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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3일 목요일

이사야 8:1-22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
이사야 8:1-22

1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취하여 그 위에 통용 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2내가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증거하게 하리라 하시더니3내가 내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4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할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왕 앞에 옮긴 바 될 것임이니라 5여호와께서 다시 내게 일러 가라사대 6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 7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곬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8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 하셨느니라 9너희 민족들아 훤화하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들을지니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 필경 패망하리라 10너희는 함께 도모하라 필경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내어라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니라 11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알게 하시며 이 백성의 길로 행치 말 것을 내게 경성시켜 가라사대 12이 백성이 맹약한 자가 있다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맹약한 자가 있다 하지 말며 그들의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13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로 너희의 두려워하며 놀랄 자를 삼으라 14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 15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거칠 것이며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걸릴 것이며 잡힐 것이니라 16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 17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18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9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20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21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주릴 것이라 그 주릴 때에 번조하여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22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리라

1. 두 나라 멸망 예고

마헬살랄하스바스

본문 1-3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취하여 그 위에 통용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내가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증거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내가 내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의 둘째 아들 이름을 왜 ‘마헬살랄하스바스’로 지으라고 하셨을까요?

본문 4절에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할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긴바 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돌쯤 되면 걷고 두 세 살이 되면 말을 하는데 이 아이는 두 세 살 되기도 전에 모든 재물이 앗수르에 노략 당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2, 3년 내로 앗수르 왕이 내침하여 사마리아의 모든 재물과 다메섹의 모든 재물을 빼앗아 갈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의 날이 멀다면서 포도주를 대접으로 마시고,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고, 상아 침상에 눕고,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는 이런 방탕에 빠져있지 말고 속히 임할 환난에 대비 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아모스 6장 3-6절에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이제 화를 임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몸에 귀한 기름을 바르면서 헛된 노래를 지어 악기로 연주 하면서 요셉의 환난을 위해서는 근심치 아니한다고 한 것처
럼 믿음을 지키다가 환난 당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미국을 가니 어떤 사람이 “앞으로는 환난이 없겠지요?”라고 묻는데, 미국이 9·1 테러를 당하기 전에는 환난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또 그때는 세계가 다 조용하고 미국의 권위가 세계적으로 뻗쳐 있어서 공산주의는 몰락 당하고 환난이 일어날 일이 없을것 같았습니다. 제가 “그래도 성경대로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한 1년인가 2년 있다가 미국의 쌍둥이 빌딩이 9월 11일에 테러를 당해서 다 무너졌습니다. 그때 미국 사람들이 정신을 바짝 차린 것 같습니다. 언제 더 큰 환난이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비행기로 테러를 했지만 앞으로는 독가스나 다른 어떤 것으로 인한 테러가 일어날지 몰라 세계가 벌벌 떨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도 테러를 하겠다는 말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언제 당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말은 ‘노략이 속히 온다, 환난이 속히 온다’는 뜻입니다. 아들을 부를 때에는 환난이 속히 온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그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지은 것입니다.

환난 때에 남은 자들이 돌아올 것을 예고함

이사야 7장 3절에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라고 하였습니다. ‘스알야숩’은 이사야의 맏아들 이름인데, ‘남은 자가 돌아온다’는 뜻으로 환난으로 다 망하나 믿음을 지킨 자는 남는다는 뜻입니다. 또 거룩한 씨가 이 땅 위에 그루터기라고 하신대로, 말씀대로 만들어진 사람은 환난이 와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종자를 남겨놓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남은 자가 돌아온다’ 또 ‘노략이 속히 온다, 환난이 속히 온다’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아침에도 그 신앙, 저녁에도 그 신앙, 또 밤에도 낮에도 그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말세 환난과 재림을 고대하는 신앙으로 영원히 살 것을 바라봐야 함

우리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말세 환난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천년왕국에 대해 늘 이런 신앙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 하신다. 환난이 온다. 천년 왕국이 온다. 성도는 부활해서 올라간다. 하늘나라에 간다. 그리고 영원히 산다. 영생이다’하는 신앙을 날마다 가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성도 한 사람이 죽을 때마다 모든 성도들이 부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재림 신앙, 부활 신앙, 재림 전의 말세 환난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여러 가지를 보면 말세 환난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이번에 동남아에서 지진과 해일 때문에 죽은 사람이 15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재민도 몇 백만으로 굶어서 다 죽게 되고, 치료를 못하게 되자 미국의 항공모함이 헬리콥터에 구제품을 싣고 가서 차로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내려준다고 합니다. 이런 시절에 환난의 날이 멀다 하여 상아 침상에 눕고, 몸에는 귀한 기름을 바르면서, 술을 마시고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하지 않는 자처럼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환난이 갑자기 온다’고 하였는데 ‘마헬살랄하스바스’를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동시에 또한 환난이 와서 다 빼앗아 가도 그 다음에는 남은 자가 돌아온다고 하는 ‘스알야숩’의 신앙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지진이 난 것이나 흉년, 질병, 난리와 난리가 환난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이슬람 국가가 어떻게 하든지 미국을 테러하려고 각종 음모를 꾸미고, 각종 무기를 사가는 이런 일들을 보면 세계는 지금 평안한 세상이 아니고 환난이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해일을 이용하여 치실 때도 있어서 해일로 바닷물이 15미터나 솟았다고 하는데 그 높이면 우리 예배당 천장보다 더 높고 요새 비행기로 일본을 두 시간이면 가는데 바닷물이 넘쳐흘러 들어오는 속도가 비행기보다도 더 빠른 속도입니다. 일본에서 지진이나면 한국에 한 시간이면 다 올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해일이 오는 것을 피할 줄 모르고 거기에서 덤벙덤벙하다가 많이 죽는데, 오히려 동물들은 먼저 알았습니다. 놀이터에서 코끼리를 타고 놀던 아이는 코끼리가 감긴 끈을 끊고 산으로 달아나는 바람에 해일을 피해 살았고, 어떤 일곱 살 난 아이는 개가 그 아이의 셔츠를 자꾸 물어 당겨서 산으로 끌고 가 산 위 오두막 위에 올라가 살았다고 합니다. 구조 때에 그 오두막이 거의 다 잠겨있었다니 그 개가 벌써 다 안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개만도 못하고, 코끼리만도 못합니다.

2. 앗수르 군의 내침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같이 일하시는 하나님

본문 5-7절에 “여호와께서 다시 내게 일러 가라사대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창일하고 흉용한 앗수르강을 선택했습니다. 당장 먹기는 곶감이 제일이라고,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은 시원치 않아 앗수르 왕의 모든 힘을 의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처럼 천천히 하신다는 것입니다. 흐르는 것 같지도 않게 잘 보이지도 않게 소리도 없이 천천히 흘러가서 시원치는 않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는가 하고, 세상의 방법과 세력, 세상의 모든 수단, 세상의 모든 길을 가지고 살자는 생각으로 세상을 의지하며 세상과 짝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12장 17-20절에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바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
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과 같다는 것입니다. 나의 종,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은 다투는 식으로, 떠드는 식으로, 강압적으
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고요하게 들리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게 하시나 성공하여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크게 역사하고 대성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19편 1-4절 상반절에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들리는 소리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일이 끝까지 전파되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대로만 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2-3절 상반절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른 땅에 나는 연한 순처럼 이 세상에 오시는 것입니다.

마른 땅에서 풀이나 곡식이 올라올 때에 소리치면서 자라는 것이 아니고, 씨를 심어놓고 얼마 있다가 가보면 올라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몇 달 자라나면 그 다음에 이삭이 나오는데 이삭이 나온다고 갑자기 먹는 것이 아니고 한 45일 정도의 기간이 지나야 먹을 수 있으므로 조급한 사람은 농사를 못 짓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삭이 조금씩 나왔는데 아무리 봐도 자라나지를 않아서 크게 하겠다고 조금씩 뽑아놓고 집에 와서는 자기가 오늘 곡식을 조금 자라나게 하느라 크게 수고를 했다고 하고 그 다음날 나가보니 다 하얗게 말랐더랍니다. 식물을 자라게 하는 것도 이렇게 시간이 걸려야만 됩니다. 하룻밤 지나면 조금 더 올라오고, 며칠 더 지나면 조금 더 올라오는데 우리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고운 모양도, 풍채도, 아름다운 것도 없고, 흠모할 만한 것도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은 반드시 완성되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돼지도 잡아먹으려면 몇 달은 걸려야 하는데 새끼를 사다놓고 자꾸 크라고 말하면 돼지가 큽니까? 한 주간에 열 가마니의 사료를 다 먹이고, 소화제를 먹이고 또 먹이고, 또 먹인다고 크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체라는 것은 그렇게 갑자기 크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대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고 떠드는 소리, 들레는 소리, 다투는 소리는 없지만 하나님의 방법대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사람들은 다 알지 못 하지만 그것이 생명이고, 그것이 성공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것을 언제 기다리겠는가? 안될 것 같다’라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방법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일이어서 조급한 사람은 못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실로아 물이 흘러내려가는 것이 얕아서 한 발목만큼 올라오도록 내려가다 조금 더 있으면 무릎만큼 올라오고 조금 더 있으면 허리에만큼 차올라 오고 조금 더 있으니 큰 강이 되었습니다.

성전에서부터 흐르는 실로아 물

그리고 그 물은 어디에서부터 흐르겠습니까? 에스겔 47장 1-5절에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문지방, 제단, 그 밑에서 돌아 나왔으니까, 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은 성전에서부터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 생활, 제단 생활, 기도 생활,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는 생활에서부터 물이 흘러내려가는 것입니다.

실로아 물의 인위적인 중단은 하나님의 역사를 중단시키는 것임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람의 생각으로는 시원치 않고,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리도 안 들리니까 앗수르 방법, 아람 나라 방법, 바벨론 방법 등을 써서 갑자기 창일하고 큰 위력이 있는 세력을 의지해서 나가려고 한 것입니다.
요새도 교회 목사들이 성전에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고, 성전에 들어가 조금 흘러나오는 물을 다 중지하고 세상 방법을 가져다가 씁니다. 큰 강대상은 다 집어치우고 조그만 것 하나 가져다 놓고, 거기에서 춤추고, 노라리하고, 강대상을 연극장 같은 무대로 만들어 놓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 방법을 쓰는 교회들이 있는데, 그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세상 방법을 쓰면 세상 사람들이 좀 들어오기 때문에 일시적으로는 무언가 잘되는 것 같아도 사람이 많이 모이면 뭐합니까? 남대문 시장에서 간판을 붙여놓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들이 지금 인본주의를 쓰고, 교회 강단에 올라가서 춤추고, 각종 악기를 가져다가 지절거리고, 교회 돈으로는 노라리를 다니며, 사다 먹고, 먹자주의로 나갑니다. 또 버스를 사다가 집사들을 태워서 노라리나 하러 다니고, 주일날 아침 7시에 1부 예배를 본 다음에는 주일을 다 지켰으니 아무데나 가도 된다는 것이고 연보했으니까 됐다고 그 다음에는 놀러 다닙니다. 7시에 1부 예배를 보았으니 주일을 범해도 괜찮다는 허가를 내주는 것입니다. 7시에 나와 한 시간 지키는 것이 무엇을 지키는 것입니까? 이렇게 교회 안에 인본주의가 들어오고, 세상을 의지하며 돌아가고, 세상 세력이 들어와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다 버리게 되었으니 마헬살랄하스바스입니다.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점점 떠나서 세상 세력을 의지하니 노라리 침략군이 속히 오게 되어 있습니다.

물은 계속 흘러 내려가는데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 자기가 중단시키는 것입니다. 중단시키면 안 됩니다. 중단하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의 역사가 중단이 됩니다. 중단이 안 되려면 항상 성전 생활을 하여 진리와 영감으로 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자기를 통해서 이루어져 나가는 하나님의 인도하는 바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바를 알고 따라가고, 그 일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러면 반드시 성공을 합니다. 인본주의를 안 쓰고, 세상 세력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 방법이 없어도 물이 계속 내려가기만 하면 반드시 온 땅을 다 적시고 정복할 날이 옵니다. 인본주의를 쓰면 가다가 실패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성공이지, 사람이 하는 것이 성공이겠습니까?

실로아 물이 흐르는 대로 갈 것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책임은 교회에 있습니다. 교회가 타락되니 정치가들이 잘못 나가고, 또 대적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바로 서야 합니다. 첫째, 나부터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하며, 둘째는 우리 교회부터, 우리 교단부터 바로 서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한국 교회부터 바로 서야 하고, 세계 교회가 바로 서야 합니다.
다 바로 서지 못해도, 소돔 고모라에 있었어야 할 의인 열 사람과 같이 바로 설 사람이 회개하고 바로 서면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면하게 해주십니다.

본문 7-8절에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곬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방 사람들이 들어와 날개를 펴서 다 점령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교회에 간첩이 들어와서 장로가 될 가능성이 많고 또 벌써 이렇게 된 곳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열심히 교회에 나오고, 연보를 많이 하고 목사님께 대접도 잘하고 교인들에게도 굽실굽실 하면서 교인들을 다 교섭해놓으면 교회에서는 큰 복이 들어온 것이라 생각하고 장로로 세우면 그야말로 간첩이 장로가 되어 간첩이 주장하는 교회가 됩니다. 그 간첩은 누가 주장합니까? 김정일이 주장합니다.
교회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이렇게 교회에 이북 세력이 들어와 주장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펴는 날개가 임마누엘에 편만해진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한국에 간첩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또 현재 교육계는 좌파 전교조가 다 주장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정신을 못
차리고 나가니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점령하고, 또 교회까지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따라서 물이 흐르는 대로 가야 합니다. 교회 정치도 물이 흐르는 대로 정치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역사가 흐르는 대로 해야 하는데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맹자에게 “어떤 사람이 천하를 통일하겠습니까?”라고 물어보니, “사람을 죽이지 않는 사람이 통일한다”고 했답니다. 노자에게 “어떤 사람이 천하를 통일하겠습니까?”라고 물어보니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하는 사람이 천하를 통일한다”고 했답니다. ‘무위자연’이라는 것은 자연이 흐르는 대로, 물이 흐르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새 정치가들은 무위자연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것을 억지로 빼앗아다가 자기네 주장대로 하려고 합니다. 그런 정치는 얼마 못갑니다. 정치도 물이 흐르는 대로 해야 합니다.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무위자연으로 해야 합니다.

3. 열국의 멸망

본문 9절에 “너희 민족들아 훤화하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들을지니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 필경 패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방법대로 하는 인본주의는 반드시 실패할 날이 오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해야만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인본주의를 써서 복제 양이 태어나 세계가 떠들썩했지만 지금은 죽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신 정상적인 방법으로 하지 않으면 일시적으로는 될 것 같지만 조금 가면 다 죽고 망하는 것입니다. 또 공산주의가 처음에는 성공할 것 같지만 남의 것을 빼앗아 나눠 가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내신 정상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공산주의로 가다가 다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러시아에서 공산주의를 하느라고 부자를 숙청하고, 스탈린이 일천만 명을 죽이고, 백성들이 반항할까봐 술을 먹여 다 취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 여자에게 권세를 주어서 남자가 여자에게 잡혀 살게끔 만들어 놓았습니다. 러시아는 여자들이 남편에게 “나가라”고 하면 그날로 나가서 못 들어옵니다. 남자들의 세력을 꺾느라고 그렇게 해놓은 것입니다. 또 여러 가지 제도도 잘해 놓았습니다. 일 년에 한 달씩 휴가를 주고, 병원이나 학교도 무료, 아이들 교육도 다 무료입니다. 여러 가지로 공산주의가 잘될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내신 원리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이 땀을 흘려 받은 삯으로 사는 것이 원리인데, 이것을 다 무시하고 집단 체제를 만들어 놓으니 다 안 되고 실패하는 것입니다. 이제 공산주의 국가들도 하나님께서 내신 원리로 돌아오느라고 개인 재산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내가 힘껏 일하면 잘 살 수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내신 원리인데 어디든 하나님께서 내신 원리를 어기면 실패합니다. 이북도 이것을 고치지 않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신 원리가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생명수,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이 흘러 내려가면 모든 생명이 삽니다. 에스겔 47장에 보면 모든 고기가 산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생명이 살고, 이 땅 위에 편만해지고, 반드시 성공하고, 원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아무리 떠들어대도 결국 망하고 맙니다. 필경 망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너희는 함께 도모하라 필경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내어라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을 내어도 이르지 못하고, 또 도모해도 성공이 안되고, 세상 인본주의는 다 실패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만 성공하고 인간이 하는 것은 다 실패합니다.

4. 여호와를 두려워할 것

본문 11절에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알게 하시며 이 백성의 길로 행치 말 것을 내게 경성시켜 가라사대”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이 백성의 길로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백성의 길은 앗수르를 의지하고, 세상 방법, 세상 풍속, 습관을 교회 안에 들어오게 하는 것인데 이것은 필경 망하는 것들입니다.

본문 12절에 “이 백성이 맹약한 자가 있다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맹약한 자가 있다 하지 말며 그들의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세상 나라와 맹약을 하고 세상 나라의 도움을 얻어서 도모하지만 너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로 너희의 두려워하며 놀랄 자를 삼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나가야지, 인본주의를 쓰는 자와 맹약하여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 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피난처가 되시고 하나님만 피난처이십니다. 세상 나라를 의지하는 것은 피난처가 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두 집’이라는 것은 유다 나라와 북쪽 이스라엘 나라를 말하는데, 유다는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떠나 앗수르와 동맹하고 앗수르를 의지하였고, 북 이스라엘은 아람나라를 의지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두 집이 성경에서 다 떠난 것입니다. 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걸리는 반석이 되고, 예루살렘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서 다른 것을 의지하면 오히려 그것이 함정이 되고, 올무가 되어 거기에 빠져 마지막에는 삼켜집니다.

본문 15절에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거칠 것이며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걸릴 것이며 잡힐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떠나서 세상 방법, 세상 권세를 의지하고 가다가 거기에 걸려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생명 운동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야지, 인간의 방법과 세상 세력을 의지하다가는 반드시 거쳐 넘어가서 함정에 빠질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5. 여호와를 바라며 말씀을 기다릴 것

말씀을 간직하고 가르칠 것

본문 16절에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고 하였습니다. 증거의 말씀을 싸매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서 잘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흘러 떠내려 버리지 말고, 마음에 잘 간직 하십시오. 노트에 기록해놓고 보며 마음에 간직하고, 녹음테이프를 들으면서 마음에 말씀을 간직해서 그 말씀이 살아 역사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제자 중에 봉함하라’고 하였는데, 봉함하라는 것은 가르치라는 말로 제자들에게 교훈해서 이 말씀이 제자 중에 살아 역사 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이깁니다. 언제나 가르치는 데 힘을 써야 합니다. 말씀을 가르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교회 세우는 일과 다른 일도 물론 해야 하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봉함 된 말씀이 역사해서 마침내는 열매가 맺히기 때문에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11시 예배만 보고 그만 두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오후에도 예배를 통해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먼저는 말씀을 싸매고 간직하며, 제자 중에 봉함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것을 잘하면 성공할 것이고, 이것을 잘하지 못하면 생명 강수,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이 큰 역사를 못합니다. 실로아 물은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야 실로아 물이 흘러서
생명 강수가 되어 많은 사람을 살려나갑니다.

낯을 가리우시는 하나님을 기다리고 바라볼 것

본문 17절에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낯을 가리시고 아무리 기도를 해도 들어주시지 않고 살펴주지도 않으신다하더라도 성도는 하나님을 기다리며 끝까지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께서 일시적으로는 들어주지 않으시는 것 같을 때에 기다리며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들어주지 않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개시키고 깨닫게 하시며 하나님을 조금 더 바라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기다리고 바라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들어주실 때야 기도하면 즉시 즉시 주시지만, 하나님 바라보는 것이 없으면 들어주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들어주지 않으셔도 나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기다립니다. 이루어주실 줄 믿고 기다립니다’라고 하면서 기다리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반드시 돌보아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마헬살랄하스바스와 스알야숩의 징조와 예표를 바라볼 것

본문 18절에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다는 것은 마헬살랄하스바스와 스알야숩을 말합니다. ‘앞으로 노략이 온다. 그러나 남은 자가 돌아온다’는 예표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노략이 와도 하나님께 피한 자, 말씀에 선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권고하여 세워주실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와도 아주 다 망하는 것이 아니고 예루살렘에 피한 자, 숨어있는 자는 반드시 돌아오는데 이것이 징조입니다.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구하지 말 것

본문 19절에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점하는 자에게 가서 물어본다는 것입니다.
요새도 점을 보러 다니는 교인들이 많다고 합니다. 권사들도 또 집사들도 있고, 목사들도 있다고 합니다. 국회의원들도 점을 본다고 합니다. 당선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물어보고 다니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니, 나라가 뭐가 되겠습니까? 마귀에게 물어봐서 나라를 다스리
는 사람들이 뭐가 되겠냐는 말입니다. 점을 보며 다니는 것은 마귀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교회 와서는 하나님을 섬기고, 나가서는 마귀를 섬기는 것이 말이 됩니까?

마귀도 더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도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라고 말하며 기도해 보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하셨다, 저렇게 하라고 하셨다’라고 하는 사람은 잘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부르시기에 대답했더니 지금 강가에 내려가서 세탁을 하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버선 짝, 양말 짝을 다 들고 대문간을 지나가니, 이제 그만 두라고 해서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마귀의 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세탁해라, 그만두어라”고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손금 보는 것, 관상 보는 것, 궁합 보는 것, 날짜 보는 것, 토정비결은 전부 다 마귀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맞는다고 해도 아무것도 아닌 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성경대로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되고 말씀하신대로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성경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성령이십니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시는 성령이 아니십니다. 성경에 하라고 했으면 하는 것이고, 성경에 하지 말라고 했으면 안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 직접 “어떻게 할까요? 갈까요? 말까요?”라고 하는 것은 발람의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이미 가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두 번째 다시 물어보므로 하나님께서 발람이 깨져야 깨닫겠기에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신접한 자나 마술사에게 물어보는 것은 마귀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인 줄 알고 성도는 그저 성경대로만 하면 됩니다.

6. 말씀을 떠난 자는 흑암과 고통을 당함

본문 20절에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에서 찾아야 합니다. ‘아침 빛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망한다는 것인데, 그들의 말하는 바, 행하는 바, 모든 것이 성경에 맞으면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지만 말씀에 맞지 않는 자는 다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어 보았더니 이렇게 하라고 하셨다, 저렇게 하라고 하셨다”라고 하는 신비주의자들은 가다가 다 실패하고 망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맞는 사람만 마지막까지 세워서 성공시켜주십니다.

본문 21-22절에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주릴 것이라 그 주릴 때에 번조하여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 뿐 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리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맞지 않는 사람은 흑암 중으로 다 들어가 그때에 자기 왕을 저주해도 쓸 데 없고 환난과 고통과 흑암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심한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리라’고 하였는데, 이제 성경에 맞지 않는 길을 걷는 사람은 이렇게 흑암으로 쫓겨 들어가고 패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맞는 사람만 지켜주시고, 끝까지 세워나가시며, 성공하게 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