 집값이 자꾸 올라가서 ‘어떻게 집하나 장만할까?’하고, 또 농사꾼들은 곡식 값이 폭락이 되어가지고 ‘어떻게 살까?’ 염려가 많습니다. 또 장사하는 사람들은 요새 장사가 안 된다고 합니다. “무
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또 무슨 집을 짓고 살까?” 이런 것을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귀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목숨이 뭐 보다 귀합니까? 음식보다 귀하다고 하십니다. 몸이 음식보다 귀하다는 말입니다. 또 몸이 집보다 귀하다고 하십니다. 목숨과 몸이 집보다 귀하지 않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숨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목숨을 연장 할 음식을 주시지 않겠느냐?’ 라는 뜻 입니다. ‘몸을 주신 하나님께서 몸을 가릴 의복을 주시지 않겠느냐?’, 또 ‘목숨과 몸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몸이 들어와서 살 수 있는 집을 주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천막도 집입니다. 목숨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목숨을 연장할 식물을 주시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소를 사 놓고 소의 먹을 것을 안 줄 주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요새 소 한 마리 얼마 합니까? 소 한 마리에 300만원~500만원 한다고 합시다. 그 값에 사다 놓고 먹을 것을 안 줄 주인 있습니까? 안 준다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먹을 것을 안 주면 죽을 것 아닙니까? 죽을 걸 왜 300만원, 500만원씩이나 주고 사왔겠습니까? 그렇다면 사오나 마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목숨 주신 하나님께서 먹을 것 왜 안 주시겠습니까? 몸을 주신 하나님께서 몸을 가릴 의복을 왜 안 주시겠나 말입니다. 그리고 살 집을 왜 안 주시겠나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의식주를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염려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25절에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고 하십니다. ‘너희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키가 작다고 염려해도 키를 크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염려함으로 한자나 더하게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염려한다고 무엇이 되겠느냐 말입니다.

마태복음에는 ‘공중의 새를 보라’라고 했습니다. 공중의 새는 농사하지 아니하고, 창고도 없고, 골방도 하나 없으되 하나님께서 다 기르신다고 하셨습니다. 새는 날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다 주시게 해놨습니다. 새는 날기만 하면 먹을 것을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시고 새를 내보내십니다. 새가 무슨 농사합니까? 곳간 있습니까? 창고 있습니까? 곡식 저장하는 데가 없습니다. 그래도 새는 날기만 하면 먹고 살고 다 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먹고 살게 해 놓으신 것 같습니다. 여름에는 곡식 먹고 살고, 겨울에는 풀씨나 솔씨 먹고살게 되어 있고, 눈 올 때에도 소나무 밑에 들어가면 솔씨를 따 먹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다 해 놓으셨습니다. 눈이 많지 않는 바위 틈 같은 데도 풀씨 다 떨어지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풀이 한 2m되는 것도 있는데, 그건 눈이 아무리 와도 눈에 묻히지 않습니다. 그런 것도 따 먹게 만들어 놓으셨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내실 때에 다 먹고 살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에게 먹고 살게 안 만들어 놓았겠느냐 말입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27-29절에,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입을 것을 염려하는 것은 믿음이 적은 자입니다. 무슨 집을 가지고 살까 하는 것도 믿음이 적은 자입니다. 믿음이 적은 자, 믿음이 없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쓰고 살까 하며 걱정하는 이런 것이 다 믿음이 적은 증거입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한 것을 아신다

본문 30절에,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시는데, 무엇을 마실까 먹을까 염려하는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에 내 주셨고, 또 독생자의 피로 구속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셨고, 독생자의 피로 구속해서 우리 영혼을 살려 주셨고,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같이 영원히 즐거워하고, 그런 사랑의 세계로 인도하시려고 우리를 만들어 놓으셨는데, 왜 우리에게 먹을 것을 안주겠냐는 말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천지만물을 주장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입어야 될 것, 먹어야 될 것, 집에서 살아야 될 것, 다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입어야 될 줄을 아십니다. 집이 없는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먼저 다 아시고 하나님께서 먼저 걱정을 다 하십니다.

집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요새는 정치가들이 먼저 걱정합니다. 집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들을 더 먼저 걱정합니다. 대통령이 더 먼저 걱정하고 장관들이 걱정 합니다. 대통령 떨어지고 장관 떨어진 사람들은 그런 걱정 안 합니다. 왜 정치가들이 걱정 합니까? 그 자리를 유지하려니까, 백성들이 집 없으면 자기 자리 유지 못하겠으니까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랑해서 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 될 후보자들도 서민들 집 때문에 걱정합니다. 그건 왜 합니까? 앞으로 대통령 할 거니까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 떨어지면 걱정을 하긴 뭘 하겠습니까?

사람들은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우리를 위해서 염려하십니다. 집 없는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염려하십니다.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어떻게 이것들 하나씩 해 줘야 되겠다, 있을 곳을 줘야 되겠다, 셋집이라도 있을 곳을 줘야 되겠다’고 하십니다. 자기 소유의 집에 사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주셔야 사는 것이고, 셋집에 사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셔야삽니다.
그렇게 살다가 세상 떠나갈 때 다 내놓고 가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소유의 집에서 살다가 가는 사람도 내놓고 가는 것이고, 셋집에 살다가 가는 사람도 내놓고 가는 것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염려는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될 것 다 아시고,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을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고 그랬습니다.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31절에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 하십니다.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하늘나라를 구하라는 말입니다. 또 세상 것을 위해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나라와 의를 구하라’, 세상 것을 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라

여기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는데 본문 21절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했는데,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재물을 쌓아두는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증거입니다. 재물은 쌓아두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김현봉 목사님이 재물가지고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재물은 첫째, 먹고 살라고 주신 것이고, 둘째, 그것 가지고 믿음 생활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쌓아두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쌓아두는 것이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본문 33-34절에,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여기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방법, 

자기를 위해서 세상에 재물을 쌓아 두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고, “네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하신 이것이 하늘의 보물을 쌓는 방법입니다. ‘네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구제한다는 말은 선을 행한다는 것이고, 생명을 살린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 살리는 것만 구제가 아니고, 영적 생명을 살리는 구원운동도 구제입니다. ‘네 소유를 팔아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는가 보십시오. 소유를 팔아서 하나님을 위해서 쓰면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소유가 하늘에 둔 보물이 된다는 말입니다. 소유를 팔아 생명을 살리는 일에 사용하면, 하나님 일에 사용하면,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 되고 그것이 다함이 없는 보물이 됩니다.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다’고 하십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고 하십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사람은 마음도 하늘에 가 있다는 말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한 것을 보니까 마음도 하늘에 가있다는 것입니다. 땅에서 재물을 쌓아 두는 사람의 마음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땅에 마음이 있습니다. 하늘에 쌓아둔 사람은 마음도 하늘에 가 있습니다. 하늘에 마음이 가 있으니까 하나님 믿는 일이 잘 되고,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또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서 그 소유가 하늘에 쌓아둔 보물이 되고, 하나님께 대하여서는 부요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본문 21절을 보면,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했는데,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는 어떠한 자입니까?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드는 것, 여기서 ‘주머니’는 먹고 살 것을 만들어 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소유를 팔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면,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게 되고,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 되고, 마음도 거기 가 있기 때문에 믿는 일이 더 없이 잘 되고, 하늘의 보화가 쌓여진다는 것입니다. 거기는 도적도 오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염려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 목숨은 하나님께서 내셨습니다. 인명재천이라는 말이 있는데, 목숨을 하나님께서 내셨다는 말입니다. 사람 목숨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아무리 많이 쌓아 놨어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시면 그 예비한 것을 하나도 못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고 난 다음에 자손에게 물려지게 되면, “이제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누게 해 달라”고 대게 그런 식으로 많이 나올 것입니다. 절반 이상이 그런 식으로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이 나눌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평불만이 나오고 맙니다.

자손이 부모가 물려준 것으로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자손들이 믿음 잘 지키고, 자기가 하나님께 바로 하고 그래야 하나님께서 잘 해주시는 것이지, 부모가 물려 준 것으로 잘 사는 사람 얼마나 되겠습니까? 얼마 없습니다. 저는 저희 아버지가 물려주신 것이 한개도 없습니다. 평양 나올 때는 다 내 버리고 가방 하나 가지고 나왔는데, 가방 안에는 찬송가 성경 그것만 들고 나왔습니다. 빈손으로 나왔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6.25사변이후 지난 56년 동안 먹을 것, 입을 것 다주셔서 오늘까지 살았습니다. 부모가 물려주시지 않아도 삽니다. 물려줬다고 해도 그게 며칠 갈까요?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까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또 우리 생명은 하나님께서 내셨고, 하나님께서 낸 이상 생명을 연장할 음식을 하나님께서 안 주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내셨기에 우리 몸을 가릴 의복을 안 주실 수가 없고, 또 집도 안 주실 수가 없습니다. 다 주십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언제든지 만족하고 감사함을 배워야 합니다. 셋집에 있어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어디든지 하늘나라로 이루어 놓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본문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해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했는데, 자기를 위해 재물 쌓아둔 것이 어리석은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부요한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염려 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서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하는데, 되는 방법은 네 소유를 팔고, 그 다음에 구제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재물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쓰는 것이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재물입니다. 하늘에 쌓아 두는 것입니다. 세상에 쌓아 두는 것은 다 좀이 먹고, 동록이 쓸고, 다 도적질 해 갑니다. 그러나 하늘에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하였는데, 땅에다 쌓아두면 마음도 땅에 가 있기 때문에 믿는 일 제대로 못 합니다. 하늘에 쌓아 두면 마음이 하늘에 가 있기 때문에 믿는 일이 잘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그 길을 걸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기억해서 세상 염려 하지 말고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참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누가복음 12:1~12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고 핍박을 두려워 말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고 핍박을 두려워 말라
누가복음 12:1~12

1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2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3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 4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6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7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8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9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 10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1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12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1. 의식주의(儀式主義) 누룩을 주의하라

본문 1절에,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 인들의 무리가 많이 모였습니다. 서로 밟힐 만큼 수만 명이 모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숫자 많은 것을 자랑하려고 하고, 그것을 가지고 한 몫 보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숫자 많은 걸 보고 자랑하고, 그것을 아주 굉장히 큰 것으로 알고, 또 숫자 많은 것을 성공으로 알고, 그것을 가지고 시위하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숫자 많은 걸을 보시지 않습니다. 무엇을 주의하라고 했습니까? 마태복음 16:5-6에,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 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라고 했습니다.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6:11-12에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라고 했는데, 여기서 누룩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이 누룩이라고 했고, 외식이 누룩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들의 외식이 누룩이고, 성경대로 바로 되지 못한 교훈이 누룩이라고 그랬습니다. 또한 의식을 굉장히 행해서 그것으로 한 몫 보려고 하는 의식주의가 누룩이고, 외부적으로 나타내는 외식이 누룩입니다. 그들에게는 진리가 교훈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현실주의, 육체주의고, 세상주의, 의식주의가 교훈이고, 그 교훈들은 신령한 교훈이 되지 못합니다.
언제든지 종교가 이렇게 숫자적으로 나가고, 숫자만 많으면 큰 뭔가가 있는 줄 알고, 또 그것을 자랑하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고, 돈 많으면 그것을 가지고 한 몫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것을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 참 성도는 그런것을 봐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참 성도는 외식이 무언지 볼 줄 알아야 되고, 그들의 의식주의를 볼 줄 알아야 됩니다. 뭐든지 숫자를 가지고 시위하고, 숫자를 가지고 보이려고 하는 것을 주의해야 되고, “뭐 몇 만 명이 모였다”는 이런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예전에 여의도 광장에 기독교 집회 할 때 몇 십만 명이 모일 때가 있었습니다. 또한 어떤 데에는 ‘백 만 명이모였다’고 합 니다. 그것이 큰 것인 줄 압니다. 그러나 몇 십만 명, 백만 명이 큰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전 세계 사람 다 모여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가운데 진리가 있어야 되겠는데, 신령한 영적 양식과 진리가 있어야 되겠는데, 진리는 없고, 이건 ‘우~’하며 많이 모인 것을 가지고만 자랑하려고 하고,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그들의 교훈은 신령한 교훈이 되지 못합니다. 젖이나 먹이는 초보적인 교훈이나 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세속화되는 교훈을 하고, 인본주의 교훈이나 합니다. 그러니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느 유명한 목사라고 하는 사람이 강사로 나와서 한다는 말이 “한국이 이만치 된 것은 우리 한국 사람들의 단결심, 한국 사람들의 근면심, 한국 사람들이 잘 했기 때문에 요만치 됐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자 한번만 딱 붙입니다. 다 말하고 마지막에 가서 하나님이 도와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다 교훈이 바로 되지 못한 것입니다. 교훈이 바로 되어야겠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의도 광장에 초교파적으로 모일 때가 더러 있었는데, 거기에는 여러 교단 목사들이 나와서 교대해서 강론하곤 하였습니다. 가령, 한해는 고려파 목사가 나와서 하고, 그 다음 해에는 합동 측 목사, 그 다음해는 통합 측, 그 다음해는 기독교장로회 측, 다음은 신신학 측, 그 다음 해는 감리교 측, 또한 구세군 측까지 돌아가며 설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순서가 돌아가지 않으면 이렇게 사람들이 다 모입니까? 여러 교단에서 다 모인다니까, 자기네 교단도 교대해서 한번은 나가도록 하게 하다 보니까, 그렇게 많이 모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어떤 때는 보수 측의 목사가 나와서 할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신신학 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기독교장로회 할 때 신신학하는 사람들도 나옵니다. 감리교가 나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수 십만 명, 수 백만 명 모인다고 해도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세 사람만 모여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하지, 바로 가르치지 못하고, 외식하고, 의식주의로 나타내고, 그런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말입니다. 그런 것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2. 감추인 것이 드러나고 복음이 전파될 것이다

본문 2-3절에,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고 했습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다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외식하는 자들 속에 있는 것도 다 나타나고, 참 믿음이 아니
고 영적 생명운동도 아닌 것도 다 나타나게 됩니다.

또, “참된 믿음을 가진 너희도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고 했는데, 어두운 은밀한 골방에서 너희에게 말한 것이 이제 광명 한 데서 다 말하게 될 거라는 말입니다.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는 것처럼 온 세상이 다 알도록 전파되게 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파해야 될 사명이 있습니다. 진리를 바로 알아서 자기만 좋다고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는 자기만 먹으라고 준 것이 아니라고 했죠? 어떻게 먹으라고 주신 것입니까? 나눠먹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하고 다 나눠 먹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너도 먹고, 나눠 줘라”하시며 나눠 주라고 우리에게 진리를 주셨는데, 이걸 나눠 주지 않으면 화가 있습니다. 나눠 주라고 주셨는데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습니다.

진리를 모르고 있는 사람에게 전해 줘야지 전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예수님의 뜻인데, 안전하고 가만히 있으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책망하시겠습니까? 부산에 있는 어떤 분한테서 연말에 보내는 연하장 카드가 하나 왔습니다. 저는 모르는 사람인데, 우리 강해서를 몇 년째 보면서 은혜를 받는다고 합니다. 매일 강해서를 읽는답니다. 큰 은혜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책도 다 같이 봤었는데 다른 책들 다 집어 치우고, 이제는 우리 것만 본답니다. 다른 책들 다 집어 치우고 우리 것만 보는데, 매일 은혜를 받고 감사하면서 이 사람은 강해서만 보는 겁니다. 그 사람이 우리 방송은 아직 모르는 것 같습니다. 방송 들었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너무 감사해서 연말에 카드 한통 보내고 싶어서 보냈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러한 교인이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교인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일일이 알지 못하지만, 방송 듣는 교인도 많이 있고, 강해서를 보는 교인들도 많이 있는 듯합니다. 그러기에 책을 출판하여 놓은 것이 아주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방송 듣는 사람이 중국에도 있는 것 같고, 우리 한국 각 처에도 있는 같습니다. 여러 나라들에 선교사 보내는 일도 중요합니다. 노대영 목사가 선교하러 갔는데 모스크바 어느 곳에서 오늘 주일 지낼 것 같습니다. 주일 지내는 그 교회에서 설교 할 수 있겠는지 그건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고 내일부터 비행기가 있으면 카자흐스탄, 알마타로 갈 건데 거기도 이제 우리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 진리, 골방인 어두운데서, 은밀한 골방에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진리를 전해야겠습니다.

미국에도 한국어로 라디오 방송하는 데가 많습니다. 또한 텔레비전, TV 나오는 곳도 있습니다. 워싱턴에 한번 갔었는데 한국 TV가 나갑니다. 저도 한번 가서 한 반시간 보고 왔는데, 거기도 하나님께서 할수 있게 해 주시면 우리가 가진 진리를 전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여간 할 수만 있으면 이 복음을 ‘집 위에서 전파된다’고 했으니까,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진리를 여러 사람에게, 여러곳에 전파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멀리 가서 이방사람 전도하지 못해도 가까운 데에서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어디 다니면 할 수 있다고 했습니까? 네 집 근처 다니면서 구할 사람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 집 근처, 만나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가르쳐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 주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 주면 그 사람들이 이 복음을 듣고 이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올 날이 있습니다.

일전에 안 믿는 어떤 사람이 제게 ‘사람이 욕심들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정치가들도 욕심만 부리고 있다는 겁니다. 그 사람이 ‘사람이 욕심들이 많다’고 말을 하는 기회를 타서, 제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고 성경에 말씀하셨다고 전했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기회를 타서 때를 얻는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 줄 사명이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 한 사람에게라도 전해 줄 사명이 있고, 개척교회를 세우고, 다른 나라에 책을 보내는 것이나, 혹은 라디오나 TV 등 여러 방법을 통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진리를, 전해야 될 책임이 있습니다. 전파하라고 그랬으니까 전파해야 됩니다. “집 위에서 전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핍박을 두려워 말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본문 4-5절에,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몸을 죽이고 그 후에 능히 더하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세상 사람들은 몸을 죽인 다음에 능히 더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죽으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죽은 다음에 어
떻게 할 것은 없습니다.

마땅히 두려워 할 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한번 죽으면 다 끝납니다. 그 다음에 그 이상 어떻게 더 못합니다. 그러나 죽은다음에도 지옥에 넣는 권세가 있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두려워해야 되겠습니다.
죽은 다음의 세계가 영원합니다. 내세가 영원 하지 않습니까? 영원한 내세에서 지옥에 던지시는 권세가 있으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모든 일엔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본문 6절에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0:29에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앗사리온이라고 하는 건 동전의 명칭입니다. 제일 낮은 가격의 동전의 명칭입니다. 한국으로 말하자면 십 원짜리 같습니다. 십 원짜리 둘 가져가면 참새 몇 마리 산다고 했습니까? 다섯 마리입니다. 어느 사람이 “이거가지고 참새 삽시다. 이십 원에 참새 몇 마리 주렵니까?”할 때, 장사치가 “다섯 마리 줍니다”라고 대답하고, “그럼 삽니다” 하면서 돈을 주고 다섯 마리를 샀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동전하나 가져가면 몇 마리 산다고 했습니까? 두 마리입니다. 참새 두 마리 받고 동전 한 개를 줬습니다.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한 일도 하나님께서 허락을 하셔야만 이루어지는 것이지 허락지 않으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한 마리도 팔릴 수가 없습니다. 허락을 하셔야 팔립니다. 집 파는 건 어떻겠습니까? 집 파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할 수 있습니까? 못 팝니다. 집 파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팔고, 그리고 뭘 사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사는 것이고, 장사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할 수 있습니다. 아무 장사든지 하나님께서 팔리게 해 주셔야 팔립니다. 팔리게 해 주시지 않으면 못 팝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돈
버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법니다.

평양의 백선행이라는 과부가 있었다고 합니다. 쓰지도 못하는 돌산을 누군가 부탁을 해서 매우 좋게 쳐주는 값으로 그 과부가 샀다고합니다. 처음엔 그 과부가 속아서 산 것입니다. 이미 등기는 다 넘어왔는데 다시 무를 수도 없고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 과부가 상당히 끙끙 앓았을 것입니다. 그때가 일제 시대였는데, 몇 년 후에 일본 사람들이 그 과부에게 와서 그 돌산을 사자고 그랬답니다. 그 과부가 “얼마 주겠습니까?” 물으니까 돈을 많이 주겠다고 대답했답니다.
과부가 눈치가 좀 빠른 모양입니다. 이 돌산을 가지고 돈을 많이 주겠다고 하는 거 보니까 별게 하나 있는가 보다 하고 큰 값이 아니면 안판다고 배짱을 부렸나 봅니다. 그러니까 일본인들이 더 많이 주겠다고 그런 모양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한 평에 만 원짜리를 갖다가 “삼만 원 준다”, “오만원 준다” 해도 그것도 안 맞으면 “몇 십만 원 준다”하고, 그것도 안 맞는다고 그러면 “몇 백만 원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원 받아야 할 것을 몇 백만 원 받는다고 하면 돈을 얼마나 많이 벌겠습니까? 일본사람들이 왜 그것을 샀나 하면 그 돌산이 시멘트 산이었습니다. 시멘트 산인 것을 한국 사람들은 몰라서 돌산인 줄만 알았는데, 일본 사람들이 와 보니까 그 돌이 시멘트 돌이었답니다. 그렇게 과부가 상당히
많은 값을 받고 일본 사람들에게 팔았습니다. 그 후에 일본 사람들이 시멘트 공장을 차렸고 그 산에서 시멘트가 나온 것입니다. 그 일본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백선행 과부는 돌산 때문에 돈을 많이 번 것입니다. 부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번 돈을 가지고 선한 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 과부가 성은 ‘백’씨 였는데, 선한 일을 많이 해서 별명을 선행이라고 갖다가 붙여준 것입니다.

그렇게 돈을 벌 때에 남한테 속아가지고 돈을 많이 버는 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백선행을 속여서 돌산은 팔아먹었지만, 그러나 백선행은 속아서 가진 것이 도리어 유익을 많이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사람을 속여 먹었지만 사실은 자기들이 손해인 것입니다. 그들이 돌산을 가지고 있었으면 일본 사람들에게 얼마 있다가 비싸게 팔 것인데, 그만 남 속인 것이 자기 속인 것이 됐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앗사리온 하나에 참새 두 마리, 앗사리온 둘에 참새 다섯 마리, 그게 얼마나 간단한 일입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면 절대 팔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허락 없이는 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 됩니다. 그렇게 참새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되는데, 사람하나 죽는 것이 하나님의 허락 없이 되겠습니까? 본문 7절“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참새보다 귀하지 않은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참새 한 마리만 못한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참새도 하나님께서 다 보호해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사람, 참새만도 못하다는 사람 손들어 보란 말입니다. 사람을 그냥 보기만 해도 참새 몇 백 마리만은 하겠는데, 우리가 참새 한마리만 못하겠습니까?

또 우리에겐 영혼이 있지 않습니까? 참새가 영혼 있습니까?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를 하나님께서 주셨지, 참새를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셨습니까? 또한 우리를 위해서 천당을 준비해 놓으셨지, 참새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것이 아닙니다. 참새도 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는데 우리를 왜 보호해 주지 않겠나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을까봐, 어디 팔려 갈까봐,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
도 안 팔리는데, 땅에 안 떨어지는데, 사람이 왜 떨어지겠는가 말입니다. 그것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8-9절에,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천사 앞에서 시인하시고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면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하신다고 그랬습니다.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 누가 죽인다고 해도 예수님을 시인하고증거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갔을 때에 예수님께서 아, 이사람 내가 안다. 사람 앞에서 생명 내놓고 나를 증거 했다”하시며 이렇게 시인하시고 인정해주셔서 많은 상급으로 갚아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