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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8일 수요일

로마서 3:1-20 전무의인(全無義人).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전무의인(全無義人)
로마서 3:1-20

1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3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4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5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9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또는 그들만 못하뇨 10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사 16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9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또는 정죄 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3:1 그러면 유대인의 나은 점은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은 무엇이냐? 

3:2 모든 면에서 많이 있으니, 첫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이다. 

3:3 그러나 어떤 이들이 믿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들의 믿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폐하겠느냐? 

3:4 결코 그럴 수 없다. 사람은 다 거짓되어도,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기록된 것과 같으니, "주께서말씀하실 때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하심이다." 라고 하였다. 

3:5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한다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내가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말하는데,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다는 말이냐? 

3:6 결코 그럴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겠느냐? 

3:7 그러나 나의 거짓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실하심이 더 풍성하여 그분의 영광이 되었다면, 왜 내가 여전히 죄인처럼 심판을 받아야 하느냐? 

3:8 또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한 일을 행하자." 라고 말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은 우리가 이렇게 말한다고 비방하는데, 그들이 정죄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3: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더 나으냐? 결코 그렇지 않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다. 

3:10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으며,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 

3:12 모두가 탈선하여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다. 

3: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고,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3:14 그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하다. 

3: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르며, 

3:16 파멸과 비참함이 그들의 길에 있어 

3: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한다. 

3:18 그들의 눈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3:19 우리가 아는 것은, 율법이 말하는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을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는 것이다.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분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육체가 없으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이다. 


1. 유대인의 불신과 하나님의 신실성

유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

본문 1절에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라고 하였습니다. “그런즉”이란 2장의 연결로서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외적 할례를 받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영적인 마음의 할례를 받고 신령에 속한 한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라는 뜻입니다. 즉 외모로 유대인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면적 유대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으므로 아브라함의 신앙을 받아 믿음으로 영이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외부적으로 어떠한 의식에 참여하든지, 유대족속에 속했다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란 할례를 받았어도 신령한 할례를 받지 못했으면 쓸데없고, 신령한 할례를 받았으면 외부적인 할례를 안받았어도 괜찮다고 말했으므로, 할례 받은 것이 무슨 유익이 있느냐? 또 유대인의 나은 것이 무엇이냐? 거기에 대한 문제를 꺼내놓고 답변을 합니다.

본문 2절에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이 나은 것이 있다, 할례 받은 것이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인의 나은 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첫째”라는 것은 “중요한 것이 될 만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즉 첫째가 될 만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으로 행하지 못했다고 해도, 유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안 맡은 것보다 낫다는 말입니다. 

또 할례에 있어서 영적할례를 못 받았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외부적인 순종이라도 순종했으므로 안 한 면보다 나은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적 할례를 못 받았으므로 속의 효과는 없지만 즉 영적 할례를 못 받았으므로 실제의 효과는 없지만 유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 하나는 있다는 말입니다. 유대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면, 또 외부적으로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한 면, 그 면은 유익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 내용에 들어가 보면 영적할례를 받지 못했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2:29절에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않다고 하였는데, 할례는 마음의 할례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신령한 할례에 참여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외부적인 할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할례의 뜻은 정욕을 제거하는 것과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할례를 받는 것이 참 할례입니다. 예레미야 4:4에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에서 정욕을 제거하고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이 참 할례를 받은 것입니다.
또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면적 유대인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받은 사람이 이면적 유대인입니다. 이방 사람이라도 아브라함의 신앙만 받았으면 이면적 유대인이 되고, 할례를 안받았다고 해도 마음에 할례를 받고,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하면, 그것은 벌써 신령한 할례를 받은 자입니다.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범사에 많으니”라고 하였는데 첫째로, 유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유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가지고 있었고, 또 하나님은 유대인과 더불어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청지기와 같은 민족입니다. 그것은 유대 사람에게만 준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모든 전 세계 믿는 사람에게 다 해당한 약속을, 유대 사람을 상대로 해서 말한 것입니다. 즉 유대사람은 모판과 같습니다. 모판에서 모를 길러 논에 옮겨 심습니다. 논이 만 평 있다고 하면 거기에 심을 모 자리는 한 2~3백평이면 됩니다. 십분의 일도 안 됩니다. 농사군이 다른 논은 안돌아보고, 오직 모판에서만 비료도 치며 일을 합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그 모판의 모를 뽑아 논에 옮겨 심습니다. 이처럼 유대인은 모판의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유대 사람에게만 약속하셨지만 그것은 유대사람에게만 한 것이 아닙니다. 모를 전체 논에 갔다 심을 것을 먼저 모판에 심어 놓은 것과 같이 유대 사람은 모판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뿐입니다. 

유대인의 불신

본문 3절에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자들이”란 유대인 중에서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떻게 하는가? 라는 말입니다. 유대인 가운데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믿지 않는 사람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미쁘심”은 “하나님의 신실성”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이루어나가시는 구원운동이 믿지 않는 유대 사람으로 인하여 폐하겠느냐? 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유대 사람들이 안 믿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을 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 사람들이 안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이루어 나가시는 구원운동이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심

본문 4절에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절대 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약속은 하나님이 100% 지키시므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절대 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 사람들이 더러 안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신실성은 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이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완성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란 사람은 다 거짓되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다가도 안 믿고, 배반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사람 때문에 폐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믿지 않는 사람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이 절대 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다 이루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 하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즉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나와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원망하며 죄만 짓는다면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폐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멸하고 새로 난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반드시 완성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역한 사람만 망하고, 하나님의 약속은 100% 다 이루어지며 하나님이 이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번 약속하신 것은 절대 변함도 없고, 폐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100% 다 완성하십니다. 그 다음에 “주께서 기록된바”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시편 51:4에 기록된 것을 말합니다. 

시편 51:4에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신다”는 것은 주의 말씀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즉 진리가 이긴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거역해도 진리가 이깁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다고 하나님이 실패하시겠습니까? 그 말씀이 무능해지고, 아무 효력이 없는 힘 없는 말씀이 될 리가 없습니다. “말씀이 이긴다, 진리가 이긴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거역할 때에 하나님이 어떻게 이기십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에, 말씀을 어기는 자를 하나님이 심판해서 말씀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거역하는 사람 때문에 말씀이 효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말씀으로 심판하시므로 말씀이 이기며, 말씀이 의롭다 함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이 이기고, 진리가 이기는 줄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은 아무리 거역해도 그것은 다 무용지물입니다. 순종하면 복을 받고, 거역하면 하나님의 심판으로 망합니다. 하나님의 신실성은 약속을 다 지키시고 이루어 놓으십니다. 말씀대로 완성해 나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기려면 말씀에 서 있어야 이길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에 굳게 서있어야 됩니다. 

본문 5-8절에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하리요”란 사람이 불의를 행해도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의가 드러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더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이루어 놓는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면 무슨 말 하리요” 거기에 대한 답변은 무엇입니까?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거역하는 행동을 이용하셔서라도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반드시 이루어 나가십니다. 

그러면 “자기의 악으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났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라는 사람이 있는데 거기에 대한 답변은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불의한 일을 미화시켜서 공로를 세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또 사실 사건이 그렇게 된 것이 많습니다. 즉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구속을 완성했다, 십자가의 구원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룟유다도 공로자가 아니냐? 즉 가룟유다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 못 박히셔서
구속을 이루셨으므로 가룟유다도 공로자로 상을 받아야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원리에 맞지 않는 궤변적인 해석입니다. 궤변적으로 보면 그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즉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지 않았다면 어떻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겠는가? 또 대제사장과 유대 사람들이 시기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다면 어떻게 예수님이 구속을 이루었겠는가? 그러므로 예수님의 구속을 이루는데 있어서 가룟유다도 공로자이고, 바리새인들도 공로자이고, 제사장도 공로자이고, 빌라도도 공로자라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재판을 바로 했으면 예수님이 죽지 않았을 것이며,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면 구속을 이룰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상을 주어야 된다는 것이 궤변적 해석입니다. 

“선악과를 아담 하와가 따먹었기 때문에 독생자가 왔다, 선악과를 안 따먹었으면 어떻게 구속주가 올 수 있는가?”라고 하는 것이 궤변적 해석입니다. 거기에 대한 답변이 무엇입니까?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답을 하였습니다. 성경에 죄를 지으면 정죄 받는 것이 옳다고 하였는데 무엇이 “공로자”인가? 자기 때문에 의가 이루어졌다고 궤변적으로 악한 자를 공로자로 세우는 거기에 대한 답변은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고 한 마디로 해
놓아야 합니다. 여러 말 할 것이 없습니다. 한 마디면 됩니다. 성경에 “악한 자는 정죄 받는다, 심판 받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죄는 하나님이 반드시 벌하시므로 정죄 받는 것이 옳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신실하시고, 변함이 없으시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십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기 십니다. 불의한 자가 있어도, 그 불의한 자를 이용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구약에 바로왕도 이용 하셨습니다. 악한 자를 이용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나가시는데 그렇다고 악을 행하는 자들이 공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구속이 이루어졌겠는가? 하며 그 사람들도 공로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거기에 대한 답변은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심판하시고, 죄에 대해서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죄는 죄인 것입니다. 자기가 죄 지은 것을 하나님이 이용했다고 해서 그것이 공로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게 됩니다.

2. 의인은 하나도 없음 (전무의인:全無義人)

선을 행하는 자가 없음

본문 9-18절에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나으뇨”란 “유대 사람은 나으뇨”라는 말입니다. 또 오늘날 “우리들은 나으뇨”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대한 답변이 무엇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습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하였는데 세상에 의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죄인입니다. 이방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유대 사람도 그렇다는 말입니다. 또 유대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도 다 전적 부패한 죄인인 줄 알아야 됩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죄 없다고 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선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무슨 선을 행한다 해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선이 아닙니다. 선이 될 수 없습니다. 도적질 해온 것을 가지고 나누어 준 것과 같습니다. 도적질 해서 그것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 그것이 선입니까? 선이 아닙니다. 자체가 도적질 한 물건인데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무슨 선이 되겠습니까? 사람의 행하는 선은 다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무슨 선을 행했다고 괜찮은 줄 알면 안 됩니다. 그것은 자기 것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심부름 한 것입니다. 심부름도 잘못했으면 책망 받아야 합니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임

또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라고 하였습니다. 목구멍이 열린 무덤이므로 썩은 냄새가 올라옵니다. 이것은 우리 속에서 인간의 부패성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고 하였는데 누구의 입술에 독이 있습니까? 예수를 믿어도 신령한 영적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의 목구멍과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는 말입니다. 한번 입술을 열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주고, 독을 품고 있고, 혈기가 나오고, 온유한 말이 나오지 않고 거슬리는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속에 악독이 있기 때문에 속에서 악독이 나오는 것입니다. 선한 말이 나오려면 속에 선을 쌓아야 합니다. 속에 선을 쌓아 놓으면 그 쌓은 것이 입으로 나오기 때문에 선한 말이 나오고, 속에 선을 쌓아놓지 않고 부패성으로 살면 인간의 부패성 때문에 악한 말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12:35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속을 고쳐야 됩니다. “예수 믿기 전에 복장부터 고쳐라”는 말이 있는데 속에 선한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또 회개하고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회개하고 선한 사람이 되면 선한 말이 나옵니다.
옛사람으로 살면 악한 말이 나오고 독사의 독이 나오나, 새사람으로 살면 선한 말이 나옵니다. 남을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 저주가 자기에게 미친다고 하였습니다. 즉 다른 사람을 저주하면 그 저주가 자기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저주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원수를 위해 복을 빌어 주라고 하였습니다. 원수를 축복해 주면 그 축복이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남을 저주하고, 남의 허물만 보면서 잘못 되었다고 하면 그것이 자기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허물은 보지 말고 무엇을 보아야겠습니까? 자기 눈속의 들보를 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 티가 있는 것을 가지고 티가 있다고 하지 말고, 자기 속에 있는 들보를 보고 “난 그것보다 더한 죄인 가운데 괴수다, 하나님이 나 같은 것을 용납해 주셨는데, 나도 용납하고 참자”하며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꼴을 보고 참으셨는데 나도 참아야 합니다. 그러면 선한 사람이 됩니다.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름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르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남을 죽이는데 빠르다는 것입니다.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란 남을 죽이는데 빠른 사람의 앞길은 파멸과 고생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따라 살면 파멸과 고생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새사람을 따라 가야 합니다.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는데, 다 죄인인줄 알아야 합니다.
유대 사람도 죄인이고, 이방 사람도 죄인으로 전적 부패했습니다. 옛사람은 전적 부패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의식적으로 예수 믿고, 육신 중심적으로, 물질 중심으로 나가면 옛사람과 똑같은 것입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는 도적질 합니다. 오늘날 육에 속한 신자,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신자가 이와 같은 것입니다.
예레미야 5:27-28에 “조롱에 새들이 가득함 같이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창대하고 거부가 되어 살지고 윤택하며 또 행위가 심히 악하여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송사 곧 고아의 송사를 공정히 하지 아니하며 빈민의 송사를 공평히 판결치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조롱에 새들이 가득함 같이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다”는 것은 도적질 해다 놓은 것이 너희 집에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정당하게 벌지 못한 것은 다 도적질해서 번 것입니다. 또 십일조 안한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해다 둔 것입니다. 주일에 나가서 돈을 번 것도 하나님의 날을 도적질해서 돈을 벌었으므로 도적질 한 것입니다. 또 불의하게 벌은 이익금들도 전부 도적질 해놓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옛사람으로 살면 다 이렇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이 새사람으로 살면 이렇게 안 됩니다. 중생한 사람에게는 옛사람과 새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중심, 말씀 중심으로 나아가면 새사람으로 이렇게 안 되지만, 자기중심 물질중심으로 나아가면 옛사람으로 이렇게 됩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고 가르쳐 놓고 자기는 간음 합니다. 육신중심으로 나가는 사람들은 간음하는 것입니다. 간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음으로 간음하는 것도 간음이고, 음욕을 품고 나가는 것도 간음이고 또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난 것도 간음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볼 것이 없다고 하였는데, 악하고 음란한 세대란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난 세대를 말합니다. 야고보서4:4절에 세상과 벗된 자가 음란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도적질 하고 다
니는 것, 간음하고 다니는 것은 마음이 벌써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 안에서 살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물질만 따라 다니며, 욕심만 채우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을 떠난 간음입니다.
그 다음에는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한다고 하였습니다.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것은 좋은데 왜 신사물건을 도적질합니까? 신사물건을 도적질 한 것은 우상에게서 취한 모든 것을 말합니다. 우상에게서 취한 모든 것이 다 신사물건을 도적질 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것으로 말씀을 어기고 취한 것은 다 신사 물건을 도적질 한 것입니다. 말씀 어기고 따라갔으므로 우상 아닙니까? 우상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것을 취한 것이 우상입니다. 또 우상으로 인해 취한 것은 전부 신사물 건을 도적질 한 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는데 이것들이 인간의 전적 부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목구멍과 같다”는 것은 썩어진 것이 계속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혀는 속임을 베풀고 독사의 독이 있다고 하였는데, 한번 혀만 돌리면 독이 나옵니다. 선한 말, 사랑하는 말, 용납하는 말, 용서하는 말, 좋은 말, 남을 유익되게 하는 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말,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 말이 나와야겠는데 독사의 독이 나옵니다. 이렇게 사람들
이 다 전적 부패했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우리가 옛사람을 따라 살던 그 모든 것을 찾아서 회개해야 됩니다. 이방 사람에게만 이런 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유대 사람에게만 이런 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전적부패는 예수 믿는 사람의 옛사람이나 이방사람의 옛사람이나 똑같습니다.

3. 율법으로 죄를 깨달음 (율법각죄:律法覺罪)
 
율법을 주신 목적은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함

본문 19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율법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란 온 세상은 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적으로 정죄 받아서 심판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합니다. 죄를 깨닫게 해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합니다. 율법은 지켜서 구원 받으라고 준 것이 아니고,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